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962

SĀ 962

교차 검사교차 검사 60현대역 준비 중

(九六九)

(구백육십구)

주 한문 제목 자리는 경 번호뿐이다. 팔리 쪽은 경 이름(Dīghanakha)이 선다. 교감주(편자)가 「M. 74. Dīghanakha.」를 달아 둔 것은 편자의 대조 표지이며 저본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편에는 제목 단락이 없어 미결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0.3

AG:sa962/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이 아함 전권 1332회). `如`는 「이와 같이」 부사어로 서며 따로 가정 어미를 세우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편 첫 단락은 `bhagavāṃ rājagṛhe`로 시작하여 이 정형구 자리가 편 안에 없다(편자 보충으로도 채워지지 않음) — 없음 확인이 아니라 미결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1.1

AG:sa962/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정착어 `王舍城`=왕사성 — 정착형 그대로 썼다. 한역자가 뜻으로 옮긴 이름이다(「왕의 집」 성; 팔리 Rājagaha). `迦蘭陀`는 음역(가란타, 팔리 Kalandaka·전거표 `Kalandakanivāpa`), `竹園`은 뜻으로 옮긴 것(대나무 동산). 한 경 안에서 이 표기로 통일한다. 거처가 갈린다: 한역은 죽원(대나무 동산), 팔리 mn74는 기사굴산 돼지굴(gijjhakūṭe pabbate sūkarakhatāyaṃ). 팔리의 이 갈림을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bhagavāṃ rājagṛhe vihara`까지이고 `veṇuvane kalandakanivāpe`는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사전 一時 ①(발화 첫머리 4/1345)은 개경 위치 확인용. 유형 은 가란타 대나무 동산을 정착형이 아닌 음역+의역 합성으로 처리한 것에 단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2

AG:sa962/0.3 · 교차 검사

時,有長爪外道出家來詣佛所,與世尊面相問訊慰勞已,退坐一面,白佛言:「瞿曇!我一切見不忍。」

그때 긴손톱 외도 출가자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세존과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 문안하고 위로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고따마여! 저는 모든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불확실]

불확실 (1) `長爪`=긴손톱은 의역(팔리 Dīghanakha, 대역주 cb:tt). `外道出家`는 팔리 paribbājaka(편력 수행자)의 대역 — `外道`는 정착형으로 두고 `出家`는 「출가자」로 옮겼다. (2) 같은 문장에서 `世尊`(세존)과 `佛`(부처님)이 번갈아 나온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확정역(세존·부처님)을 각각 고정하고 통일하지 않는다. (3) `瞿曇`=고따마 `[구속]`(팔리 Gotama, 전거표). (4) `問訊` 「문안」(慧琳 0428c12 「問也」), `慰勞` 「위로」, `面相`은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로 풀었다. 팔리는 sammodi+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인사말을 주고받음)로 서고 한역은 `問訊慰勞`로 접힌다. (5) `忍`: 「참다」와 「받아들이다」의 두 갈래다. 이 자리는 팔리 khamati(마음에 들다·받아들여지다)에 걸려 「받아들이다」로 세웠다 — 사전 忍 ①의 쓰임(忍耐, 용례 「苦患寧可忍不」)과 갈린다. 저본만으로는 둘 다 서므로 . 『一切見不忍』=「모든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문: `見`은 【宋】【元】【明】【聖】에 없다(【大】에 있음) — 본문은 【大】을 따랐다. (6) `白佛言`의 화자는 청자(부처님)가 윗사람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 산스크리트 #2의 `bho gautama na kṣamati`만이 실판독 근거이고 방문·인사 대목(#1)은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3~201.8

AG:sa962/0249b01.1 · 교차 검사

佛告火種:「汝言一切見不忍者,此見亦不忍耶?」

부처님께서 불의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모든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니, 이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가?」[불확실]

불확실 `火種`(9회)은 팔리 Aggivessana(불[Agni]의 후예라는 성씨)를 한역자가 뜻으로 옮긴 것이다 — 3분할 표의 유형 「의역」. `種`을 씨·종족 어느 쪽으로 세울지(種姓의 種)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불의 종족」으로 옮기고 을 단다. 팔리·산스크리트의 음형(Aggivessana·Agnivaiśyāyana)은 비고에만 둔다. 산스크리트 `agnivaiśyāyana`는 이 자리에서 편자 보충이다. `亦`는 조사 「도」로 흡수했다. `耶`는 의문 어미(-는가)가 진다. 부처님의 발화는 청자와 무관하게 평서.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1.9~201.10

AG:sa962/0249b03.1 · 교차 검사

長爪外道言:「向言一切見不忍者,此見亦不忍。」

긴손톱 외도가 말하였다. 「앞서 ‘모든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그것, 이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주 같은 자리에서 내용이 엇갈린다. 팔리 201.11은 「이 견해가 내게 받아들여진다면 그것도 (앞의 것과) 같을 것이다」(esā ce me … diṭṭhi khameyya, taṃpassa tādisameva)는 가정·반어이고, 한역은 「이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산스크리트 #2에서 이에 걸리는 글자는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쓸 수 없다. 이 갈림을 어느 한쪽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向言`=「앞서 말씀드린」.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74:201.11

AG:sa962/0249b04.1 · 교차 검사

佛告火種:「如是知、如是見,此見則已斷、已捨、已離,餘見更不相續、不起、不生。

부처님께서 불의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이 견해는 이미 끊어지고 이미 버려지고 이미 떠나며, 다른 견해는 더는 이어지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생기지 않는다.」

주 팔리에서 이 내용(tañceva diṭṭhiṃ pajahanti aññañca diṭṭhiṃ na upādiyanti)은 201.17에 서며 ‘많은 이가 같은 견해를 말한다’(201.12~16) 뒤에 온다. 한역은 그 앞에서 곧바로 「이렇게 알고 보면 이 견해는 끊어진다」를 세운다 — 자리가 다르다. 한역에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의 조건절이 있고 팔리 201.17에는 없다. `則`은 「-면」 조건절에 흡수했다. `斷·捨·離`와 `不相續·不起·不生`은 각각 셋이다. 산스크리트 #3의 실판독은 `api nu te`와 `tisandhir anupādānam aprā`에 그치며 나머지는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사전 相續 ①(23회)은 이 경 용례만 확인용.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17

AG:sa962/0249b05.1 · 교차 검사

火種!多人與汝所見同,多人作如是見、如是說,汝亦與彼相似,火種!若諸沙門、婆羅門捨斯等見,餘見不起,是等沙門、婆羅門世間亦少少耳。

불의 종족이여! 많은 사람이 그대와 견해가 같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견해를 갖고 이렇게 말하니, 그대도 그들과 비슷하다, 불의 종족이여! 여러 사문과 바라문이 이러한 견해들을 버려 다른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이러한 사문과 바라문은 세상에서도 아주 적을 뿐이다.

주 팔리는 「이보다 더 많은 이가 ‘그것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 이보다 더 적은 이가 …」의 비교급(bahū hi bahutarā · tanū hi tanutarā)이고, 한역은 `多人`(많은 사람)과 `少少耳`(아주 적을 뿐)의 단순 서술이다. 한역의 `汝亦與彼相似`는 산스크리트 실판독 `tvam api syāt tādṛśa eva`에 걸린다(팔리 taṃpassa tādisameva와 같은 짝). `若`은 「-면」, `所見`은 「견해」로 풀었다. `諸`은 「여러」로 한 번만 세웠다. `沙門`·`婆羅門`은 음역(사문·바라문 `[구속]`: 婆羅門). `世間`=「세상」(3분할 의역).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12~201.16

AG:sa962/0249b07.1 · 교차 검사

「火種!依三種見。

「불의 종족이여! 세 가지 견해에 의지한다.[불확실]

불확실 주어가 없는 문장이다(`依三種見`). 「(사람들이) 세 가지 견해에 의지한다」로 읽을 수도, 「세 가지 견해의 의지처가 있다」로 읽을 수도 있어 저본 문자만으로는 서지 않는다 — 「의지한다」로 옮기고 을 단다. 팔리 201.18 이하는 이런 표제 없이 곧바로 세 부류 사문·바라문을 든다(위 대응 좌표는 그 표제가 놓일 자리). 산스크리트 #5의 `dṛṣṭisaṃniśrayāḥ`는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이문: `火`는 【元】에 `少`로 되어 있다(【大】 따름).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1.18

AG:sa962/0249b10.1 · 교차 검사

何等為三?

무엇이 셋인가?

주 팔리에는 이 물음이 없다. 산스크리트 #5의 `katame trayaḥ`는 편자 보충이다. `何等為三`의 `為`는 피동이 아니라 계사(「-인가」)다. 사전 等為 ①(581회)은 의문 정형구 확인용.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1.18

AG:sa962/0249b11.1 · 교차 검사

有一如是見、如是說:『我一切忍。』

한 사람은 이러한 견해를 갖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주 `有一`은 존재 서술이지만 「~이 있어」를 쓰지 않고 「한 사람은」으로 주어화했다. 팔리 santi … eke(어떤 이들이 있다)에 견주면 한역 `一`은 한 사람, 팔리는 복수 eke다 — 수의 차이를 신고만 한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r bhavati. evaṃvādī.`뿐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1.18~201.19

AG:sa962/0249b11.2 · 교차 검사

復次,有一如是見、如是說:『我一切不忍。』

다음으로 또 한 사람은 이러한 견해를 갖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 `復次`는 「다음으로 또」. 산스크리트에서 이 부분은 편자 보충이라 미결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1.20~201.21

AG:sa962/0249b12.1 · 교차 검사

復次,有一如是見、如是說:『我於一忍、一不忍』。

다음으로 또 한 사람은 이러한 견해를 갖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나는 받아들이고, 하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一忍、一不忍`의 `一`은 팔리 ekaccaṃ(어떤 것)에 걸리며 「하나」로 옮겼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ekatyaṃ me kṣamati. ekaty`가 이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1.22~201.23

AG:sa962/0249b13.1 · 교차 검사

火種!若言一切忍者,此見與貪俱生,非不貪;與恚俱生,非不恚,與癡俱生,非不癡;繫,不離繫,煩惱,非清淨,樂取,染著生。

불의 종족이여!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면, 이 견해는 탐욕과 함께 생기고 탐욕 없음이 아니며, 성냄과 함께 생기고 성냄 없음이 아니며, 어리석음과 함께 생기고 어리석음 없음이 아니다. 묶임이고 묶임을 떠남이 아니며, 번뇌이고 청정이 아니며, 즐겨 취하고, 물들어 집착함이 생긴다.

주 팔리는 sārāga·saññoga·abhinandana·ajjhosāna·upādāna(탐착·결박·즐김·집착·취함)의 다섯이고, 한역은 `貪·恚·癡` 세 독에 `繫·煩惱·非清淨·樂取·染著`을 잇는다 — 열거의 짜임이 다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ṣāya nāsaṃdveṣāya saṃmohāya … adhyavasānāya saṃvartate`가 한역의 恚·癡와 짝이다(결박 saṃyoga·번뇌 saṃkleśa 등은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음). `若言…者`는 「-고 말하면」, `者`는 흡수. `離繫`: 음의가 `不繫`를 외도의 이름 `尼𠃵`·`泥揵連`(니건자류)과 잇는 풀이를 달았으나(慧琳 0764c08) 이 자리는 `繫`(묶임)에서 떠남(離)의 뜻이다 — 동형이의라 쓰지 않았고 사전 離繫 ①(6회, 이 경에만)과 같다. `煩惱`는 「번뇌」(정착), `樂取`는 「즐겨 취하고」, `染著`은 「물들어 집착함」(사전 染著 ①).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24~201.25

AG:sa962/0249b14.1 · 교차 검사

若如是見:『我一切不忍。』

이러한 견해,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를 가지면,

주 `若如是見`의 `如是`는 「이러한」 지시로 풀었다. 결과절이 다음 좌표(b17.2)에 선다. 팔리 201.26은 ‘그런 견해를 말하는 사문·바라문’이라는 주어를 들고, 한역은 견해 자체를 든다. 산스크리트 #7에서 이에 걸리는 글자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26

AG:sa962/0249b17.1 · 교차 검사

此見非貪俱、非恚俱、非癡俱,清淨非煩惱,離繫非繫,不樂不取,不著生。

이 견해는 탐욕과 함께하지 않고, 성냄과 함께하지 않고, 어리석음과 함께하지 않는다. 청정하고 번뇌가 아니며, 묶임에서 떠나 묶이지 않고, 즐기지 않고 취하지 않으며, 집착이 생기지 않는다.

주 앞 좌표(b14.1)의 짝으로, 열거 구조가 대칭이다(貪俱 ↔ 非貪俱). 팔리는 asārāga·asaññoga·anabhinandana·anajjhosāna·anupādāna 다섯이다. 한역 `非貪俱`는 「탐욕과 함께하지 않고」로 풀었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vartate na saṃrāgāya. asaṃdveṣāya … anabhinandanāyānupād`가 걸린다. `離繫非繫`는 「묶임에서 떠나 묶이지 않고」.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1.27

AG:sa962/0249b17.2 · 교차 검사

火種!若如是見:『我一忍、一不忍。』

불의 종족이여! 이러한 견해, ‘나는 하나는 받아들이고, 하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를 가지면,

주 팔리 202.1~202.2(디가나카가 「고따마 존자께서 제 견해를 칭찬하십니다」라고 말하는 대목)는 한역에 짝이 없다 — 한역에는 이 칭찬 문장이 없다. 결과절은 다음 좌표(b20.1). 산스크리트 #8의 해당 글자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2.3~202.4

AG:sa962/0249b19.1 · 교차 검사

彼若忍者,則有貪,乃至染著生,若如是見不忍者,則離貪,乃至不染著生。

그가 받아들이면 탐욕이 있고, 내지 물들어 집착함이 생기며, 이와 같은 견해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탐욕을 떠나고, 내지 물들어 집착하지 않음이 생긴다.

주 `乃至`(2회)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펴지 않았다. 팔리 202.5~202.6은 sārāga부터 upādāna까지 다섯을 모두 풀어 적는다. 산스크리트 #8도 `pūrvavad yāvad`로 접으나 그 부분은 편자 보충이라 판정에 쓰지 않았다(실판독 `mati. ekatyaṃ me na kṣamati yat t`, `sya na kṣamati tad asaṃrāgāya saṃ`). `有貪`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탐욕이 있고」로 두었다. 이문: `若`은 【宋】【元】【明】【聖】에 `苦`로 되어 있다(【大】 따름).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2.5~202.6

AG:sa962/0249b20.1 · 교차 검사

「彼多聞聖弟子所學言:『我若作如是見、如是說:「我一切忍。」

「저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배운 것을 말한다. 『내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여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면,[불확실]

불확실 `多聞聖弟子`는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사전 多聞 ①·聖 ①). 팔리는 `viññū puriso`(지혜로운 사람)로 갈린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11에서 `tra śrutavān āryaśrāvaka itaḥ`로 한역과 같은 짝이다(#9의 같은 구절은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음) — 한역=산스크리트≠팔리의 한 자리로 신고만 한다. 한역에는 팔리의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202.11)가 없다. `所學言`: `所`를 「배운 것」으로 풀고 `言`을 서술어로 읽었다. `學言`이 한 묶음(배워 말한다)일 수도 있어 . 산스크리트 실판독 `ahaṃ ced`가 `我若`에, `pratisaṃśikṣati`가 `學`에 걸린다. `作如是見`의 `作`은 「가지고」로 풀었다. 이문 없음. 따옴표의 겹은 한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2.7~202.10

AG:sa962/0249b21.1 · 교차 검사

則為二者所責、所詰。

두 쪽에게 꾸짖음을 당하고 따짐을 당한다.

주 `為二者所責、所詰`은 `為…所` 피동이다. `則`은 앞 조건절(b21.1)의 「-면」에 흡수했다. `責`은 꾸짖음, `詰`은 따짐(힐난). 팔리 202.12 `dvīhi me assa viggaho`는 「둘과의 다툼(viggaha)」으로, 한역 `責·詰`과 같은 자리에서 낱말이 갈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2.12

AG:sa962/0249b23.1 · 교차 검사

何等二種?

무엇이 두 가지인가?

주 팔리에는 이 물음이 없고 바로 `yo cāy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로 둘을 든다. `二種`은 「두 가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2.13

AG:sa962/0249b23.2 · 교차 검사

謂一切不忍,及一忍、一不忍,則為此等所責。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 그리고 하나는 받아들이고 하나는 받아들이지 않음을 말하니, 이들에게 꾸짖음을 당한다.

주 두 쪽의 내용은 팔리와 같다(sabbaṃ me nakkhamati / ekaccaṃ me khamati, ekaccaṃ me nakkhamati). 한역은 ‘그런 견해·말을 하는 사문·바라문’이라는 사람 주어를 두지 않고 견해 자체를 든다. 한역의 결과는 `責`(꾸짖음) 하나, 팔리는 viggaha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me na kṣamati. yaś caivaṃdṛṣṭir evaṃ`이 걸린다. `謂`는 「-를 말하니」.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2.13~202.16

AG:sa962/0249b23.3 · 교차 검사

責故詰,詰故害,彼見責、見詰、見害故,則捨所見,餘見則不復生。

꾸짖으므로 따지고, 따지므로 해친다. 그가 꾸짖음을 보고 따짐을 보고 해침을 보기 때문에 보는 것을 버리고, 다른 견해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

주 한역의 연쇄는 셋(責→詰→害)이고, 팔리는 넷(viggaha→vivāda→vighāta→vihesā)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grahaṃ ca vivādaṃ ca vhiṃsā`도 셋이다 — 세 증언의 낱말 수가 한역·산스크리트=3, 팔리=4로 갈린다는 사실만 적는다(실판독이 짧아 단정하지 않는다). `所見`은 관형절로 풀어 「보는 것」으로 옮겼다. `見責`의 `見`은 「본다」(팔리 sampassamāno에 걸림). `則`은 흡수. `餘見則不復生`의 `復`은 「다시」.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2.17~202.18

AG:sa962/0249b24.1 · 교차 검사

如是斷見、捨見、離見,餘見不復相續,不起不生。』

이와 같이 견해를 끊고, 견해를 버리고, 견해를 떠나니, 다른 견해는 다시 이어지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생기지 않는다.』

주 팔리 202.19는 pahāna·paṭinissagga 둘이고 한역은 `斷見·捨見·離見` 셋이며, 한역의 `餘見不復相續…`은 팔리 202.18의 aññañca diṭṭhiṃ na upādiyati에 걸리는 내용이 이 자리로 모였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pratiniḥsargo vyantibhāva a`가 `捨·離`와 짝이다(prahāṇa·apratisandhi 등은 편자 보충). `斷見`은 3분할 표에 「斷見=Ucchedavādā(단견)」로 올라 있으나 이 자리는 동사+목적어(「견해를 끊다」)이지 단견(斷見論)이라는 낱말이 아니다 — 표의 오적중으로 보아 쓰지 않았다. 닫는 따옴표 `』`는 b21.1의 `『`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2.19

AG:sa962/0249b26.1 · 교차 검사

「彼多聞聖弟子作如是學:『我若如是見、如是說:「我一切不忍。」

「저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배운다. 『내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여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면,

주 b21.1과 같은 틀이다(앞자리와 같이 팔리 viññū puriso ↔ 한역 多聞聖弟子, 팔리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가 한역에 없음). `作如是學`은 「이와 같이 배운다」(팔리 iti paṭisañcikkhati). 산스크리트 #10의 실판독은 `dṛṣṭiḥ syām evaṃvādī sarvaṃ me na`로, 인용문 안쪽만 걸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3.1~203.5

AG:sa962/0249b27.1 · 교차 검사

者,則有二種二詰。

라고 하면, 두 종류와 두 따짐이 있다.

주 이 좌표는 `者`로 시작한다 — 앞 좌표(b27.1)의 인용 `「我一切不忍。」`을 받는 `者`(「-라고 하면」)이며, 따옴표는 한문에 없는 것을 더하지 않았다. `則`은 「-면」에 흡수.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를 두었다. `二種二詰`은 「두 종류와 두 따짐」으로 옮겼다. 이문: `種`은 【元】【明】에 `責`으로 되어 있어 「두 꾸짖음과 두 따짐」이 되는데, 앞뒤의 `二責二詰`(c01.1·c03.1)과 짝을 이룬다. 저본(【大】)을 따르되 이문을 신고한다. 팔리 203.6 `dvīhi me assa viggaho`(둘과의 다툼)와 같은 자리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3.6

AG:sa962/0249b29.1 · 교차 검사

何等為二?

무엇이 둘인가?

주 팔리에는 이 물음이 없다. `何等為二`의 `為`는 계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3.7

AG:sa962/0249b29.2 · 교차 검사

謂我一切忍,及一忍、一不忍。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쪽, 그리고 하나는 받아들이고 하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쪽을 말한다.

주 팔리 203.7~203.10의 두 쪽(sabbaṃ me khamati / ekaccaṃ me khamati ekaccaṃ me nakkhamati)과 같다. 한역은 `謂我一切忍`으로 인칭 `我`를 넣었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vaṃvādī. ekatyaṃ me kṣamati. ekatyaṃ`이 두 번째 쪽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3.7~203.10

AG:sa962/0249b29.3 · 교차 검사

如是二責二詰,乃至不相續,不起不生。』

이와 같이 두 꾸짖음과 두 따짐은, 내지 이어지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생기지 않는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펴지 않았다. 팔리 203.11~203.13은 viggaha→vivāda→vighāta→vihesā 연쇄를 모두 적는다(접힌 구간을 읽어 `partial`). 산스크리트 #10은 `pūrvavad yāvad`로 접으나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았다. 닫는 `』`는 b27.1의 `『`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3.11~203.13

AG:sa962/0249c01.1 · 교차 검사

「彼多聞聖弟子作如是學:『我若作如是見、如是說:「一忍、一不忍。」

「저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배운다. 『내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여 「하나는 받아들이고, 하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면,

주 앞 둘과 같은 틀이다. 산스크리트 #11의 실판독 `tra śrutavān āryaśrāvaka itaḥ`가 `多聞聖弟子`와 짝이다(팔리 viññū puriso와 갈림). 이 좌표의 인용문 `「一忍、一不忍。」`에는 인칭 `我`가 없다(앞 두 인용에는 있다) — 한문대로 두었다. 이문: `一`은 【聖】에 없다(【大】 따름).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4.1~204.5

AG:sa962/0249c02.1 · 교차 검사

則有二責二詰。

두 꾸짖음과 두 따짐이 있다.

주 `則有二責二詰`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를 두었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rdhaṃ syād vigrahaḥ syād vivādo`가 팔리 viggaha·vivāda와 같은 짝이다 — 이 자리는 `責·詰`과 갈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4.6~204.10

AG:sa962/0249c03.1 · 교차 검사

何等二?

무엇이 둘인가?

주 팔리에는 이 물음이 없다. 이문: `等`은 【宋】【元】【明】에 `等為`로 되어 있다 — 저본(【大】)은 `何等二`이고, 앞 두 문장(b11.1·b29.2)은 `何等為`로 되어 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4.7

AG:sa962/0249c04.1 · 교차 검사

謂如是見、如是說:「我一切忍,及一切不忍。」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여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는 쪽, 그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쪽을 말한다.

주 팔리 204.7~204.10(sabbaṃ me khamati / sabbaṃ me nakkhamati)과 같은 두 쪽. 한역 `我一切忍,及一切不忍`은 뒤쪽 `一切不忍`에 인칭이 없다. 산스크리트에서 이에 걸리는 글자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4.7~204.10

AG:sa962/0249c04.2 · 교차 검사

如是二責,乃至不相續,不起不生。』

이와 같이 두 꾸짖음은, 내지 이어지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생기지 않는다.』

주 `乃至`는 접힌 자리 — 펴지 않았다. 앞 좌표들은 `二責二詰`인데 이 좌표는 `二責`만 있다 — 저본대로 둔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vad yāvad apratisandhir anupādā`가 `乃至不相續,不起`와 짝이다(`yāvad`=乃至). 팔리 204.11~204.13은 연쇄를 모두 적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4.11~204.13

AG:sa962/0249c05.1 · 교차 검사

「復次,火種!如是身色麁四大,聖弟子當觀無常、觀生滅、觀離欲、觀滅盡、觀捨。

「다음으로 또, 불의 종족이여! 이와 같은 몸, 물질인 거친 사대를 성스러운 제자는 덧없음을 살피고, 생기고 사라짐을 살피고, 욕망을 떠남을 살피고, 사라져 다함을 살피고, 버림을 살펴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205.1은 몸의 열한 가지 봄(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을 들고, 한역은 `觀無常·觀生滅·觀離欲·觀滅盡·觀捨` 다섯을 든다 — 열거가 다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nupaśyinā vihartavyam vyayā`에 그치지만 연쇄의 짜임(anityānupaśyin·vyayānupaśyin·virāgānupaśyin·nirodhānupaśyin·pratiniḥsargānupaśyin)은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았다. `當觀`: `當`은 당위로 「-야 한다」 어미가 진다. `觀`은 「살피다」, 뒤의 `觀察`은 「관찰하다」로 갈라 썼다. `四大`는 3분할 표가 「음역」으로 올렸으나 `大`는 한자의 뜻(네 큰 요소)이므로 정착어 「사대」로 쓰고 표의 분류는 따르지 않았다(팔리 cātumahābhūtika). `麁`는 「거친」. `身色`은 몸 곧 물질(색)로 읽었다. `復次`는 「다음으로 또」. 사전 四大 ①(41회)은 용례 확인용.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5.1

AG:sa962/0249c06.1 · 교차 검사

若聖弟子觀無常、觀滅、觀離欲、觀滅盡、觀捨住者,於彼身、身欲、身念、身愛、身染、身著,永滅不住。

성스러운 제자가 덧없음을 살피고, 사라짐을 살피고, 욕망을 떠남을 살피고, 사라져 다함을 살피고, 버림을 살피며 머물면, 그 몸에서 몸의 욕망, 몸의 생각, 몸의 애착, 몸의 물듦, 몸의 집착이 영원히 사라져 머물지 않는다.

주 앞 좌표는 `觀生滅`, 이 좌표는 `觀滅`로 다섯 중 둘째가 갈린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산스크리트 실판독이 닿지 않아 어느 쪽이 맞는지 말하지 않는다). 몸에 대한 항목은 한역이 `身欲·身念·身愛·身染·身著` 다섯, 팔리가 kāyachando·kāyasneho·kāyanvayatā 셋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vati kāye kāyacchandaḥ k`가 `身欲`에 걸린다. `於`는 조사로 흡수. `觀…住者`의 `住`는 「머물면」. 이문: `愛`는 【聖】에 `受`, `染`은 【明】에 `樂`으로 되어 있다(【大】 따름).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5.2

AG:sa962/0249c08.1 · 교차 검사

「火種!有三種受,謂苦受、樂受、不苦不樂受。

「불의 종족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은 `苦受→樂受→不苦不樂受`, 팔리는 sukhā→dukkhā→adukkhamasukhā로 앞의 둘 순서가 바뀐다. `受`(느낌)는 확정 낱말역이 없는 정형구 행 — 이 좌표가 「세 가지 느낌」 정형구라 문맥으로 「느낌」을 세우되 을 남긴다(다른 자리에서 동사 「받다」일 수 있다). 이 경은 `受`와 `覺`을 같은 느낌(vedanā)의 명사로 섞어 쓴다(c21.1의 `樂覺`) — 같은 한국어 「느낌」으로 두고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tisra imā`뿐이다(苦·樂의 순서는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음). `有三種受`의 `有`는 존재 서술.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MN 74:205.3~205.4

AG:sa962/0249c10.1 · 교차 검사

此三種受,何因?

이 세 가지 느낌은 무엇이 원인인가?

주 팔리 mn74에는 느낌의 원인을 묻는 대목이 없다(205.5 이하는 한 번에 한 느낌만 느낀다는 대목). 산스크리트 실판독 `itīmās tisro vedanāḥ kiṃnid`가 `何因`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4

AG:sa962/0249c11.1 · 교차 검사

何集?

무엇이 모임인가?

주 `集`은 모임·일어남의 뜻이나 이 좌표에서는 「모임」으로 옮겼다(c12.2의 `觸集`과 같은 낱말). 정형구 행에서 `集`은 samudaya(일어남)이지만 확정 낱말역이 아니므로 문맥으로 세웠다. 산스크리트 `kiṃsamudayāḥ`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4

AG:sa962/0249c11.2 · 교차 검사

何生?

무엇이 생김인가?

주 `生`은 「생김」. 산스크리트 `kiṃjātīyāḥ`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4

AG:sa962/0249c11.3 · 교차 검사

何轉?

무엇이 바뀜인가?[불확실]

불확실 `轉`은 「바뀜·굴러감」 어느 쪽도 서며, 사전 轉 ①의 용례(轉向·轉增)에서는 방향이 바뀌거나 늘어나는 쪽이다. 이 자리 연쇄(因·集·生·轉)의 뜻은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바뀜」으로 옮기고 을 단다. 산스크리트 `kiṃprabhavāḥ`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4

AG:sa962/0249c12.1 · 교차 검사

謂此三受觸因、觸集、觸生、觸轉。

이 세 가지 느낌은 접촉이 원인이고, 접촉이 모임이고, 접촉이 생김이고, 접촉이 바뀜이라고 말한다.

주 `觸`은 「접촉」(정형구 행, 팔리 phassa). 산스크리트 실판독 `sparśaprabhavās tasya tasya sp`가 `觸轉`과 `彼彼觸`에 걸린다(`prabhava`는 일어남의 뜻이어서 `轉`과 낱말이 다르다 — 갈림은 신고만 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4

AG:sa962/0249c12.2 · 교차 검사

彼彼觸集,則受集;彼彼觸滅,則受滅,寂靜、清涼、永盡。

그 하나하나의 접촉이 모이면 느낌이 모이고, 그 하나하나의 접촉이 사라지면 느낌이 사라져, 고요해지고 시원해지고 영원히 다한다.

주 `彼彼`는 「그 하나하나의」, `則`은 「-면」에 흡수. 산스크리트 실판독 `śamanti śītībhavanti astaṃgacchanti`가 `寂靜·清涼·永盡`과 순서대로 짝이다(사전 寂靜 ①·清涼 ①은 이 경 용례 확인용). `寂靜`은 「고요」, `清涼`은 「시원함」.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4

AG:sa962/0249c12.3 · 교차 검사

彼於此三受,覺苦、覺樂、覺不苦不樂。

그는 이 세 느낌에서 괴로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

주 팔리 205.5~205.10은 ‘즐거움을 느끼는 때에는 다른 둘을 느끼지 않는다’는 배타 서술이고, 한역은 세 느낌을 느낀다는 서술만 있다 — 배타 대목이 한역에 없다. `覺`은 여기서 동사(「느끼다」)이다. `於`는 조사로 흡수. 산스크리트 #14에서 이에 걸리는 글자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5.5~205.10

AG:sa962/0249c14.1 · 교차 검사

彼彼受若集、若滅、若味、若患、若出如實知;如實知已,即於彼受觀察無常、觀生滅、觀離欲、觀滅盡、觀捨。

그 하나하나의 느낌의 일어남이든, 사라짐이든, 맛이든, 해로움이든, 벗어남이든 있는 그대로 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나서, 바로 그 느낌에서 덧없음을 관찰하고,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하고, 욕망을 떠남을 관찰하고, 사라져 다함을 관찰하고, 버림을 관찰한다.

주 팔리 205.11~205.13은 느낌이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라는 서술이고, 한역은 `集·滅·味·患·出`을 있는 그대로 안 뒤 다섯 가지를 관찰한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staṃgamaṃ cāsvādaṃ cādīnavaṃ ca niḥ`가 `滅·味·患·出`과 짝이다(`出`에 해당하는 낱말은 `niḥ`까지만 실판독이고 나머지는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쓰지 않음). 이 자리의 `若`은 가정이 아니라 열거의 「-든」이다(`若集、若滅、若味、若患、若出` — 앞자리 b20.1과 달리 ‘-면’을 쓰지 않았다). `患`은 「해로움」, `出`은 「벗어남」. `如實知`는 「있는 그대로 안다」(사전 如實知 ①). `即於彼受`의 `即`은 「바로」. 산스크리트 `prajānāmīti … prajānan`의 인용 구조는 편자 보충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5.11~205.13

AG:sa962/0249c14.2 · 교차 검사

彼於身分齊受覺如實知,於命分齊受覺如實知,若彼身壞命終後,即於爾時一切受永滅、無餘永滅。

그는 몸의 한도까지의 느낌을 느끼면 있는 그대로 알고, 목숨의 한도까지의 느낌을 느끼면 있는 그대로 안다. 그의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이면, 바로 그때 모든 느낌이 영원히 사라지고, 남김없이 영원히 사라진다.

주 팔리 mn74에는 이 대목(몸·목숨의 한도까지의 느낌)이 없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sa kāy`·`yāno jīvitaparyantikāṃ vedanāṃ`이 `身分齊受`·`命分齊受`와 짝이다(`paryantika`=한도·끝). `分齊`는 「한도」(사전 分齊 ①)이며, 사전 分齊 ⑤ 慧琳 0353a15는 자음 풀이뿐이다. `受覺如實知`는 `受`(느낌)+`覺`(느낌)+`如實知`로 끊을 수도 있고 `受覺`을 「느낌을 느낌」으로 묶을 수도 있다 — 후자로 읽어 [불확실:구두·분절]. `若`은 「-면」. 이문: `永滅`은 【明】에 없다(【大】 따름).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13

AG:sa962/0249c17.1 · 교차 검사

彼作是念:『樂受覺時,其身亦壞;苦受覺時,其身亦壞;不苦不樂受覺時,其身亦壞,悉為苦邊。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에도 그 몸도 무너지고,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에도 그 몸도 무너지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에도 그 몸도 무너져, 모두 괴로움의 끝이 된다.

주 팔리 mn74에 짝이 없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bhedāt kāyasya bhaviṣya`·`ṣaivānto duḥkhasya`가 `其身亦壞`·`苦邊`과 짝이다. `亦`는 조사 「도」로 흡수. `為`는 「-이 된다」. 이문: `苦邊`은 【聖】에 `邊苦`로 되어 있다(【大】 따름). `作是念`은 부처님 말씀 안의 일반 서술이라 현재형.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13

AG:sa962/0249c19.1 · 교차 검사

於彼樂覺,離繫不繫;於彼苦覺,離繫不繫;於不苦不樂覺,離繫不繫。

그 즐거운 느낌에서 묶임을 떠나 묶이지 않고, 그 괴로운 느낌에서 묶임을 떠나 묶이지 않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서 묶임을 떠나 묶이지 않는다.

주 `樂覺·苦覺·不苦不樂覺`의 `覺`은 명사로 쓰인 느낌(vedanā) — 앞에서 `受`로 쓴 개념에 다른 한자(`覺`)를 쓴 것이다(한자 흔들림, 같은 한국어 「느낌」으로 고정). 산스크리트 실판독 `vedayati na saṃyukt`가 `不繫`와 짝이다. `離繫不繫`는 「묶임을 떠나 묶이지 않는다」. `於`는 조사. 사전 苦覺 ①(10회)은 이 경 외 용례 확인용.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13

AG:sa962/0249c21.1 · 교차 검사

於何離繫?

무엇에서 묶임을 떠나는가?

주 팔리에 짝이 없다. 산스크리트 `kena visaṃyuktaḥ`는 편자 보충이다. `於`는 「-에서」, `何`는 의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13

AG:sa962/0249c23.1 · 교차 검사

離於貪欲、瞋恚、愚癡,離於生、老、病、死、憂、悲、惱、苦,我說斯等,名為離苦。』」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떠나고,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떠나니, 나는 이들을 말하여 괴로움을 떠남이라 이름한다.』」

주 팔리 mn74에 짝이 없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yāsebhyo visaṃyukto duḥkh`가 `離於…苦`와 짝이다. 항목은 한역 `生·老·病·死·憂·悲·惱·苦` 여덟이다(산스크리트는 실판독이 `yāsebhyo`까지만 닿아 항목 수를 견주지 않았다). `惱`는 「번민」, `苦`는 「괴로움」, `貪欲·瞋恚·愚癡`는 3분할 표의 의역(「탐욕·성냄·어리석음」). 닫는 `』」`는 b21.1부터 열린 겹따옴표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5.13

AG:sa962/0249c23.2 · 교차 검사

當於爾時,尊者舍利弗受具足始經半月。

그때 존자 사리불은 구족계를 받은 지 막 반달이 지났다.

주 `舍利弗`=사리불은 3분할 표의 「정착어」 — 정착형 그대로 쓰고 이름의 뜻을 적는다: 慧琳(0450b23)에 따르면 산스크리트 śāri(백로·해오라기류의 새, 鶖鷺) + putra(아들)로 「새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그 어머니의 눈이 그 새의 눈과 같아 붙은 이름이다(舊譯 身子는 誤譯으로 본다). 팔리 Sāriputta. `尊者`는 「존자」(정착). `當於爾時`의 `當`은 「그때에」(때를 가리키는 `當…時`)이므로 당위가 아니다. `受具足`은 「구족계를 받음」(사전 受具 ①). 이 좌표의 「구족계를 받은 지 반달」은 팔리 206.1에 없다. 산스크리트 #17에서 ‘반달 구족’에 해당하는 어형은 [대괄호] 안, 곧 편자 보충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6.1

AG:sa962/0249c25.1 · 교차 검사

時,尊者舍利弗住於佛後,執扇扇佛。

그때 존자 사리불은 부처님 뒤에 머물며 부채를 쥐고 부처님께 부채질하였다.

주 팔리 206.1 `piṭṭhito ṭhito … bījayamāno`(뒤에 서서 부채질함)와 같다. 한역 `住`는 「머물다」, 팔리 ṭhito는 「서 있다」 — 낱말이 다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d vyajanaṃ gṛhītvā bhagavantaṃ vīja`가 `執扇扇佛`과 짝이다. `於`는 조사. 사전 扇扇 ①(10회)이며, 사전 扇扇 ⑤ 慧琳 0562a06은 자음 풀이뿐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74:206.1

AG:sa962/0249c26.1 · 교차 검사

時,尊者舍利弗作是念:「世尊歎說於彼彼法,斷欲、離欲,欲滅盡、欲捨。」

그때 존자 사리불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는 저마다의 법에 대하여 찬탄하여 말씀하신다. 욕망을 끊음, 욕망을 떠남, 욕망이 사라져 다함, 욕망을 버림이다.」

주 한역은 `斷欲·離欲·欲滅盡·欲捨` 넷이고, 팔리 206.3은 pahāna·paṭinissagga 둘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rāgam eva nirodham eva pratiniḥ`는 virāga·nirodha·pratiniḥsarga에 걸려 한역의 `離·滅盡·捨`와 짝이다(`prahāṇam eva`는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음). 같은 문장에서 앞 좌표는 `佛`(부처님), 이 좌표는 `世尊`(세존)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 각각 고정). 사리불의 속생각이므로 부처님에 대한 높임(-시-)을 쓴다. `歎說`은 「찬탄하여 말씀하신다」. `彼彼法`은 「저마다의 법」.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6.2~206.3

AG:sa962/0249c27.1 · 교차 검사

爾時,尊者舍利弗即於彼彼法觀察無常,觀生滅、觀離欲、觀滅盡、觀捨,不起諸漏,心得解脫。

그때 존자 사리불은 바로 저마다의 법에서 덧없음을 관찰하고,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하고, 욕망을 떠남을 관찰하고, 사라져 다함을 관찰하고, 버림을 관찰하여, 모든 누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해탈을 얻었다.

주 팔리 206.4는 paṭisañcikkhato(되새김)이고 한역은 다섯 관찰이다. `不起諸漏`은 「모든 누를 일으키지 않아」 — 한역 `不起`(일어나지 않음)와 팔리·산스크리트 anupādāya(취함 없이)가 낱말이 다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nupaśyino virāgānupaśyino`와 `anupādāyāsravebhaś cittaṃ vimuktaṃ`이 걸린다. `漏`는 「누」(āsrava; 번뇌 煩惱와 가르기 위해 정착형 「누」를 썼다). `得`은 「얻었다」. `諸`는 「모든」, `即`은 「바로」, `於`는 조사. 사전 諸漏 ①(145회).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6.4

AG:sa962/0249c28.1 · 교차 검사

爾時,長爪外道出家遠塵離垢,得法眼淨。

그때 긴손톱 외도 출가자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떠나, 법의 눈의 청정함을 얻었다.

주 팔리 206.5~206.6은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겼다)에 이어 그 내용 ‘일어나는 모든 것은 소멸하는 법이다’를 인용한다 — 한역에는 그 인용이 없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kasya virajo vigatamalaṃ`이 `遠塵離垢`와 짝이다. `法眼淨`은 「법의 눈의 청정함」(정형구 구, 사전 法眼淨 ①). `長爪外道出家`는 b01.1과 같이 「긴손톱 외도 출가자」.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6.5~206.6

AG:sa962/0250a02.1 · 교차 검사

長爪外道出家見法、得法、覺法、入法、度諸疑惑,不由他度,入正法、律,得無所畏,即從坐起,整衣服,為佛作禮,合掌白佛:「願得於正法、律出家、受具足,於佛法中修諸梵行。」

긴손톱 외도 출가자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깨닫고, 법에 들어가 여러 의혹을 건너, 남을 말미암아 건너지 않고, 바른 법과 율에 들어가 두려움 없음을 얻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가지런히 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건대 바른 법과 율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아,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여러 청정한 행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불확실]

불확실 앞부분 `見法·得法·覺法·入法·度諸疑惑,不由他度`는 팔리 206.7의 diṭṭhadhammo pattadhammo viditadhammo pariyogāḷhadhammo tiṇṇavicikiccho … aparappaccayo와 짝이다(한역 `覺法`·`入法` ↔ 팔리 viditadhammo·pariyogāḷhadhammo). 한역 `得無所畏`는 vesārajjappatto에 걸린다. 같은 자리에서 내용이 갈린다: 팔리 206.8~206.13은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의 비유와 귀의·재가신자 청(upāsakaṃ maṃ … dhāretu)이고, 한역은 출가·구족계를 청한다. 팔리의 비유(nikkujjita 등)는 한역에 없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ṇamya bhagavantam idam avocat`이 걸리며, #19의 청원 문장 `labheyāhaṃ bhadanta …`은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았다. `不由他度`의 `他`는 `自`와 짝이 아니라 「남」으로 세웠다. `梵行`은 3분할 표의 「의역」 — 「청정한 행」(慧琳 0698c19: 梵은 淨). 은 `修諸梵行`의 `梵行`을 「청정한 행」으로 옮긴 것에 단다(정착형 「범행」과 갈림). `整衣服`은 「옷을 가지런히」(慧琳 0688c18 자음 풀이뿐). `為佛作禮`는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긴손톱이 부처님께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74:206.7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74:206.8~206.13

AG:sa962/0250a03.1 · 교차 검사

佛告長爪外道出家:「汝得於正法、律出家、受具足,成比丘分。」

부처님께서 긴손톱 외도 출가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바른 법과 율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음을 얻어, 비구의 몫을 이루었다.」

주 팔리 206.13은 귀의 선언 뒤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이고, 한역은 부처님이 출가·구족계를 허락하신 것으로 닫는다 — 같은 자리에서 내용이 엇갈린다. `成比丘分`은 「비구의 몫을 이루었다」(`分`=몫·자격; 사전 分 ①). `比丘`는 「비구」 `[구속]`. 산스크리트 실판독 `labdhavāṃ dīrgha`가 「얻었다」에 걸린다(`pravrajyām upasaṃpadam`은 편자 보충).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74:206.13

AG:sa962/0250a07.1 · 교차 검사

即得善來比丘出家,彼思惟:「所以善男子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

바로 선래비구로 출가함을 얻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선한 남자가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 없애고, 가사 옷을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이 아닌 곳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까닭……」[불확실]

불확실 팔리 mn74에는 선래비구(ehi-bhikkhu) 출가와 그 정형구가 없다. `善來比丘`는 「잘 왔다, 비구여」(3분할 표의 의역 「善來」)를 한 호칭으로 보고 「선래비구」로 두었다 — 정착 호칭이어서 의역(「잘 오너라 비구」)과 갈릴 수 있으므로 . `善男子`는 3분할 표를 따라 「선한 남자」로 옮겼다(정착형 「선남자」와 갈림). `袈裟衣`는 `袈裟`(음역 정착형 「가사」)+`衣`로 「가사 옷」, 慧琳 0439c03 「染色衣」. `鬚髮`은 「수염과 머리카락」(慧琳 0335c13). `正信`은 「바른 믿음」, `非家`는 「집이 아닌 곳」. `所以`는 「까닭」(산스크리트 실판독 `ṣmāṃ yasyārthe kulaputrā`의 yasyārthe가 같은 짝). 말줄임표 `……`는 한문에 있다. `即得`의 `即`은 「바로」, `得`은 「얻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6.13

AG:sa962/0250a08.1 · 교차 검사

乃至心善解脫,得阿羅漢。

내지 마음이 잘 해탈하여, 아라한을 얻었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펴지 않았다. 팔리 mn74에는 아라한 도달 문장이 없다. 산스크리트 `pūrvavad yāvad arhan babhūva suvimuktacittaḥ`는 편자 보충이라 쓰지 않았다. `阿羅漢`은 음역(아라한), 팔리 Arahaṃ·산스크리트 Arhat.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6.13

AG:sa962/0250a10.1 · 교차 검사

佛說是經已,尊者舍利弗、尊者長爪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시자, 존자 사리불과 존자 긴손톱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206.14는 경의 끝맺음 표기(Dīghanakh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이고 한역의 결어 `歡喜奉行`과 짝이 아니다(없음 확인). `尊者長爪`는 긴손톱을 존자로 부른 호칭이다(앞서 `外道出家`였던 이가 구족계를 받은 뒤의 이름). `所說`은 「설하신 것」으로 관형절 풀이. `歡喜奉行`은 정형 결어. 산스크리트 #20·#21의 실판독(`api nu tava jānato`·`yogaḥ śāriputreṇa`)은 이 좌표와 걸리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74:206.14

AG:sa962/0250a11.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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