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〇五)
(905)
주 한문 저본은 괄호 안의 번호 「(九〇五)」만 서고 경명이 없다. 팔리는 「12. Paraṃmaraṇasuttaṃ」로 번호와 경명이 함께 선다. 저본의 교감주 「cf. S. 16. 12. Parammaraṇa.」는 편자의 대조 표시이지 본문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이 조각에 투입되지 않았다 — 읽지 않았으므로 SF 항은 전 좌표 unaligned(미결)이며 absent(없음확인)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잡아함 전권 1332경, 이 경 1회). 팔리 원문은 전문이 제시되어 있고 「Ekaṃ samayaṃ …」(155.1)으로 바로 시작하므로 이 정형구가 놓일 자리(155.1 앞)에 대응이 없음이 확인된다. 앵커의 如(비유·가정)는 정형구 「이와 같이」의 일부라 해당 없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12:155.1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
주 一時=「Ekaṃ samayaṃ」(사전 一時 ②)에 대응하나, 팔리 155.1은 「두 존자(마하깟사빠·사리뿟따)가 바라나시 이시빠따나 미가다야에 머문다」이고 한역은 「부처님이 왕사성 가란타 죽원에 머문다」이다 — 같은 자리에서 주체와 장소가 다르다(한역은 두 존자를 다음 좌표에서 기사굴산에 둔다). 王舍城은 정착어 「왕사성」(왕이 사는 성이라는 뜻의 이름, 王舍=왕의 집). 한자대역표는 王舍을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⑤의 예시가 왕사성을 정착어로 들므로 정착형을 따랐고, 두 지침이 갈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迦蘭陀는 음역 → 한자 독음 「가란타」(전거: 팔리형 Kalandaka; 음의 迦蘭陀 慧琳 0601c04 「새 이름」). 竹園은 표에 없는 이름이라 대나무(竹)·동산(園)의 뜻으로 옮겼다(정착형 「죽원」 대신, 판별 근거: 한자가 뜻을 옮긴 보통명사). 전거 「王舍城迦蘭陀竹園 ↔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는 이 경의 팔리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 좌표는 佛(부처님, [구속]), 이후는 世尊(세존, [구속]). 확정역이 각각 달라 통일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
爾時,尊者摩訶迦葉、尊者舍利弗、住耆闍崛山中。
그때 마하가섭 존자와 사리불 존자가 기사굴산 가운데 머물렀다.
주 두 존자가 함께 머문다는 점은 팔리 155.1과 같으나 장소가 다르다(耆闍崛山 ↔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摩訶迦葉=음역 「마하가섭」(마하=大, 迦葉=성씨; 음의 摩訶迦葉 慧琳 0450c03 「大飲光」) · 팔리형 Mahā-kassapa. 舍利弗=정착어 「사리불」(「사리(鶖鷺, 새)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 음의 舍利弗 慧琳 0450b23 「奢唎補怛羅 … 鶖鷺鳥 … 子」) · 팔리형 Sāriputta. 耆闍崛=음역 「기사굴」(음의 慧琳 0482a18 「鷲峯」). 음역계통: 전거 舍利弗 팔리형 Sāriputta / 범어형(근대) Śāriputra, 耆闍崛 팔리형 Gijjhakūṭa / 범어형(근대) Gṛdhrakūṭa —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앵커의 者(명사화)는 尊者의 일부라 해당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
時,有眾多外道出家詣尊者舍利弗,與尊者面相問訊慰勞已,退坐一面,語尊者舍利弗言:「云何?
그때 많은 외도 출가자들이 사리불 존자에게 가서, 존자와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주 외도 출가자들의 방문 장면은 팔리 원문 어디에도 없다(155.1과 155.2 사이에 놓일 자리). 外道出家(전거: Paribbājaka)는 「외도 출가자」로 옮긴다(外道·출가 모두 정착형, 뜻은 집을 떠난 외도 수행자). 面相問訊慰勞는 사전 問訊 ① 앞 「面相 31」·뒤 「慰勞 63」(面相·問訊·慰勞가 이어 나오는 정형)에 따라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存在의 有는 「많은 … 이」 주어화로 흡수했다. 존칭: 외도들이 사리불을 찾아와 문안한 뒤 묻는 말이므로 합쇼체로 통일했다(사리불→외도는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12:155.2
舍利弗!如來有後生死耶?」
사리불이여,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습니까?”
주 첫째 물음(有後生死)은 팔리 155.6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와 같은 물음이나 묻는 이와 받는 이가 다르다(한역: 외도→사리불 / 팔리: 사리뿟따→깟사빠). 後生死는 後(뒤)+生死(생사)로 글자대로 「뒤의 생사」라 옮겼다 — 死後로 풀면 한문에 없는 읽기를 들이는 것이다. 이 읽기가 서는지는 정도평 판정 몫이어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전거 如來有後生死 ↔ Hoti tathāgato parammaraṇā). 耶=의문 어미. 앵커의 如는 如來의 일부이고 有는 존재 서술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6
舍利弗言:「諸外道!世尊說言,此是無記。」
사리불이 말하였다. “외도들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주 팔리 155.7 「Abyākataṃ kho etaṃ, āvuso, bhagavatā」에 해당하나 답하는 이와 받는 이가 다르다(한역: 사리불→외도 / 팔리: 깟사빠→사리뿟따). 無記는 한자대역표(의역, 팔리형 Avyākata)에 따라 뜻으로 옮겼다 — 記를 「밝혀 말함」(記說; b04.1 不記說)으로 읽어 「밝혀 말하지 않은 것」. 정착형 「무기」는 쓰지 않았고, 이 역어의 적합성은 정도평 판정 몫이다. 諸는 호칭의 복수라 「들」에 흡수. 붓다 발화는 아니나 사리불→외도 발화로서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7~155.8
又問:「云何?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주 云何는 다음 좌표와 함께 팔리 155.9 「Kiṃ panāvuso」(그러면 어떠한가) 자리에 해당하는 연결 의문어. 어미 의문형이 지는 자리라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고 「어떻습니까」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9
舍利弗!如來無後生死耶?」
사리불이여,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없습니까?”
주 둘째 물음(無後生死) ↔ 팔리 155.9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 묻는 이·받는 이가 다른 점과 後生死 역어의 불확실은 a17.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9
舍利弗答言:「諸外道!世尊說言,此是無記。」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외도들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주 둘째 물음에 대한 답. 팔리 155.10 「Evampi kho, āvuso, abyākataṃ bhagavatā」에 해당하나 답하는 이가 다르다. 無記 역어는 a18.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0~155.11
又問:「舍利弗!如來有後生死、無後生死耶?」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고 뒤의 생사가 없습니까?”
주 셋째 물음. 有後生死、無後生死 두 항을 합치지 않고 나열대로 옮겼다(팔리 「hoti ca na ca hoti」는 한 구절). 後生死 역어는 a17.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2
舍利弗答言:「世尊說言,此是無記。」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주 셋째 물음에 대한 답. 이 좌표에는 앞뒤 답(a20.1·a23.1)에 있는 호칭 「諸外道」가 없다 — 한문대로 두었다. 답하는 이가 팔리와 다른 점, 無記 역어는 앞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3~155.14
又問舍利弗:「如來非有後生死、非無後生死耶?」
또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뒤의 생사가 없는 것도 아닙니까?”
주 넷째 물음(非有後生死、非無後生死) ↔ 팔리 155.15 「neva hoti, na na hoti …」. 묻는 이·받는 이의 차이와 後生死 역어는 앞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5
舍利弗答言:「諸外道!世尊說言,此是無記。」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외도들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주 넷째 물음에 대한 답. 팔리 155.16 「Evampi kho, āvuso, abyākataṃ bhagavatā」에 해당. 차이와 無記 역어는 앞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6~155.17
諸外道出家又問尊者舍利弗:「云何所問如來有後生死、無後生死、有後無後、非有後非無後,一切答言:『世尊說,此是無記。』
외도 출가자들이 또 사리불 존자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음, 뒤의 생사가 없음, 뒤가 있고 뒤가 없음, 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뒤가 없는 것도 아님을 물은 것에 대해, 모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밝혀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대답하십니까
주 네 물음과 「모두 밝혀 말하지 않았다」는 답을 되풀이하는 부분은 팔리 155.6~155.17과 겹치나, 외도가 이를 따지는 말(云何…一切答言)은 팔리에 없다. 의문 종결은 다음 좌표(a27.1 「?」)에 서므로 이 좌표는 의문 어미 없이 끝낸다. 所問은 「물은 것」, 云何는 「어찌하여」로 옮겼다. 인용 속 문장은 사리불의 앞선 발화이므로 평서를 유지했다. 저본 이문: 大正 「世尊說」 / 宋元明 「世尊說言」(교감주 說+(言)【三】) —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6~155.17
?
?
주 문장부호만 선 좌표로 앞 좌표(a24.1)의 의문 종결이다. 뜻을 지닌 요소가 없다.
云何為上座,如愚如癡,不善不辯,如嬰兒無自性智?」
어찌하여 상좌가 되었으며, 어리석은 이 같고 미련한 이 같으며, 서투르고 분별하지 못하며, 갓난아이처럼 자성의 지혜가 없습니까?”
주 외도의 조롱 발언으로 팔리에는 없다(155.17과 155.18 사이에 놓일 자리). 上座는 정착형 「상좌」(연륜 있는 비구; 사전 上座 ② 팔리 therā bhikkhū 정렬). 如愚如癡·嬰兒: 음의 嬰兒 慧琳 0467b14 「女曰嬰男曰兒」→ 「갓난아이」, 癡 慧琳 0326c19 「癡騃」. 不善은 도덕적 불선과 「서투름」 사이에서 갈리고(사전 不善 ① 296회는 대부분 도덕적 쓰임) 不辯도 「분별」과 「말솜씨」 사이에서 갈려, 이 조롱 문맥에 맞는 「서투르고 분별하지 못하며」로 옮겼다. 無自性智는 無自性+智 / 無+自性智 두 끊기가 모두 선다(사전 無自性 ① 2회, 이 경 외 sa1137/0303a20.1 「無自性智」) — 자성(정착형)의 지혜가 없다는 쪽으로 옮겼다. 앵커의 自는 自性의 일부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12:155.18
作此語已,從坐起去。
이 말을 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외도들이 떠나는 장면은 팔리에 없다(155.1과 155.2 사이에 놓일 자리). 주어는 앞 장면의 외도 출가자들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12:155.2
爾時,尊者摩訶迦葉、尊者舍利弗相去不遠,各坐樹下,晝日禪思。
그때 마하가섭 존자와 사리불 존자는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각각 나무 아래 앉아 낮 동안 선으로 사유하였다.
주 팔리 155.2는 사리뿟따가 저녁에 홀로 앉음(paṭisallānā)에서 일어나 깟사빠에게 가는 것이고, 한역은 두 존자가 낮 동안 나무 아래서 각각 禪思하는 것이다. 禪思는 사전 禪思 ① 「잡아함 76회 · 앞 靜處 15 · 뒤 內寂 16 · 思惟 8」의 복합 용례이고 ② 팔리 [AI 정렬] sa204/0052b21.1 ↔ Paṭisallāne라고 되어 있으나, 禪(선)+思(사유)의 글자대로 「선으로 사유하였다」라 옮기고 선정 풀이는 얹지 않았다 — 역어 선택은 정도평 판정 몫이다. 相去不遠은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2
尊者舍利弗知諸外道出家去已,詣尊者摩訶迦葉所,共相問訊慰勞已,退坐一面。
사리불 존자는 외도 출가자들이 떠난 것을 알고 마하가섭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주 詣…所 ↔ upasaṅkami(155.2), 共相問訊慰勞 ↔ sammodi · sammodanīyaṃ kathaṃ(155.3~155.4), 退坐一面 ↔ ekamantaṃ nisīdi(155.4)로 대응한다. 외도들이 떠난 것을 아는 절(知…去已)은 팔리에 없다. 問訊 사전 ① 「共相 55 → 問訊」. 詣…所의 所는 처소라 「…가 있는 곳」.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2~155.4
以向與諸外道出家所論說事,具白尊者摩訶迦葉:「尊者摩訶迦葉!何因何緣世尊不記說,後有生死、後無生死、後有後無、非有非無生死耶?」
앞서 외도 출가자들과 논하여 말한 일을 낱낱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아뢰었다. “마하가섭 존자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으로 세존께서는 뒤에 생사가 있음, 뒤에 생사가 없음, 뒤에 있고 뒤에 없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생사를 밝혀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주 何因何緣世尊不記說 ↔ 팔리 155.18 「Kasmā cetaṃ, āvuso, abyākataṃ bhagavatā」(왜 이것이 설명되지 않았는가). 한역은 그 앞에 외도와 논한 일을 보고하는 절(以向…具白)이 더 붙는다. 後有生死는 後有+生死 / 後+有+生死로 끊을 수 있어 「뒤에 생사가 있음」으로 옮겼고(有後生死와 같은 뜻으로 읽음), 네 번째 항은 한문에 後가 없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생사」로 두었다(後生死의 불확실은 a17.1과 같다). 以는 목적 표시라 흡수, 所論說事는 관형절 「논하여 말한 일」, 具白은 「낱낱이 아뢰었다」. 존칭: 사리불→마하가섭은 합쇼체.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18
尊者摩訶迦葉語舍利弗言:「若說如來後有生死者,是則為色;若說如來無後生死,是則為色;若說如來有後生死、無後生死,是則為色;若說如來非有後、非無後生死,是則為色。
마하가섭 존자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여래에게 뒤에 생사가 있다고 말하면, 이는 색이다.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없다고 말하면, 이는 색이다.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고 뒤의 생사가 없다고 말하면, 이는 색이다. 여래에게 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뒤의 생사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이는 색이다.
주 팔리 155.19 「Na hetaṃ, āvuso, atthasaṃhitaṃ … saṃvattati」(이 물음은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설명되지 않은 까닭을 이익에 두는데, 한역은 네 견해를 모두 색(오온)에 귀속시킨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若…者는 연결어미 「-면」에 흡수하고 則은 따로 옮기지 않았다. 네 번째 항의 非有後、非無後生死는 앞의 非無後 뒤에서 生死가 생략된 것으로 읽었다. 존칭: 마하가섭→사리불은 호칭에 尊이 없어 평서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9
如來者,色已盡,心善解脫。
여래는 색이 다하였고, 마음이 잘 해탈하였다.
주 팔리 155.19~155.20에 이 문장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위 b07.1과 같은 까닭). 如來者의 者는 주제 표지 「는」. 色已盡의 已는 과거 어미에 흡수. 善解脫은 「잘 해탈하였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9
言有後生死者,此則不然;無後生死、有後無後、非有後非無後生死,此亦不然。
뒤의 생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 이것은 그렇지 않다. 뒤의 생사가 없음, 뒤가 있고 뒤가 없음, 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뒤가 없는 것도 아닌 생사, 이것도 그렇지 않다.
주 한역의 논증(네 견해를 모두 부정)은 팔리 155.19의 설명과 다르다. 此則不然의 此는 앞의 「말하는 것」을 되받는 대명사라 「이것은」으로 살렸고, 此亦不然의 亦은 「이것도」의 도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9
如來者,色已盡,心善解脫,甚深廣大,無量無數,寂滅涅槃。
여래는 색이 다하였고, 마음이 잘 해탈하였으며,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없고 셀 수 없으며, 고요히 사라진 열반이다.
주 팔리 155.19~155.20에 해당 내용이 없다. 寂滅은 한자대역표(의역)에 따라 뜻으로 「고요히 사라진」으로 옮겼다(정착형 「적멸」 대신). 涅槃은 표가 音義合璧(혼합)으로 분류했으나 한자 전체가 음역(전거: 팔리형 Nibbāna / 범어형(당대) nirvāṇa; 음의 涅槃 慧琳 0463b14 「圓寂」)이고 정착형이 있어 「열반」으로 적었다 — 표와 판단이 갈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無量·無數는 「한량없고 셀 수 없으며」, 甚深廣大는 「매우 깊고 넓고 크며」로 항을 나열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9
「舍利弗!若說如來有後生死者,是則為受、為想、為行、為識、為動、為慮、為虛誑、為有為、為愛,乃至非有非無後有亦如是說。
“사리불이여,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다고 말하면, 이는 수이고, 상이고, 행이고, 식이고, 움직임이고, 헤아림이고, 헛된 속임이고, 유위이고, 애이다. 내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도 이와 같이 말한다.
주 [생략표지] 乃至가 한문 스스로 접은 자리 — 첫째 견해(有後生死)에서 아홉 항을 펴고, 나머지 견해는 「乃至 非有非無後有」로 접었다. 접힌 대로 두고 펴지 않았다. 受는 정형구 행에서 느낌(vedanā)과 동사 受가 겹치는 한자라 오온의 항으로 읽어 정착형 「수」로 적고 [불확실:다의어_판별]을 남긴다(색·수·상·행·식 정착형). 動(움직임)·慮(헤아림)·虛誑(헛된 속임; 음의 虛誑 慧琳 0516b04 「誑…欺」)·愛(애)는 확정역이 없어 글자 뜻대로 옮겼다 — 역어 선택은 정도평 판정 몫. 有為는 정착형 「유위」. 팔리 155.19에 이 열거가 없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9
如來者,愛已盡,心善解脫,是故說後有者不然,後無、後有無、後非有非無者不然,如來者,愛已盡,心善解脫,甚深廣大,無量無數,寂滅涅槃。
여래는 애가 다하였고, 마음이 잘 해탈하였다. 그러므로 뒤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고, 뒤에 없음, 뒤에 있고 없음,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도 그렇지 않다. 여래는 애가 다하였고, 마음이 잘 해탈하였으며,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없고 셀 수 없으며, 고요히 사라진 열반이다.
주 是故 ↔ 팔리 155.20 「Tasmā」 자리이나 한역의 결론은 네 견해 부정이고 팔리는 「그러므로 설명되지 않았다」이다. 저본 이문: 【聖】本에는 첫 「如來者,愛已盡,心善解脫」 10자가 없다(교감주 〔如來…解脫〕十字-【聖】) —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두 번 모두 옮겼다. 愛와 寂滅·涅槃의 역어는 b15.1·b14.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12:155.19~155.20
舍利弗!如是因、如是緣,故有問世尊:『如來若有、若無、若有無、若非有非無後生死?』
사리불이여, 이와 같은 원인, 이와 같은 조건 때문에 세존께 묻는 일이 있다. ‘여래에게 뒤의 생사가 있는지, 없는지, 있고 없는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지?’
주 故有問世尊의 有가 존재 서술(「묻는 일이 있다」)인지 「묻는 이가 있어」식 관형인지, 뒤 좌표(b24.1 不可記說)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불확실:격·태·구문]을 남긴다. 인용 속 若有、若無、若有無、若非有非無는 앵커가 가정(-면)으로 달았으나 이 자리는 선택 열거(「A인지 B인지」)로 읽는 것이 한문 구조에 맞아 「-ㄴ지」로 옮겼다. 팔리 155.20 「Tasmā taṃ abyākataṃ bhagavatā」(그러므로 설명되지 않았다)와 결론 자리가 겹친다. 後生死 역어의 불확실은 a17.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20
不可記說。」
밝혀 말할 수 없다.”
주 不可記說 ↔ 팔리 155.20의 「abyākataṃ」(설명되지 않음) — 한역은 「~할 수 없다」, 팔리는 「~하지 않았다」로 서법이 다르다. 주어가 한문에 없어 보태지 않았다. 팔리 155.21~155.28(무엇이 설명되었는가: 사성제)에 해당하는 한문 좌표는 이 경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12:155.20
時,二正士共論議已,各還本處。
그때 두 바른 사람은 함께 논의하고 나서 각각 본래의 처소로 돌아갔다.
주 팔리는 155.28 뒤에 경 번호 표지 「Dvādasamaṃ」(155.29)뿐 두 존자가 돌아가는 맺음이 없다(그 앞 자리에 놓일 것). 正士는 사전 正士 ① 「時二 52 → 共論」의 정형으로 쓰이나(77회) 후대 풀이(⑥ 보살)는 아함 문맥과 어긋나 버리고, 글자대로 「바른 사람」으로 옮겼다 — 확정역이 없어 정도평 판정 몫. 論議는 정착형 「논의」, 本處는 「본래의 처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12:15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