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87

SĀ 187

교차 검사교차 검사 9현대역 준비 중

(一八九)

(189)

주 한역 제목 자리는 경 번호 「一八九」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는 번호(3, 158)와 함께 경 이름 Ajjhattaaniccanandikkhayasutta를 단다 — 한쪽이 더 말하는 일부 대응. 교감주는 S. 35. 157-158(Nandikkhaya)을 가리킨다. 팔리 증언 후보는 multi_source로, 莊春江+다카쿠스가 가리킨 sn35.158 → 우리 PN sn35.141만 투입됐고, 다카쿠스 단독 후보 sn35.157(번호 체계가 갈리는 묶음)은 투입되지 않았다. 계열이 둘이라는 사실만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0.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0

AG:sa187/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투입된 팔리 저본 sn35.141은 경 이름(0.3)·번호(158.0) 뒤에 곧바로 붓다의 발화(158.1)로 들어가고, 개경 정형구가 없다. 그 자리가 놓일 곳은 158.1 앞이다. 팔리 저본 안에 접힘 표지(…)도 없으므로 없음확인으로 매긴다. 한역 쪽은 雜阿含 전권 1332회 쓰인 개경 정형구다(_정형구_생략표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41:158.1

AG:sa187/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르셨다.

주 팔리 sn35.141에는 장소를 밝히는 인연 문장이 없다(0.2와 같은 까닭으로 없음확인). 佛은 [구속] 「부처님」. 舍衛는 _한자대역_3분할에서 정착어(사위)로, 정착형을 그대로 쓴다 — 이름의 뜻: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는 正梵音 室羅伐悉底國을 「聞者城」(듣는 이의 성)으로 옮기고 法鏡經은 「聞物國」이라 한다고 적는다(참고 인용). 음역계통: _전거_ 표의 舍衛는 팔리_후보 Sāvatthī / 범어_후보_당대 śravasthi로 두 계통이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로 나오나, 이 자리는 동산 이름이 분명하므로 지침 §⑤ 예시의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을 쓴다. 이름의 뜻: 祇樹 = 祇陀(誓多, 勝) 태자의 숲 — 慧琳 0368a03은 태자가 나무를 남겨 공양했기에 「祇樹」라 줄였다고 한다. 給孤獨 =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장자의 별칭) — 慧琳 0368a05는 梵云 阿那陀를 「無親屬」,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이를 구제하기로 서원해 붙은 이름이라 한다. 園 = 동산. 전거 표의 이 항목은 ⚠다른 부(DA)의 대역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41:158.1

AG:sa187/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於眼當正思惟、觀察無常。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에 대해 바르게 사유하고 무상을 관찰하라.

주 世尊 [구속] 「세존」, 比丘 [구속] 「비구」.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붓다)을 0.3·0049b24.1에서는 佛로, 여기서는 世尊으로 쓴다 — 확정역이 각각 있으므로 「부처님」·「세존」을 그대로 쓰고 통일하지 않는다.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지므로 따로 옮기지 않는다(배선 앵커). 於眼은 조사 「~에 대해」로. 구두: 「正思惟、觀察無常」은 (가) 「바르게 사유하고, 무상을 관찰하라」와 (나) 「무상을 바르게 사유하고 관찰하라」 둘로 끊을 수 있다. 0049b21.1의 「正思惟、觀察故」는 無常 없이 두 동사만 나란히 서므로 어느 쪽도 저본만으로 닫히지 않는다 — 어순을 그대로 두는 (가)로 옮기고 신고한다. 팔리 158.1 yoniso manasi karotha / 158.2 cakkhāniccatañca yathābhūtaṃ samanupassatha가 (가)와 같은 두 동작의 짜임이나 증언이므로 판정 근거로 쓰지 않는다. 팔리는 서술 틀(爾時世尊告諸比丘)이 없이 발화 안의 호격 bhikkhave만 있고, 한역에 없는 yathābhūtaṃ(있는 그대로)이 있다 — 한쪽이 더/덜 말하는 일부 대응. 思惟·觀察은 _한자대역_3분할에서 의역으로 분류되어 뜻으로 옮겼다(전거 표의 Bhāvana·Ādesana-vidhā는 ⚠다른 부의 대역이라 이 자리에 쓰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2

AG:sa187/0049b18.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무슨 까닭인가?

주 한역의 자문(自問) 「所以者何」가 팔리에는 없다. 팔리는 158.2의 명령 뒤에 곧바로 158.3의 서술로 넘어간다 — 그 자리가 놓일 곳이 158.3 앞이며, 접힘 표지가 없으므로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41:158.3

AG:sa187/0049b19.1 · 교차 검사

於眼正思惟、觀察無常故,於眼欲貪斷,欲貪斷故,我說心正解脫。

눈에 대해 바르게 사유하고 무상을 관찰하기 때문에 눈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끊어지고, 욕망과 탐욕이 끊어지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바르게 해탈했다고 말한다.

주 欲貪은 _한자대역_3분할에서 의역 — 음독(욕탐)을 피해 두 글자의 뜻을 살려 「욕망과 탐욕」으로 옮겼다. 다만 欲貪을 병렬(욕망과 탐욕)로 볼지 한정(욕망하는 탐냄)으로 볼지 저본만으로 닫히지 않아 신고한다. 이 경 안에서는 「욕망과 탐욕」으로 통일. 心正解脫은 「마음이 바르게 해탈했다」(解脫은 정착 술어 「해탈」). 구조: 한역은 「사유·관찰 → 욕망과 탐욕의 끊어짐 → 마음의 바른 해탈」의 한 줄 사슬이다. 팔리는 158.3에서 사유·관찰 → nibbindati(싫어하여 떠남)로 가고(한역에 없음), 158.4·158.5에서 nandi의 다함 → rāga의 다함 / rāga의 다함 → nandi의 다함을 맞물려 되풀이하며(한역은 欲貪 한 낱말로 한 번), 158.6에서 nandirāga의 다함 → 마음이 잘 해탈했다고 「말해진다」(vuccati, 비인칭 수동)로 맺는다. 한역은 「我說」(나는 말한다)로 화자를 세운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르게 말하므로 158.4·158.5는 엇갈림, 158.3·158.6은 일부로 매겼다. 斷(끊어지다) ↔ khaya(다함)도 낱말이 갈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41:158.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41:158.5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6

AG:sa187/0049b19.2 · 교차 검사

耳、鼻、舌、身、意,正思惟、觀察故,欲貪斷,欲貪斷者,我說心正解脫。

귀·코·혀·몸·뜻을 바르게 사유하고 관찰하기 때문에 욕망과 탐욕이 끊어지고, 욕망과 탐욕이 끊어진 이를 나는 마음이 바르게 해탈했다고 말한다.

주 한역이 스스로 다섯 감관을 한 문장에 몰아 압축했다 — 於·無常이 빠진 그대로 옮기고 펴지 않는다(생략 표지 乃至 등은 없음). 於가 없어 耳鼻舌身意를 목적어로 읽었다. 者: 「欲貪斷者」의 者는 (가) 사람 「끊어진 이」 (나) 조건·주제 「끊어지면/끊어진 것을」 둘이 선다. 앞 좌표 같은 자리의 「故」와 달리 者를 썼으므로 명사화로 읽어 (가)로 옮겼으나 구문이 닫히지 않아 신고한다. 意는 0049b19.2·0049b22.1의 心(마음)과 구별하려고 「뜻」으로 옮겼다 — 확정역 없음, 후보(뜻/의/마음)가 여럿이라 신고. 팔리 쪽: 158.7은 sotaṃ… ghānaṃ…, 158.13은 kāyaṃ…으로 귀·코·몸 대목을 저본 스스로 접어 두었다 — 그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그 몫은 미대응(unaligned)이며, 위의 꼴은 펼쳐 실린 혀(158.7 끝~158.12)·마음(158.13 끝~158.18) 대목에 대해 매긴 것이다. 팔리 158.10·158.11·158.16·158.17의 nandi/rāga 맞물림은 0049b19.2와 같은 까닭으로 엇갈림. 팔리는 감관마다 aniccatā(무상함)를 되풀이하나 이 한역 좌표에는 無常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8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9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41:158.1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41:158.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1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1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1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41:158.1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41:158.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41:158.18

AG:sa187/0049b21.1 · 교차 검사

如是,比丘!心正解脫者,能自記說:『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이는 스스로 밝혀 말할 수 있다.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섰으며, 할 일은 다 했으니, 다음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이 좌표 전체(호격·자기 선언·아라한 정형구)가 팔리 sn35.141에는 없다 — 팔리는 158.18 「…suvimuttanti vuccatī」ti로 발화를 닫고 158.19는 번호 Tatiyaṃ뿐이다. 그 자리가 놓일 곳이 158.18 뒤이며 접힘 표지가 없으므로 없음확인. 比丘는 [구속] 「비구」, 청중이 諸比丘이므로 호격을 「비구들이여」로. 能은 「-ㄹ 수 있다」가 진다(능히 쓰지 않음). 自 둘: 自記說의 自는 자기 선언(다른 이가 記하는 것과 맞서는 자리)이라 「스스로」를 세웠고, 自知의 自는 단순 재귀로 보아 「안다」에 흡수했다 — 판단의 여지가 있어 적어 둔다. 記說은 「밝혀 말하다」로 분석적으로 옮겼다(확정역 없음, 후보: 확언하다·선언하다). 已는 완료 어미가 지므로 따로 「이미」를 세우지 않았다. 生·受·梵行은 _확정술어_아함판의 [정형구 행]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문맥으로 옮겼다: 生 = 「태어남」, 梵行 = 「청정한 삶」(_한자대역_3분할에서 의역 — 慧琳 0698c19는 梵을 「清淨」으로 푼다, 참고 인용), 受 = 동사 「받다」(정형구 행이 가리키는 vedanā(느낌)가 아니다 — 다의어 판별로 신고). 後有는 「다음 존재」로 옮겼다(확정역 없음).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41:158.18

AG:sa187/0049b22.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sn35.141에는 맺음 정형구가 없다 — 158.19는 경 번호 Tatiyaṃ(셋째)뿐이고 접힘 표지도 없으므로 없음확인. 佛은 [구속] 「부처님」.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와 0.3에서는 佛로, 0049b18.1에서는 世尊으로 쓴다(0049b18.1 서술 참조). 所說은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하는 바」 쓰지 않음). 내레이션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41:158.19

AG:sa187/0049b24.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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