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86

SĀ 186

교차 검사교차 검사 10현대역 준비 중

(一八八)

(188)

주 한역 저본의 표제 자리는 경 번호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두 경은 같은 자리에 경 이름(sn35.1 「안의 무상 경」, sn35.139 「안의 기쁨 다함 경」)을 세우므로 엇갈림으로 매긴다. 교감주: 元·明본은 이 앞에 「誦六入處品第二」 일곱 자를 더한다(大正은 없음) — 본문은 大正대로 두었다. 다카쿠스 각주는 S.35.155-156 Nandikkhaya를 가리키며, 이 번호는 우리 PN 번호 체계와 어긋날 수 있다(莊春江 sn35.156 → PN sn35.139 대조).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0.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39:0.3

AG:sa186/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는 부사 「이와 같이」로 받았다. sn35.139는 서두 정형구 없이 곧바로 본문으로 들어가며 …pe… 표지도 없으므로 없음확인으로 매긴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1.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39:156.0

AG:sa186/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구속]). 舍衛는 정착어 「사위」(_한자대역_3분할). 이름의 뜻: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는 바른 범음을 室羅伐悉底로 들고 「聞者城」(들은 이의 성)·「聞物國」으로 옮긴다고 전한다(참고 인용, 확정 아님). 음역계통: 전거표(_전거_sa186)에 팔리형 Sāvatthī와 당대 범어형 śravasthi가 함께 실려 있다 —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다른 부 DA의 대역 표지 있음).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에서 「보류(5자 이상)」로 나왔으나, 작가프롬프트 §⑤ 표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어 예로 들므로 정착형 그대로 썼다 — 유형 확정은 정도평 님 몫이라 을 남긴다. 이름의 뜻: 祇樹=기타(慧琳 0368a03: 誓多, 「勝」) 태자의 숲, 給孤獨=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阿那陀 「無親屬」, 長者의 별칭), 園=동산 — 곧 「기타 태자의 숲,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 國은 정착형 「사위국」에 함께 넣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39:156.0

AG:sa186/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當正觀察眼無常。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이 무상하다고 바르게 살펴보라.[불확실]

불확실 世尊=세존·比丘=비구([구속]).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세우지 않았다(배선앵커). 諸는 복수 조사 「-들」로 흡수했다. 觀察은 3분할표의 「의역」이므로 음독(관찰)을 피해 뜻으로 「살펴보다」로 옮겼고, 같은 경의 觀·正觀도 「살펴보다」로 맞췄다 — 역어 후보가 둘 이상이라 . 3분할표의 觀察 대역(Ādesana-vidhā)은 ⚠다른 부(DA)의 것이라 이 자리의 뜻과 맞지 않아 쓰지 않았다. sn35.1은 「눈은 무상하다」를 서술로 단정하고(1.7), 한역은 「무상하다고 바르게 살펴보라」는 지시다 — 일부. sn35.139/156.1은 「비구가 무상한 눈을 무상하다고 본다」는 서술로, 한역의 지시형과 다르고 「바른 견해」 절을 같은 문장에 품는다(다음 좌표와 걸림) — 일부. 고하는 대목(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etadavoca)은 sn35.1/1.3~1.6에 있고 비구들의 응답(1.5)은 한역에 없다. 음역계통: 比丘 — 팔리형 bhikkhu / 근대 범어형 Bhikṣu(_전거_sa186),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 흔들림: 이 경은 같은 분을 0.3·0049b14.1에서는 佛, 여기서는 世尊으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각각 확정역대로 옮김).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3~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39:156.1

AG:sa186/0049b08.1 · 교차 검사

如是觀者,是名正見。

이와 같이 살펴보는 것, 이것을 바른 견해라고 한다.[불확실]

불확실 者는 명사화 「-는 것」, 是名은 「이것을 ~라고 한다」로 옮겼다. 見은 _확정술어_아함판의 [정형구 행](dassana)에만 걸리고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대로 「견해」로 옮기고 을 남긴다. sn35.139/156.1의 sāssa hoti sammādiṭṭhi(그것이 그의 바른 견해가 된다)가 이 좌표에 대응한다 — 한역은 앞 좌표와 문장을 나누었다. sn35.1은 같은 자리에서 무상→괴로움→자기 자신 아님의 연쇄와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를 말하고 「바른 견해」라는 말은 없다 — 엇갈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1.8~1.10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39:156.1

AG:sa186/0049b09.1 · 교차 검사

正觀故生厭,生厭故離喜、離貪,離喜、貪故,我說心正解脫。

바르게 살펴보기 때문에 싫어함이 생기고, 싫어함이 생기기 때문에 기쁨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며, 기쁨과 탐욕을 떠나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바르게 해탈했다고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故는 「-기 때문에」로 연쇄를 그대로 살렸다. 이문: 宋·元·明본에는 「生」 한 자가 없다(교감주 〔生〕-【三】) — 어느 「生」인지 이문 기록이 위치를 특정하지 않아 본문은 大正대로 두 번 모두 옮겼다. 生은 _확정술어_아함판 [정형구 행]에서 jāti(태어남)로만 걸리나 이 자리는 동사 「생기다」로 문맥이 서므로 그렇게 옮기고 을 남긴다. 厭은 「싫어함」, 喜는 「기쁨」, 貪은 「탐욕」, 解脫은 정착어 「해탈」. 心正解脫은 「마음이 바르게 해탈했다」로 풀었다(사전 正解 ① 앞 說心 4). sn35.139: 「바르게 보아 싫어하여 떠난다. 기쁨이 다하므로 탐냄이 다하고, 탐냄이 다하므로 기쁨이 다한다. 기쁨과 탐냄이 다하므로 마음이 잘 해탈했다고 일컬어진다」 — 팔리는 「다함(khaya)」, 한역은 「떠남(離)」이고, 팔리는 기쁨·탐냄을 서로 맞물리게(상호 인과) 두 번 말하나 한역은 한 방향 나열이다. 팔리 vuccati(일컬어진다, 피동)를 한역은 「我說」(나는 말한다, 1인칭)로 세웠다 — 일부. sn35.1/1.22~1.24는 「싫어하여 떠남 → 탐욕이 사라짐 → 해탈」로, 「기쁨」 항이 없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22~1.2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39:156.2~156.5

AG:sa186/0049b09.2 · 교차 검사

如是耳、鼻、舌、身、意,離喜、離貪,離喜、貪故。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도 기쁨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며, 기쁨과 탐욕을 떠나기 때문에,[불확실]

불확실 한문이 如是로 나머지 다섯 감관을 한데 묶고, 눈의 자리에 있던 「바르게 살펴봄 → 바른 견해 → 싫어함이 생김」 단계를 적지 않은 채 「離喜、離貪,離喜、貪故」만 남겼다. 생략 표지 목록(乃至·如上 등)에 있는 표지는 아니지만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이므로 접힌 대로 두고 [생략표지]로 신고한다. 문장은 「故」에서 끊기고 다음 좌표(比丘!我說心正解脫)로 이어지므로 쉼표로 열어 두었다. 意는 같은 경의 心(마음)과 다른 한자라 같은 한국어를 쓰지 않으려 「뜻」으로 옮겼다 — 확정역이 없어 . sn35.1은 귀·코·혀·몸·마노를 각각 무상·괴로움·자기 자신 아님으로 말하되 그 안을 …pe…로 접었다(1.12·1.13·1.18). sn35.139는 혀·마노를 펴고 귀·코는 156.5의 …pe… 안에 접혀 있다 — 접힌 안쪽(귀·코)은 아직 대응을 잡지 못한 것이고 없음확인이 아니다. 그래서 두 경 모두 좌표 전체로는 일부로 매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11~1.2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39:156.5~156.12

AG:sa186/0049b11.1 · 교차 검사

比丘!我說心正解脫,心正解脫者,能自記說:『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비구들이여, 나는 마음이 바르게 해탈했다고 말한다.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이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미 확립되었고, 해야 할 일은 이미 했으며,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스스로 안다.'"

주 호격 比丘에 복수 표지가 없으나 0049b08.1의 告諸比丘에 맞춰 「비구들이여」로 옮겼다 — 단수 해석도 문법상 가능해 [불확실:격·태·구문]. 能은 「-ㄹ 수 있다」, 所作은 관형절 「해야 할 일」, 者는 「-한 이」. 自 두 번: 能自記說의 自는 남이 내려 주는 記(수기)와 대조되는 「자기에 대한」 선언으로 보아 「자신에 대해」로, 自知의 自는 남에게 듣지 않고 아는 대조가 서므로 「스스로」로 옮겼다. 生(태어남)·受(받다)·梵行(청정한 삶)은 _확정술어_아함판 [정형구 행]에 걸릴 뿐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 生은 jāti 자리로 「태어남」, 受는 vedanā(느낌)가 아니라 동사 「받다」, 梵行은 3분할표 「의역」이므로 음독(범행)을 피해 「청정한 삶」. 이 세 낱말에 [불확실:다의어_판별]을 남긴다. 「我說心正解脫」이 0049b09.2 끝에 이어 여기서 다시 한 번 나온다 — 한문 그대로 두 번 옮겼다. sn35.1/1.25~1.26: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앎이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수되었고 해야 할 일은 했고 이 상태를 위한 다른 것은 없다'고 안다」 — 팔리 nāparaṃ itthattāya(이러한 상태를 위한 다른 것이 없다)와 한역 不受後有(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는 같은 자리에서 표현이 다르고, 팔리는 「안다」를 맨 끝 한 번만 두며 한역의 記說(단언하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없다 — 일부. sn35.139/156.12는 「마음이 잘 해탈했다고 일컬어진다」로 끝나며 자기 선언 정형구가 없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25~1.26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39:156.12

AG:sa186/0049b12.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比丘=비구([구속]). 所說은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諸는 「-들」로 흡수했다. 팔리 두 경은 본문 끝에 경 차례 표시(Paṭhamaṃ)만 있고 맺음 정형구가 없다 — …pe… 표지도 없으므로 없음확인. 한자 흔들림: 0049b08.1의 世尊과 이 좌표의 佛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27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39:156.13

AG:sa186/0049b14.1 · 교차 검사

如無常,如是苦、空、非我,亦如是說。

무상과 같이, 이와 같이 괴로움·공·자기 자신 아님도 이와 같이 설한다.

주 如 세 번을 그대로 살렸다(如無常 「무상과 같이」 / 如是苦… 「이와 같이 괴로움…」 / 如是說 「이와 같이 설한다」). 亦은 조사 「-도」가 지므로 「또한」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說의 주어가 저본에 없다 — 경을 엮은 이의 지시문(이와 같은 경이 괴로움·공·자기 자신 아님에 대해서도 있다)으로 읽힐 수 있어 주어를 넣지 않고 [불확실:격·태·구문]을 남긴다. 非我는 아함판 확정역이 없어 니까야 확정(attā=자기 자신)에 맞춘 「자기 자신 아님」으로 옮겼다 — [불확실:확정역_부재]. 증언: 괴로움 판은 sn35.2(눈은 괴로움이다…), 자기 자신 아님 판은 sn35.3(눈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이 각각 같은 틀을 편다 — 다만 팔리 두 경은 sn35.1의 틀이고 한역의 「바른 견해 → 기쁨·탐욕을 떠남」 틀은 아니므로 일부. 「공」 판에 해당하는 팔리 경은 주어진 증언에 없다(서술로만 신고). sn35.1·sn35.139 본경에는 이런 확장 지시문이 없다 —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2.1~2.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3:3.1~3.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27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39:156.13

AG:sa186/0049b16.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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