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九八)
(998)
주 한역 제목 줄은 경 번호 「(九九八)」뿐이고 경명이 없다. 팔리 sn1.42는 경명(Kiṃdadasuttaṃ)과 번호(42)를 함께 싣는다 — 한쪽이 더 말하므로 일부로 적는다(번호 체계도 서로 다르다). 교감주(orig) 「S. 1. 5. 2. Kiṃdada. [No. 100(135)]」: 경명 Kiṃdada가 sn1.42 제목과 일치하고 「S. 1. 5. 2.」는 상윳따 1·품 5·경 2의 PTS식 표기로 읽힌다. 보조로 투입된 sn1.5(Katichindasuttaṃ)는 경명이 어긋나 대응으로 쓰지 않았다(그 번호는 다카쿠스의 PTS 번호를 우리 PN 번호로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No. 100(135)]」는 별역잡아함(대정 No.100) 제135경 참조 표기로 읽히나 이 투입물 안에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산스크리트 항은 달지 않았다. 이하 팔리 항의 「없음확인」 좌표는 그 자리가 놓일 곳 옆의 행이다(서두·도입은 뒤 이웃 42.1, 맺음은 앞 이웃 42.7).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1.42 원문(제목 0.3, 42.0~42.7 전부)에는 개경 정형구에 해당하는 행이 없고, 접힘 표지(pe·「Sāvatthinidānaṃ」 따위)도 이 원문 안에는 없다 — 이 원문 범위 안에서 없음확인으로 적는다. 如是: 앵커 [비유·가정]은 「이와 같이」의 如是 정형구로 읽었다(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1332경, 이 경 0.2). 我聞: 「나는 들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1) 팔리 sn1.42 원문에 처소 서두 행이 없다(없음확인; 0.2와 같은 까닭). (2) 舍衛 → 「사위」: 3분할 표 정착어로 정착형을 썼다. 이름의 뜻: 파세나디 왕이 다스린 도성의 이름이다(음의 祇樹 항, 一切經音義(慧琳) 0368a03 「波斯匿王所治城也」). 음의 舍衛國(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은 室羅伐悉底로 바로잡고 옛 뜻옮김을 聞者城·聞物國 등으로 들며, 善見律은 舍衛를 사람 이름에서 나온 국명이라 한다. 전거 sa991: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로 두 계통이 갈린다 —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전거 ⚠다른 부(DA)의 대역). (3) 祇樹給孤獨園 → 「기수급고독원」: 3분할 표는 이 5자 이상 덩어리를 보류로 두었고, ⑤ 정착어 예(기수급고독원)에 따라 정착형으로 썼다. 구성: 祇樹 = 祇陀의 숲(祇는 소리, 樹는 뜻; 慧琳 0368a03: 祇陀·祇洹·祇園은 모두 한 이름이고 太子가 자기 나무를 바쳐 略해서 祇樹라 한다), 給孤獨 = 의역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義譯,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 誓救孤獨, 古經 阿那邠邸), 園 = 동산. 정착형으로 두고 의역 부분을 풀지 않은 판단은 정도평 확인 몫이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 전거: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一時: 「한때」(사전 一時 ①: 잡아함 1345회, 뒤 佛住 1265). 佛: [구속] 부처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1
時,有一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
그때 한 천자가 용모와 낯빛이 더없이 빼어났고, 밤의 뒷시간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주 팔리 sn1.42 원문에 이 도입 서사(천인이 와서 절하고 한쪽에 앉음)가 없다(없음확인). 앵커 확인: 有 [존재]는 새 인물을 세우는 자리라 「한 천자가」로 주어화해 흡수했고, 於는 조사로 흡수, 所(佛所)는 장소 명사라 관형절 「계신 곳」으로 풀었다. 有一天: 3분할 표는 이를 음역(팔리 aññatara)으로 분류했으나 한자는 소리가 아니라 뜻(有+一+天)이다 — 저본이 이겨 뜻으로 옮겼다. 확정술어 [정형구 행]에서 같은 한자가 「어떤」(aññatara)으로 쓰이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본문은 「한」으로 두고 「어떤」의 가능성은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남긴다. 天子 → 「천자」: 天+子(하늘의 아들)의 뜻옮김이며 정착 불교어로 썼다(중국 군주의 천자를 가리키는 번안은 아니다). 容色絕妙: 容色 = 용모와 낯빛, 絕 = 비길 데 없이, 妙 = 빼어남(사전 妙 ① 앞 色絕 97). 後夜: 음독 「후야」 대신 한자의 뜻으로 「밤의 뒷시간」이라 옮겼다(참고: 사전 後夜 ⑥ 丁福保은 밤을 셋으로 나눈 마지막 때, 새벽 가까운 시각이라 하나 후대 풀이라 본문에 들이지 않음). 稽首: 慧琳 0600c02 「首至地」(머리가 땅에 이름) 인용 → 「머리를 조아리고」. 退坐一面: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1
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몸의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sn1.42에 이 구절이 없다(없음확인). 앵커 諸 [복수]: 光明이 집합적이라 한국어에서 별도 낱말 없이 흡수했다(여러/모든을 세우지 않음). 光明遍照는 정형구다(사전 遍照 ①: 잡아함 102회·102경, 앞 光明 98). 祇樹給孤獨園은 0.3과 같은 표기 「기수급고독원」으로 통일했다(해설·은 0.3에 적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1
時,彼天子說偈問佛:
그때 그 천자가 게송을 말하여 부처님께 물었다:
주 팔리 sn1.42는 질문 게송(42.1~42.3)이 바로 본문이고 화자·행위를 소개하는 말이 원문에 없다(없음확인). 偈 → 「게송」(정착어, 사전 偈 ①: 잡아함 1037회). 說偈問佛: 「게송을 말하여 … 물었다」; 이 경 안에서 啟問(b24.1, 「여쭈오니」)과 問(여기, 「물었다」)을 가른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1
「施何得大力?施何得妙色?
「무엇을 베풀어 큰 힘을 얻습니까? 무엇을 베풀어 빼어난 모습을 얻습니까?
주 팔리 42.1 「Kiṃdado balado hoti, kiṃdado hoti vaṇṇado」(무엇을 주는 이가 힘을 주는 이, 무엇을 주는 이가 빛깔을 주는 이가 되는가)와 일부 대응: 힘(bala↔大力)과 빛깔·모습(vaṇṇa↔妙色) 두 항이 같은 차례로 선다. 팔리는 -da(주는 이) 복합어로 「주는 이」를 말하고 한역은 「施…得…」(베풀어 …을 얻는다)로 풀어 얻는 쪽에서 말한다 — 인도어 복합어를 한문이 풀어 쓴 번역기법의 자리로 보고, 동사 방향(주다↔얻다)의 어휘 갈림도 함께 신고한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꼴 판단(정도평 확인 요망): 동사 방향이 갈려 같음으로 두기엔 부족하고, 힘·모습·안락·눈 항목이 모두 같은 차례로 일치해 엇갈림으로 두기엔 과해 일부로 둔다(이하 b22.1·b26.1·b27.1도 같은 까닭). 得: 「얻다」(획득). 妙色: 사전 妙色 ①(잡아함 10회·8경) — 色은 용모·모습의 뜻으로 읽어 「빼어난 모습」(팔리 뜻은 본문에 들이지 않음). 大力: 「큰 힘」. 존칭: 천자가 세존께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ㅂ니다)로 통일(⑦).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42.1
施何得安樂?施何得明目?
무엇을 베풀어 안락을 얻습니까? 무엇을 베풀어 밝은 눈을 얻습니까?
주 팔리 42.2 「Kiṃdado sukhado hoti, kiṃdado hoti cakkhudo」(무엇을 주는 이가 즐거움을 주는 이, 눈을 주는 이)와 일부 대응: sukha↔安樂, cakkhu↔明目이 같은 차례로 선다. -da 복합어 ↔ 「施…得…」의 갈림과 꼴 판단은 b21.1과 같다. 安樂: 「안락」(사전 安樂 ①: 잡아함 181회). 明目: 「밝은 눈」(明=밝다, 目=눈) — 한역은 눈의 밝음까지 싣고, 팔리 cakkhu(눈)에는 밝음 낱말이 따로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42.2
修習何等施,名曰一切施?
어떤 보시를 닦아 익히는 것을 일체의 보시라 이름합니까?
주 팔리 42.3 첫 구 「Ko ca sabbadado hoti」(그리고 누가 모든 것을 주는 이인가)와 일부 대응: sabbadada↔一切施. 팔리는 사람(ko, 누구)을 묻고 한역은 어떤 보시를 닦는 것이 一切施인가를 묻는다 — 물음의 초점이 다르다(번역기법 포함). 修習: 「닦아 익히다」. 何等: 等은 「어떤」에 흡수(사전 等 ③ 용례 sa1003/0264b09.1 「斷除何等法」). 名曰: 名(이름하다)+曰(이른다)은 「~라 이름한다」에 흡수. 一切: 「일체」(사전 一切 ①: 잡아함 807회). 보시: 명사 용법의 施는 「보시」, 동사 용법은 「베풀다」로 가렸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42.3
今啟問世尊,願為分別說。」
이제 세존께 여쭈오니, 바라건대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주 팔리 42.3 둘째 구 「taṃ me akkhāhi pucchito」(질문받은 이가 그것을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와 일부 대응: 말해 달라는 요청이 같다. 한역은 今(이제)·世尊(부름)·分別(가려서)이 더 실린다. 啟問: 啟는 삼가 아뢴다는 뜻이라 「여쭈오니」로 옮겨 b20.1의 問(「물었다」)과 가렸다. 願為分別說: 願 = 바라건대; 為는 '나를 위하여'의 수혜 표지가 목적어 없이 서 있어(為…所 피동이 아님) 「해 주십시오」에 흡수했다. 世尊: [구속] 세존.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佛(0.3·b18.1·b20.1·c03.1)과 世尊(여기·b25.1)을 섞어 쓴다 — 확정역이 각각 있어 「부처님」/「세존」을 그대로 두고 통일하지 않았다. 존댓말 통일(천자→세존).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42.3
爾時,世尊說偈答言: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말씀하시어 대답하셨다:
주 팔리 42.4 앞에 답변자를 소개하는 말이 없다(없음확인). 爾時: 「그때」(時와 한국어로는 같다). 說偈答言: 言은 인용 표지로 흡수.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앞에서는 佛(b20.1 問佛)을, 여기서는 世尊을 쓴다 — [구속] 세존 그대로, 통일하지 않았다. 붓다의 발화(b26.1~b29.1)는 청자가 누구든 평서(⑦).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4
「施食得大力,施衣得妙色,
「음식을 베풀어 큰 힘을 얻고, 옷을 베풀어 빼어난 모습을 얻으며,
주 팔리 42.4 「Annado balado hoti, vatthado hoti vaṇṇado」(음식을 주는 이는 힘을 주는 이, 옷을 주는 이는 빛깔을 주는 이)와 일부 대응: anna↔食, vattha↔衣, bala↔力, vaṇṇa↔色. 질문(b21.1)의 두 짝이 같은 차례로 답에 선다. -da ↔ 「施…得…」의 갈림과 꼴 판단은 b21.1과 같다. 施食: 사전 施食(잡아함 3회)은 명사(굶주린 귀신에게 베푸는 음식 따위)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施(동사)+食(목적어)로 읽어 「음식을 베풀어」.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42.4
施乘得安樂,施燈得明目,
탈것을 베풀어 안락을 얻고, 등불을 베풀어 밝은 눈을 얻으며,
주 팔리 42.5 「Yānado sukhado hoti, dīpado hoti cakkhudo」와 일부 대응: yāna↔乘, sukha↔安樂, dīpa↔燈, cakkhu↔明目. -da ↔ 「施…得…」의 갈림과 꼴 판단은 b21.1과 같다. 乘: 탈것(수레·배 따위를 가리키는 명사) — 사전 乘 ⑥(대승·소승의 乘)은 아함 문맥과 어긋나 버렸다. 燈: 「등불」.
니까야 대응 일부 SN 1.42:42.5
虛舘以待賓,是名一切施,
빈 객사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 이것을 일체의 보시라 이름하며,
주 팔리 42.6 「So ca sabbadado hoti, yo dadāti upassayaṃ」(그가 모든 것을 주는 이이니, 곧 처소를 베푸는 이)와 대응하되 두 절의 차례가 뒤집힌다: 팔리는 주절(sabbadado)이 먼저, 관계절(yo dadāti upassayaṃ)이 뒤이고, 한역은 내용(虛舘以待賓)이 먼저, 판정(是名一切施)이 뒤이다. 상관 구문(yo…so)이 한문에 없어 생긴 번역기법이므로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개별 어휘: upassaya(거처·처소)↔虛舘(빈 객사)이고, 以待賓(손님을 맞이하려고)은 팔리에 없다. 舘은 館의 이체자로 읽었다. 구문: 虛舘을 명사구(빈 객사)로 보아 以를 수단 조사 「-로」로 옮겼으나, 虛를 동사(객사를 비워 둠)로 읽는 길도 있어 [불확실:격·태·구문]으로 남긴다. 是名: 「이것을 ~라 이름한다」. 一切施: 팔리 sabbadada와 맞는 b23.1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42:42.6
以法而誨彼,是則施甘露。」
법으로 그를 가르치는 것, 이것이 감로를 베푸는 것이다.」
주 팔리 42.7 「Amataṃ dado ca so hoti, yo dhammamanusāsatī」(그는 불사를 주는 이이니, 곧 법을 가르치는 이)와 대응하되 b28.1과 같이 두 절의 차례가 뒤집힌다(한역은 관계절에 해당하는 以法而誨彼가 먼저). amata↔甘露(「감로」, 정착 불교어), dhammaṃ anusāsati↔以法而誨彼. 彼(가르침을 받는 이)는 팔리에 명시되지 않는다. 앵커 확인: 以 = 수단 「-로」, 而 = 접속이라 흡수, 則 = 조건이 아니라 판정(「이것이 ~이다」)이라 「-이다」에 흡수했다(곧이라는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음). 誨: 「가르치다」. 施甘露: 「감로를 베푸는 것」.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42:42.7
時,彼天子復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다시 게송을 말하였다:
주 팔리 sn1.42는 42.7로 끝나고 그 뒤에 천인이 다시 말하는 대목이 없다(없음확인; 자리는 42.7 뒤). 復: 반복이 실려 「다시」. 言은 인용 표지로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7
「久見婆羅門,逮得般涅槃,
「오랫동안 바라문을 보았고, 반열반에 이르러 얻었으며,
주 팔리 sn1.42 원문 안에 이 게송에 맞는 행이 없다(없음확인; 자리는 42.7 뒤). 婆羅門: [구속] 바라문. 이 자리는 사성의 하나가 아니라 般涅槃을 얻은 이를 부르는 말로 읽히나, 문자열은 확정역 그대로 둔다. 전거: 팔리 후보 Brahmaṇa/Brāhmaṇa, 근대 범어 후보 Brāhmaṇa로 형이 같아 계통 갈림은 없다(⚠다른 부(DA)의 대역). 般涅槃: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般과 涅槃이 모두 인도어 소리를 옮긴 소리옮김으로 읽혀,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반열반」을 한자 독음으로 썼다 — 표와 판별이 어긋나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음의 涅槃: 慧琳 0463b14 「此翻為圓寂」은 참고 인용일 뿐 확정역이 아니다). 逮得: 「이르러 얻다」(음의 慧琳 0327c07·0332c02 「逮 … 及也」, 이르다·미치다; 사전 逮得 ①: 앞 羅門 72, 뒤 般涅 73으로 婆羅門과 般涅槃 사이에 서는 정형구). 見: 확정술어 [정형구 행](dassana, 「뵙는 것」)에 든 한자이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단순한 「보다」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을 남긴다. 久見: 「오랫동안 보았고」로 옮겼으나 「오랜만에 보았다」의 뜻일 수도 있다. 구문: 婆羅門이 見의 목적어이자 逮得의 주어(겸어)로 읽었고, 逮得의 주어가 말하는 천자 자신일 가능성은 [불확실:격·태·구문]으로 남긴다. 得: 앵커 [가능·획득] 중 획득. 존댓말 통일(천자→세존): 문말은 c02.1에서 「-습니다」로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7
一切怖已過,永超世恩愛。」
일체의 두려움은 지나갔고, 영원히 세상의 은애를 뛰어넘었습니다.」
주 팔리 sn1.42 원문 안에 이 게송에 맞는 행이 없다(없음확인; 자리는 42.7 뒤). 같은 게송이 한역 안의 다른 경에도 쓰인다(사전 恩愛 ③ 용례: sa1000/0263c09.1 · sa1001/0264a16.1에 같은 행). 一切怖已過: 怖(두려움)가 주어, 已過(지나갔다)의 완료는 과거형 -았-에 흡수했다. 永: 「영원히」. 超: 「뛰어넘다」. 世恩愛: 世 = 세상, 恩愛 = 「은애」(사전 恩愛 ①: 잡아함 91회, 앞 超世 74의 정형구; 丁福保 풀이는 후대라 본문에 들이지 않음). 一切: 「일체」.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7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그 천자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sn1.42는 42.7로 끝나고 맺음 대목(기뻐하고 사라짐)이 원문에 없다(없음확인; 자리는 42.7 뒤). 앵커 확인: 所(聞佛所說) = 명사화이므로 「~하는 바」 대신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隨喜: 두 항을 접어 합치지 않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로 둘 다 살렸다(사전 歡喜 ①: 잡아함 1340회, 뒤 隨喜 335; 사전 隨喜 ② [AI 정렬] sa107/0033a17.1 ↔ PN:sn22.1/1.17 「abhinanditvā anumoditv…」 — 사람 확인 전). 稽首佛足: b18.1과 같은 표기. 即: 즉시 「곧」. 沒不現: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沒 = 사라지다, 現 = 나타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4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