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300

SĀ 1300

교차 검사교차 검사 36현대역 준비 중

(一三〇七)

(1307)

주 한역은 경 번호만 싣고 팔리는 경 이름(로히땃사 경)을 싣는다. 교감주(S. 2. 3. 6. Rohita.)는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제목 쪽은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6:0.3

AG:sa1300/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는 `Sāvatthinidānaṃ`(사위 인연 서두)으로 접혀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absent가 아니라 미대응이다.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이 경 0.2).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6:107.1

AG:sa1300/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구속]). 舍衛(Sāvatthī)=정착어 「사위」, 한역자가 소리로 옮긴 이름이다. 祇樹給孤獨園=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기타(祇陀) 태자의 숲(祇樹)과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給孤獨, Anāthapiṇḍika)가 바친 동산이라는 뜻이다. 給孤獨은 의역이나 이 복합은 정착형을 그대로 쓴다. 3분할표가 이 복합을 「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으로 보류했으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음의 慧琳 0368a03·0368a05, 전거표는 다른 부(DA)의 대역이라는 주의가 붙어 있다. 팔리 `Sāvatthinidānaṃ`으로 접힌 자리라 팔리 쪽 세부 대응은 읽지 못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6:107.1

AG:sa1300/0.3 · 교차 검사

時,有赤馬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

그때 붉은 말 천자가 얼굴빛이 더없이 빼어난 모습으로, 밤의 마지막 시간에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주 赤馬(Rohitassa)는 의역 이름이라 뜻으로 옮겨 「붉은 말」로 하고, 이후 경 전체에서 통일했다. 팔리형은 `Rohitassa`(전거표 `Rohitassa / Rohitassā`). 天子=천자(devaputta), 확정역이 없어 정착형을 썼다. 한역은 방문 장면(얼굴빛·후야·예배)을 서술하는데 팔리 `Ekamantaṃ ṭhito kho rohitasso devaputto`는 한쪽에 서 있는 모습만 말한다. 방문 장면은 팔리 쪽 `Sāvatthinidānaṃ`에 접혀 있을 수 있어 알 수 없다. 後夜=밤을 셋으로 나눈 마지막 시간(사전 後夜 ① 잡아함 130회). 稽首佛足은 음독하지 않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고」로 옮겼다(사전 稽首 ① 525회). 음의는 稽首를 머리가 땅에 이르는 것으로 푼다(사전 稽首 ⑤ 玄應·慧琳 0600c02). 有는 존재 서술이나 「~이 있어」로 풀면 훈독투이므로 주어로 세웠다. 팔리에서는 서 있고 한역에서는 앉는 차이가 있다(退坐一面 ↔ ekamantaṃ ṭhito).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

AG:sa1300/0359a11.1 · 교차 검사

其身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그 몸의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주 이 문장은 sn2.26 팔리 원문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접힌 `Sāvatthinidānaṃ`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미대응이다. 보조 증언 sn2.3의 `kevalakappaṃ jetavanaṃ obhāsetvā`(제따 숲 전체를 비추고)가 비슷한 내용이나 다른 경의 후보라 증언 이의 없이 참고로만 단다. 遍照는 사전 ① 잡아함 102회가 거의 모두 이 기수급고독원 정형구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6:107.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3:84.2

AG:sa1300/0359a12.1 · 교차 검사

時,彼赤馬天子白佛言:「世尊!頗有能行過世界邊,至不生、不老、不死處不?」

그때 그 붉은 말 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계의 끝을 지나 가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곳에 이를 수 있는 이가 있습니까?"

주 팔리는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떠나지 않고 다시 나지 않는 곳"(5항)에 대해 "가서 세계의 끝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고 이를 수 있습니까"(3동사)라 묻는다. 한역은 「不生·不老·不死」 3항이고 동사는 行過·至 둘이며 물음의 중심이 다르다(한역은 끝을 넘어서 그곳에 이르는 이의 유무, 팔리는 가서 끝을 아는 것의 가능). 문장 끝 `不`은 의문 종결이라 「-습니까」가 진다. `頗`는 의문의 강조로 어미에 흡수했다(음의 慧琳 0368a10, 사전 頗有 ① 잡아함 30회).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 世尊=세존([구속]). 世界邊(loka-anta)의 邊은 「끝」으로 옮겼다. 世界와 世間은 같은 팔리 loka에 걸리는 한자 두 가지인데 한역이 다르게 쓰므로 세계/세간으로 가렸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3

AG:sa1300/0359a13.1 · 교차 검사

佛告赤馬:「無有能過世界邊,至不生、不老、不死處者。」

부처님께서 붉은 말에게 말씀하셨다. "세계의 끝을 지나 가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곳에 이를 수 있는 이는 없다."

주 팔리는 "가서 알고 보고 이르게 된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로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역은 단정 평서(無有…者)다. 無有能…者는 「~할 수 있는 이는 없다」로 풀었고 `有`는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이나 부정 존재라 「없다」로 흡수했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4

AG:sa1300/0359a15.1 · 교차 검사

赤馬天子白佛言:「奇哉!世尊!善說斯義。

붉은 말 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뜻을 잘 설하셨습니다.

주 팔리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는 두 감탄어(놀랍다·희유하다)를 늘어놓는데 한역은 `奇哉` 하나다. `哉`는 감탄 어미가 진다. `善說斯義`는 팔리 `yāvasubhāsitam`(참으로 잘 설해진)과 맞는다. 전거표 奇哉에 당대 범어 `apurva/apūrva`가 올라 있으나 범어 증언 투입물이 없어 대조하지 않았다. 인용 따옴표는 a24.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5~107.6

AG:sa1300/0359a16.1 · 교차 검사

如世尊說言:『無過世界邊,至不生、不老、不死處者。』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계의 끝을 넘어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곳에 이르는 이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 팔리 107.7은 "가서 알고 보고 이를 수 없다"를 되풀이한다. 한역은 앞 말씀(a15.1)의 한문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므로 팔리와 같은 되풀이 구조다. 聖本(【聖】)에는 `者`가 없다. 저본(大正)은 `者`가 있어 그대로 옮겼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如世尊說言`의 `如`는 「-대로」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7

AG:sa1300/0359a17.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주 팔리 sn2.26에는 이에 해당하는 설명 요청 문장이 없다. 팔리 107.7에서 곧바로 107.8로 넘어가므로 없음이 확인된다. `所以者何`는 앞 말씀의 까닭을 묻는 관용 구문이다(`所以`=까닭, `者何`=무엇인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8

AG:sa1300/0359a18.1 · 교차 검사

世尊!我自憶宿命,名曰赤馬,作外道仙人,得神通,離諸愛欲。

세존이시여! 저는 지난 생을 기억하는데, 이름은 붉은 말이었고, 외도의 선인이 되어 신통을 얻고 모든 애욕을 떠났습니다.

주 팔리 `Bhūtapubbāhaṃ, bhante, rohitasso nāma isi ahosiṃ bhojaputto iddhimā vehāsaṅgamo`와 견주면 한역에는 `bhojaputto`(식읍 아들)와 `vehāsaṅgamo`(허공을 가는)가 없고, 팔리에는 `外道`·`離諸愛欲`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自憶의 `自`는 대조(自↔他)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宿命=「지난 생」, 外道=외도(사전 外道 ① 84회), 仙人=선인(isi, 정착어). 神通은 「신통」으로 옮겼다. 愛欲은 3분할표가 음의 혼합으로 올렸으나 두 글자 모두 뜻글자이고 소리로 옮긴 부분이 보이지 않아 뜻으로 옮겼다(애착과 욕망). 전거표 愛欲 `Kāma / Taṇhā` 둘이 등재되어 있어 어느 쪽인지는 저본만으로 정할 수 없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8

AG:sa1300/0359a18.2 · 교차 검사

我時,作是念:『我有如是捷疾神足,如健士夫,以利箭橫射過多羅樹影之頃,能登一須彌,至一須彌,足躡東海,超至西海。』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게 이와 같이 빠르고 날랜 신통의 발이 있다. 건장한 사내가 날카로운 화살을 가로로 쏘아 다라수 그림자를 지나가는 사이에, 나는 한 수미산에 오르고, 한 수미산에 이르며, 발로 동해를 밟고 뛰어 서해에 이를 수 있다.'

주 팔리 107.9~107.12는 달리기 속도(javo)와 걸음(padavītihāro)을 따로 말하고, 화살 비유(`tiriyaṃ tālacchāyaṃ atipāteyya`, 다라수 그림자를 가로질러 넘음)와 동쪽 바다에서 서쪽 바다까지의 걸음을 각각 들어 두 단으로 서술한다. 한역은 두 비유를 한 문장으로 합쳐 속도와 거리를 함께 말하며, `須彌`(수미산 오르기)가 한역에만 있다. 須彌는 3분할표가 음역/의역 갈림(Sineru)으로 올렸다. 소리로 옮긴 이름이라 독음 「수미」로 하되 본문에는 정착형 「수미산」으로 적었다(한역에 `山`은 없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多羅樹는 음역 「다라수」이며 팔리형은 `tāla`이다(전거표 多羅 `Tāla / Tālā`, 음의 慧琳 0464c02). 神足은 앞 구절 捷疾과 함께 「빠르고 날랜 신통」으로 옮겼으나 神足은 신통(iddhi)과 기적(pāṭihāriya)을 겸하는 자리가 있어 이 자리는 속도를 가리키는 하위어(신통)로 읽는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捷疾은 음의 慧琳 0379a19에 「빠르다」로 풀이된다. 이문: 捷(CB·麗-CB)/揵(大), 超(CB)/越(大) 두 곳을 저본 표기대로 옮겼다. 如健士夫의 `如`는 「~하는 사이에」의 비유 구조에 흡수했다.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했다. 神足 사전 ① 13회. 我有는 「나에게 ~이 있다」로 두었다(존재 서술).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9~107.12

AG:sa1300/0359a20.1 · 교차 검사

我時,作是念:『我今成就如是捷疾神力,今日寧可求世界邊。』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와 같이 빠르고 날랜 신통의 힘을 이루었으니, 오늘 세계의 끝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주 팔리는 "그런 바람이 일어났다. 나는 가서 세계의 끝에 이르리라"로 바람(icchāgata)이 일어남을 말하고, 한역은 지금 신통의 힘을 이룬 것을 근거로 삼아 「求世界邊」을 결심한다. 팔리의 `uppajji`(일어났다)가 한역에는 `作是念`(이런 생각을 했다)으로 나온다. `成就`는 확정역이 없어 「이루었으니」로 옮겼다(사전 成就 ① 335회). `寧可`는 「~하는 것이 좋겠다」로 옮겼다. `今日`은 전거표에 당대 범어 `tvanya`가 있으나 범어 증언이 없어 대조하지 않았다. 神力은 앞의 神足과 같은 계열의 낱말로 「신통의 힘」이라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13~107.14

AG:sa1300/0359a23.1 · 교차 검사

作是念已,即便發行,唯除食息便利,減節睡眠,常行百歲,於彼命終,竟不能得過世界邊,至不生、不老、不死之處。」

이런 생각을 마치고 곧 길을 떠나, 오직 먹고 쉬고 대소변 보는 것만 제외하고 잠을 줄이고 조절하여 늘 백 년을 가다가 그곳에서 목숨을 마치도록 끝내 세계의 끝을 넘어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곳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주 팔리 107.15는 속도와 걸음을 갖추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일과 대소변과 졸음·피로를 없애는 일만 제외하고, 백 년을 살며 백 년을 가고도 세계의 끝에 이르지 못한 채 중간에 죽었다고 말한다. 한역은 `唯除食息便利,減節睡眠`으로 항목이 줄고(식·식·편리·수면), `百歲`·`命終`·`不能得過`가 팔리의 `vassasatāyuko vassasatajīvī`·`antarāva kālaṅkato`·`appatvāva lokassa antaṃ`과 맞는다. `唯`는 「오직」을 한정 뜻이 실려 남겼다. `即`은 「곧」, `便`과 겹쳐 있어 하나로 옮겼다. `減節`은 「줄이고 조절하여」로 옮겼다. `睡眠`은 의역이라 뜻으로 「잠」이다(전거표 `Thīnamiddha`, 음의 慧琳 0323b10은 글자 풀이). 한역은 `常行百歲`(늘 백 년을 가서)로 팔리의 `vassasataṃ gantvā`(백 년을 가고)와 맞는다. `於`는 「그곳에서」로 흡수. `得`은 「-ㄹ 수 있다」 가능 뜻으로 `能得` 두 글자가 겹쳐 하나로 옮겼다. 聖本에는 `得`이 없다. 저본(大正)대로 옮겼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이 따옴표는 a16.1에서 열린 천자의 발화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15

AG:sa1300/0359a24.1 · 교차 검사

佛告赤馬:「我今但以一尋之身,說於世界、世界集、世界滅、世界滅道跡。

부처님께서 붉은 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다만 한 길의 몸으로써 세계와 세계의 일어남과 세계의 소멸과 세계 소멸의 길의 자취를 설한다.

주 팔리 107.20은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이 한 길 정도의 인식 있고 마음 있는 몸 안에서) 세계와 세계의 일어남·소멸·소멸에 이르는 길을 시설한다고 말한다. 한역은 `sasaññimhi samanake`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팔리 107.19(세계의 끝에 이르지 않고 괴로움의 끝냄은 말하지 않는다)는 한역에서는 이 자리가 아니라 게송(b15.1)으로 간다. 구조가 어긋난다. 但以의 `但`은 한정 뜻이 실려 「다만」을 남겼고 `以`는 「-으로써」다. 一尋=「한 길」, 팔 척 길이의 단위(사전 一尋 ⑥ 丁福保 「八尺曰尋」). 음의는 글자 풀이일 뿐 길이를 주지 않는다(사전 一尋 ⑤ 玄應·慧琳 0762b04). 世界集·世界滅은 「세계의 일어남·소멸」, 世界滅道跡은 「세계 소멸의 길의 자취」다(滅道 사전 ① 239회). 集=일어남(samudaya). 인용 따옴표는 b12.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0

AG:sa1300/0359a27.1 · 교차 검사

赤馬天子!何等為世間?

붉은 말 천자여! 무엇이 세간인가?

주 이 문답(세간·집·멸·멸도적의 정의)은 팔리 sn2.26 107.20에서 곧바로 게송 107.21로 이어지므로 해당 문장이 없음이 확인된다. 한역의 설명 부분이다. `何等為`는 「무엇이 ~인가」다(사전 等為 ① 581회). 음의는 等·為의 자형만 푼다(사전 等為 ⑤ 玄應·慧琳 0313c22). `為`는 계사로 흡수했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a29.1 · 교차 검사

謂五受陰。

다섯 취착 무더기를 말한다.

주 팔리 sn2.26에는 세간을 오취온으로 풀이하는 문장이 없다. 受陰=「취착 무더기」(upādānakkhandha)로 옮겼으나 정형구 행에서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고 했으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受가 동사 「받다·취하다」인지(受=upādāna) 느낌(vedanā)인지는 b01.1의 `受受陰`에서 갈린다. 謂는 「~를 말한다」다. 사전 五受 ① 121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a29.2 · 교차 검사

何等為五?

무엇이 다섯인가?

주 팔리 sn2.26에 없다. 앞자리와 같은 사안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a29.3 · 교차 검사

色受陰、受受陰、想受陰、行受陰、識受陰,是名世間。

물질 취착 무더기, 느낌 취착 무더기, 인식 취착 무더기, 형성 취착 무더기, 의식 취착 무더기이니, 이를 세간이라 한다.

주 팔리 sn2.26에 없다. 아함 오온 역어(色·受·想·行·識)는 아함판 확정 술어가 아니다(2026-10-03 결정). 色=물질, 受=느낌(vedanā), 想=인식(saññā 확정), 行=형성, 識=의식으로 옮겼으나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受受陰에서 앞의 受는 느낌, 뒤의 受는 「취착」이다. 是名=「이를 ~이라 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1.1 · 교차 검사

何等為色集?

무엇이 물질의 일어남인가?

주 팔리 sn2.26에 없다. 저본은 `色集`이고 답은 `世間集`이라 질문과 답의 주어가 어긋난다. 저본대로 「물질의 일어남」으로 옮기고 [불확실:뜻_판별불가] (세간의 일어남을 가리킨 오자인지 판정하지 않는다). 色集은 교감주에 이문이 없다. 集=일어남(samudaya).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2.1 · 교차 검사

謂當來有愛,貪、喜俱,彼彼染著,是名世間集。

이르되, 다가올 존재에 대한 애착이 탐욕과 기쁨과 함께하여 여기저기 물들어 집착하는 것, 이를 세간의 일어남이라 한다.

주 팔리 sn2.26에 없다. `當來有愛`는 「다가올 존재에 대한 애착」으로 옮겼다. 당래(當來)의 `當`은 당위가 아니라 미래를 가리키는 말로 읽었다(사전 當來 ① 60회). 후대 풀이도 같은 쪽이다(사전 當來 ⑥ 丁福保 「應來之世」). `有愛`(bhava-taṇhā)는 3분할표 의역으로 「존재에 대한 애착」이다(사전 有愛 ① 잡아함 37회, 전거표 `Bhava-taṇhā`는 다른 부(MA)의 대역). `貪、喜俱`는 「탐욕과 기쁨과 함께하여」, `彼彼染著`는 「여기저기 물들어 집착하는 것」이다(사전 染著 ① 103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2.2 · 교차 검사

云何為世間滅?

무엇이 세간의 소멸인가?

주 팔리 sn2.26에 없다. `云何為`는 「무엇이 ~인가」다. 滅=소멸(nirodha). 앞 a29.1과 같은 구문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3.1 · 교차 검사

若彼當來有愛,貪、喜俱,彼彼染著無餘斷、捨、離、盡、無欲、滅、息、沒,是名世間滅。

다가올 존재에 대한 애착이 탐욕과 기쁨과 함께하여 여기저기 물들어 집착하는 것을 남김없이 끊고, 놓고, 떠나고, 다하고, 욕망이 없어지고, 소멸하고, 쉬고, 가라앉으면, 이를 세간의 소멸이라 한다.

주 팔리 sn2.26에 없다. 若은 「-면」으로 흡수했다. `彼當來有愛`의 `當`은 앞과 같다. `無餘`는 「남김없이」(사전 無餘 ① 128회). 斷·捨·離·盡·無欲·滅·息·沒는 여덟 낱말을 늘어놓은 것을 줄이지 않고 하나씩 옮겼다. 離는 virāga 자리일 수 있으나 저본에 離 한 글자뿐이므로 「떠나고」로 두었다. 확정역 「사라짐」은 팔리 virāga의 번역으로 저본이 virāga를 뜻하는지 알 수 없어 적용하지 않았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沒=「가라앉으면」, 息=「쉬고」.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4.1 · 교차 검사

何等為世間滅道跡?

무엇이 세간 소멸의 길의 자취인가?

주 팔리 sn2.26에 없다. `滅道跡`은 「소멸의 길의 자취」다. 道跡은 음의 慧琳 0783b04에서 「발자국」으로 풀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5.1 · 교차 검사

謂八聖道,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是名世間滅道跡。

여덟 거룩한 길을 말한다. 바른 견해,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이니, 이를 세간 소멸의 길의 자취라 한다.

주 팔리 sn2.26에 없다. 八聖道=「여덟 거룩한 길」(사전 八聖道 ① 51회 · 정형구 행 없음). 아함 팔정도 낱말(正志·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은 아함판 확정역이 없으므로 한자의 뜻대로 옮겼다. 正志는 「바른 뜻」(한역자의 낱말 선택, 사전 정형구 행에 없음), 正業은 「바른 행위」, 正命은 「바른 생활」, 正方便은 「바른 방편」(方便 사전 ① 458회 「精勤」과 이어짐), 正念은 「바른 생각」, 正定은 「바른 선정」. 각 항 한역자가 쓴 한자 그대로 옮기고 팔리 정형구의 각묵스님 번역과 맞추지 않았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6.1 · 교차 검사

「赤馬!了知世間,斷世間;了知世間集,斷世間集;了知世間滅,證世間滅;了知世間滅道跡,修彼滅道跡。

붉은 말이여! 세간을 두루 알아 세간을 끊고, 세간의 일어남을 두루 알아 세간의 일어남을 끊으며, 세간의 소멸을 두루 알아 세간의 소멸을 증득하고, 세간 소멸의 길의 자취를 두루 알아 그 소멸의 길의 자취를 닦는다.

주 팔리 sn2.26에 없다. `了知`는 「두루 알아」(요지, 완전히 앎)이며 사전 知世間 ① 12회. `斷`·`證`·`修`는 각각 끊음·증득·닦음이다. 證=「증득하고」. 이문: 宋·元·明 본에 `間苦`가 있고 `滅` 하나가 빠진 본이 있다. 저본(大正)대로 옮겼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인용은 a27.1에서 이어지는 붓다의 같은 발화이므로 다시 열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AG:sa1300/0359b07.1 · 교차 검사

赤馬!若比丘於世間苦若知、若斷,世間集若知、若斷,世間滅若知、若證,世間滅道跡若知、若修。

붉은 말이여! 만약 비구가 세간의 괴로움을 알고 끊으며, 세간의 일어남을 알고 끊으며, 세간의 소멸을 알고 증득하며, 세간 소멸의 길의 자취를 알고 닦으면

주 팔리 sn2.26에 없다. 이 문장은 b12.1과 이어지는 한 문장이다(`若…,是名得世界邊`). `若`이 아홉 번 나온다. 맨 앞 `若比丘`의 `若`은 가정 「-면」이 되고, 나머지 여덟은 `若知、若斷`처럼 항목을 늘어놓는 `若A若B`라 「알고 끊으며」로 풀었다. 이 풀이는 한 가지 읽기다. [불확실:구두·분절] 比丘=비구([구속]). b07.1에는 `世間`만 있고 이 문장에는 `世間苦`로 나오는데 宋·元·明 본의 `間苦`와 같은 꼴이다. 저본대로 `世間苦`를 「세간의 괴로움」으로 옮겼다. 사전 苦 ① 잡아함 1998회. 문미 「-면」은 `若比丘`의 가정이 이어져 b12.1 `是名`으로 닫힌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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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馬!是名得世界邊,度世間愛。」

붉은 말이여! 이를 세계의 끝을 얻고 세간의 애착을 건넜다고 한다."

주 팔리 sn2.26에 없다. `得世界邊`의 `得`은 「얻다」(획득)로 읽었다. `度世間愛`의 `度`는 「건너다」, `世間愛`는 「세간의 애착」. 度는 聖本에 `渡`로 나오는 이문이 게송 b19.1에 있다. 사전 度世 ① 5회. 이 따옴표가 붓다의 발화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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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世尊重說偈言: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주 팔리는 107.20 뒤에 곧바로 게송 107.21로 들어가며 서문 문장이 없다. 한역의 `重說偈言`은 한역에서 흔한 게송 도입 정형구다(사전 偈 ① 1037회). `爾時`는 「그때」, `重說`은 「거듭 말씀하셨다」(앞 산문 말씀을 게송으로 되풀이함). 세존([구속]).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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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曾遠遊行,而得世界邊,

"멀리 노닐며 다닌 적 없이도 세계의 끝을 얻고,

주 팔리 107.21 `Gamanena na pattabbo, lokassanto kudācanaṃ`(감으로써는 세계의 끝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와 한역은 같은 취지를 다른 구문으로 말한다. 한역은 "멀리 다닌 적 없이 세계의 끝을 얻는다"로 부정이 앞 구절(未曾遠遊行)에 걸리고, 팔리는 부정이 "이를 수 있다"에 걸린다. 반대 뜻이 아니라 같은 가르침의 다른 표현으로 읽는다. 팔리의 `kudācanaṃ`(결코)과 한역의 `未曾`(일찍이 ~한 적 없다)이 이어진다. `而`는 흡수. `得`은 「얻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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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得世界邊,終不盡苦邊。

세계의 끝을 얻지 못하고는 괴로움의 끝을 끝내 다하지 못한다.

주 팔리 `Na ca appatvā lokantaṃ, dukkhā atthi pamocanaṃ`(세계의 끝에 이르지 않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남이 없다)와 맞는다. 한역은 `不盡苦邊`(괴로움의 끝을 다하지 못한다)으로 `pamocanaṃ`(벗어남)에 해당하는 말이 없고 `終`(끝내)이 더해진다. 無得은 「얻지 못하고는」, `終不`은 「끝내 ~하지 못한다」로 옮겼다. 사전 苦 ① 잡아함 1998회, 得 ① 2099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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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是故牟尼,能知世界邊,

이런 까닭에 모니는 세계의 끝을 알 수 있어

주 牟尼(muni)는 3분할표가 음역으로 올린 낱말이라 한자 독음 「모니」로 옮겼다(뜻으로 풀어 「성인」이라 하지 않았다). 호칭인지 일반 명사(수행자)인지는 저본만으로 정할 수 없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음의 慧琳 0436a07은 「寂默」, 0776c12는 「仙」으로 풀이하고, 전거표는 `Muni`(팔리형)와 `muṇi`(당대 범어형)를 함께 싣는다. 팔리 107.23 `lokavidū sumedho`(세계를 아는 현명한 이)에는 牟尼에 해당하는 이름이 없다. 한역은 `能知世界邊`(세계의 끝을 알 수 있는)이 팔리 107.25 `lokassa antaṃ ... ñatvā`(세계의 끝을 알고)와 맞는다. 순서가 팔리 107.23~25 사이에서 어긋난다. `是故`(그러므로)와 `以`는 「이런 까닭에」로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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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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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解世界邊,諸梵行已立。

세계의 끝을 잘 이해하여 청정한 삶이 이미 서 있다.

주 팔리 107.24 `Lokantagū vusitabrahmacariyo`(세계의 끝에 이른 이, 청정한 삶을 완성한 이)와 맞는다. 한역은 `善解世界邊`(세계의 끝을 잘 이해하여)이 `lokantagū`(끝에 이른)와 맞고, `諸梵行已立`(여러 청정한 삶이 이미 서 있다)이 `vusitabrahmacariyo`(청정한 삶을 마친)와 맞는다. 梵行=「청정한 삶」(brahmacariya; 3분할표 의역, 정형구 행 · 사전 없음). 이문 없음. `諸`는 복수 「여러」를 남발하지 않아 「청정한 삶이」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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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彼世界邊,平等覺知者,

저 세계의 끝에서 평등하게 깨달아 아는 이는

주 팔리 107.25 `lokassa antaṃ samitāvi ñatvā`(세계의 끝을 고요히 가라앉힌 이로서 알고)와 맞는다. 한역은 `平等覺知者`(평등하게 깨달아 아는 이)로 `samitāvi`(고요를 이룬)에 `平等`이 대응하는 것으로 보이나 한역자의 선택일 수 있어 판정하지 않는다. `者`는 「~한 이」. 사전 平等覺 ① 1회(이 경에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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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名賢聖行,度世間彼岸。」

이를 거룩한 이의 행이라 하니, 세간의 저 언덕을 건넌다."

주 팔리 107.26 `Nāsīsati lokamimaṃ parañca`(이 세계도 저 세계도 바라지 않는다)와 한역 `度世間彼岸`(세간의 저 언덕을 건넌다)은 뜻이 다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엄밀히는 divergent에 가까우나 한역의 `是名賢聖行`이 팔리에 없는 설명이므로 partial로 두고 서술에 신고한다. 賢聖=「거룩한 이」(사전 賢聖 ① 90회, 丁福保 ⑥은 후대 눈이라 가볍게 보았다). 彼岸=「저 언덕」. 이문: 聖本은 `渡`. 저본(大正)은 `度`.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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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時,赤馬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이때 붉은 말 천자가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sn2.26에는 맺음 문장이 없다(게송 107.26에서 끝남). `歡喜隨喜`는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사전 歡喜 ① 1340회, 隨喜 ① 397회). `稽首佛足`은 a11.1과 같다. `即沒不現`은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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