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八三)
(883)
주 「(八八三)」은 경번호 표지이지 한역자의 본문이 아니라 숫자로 옮겼다. 팔리 662.0도 편집 번호 줄이고 번호 체계가 달라(대정 883 · 팔리 662) 내용을 맞댈 수 없어 없음(absent)으로 적는다. 팔리 0.1~0.3의 권·상윳따·경 이름 줄(Khandhavaggo · Jhānasaṃyuttaṃ · Samādhimūlakasamāpattisuttaṃ)에 짝지을 한문 제목 글자는 이 경에 없다. 저본 교감주(orig·cf.)는 「cf. S. 53. Jhāna-saṃyutta」인데 편자 주기이지 판독이 아니므로 근거로 쓰지 않고 인용만 한다 — 투입 후보는 sn34이고 편자가 가리킨 번호는 53이라 번호가 다르며, 어느 쪽이 맞는지 판정하지 않는다. 투입물 머리말이 흔들린다: `_전거_sa876`만 제목이 「大正 876」이고 나머지 투입물은 「大正 883」이며 저본 표제는 八八三이다(정도평 확인 요청). 산스크리트 증언 파일은 이번 투입에 없어 산스크리트 항은 달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4.1:662.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는 비유가 아니라 정형구라 앵커의 「같이」 쪽으로 「이와 같이」로 옮겼다(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 발화 첫머리 0/1333, 정형구표 전권 1332 · 이 경 1). 팔리 662.1은 Sāvatthinidānaṃ(사위 인연을 가리키는 접힌 표지)뿐이라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다 — 읽힌 글자에 Evaṃ me sutaṃ은 없으나 안쪽을 못 읽었으므로 없음(absent)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으로 둔다. 미대응이라 갈림은 판정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一時는 정형구 「한때」(사전 一時 ① 1345회 · 뒤 佛住 1265). 佛은 [구속] 부처님, 住는 「머무셨다」(존칭). 舍衛國은 정착어 「사위국」이며 이름의 뜻은 음의가 이렇게 전한다 —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 「室羅伐悉底國,此譯云聞者城」, 법경경 번역 「聞物國」, 「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사람 이름에서 온 나라 이름);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가 「보류(5자 이상)」로 둔 자리라 먼저 판별했다: 정원 한 곳의 이름이므로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옮겼다. 뜻 — 祇樹는 祇(祇陀, 소리)+樹(뜻)의 음의합벽으로 祇陀 태자가 자기 나무를 승가에 바쳐 줄여 祇樹라 했고(음의 慧琳 0368a03), 給孤獨은 뜻옮김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梵云阿那陀,此云無親屬…誓救孤獨…古經云阿那邠邸」), 園은 동산. 한 이름으로 볼지 祇樹+給孤獨의 합으로 볼지는 표가 보류한 대로 불확실로 신고한다. 팔리 662.1 Sāvatthinidānaṃ은 Sāvatthī 이름만 읽혀 그만큼만 맞고 Jeta·Anāthapiṇḍika 쪽은 접힌 안쪽이라 읽지 못해 partial(사전 AI 정렬도 sa10/0.3 ↔ sn22.15/15.1을 같은 꼴로 매김). 음역계통: 舍衛 ← 팔리 Sāvatthī / 범어 śravasthi(당대, `_전거_sa876` 舍衛 행) —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_전거`에 팔리 후보(Jetavana · Anāthapiṇḍika)뿐이고 ⚠다른 부(DA)의 대역이라는 주의가 붙어 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붓다를 이 좌표와 0223b01.1에서는 佛, 0222c14.1에서는 世尊으로 쓴다. 확정역이 각각 부처님/세존이라 통일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4.1:662.1
爾時,世尊告諸比丘:「有四種禪,有禪三昧善,非正受善;有禪正受善,非三昧善;有禪三昧善,亦正受善;有禪非三昧善,非正受善。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선이 있다. 삼매가 좋고 바른 받아들임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이 좋고 삼매가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가 좋고 바른 받아들임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가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이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爾時는 「그때」, 世尊은 [구속] 세존, 告는 「말씀하셨다」(붓다의 발화는 평서). 諸比丘의 諸는 복수 표지인데 「비구들」의 -들이 이미 복수를 지므로 「여러」를 붙이지 않았다. 有四種禪의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를 유지했다(사전 四種禪 ① 잡아함 14회 · 이 경에만). 禪은 禪那의 줄임인 소리 옮김이라 독음 「선」(사전 禪 ⑤ 玄應·慧琳 0491b14 「禪那云靜慮」 인용); 한문에 사람을 가리키는 글자가 없어 닦는 이로 옮기지 않았다. 三昧는 소리 옮김이라 독음 「삼매」(사전 三昧 ⑤ 玄應·慧琳 0358c10 「三摩提…皆訛也,正云三摩地,此譯云等持」 인용). 3분할 표는 三昧를 혼합(음의합벽)으로 분류했으나 이 낱말은 전체가 소리 옮김이라 표와 어긋난다고 보며, 표의 지시대로 신고한다(한 경 안 표기는 「삼매」로 통일). 正受는 뜻 옮김(正+受)이라 소리가 아닌 뜻으로 「바른 받아들임」: 확정역이 없고 후보는 독음 「정수」·「바른 받아들임」인데 독음은 ②가 막은 늘어놓기라 뜻을 택했다. 이 경은 三昧와 正受를 맞세워 가르므로(非…善) 둘은 다른 낱말이며, 사전 正受 ⑥(丁福保 1922)의 「三昧의 일역」은 후대 눈이라 쓰지 않았다(사전 正受 ① 잡아함 249회 · 84경, 앞 三昧 15회). 善은 도덕적 선악이 아닌 서술어로 읽어 「좋다」로 옮겼으나 좋다/능숙하다 두 갈래가 열려 있다. 亦는 셋째 갈래(둘 다 좋음)를 가르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로만 옮겼다. 이 좌표의 넷째 갈래는 「非三昧善,非正受善」으로 亦가 없다(다른 열세 좌표는 모두 亦非) — 교감주가 없으므로 저본대로 亦 없이 옮겼고 통일하지 않는다. 팔리 대응: 662.2~662.7이 같은 네 갈래 틀이다. 구조·배열 — 팔리 셋째 = 둘 다 아님(662.6), 넷째 = 둘 다 있음(662.7)인데 한문은 셋째 = 둘 다 좋음, 넷째 = 둘 다 좋지 않음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문장 유무 — 662.3 Katame cattāro?(무엇이 넷인가)에 한문 대응이 없고, 662.8~662.10(둘 다 능한 이가 으뜸이라는 결어와 우유·酪 비유)에 해당하는 한문은 이 경 전체에 없음이 확인된다. 개별 어휘 — 팔리 jhāyī(선정을 닦는 이)는 사람인데 한문 禪에는 사람 표지가 없고, 팔리 samādhismiṃ samādhikusalo(…에서 …에 능한)는 한문 三昧善으로 줄어 있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번역기법 — 팔리 662.2의 호격 bhikkhave가 한문에서는 발화 밖 「告諸比丘」로 옮겨져 발화 안에서는 탈락한다. 음역계통: 比丘 ← 팔리 bhikkhu / 범어 Bhikṣu(大正藏 편자의 근대 비정, 범어 쪽으로 쏠린 비정임을 `_전거` 주의서가 밝힘) —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이 좌표는 世尊, 0.3·0223b01.1은 佛(확정역 세존/부처님 각각 고정). 爾時世尊告諸比丘는 접힌 662.1(사위 인연) 안쪽과 맞닿을 수 있으나 읽지 못해 미대응으로 둔다. 팔리 쪽 어휘 대응(正受 ↔ samāpatti 등)은 sn34.1 칸의 자리로 세운 내 읽기이며 사전에 사람 근거가 없다 — 본문에는 들이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4.1:662.2~662.7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1
「復次,四種禪,有禪住三昧善,非住正受善;有禪住正受善,非住三昧善;有禪住三昧善,亦住正受善;有禪非住三昧善,亦非住正受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에 머묾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에 머묾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에 머묾이 좋고 삼매에 머묾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에 머묾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에 머묾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에 머묾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에 머묾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住는 「머묾」: 한문 어순(住三昧)에서 三昧가 住의 자리로 읽혀 조사 「에」를 붙였다(正受도 같다). 팔리 대응: 내 읽기로 住 ↔ ṭhiti(보조 경 sn34.2 ṭhitikusala, 663.4~663.7)이며 사전·전거에 사람 근거는 없다 — 본문에는 들이지 않았다. 구조·배열 — 투입된 팔리는 열 경이 각각 독립인데 한역은 한 경에 열네 칸을 「復次」로 잇고, 팔리 셋째 = 둘 다 아님(663.6) · 넷째 = 둘 다 있음(663.7)이 한문에서는 자리가 바뀐다. 문장 유무 — 663.3 Katame cattāro?에 한문 대응 없음. 번역기법 — 663.2의 호격 bhikkhave가 한문에는 없다. 개별 어휘 — 住 ↔ ṭhiti(위 내 읽기).
니까야 대응 일부 SN 34.2:663.2~663.7
「復次,四種禪,有禪三昧起善,非正受起善;有禪正受起善,非三昧起善;有禪三昧起善,亦正受起善;有禪非三昧起善,亦非正受起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일어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일어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일어남이 좋고 삼매의 일어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일어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일어남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일어남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일어남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起는 「일어남」: 한문에 從 같은 출발점 표지가 없어 「삼매에서 일어남」(나옴)과 「삼매의 일어남」(생겨남) 두 갈래가 모두 열려 있고, 한국어 「삼매의 일어남」이 같은 폭을 지닌다. 팔리 vuṭṭhāna(나옴)는 증언 쪽 정보라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 다의어_판별 신고. 팔리 대응: 내 읽기로 起 ↔ vuṭṭhāna(보조 경 sn34.3 vuṭṭhānakusala, 664.4~664.7)이며 사전·전거에 사람 근거는 없다. 구조·배열 — 한역은 復次로 잇고, 팔리 셋째 = 둘 다 아님(664.6) · 넷째 = 둘 다 있음(664.7)이 한문에서는 자리가 바뀐다. 문장 유무 — 664.3 Katame cattāro?에 한문 대응 없음. 번역기법 — 664.2의 호격 bhikkhave가 한문에는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4.3:664.2~664.7
「復次,四種禪,有禪三昧時善,非正受時善;有禪正受時善,非三昧時善;有禪三昧時善,亦正受時善;有禪非三昧時善,亦非正受時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때가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때가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때가 좋고 삼매의 때가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때가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때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때가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때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時는 「때」: 시점(때)과 적시(때맞음) 두 갈래가 열려 있다. 팔리 대응: 틀(네 갈래)은 보조 열 경과 같아 한문 셋째·넷째가 자리가 바뀌는 구조·배열 갈림은 확인되나, 이 칸의 낱말 時의 팔리 짝을 보조 경에서 어휘로 세울 근거가 사전·전거에 없다. 한역은 열네 칸, 보조 팔리는 열 경이라 순번으로 짝짓지 않는다 —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處善,非正受處善;有禪正受處善,非三昧處善;有禪三昧處善,亦正受處善;有禪非三昧處善,亦非正受處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곳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곳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곳이 좋고 삼매의 곳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곳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곳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곳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곳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處는 「곳」: 장소 · 사전 處 ①이 보이는 입처(六入處)의 뜻 · 경우의 뜻이 갈려 있다(사전 處 ① 잡아함 1365회, 앞 六入 132).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處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迎善,非正受迎善;有禪正受迎善,非三昧迎善;有禪三昧迎善,亦正受迎善;有禪非三昧迎善,亦非正受迎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맞이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맞이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맞이함이 좋고 삼매의 맞이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맞이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맞이함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맞이함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맞이함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迎은 「맞이함」: 마중 · 받아들임 등 갈래가 있고 이 칸의 앞뒤 낱말이 뜻을 가르지 않는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迎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念善,非正受念善;有禪正受念善,非三昧念善;有禪三昧念善,亦正受念善;有禪非三昧念善,亦非正受念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생각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이 좋고 삼매의 생각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생각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생각함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念은 「생각함」: 사전 念 ①의 앞 칸은 「作是」 373회(생각하다 쪽), 뒤 칸은 「覺分」 63회(念 뒤에 覺分이 오는 마음챙김 계열 쓰임)로 갈린다. 이 좌표는 三昧念·正受念의 念이라 둘 중 어느 쪽인지 저본만으로 가려지지 않아 본문은 뜻을 한쪽으로 좁히지 않는 「생각함」으로 두었다. 팔리 쪽 짝말은 증언 쪽 정보라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念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念不念善,非正受念不念善;有禪正受念不念善,非三昧念不念善;有禪三昧念不念善,亦正受念不念善;有禪非三昧念不念善,亦非正受念不念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이 좋고 삼매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念不念은 念과 不念을 병렬로 끊어 「생각함과 생각하지 않음」으로 옮겼다. 念不念을 한 덩어리(생각함/생각하지 않음의 구별)로 보거나 念+不念(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함)으로 끊을 수도 있어 저본 문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이 칸 낱말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來善,非正受來善;有禪正受來善,非三昧來善;有禪三昧來善,亦正受來善;有禪非三昧來善,亦非正受來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옴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옴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옴이 좋고 삼매의 옴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옴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옴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옴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옴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來는 「옴」: 다가옴과 미래(去來의 來) 두 갈래가 열려 있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來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惡善,非正受惡善;有禪正受惡善,非三昧惡善;有禪三昧惡善,亦正受惡善;有禪非三昧惡善,亦非正受惡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나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나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나쁨이 좋고 삼매의 나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나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나쁨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나쁨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나쁨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惡은 「나쁨」(악)으로 옮겼으나 「싫어함」(오)의 읽기도 열려 있다(사전 惡 ① 잡아함 457회 · 뒤 不善 126). 「삼매의 나쁨이 좋다」는 어색한 직역이지만 한문이 그렇게 서 있어 풀지 않았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惡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方便善,非正受方便善;有禪正受方便善,非三昧方便善;有禪三昧方便善,亦正受方便善;有禪非三昧方便善,亦非正受方便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방편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방편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방편이 좋고 삼매의 방편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방편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방편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방편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방편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方便은 한국 불교계 정착어 「방편」으로 옮기되, 사전 方便 ① 잡아함 458회가 앞 精勤 66 · 當勤 42를 보이듯 아함에서는 「노력」 쪽 쓰임도 많아 수단 / 노력 두 갈래가 열려 있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方便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止善,非正受止善;有禪正受止善,非三昧止善;有禪三昧止善,亦正受止善;有禪非三昧止善,亦非正受止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그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그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그침이 좋고 삼매의 그침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그침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그침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그침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그침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止는 「그침」: 그침 · 멈춤 · 선정의 한 갈래(止)로 갈려 있다(사전 止 ① 잡아함 239회).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止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舉善,非正受舉善;有禪正受舉善,非三昧舉善;有禪三昧舉善,亦正受舉善;有禪非三昧舉善,亦非正受舉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들어올림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들어올림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들어올림이 좋고 삼매의 들어올림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들어올림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들어올림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들어올림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들어올림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舉는 「들어올림」: 들다 · 거론함(舉罪) 등이 갈린다(사전 舉 ① 잡아함 198회 · 뒤 衣鉢 64 · 罪比 18).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舉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復次,四種禪,有禪三昧捨善,非正受捨善;有禪正受捨善,非三昧捨善;有禪三昧捨善,亦正受捨善;有禪非三昧捨善,亦非正受捨善。」
「다시 다음으로, 네 가지 선에는 삼매의 버림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버림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바른 받아들임의 버림이 좋고 삼매의 버림이 좋지 않은 선이 있고, 삼매의 버림이 좋고 바른 받아들임의 버림도 좋은 선이 있고, 삼매의 버림이 좋지 않고 바른 받아들임의 버림도 좋지 않은 선이 있다.」
주 처리는 0222c14.1과 같다(선·삼매는 독음, 正受는 「바른 받아들임」, 善은 「좋다」, 亦는 뜻이 실린 자리라 조사 「도」,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復次는 「다시 다음으로」, 四種禪은 有 없는 주제어라 「네 가지 선에는」). 捨는 「버림」: 버림과 평정(마음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음) 두 갈래가 열려 있다(사전 捨 ① 잡아함 515회). 이 좌표에서 인용 「…」가 닫힌다(」). 팔리 대응: 틀은 보조 열 경과 같으나 낱말 捨의 팔리 짝을 세울 어휘 근거가 없어 미대응. 구조·배열은 0222c23.1과 같다. 팔리 662.8~662.10(결어와 비유)에 해당하는 한문이 이 경에 없음은 0222c14.1에서 신고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4.1:662.2~662.7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은 [구속] 부처님, 說은 「말씀하시고」(존칭), 此經은 「이 경」, 已는 완료를 나타내는 자리라 「나자」로 받았다. 諸比丘의 諸는 복수 표지라 「비구들」의 -들로 흡수했고 比丘는 [구속] 비구. 所說의 所는 앵커가 [피동·명사화] 「~하는 바」를 훈독투로 보므로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는 「기뻐하며」(음의 慧琳 0753a01 「歡喜悅也」 인용), 奉行은 「받들어 행하였다」(사전 奉行 ① 잡아함 863회, 앞 歡喜 829 — 종결 정형구). 팔리 대응: 이 경의 맺음 정형구 「佛說此經已…歡喜奉行」에 짝지을 팔리 줄이 없다. sn34.1은 접힌 곳이 없어 662.10 끝의 인용 닫힘 표지 다음에 놓일 자리를 읽을 수 있고, 거기 있는 662.11 Paṭhamaṃ은 「첫째」라는 편집상 순번 표지라 내용이 다르므로 없음(absent)으로 적는다(사전 歡喜 ② AI 정렬의 sa103/0030c10.1 ↔ sn22.89/89.119 Attamanā…abhinanduṃ은 다른 경의 팔리 종결구다). 문장 유무 — 한문에만 맺음 정형구가 있고, 팔리 662.8~662.10(결어와 우유·酪 비유)에 해당하는 한문은 이 경 전체에 없다. 음역계통: 比丘 ← 팔리 bhikkhu / 범어 Bhikṣu(근대 비정) —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이 좌표는 佛, 0222c14.1은 世尊(확정역 부처님/세존 각각 고정, 통일하지 않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4.1:66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