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九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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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목 좌표. 한역은 경 번호만 있고 경명이 없다. 다카쿠스 각주 「S. 35. 22. Uppāda.」로 집힌 팔리 sn35.22(Dutiyadukkhuppādasuttaṃ)는 번호 체계가 갈리는 묶음의 대조표 밖 번호다. 팔리 본문은 형색 등의 「일어남(uppāda)」이 곧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내용이고, 한역 본문은 눈·색 등에 대해 욕망을 떠나 마음이 해탈해야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내용이어서 같은 경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 좌표를 미대응(unaligned)으로 두고 신고한다(없음확인이 아니다). 대응 경 재확인은 정도평 님 몫.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회). 팔리 sn35.22에는 「Evaṃ me sutaṃ」이 없으나, 대응 경 자체가 미확인이므로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0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구속] 확정 술어). 舍衛國=사위국: 한자대역 3분할에서 정착어(舍衛→사위). 뜻: 슈라바스티(팔리 Sāvatthī), 꼬살라국의 도성. 음의 慧琳 0367c24는 정음을 「室羅伐悉底」로 들고 「聞者城」(듣는 이의 성)·「聞物國」으로 옮긴다고 전한다(참고 인용). 전거 대장: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 — 음역계통이 둘로 서나 ⚠다른 부(DA)의 대역이라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 한자대역 표는 「보류(5자 이상)」로 두었으나 한국 불교계 정착형으로 판단해 정착형 그대로 쓴다. 뜻: 「기타(祇陀, 慧琳 0368a03 정음 誓多=勝) 태자의 숲(樹)」과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給孤獨, 慧琳 0368a05 義譯, 梵 阿那陀 이하)」가 바친 동산(園). 祇는 음역, 給孤獨은 의역이 섞인 이름이다. 유형 판별을 정착어로 확정하지 못해 신고.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0
爾時,世尊告諸比丘:「若於眼、色不離欲,心不解脫者,不堪任越生、老、病、死苦。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눈과 색에 대해 욕망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 이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괴로움을 넘어설 수 없다.[불확실]
불확실 世尊=세존, 比丘=비구([구속]). 한역이 같은 인물을 0.3·0049c28.1에서는 「佛」, 여기서는 「世尊」으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각 확정역대로 둔다). 若…者는 연결어미 「-면」과 명사화 「이」가 진다(앵커) — 若이 가정이고 者가 명사화라 「…한 이는」으로 합쳐 옮겼다. 於는 조사 「에 대해」가 진다. 不堪任=감당하지 못한다 → 「할 수 없다」. 越=넘어서다. 生·老·病·死苦: 生은 확정술어표에서 [정형구 행](jāti)으로만 실려 낱말 확정역이 없다 — 문맥상 「태어남」으로 옮기고 신고. 「苦」가 生·老·病·死 넷 모두에 걸리는지 死에만 붙는지는 구두상 넷 모두에 걸리는 것으로 읽었다(사전 死苦 ③ sa189/0049c05.1 「任越生、老、病、死苦」 동형). 色=「색」: 眼과 짝을 이룬 대상(감각 영역)으로서의 색. 離欲=욕망을 떠나다(확정역 없음; 「탐욕을 떠나다」도 후보). 팔리 sn35.22/22.1은 형색들의 일어남·머묾·생겨남·나타남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문장으로, 한역의 「눈과 색」·「욕망을 떠남」·「마음의 해탈」 어느 것도 없다 — 대응 경 미확인이라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1
於耳、鼻、舌、身、意不離欲,心不解脫者,不堪任越生、老、病、死苦。
귀·코·혀·몸·뜻에 대해 욕망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 이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괴로움을 넘어설 수 없다.
주 한문은 앞 좌표의 「眼、色」 짝과 달리 여기서 耳·鼻·舌·身·意 다섯 감각기관만 나열하고 각 대상(聲·香·味·觸·法)은 적지 않는다. 생략 표지(乃至 등)는 없다 — 한문에 있는 대로 옮기고 대상을 보충하지 않았다(증보 금지). 팔리 22.2는 소리…법을 …pe…로 접어 대상만 나열한다(기관 없음) — 접힌 구간이고 대응 경 미확인이라 미대응. 生의 처리는 앞자리와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2
諸比丘!若於眼、色離欲,心解脫者,堪任越生、老、病、死苦。
비구들이여, 눈과 색에 대해 욕망을 떠나 마음이 해탈한 이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괴로움을 넘어설 수 있다.
주 心解脫: 한자대역 3분할에서 의역(Cetovimutti). 뜻으로 「마음이 해탈한」으로 옮겼다 — 「해탈」은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여기서는 離欲과 心解脫이 「離欲,心解脫」로 이어진 술부라 복합 명사 「심해탈」로 세우지 않았다. 堪任=감당하다 → 「할 수 있다」. 팔리 22.3은 형색들의 소멸·가라앉음·사라짐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문장 — 대응 경 미확인이라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3
於耳、鼻、舌、身、意離欲,心解脫者,堪任越生、老、病、死苦。」
귀·코·혀·몸·뜻에 대해 욕망을 떠나 마음이 해탈한 이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괴로움을 넘어설 수 있다."
주 0049c24.1과 같이 다섯 감각기관만 나열하고 대상은 적지 않는다(생략 표지 없음, 보충하지 않음). 팔리 22.4는 …pe…로 접힌 구간이고 대응 경 미확인이라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4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 比丘=비구([구속]). 앞 0049c22.1의 「世尊」과 달리 여기서는 「佛」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앵커: 「~하는 바」 금지). 諸比丘의 諸는 복수 조사 「-들」이 진다.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다(사전 奉行 ⑥ 「奉承行持教命」 참고). 팔리 sn35.22는 「Dasamaṃ.」(열 번째)로 끝나고 청중의 기뻐함 정형구가 없다 — 대응 경 미확인이라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