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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Ā 965

SĀ 965

교차 검사교차 검사 19현대역 준비 중

대응 니까야

(九七二)

(972)

니까야 일부 AN 4.185:0.3

5. 바라문의 진리 경

5. Brāhmaṇasaccasuttaṃ

주 경 번호 표지(大正 972)만 선 자리다. 다카쿠스 교감주는 이 경을 앙굿따라 니까야 넷의 모음 185(A. IV. 185, 이름 Sacca)와 한역 병행 No. 100(206)·No. 125(26.8)로 짚는다. 팔리 쪽에는 경 이름(바라문의 진리 경)이 따로 서 있고 한문 쪽에는 번호뿐이어서 일부 대응으로 달았다. 교감주의 번호는 PTS 쪽수이므로 우리 좌표(an4.185)와 어긋날 수 있다.

AG:sa965/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니까야 대응 없음 AN 4.185:185.1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주 제공된 팔리 원문은 185.1(「한때」)로 곧장 시작하며 개경 정형구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가 없다(185.1 바로 앞 자리). 산스크리트 첫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 표지가 붙어 있어 근거로 쓰지 않았다.

AG:sa965/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

니까야 내용 다름 AN 4.185:185.1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주 王舍城은 정착어 「왕사성」으로 적는다(팔리 Rājagaha, 「왕의 집이 있는 성」의 뜻). 迦蘭陀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가란타」로 적고, 竹園은 뜻으로 옮겨 「대나무 동산」으로 적었다(전거 sa965 「王舍城迦蘭陀竹園 ↔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 인용). 같은 도시 안에서 팔리 185.1은 머문 곳을 독수리봉 산(Gijjhakūṭa)으로 적어 한문의 대나무 동산과 갈린다. 팔리는 이어 185.2에서 유행자들의 거처를 Sippinikā 강가 유행자 동산으로 적는다. 一時는 「한때」(팔리 ekaṃ samayaṃ와 같은 꼴). 산스크리트 재구는 대괄호 안이어서 근거로 쓰지 않았다.

AG:sa965/0.3 · 교차 검사

時,有眾多婆羅門出家住須摩竭陀池側,集聚一處,作如是論:「如是婆羅門真諦,如是婆羅門真諦。」

그때 많은 집을 떠난 바라문들이 수마갈타 못가에 머물며 한곳에 모여 이렇게 논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바라문의 참된 진리다. 이와 같은 것이 바라문의 참된 진리다.”

니까야 내용 다름 AN 4.185:185.2

그때 이름난 유행자들이 여럿 십삐니까 강가의 유행자 원림에 머물고 있었으니, 곧 안나바라와 와라다라와 사꿀루다이 유행자, 그리고 그 밖의 이름난 유행자들이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bhiññātā abhiññātā paribbājakā sippinikātīre paribbājakārāme paṭivasanti, seyyathidaṃ annabhāro varadharo sakuludāyī ca paribbājako aññe c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paribbājakā.

니까야 같음 AN 4.185:185.4~185.5

주 婆羅門은 확정 술어 「바라문」. 出家(한자대역 3분할: 의역)는 뜻으로 「집을 떠난」으로 옮겼고, 팔리는 이 사람들을 유행자(paribbājaka)라 부른다. 須摩竭陀는 표에 없는 이름이다. 글자 전체가 소리를 옮긴 것으로 보아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수마갈타」로 적고 池側은 「못가」로 옮겼다(근거: 같은 글자 摩竭陀가 한자대역 3분할에서 음역, 전거에서 Māgadha·Magadha로 실림. 사전 須摩 항목은 이 경 밖에서 沸沙須摩太子 등 다른 이름으로도 쓰임). 팔리 185.2는 모임의 장소를 Sippinikā 강가 유행자 동산으로 적고 이름 난 유행자 셋(Annabhāra·Varadhara·Sakuludāyī)을 든다. 한문은 못가와 무리 이름 없이 「많은 이」라고만 한다. 논제 「이와 같은 것이 바라문의 참된 진리」를 두 번 되풀이하는 점은 팔리 185.5와 같은 꼴이다. 真諦는 뜻으로 「참된 진리」(팔리 sacca). 如是는 「이와 같은 것이」로 풀었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 표지가 붙어 있어 근거로 쓰지 않았다.

AG:sa965/0251a21.1 · 교차 검사

爾時,世尊知彼眾多婆羅門出家心念,往到須摩竭陀池側。

그때 세존께서 저 많은 집을 떠난 바라문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수마갈타 못가에 가셨다.

니까야 일부 AN 4.185:185.3

그때 세존께서 저녁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십삐니까 강가의 유행자 원림으로 다가가셨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sippinikātīre paribbājakārāmo tenupasaṅkami.

니까야 일부 AN 4.185:185.6

그때 세존께서 그 유행자들에게 다가가셨다;

Atha kho bhagavā yena te paribbājakā tenupasaṅkami;

주 世尊은 확정 술어 「세존」. 한역은 앞 좌표(0.3)에서 佛, 여기서 世尊, 뒤(0251b16.2)에서 다시 世尊을 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것이다. 확정역이 있어 「부처님」「세존」으로 고정했다. 心念은 한자대역 3분할의 의역이라 「마음속 생각」으로 옮겼다(전거 心念 ↔ Manasākata는 다른 부의 대역이라 근거로 쓰지 않음). 한문은 부처님이 상대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가신다고 적는다. 팔리 185.3은 저녁에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유행자 동산으로 가신다고 적을 뿐 마음을 아는 대목이 없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라 쓰지 않았다.

AG:sa965/0251a23.1 · 교차 검사

時,眾多婆羅門出家遙見佛來,即為佛敷床座,請佛就坐。

그때 많은 집을 떠난 바라문들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을 위해 평상 자리를 깔고 부처님께 자리에 나아가 앉으시기를 청하였다.

니까야 일부 AN 4.185:185.7

다가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주 佛과 為佛은 확정 술어 「부처님」. 為는 「위하여」(위하여·피동의 앞쪽, 為…所 피동 구조가 아님). 팔리 185.7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만 적고, 멀리서 알아봄과 자리를 펴 드림, 앉기를 청함은 한문에만 있다. 床座는 「평상 자리」로 옮겼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라 쓰지 않았다.

AG:sa965/0251a24.1 · 교차 검사

佛即就坐,告諸婆羅門出家:「汝等於此須摩竭陀池側,眾共集聚,何所論說?」

부처님께서 곧 자리에 나아가 앉으시고, 집을 떠난 바라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수마갈타 못가에서 대중이 함께 모여 무엇을 논하고 말하는가?”

니까야 같음 AN 4.185:185.8~185.9

주 붓다의 발화는 평서로 맞췄다. 何所論說의 所는 관형절 표지가 아니라 의문 목적어 「무엇」이 동사 앞에 놓인 꼴이므로 「논하고 말하는가」로 풀었다. 諸는 복수 「-들」로 흡수했다. 팔리 185.9는 질문을 두 겹(어떤 이야기로 앉았는가, 중단된 모임 이야기는 무엇인가)으로 적고 한문은 하나로 적는다. 한문의 「이 수마갈타 못가에서」는 팔리에 없다. 185.7(앉으심)은 앞 좌표(0251a24.1)에 걸어 두었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라 쓰지 않았다.

AG:sa965/0251a26.1 · 교차 검사

婆羅門出家白佛言:「瞿曇!我等眾多婆羅門出家集於此坐,作如是論:『如是婆羅門真諦。

집을 떠난 바라문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고따마시여! 저희 많은 집을 떠난 바라문들이 이곳에 모여 앉아 이렇게 논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바라문의 참된 진리다.

니까야 같음 AN 4.185:185.10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저희가 함께 앉아 모여 있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습니다 —

‘‘Idha, bho gotama, amhākaṃ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ayamantarākathā udapādi –

주 瞿曇은 확정 술어 「고따마」(음역이지만 확정역이 앞선다). 호칭은 부처님께 올리는 말이므로 존댓말로 맞췄다(「-습니다」). 白佛言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로 합쳐 옮겼다. 인용 안의 논제는 앞 좌표와 같이 평서형 그대로 두었다. 이 좌표의 인용 따옴표(‘)는 다음 좌표(0251b01.1)에서 닫힌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라 쓰지 않았다.

AG:sa965/0251a28.1 · 교차 검사

如是婆羅門真諦。』」

이와 같은 것이 바라문의 참된 진리다.’”

니까야 같음 AN 4.185:185.11

‘바라문의 진리란 이런 것이다, 바라문의 진리란 이런 것이다’라고.”

‘itipi brāhmaṇasaccāni, itipi brāhmaṇasaccānī’’’ti.

주 논제 되풀이의 둘째 번이다(팔리 185.11의 두 번째 itipi). 앞 좌표에서 연 따옴표 둘을 여기서 닫는다.

AG:sa965/0251b01.1 · 교차 검사

佛告婆羅門出家:「有三種婆羅門真實,我自覺悟成等正覺而復為人演說。

부처님께서 집을 떠난 바라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바라문의 참된 진실이 있으니, 내가 스스로 깨달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고 다시 사람들을 위해 펴 말하였다.

니까야 내용 다름 AN 4.185:185.12~185.13

주 팔리 185.12는 「네 가지 바라문의 진리」(cattāri)를 들고 185.13이 「어느 네 가지인가」를 묻는다. 한문은 「세 가지」(三種)로 적고 되묻는 말이 없다. 한문의 수가 이긴다. 한역은 같은 개념을 앞에서 真諦로, 여기서 真實로 적는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大正 교감주에 따르면 明本은 實 대신 諦로 읽는다(이문 app_id 0251004). 본문은 真實을 「참된 진실」로, 真諦를 「참된 진리」로 가려 옮겼다. 有는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라 「~이 있으니」로 세웠다. 自는 「스스로」로 세웠다. 自覺悟가 為人(남을 위해)과 짝을 이루어 자기·남의 대조가 서기 때문이다(팔리 sayaṃ에 해당). 成等正覺의 等正覺은 [구속] 「바르게 깨달으신 분」으로 고정했고, 成은 「되다」로 옮겼다. 붓다가 자신에게 -으신을 쓰는 어색함이 있으나 [구속]이라 바꾸지 않았다. 復은 「다시」(앞서 말한 것에 덧붙임)로 옮겼고 而는 연결어미로 흡수했다. 演說은 「펴 말하였다」. 따옴표는 이 발화 끝(0251b13.1)에서 닫는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라 쓰지 않았다.

AG:sa965/0251b01.2 · 교차 검사

汝婆羅門出家作如是說:『不害一切眾生,是婆羅門真諦,非為虛妄。』

그대 집을 떠난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라문의 참된 진리이고 허망한 것이 아니다.’

니까야 같음 AN 4.185:185.14~185.16

주 汝婆羅門出家는 「그대 집을 떠난 바라문들」로 옮겼다. 팔리 185.14는 3인칭 단수 brāhmaṇo(「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이고 한문만 2인칭 汝가 서 있다. 한문이 이기므로 汝를 그대로 옮기고 사실만 신고한다. 不害는 「해치지 않는다」로 옮겼다. 팔리 185.15는 avajjhā(죽여서는 안 되는 이)이고 한문은 해침 일반을 말한다. 非為의 為는 「~이다」(계사)로 풀어 「허망한 것이 아니다」로 옮겼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에 brāhmaṇā evam āhu(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한다)가 있어 「말한다」 부분만 부분 대응으로 달았다. 팔리 185.16의 「참되게 말하고 거짓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非為虛妄와 같은 꼴이다.

AG:sa965/0251b03.1 · 교차 검사

彼於彼言我勝、言相似、言我卑,若於彼真諦不繫著,於一切世間作慈心色像,是名第一婆羅門真諦,我自覺悟成等正覺,為人演說。

그는 그것에 대해 ‘내가 낫다’고 말하고,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고, ‘내가 낮다’고 말하는데, 만약 그 참된 진리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세간에 자애로운 마음의 형상을 짓는다면, 이것을 첫째 바라문의 참된 진리라 이름한다. 나는 스스로 깨달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고, 사람들을 위해 펴 말하였다.

니까야 일부 AN 4.185:185.17~185.18

주 彼於彼言我勝、言相似、言我卑에는 부정의 不이 없다. 팔리 185.17은 「그것으로 ‘내가 낫다·비슷하다·못하다’고 여기지 않는다」(na…maññati)이고, 산스크리트 실판독 sadṛśā sma iti manyante hīnā sma도 같은 꼴이다. 본문은 한문대로 不 없이 옮기고 판단은 비고로 미룬다. 若이 이끄는 조건절의 범위(於彼真諦不繫著…作慈心色像까지)와 앞 言 세 마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이라 [불확실:구두·분절]로 남긴다. 若은 연결어미 「-다면」으로 옮기고 「~거든」을 쓰지 않았다. 繫著는 「얽매이다」, 色像은 「형상」, 慈心色像은 「자애로운 마음의 형상」. 作(짓다)에 맞서는 팔리 쪽은 185.18의 「동정과 연민으로 나아간다」(anuddayāya anukampāya paṭipanno)다. 팔리에는 「사문이라 여기지 않고 바라문이라 여기지 않는다」(na samaṇoti…na brāhmaṇoti)도 더 있다. 「이것을 첫째 …라 이름한다」는 팔리에 번호 매김이 없다(팔리는 네 가지). 慈心은 「자애로운 마음」. 마지막 구절의 自는 앞(0251b01.2)과 같이 為人과의 대조로 「스스로」를 세웠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에 idaṃ prathamaṃ brāhmaṇasatyaṃ yan mayā svaya가 있어 「첫째」와 「내가 스스로」 부분을 부분 대응으로 달았다.

AG:sa965/0251b04.1 · 교차 검사

「復次,婆羅門作如是說:『所有集法皆是滅法,此是真諦,非為虛妄。』

다음으로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어나는 법은 다 소멸하는 법이다. 이것이 참된 진리이고 허망한 것이 아니다.’

니까야 내용 다름 AN 4.185:185.19~185.21

주 復次는 연결 어구 「다음으로」(팔리 puna caparaṃ). 所有는 「모든」을 뜻하는 수량사이지 「~하는 바」의 명사화가 아니다. 集法은 「일어나는 법」으로, 滅法은 「소멸하는 법」으로 옮겼다. 정형구 행에서 集은 samudaya(일어남)와 짝을 이루나 한자 자체의 낱말 확정역이 아직 없으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으로 남긴다(사전 滅法 항목은 이 경 밖의 용례만 보여 줌). 팔리 185.20은 「모든 욕망은 덧없고 괴롭고 변하는 성질」이라는 다른 명제이고, 한문의 「모든 일어나는 법은 소멸하는 법」은 팔리에 나오지 않는다. 산스크리트의 재구 yat kiṃcit samudayadharmaṃ sarvaṃ nirodhadharmakam은 대괄호 안이므로 근거로 쓰지 않았다. 팔리 185.20과 한문 둘째 진리가 다른 명제이므로 꼴은 엇갈림으로 달았다.

AG:sa965/0251b08.1 · 교차 검사

乃至於彼真諦不計著,於一切世間觀察生滅,是名第二婆羅門真諦。

내지 그 참된 진리를 헤아려 집착하지 않고, 모든 세간에서 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니, 이것을 둘째 바라문의 참된 진리라 이름한다.

니까야 일부 AN 4.185:185.22

그는 그것으로 ‘나는 사문이다’라고 여기지 않고, ‘나는 바라문이다’라고 여기지 않고, ‘나는 더 낫다’라고 여기지 않고, ‘나는 같다’라고 여기지 않고, ‘나는 못하다’라고 여기지 않는다.

So tena na samaṇoti maññati, na brāhmaṇoti maññati, na seyyohamasmīti maññati, na sadisohamasmīti maññati, na hīnohamasmīti maññati.

니까야 내용 다름 AN 4.185:185.23

그리고 거기에서 진실인 바로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오직 감각적 욕망들을 싫어하여 떠나고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는 길을 닦는다.

Api ca yadeva tattha saccaṃ tadabhiññāya kām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주 [생략표지]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다. 「내지」로 접은 대로 두고 펴지 않았다. 팔리는 185.22에서 같은 정형구(사문이라 여기지 않고…)를 되풀이해 적는다. 不計著는 앞 진리의 不繫著와 한자가 다르다(計 대 繫). 한역이 같은 자리에 다른 한자를 쓰는 것이므로 「얽매이지 않고」와 「헤아려 집착하지 않고」로 가려 옮겼다. 生滅은 「나고 사라짐」, 觀察은 「관찰」. 팔리 185.23은 욕망에 대해 싫어함·사라짐·소멸로 나아간다고 적어 한문의 「나고 사라짐을 관찰」과 다르다. 산스크리트 단락은 판정 근거 불가라 쓰지 않았다.

AG:sa965/0251b09.1 · 교차 검사

「復次,婆羅門作如是說:『無我處所及事都無所有,無我處所及事都無所有,此則真諦,非為虛妄。』

다음으로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 ‘무아의 곳과 일은 도무지 있는 것이 없다. 무아의 곳과 일은 도무지 있는 것이 없다. 이것이 참된 진리이고 허망한 것이 아니다.’

니까야 일부 AN 4.185:185.26~185.28

주 無我處所及事都無所有는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이다. (가) 無我를 낱말로 읽어 「무아의 곳과 일은 도무지 있는 것이 없다」(본문), (나) 「나의 곳과 일이 없고 도무지 가진 것이 없다」로 읽는 길이다. 뒤 좌표(0251b13.1)의 一切世間無我像類에서 無我가 한 덩어리로 쓰이므로 (가)를 택했다. 확정은 정도평 몫으로 남긴다. 팔리 185.27은 「나는 어디서도 누구의 어떤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어디에도 어떤 것도 없다」이고 산스크리트 실판독 na mama kvacana kaścana kiñcanam asti nāsy도 이와 같은 꼴이다. 한문이 같은 문장을 되풀이하는 점은 팔리에 없다. 所有는 「있는 것」으로 풀어 「바」를 쓰지 않았다. 則은 「-이고」에 흡수했다. 한문은 이것을 셋째 진리로 놓고 팔리는 넷째로 놓는다(팔리 185.24~185.25는 「모든 존재는 덧없고…」를 …pe…로 접어 둔 자리이며 한문에는 이에 맞는 단락이 없다). 한문에서 접힌 안쪽의 대응은 따지지 않았다.

AG:sa965/0251b11.1 · 교차 검사

如前說,乃至於彼無所繫著,一切世間無我像類,是名第三婆羅門真諦,我自覺悟成等正覺而為人說。」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내지 그에 대해 얽매이는 것이 없고, 모든 세간은 무아의 형상과 부류이니, 이것을 셋째 바라문의 참된 진리라 이름한다. 나는 스스로 깨달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어 사람들을 위해 말하였다.”

니까야 일부 AN 4.185:185.29~185.30

니까야 내용 다름 AN 4.185:185.31

유행자들이여, 이것이 내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아 실현하고서 알린 네 가지 바라문의 진리다.”

Imāni kho, paribbājakā, cattāri brāhmaṇasaccāni may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itānī’’ti.

주 [생략표지] 如前說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다. 접힌 대로 두었다. 於彼無所繫著는 「그에 대해 얽매이는 것이 없고」. 一切世間無我像類에는 동사가 없다(앞 진리의 作慈心色像·觀察生滅과 달리 作·觀察이 비어 있고 於도 없다). 본문은 한문 그대로 「모든 세간은 무아의 형상과 부류」로 옮기고 [불확실:격·태·구문]으로 남긴다. 像類는 「형상과 부류」. 산스크리트 실판독 bhiniviśya sarvaloke amamāya(「모든 세간에서 내 것이라 여기지 않고」)가 있어 이 꼴과 가깝다. 팔리 185.29~185.30은 같은 정형구를 되풀이하고 「무소유의 길로 나아간다」(ākiñcaññaṃ paṭipadaṃ)로 맺는다. 팔리 185.31은 「이 네 가지」를 맺음으로 삼는다(한문은 셋째). 마지막 自·而·為人說은 앞(0251b01.2)과 같이 처리했다. 인용 따옴표는 이 좌표 끝에서 닫는다.

AG:sa965/0251b13.1 · 교차 검사

爾時,眾多婆羅門出家默然住。

그때 많은 집을 떠난 바라문들이 잠자코 머물렀다.

니까야 대응 없음 AN 4.185:185.32

다섯째.

Pañcamaṃ.

주 제공된 팔리 원문은 185.31(맺음 말씀) 다음에 곧 경 끝 표지(185.32)로 끝나며 바라문들이 잠자코 있는 대목이 없다(185.31과 185.32 사이 자리). 산스크리트는 이 자리를 덮는 단락이 제공되지 않았다. 默然住의 默然은 「잠자코」, 住는 「머물렀다」.

AG:sa965/0251b16.1 · 교차 검사

時,世尊作是念:「今映彼愚癡,殺彼惡者,今此眾中無一能自思量欲造因緣,於沙門瞿曇法中修行梵行。」

그때 세존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지금 저 어리석음을 비추고 저 악한 자를 죽이는데, 지금 이 대중 가운데 한 사람도 헤아려 인연을 짓고자 하여 사문 고따마의 법 가운데서 청정한 삶을 닦아 행할 수 있는 이가 없다.”

니까야 대응 없음 AN 4.185:185.32

다섯째.

Pañcamaṃ.

주 이 좌표는 팔리 쪽에 대응이 없다(185.31과 185.32 사이 자리). 世尊·瞿曇·沙門은 확정 술어(세존·고따마) 및 정착어 「사문」. 今映彼愚癡,殺彼惡者는 뜻이 서지 않는 자리다. 映은 「비추다」로, 殺은 「죽이다」로 옮겼으나 殺에는 「덜다·줄이다」의 뜻도 있고 두 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정해지지 않는다(음의 愚癡·殺 항목은 글자 풀이뿐이라 이 자리의 뜻을 정해 주지 않음). 大正 교감주에 따르면 元·明本은 今 대신 令으로 읽는다(이문 app_id 0251005). 令이면 사역 「~하게 하여」로 읽혀 앞 두 구의 구문이 달라진다. 본문은 大正 본문 今을 따랐다. 能自思量의 自는 자기·남의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고 흡수했다. 能은 「-ㄹ 수 있다」. 修行梵行의 梵行은 「청정한 삶」으로 옮겼다(정형구 행의 brahmacariya와 같은 낱말이나 한자 자체의 낱말 확정역은 아직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으로 남김). 因緣은 「인연」, 沙門瞿曇法中은 「사문 고따마의 법 가운데서」. 世尊의 한자는 앞(0251a23.1)에서 신고한 것과 같다.

AG:sa965/0251b16.2 · 교차 검사

如是知已,從坐起而去。

이와 같이 알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니까야 대응 없음 AN 4.185:185.32

다섯째.

Pañcamaṃ.

주 팔리 원문에는 이 대목(알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남)이 없다(185.31과 185.32 사이 자리). 주어는 앞 좌표와 같은 세존이므로 존칭 「-셨다」를 썼다. 知已의 已는 완료 「-고 나서」, 而는 연결어미에 흡수했다.

AG:sa965/0251b19.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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