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24

SĀ 24

교차 검사교차 검사 17현대역 준비 중

(二四)

(24)

주 한역의 제목 자리에는 경 번호 「二四」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0.3은 「12. Apagatasuttaṃ」으로 번호와 경 이름을 함께 세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엇갈림이다. 대응 후보 계열이 갈린다(합의 등급 conflict). 莊春江은 sn18.22(우리 PN sn18.14)를, 다카쿠스 각주(이 좌표 교감주 「S. 22. 91-92. Rāhula.」)는 sn22.91·sn22.92를 가리킨다. 처음 작가에게는 sn18.14 원문만 주어졌고, 보조 증언 회전에서 sn22.91·sn22.92 원문이 더해졌다. sn22.91/0.3 「9. Rāhulasuttaṃ」과 sn22.92/0.3 「10. Dutiyarāhulasuttaṃ」도 번호와 경 이름을 함께 세우므로 엇갈림이다. 대조로 확인되는 사실만 적는다(어느 계열이 맞는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한역의 질문(b06.1)과 대답(b19.1)은 sn22.91(91.4·91.7)처럼 anusaya를 我慢使의 使 자리에 세우고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을 그 문장에 두지 않는다. 한역 b21.1의 超越疑心·寂靜解脫은 sn18.14/201.8·sn22.92/92.6의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과 맞선다. 섭송 b27.1 「羅睺羅所問二經」과 sn22.92/92.11 「rāhulā apare duve」는 둘 다 라후라 경을 둘로 센다. 보조 증언 회전은 대상 좌표 11곳만 다시 썼으므로, 나머지 좌표(0.2·b08.1·b11.1·b15.1·b18.1·b24.1)의 sn22.91·sn22.92 대응은 아직 매기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0.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1:0.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0.3

AG:sa24/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는 「Sāvatthinidānaṃ」으로 인연 정형구 전체를 접어 두었다. 개경구는 그 접힌 안쪽에 들어 있어 「없음」이 서지 않으므로 미대응으로 둔다. 如是는 「이와 같이」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8.14:201.1

AG:sa24/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伽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장소가 갈린다. 한역은 왕사성 가란다 대나무 동산이고, 팔리는 접힌 인연 정형구 안에서도 읽히는 지명이 Sāvatthī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곳을 말하므로 엇갈림이다. 王舍城: §⑤ 유형표가 「왕사성」을 정착어 예로 들기 때문에 정착형을 썼다. 이름의 뜻은 「왕의 집(王舍)인 도성」이고 팔리형은 Rājagaha다(_전거). 그런데 _한자대역_3분할은 王舍를 「의역」으로 분류해 뜻으로 옮기라 하고, _전거에는 王舍城에 「⚠다른 부(MA)의 대역」 표시가 있다. 유형 판별이 자료끼리 갈리므로 로 신고한다. 伽蘭陀竹園: 표에 없는 이름이다. 伽蘭陀는 한자가 뜻을 이루지 않아 음역으로 판단하고 독음 「가란다」로 적었다. 竹園은 뜻이 서므로 「대나무 동산」으로 옮겼다(음역+의역 혼합). 伽蘭陀의 팔리형은 투입물(_전거·_한자대역_3분할·팔리 원문) 어디에도 없어 적지 않는다. 이문: 伽를 【宋】【元】【明】은 迦로 쓴다. 두 글자 모두 독음이 「가」여서 본문 표기에는 영향이 없다. 佛=부처님 [구속]. 내레이션은 평서로 쓰되 주어가 붓다라 「머무셨다」로 주체를 높였다. 보조 증언: sn22.91/91.1과 sn22.92/92.1도 Sāvatthinidānaṃ이어서, 장소가 갈리는 것은 세 팔리 후보에서 같다(엇갈림). 王舍城·伽蘭陀의 유형 판별에 쓸 증언은 더해지지 않았으므로 [불확실]은 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20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1:9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92.1

AG:sa24/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羅睺羅:「比丘!云何知、云何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

그때 세존께서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비구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나의 이 식이 있는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모습에 대해, 나와 내 것이라는 견해와 나라는 교만의 잠재 번뇌에 얽매여 집착함이 없겠는가?"

주 묻는 이가 갈린다. 한역은 세존이 라후라에게 묻고, 이어지는 b08.1에서 라후라가 설해 주기를 청한다. 팔리 201.5는 라후라가 세존께 묻는다. 팔리 201.2–201.4(라후라가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림)에 해당하는 문장은 한역에 없다. 팔리 질문은 ahaṅkāra-mamaṅkāra-māna-apagataṃ mānasaṃ 뒤에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까지 묻는다. 한역 질문에는 그 부분이 없고, 같은 내용이 b21.1(超越疑心…寂靜解脫)에 결과로 나온다. 대응: 識身 ↔ saviññāṇake kāye, 外境界一切相 ↔ bahiddhā sabbanimittesu. 相은 「모습」으로 옮겼다. 끊기: 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에서 見이 「我·我所」를 함께 받는지(나라는 견해·내 것이라는 견해), 我를 따로 세우는지는 저본 구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앞 읽기로 옮기고 [불확실:구두·분절]로 신고한다. 팔리 ahaṅkāra·mamaṅkāra·māna 세 항은 我·我所·慢과 맞선다. 使: 배선 앵커는 [사역]으로 표시하지만 이 자리는 동사가 아니라 명사 「使(잠재 번뇌)」로 읽었다. 我慢使가 繫著의 주어 자리에 서고, 이 경 끝 섭송(b26.1)이 경 이름으로 「使」를 세우며, 팔리 섭송 201.14가 Anusaya를 세우기 때문이다. 앵커와 다르게 읽은 것을 신고한다. 見은 [정형구 행] 한자이고 확정역이 없다. 「云何見」은 동사 「보다」로, 「我所見」은 명사 「견해」로 문맥에 따라 옮겼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羅睺羅는 정착어 「라후라」로 썼다. 이름의 뜻은 一切經音義(慧琳) 0482c04 「羅怙羅此云執日」(해를 붙잡음)과 0435a06 「羅此云攝, 睺云惱」(가려 괴롭힘)이 풀이한다. 아수라가 해와 달의 빛을 가린다는 데서 온 이름이라는 풀이다. 팔리형은 Rāhula다. 한역은 라후라를 「比丘」로 부르는데, 팔리에서는 질문자가 라후라여서 이 호격이 없다. 我는 아함판 확정역이 없어 이 경에서 「나」로 통일한다. 붓다 발화이므로 평서 의문으로 맺었다. 보조 증언: sn22.91/91.4와 sn22.92/92.3에서도 라후라가 세존께 묻는다. 묻는 이가 갈리므로 둘 다 엇갈림이다. 라후라가 다가와 앉는 도입(sn22.91/91.2–91.3, sn22.92/92.2)도 한역에 없다. sn22.91/91.4의 질문은 ahaṅkāra-mamaṅkāra-māna-anusayā na honti로 끝나고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이 없다. 이 점은 한역 질문과 같다. 또 anusayā(잠재 성향)가 我慢使의 使 자리에 선다. 使를 명사 「잠재 번뇌」로 읽은 판단을 받치는 증언이 하나 더 생겼다(본문은 바꾸지 않았다). 無有 ↔ na honti다. sn22.92/92.3은 sn18.14/201.5와 같이 apagataṃ mānasaṃ … vidhā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까지 묻는다(92.3은 vidhāsamatikkantaṃ을 붙여 쓴다). 我所見의 見과 繫著에 맞서는 낱말은 두 보조 증언에도 없어 끊기는 정해지지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은 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201.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1:91.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92.3

AG:sa24/0005b06.1 · 교차 검사

羅睺羅白佛言:「世尊為法主、為導、為覆。

라후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고, 이끄는 분이시며, 덮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 「羅睺羅白佛言」은 팔리 201.4(라후라가 세존께 말씀드렸다)와 맞선다. 그러나 말한 내용(法主·導·覆)은 sn18.14에 없다. 팔리의 라후라는 곧바로 질문(201.5)으로 들어간다. 覆은 「덮다」로 직역해, 덮어 보호해 주는 이라는 뜻을 살렸다. 為×3은 계사(~이다)로 흡수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내레이션에서는 「佛」(부처님), 발화에서는 「世尊」(세존)으로 부른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것이다. 각각 확정역으로 고정했다. 라후라가 세존께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로 썼다. 저본의 따옴표가 이 좌표에서 닫히지 않고 b09.1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4

AG:sa24/0005b08.1 · 교차 검사

善哉!世尊當為諸比丘演說此義,諸比丘從佛聞已,當受持奉行。」

좋습니다! 세존께서 비구들을 위해 이 뜻을 펼쳐 말씀해 주십시오. 비구들은 부처님께 듣고 나서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주 이 청원 전체가 sn18.14에 없다. 팔리의 라후라는 직접 묻기 때문에 설법을 청하는 자리가 없다. 이 문장이 놓일 자리는 201.4 발화 도입과 201.5 질문 사이다. 當×2: 앞의 當은 청원 「~해 주십시오」, 뒤의 當은 다짐 「~하겠습니다」로 어미가 그 기능을 진다(「마땅히」를 쓰지 않음). 善哉는 감탄 어미로 옮겼다. 受(受持)는 [정형구 행] 한자다. 여기서는 느낌이 아니라 동사 「받다」로 읽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한 좌표 안에 世尊과 佛이 함께 나오는 한자 흔들림은 b08.1과 같다. 보조 증언: sn22.91·sn22.92에도 이 청원이 없다. 두 경 모두 라후라가 곧바로 묻는다. 놓일 자리는 sn22.91의 91.3 발화 도입과 91.4 질문 사이, sn22.92의 92.2 발화 도입과 92.3 질문 사이다. sn22.91/91.3의 …pe…는 upasaṅkamitvā와 ekamantaṃ nisinno 사이(절하고 한쪽에 앉음)를 접은 것이다. 이 청원이 놓일 etadavoca 뒤는 펴져 있으므로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14:20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91.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2:92.2

AG:sa24/0005b09.1 · 교차 검사

佛告羅睺羅:「諦聽!諦聽!善思念之,當為汝說。」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들어라! 잘 생각하라. 너를 위해 말하겠다."

주 설법을 예고하는 정형구(諦聽·善思念之)가 sn18.14에 없다. 놓일 자리는 201.5 질문과 201.6 대답 사이다. 之는 「잘 생각하라」의 목적어로 흡수했다. 當은 어미 「-겠다」가 진다. 「자세히」의 근거로 續一切經音義(希麟) 0949c19 「諦, 審也」(살핌)를 인용한다. 붓다 발화이므로 평서로 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14:201.5

AG:sa24/0005b11.1 · 교차 검사

羅睺羅白佛:「唯然,受教。」

라후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주 응답 정형구도 sn18.14에 없다(놓일 자리는 b11.1과 같다). 唯然: 一切經音義(慧琳) 0316a03 「唯…應辭也, 唯恭於諾」을 근거로 공손한 응답 「예」로 옮겼다. 앵커의 唯[한정]은 이 자리에 맞지 않는다. 受는 [정형구 행] 한자로, 여기서는 느낌이 아니라 동사 「받다」로 읽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教는 「가르침」(명사)으로 읽었다. 보조 증언: 이 응답 정형구도 sn22.91·sn22.92에 없다. 놓일 자리는 b09.1과 같다(sn22.91/91.4 질문 앞, sn22.92/92.3 질문 앞). 그 구간에 접힘 표지는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14:201.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9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2:92.3

AG:sa24/0005b12.1 · 교차 검사

佛告羅睺羅:「當觀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麁、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있는 모든 색을 관찰하라.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안이든 밖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좋든 추하든, 멀든 가깝든, 그 모든 것은 내가 아니고,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서로 안에 있지도 않다.

주 色은 오온의 첫째다. 아함판 확정 술어에 행이 없어 한국 불교계 정착형 「색」을 썼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所有는 관형절 「있는」으로 풀었다. 若×11은 가정 「-면」이 아니라 선택 나열이므로 「~든」으로 흡수했다. 나열 대조: 過去·未來·現在 ↔ atītānāgatapaccuppannaṃ(팔리는 세 항을 한 복합어로 묶는다), 內·外 ↔ ajjhattaṃ·bahiddhā, 麁·細 ↔ oḷārikaṃ·sukhumaṃ, 遠·近 ↔ dūre·santike는 같다. 好·醜 ↔ hīnaṃ·paṇītaṃ은 어휘와 순서가 갈린다(팔리는 저열·수승 순, 한역은 좋음·추함 순). 핵심 갈림: 한역 「非我、不異我、不相在」(내가 아님·나와 다르지 않음·서로 안에 있지 않음) ↔ 팔리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이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기 자신이 아니다). 같은 자리에서 세 항이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엇갈림이다. 不異我·不相在는 한문대로 두었다. 구조: 팔리는 「보고」(disvā)를 문장 끝 분사구에 두는데, 한역은 「當觀」(관찰하라)을 문장 앞에 세운다. 팔리 201.6 후반(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은 한역이 다음 좌표 b15.1로 따로 세웠다. anupādā vimutto hoti(취착 없이 해탈한다)는 한역의 이 단락에 없다.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진다. 보조 증언: sn22.91/91.5와 sn22.92/92.4도 결론 세 항이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여서 엇갈림이다. sn22.91/91.5는 sammappaññāya passati(바른 지혜로 본다)로 맺고 anupādā vimutto hoti가 없다. 이 단락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가 없는 한역과 같다. sn22.92/92.4는 sn18.14/201.6과 같이 disvā anupādā vimutto hoti로 맺는다. 好·醜 ↔ hīnaṃ·paṇītaṃ 갈림은 sn22.91/91.5에서도 같다. sn22.92/92.4는 bahiddhā vā…pe… yaṃ dūre로 나열을 접었으므로, 그 증언에서는 麁·細·好·醜 대조가 읽히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201.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1:91.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92.4

AG:sa24/0005b12.2 · 교차 검사

如是平等慧如實觀。

이와 같이 평등한 지혜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주 平等慧 ↔ sammappaññā. 팔리 sammā(바른)에 해당하는 자리를 한역은 「平等」으로 옮겼다. 저본대로 「평등한 지혜」로 둔다(sama/sammā 혼동 여부는 판정하지 않는다). 如實 ↔ yathābhūtaṃ(있는 그대로), 觀 ↔ disvā(보고). 팔리는 이 구를 201.6 한 문장 안의 분사구로 두고 anupādā vimutto hoti로 맺는다. 한역은 독립된 명령문으로 끊었고 해탈 구는 없다. 그래서 일부다. 문장 분할은 번역기법으로 신고한다. 如×2: 如是는 「이와 같이」, 如實은 「있는 그대로」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6

AG:sa24/0005b15.1 · 교차 검사

如是受、想、行、識,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麁、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

이와 같이 수·상·행·식도,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안이든 밖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좋든 추하든, 멀든 가깝든, 그 모든 것은 내가 아니고,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서로 안에 있지도 않다.

주 한역은 수·상·행·식 넷을 한 문장에 묶고 나열과 결론을 한 번만 적었다. 생략 표지는 없으므로 접힌 자리가 아니다. 팔리 201.7은 vedanā…pe…로 접고 saññā… saṅkhārā…를 거쳐 viññāṇa에서만 나열을 편다. 넷을 묶어 결론을 한 번 맺는 구조는 같다. 결론 세 항이 엇갈리는 것은 b12.2와 같다(非我、不異我、不相在 ↔ netaṃ mama…). 好·醜 ↔ hīna·paṇīta 갈림도 b12.2와 같다. 受는 [정형구 행] 한자로, 이 자리는 오온의 受(느낌)로 읽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受·想·行·識 모두 아함판 확정 술어에 행이 없어 정착형 수·상·행·식을 썼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한역이 팔리의 …pe… 구간을 편 문장으로 가지고 있으므로, 팔리 vedanā 항의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다는 점을 함께 적는다. 보조 증언: sn22.91/91.6과 sn22.92/92.5도 수·상·행·식을 묶어 결론을 한 번 맺고, 결론 세 항이 엇갈리는 것도 같다. 두 경 모두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를 「…」로 줄이므로 vedanā 항의 안쪽은 여기서도 읽히지 않는다. sn22.92/92.5는 viññāṇa에서 나열을 다 펴고 disvā anupādā vimutto hoti로 맺는다. 好·醜 ↔ hīnaṃ·paṇītaṃ 갈림도 같다. sn22.91/91.6은 viññāṇa 나열을 bahiddhā vā…pe…로 다시 접어 麁·細·好·醜·遠·近 대조가 그 증언에서는 읽히지 않는다. sammappaññāya passati로 맺고 anupādā vimutto hoti가 없는 것은 b12.2와 같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201.7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1:91.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92.5

AG:sa24/0005b16.1 · 교차 검사

如是平等慧如實觀。

이와 같이 평등한 지혜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주 b15.1과 같은 문장이다. 팔리 201.7 후반(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anupādā vimutto hoti)과 일부 대응한다. 平等慧 ↔ sammappaññā 어휘 갈림과 독립 명령문으로 끊은 것(번역기법), 해탈 구가 없는 것 모두 b1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7

AG:sa24/0005b18.1 · 교차 검사

「比丘!如是知、如是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

"비구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나의 이 식이 있는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모습에 대해, 나와 내 것이라는 견해와 나라는 교만의 잠재 번뇌에 얽매여 집착함이 없다.

주 b06.1의 질문을 그대로 받는 대답이다. 팔리 201.8의 호격은 rāhula이고 한역은 「比丘」다. 팔리는 이 문장 안에서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까지 이어 가는데, 한역은 그 내용을 다음 좌표 b21.1로 넘긴다. 그래서 일부다. 我所見의 끊기, 使를 명사로 읽은 것, 見의 문맥 판정은 b06.1과 같다. 저본에서 앞 따옴표가 닫히지 않은 채 「가 다시 열린다. 본문은 저본대로 여는 따옴표만 두었다. 보조 증언: sn22.91/91.7은 ahaṅkāra-mamaṅkāra-māna-anusayā na honti에서 문장을 맺는다.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으로 이어 가지 않으므로, 한역이 그 내용을 이 좌표에 두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같음으로 매겼다. 남는 갈림은 호격(rāhula ↔ 比丘)과 낱말 수준(我所見의 見·繫著에 맞서는 팔리 낱말이 없음, 無有 ↔ na honti)이다. anusayā가 使 자리에 서는 것은 b06.1과 같다. sn22.92/92.6은 sn18.14/201.8과 같이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까지 이어 가므로 일부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8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91:9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2:92.6

AG:sa24/0005b19.1 · 교차 검사

「羅睺羅!比丘如是識身及外境界一切相,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者,超越疑心,遠離諸相,寂靜解脫,是名比丘斷除愛欲,轉去諸結,正無間等,究竟苦邊。」

"라후라야! 비구로서 이와 같이 식이 있는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모습에 대해 나와 내 것이라는 견해와 나라는 교만의 잠재 번뇌에 얽매여 집착함이 없는 이는, 의심하는 마음을 뛰어넘고, 모든 모습을 멀리 떠나, 고요하고 해탈한다. 이를 일러 비구가 애욕을 끊어 없애고, 모든 결박을 돌려 버리고, 바르게 빈틈없이 꿰뚫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하였다고 한다."[불확실]

불확실 超越疑心 ↔ vidhā samatikkantaṃ. 팔리 vidhā(가름, 견주어 분별함)를 한역은 「疑心」(의심하는 마음)으로 옮겼다. 개별 어휘가 갈리지만 저본대로 둔다. 遠離諸相은 팔리의 이 자리에 없다. 寂靜 ↔ santaṃ, 解脫 ↔ suvimuttaṃ. 「是名…究竟苦邊」 전체는 sn18.14에 없다(문장 유무). 正無間等은 저본 글자만으로 뜻이 서지 않는다(正=바르게, 無間=틈 없이 — 一切經音義(慧琳) 0564a19 「間, 隔也」, 等의 몫은 불분명). 雜阿含에서 現觀(꿰뚫어 앎)에 해당하는 말로 쓰인다는 작가 판단으로 「바르게 빈틈없이 꿰뚫어」로 옮겼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愛欲: _한자대역_3분할은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지만, 愛·欲 두 글자 모두 뜻글자로 보여 음역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어에 정착한 「애욕」을 썼다. 표 분류와 어긋나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 _전거의 팔리 후보가 Kāma/Taṇhā 둘이어서 어느 쪽인지는 정하지 않는다. 轉去諸結은 「모든 결박을 돌려 버리고」로 직역했다(轉=돌리다). 者는 「~한 이」로 명사화했다. 我所見 끊기와 使·見 읽기는 b06.1과 같다 [불확실:구두·분절]. 호격 羅睺羅는 붓다 발화 평서에 맞춰 「라후라야」로 옮겼다. 앞 따옴표가 닫히지 않은 채 다시 열리는 것은 저본 그대로다. 보조 증언: sn22.91은 91.7에서 질문의 조건을 되받는 데서 끝난다(91.8 Navamaṃ, 접힘 표지 없음). 超越疑心 이하에 맞서는 문장이 없고, 者절(…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者)만 91.7과 겹치므로 일부다. sn22.92/92.6은 sn18.14/201.8과 같이 vidhā 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을 가지므로 일부다. 遠離諸相과 「是名…究竟苦邊」은 두 보조 증언에도 없다. 正無間等·愛欲을 판별할 증언은 더해지지 않았으므로 은 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9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2:92.6

AG:sa24/0005b21.1 · 교차 검사

時,羅睺羅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라후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맺음 정형구가 sn18.14에 없다. 팔리는 201.8 붓다의 말로 끝나고 201.9 「Dvādasamaṃ」(열두째)으로 경을 닫는다. 그래서 놓일 자리를 201.9로 짚었다.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 一切經音義(慧琳) 0753a01 「歡喜, 悅也」.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14:201.9

AG:sa24/0005b24.1 · 교차 검사

使、增諸數非我、非彼結繫、動搖

잠재 번뇌·여러 수를 늘림·내가 아님·저것이 아님·결박에 묶임·흔들림

주 경 이름을 모은 섭송이다. 저본 구두는 「使、增諸數非我、非彼結繫、動搖」로 끊는 자리가 넷뿐이다. 그러나 b27.1과 이어 「…二經」으로 경 수를 세는 자리이므로 使·增諸數·非我·非彼·結繫·動搖 여섯 경 이름으로 끊었다. 저본 구두와 다르게 끊었으므로 [불확실:구두·분절]로 신고한다. 增諸數의 뜻은 글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각 이름은 앞선 경들의 제목으로 보고 뜻으로 옮겼다(使=잠재 번뇌, b06.1 판단과 같음). 動搖: 一切經音義(慧琳) 0492a14 「搖, 樹動也」. 팔리 섭송 201.11–201.14는 라후라 상윳따 둘째 품 열 경의 이름이어서 내용이 다르다(엇갈림). 다만 201.14의 Anusayaṃ(잠재 성향)이 使와 맞서므로 201.14는 일부로 매겼다. 행은 저본대로 한 줄을 유지했다. 보조 증언: sn22.91에는 섭송이 없다. 91.8 Navamaṃ으로 끝나고, 그 품의 섭송은 sn22.92 끝에 선다. 접힘 표지는 없으므로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sn22.92/92.9–92.11은 장로 품(Theravagga) 열 경의 이름(Ānanda·Tissa·Yamaka·Anurādha·Vakkali·Assaji·Khemaka·Channa·Rāhula 둘)이어서, 이 행의 여섯 이름과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使와 맞서는 이름은 sn22.92 섭송에 없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201.1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14:201.13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91.8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92.1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2:92.11

AG:sa24/0005b26.1 · 교차 검사

劫波所問亦羅睺羅所問二經

겁파가 물은 것, 또 라후라가 물은 것 두 경

주 섭송 둘째 행이다. 劫波: _한자대역_3분할은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지만, 劫·波 모두 소리를 옮긴 것으로 보여(_전거의 팔리 후보 Kappa) 음역으로 판단하고 독음 「겁파」를 썼다. 표 분류와 어긋나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 팔리형 Kappa는 비고에만 적는다. 亦은 앞뒤 경 이름을 잇는 「또」로 옮겼다. 所問은 관형절 「물은 것」으로 풀었다. 「二經」이 라후라가 물은 경 둘만 세는지, 겁파와 라후라 경을 합쳐 둘로 세는지는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 본문도 두 읽기가 모두 남도록 옮겼다. 팔리 201.14의 apagataṃ(sn18.14 자신)이 이 경 「羅睺羅所問」과 맞선다. 겁파 경 이름은 팔리 sn18 섭송에 없다. 그래서 일부다. 보조 증언: sn22.92/92.11의 「rāhulā apare duve」(라후라 [경] 다른 둘)는 라후라 경을 둘로 센다. 「二經」을 라후라가 물은 경 둘로 세는 읽기와 맞는 증언이다. 다만 이것은 팔리 품 섭송의 셈이고 한역 섭송의 끊기를 정해 주지는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은 그대로 두고 판정은 넘긴다. 劫波(Kappa)는 sn22.92 섭송에도 없으므로 일부다. sn22.91에는 섭송이 없다(b26.1과 같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14:201.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9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2:92.11

AG:sa24/0005b27.1 · 교차 검사

❖

함께 볼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