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994

SĀ 994

교차 검사교차 검사 19현대역 준비 중

(一〇〇一)

(1001)

주 제목 좌표다. 한문 저본에는 경 번호 「一〇〇一」만 있어 숫자 그대로 옮겼다. 교감주 「S. 1. 1. 3. Upaneyya.」(다카쿠스 각주)는 팔리 경 이름 Upaneyya(우리 PN의 Upanīyasutta)를 가리키며 sn1.3과 맞는다. 팔리에는 제목이 있고 한역에는 번호뿐이라 「일부」로 매겼다. 증언 후보는 합의 등급이 conflict(sn1.3 = BZA·莊春江 / sn1.1 = 다카쿠스 대조표 밖 번호)이며, 본문을 대조하면 앞 절반 게송(0262b27.1–0262c06.1)은 sn1.3과, 끝 게송과 맺음(0262c08.1–0262c10.1)은 sn1.1과 맞물린다(해당 좌표에서 신고). 산스크리트 증언 파일은 이 경에 제공되지 않았다 — 이하 모든 좌표의 `SF:미제공 [unaligned]`는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결」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0.3

AG:sa994/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의 「~같이」(앵커 [비유·가정])는 「이와 같이」로 문법 흡수했다. sn1.3의 3.1 `Sāvatthinidānaṃ.`는 팔리가 서두를 접어 둔 표지라 안쪽(Evaṃ me sutaṃ …)을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 보조 sn1.1/1.1 `Evaṃ me sutaṃ`과는 같다.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3:3.1

니까야 대응 같음 SN 1.1:1.1

AG:sa994/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 = 부처님 `[구속]`. 같은 붓다를 이 경은 0262c02.1에서 世尊으로 적는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 「부처님」/「세존」 각각 고정, 한자 흔들림 신고). 舍衛(사위)는 정착어이며 코살라의 도읍 Sāvatthī를 한자로 옮긴 음역이다.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聞物國」, 또 「無物不有國」, 善見律을 인용해 「舍衛者人名也」라 한다. 전거표: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로 두 계통이 갈린다(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은 보류 유형(5자 이상)이라 판별했다: 祇樹 = 祇(음, Jeta)+樹(뜻) 곧 기타 태자의 숲 — 慧琳 0368a03: 「祇陀…誓多此譯為勝…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給孤獨 = 의역으로 Anāthapiṇḍika(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慧琳 0368a05: 「亦義譯也…誓救孤獨」; 園 = 동산. 이름 전체는 한국 불교계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⑤ 정착어 예). 다만 표가 이름을 보류로 둔 점, 給孤獨을 의역으로 풀 길(§⑤)이 열려 있는 점 때문에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남긴다 — 정도평 확정 몫. 팔리형은 Jetavana, Anāthapiṇḍika.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3:3.1

니까야 대응 같음 SN 1.1:1.2

AG:sa994/0.3 · 교차 검사

時,有一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

그때 한 천자가 얼굴빛과 모습이 더없이 빼어난 채로, 밤의 뒷시간에 부처님 계신 곳에 와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주 有一天子의 有는 새 인물을 세우는 자리라 「~이 있어」를 쓰지 않고 「한 천자가」로 흡수했다(앵커 [존재]).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有一天`(aññatara)과 3분할표의 `有一天` 음역 분류는 이 저본에서 「有+一+天子」로 읽혀 맞지 않아 저본을 따랐다. 天子는 정착형 「천자」; 팔리는 devatā(신)로 어휘가 갈린다. 後夜는 「밤의 뒷시간」으로 풀었다 — 사전 後夜 ① 잡아함 130회·113경, 앞 「妙於」 88 · 뒤 「時來」 92; 팔리 sn1.1/1.3은 abhikkantāya rattiyā(밤이 깊어)로 시각 표현이 다르다. 후야(밤을 셋으로 나눈 끝 시분)라는 술어로 굳은 것인지 못 정해 불확실로 남긴다. 稽首: 음의 慧琳 0600c02 「稽首首至地也」, 0698c05 「稽至也首頭也言頭至地也」에 따라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음독 금지, §②). 팔리는 abhivādetvā(예배하고)이고 한역 退坐一面(앉았다)에 대해 팔리는 aṭṭhāsi/ṭhitā(섰다)라 서 있음/앉음이 갈린다. 팔리는 앞서 몸빛으로 숲을 비춘 뒤 다가가는데(sn1.1/1.3) 한역은 앉은 뒤에 광명을 말한다(0262b24.1에서 신고).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2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3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4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5

AG:sa994/0262b23.1 · 교차 검사

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몸의 여러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주 팔리 sn1.1/1.3 `kevalakappaṃ jetavanaṃ obhāsetvā`(온 제타 숲을 비추고 나서 다가갔다)는 접근 앞에 서고, 한역은 退坐一面 뒤에 선다 — 자리바뀜이다. 팔리는 abhikkantavaṇṇā(빼어난 빛깔)와 숲 비춤이 한 문장이고 한역은 容色絕妙(0262b23.1)와 身諸光明을 둘로 가른다. 諸는 「여러」(앵커 [복수]; 남발하지 않고 이 자리만 세움). 遍照는 「두루 비추었다」; 사전 遍照 ① 잡아함 102회, 앞 光明 98 · 뒤 祇樹 94(정형구). sn1.3은 서두를 접어 둔 3.1만 있어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unaligned.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3:3.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1:1.3

AG:sa994/0262b24.1 · 교차 검사

時,彼天子而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게송을 설해 말하였다.

주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앵커). 偈는 gāthā의 음역 축약(음의 慧琳 0483c01 「梵云伽陀此云頌」, 사전 偈 ⑤)이나 한국 불교계 정착어 「게송」으로 옮겼다. 說偈言의 言은 인용을 여는 말이라 「말하였다」로 둔다. sn1.3/3.2 `imaṃ gāthaṃ abhāsi`(이 게송을 말했다)와 짜임이 같고, 이 좌표는 3.2가 서 있음 서술과 함께 걸린 자리라 partial. 彼 「그」.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2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5

AG:sa994/0262b25.1 · 교차 검사

「冥運持命去,故令人短壽,

「어두운 운행이 목숨을 가지고 가니, 그러므로 사람의 수명을 짧게 하고,

주 천자(윗사람인 붓다에게 말함)의 발화라 문말을 존댓말로 통일한다(§⑦) — 이 행은 연결어미로 끝나고 다음 행에서 닫는다. 冥運은 사전 冥 ① 잡아함 21회·7경, 뒤 「運持」 2회가 이 경 b27·c03뿐이라 다른 용례가 없다. 冥 = 어두움/보이지 않음, 運 = 움직임/운행(또는 운수)으로 갈려 「어두운 운행」으로 두고 불확실로 남긴다(사전 冥 ⑥ 「無知之異名」은 후대 눈이라 쓰지 않음). 팔리 `Upanīyati jīvitamappamāyu`(짧은 수명의 목숨이 이끌려 간다)는 행위자 없는 수동이고, 한역은 冥運을 주어로 세워 능동(持命去)으로 옮겼다. 令人短壽는 사역 「~게 하다」로 두었고 appamāyu(짧은 수명)에 해당한다. 故 「그러므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3

AG:sa994/0262b27.1 · 교차 검사

為老所侵迫,而無救護者。

늙음에 침범되고 핍박받는데, 구하고 보호해 줄 이가 없습니다.

주 為老所侵迫는 為…所 피동이라 「늙음에 침범되고 핍박받는」으로 풀고 「~하는 바」는 쓰지 않았다. 而는 앵커상 흡수 대상이나 앞뒤가 반전(핍박받는데 구호자가 없다)이라 연결어미 「~는데」로 지는 것으로 읽었다. 救護者의 者는 「~할 이」. 팔리 `Jarūpanītassa na santi tāṇā`(늙음에 이끌려 간 이에게 피난처가 없다)의 upanīta(가까이 이끌린)와 한역 侵迫(침범하고 핍박함)는 어휘가 갈리고, 無救護者는 na santi tāṇā와 같은 뜻이다. 존댓말(§⑦).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4

AG:sa994/0262b28.1 · 교차 검사

覩斯老病死,令人大恐怖,

이 늙음과 병과 죽음을 보니, 사람을 크게 두렵게 하고,

주 覩斯老病死 令人大恐怖에서 令의 주어가 「이것을 봄」인지 「늙음·병·죽음」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주어를 비워 두고 옮겼다. 팔리 `Etaṃ bhayaṃ maraṇe pekkhamāno`(죽음에서 이 두려움을 보면서)는 maraṇa(죽음) 하나이고 한역은 老病死 셋이다 — 어휘 갈림. 또 팔리는 분사구문이고 한역은 사역(令人大恐怖)으로 옮겼다. 令은 앵커 [사역]. 문말은 이어지는 행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5

AG:sa994/0262b29.1 · 교차 검사

唯作諸功德,樂住至樂所。」

오직 여러 공덕을 짓고, 지극한 즐거움의 곳에 즐거이 머뭅니다.」

주 저본 이문: 住 = 往【宋】【元】【明】(교감주 mod). 본문은 저본(大正) 住를 따랐다; 往이면 「~곳에 가라」로 뜻이 달라진다. 唯는 앵커 [한정]이며 「오직」은 뜻이 실린 자리로 세웠다(팔리 `Puññāni kayirātha`에는 한정이 없다). 諸功德은 「여러 공덕」. 樂住의 樂을 부사(즐거이)로 읽었으나 동사(즐겨)로 읽을 길도 있다. 作諸功德이 권유인지 서술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 팔리는 kayirātha(해야 한다, 가능법)이나 증언이므로 본문은 서술형으로 두고 신고한다. 팔리 `sukhāvahānī`(즐거움을 가져오는 [공덕])와 한역의 「至樂所에 머뭄」은 구조가 다르다. 사전 功德 ①.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6

AG:sa994/0262c01.1 · 교차 검사

爾時,世尊說偈答言: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해 답하여 말씀하셨다.

주 世尊 = 세존 `[구속]`. 같은 붓다를 앞에서는 佛(0.3 등)로 적었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제공된 sn1.3 원문은 3.6과 3.7 사이에 화자 교체 문장이 없이 둘째 게송이 바로 이어진다. 그 자리(3.7)에 이 한역 문장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음을 확인했으므로 absent다. 爾時의 爾는 「그」, 答은 「답하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3:3.7

AG:sa994/0262c02.1 · 교차 검사

「冥運持命去,故令人短壽,

「어두운 운행이 목숨을 가지고 가니, 그러므로 사람의 수명을 짧게 하고,

주 한문은 0262b27.1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다. 화자가 붓다로 바뀌어 문말 평서로 옮긴다(붓다의 발화는 청자와 무관하게 평서, §⑦) — 이 행은 연결어미라 같다. 갈림·불확실 내용은 0262b27.1과 같다(冥運 해석). 팔리 3.7은 3.3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아 두 반복이 한역에서도 같은 짜임으로 남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7

AG:sa994/0262c03.1 · 교차 검사

為老所侵迫,而無救護者。

늙음에 침범되고 핍박받는데, 구하고 보호해 줄 이가 없다.

주 한문은 0262b28.1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다. 붓다의 발화라 평서로 옮겼다. 갈림 내용은 0262b28.1과 같다(upanīta ↔ 侵迫). 인용을 닫는 표지는 저본대로 0262c06.1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8

AG:sa994/0262c04.1 · 교차 검사

觀此有餘過,令人大恐怖,

이 남음이 있는 허물을 살펴보니, 사람을 크게 두렵게 하고,

주 有餘過의 有餘를 「남음이 있는」으로 옮겼다. 사전 有餘 ① 잡아함 70회, 뒤 「無餘」 3 — 無餘涅槃(0262c06.1)과 짝이 되는 말로 읽으면 「(번뇌의) 남음이 있는 허물」이고, 단순히 「그 밖의 허물」로 읽을 길도 있어 불확실로 남긴다(사전 有餘 ⑥ 후대 「未究竟至極」은 아함 문맥과 맞지 않아 쓰지 않음). 觀은 「살펴보니」로 옮겼고(앵커상 분사구문), 0262b29.1 覩와 같은 짜임이다. 令의 주어는 서지 않아 비워 두었다. 팔리 3.9 `Etaṃ bhayaṃ maraṇe pekkhamāno`는 3.5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으나, 한역은 같은 자리를 老病死(0262b29.1)와 有餘過(여기)로 달리 적었다 — 어휘 갈림. 令人大恐怖는 앞 게송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9

AG:sa994/0262c05.1 · 교차 검사

當斷世貪愛,無餘涅槃樂。」

세간의 탐애를 끊으라. 남음 없는 열반의 즐거움.」

주 當은 앵커 [당위·미래]대로 「~라」 어미가 지므로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世貪愛의 世는 loka(세간); 貪愛는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탐애」로 옮겼다(전거표·확정술어에 행 없음). 無餘涅槃樂을 앞 「斷世貪愛」에 붙여 목적어로 볼 수도 있으나(뜻이 어긋난다), 따로 선 명사구로 읽는 쪽이 팔리 `santipekkho`(평안을 바라봄)와 맞아 본문은 따로 선 명사구로 두었고 끊는 자리는 불확실로 남긴다. 無餘涅槃은 3분할표 「혼합」: 涅槃(음역) = 열반, 無餘(의역) = 「남음 없는」(팔리 후보 Anupādā; 慧琳 0463b14 「涅槃…此翻為圓寂」은 참고만). 팔리 `Lokāmisaṃ pajahe`(세간의 미끼를 버려라)와 한역 世貪愛는 어휘가 다르다. 혼합 유형의 처리를 이렇게 밝히며 표기 유형을 불확실로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3:3.10

AG:sa994/0262c06.1 · 교차 검사

時,彼天子復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다시 게송을 설해 말하였다.

주 復은 반복의 뜻이 실려 「다시」로 세웠다(앵커 [반복]). 같은 천자가 두 번째로 게송을 말하는 구조는 sn1.3에는 없고(둘째 게송은 붓다의 것) sn1.1에서는 천자가 붓다의 답을 들은 뒤 게송으로 칭찬하는 자리(1.12)와 맞는다. sn1.3 쪽은 해당 문장을 놓을 자리조차 없어 `PN:없음`으로 쓴다. 彼 「그」, 偈는 0262b2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3:없음

AG:sa994/0262c07.1 · 교차 검사

「久見婆羅門,逮得般涅槃,

「오래도록, 반열반에 이르러 얻은 바라문을 뵙습니다,

주 婆羅門 = 바라문 `[구속]`. 여기서는 사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붓다를 가리키는 말로 읽힌다(음의 慧琳 0325c03 「…淨行或云梵行」, 0466a06 「常修淨行愽學多聞高貴人」은 참고만; 갈림 「번안」 아님 — 四姓 자리가 아니다). 般涅槃은 3분할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자는 소리를 옮긴 음역의 구조(般+涅槃)로 읽혀 저본과 어긋나므로, 한국 불교계 정착어 「반열반」으로 옮기고 불확실 신고한다(전거 표는 般涅槃에 팔리 Parinibbuta·Parinibbānam·Parinibbāyī를 후보로 단다). 逮得은 「이르러 얻은」(음의 慧琳 0327c07 「逮及也」; 사전 逮得 ① 잡아함 115회, 뒤 「般涅」 73). 팔리 `Cirassaṃ vata passāmi, brāhmaṇaṃ parinibbutaṃ`(오랜만에 반열반한 바라문을 뵙습니다)에서 과거분사 parinibbutaṃ이 한역에서는 동사 逮得+명사 般涅槃으로 풀렸다 — 번역기법. 久見의 久는 한문만으로 「오래도록」(계속)인지 「오랜만에」인지 갈려 앞쪽으로 두었다. 팔리의 vata(참으로)는 한역에 따로 없다. 천자의 발화라 존댓말(§⑦), 見은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뵙다」를 따른다(정형구 행은 낱말 확정역이 아님; 문맥상 붓다를 뵘이므로 선택).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3:없음

AG:sa994/0262c08.1 · 교차 검사

一切怖已過,永超世恩愛。」

모든 두려움이 이미 지나갔고, 세간의 은혜와 사랑을 길이 뛰어넘었습니다.」

주 一切怖已過의 一切는 「모든」(음의 慧琳 0434b15 「一切普也」; 전거표 一切 ← 당대 `sarva`). 팔리 `Appatiṭṭhaṃ anāyūhaṃ`(의지처 없고 애쓰지 않는)에 해당하는 말이 한역에는 없고 一切怖已過가 선 것으로 보여 앞 구절은 엇갈린다. 뒷 구절 永超世恩愛는 `tiṇṇaṃ loke visattikaṃ`(세간의 집착을 건넌)과 뜻이 이어진다. 恩愛는 「은혜와 사랑」으로 풀었고(사전 恩愛 ① 잡아함 91회, 앞 「超世」 74), 사전 ⑥ 후대의 「父母妻子 사이의 정」은 아함 문맥과 어긋나 쓰지 않았다. 불확실로 남긴다. 永은 「길이」, 超는 「뛰어넘다」. 존댓말(§⑦).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3:없음

AG:sa994/0262c09.1 · 교차 검사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그 천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聞佛所說의 所說은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하는 바」 회피). 歡喜隨喜는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 두 낱말을 줄이지 않았다(음의 慧琳 0753a01 「歡喜悅也」; 사전 隨喜 ① 잡아함 397회, 앞 「歡喜」 335로 정형구). 稽首佛足은 0262b23.1과 같다. 即은 「곧」(앵커 [즉시]). 팔리 sn1.1/1.16 `Samanuñño satthā ahosi`(스승이 인가하셨다)는 한역에 없고, 한역의 천자의 환희는 팔리에 없어 엇갈린다(divergent). 1.18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ntaradhāyi`는 稽首佛足 + 即沒不現과 맞고 padakkhiṇaṃ(오른쪽으로 돎)은 한역에 없다. 1.15 `Idamavoca sā devatā`에 해당하는 문장은 한역에 없다. sn1.3 원문은 3.10에서 끝나 이 맺음 부분이 없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1:1.16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3:없음

AG:sa994/0262c10.1 · 교차 검사

❖

함께 볼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