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299

SĀ 1299

교차 검사교차 검사 19현대역 준비 중

(一三〇六)

(1306)

주 이 좌표는 경 번호뿐이고 제목 문구가 없다. 교감주(orig·equivalent)에 다카쿠스 「S. 2. 3. 9. Susīma(須深)」, 교감주(cf.)에 「No. 100.(305)」가 달려 있고 이 주는 데이터에 남는다. 팔리 sn2.29의 제목 「9. Susimasuttaṃ」(0.3)과 이름이 맞으나, 한역은 번호만 있고 팔리는 제목 문구가 있어 한쪽이 더/덜 말하는 꼴이라 [일부]로 달았다. 다카쿠스 「S. 2. 3. 9.」는 상윳따 2의 셋째 품 아홉째 경으로 읽히고, 이는 CST 번호 sn2.29(20+9)와 맞는다. 보조 증언 sn2.3(Māgha)은 이 각주 번호를 그대로 옮겨 생긴 어긋남으로 보여 이 경의 대응으로 세우지 않는다(이의). 이 조각에는 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0.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3:0.3

AG:sa1299/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는 서두를 「Sāvatthinidānaṃ」 한 낱말로 접어 두었다. 「Evaṃ me sutaṃ」이 접힌 안쪽에 서는지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을 세울 수 없어 [미대응]으로 둔다. 한역은 접히지 않고 서 있다(정형구 파일: 이 경 如是我聞 1회). 如는 가정·비유가 아니라 지시(이와 같이)로 읽었고 어미·조사가 질 일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110.1

AG:sa1299/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팔리 「Sāvatthinidānaṃ」은 사위라는 곳만 이름으로 밝히고 제타 숲·아나타삔디까 동산은 접힌 안쪽에 두었다. 그 안쪽을 읽지 못해 祇樹給孤獨園 쪽은 [미대응]이고, 舍衛 쪽만 [일부]로 걸린다. 佛은 [구속] 「부처님」. 舍衛(사위)는 정착어로 정착형을 쓴다. 뜻: 음의 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은 「室羅伐悉底國 … 此譯云聞者城」, 법경경은 「聞物國」이라 풀고, 善見律의 인명설(舍衛=사람 이름)도 전한다. 전거는 舍衛 ↔ 팔리 후보 Sāvatthī / 범어 후보(당대) śravasthi로 계통이 갈리는 것을 보이며,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다른 부 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은 정착어로 정착형을 쓴다. 3분할 표에는 「보류(5자 이상)」로 올라 있으나 장소 이름임을 판별했다(정형구 조각이 아니다: 사전 祇樹給孤獨園 ① 잡아함 948회, 앞 衛國 850). 뜻: 祇樹는 祇(소리: 祇陀)+樹(뜻)가 합한 이름으로 祇陀 태자가 남긴 숲,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慧琳 0368a03·0368a05 〔金剛般若波羅蜜經〕: 祇樹는 祇陀 태자의 숲, 阿那陀를 「巨富多財誓救孤獨」으로 풀고 古經은 阿那邠邸라 한다), 園은 동산. 전거 祇樹給孤獨園 ↔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 DA). 一時는 「한때」, 住는 「머무셨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1

AG:sa1299/0.3 · 교차 검사

時,有須深天子與五百眷屬,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

그때 수심 천자가 오백 권속과 함께, 용모와 빛깔이 더없이 빼어난 모습으로 후야 때에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주 須深은 표에 없는 이름이다. 판별: 음역이다. 근거는 (1) 다카쿠스 교감주가 이 이름을 Susīma에 맞대고 있고 sn2.29의 이름이 Susima이며(0.1), (2) 須+深이 뜻으로 읽히는 이름이 아니라 소리로 읽을 때 su-sīma에 맞기 때문이다. 한자 독음 「수심」으로 적고 팔리형은 여기 비고에만 둔다. 이 경 안에서 「수심」으로 통일한다(29.1·0359a02.1·0359a08.1). 天子는 「천자」, 有는 새 인물을 세우는 존재 표현이라 「이~가」로 주어화했다. 眷屬은 「권속」(정착형, 뜻은 딸린 무리). 전거는 眷屬 ↔ `panivara`(범어 후보 당대)를 보인다. 後夜는 「후야」(밤을 초·중·후로 가른 마지막 때)로 쓰고 時는 「때」. 容色絕妙는 용모(容)와 빛깔(色)이 絕妙, 곧 더없이 빼어남. 稽首는 「머리를 조아리고」(음의 慧琳 0600c02·0698c05: 머리가 땅에 닿는 절). 구조·배열: 한역은 천자가 경 첫머리에 오지만 팔리 sn2.29는 아난과 세존의 문답(110.2~110.42) 뒤에 사리뿟따를 칭찬하는 말이 오가는 동안 천자가 큰 천자 무리에 둘러싸여 온다(110.43). 개별 어휘: 오백 권속 ↔ 큰 천자 무리(mahatī devaputtaparisā), 退坐一面(앉음) ↔ ekamantaṃ aṭṭhāsi(섬). 밤 시간(後夜)과 용모는 sn2.29에 없다. 보조 증언 sn2.3 84.2~84.3은 이 경의 대응이 아니라 같은 천신 도착 정형구(abhikkantavaṇṇo · abhikkantāya rattiyā · upasaṅkami · abhivādetvā · ekamantaṃ aṭṭhāsi)의 증언으로만 매겼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110.43~110.4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3:84.2~84.3

AG:sa1299/0358c10.1 · 교차 검사

其身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그 몸의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주 sn2.29에는 천자가 도착할 때 제타 숲을 비추었다는 말이 없다(110.43~110.45 확인). 몸의 빛은 천자 무리에 대해 비유(110.56~110.63)로 뒤에 나올 뿐이라 [없음확인]으로 달았다. 보조 sn2.3 84.2의 「kevalakappaṃ jetavanaṃ obhāsetvā」(제타 숲 전체를 비추고)가 이 문장과 같은 정형구이므로 [일부]로 매겼다(다른 경의 정형구 증언). 遍照는 「두루 비추었다」(사전 遍照 ① 잡아함 102회, 앞 光明 98). 기수급고독원은 0.3과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10.4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3:84.2

AG:sa1299/0358c12.1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尊者阿難:「汝何難於尊者舍利弗善說法,心喜樂不?」

그때 세존께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아난은 존자 사리불이 법을 잘 설하는 데 대하여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가, 아닌가?」[불확실]

불확실 저본의 「汝何難於尊者舍利弗…」의 何는 이문에서 宋·元·明·聖본이 阿로 읽고 교감주(orig)도 「何=阿【三】【聖】」로 단다. 저본 그대로는 「汝何難」이 뜻으로도 이름으로도 서지 않고, 같은 경 14.1·22.1에서 세존과 아난이 「阿難」으로 불리므로, 본문은 이문 阿에 따라 「그대 아난」으로 읽었다. 저본 글자에서 벗어난 읽기이니 로 신고한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世尊(여기)과 佛(14.1 白佛, 21.1)을 번갈아 쓴다. 두 낱말 다 확정역이 있어(世尊=세존 [구속], 佛=부처님 [구속]) 각각 그대로 옮겼다. 阿難(아난)은 정착어: 阿難陀는 「慶喜」(음의 慧琳 0482c03 〔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 팔리 Ānanda. 舍利弗(사리불)은 정착어: 「奢唎補怛羅」, 곧 鶖鷺(왜가리)의 아들이라 풀이한다(음의 慧琳 0450b23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같은 글은 舊譯 「身子」를 틀렸다 한다). 전거: 팔리형 Sāriputta, 근대 비정 Śāriputra로 갈리며(⚠다른 부 DA) 판정하지 않는다. 尊者는 「존자」.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팔리 sn2.29는 아난이 세존께 다가가 앉는 장면(110.2~110.3)이 있고 한역에는 없다. 팔리의 질문은 「사리뿟따가 그대 마음에도 드는가」(ruccati)이고 한역은 사리불이 법을 잘 설함에 대한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묻는다. 心喜樂不의 不는 문말 의문.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4~110.5

AG:sa1299/0358c12.2 · 교차 검사

阿難白佛:「如是,世尊!何等人不愚、不癡、有智慧,於尊者舍利弗善說法中,心不欣樂。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어리석지 않고 미혹하지 않고 지혜를 지녔으면서, 존자 사리불이 법을 잘 설하는 가운데 마음이 흔쾌히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

주 한자 흔들림: 白佛(부처님께 아뢰었다)과 呼稱 世尊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선다(佛=부처님 [구속], 世尊=세존 [구속]). 한역이 같은 개념에 두 한자를 쓴다. 아난의 발화이므로 세존께 존댓말(합쇼체)로 통일했다. 如是는 응답 「그렇습니다」(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293/3138). 何等人…心不欣樂은 의문대명사 何等人을 쓴 반문이다. 저본 끝은 마침표이나 22.1의 같은 구조가 「?」로 끝나는 것과 팔리가 반문(kassa hi nāma … na rucceyya?)인 것에 맞춰 반문으로 옮겼다. 有智慧의 有는 소유(지혜를 지님)로 읽어 「지혜를 지녔으면서」로 옮기고 「~이 있어」는 쓰지 않았다. 欣樂은 12.2의 喜樂과 한자가 달라 「흔쾌히 즐거워하다」로 구분했다(喜樂=기쁘고 즐겁다). 개별 어휘: 팔리는 abāla·aduṭṭha·amūḷha·avipallatthacitta 네 항인데 한역은 不愚·不癡·有智慧 셋이다. 愚·癡는 둘 다 어리석음 계열이라 愚=어리석다, 癡=미혹하다로 갈랐다. 이 문장은 따옴표가 닫히지 않고 16.1·16.2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6

AG:sa1299/0358c14.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주 팔리는 반문(110.6) 바로 뒤에 사리뿟따의 덕목 목록(110.7~)이 이어지고 「그 까닭은 무엇인가」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 所以者何는 所以(까닭)+者(명사화, 「~은」)+何(무엇)로 읽어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로 옮겼다. 아난의 발화이므로 합쇼체.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10.7

AG:sa1299/0358c16.1 · 교차 검사

彼尊者舍利弗持戒多聞,少欲知足,精勤遠離,正念堅住,智慧正受,捷疾智慧、利智慧、出離智慧、決定智慧、大智慧、廣智慧、深智慧、無等智慧,智寶成就,善能教化,示、教、照、喜,亦常讚歎示、教、照、喜,常為四眾說法不惓。」

저 존자 사리불은 계를 지니고 많이 들으며,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며, 부지런히 힘쓰고 멀리 떠나며, 바른 생각이 굳게 머물며, 지혜가 바르게 받아들이며, 빠른 지혜, 날카로운 지혜, 벗어나 떠나는 지혜, 결단하는 지혜, 큰 지혜, 넓은 지혜, 깊은 지혜, 견줄 데 없는 지혜를 지니고, 지혜의 보배를 이루었으며, 잘 가르쳐 교화할 수 있고, 보이고 가르치고 비추고 기쁘게 하며, 또한 항상 보이고 가르치고 비추고 기쁘게 하는 것을 찬탄하며, 항상 사부대중을 위해 법을 설하는 데 지치지 않습니다.」

주 구조·배열: 팔리는 덕목 하나가 한 문장(「Paṇḍito, bhante, āyasmā sāriputto」 꼴 16문장)이고 한역은 한 문장 열거다. 개별 어휘: 少欲≈appiccho, 知足≈santuṭṭho, 遠離≈pavivitto, 精勤≈āraddhavīriyo, 大智慧≈mahāpañño, 廣智慧≈puthupañño, 捷疾智慧≈javanapañño, 利智慧≈tikkhapañño로 짝이 서고, 出離智慧≈nibbedhikapañño는 추정이다. 문장 유무: 한역에만 持戒多聞·正念堅住·智慧正受·決定·深·無等·智寶成就·善能教化·示教照喜·讚歎·說法不惓이 있고, 팔리에만 paṇḍita·hāsapañña·asaṃsaṭṭha·vattā·vacanakkhama·codaka·pāpagarahī가 있다. 정근·정념·정수 등은 정본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 正受: 「지혜가 바르게 받아들이며」로 옮겼으나 이 한자는 삼매의 이역으로도 쓰인다(사전 正受 ⑥ 丁福保 「三昧一譯正受」; 사전 正受 ① 잡아함 249회; 사전 正受 ③ 용례 sa101/0.3 「入晝正受」). 아함 문맥에서 삼매(정수)인지 단순 동사 「바르게 받다」인지 저본이 가르지 못해 [불확실:다의어_판별]로 신고하고, ⑥은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만 인용한다.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해 「잘 가르쳐 교화할 수 있고」. 亦은 앞 구(자신이 示教照喜함)에 더하는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為四眾는 위하여(피동 為…所 아님). 四眾은 통설대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사부이므로 정착형 「사부대중」으로 옮겼다. 教는 세 군데(善能教化·示教照喜·讚歎示教照喜) 모두 「가르치-」계열로 통일했다. 示教照喜의 喜는 「기쁘게 하다」(사동). 惓은 이문 倦(宋·元·明·聖, 교감주 「惓=倦【三】【聖】*」)과 뜻이 같고 저본 惓을 따랐다. 아난의 발화라 합쇼체이며 여기서 따옴표가 닫힌다. 「지니고」는 한문의 열거에 술어가 없어 한국어 문법상 보탠 어미성 동사다. 乃至·如上 등 생략 표지는 이 경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7~110.22

AG:sa1299/0358c16.2 · 교차 검사

佛告阿難:「如是,如是,如汝所說。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

주 한자 흔들림: 12.2는 世尊, 여기는 佛로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각각 확정역 세존·부처님을 그대로 씀).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팔리 「Evametaṃ, ānanda, evametaṃ, ānanda」는 호격을 되풀이하고 한역 「如是,如是」에는 호격이 없으며, 한역에만 「如汝所說」(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이 있다. 如汝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이고, 따옴표는 22.1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24

AG:sa1299/0358c21.1 · 교차 검사

阿難!為何等人不愚、不癡、有智慧,聞尊者舍利弗善說諸法而不歡喜?

아난이여! 어떤 사람이기에 어리석지 않고 미혹하지 않고 지혜를 지녔는데, 존자 사리불이 여러 법을 잘 설하는 것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겠는가?

주 為何等人의 為를 피동(為…所)이 아니라 계사 「~이다」로 읽어 「어떤 사람이기에」로 옮겼다. 「~를 위하여」로 읽는 길도 있어 [불확실:격·태·구문]으로 신고한다(14.1의 같은 구는 為 없이 선다). 而는 접속이라 「듣고도」의 어미로 흡수했다. 諸法은 「여러 법」(諸는 복수로 한 번만). 歡喜는 「기뻐하다」, 14.1의 欣樂·12.2의 喜樂과 한자가 달라 달리 옮겼다. 반문 처리는 14.1과 같다. 팔리 110.25는 「사리뿟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na rucceyya)이고 한역은 법 설함을 듣고 기뻐하지 않음이라 대상이 다르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의문형 평서)이며 아난을 부르는 호격이 앞선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25

AG:sa1299/0358c22.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16.1과 같은 사안이다. 팔리는 반문 뒤에 바로 덕목 목록(110.26~)이 이어지고 이 문장이 없다. 이번 화자는 세존이므로 평서 어미 「~인가」를 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10.26

AG:sa1299/0358c24.1 · 교차 검사

舍利弗比丘持戒多聞,少欲知足,精勤正念,智慧正受,超智、捷智、利智、出智、決定智、大智、廣智、深智、無等智,智寶成就,善能教化,示、教、照、喜,亦常讚歎示、教、照、喜,常為四眾說法不惓。」

사리불 비구는 계를 지니고 많이 들으며,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며, 부지런히 힘쓰고 바르게 생각하며, 지혜가 바르게 받아들이며, 뛰어넘는 지혜, 빠른 지혜, 날카로운 지혜, 벗어나는 지혜, 결단하는 지혜, 큰 지혜, 넓은 지혜, 깊은 지혜, 견줄 데 없는 지혜를 지니고, 지혜의 보배를 이루었으며, 잘 가르쳐 교화할 수 있고, 보이고 가르치고 비추고 기쁘게 하며, 또한 항상 보이고 가르치고 비추고 기쁘게 하는 것을 찬탄하며, 항상 사부대중을 위해 법을 설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

주 같은 경 안의 16.2와 목록이 다르지만 통일하지 않았다. 16.2는 「精勤遠離,正念堅住」인데 여기는 「精勤正念」(遠離·堅住 없음)이다. 16.2의 지혜 목록은 捷疾·利·出離·決定·大·廣·深·無等(여덟 항, 智慧 꼴)이고 여기는 超·捷·利·出·決定·大·廣·深·無等(아홉 항, 智 꼴)으로 超智가 더 있고 出離智慧가 出智로 줄었다. 그래서 出離智慧=「벗어나 떠나는 지혜」, 出智=「벗어나는 지혜」로 한자 차이를 남겼고, 超智는 「뛰어넘는 지혜」로 옮겼다. 이문: 「智=三【聖】」(app 0358020, 어느 智인지 데이터에 위치가 없다)과 惓=倦(宋·元·明·聖)은 저본을 따르고 사실만 신고한다. 舍利弗比丘는 이름 뒤에 호칭이 오는 꼴로 「사리불 비구」(比丘 [구속] 비구). 팔리의 대응 항과 한역에만/팔리에만 있는 덕목은 16.2의 서술과 같다(팔리는 세존의 말에서도 항목마다 한 문장). 正受·四眾·能·亦·教·「지니고」의 처리도 16.2와 같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않는다)이고 여기서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26~110.41

AG:sa1299/0358c24.2 · 교차 검사

世尊如是如是向尊者阿難,如是如是稱嘆舍利弗所說,如是如是須深天子眷屬內心歡喜,身光增明,清淨照耀。

세존께서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존자 아난을 향하시어,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사리불이 말한 것을 일컬어 기리시니,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수심 천자의 권속은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몸의 빛이 더욱 밝아지고 맑고 깨끗하게 환히 비추었다.

주 如是如是가 세 번 나오는 이 문장은 술어가 생략된 듯 읽히고 끊는 곳이 둘 이상이다: (가) 「世尊如是如是向尊者阿難」/「如是如是稱嘆舍利弗所說」/「如是如是須深天子眷屬…」 세 갈래 병렬로 읽거나, (나) 「세존이 그렇게 아난에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칭찬하시니 → 그렇게 권속이 기뻐함」으로 읽는 길이 있다. 본문은 (가)로 두되 向에 술어를 보태지 않았다. [불확실:구두·분절]. 한자 흔들림: 여기도 世尊(0358c21.1은 佛). 稱嘆은 「일컬어 기리다」로 16.2의 讚歎(찬탄)과 구분했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말한 것」. 清淨은 3분할 표가 의역(Sobhavatī)으로 올렸으나 전거의 ⚠동형이의(DA의 清淨은 도시명)에 해당하고 이 자리는 照耀를 꾸미는 형용이라 「맑고 깨끗하게」로 옮겼다. 內心歡喜·身光增明·清淨照耀는 sn2.29 110.55 「attamanā pamuditā pītisomanassajātā … bhāsate ca tapate ca virocati ca」(기뻐하고 몸에서 빛남)와 겹치나 팔리 주어는 천자의 무리이고 한역은 세존의 칭찬에 이어 권속이 기뻐하는 것이다. 문장 유무: 팔리의 천자의 말(110.46~110.54: 「Evametaṃ, bhagavā …」 사리뿟따 칭찬)과 보석·황금·별·태양의 네 비유(110.56~110.63)는 한역에 없다. 팔리에서 「Evametaṃ」을 말하는 이는 천자이고 한역에서 「如是如是」를 말하는 이는 세존이다(21.1 참조).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10.46~110.5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5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10.56~110.63

AG:sa1299/0358c29.1 · 교차 검사

爾時,須深天子內懷歡喜,發身淨光照耀已,而說偈言:

그때 수심 천자가 마음속에 기쁨을 품고, 몸의 깨끗한 빛을 내어 환히 비추고 나서,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 110.64는 「천자가 사리뿟따를 두고 세존 앞에서 이 게송을 말했다」이고 한역은 그에 앞서 천자가 기쁨을 품고 몸의 빛을 내어 비추기를 마쳤다는 말이 더 있다. 內懷歡喜는 「마음속에 기쁨을 품고」, 發身淨光照耀已는 「몸의 깨끗한 빛을 내어 환히 비추고 나서」(已는 완료).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偈는 「게송」(사전 偈 ① 而說 189), 說偈言은 게송을 설하고 이어 말한 내용이 오므로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팔리에는 천자의 게송(110.65~110.66)과 세존의 답송(110.67~110.69) 두 수가 있고 한역에는 천자의 게송 한 수만 있다. 수심은 0358c10.1과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64

AG:sa1299/0359a02.1 · 교차 검사

「舍利弗多聞,明智平等慧,

「사리불은 많이 듣고, 밝은 지혜와 평등한 지혜를 지니고,

주 舍利弗≈sāriputto. 팔리 110.65는 「paṇḍito 불리고 akodhano(성내지 않음)」이고 한역의 明智는 paṇḍito에 가까운 추정이며 akodhano는 한역에 없다. 한역의 多聞·平等慧는 팔리 이 자리에 없다. 열거에 술어가 없어 「지니고」를 문법상 보탰다(16.2와 같다). 平等은 정착어 「평등」. 게송 행을 유지했다(이 좌표 반구 둘, 쉼표로 나눔).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65

AG:sa1299/0359a05.1 · 교차 검사

持戒善調伏,得不起涅槃,

계를 지니고 잘 조복하며, 일어나지 않는 열반을 얻고,[불확실]

불확실 팔리 110.66 「Appiccho sorato danto」(욕심 적고 온화하고 길들여짐)과 겹치는 것은 danto≈調伏(추정)와 sorato≈持戒(추정)뿐이고, 不起涅槃은 이 자리 팔리에 없다. 調伏은 정착어 「조복」, 07.1의 降伏(항복)과 한자가 달라 구분했다. 得은 「얻다」(획득, 가능 아님). 涅槃(열반)은 음역이나 한국 불교계 정착형 「열반」을 쓴다. 3분할 표는 이를 「혼합(音義合璧)」으로 올렸으나 祇樹처럼 한 이름 안에서 소리와 뜻이 섞인 꼴은 아니라 정착형 처리로 판별했다. 전거는 涅槃 ↔ 팔리 Nibbāna / 범어 nirvāṇa(당대)로 두 계통이 모두 서고 갈린다(⚠다른 부 EA의 대역). 이는 이 아니라 확인된 두 계통이라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不起는 「일어나지 않는」.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110.66

AG:sa1299/0359a06.1 · 교차 검사

持此後邊身,降伏於魔軍。」

이 마지막 몸을 지니고, 마의 군대를 항복시킨다.」

주 持此後邊身은 3분할 표가 「보류(5자 이상)」로 올린 항목이다. 판별: 이름이 아니라 서술구이다(後邊=마지막, 身=몸). 전거는 持此後邊身 ↔ `Antimadehadhārin`(팔리 후보)을 보이며 참고로 인용만 한다. 魔는 소리 옮김의 정착형 「마」, 魔軍은 「마의 군대」(사전 魔軍 ③ 용례 sa1056/0276b18.1 「此最後身,摧伏眾魔軍」). 降伏은 「항복시키다」이고 於는 목적 조사로 흡수했다. 팔리 110.69는 「kālaṃ kaṅkhati sudanto」(때를 기다린다, 잘 길들여졌다)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팔리 110.66 후반 「satthuvaṇṇābhato isī」와 세존의 답송 도입(110.67~110.68)은 한역에 없다. 게송이 여기서 끝나며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110.69

AG:sa1299/0359a07.1 · 교차 검사

時,彼須深天子及五百眷屬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저 수심 천자와 오백 권속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sn2.29는 세존의 답송(110.69)으로 끝나고 천자의 환희·수희·정례·사라짐에 해당하는 맺음 문장이 없다(110.69까지 확인). 한자 흔들림: 여기는 佛(부처님 [구속])이고 앞 29.1은 世尊이다. 聞佛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말씀하신 것」. 歡喜隨喜는 歡喜=「기뻐하다」, 隨喜=「따라 기뻐하다」(두 낱말을 합치지 않았다). 即은 「곧」, 沒不現은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及은 「와」. 수심·권속의 처리는 0358c10.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110.69

AG:sa1299/0359a08.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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