(八四四)
(844)
주 경 번호 자리다. 한문 「(八四四)」는 대정장 번호이고, 팔리 쪽 「1009」와 제목 「Ānandattherasuttaṃ」(sn55.13), 「1000」과 「Paṭhamasāriputtasuttaṃ」(sn55.4)은 상윳따 판본의 번호·제목이다. 번호 체계가 달라 본문 대응을 따질 자리가 아니므로 꼴은 미결(미대응)로 두었다. 다카쿠스 각주(교감주)는 「S. 55. 4. Sāriputta」로 보조 경 sn55.4를 가리킨다. 그런데 한문은 사리불이 묻고 아난이 답하는 구도(0215c04.1~0215c05.1)이며, 이 구도는 본 후보 sn55.13(사리불이 묻고 아난이 답함)과 같고 보조 경 sn55.4(아난이 묻고 사리불이 답함)와는 거꾸로다. 증언 계열이 갈린다는 사실만 신고한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물에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5.13:1009.0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5.4:1000.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이 경에 준 팔리 원문(sn55.13)은 시작이 곧바로 「Ekaṃ samayaṃ …」이고 「Evaṃ me sutaṃ」이 없다. 보조 경 sn55.4도 같다. 다른 경(예: sa1 ↔ sn22.12/12.1)에는 「Evaṃ me sutaṃ」이 실려 있으므로, 이 두 팔리 원문에서만 없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없음확인). 근처에 …pe…로 접힌 구간은 없다.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실린 개경 정형구다. 如의 「~같이」는 「이와 같이」의 어미에 걸렸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13:1009.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4:1000.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르셨다.
주 같은 자리(장소 서두)에서 주어가 다르다. 한문은 佛이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는 것으로 쓰고, 팔리는 「āyasmā ca ānando āyasmā ca sāriputto」(아난과 사리불)가 머문다(sn55.13·sn55.4 모두 같다). 한문 안에서는 佛이 머문다고 하고서 곧이어 두 존자의 만남이 나오므로 佛의 역할이 서두에 그친다. 장소는 같다: 舍衛↔sāvatthiyaṃ, 祇樹給孤獨園↔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 住는 「머무르셨다」(주체 높임, 내레이션 평서). 一時는 「한때」. 전거 舍衛: 팔리 Sāvatthī / 당대 śravasthi (⚠다른 부(DA)의 대역) — 두 계통을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舍衛國(一切經音義 慧琳 0367c24): 室羅伐悉底國, 뜻으로는 「聞者城」·「聞物國」이라 하고 舍衛는 사람 이름에서 온 국호라는 설도 인용된다. 정착어 「사위국」(舍衛, 3분할 정착어): 나라(성) 이름이며 위 음의대로 「들리는 것이 많은(聞物) 나라」라는 풀이가 전해진다.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정착형): 祇樹는 祇(祇陀 태자, 음역)+樹(숲, 뜻)의 음의합벽이고, 給孤獨은 Anāthapiṇḍika의 의역(「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음의 慧琳 0368a03·0368a05: 祇陀 태자가 숲을 바치고 長者가 園을 샀다, 無親屬을 구제하여 붙은 호). 합쳐 「기타 태자의 숲에 있는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의 뜻이다. 3분할 표는 이 5자 이상 이름을 「보류」로 두었고, 총칙 §⑤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형 예로 들었으므로 정착형으로 썼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5.13:1009.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5.4:1000.1
爾時,尊者舍利弗詣尊者阿難所,問訊慰勞已,退住一面。
그때 존자 사리불이 존자 아난의 처소에 나아가, 문안하고 위로하기를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나 머물렀다.
주 sn55.13/1009.2는 「사리불이 저녁에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아난에게 갔다」, .3은 「인사를 나누었다(sammodi)」, .4는 「정다운 이야기를 주고받고 한쪽에 앉았다(ekamantaṃ nisīdi)」이다. 한문에는 저녁·홀로 앉음에서 일어남이 없고(문장 유무), 「정다운 이야기를 주고받음」은 問訊慰勞已 하나로 합쳐졌다. 退住一面은 「물러나 머물렀다」로 옮겼고 팔리 nisīdi(앉았다)와 갈린다(개별 어휘; 사전 一面 ①은 앞이 退坐 359·退住 67로, 退住도 쓰인다). 보조 경 sn55.4/1000.2는 아난이 사리불에게 가는 구도이고 가는 동작이 …pe…로 접혀 있어, 이 한문 구간과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미대응으로 둔다. 정착어 「사리불」(舍利弗, Sāriputta): 音義에 따르면 奢唎(백로·해오라기류 새, 鶖鷺)+補怛羅(아들), 곧 「鶖鷺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눈이 그 새의 눈 같아 어머니에서 이름을 얻었으며, 옛 번역 「身子」는 그릇된 것이라 한다(一切經音義 慧琳 0450b23, 0478b23, 0482b07). 정착어 「아난」(阿難, Ānanda): 阿難陀, 「慶喜」(기쁨)의 뜻(慧琳 0482c03). 전거: 舍利弗 팔리 Sāriputta / 근대 Śāriputra, 阿難 팔리 Ānanda / 근대 Ānaṁda (모두 ⚠다른 부(DA)의 대역) — 갈림은 음역계통으로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존자(尊者)는 정착형. 詣…所의 所는 「처소」로 풀어 관형절 「하는 바」를 쓰지 않았다. 問訊은 「문안하고」(음의 慧琳 0428c12: 訊=問), 慰勞는 「위로하고」, 已는 완료의 「마치고」(사전 問訊 ① 慰勞 63회). 爾時는 「그때」.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13:1009.2~1009.4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5.4:1000.2
尊者舍利弗語尊者阿難:「欲有所問,寧有閑暇為記說不?」
존자 사리불이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기별해 말해 줄 한가한 틈이 있는가?」
주 팔리 .5는 「한쪽에 앉은 사리불이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다(etadavoca)」로 말문만 열고 바로 .6의 질문으로 간다. 한문에만 「묻고 싶은 것이 있는지, 말해 줄 틈이 있는지」를 먼저 청하는 문장이 있다(문장 유무). 보조 경 sn55.4/1000.2는 화자와 청자가 거꾸로다(아난이 사리불에게). 欲有所問은 「묻고 싶은 것이 있다」(有는 존재 서술이라 살렸고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寧有閑暇…不은 의문 어미 「-는가」에 걸렸다(寧·不은 따로 옮기지 않음; 사전 閑暇 ① 앞 寧有 24/26). 為記說의 為는 「(말해) 주다」의 수혜 뜻으로 「줄」에 걸었고, 閑暇를 꾸미는 관형절로 풀어 「~이 있어」를 피했다. 記說은 확정역이 없어 「기별해 말하다」로 일관한다(0215c06.1·0215c09.1·0215c16.1·0215c19.1 동일)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음의 閑暇(慧琳 0401a22): 暇=閑. 화자 사리불은 상대 아난이 윗사람이 아니므로 평서. 사리불·아난의 뜻은 0215c03.1 서술.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13:1009.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5.4:1000.2
尊者阿難語舍利弗:「隨意所問,知者當答。」
존자 아난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뜻대로 물으십시오. 아는 것은 답하겠습니다.」
주 두 팔리 원문 모두 사리불의 말문(.5)에서 곧바로 질문(.6)으로 가며, 아난이 질문을 받아들이는 이 응답 문장이 없다. 근처에 …pe…로 접힌 구간은 없다(sn55.4/1000.2의 …pe…는 .2 앞쪽에 있고 이 자리는 그 뒤다). 隨意所問은 「뜻대로 물으십시오」(所를 관형절로 풀어 명령형에 흡수), 知者當答은 「아는 것은 답하겠습니다」: 當은 어미 「-겠」이 지고, 者는 「~것은」으로 옮겼다. 者를 「아는 이(곧 나)」로 읽는 길도 있다 [불확실:격·태·구문]. 화자 아난은 상대 사리불이 윗사람이므로 존댓말. 사전 隨意 ①: 앞 問汝 22 · 뒤 答我 23. 아난의 뜻은 0215c03.1 서술.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13:1009.5~1009.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4:1000.2~1000.3
舍利弗問尊者阿難:「為斷幾法,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記說彼人得須陀洹,不墮惡趣法,決定向正覺,七有天人往生,究竟苦邊?」
사리불이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몇 가지 법을 끊는 까닭에, 여래·응공·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알고 보시어, 그 사람이 수다원을 얻고,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이며, 결정코 바른 깨달음으로 향하고, 일곱 번의 존재 동안 천인으로 가서 태어나 괴로움의 끝에 마침내 이른다고 기별해 말씀하셨는가?」
주 팔리 .6은 「몇 가지 법을 버림 때문에(pahānā), 몇 가지 법을 갖춤 때문에(samannāgamanahetu) 이 사람들을 세존께서 흐름에 든 이,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진 이, 결정된 이, 깨달음을 향하는 이라 기별하셨는가」이다. 한문의 질문은 為斷幾法(끊음) 하나뿐이고 「갖춤(성취)」 쪽이 없다 — 그러나 같은 한문의 답(0215c09.1)은 斷四法·成就四法 둘을 든다. 보조 경 sn55.4/1000.3은 반대로 samannāgamanahetu(갖춤) 쪽만 묻는다. 한문에만 있는 것: 七有天人往生, 究竟苦邊(문장 유무) — 두 팔리 원문에 대응이 없다. 개별 어휘: 如來·應·等正覺(세 호칭) ↔ bhagavatā(세존) 하나; 所知所見(알고 보심; 팔리 원문에는 「알고 보는 분」에 해당하는 낱말이 이 자리에 없음); 彼人 ↔ pajā(사람들, 중생); 得須陀洹 ↔ sotāpannā; 不墮惡趣法 ↔ avinipātadhammā; 決定向正覺 ↔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為斷幾法의 為는 팔리 pahānā(탈격, 이유)에 비추어 이유로 읽어 「~는 까닭에」로 옮겼으나 목적(「~하기 위하여」)으로 읽을 수도 있다 [불확실:격·태·구문]. 如來·等正覺은 [구속] 확정역(「여래」·「바르게 깨달으신 분」). 應은 앵커가 [당위]로 표시하나 여기서는 十號의 應供(아라한)의 약칭이다(사전 應 ① 앞 如來 118, 뒤 等正 117). 「응공」으로 옮겼고 확정역을 확인하지 못했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須陀洹은 3분할 음역이라 한자 독음 「수다원」(음의 窣路陀阿鉢囊=「入流」, 慧琳 0441b25). 전거: 팔리 Sotāpanna / 근대 Srota-āpanna (⚠다른 부(DA/MA)의 대역) — 음역계통으로 신고, 판정 않음. 惡趣는 「악취」(사전 惡趣 ① 앞 不墮 28), 法은 「법」 그대로(不墮惡趣法은 팔리 avinipātadhammā의 「~하는 성질」일 수 있으나 본문은 한자대로 둔다). 正覺은 「바른 깨달음」: 같은 자리를 0215c09.1·0215c16.1·0215c19.1은 三菩提로 쓴다 — 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았다. 七有는 「일곱 번의 존재」, 天人은 「천인」(사전 天人 ⑥은 天趣와 人趣를 합한 말로 풀지만 후대의 눈), 往生은 「가서 태어나」, 究竟苦邊은 「괴로움의 끝에 마침내 이른다」. 記說은 0215c04.1 서술 참조. 이문(app 0215016): 宋·元·明·聖본은 所를 正으로 읽는다(저본 大正은 所). 저본이 이긴다. 화자 사리불은 아난이 윗사람이 아니므로 평서이고, 붓다에게는 「-시-」를 쓴다. 사리불·아난의 뜻은 0215c03.1 서술.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13:1009.6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4:1000.3
尊者阿難語尊者舍利弗:「斷四法、成就四法,如來、應、等正覺記說彼人得須陀洹,不墮惡趣法,決定向三菩提,七有天人往生,究竟苦邊。
존자 아난이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네 가지 법을 끊고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여래·응공·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그 사람이 수다원을 얻고,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이며, 결정코 삼보리로 향하고, 일곱 번의 존재 동안 천인으로 가서 태어나 괴로움의 끝에 마침내 이른다고 기별해 말씀하셨습니다.
주 팔리 .7은 「네 가지 법을 버림 때문에, 네 가지 법을 갖춤 때문에 이 사람들을 세존께서 …라 기별하셨다」이고, 보조 경 sn55.4/1000.4는 「네 가지 법을 갖춤 때문에」 하나다. 한문 斷四法·成就四法은 sn55.13의 두 항(pahānā·samannāgamanahetu)과 맞다. 한문에만 있는 것: 七有天人往生, 究竟苦邊. 이 좌표에는 앞뒤 질문·결론(0215c06.1·0215c16.1)에 있는 所知所見이 없다(한문 안의 차이). 한문은 두 구를 접속사 없이 늘어놓았다. 한국어 연결어미 「-여」가 인과 느낌을 띠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불확실:격·태·구문]. 三菩提는 三藐三菩提의 약칭으로 보아 음역 독음 「삼보리」로 옮겼다(음의 慧琳 0482c14: 阿耨已下合云無上正等正覺, 菩提=覺). 3분할 표는 菩提를 「혼합」으로 분류하고 팔리 Bhaddiya에 걸었지만 이는 동형이의로 보이고, 이 자리의 팔리는 sambodhiparāyaṇā다 — 전거(菩提=Bhaddiya)는 적용하지 않았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앞의 0215c06.1이 같은 자리에서 正覺을 쓰므로 한자 흔들림 신고(통일 안 함). 화자 아난은 존댓말. 인용은 열린 채 0215c16.1에서 닫힌다(한문 부호대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13:1009.7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4:1000.4
何等為四?
어떤 것들이 넷인가?
주 팔리 「Katamesaṃ catunnaṃ?」(어떤 넷인가)와 같다. 何等의 等은 복수 표지로 보아 「어떤 것들」로 옮겼다(사전 等為 ① 앞 何 532/581). 아난의 발화 안(0215c09.1에서 연 인용 안)이며 따로 인용 부호가 없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5.13:1009.8
니까야 대응 같음 SN 55.4:1000.5
謂聖弟子於佛不信住,則已斷已知,成就於佛不壞淨;於法、僧不信惡戒,彼則已斷已知,成就法、僧不壞淨及聖戒成就。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부처님에 대해 믿지 않음에 머무는 것을 이미 끊고 이미 알아,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청정을 성취한다; 법과 승가에 대해 믿지 않음과 악한 계를, 그는 이미 끊고 이미 알아, 법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청정을 성취하고, 아울러 성스러운 계 성취를 이룬다.
주 팔리는 부처님·법·승가·계의 네 항을 각각 두 겹으로 편다 — 「어리석은 범부는 (해당 항의) 불신/악계를 갖추어 죽은 뒤 악처·지옥에 난다 —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그런 불신이 없다」, 「성스러운 제자는 흔들림 없는 믿음(aveccappasāda)을 갖추어 죽은 뒤 좋은 곳·하늘에 난다」. 한문은 범부 대조와 사후의 갈래를 모두 빼고 「끊음→성취」 하나로 압축했다(구조·배열; 인도어의 대조·정형 반복이 한문에 없어 생긴 압축이면 번역기법). 또 팔리 .11·.14·.17·.19에는 …pe…로 접힌 정형구(itipi so bhagavā…, svākkhāto…, suppaṭipanno…, akhaṇḍāni…)가 있는데 한문에는 대응하는 호칭 열거가 없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한문에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 이 부분은 미대응이다. 보조 경 sn55.4/1000.6~1000.8은 「법…pe… 승가…pe…」로 더 접혀 있다. 구문: 謂聖弟子於佛不信住, 則已斷已知 — 「부처님에 대한 불신에 머묾」을 목적어로 읽었다. 住를 「머무는 것」에 살렸다. 則은 귀결의 연결어미 「-아」에 흡수. 於法、僧不信惡戒는 「법과 승가에 대한 불신」과 「악계」를 둘로 끊어 읽었다(네 항 = 부처님 불신·법 불신·승가 불신·악계; 팔리 dussīlya와 맞다). 惡戒를 「계에 대한 불신」으로 읽는 길도 있다 [불확실:구두·분절]. 彼는 「그는」(성스러운 제자)으로 읽었다 [불확실:격·태·구문]. 이문(app 0215017): 聖본은 이 자리의 法을 佛로 읽는다(저본 大正은 法). 저본이 이긴다. 不壞淨은 3분할이 의역이라 뜻으로 「무너지지 않는 청정」으로 옮겼다. 정형구 행(淨信 aveccappasāda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서 「믿음」은 들이지 않았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成就는 「성취」, 聖戒成就는 「성스러운 계 성취를 이룬다」: 앞 成就와 뒤 成就를 각각 한 번씩 살렸고 及은 「아울러」로 옮겼다. 弟子·聖은 「제자」·「성스러운」. 不信은 「믿지 않음」, 惡戒는 「악한 계」. 佛은 [구속] 「부처님」. 於는 「~에 대해/대한」, 已는 「이미」.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13:1009.9~1009.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4:1000.6~1000.8
如是四法斷、四法成就,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記說彼人得須陀洹,不墮惡趣法,決定正向三菩提,七有天人往生,究竟苦邊。」
「이와 같이 네 가지 법의 끊음과 네 가지 법의 성취로, 여래·응공·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알고 보시어, 그 사람이 수다원을 얻고,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이며, 결정코 삼보리로 바르게 향하고, 일곱 번의 존재 동안 천인으로 가서 태어나 괴로움의 끝에 마침내 이른다고 기별해 말씀하셨습니다.」
주 팔리 .20은 「이 네 가지 법을 버림 때문에, 이 네 가지 법을 갖춤 때문에 이 사람들을 세존께서 …라 기별하셨다」의 맺음이다(보조 경 .9는 갖춤만). 한문 맺음도 같은 구도이나 七有天人往生, 究竟苦邊이 더 있다. 앞의 0215c09.1은 斷四法·成就四法(동사+목적어) 순서이고 이 좌표는 四法斷·四法成就(명사형) 순서라 한국어도 「끊음」·「성취」의 명사형으로 갈랐다. 이 좌표는 決定正向三菩提로 正이 들어 있다. 이문(app 0215018): 聖본은 이 正이 없다(저본 大正은 있음). 저본이 이긴다. 인용은 여기서 닫힌다. 응공·삼보리·기별해 말하다는 앞 좌표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13:1009.20
니까야 대응 일부 SN 55.4:1000.9
尊者阿難尊者舍利弗:「如是!如是!四法斷、四法成就,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記說彼人得須陀洹,決定正向三菩提,七有天人往生,究竟苦邊。」
존자 아난이 존자 사리불에게: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네 가지 법의 끊음과 네 가지 법의 성취로, 여래·응공·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알고 보시어, 그 사람이 수다원을 얻고, 결정코 삼보리로 바르게 향하고, 일곱 번의 존재 동안 천인으로 가서 태어나 괴로움의 끝에 마침내 이른다고 기별해 말씀하셨습니다.」
주 두 팔리 원문은 .20(맺음) 뒤에 곧바로 경 끝의 표지(Tatiyaṃ / Catutthaṃ)로 끝나며, 같은 말을 다시 확인하는 이 발화가 없다(없음확인; 근처에 …pe…로 접힌 구간은 없다). 이 좌표는 0215c16.1의 맺음 문구를 되풀이한 것으로, 0215c16.1과 달리 不墮惡趣法이 없다. 저본의 문장이 動詞 없이 「尊者阿難尊者舍利弗:」로 되어 있다. 이문(app 0215019): 宋·元·明본은 難 뒤에 語를 더한다. 본문은 語를 보태지 않고 「~에게:」로 두었으나 화자는 阿難이 된다. 그런데 如是!如是!(그렇다, 그렇다)는 보통 질문자가 상대의 답을 인정하는 말이어서 화자가 사리불이어야 문맥에 맞을 수 있다 — 저본의 글자대로 아난을 화자로 읽고 존댓말을 썼으나 정도평 님의 판단에 남긴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이문(app 0215020): 宋·元·明·聖본은 決定正向의 正이 없다(저본 大正은 있음). 저본이 이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13:1009.20~1009.2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4:1000.9~1000.10
時,二正士共論議已,展轉隨喜,從座起去。
이때 두 바른 사람은 함께 논의하기를 마치고, 서로 번갈아 따라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두 팔리 원문에는 이 맺음(논의를 마치고 서로 기뻐하며 떠남)이 없고 .20 뒤에 경 끝 표지(Tatiyaṃ / Catutthaṃ)만 있다(없음확인). 근처에 …pe…로 접힌 구간은 없다. 이 맺음은 잡아함 전반에서 두 존자의 대화 경을 끝맺는 정형구로 보이며(사전 正士 ① 뒤 共論 47/77, 展轉 ① 뒤 隨喜 8/15), 이 경 안에서는 한 번 나온다. 二正士는 「두 바른 사람」으로 옮겼다: 正士는 사전 ⑥에서 菩薩의 다른 번역(후대의 눈)이라 하나, 이 자리는 아난과 사리불 두 존자를 가리키므로 보살로 읽지 않고 한자대로 옮겼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論議는 「논의」, 已는 「마치고」. 展轉은 음의(慧琳 0605b12)에서 「서로 인하여 옮겨 감」이라 풀므로 「서로 번갈아」로 옮겼고, 이때 「서로」는 展轉의 뜻을 푼 것이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隨喜는 「따라 기뻐하며」. 時는 「이때」(爾時의 「그때」와 한자가 달라 달리 옮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13:1009.20~1009.2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5.4:1000.9~10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