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八九)
(팔백팔십구)
주 제목 칸으로, 잡아함 제889경의 번호 표시다. 저본 「(八八九)」의 수를 읽어 옮겼다. 이 조각의 투입물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없어 두 증언 항 모두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 없음을 확인한 것이 아니다. 투입물 머리말 가운데 `_전거_sa882`만 「大正 882」로 적었고 나머지는 「大正 889」다. 저본 제목 八八九에 따랐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다(정형구 파일: 이 아함 전권 1332경, 이 경 1;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1332경, 발화 첫머리 0/1333). 如是의 如는 앵커의 「같이」(비유)로 옮겼고 我聞은 「나는 들었다」로 옮겼다. 이 조각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주어지지 않아 두 항 모두 미대응(아직 안 잡음)이다. 사전 ②의 AI 정렬 좌표(sa1/0.2 등)는 다른 경의 같은 정형구일 뿐 이 경의 대응이 아니므로 대응 줄에 올리지 않았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은 [구속] 그대로 썼다. 一時=한때(사전 一時 ① 1345회), 住=머물다. 붓다의 행위는 높여 「머무셨다」로 옮겼다. 舍衛(3분할 표: 정착어, 사위)는 정착형 「사위」를 쓰고 國은 「국」으로 두었다. 舍衛는 소리로 옮긴 이름이며, 뜻은 전거에 따라 갈린다 — 음의 舍衛國(慧琳 0367c24)은 이를 「梵語訛」라 하고, 十二遊經의 뜻옮김 「無物不有國」,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법경경의 「聞物國」, 善見律의 「舍衛者人名也」(먼저 그 땅에 살던 사람 舍衛의 이름이 국호가 됨)를 나란히 든다(원문 끝이 잘려 있어 그 뒤는 보지 못했다).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전거표(`_전거_sa882`)에는 舍衛→ 팔리형 Sāvatthī / 당대 범어형 śravasthi로 갈려 있다(⚠다른 부(DA)의 대역). 계통은 정도평 몫이라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이므로 먼저 이름인지 가렸다: 이 경 외에도 잡아함에 948회·827경 나오는 기원정사 이름이고, 구성은 祇(소리: 祇陀·祇洹·祇園, 음의 慧琳 0368a03에서 「正梵音云誓多 此譯為勝」) + 樹(뜻: 태자가 자기 나무를 공양해 「略云祇樹」) + 給孤獨(뜻: 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巨富多財 誓救孤獨…古經云阿那邠邸」, 곧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 園(동산)이다. 소리와 뜻이 섞인 이름이라 §⑤의 정착어로 보아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을 쓰되, 뜻은 위와 같음을 여기 적는다. 전거표의 대역은 팔리형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다. 정착어 목록과 유형 확정은 정도평 몫이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時,有異婆羅門來詣佛所,問訊安否,問訊已,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名等起。」
때에 다른 한 바라문이 와서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안부를 묻고 안부 묻기를 마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의 이름은 등기입니다.」
주 婆羅門=바라문, 世尊=세존, 佛=부처님은 [구속] 그대로다. 婆羅門은 음역(3분할 표)이라 한자 독음을 따른다(전거표 팔리형 Brahmaṇa / Brāhmaṇa, 근대 범어형 Brāhmaṇa — 기계 집계는 갈림으로 세었으나 표기 차이로 보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婆羅門 慧琳 0325c03 · 0439c22 · 0466a06 인용). 時=「때에」로 옮기고, 爾時(0224a26.1)의 「그때에」와 글자대로 가렸다. 有異婆羅門의 有는 존재 도입이라 「~이 있어」(회피어)를 쓰지 않고 「한」으로 풀어 「다른 한 바라문이」라 했다(사전 有 ① 뒤 異比 81 참고, 3분할 표 ③의 「한 비구가」와 같은 처리). 異는 「다른」. 佛所의 所는 앵커가 [피동·명사화]로 달았으나 여기서는 처소(부처님이 계신 곳)라 「계신 곳」으로 풀었다. 來詣는 「와서 … 이르러」로 둘 다 살렸다. 問訊安否는 「안부를 묻고」, 問訊已는 「안부 묻기를 마치고」(已=완료, 음의 問訊 慧琳 0428c12 「訊問也」, 전거표 問訊→ 당대 범어형 pṛccha 참고). 退坐一面은 「물러나 한쪽에 앉아」, 白佛言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白과 言을 합치지 않음; 사전 白佛 ① 881회). 바라문은 부처님께 말하므로 문말을 존댓말로 통일했다. 我名等起의 名은 「이름은 ~이다」의 풀이로 「저의 이름은 등기입니다」. 等起가 소리인지 뜻인지: 다음 좌표에서 부처님이 「起於信…」으로 뜻을 풀어 이름과 개념을 맞대므로 뜻이 실린 말로 보이나, 확정역이 없고 3분할 표에도 없다. 한자 독음 「등기」로 두고(한자가 데이터에 남아 起와의 이어짐이 유지된다) 「함께 일어남」 등의 뜻옮김은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판별 근거는 위와 같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佛告婆羅門:「夫等起者,謂起於信,起戒、聞、捨、慧,是為等起,非名字為等起也。」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고하셨다: 「등기란 믿음에서 일어나고 계·들음·버림·지혜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르니, 이것이 등기이다. 이름이 등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주 夫는 문두 발어사라 따로 옮기지 않았다(회피어 「무릇」은 뜻이 실려 있지 않아 쓰지 않음). 者는 명사화·주제로 「~란」, 謂는 「~을 이르니」. 於는 조사가 지므로 「믿음에서」. 是為等起·非名字為等起의 為는 앵커가 [위하여·피동]으로 달았으나 여기서는 판단 계사(「~이다」·「~이 되다」)이고 為…所 피동 구문이 아니다. 也는 평서 종결이라 「~아니다」로 흡수.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起는 자동(일어나다)과 타동(일으키다)이 모두 가능한데, 起於信의 於와 짝으로 보아 「~에서 일어나고」로 옮겼다. 起戒聞捨慧는 於가 없어 같은 풀이를 이었다 — 「믿음을 일으키고 계를…」로 읽을 여지가 있어 [불확실:격·태·구문]. 信은 [정형구 행](saddhā)이라 확정역이 아니므로 문맥으로 「믿음」이라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부재]를 남겼다. 戒는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계」, 慧는 「지혜」. 聞은 「들음」, 捨는 「버림」으로 축자로 옮겼다 — 聞은 다문(들어 배움), 捨는 베풂·내려놓음·평정으로도 읽히나(사전 捨 ① 뒤 覺分 54·已離 12) 이 열거에서 어느 뜻인지는 저본이 정하지 않아 [불확실:다의어_판별]. 名字는 「이름」으로 옮겼다(사전 名字 ① 22회). 名(0224a23.1, 이름이 ~이다)과 名字(명칭)는 한자가 다르나 같은 한국어로 겹쳤으니 한자는 데이터에 남는다. 이 좌표의 말놀이(起를 풀어 等起를 정의하고, 이름과 개념을 가름)는 한문 안에서 선다.
爾時,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從坐起而去。
그때에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갔다.
주 爾時=「그때에」. 佛所說의 所는 앵커대로 「~하는 바」를 쓰지 않고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說의 주체가 붓다라 높임). 歡喜隨喜는 닫는 정형구다(사전 歡喜 ① 1340회·1164경, 앞 所說 1151, 뒤 隨喜 335). 歡喜=「기뻐하고」, 隨喜=「따라 기뻐하며」로 隨를 뜻으로 풀었다 — 정착 술어 「수희」가 있으나 직역 규칙상 한자 음독을 피하고,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 사전 ②의 AI 정렬(사람 확인 전)은 sa107/0033a17.1 ↔ PN:sn22.1/1.17 [partial]을 보이나 다른 경의 좌표이고 이 경의 증언이 아니므로 대응 줄에는 올리지 않았다. 從坐起而去: 從은 「에서」, 坐는 「자리」, 起는 이 자리에서 물리적 「일어나다」(앞 좌표의 起와 뜻이 다름), 而는 앵커대로 「~하여」에 흡수해 「일어나」, 去=「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