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六五)
(965)
주 한역 표제 칸에는 경 번호 「(九六五)」만 있고 경명이 없다. 팔리는 「5. Uttiyasuttaṃ」(0.3)과 「95」(95.0)로 경명과 번호를 둘 다 싣는다(한쪽이 더). 교감주(orig) 「A. X. 95. Uttiya. [No. 100(199)]」는 편자가 단 대조 주이며 판정 근거로 쓰지 않는다. 투입물에 산스크리트 증언(_산스크리트_sa958)이 없어 산스크리트 항은 달지 않는다(이하 같음). 파일 머리 표기가 서로 어긋난다 — 한문저본·음의·사전은 大正 965, 전거 파일 머리말은 大正 958, uid는 sa958 — 신고만 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an10.95 본문은 95.1에서 곧바로 시작하며 개경 정형구가 없음을 확인했다(없음확인). 「如是我聞」은 정형구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옮겼다(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발화 첫머리 0/1333, 이 경 0.2). 생략 표지(乃至·如上 등)는 이 경에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95:95.1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르셨다.
주 팔리 an10.95 본문에는 장소 도입이 없다(95.1이 곧바로 Atha kho uttiyo…로 시작; 없음확인). 佛 [구속] 「부처님」. 王舍城 = 정착어 「왕사성」(⑤의 정착어 예시); 뜻은 王舍 = 「왕의 집」이라는 뜻을 옮긴 이름이다(전거: 팔리 후보 Rājagaha). _한자대역_3분할은 王舍을 기계 1차 분류로 의역 처리했으나 ⑤의 정착어 예시를 따랐다. 迦蘭陀 = 음역(팔리 후보 Kalandaka) → 한자 독음 「가란타」; 음의 迦蘭陀(慧琳 0601c04 〔出生菩提心經〕)는 새 이름 설명과 竹林 연유를 단다(인용만). 竹園 = 뜻으로 「대나무 동산」(전거 王舍城迦蘭陀竹園 ←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 住 = 「머무르셨다」(내레이션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95:95.1
時,有外道出家名曰欝低迦,來詣佛所,與世尊面相問訊慰勞已,退坐一面,白佛言:「瞿曇!云何,瞿曇!世有邊耶?」
그때 이름을 울저가라고 하는 집을 떠난 외도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와, 세존과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어 말했다:「고따마여! 어떻습니까, 고따마여! 세상은 끝이 있습니까?」
주 外道出家 = 전거 Paribbājaka; 出家는 3분할 의역이라 「집을 떠난」, 外道는 한국 불교계 통용어 「외도」(이하 「집을 떠난 외도」로 통일). 欝低迦 = 음역(팔리 후보 Uttiya; 팔리 증언 95.1 uttiyo; 범어 후보 없음) → 한자 독음 「울저가」, 한 경 안에서 통일. 瞿曇 = [구속] 확정역 「고따마」. 음역계통: 전거 팔리_후보 Gotama · 범어_후보_근대 Gautama(⚠다른 부(DA)의 대역) — 판정하지 않는다. 佛 [구속] 「부처님」, 世尊 [구속] 「세존」.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팔리 bhagavā)에 다른 한자(佛所/世尊/白佛)를 쓴다; 확정역이 각각 있으므로 한국어도 각각 고정한다. 有外道出家名曰…來詣 = 새 인물을 들이는 존재문이라 「~가 나아와」로 주어화했다. 面相問訊慰勞已 =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나서」(사전 問訊 ③ sa100/0028a04.1 「面前問訊,相慰勞已」; 음의 問訊 慧琳 0428c12 「訊問也」 인용). 有邊의 有·無邊의 無는 邊의 있고 없음을 서술하는 존재 자체라 「끝이 있다/없다」. 耶 = 합쇼체 의문 어미(청자 부처님). 증언 대조: 팔리 첫 물음은 sassato loko(95.5)와 asassato loko(95.8)이고 한역에는 이 짝이 없다(문장 유무). 한역 첫 물음 「世有邊耶」는 팔리 95.11의 antavā loko에 해당하나 팔리는 긴 목록 속에 접어 둔다(구조·배열); 한역은 제1문 뒤에 곧 부처님 답을 붙인다(17.1).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95.4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1
佛告欝低迦:「此是無記。」
부처님께서 울저가에게 말씀하셨다:「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주 無記 = 3분할 의역(팔리 후보 Avyākata) → 「밝혀 말하지 않는 것」으로 뜻을 옮겼다; 記는 이 경의 記說(22.3·23.1·29.1)과 같은 「밝혀 말하다」로 일관한다. 한국 불교계에 통용되는 한자어 「무기」가 따로 있으나 3분할 지침(의역)을 따랐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이하 無記는 같은 문자열. 부처님의 발화는 평서. 팔리는 질문 목록을 접은 뒤(95.11) 한 번에 「Etampi kho, uttiya, abyākataṃ mayā」(95.12)로 답하나, 한역은 질문마다 개별 답을 붙인다(구조·배열).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2
欝低迦白佛:「云何,瞿曇!世無邊耶?
울저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어떻습니까, 고따마여! 세상은 끝이 없습니까?
주 世無邊 ↔ 팔리 95.11 anantavā loko(접힌 목록 안의 한 항). 따옴표는 한문대로 19.2에서 닫힌다. 울저가의 발화는 부처님께 하는 말이라 합쇼체.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1
有邊無邊耶?
끝이 있고 끝이 없습니까?
주 有邊無邊(제3구)에 걸리는 팔리 자리를 짚지 못했다. 팔리 95.11은 「antavā loko…pe… anantavā loko… taṃ jīvaṃ taṃ sarīraṃ…」로 접힌 목록이라 antavā·anantavā 다음에 제3·제4구가 실려 있는지 표기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둔다. 有邊無邊은 「끝이 있고 끝이 없다」 병렬로 옮겼다(주어 世는 앞에서 이어짐).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95:95.11
非有邊非無邊耶?」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닙니까?」
주 非有邊非無邊(제4구). 19.1과 같은 까닭으로 미대응(접힌 목록 안쪽 미독). 따옴표는 이 좌표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95:95.11
佛告欝低迦:「此是無記。」
부처님께서 울저가에게 말씀하셨다:「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주 17.1과 같은 문자열. 한역은 제2~4구를 한 묶음으로 묻고 한 번에 답한다(18.1~19.2). 팔리 95.12의 답은 접힌 목록 전체에 대한 한 번의 답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2
欝低迦白佛:「云何,瞿曇!『世有邊耶?』
울저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어떻습니까, 고따마여! 『세상은 끝이 있습니까?』
주 여기서부터 울저가가 앞의 문답을 되짚어 따진다(팔리 95.14~95.20과 같은 자리). 『』 안은 앞서 한 자기 물음의 인용. 팔리는 이 되짚음을 sassato·asassato부터 접힌 목록까지 하고(95.14~95.18), 한역은 有邊부터 시작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8
答言:『無記』;『世無邊耶?
『밝혀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세상은 끝이 없습니까?
주 答言 = 「…라고 답하셨습니다」(울저가가 부처님께 하는 말이라 합쇼체·존칭). 無記는 17.1과 같은 문자열. 한역은 「;」로 물음·답을 이어 나열하고 답 앞에 「물었다」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 한문대로 두었다. 『世無邊耶?는 22.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9~95.20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8
世有邊無邊耶?
세상은 끝이 있고 끝이 없습니까?
주 19.1과 같은 까닭으로 미대응(팔리 95.18도 「antavā loko…pe… anantavā loko…」로 접혀 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95:95.18
答言:『無記』?
『밝혀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셨습니까?
주 문말에 「?」가 있으나 耶 같은 의문 표지가 없다. 부호대로 의문(확인하는 물음)으로 옮겼다; 평서 「…라고 답하셨습니다.」로 읽는 길도 서므로 구두를 신고한다. 팔리 95.19~95.20은 「etampi kho, uttiya, abyākataṃ mayā…vadesi」(~라고 말씀하십니다)로 평서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19~95.20
瞿曇!於何等法而可記說?」
고따마여! 어떤 법에 대해서 밝혀 말할 수 있습니까?」
주 於 → 「~에 대해서」(조사), 而 흡수, 可記說 → 「밝혀 말할 수 있습니까」(可 = 가능). 何等法 → 「어떤 법」. 팔리 95.21 「Atha kiñcarahi bhotā gotamena byākataṃ」는 과거분사(이미 설해진 것)이고 한역은 가능 서법(可)이며 法이 명시된다 —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따옴표는 이 좌표에서 닫힌다(20.1에서 연 큰따옴표).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21
佛告欝低迦:「知者,智者,我為諸弟子而記說道,令正盡苦,究竟苦邊。」
부처님께서 울저가에게 말씀하셨다:「아는 이로서, 지혜로운 이로서, 나는 여러 제자를 위하여 도를 밝혀 말하여,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게 하고 괴로움의 끝에 끝내 이르게 한다.」
주 「知者,智者」의 구두·소속이 갈린다: (가) 뒤의 我를 꾸미는 동격(「아는 이로서, 지혜로운 이로서, 나는」) — 채택; (나) 울저가를 부르는 호칭; (다) 앞 물음 전체에 대한 주제어. 팔리 95.22의 abhiññāya(곧바로 알고서)는 (가)와 어울리나 증언은 저본이 아니다. 者 [명사화]. 為諸弟子而 → 「여러 제자를 위하여」(諸 → 「여러」, 而 흡수). 記說道 = 「도를 밝혀 말하여」(記說은 22.3과 같음; 24.1은 記 없이 說道 — 흔들림 아님, 한문대로). 令 → 사역 「-게 하다」(令 한 번이 正盡苦와 究竟苦邊 둘에 걸린다고 읽었다). 究竟 = 사전 ⑥(至極)·이 경 용례 → 「끝내 이르다」. 道 ↔ 팔리 dhamma(95.22 dhammaṃ desemi) — 개별 어휘 갈림,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에 있는 sattānaṃ visuddhiyā… nibbānassa sacchikiriyāya의 나열은 한역에 없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22
欝低迦白佛:「云何,瞿曇!為諸弟子說道,令正盡苦,究竟苦邊?
울저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어떻습니까, 고따마여! 여러 제자를 위하여 도를 말씀하시어,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게 하시고 괴로움의 끝에 끝내 이르게 하시는 것은?
주 문말 「?」가 있으나 의문 어미가 없고 실제 물음은 26.1(為…為…耶)에 있다 — 이 좌표를 주제화하는 물음(「…하시는 것은?」)으로 옮겼다. 팔리 95.23은 이것과 26.1의 물음을 한 문장으로 잇는다(구조·배열). 說道는 「도를 말하여」(23.1의 記說道와 구별), 존칭은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말씀하시어」.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23
為一切世間從此道出,為少分耶?」
모든 세간이 이 도를 따라 나가는 것입니까, 작은 부분이 나가는 것입니까?」
주 為A,為B耶 = 「A입니까, B입니까」 양자택일 물음. 一切世間 → 「모든 세간」; 世間은 3분할 의역이나 世(세상)와 구별되도록 「세간」으로 두었다. 出 → 「나가다」(門의 出과 일관: 8.1·10.1). 少分 → 「작은 부분」. 팔리 95.23은 sabbo vā…upaḍḍho vā tibhāgo vā(전부 / 절반 / 삼분의 일)의 셋이고 한역은 一切 / 少分의 둘이다(개별 어휘). 따옴표는 이 좌표에서 닫힌다(24.1에서 연 큰따옴표).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23
爾時,世尊默然不答。
그때 세존께서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주 팔리 처격 절대구 evaṃ vutte(그렇게 말해지자)가 한역에서 爾時로 옮겨진 자리다 —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번역기법). 世尊 [구속] 「세존」; 같은 대목 27.2는 佛을 쓴다 —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bhagavā)에 다른 한자를 쓴다. 默然 → 「잠자코」(음의 默然 慧琳 0428c16 「不言也」 인용), 不答 → 「대답하지 않으셨다」(팔리 tuṇhī ahosi와 같은 뜻).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95:95.24
第二、第三問,佛亦第二、第三默然不答。
두 번째, 세 번째로 묻자, 부처님께서는 또한 두 번째, 세 번째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주 팔리 95.24는 침묵이 한 번뿐이고 두 번째·세 번째 물음과 침묵이 없다(없음확인). 亦은 앞 27.1의 침묵과 같음을 가리키는 뜻이 실린 자리라 「또한」을 세웠다. 佛 [구속] 「부처님」 — 27.1의 世尊(「세존」)과 한자가 다르다(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第二、第三問 → 물음 횟수 「두 번째, 세 번째로 묻자」(묻는 이는 울저가, 한문에 생략).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95:95.24
爾時,尊者阿難住於佛後,執扇扇佛。
그때 존자 아난은 부처님 뒤에 머물러 부채를 쥐고 부처님께 부채질하였다.
주 같은 자리(세존의 침묵 뒤 아난의 등장)에서 한역은 부채질하는 장면을, 팔리는 아난의 생각(95.25 etadahosi ~ 95.28 「mā hevaṃ kho uttiyo… ahitāya dukkhāyā」)을 싣는다 — 서로 한쪽에만 있다. 阿難 = 정착어 「아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음의 阿難 慧琳 0482c03 〔音妙法蓮花經〕 「阿難陀 此云慶喜」 인용, 팔리 Ānanda(_한자대역_3분할). 尊者 → 「존자」. 住於佛後 → 「부처님 뒤에 머물러」, 執 → 「쥐고」(사전 扇扇 ③ sa1068/0280a19.1 「住於佛後,執扇扇佛」 인용 — 사전 표제는 「執」·「扇扇」으로 따로 서며 「執扇扇」이라는 표제는 없다), 扇佛 → 「부처님께 부채질하였다」. 내레이션 평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95:95.25~95.28
尊者阿難語欝低迦外道出家:「汝初已問此義,今復以異說而問,是故,世尊不為記說。
존자 아난이 집을 떠난 외도 울저가에게 말했다:「너는 처음에 이미 이 뜻을 물었고, 이제 다시 다른 말로 묻는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밝혀 말해 주지 않으신다.
주 아난(정착어, 뜻 「경희」 — 28.1 참조)의 발화이며 청자 울저가가 윗사람이 아니므로 평서로 통일. 한역은 이 설명(汝初已問此義…)을 비유 앞에 두고, 팔리는 비유 뒤에 둔다(95.45~95.46 「Yadeva kho tvaṃ, āvuso uttiya…aññena pariyāyena apucchi. Tasmā te taṃ bhagavā na byākāsī」) — 자리바뀜. 異說 → 「다른 말」, 以…而 흡수, 復 「다시」(앞 물음과의 반복 대조가 실려 있다), 是故 「그러므로」, 不為記說 → 「밝혀 말해 주지 않으신다」(為 = 상대를 위한 행위; 對象 汝 생략으로 읽음). 外道出家 → 「집을 떠난 외도」(15.1과 통일).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95:95.29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10.95:95.45~95.46
欝低迦!今當為汝說譬,夫智者因譬得解。
울저가여! 이제 너를 위하여 비유를 말하겠다. 지혜로운 이는 비유로 말미암아 이해를 얻는다.
주 當 → 어미 「-겠다」가 진다(마땅히 붙이지 않음). 夫는 발어사라 흡수. 為汝 → 「너를 위하여」. 智者因譬得解 → 「지혜로운 이는 비유로 말미암아 이해를 얻는다」: 得은 解를 목적어로 취하는 획득으로 읽었다(가능으로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 사전 因譬 ③ sa274/0075a29.1 「夫智者因譬得解」 같은 용례). 팔리 95.31 「Upamāya midhekacce viññū purisā…ājānanti」는 「어떤(ekacce) 현명한 사람들이」로 한정이 붙는다(한역에 없음,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30~95.31
「譬如國王,有邊境城,四周堅固,巷陌平正,唯有一門。
「비유하자면 국왕에게 변경의 성이 있는데, 사방 둘레가 단단하고 굳으며, 골목과 길이 평평하고 바르며, 오직 한 문이 있다.
주 譬如 → 「비유하자면」. 有邊境城 = 국왕의 소유를 서술하는 존재문이라 「~에게 ~이 있는데」를 세웠다(근거: 소유 서술; 「있어」로 잇지 않고 서술형으로 닫음). 堅固는 3분할 의역 처리(팔리 후보 Kevaddha·Sāla는 다른 부 대역으로 이 자리 형용사와 맞지 않는다) → 「단단하고 굳으며」. 巷陌平正은 팔리 95.32(daḷhuddhāpaṃ daḷhapākāratoraṇaṃ)에 대응이 없는 한역의 구다(개별 어휘). 唯有一門 → 「오직 한 문이 있다」(唯는 뒤의 無第二門과 대조되어 뜻이 실린 자리). 팔리 ekadvāraṃ(한 문을 가진)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32
立守門者聰明黠慧,善能籌量,外有人來,應入者聽入,不應入者不聽。
문을 지키는 이를 세우니, 총명하고 영리하고 슬기로우며 잘 헤아릴 수 있고, 바깥에서 사람이 오면 들어와야 할 이는 들어오게 허락하고 들어와서는 안 될 이는 허락하지 않는다.
주 立守門者 = 「문을 지키는 이를 세우니」(者 명사화). 聰明 = 3분할 의역(팔리 후보 Paṇḍita) → 「총명하고」; 黠慧 → 「영리하고 슬기로우며」(음의 黠慧 慧琳 0323b01 「慧黠也」 인용). 能 = 「-ㄹ 수 있다」로 흡수, 籌量 → 「헤아리다」(음의 籌量 慧琳 0344c04 「籌筭也」 인용). 外有人來 → 「바깥에서 사람이 오면」(有 주어화). 應 = 어미 「-야 할」이 진다. 聽入 → 「들어오게 허락하고」. 팔리 95.33은 aññātānaṃ nivāretā ñātānaṃ pavesetā(모르는 이는 막고 아는 이는 들임)로 가르는 기준이 다르다(應入/不應入 ↔ 알려진/알려지지 않은).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33
周匝遶城,求第二門,都不可得,都無猫狸出入之處,況第二門?
성을 두루 한 바퀴 돌며 두 번째 문을 찾아도 전혀 얻을 수 없고, 고양이가 드나들 곳이 전혀 없는데, 하물며 두 번째 문이겠는가?
주 周匝遶城 → 「성을 두루 한 바퀴 돌며」(주어는 문지기, 한문에 생략). 都 → 「전혀」(都不可得·都無 둘 다), 不可得 → 「얻을 수 없다」(得 가능). 猫狸 = 한 마리 고양이류를 가리키는 복합어로 읽었다(사전 猫狸 ③ sa1253/0345c08.1 「有一猫狸」 단수 용례; 음의 猫狸 慧琳 0845c03은 음만 단다) → 「고양이」. 팔리 95.35 antamaso biḷāranikkhamanamattampi(고양이가 나갈 틈만큼도)와 겹친다. 「況第二門?」은 한역에만 있는 반문이다(문장 유무).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34~95.35
彼守門者都不覺悟入者、出者,然彼士夫知一切人唯從此門若出若入,更無餘處。
그 문지기는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 사내는 모든 사람이 오직 이 문을 따라서만 나가거나 들어온다는 것을 알며, 더는 다른 곳이 없다.
주 彼守門者와 彼士夫는 같은 인물(문지기)로 읽었다 — 士夫는 「사내」. 覺悟 → 「알아차리다」(음의 覺悟 慧琳 0454a12 「覺…又作寤」, 0474b12 「睡覺也覺亦悟也」 인용; 이 자리는 정각의 뜻이 아니라 알아챔). 然 → 「~지만」에 흡수. 唯從此門 → 「오직 이 문을 따라서만」, 若出若入 → 「나가거나 들어온다」(연결어미; 「거든」 안 씀). 更無餘處 → 「더는 다른 곳이 없다」. 팔리 95.39의 ye kho keci oḷārikā pāṇā(거친 생명들 가운데 누구든)는 한역 一切人과 다르다(개별 어휘).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36~95.39
如是,世尊雖不用心覺悟眾生,一切世間從此道出,及以少分,然知眾生正盡苦,究竟苦邊者,一切皆悉從此道出。」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비록 마음을 써서 중생을 알아차리지 않으시고, 모든 세간이 이 도를 따라 나가는 것과 작은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하시지만,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여 괴로움의 끝에 끝내 이르는 중생을 아시니, 모두가 다 이 도를 따라 나간다.」
주 구두가 갈린다. 채택한 읽기: 「不用心覺悟眾生,一切世間從此道出,及以少分」 = 세존이 중생 하나하나를 알아차리려 마음 쓰지 않으며 「모든 세간이 이 도로 나가는지·작은 부분만 나가는지」에도 그러하다(26.1의 물음에 답함). 다른 읽기: 眾生 뒤를 끊지 않고 「중생이 모든 세간이 이 도로 나감을 마음 써서 알아차리지 않는다」로 한 덩어리. 如是 → 「이와 같이」(비유 맺음), 雖…然 → 「비록…지만」(然 흡수). 用心 → 「마음을 써서」(사전 用心 ③). 者 = 「~하는 중생」. 眾生 = 「중생」; _확정술어의 정형구 행 生·覺은 이 자리에 해당하지 않는다(生은 眾生의 일부, 覺은 覺悟의 일부). 世尊 [구속] 「세존」. 팔리 95.40~95.44는 여래가 마음 쓰지 않음과 오개를 버리고 사념처에 마음을 세우고 칠각지를 닦은 이들이 나감을 말하는데(95.43) 한역에는 이 나열이 없다(일부). 닫는 따옴표는 이 좌표 끝에서 03.1에서 연 큰따옴표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95:95.40~95.44
時,欝低迦外道出家聞佛所說,歡喜隨喜,從坐起而去。
그때 집을 떠난 외도 울저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팔리 an10.95는 95.46으로 맺고 95.47 「Pañcamaṃ」(경 끝 표지)만 있어 울저가의 기뻐함·떠남이 없다(없음확인). 佛所說 →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관형절, 「하는 바」 안 씀). 歡喜隨喜 →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한국 불교계 술어 「수희」가 따로 있으나 같은 개념의 두 낱말을 한문대로 둠). 從坐起而去 →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而 흡수). 佛 [구속] 「부처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95:9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