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871

SĀ 871

교차 검사교차 검사 18현대역 준비 중

(八七八)

(878)

주 한문 쪽은 경 번호 표지 「(八七八)」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쪽에는 번호 「69」(69.0)와 경 이름 「Padhānasuttaṃ」(0.3)이 선다. 번호 표지가 양쪽에 있어 일부(partial)로 짚었으나 두 숫자는 서로 다른 번호 체계(잡아함 경 번호 / 앙굿따라 니까야 4집 번호)의 값이라 숫자끼리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 이름은 한문 저본에 없다(없음확인, 이 저본 기준).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0.3

AG:sa871/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정형구 파일: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나온다). 如是는 「이와 같이」로 옮기고 비유·가정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투입된 팔리 an4.69 본문에는 서두 문장이 없다 — 제목(0.3)·번호(69.0) 바로 뒤가 69.1이다. 그 서두 자리를 69.0 뒤로 짚어 없음확인(absent)으로 적는다(투입 본문 기준이며 다른 판본의 서두 유무는 이 조각에서 보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69.0

AG:sa871/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르셨다.

주 투입된 팔리 본문에 처소 문장이 없다(0.2와 같은 자리, 없음확인). 佛은 [구속] 「부처님」. 舍衛國 — 舍衛는 정착어(3분할 표)라 정착형 「사위」에 國을 붙여 「사위국」. 이름의 뜻: 도시·나라 이름이며 음의 자료에 풀이가 여럿 있다(음의 舍衛國,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 義譯으로 「無物不有國」, 「聞者城」, 「聞物國」을 들고 善見律은 舍衛가 사람 이름이라 한다) —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 — 이름임을 판별했고(전거표가 장소 한 항목 「祇樹給孤獨園 ↔ Jetavana, Anāthapiṇḍika」로 싣는다. 단 ⚠다른 부(DA)의 대역이라 이 경 문맥의 확정은 아니다) 유형은 정착어(§⑤ 예시 「기수급고독원」)로 보아 정착형 그대로 쓴다. 뜻: 祇樹는 祇(음역, 祇陀 태자의 이름)+樹(뜻, 나무)의 음의합벽이고(음의 祇樹, 慧琳 0368a03: 祇陀太子가 나무를 남겨 공양했으므로 「祇樹」라 줄여 한다), 給孤獨은 의역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給孤獨, 慧琳 0368a05: 義譯, 「誓救孤獨」), 園은 동산. 3분할 표가 이 복합을 「보류」로, 善法을 「혼합」으로 올렸으나 앞의 것은 위처럼 이름으로 판별했고 善法은 이 경에서 이름이 아니라 「선한 법」이다(09.2 참조). 음역계통: 舍衛 — 팔리형 Sāvatthī / 범어형(당대) śravasthi (전거표 舍衛 행)로 두 계통이 갈린다.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에서는 佛로, 04.1·12.1에서는 世尊으로, 15.1에서는 다시 佛로 부른다. 확정역(부처님/세존)대로 옮겼다. 一時는 「한때」, 住는 「머무르셨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69.0

AG:sa871/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有四正斷。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네 가지 바른 끊음이 있다.

주 爾時世尊告諸比丘 설화 문장은 팔리 본문에 없다. 팔리는 호격 bhikkhave를 발화 안에 두는데 한역은 그것을 告諸比丘의 서술로 세웠다(번역기법일 수 있으며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四正斷 ↔ cattāri padhānāni: 한문에는 正이 있고 an4.69 팔리 본문에는 padhāna뿐이다(개별 어휘 갈림,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斷은 「끊음」으로 일관한다(05.1 참조).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를 살렸다. 諸比丘는 「비구들」(諸의 복수는 「들」이 진다). 世尊·比丘는 [구속] 확정역. 한자 흔들림: 0.3의 佛과 이 좌표의 世尊이 같은 분을 가리키는 다른 한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1

AG:sa871/0221b04.1 · 교차 검사

何等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何等為四 ↔ Katamāni cattāri. 云何류 의문은 어미 의문형이 지므로 等·為를 따로 옮기지 않았다(사전 等為 ① 「何」 앞 532/581).

니까야 대응 같음 AN 4.69:69.2

AG:sa871/0221b04.2 · 교차 검사

一者斷斷,二者律儀斷,三者隨護斷,四者修斷。

첫째는 끊는 끊음, 둘째는 율의 끊음, 셋째는 따라 지키는 끊음, 넷째는 닦는 끊음이다.

주 이름의 짝(전거표): 斷斷 ↔ pahānappadhāna, 律儀斷 ↔ saṃvarappadhāna, 隨護斷 ↔ anurakkhaṇappadhāna, 修斷 ↔ bhāvanāppadhāna(전거표의 修斷 칸은 「Bhavanap」로 잘려 있다). 배열: 팔리는 saṃvara·pahāna·bhāvanā·anurakkhaṇā, 한문은 pahāna·saṃvara·anurakkhaṇā(隨護)·bhāvanā(修)이다 — 앞의 둘, 뒤의 둘이 서로 자리를 바꾼다. 3분할 표는 修斷을 음역(한자 독음)으로 1차 분류했으나 修(닦다)·斷(끊다)은 뜻 글자이므로 의역으로 보아 뜻으로 옮겼다(표는 기계 1차 분류, 저본이 이긴다). 斷은 확정역이 없어 「끊음」으로 일관했다. 斷斷은 앞 斷(끊는다)+뒤 斷(끊음)의 겹침으로 읽었다. 隨護는 「따라(隨) 지킴(護)」. 律儀는 한국 불교계에서 통용되는 술어 「율의」로 두었다(풀이는 律=규율, 儀=법도 — 사전 律儀 ⑥ 丁福保: 「律者法律,儀者儀則」, 가장 가벼운 참고). 「규율과 법도」로 풀어 쓰는 길도 있어 역어 선택을 불확실로 남긴다. 者는 서수 뒤 명사화라 「첫째는」으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69:69.3

AG:sa871/0221b05.1 · 교차 검사

云何為斷斷?

무엇이 끊는 끊음인가?

주 云何為斷斷 ↔ Katamañca pahānappadhānaṃ. 질문의 내용은 같고 순서만 다르다 — 팔리는 saṃvara 질문(69.4)이 먼저 오고 이 질문(69.7)은 둘째다. 역어는 0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69:69.7

AG:sa871/0221b06.1 · 교차 검사

謂比丘已起惡不善法斷,生欲、方便、精勤、心攝受,是為斷斷。

이른바 비구가 이미 일어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으려고, 의욕을 내고, 방편을 쓰고, 부지런히 힘쓰고, 마음을 거두어 받으니, 이것이 끊는 끊음이다.

주 已起惡不善法斷 ↔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내용 같음). 한문은 生欲·方便·精勤·心攝受 네 항, 팔리는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다섯 구다 — 항 수가 다르며 어느 항이 어느 구에 서는지는 이 조각에서 판정하지 않는다. 한문 네 항은 병렬만 있고 품사 표지가 없다 — 나열을 합치지 않고 동사구로 풀었고(「방편을 쓰고」의 「쓰고」는 한국어 술어 보충), 이 품사 읽기는 불확실이다(사전 方便 ① 앞 精勤 66, 사전 攝受 ① 앞 精勤 10). 정형구 행 주의: 生欲의 生은 jāti(태어남)가 아니라 「내다」의 동사이고, 攝受의 受는 vedanā(느낌)가 아니다 — 문맥으로 옮기고 다의어 판별을 불확실로 남긴다. 惡·不善은 두 어휘를 합치지 않고 「악하고 선하지 않은」으로 옮겼다. 已起…法斷은 「…법을 끊으려고」로 읽었다(목적절+斷). 이 좌표에만 心攝受로 心이 있다(08.1·09.2·11.2는 攝受). 是為(이것이 …이다)와 08.1 이하의 是名(이를 …라 이름한다)을 구별해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8

니까야 대응 같음 AN 4.69:69.9

AG:sa871/0221b06.2 · 교차 검사

云何律儀斷?

무엇이 율의 끊음인가?

주 云何律儀斷 ↔ Katamañca saṃvarappadhānaṃ. 팔리에서는 첫째 질문, 한문에서는 둘째 질문이다. 역어는 0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69:69.4

AG:sa871/0221b07.1 · 교차 검사

未起惡不善法不起,生欲、方便、精勤、攝受,是名律儀斷。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욕을 내고, 방편을 쓰고, 부지런히 힘쓰고, 거두어 받으니, 이를 율의 끊음이라 이름한다.

주 未起惡不善法不起 ↔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내용 같음). 한문에 令이 없이 不起뿐이어서 「않도록」은 목적 용법으로 읽은 것이다(06.2와 같은 불확실). 한문 네 항 대 팔리 다섯 구, 그리고 心이 없는 攝受(팔리는 cittaṃ이 늘 있다)는 06.2 서술과 같다. 이 좌표는 팔리 saṃvara 정의와 서고 이름도 律儀斷으로 서로 맞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5

니까야 대응 같음 AN 4.69:69.6

AG:sa871/0221b08.1 · 교차 검사

云何隨護斷?

무엇이 따라 지키는 끊음인가?

주 云何隨護斷 ↔ Katamañca anurakkhaṇāppadhānaṃ(이름 기준 짝). 자리 기준으로는 한문 셋째 질문이 팔리 셋째 질문(69.10, bhāvanā)과 선다 — 어느 기준으로 짝을 짓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자리이며 09.2 서술을 보라. 역어는 0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69:69.13

AG:sa871/0221b09.1 · 교차 검사

未起善法令起,生欲、方便、精勤、攝受,是名隨護斷。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법을 일어나게 하려고, 의욕을 내고, 방편을 쓰고, 부지런히 힘쓰고, 거두어 받으니, 이를 따라 지키는 끊음이라 이름한다.

주 정의(未起善法令起)는 팔리 bhāvanāppadhāna의 정의(69.11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와 서는데, 이름(隨護斷)은 전거표상 anurakkhaṇappadhāna의 글자다. 곧 이 한문 단락에서 이름과 정의가 팔리와 교차한다(맺음 69.12는 bhāvanāppadhānaṃ이라 이름에서 엇갈림=divergent). 11.2에서 반대 방향으로 한 번 더 일어난다. 자리(셋째 단락)로는 팔리 셋째 단락 69.10–69.12와 선다. 본문은 한문대로 옮기고 원인은 판정하지 않는다. 저본 이문: 大正 교감주에 따르면 이 좌표의 「精勤、攝受」 두 항이 宋·元·明(교감주에는 三本도)에 없다. 본문은 大正대로 옮겼다. 3분할 표의 善法 「혼합(Sudhammā)」은 이름이 아니라 「선한 법」이므로 고유명사 처리를 하지 않았다. 令起는 사역 「일어나게 하려고」. 이 외 한문 네 항 대 팔리 다섯 구, 心 없는 攝受는 06.2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69:69.12

AG:sa871/0221b09.2 · 교차 검사

云何修斷?

무엇이 닦는 끊음인가?

주 云何修斷 ↔ Katamañca bhāvanāppadhānaṃ(이름 기준 짝). 자리 기준으로는 한문 넷째 질문이 팔리 넷째 질문(69.13, anurakkhaṇā)과 선다. 09.1·11.2 서술을 보라. 역어는 0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69:69.10

AG:sa871/0221b11.1 · 교차 검사

已起善法增益修習,生欲、方便、精勤、攝受,是名修斷。」

이미 일어난 선한 법을 더해 늘리고 닦아 익히도록, 의욕을 내고, 방편을 쓰고, 부지런히 힘쓰고, 거두어 받으니, 이를 닦는 끊음이라 이름한다.”

주 정의 已起善法增益修習 ↔ 69.14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팔리는 유지·불망·증대·광대·닦음·원만의 여러 항이고 한문은 增益·修習 두 어휘로 줄어 있다(partial). 정의는 팔리 anurakkhaṇā 쪽(69.14)과 서는데 이름 修斷은 bhāvanā 쪽 이름(69.12)에 서는 글자다(맺음 69.15는 anurakkhaṇāppadhānaṃ이라 엇갈림=divergent). 09.2와 짝을 이룬 교차다. 69.14에는 bhāvanāya(닦음)가 들어 있어 한역 修習이 여기에 서는 면이 있으나 교차의 원인은 판정하지 않는다. 맺음 문장 69.16 「Imāni kho, bhikkhave, cattāri padhānānī」는 한문에 대응하는 문장이 없다(한문은 이 좌표 끝의 」로 발화를 닫는다, 없음확인). 增益은 「더해 늘림」, 修習은 「닦아 익힘」(사전 增益 ① 17회·뒤 修習 3). 善法은 09.2와 같이 「선한 법」으로 이름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1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69:69.1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69.16

AG:sa871/0221b11.2 · 교차 검사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 본문은 69.16 바로 뒤에서 게송(69.17)으로 들어가며 도입 문장이 없다(자리를 69.17 앞으로 짚은 없음확인). 한문의 「爾時世尊即說偈言」은 정형구다(사전 即 ① 뒤 說偈 206). 即은 시간적 이어짐이 실려 「곧」을 살렸다. 偈는 「게송」, 世尊은 [구속] 「세존」.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69.17

AG:sa871/0221b12.1 · 교차 검사

「斷斷及律儀,隨護與修習,

“끊는 끊음과 율의, 따라 지킴과 닦아 익힘,

주 팔리 69.17 「Saṃvaro ca pahānañca, bhāvanā anurakkhaṇā」는 saṃvara·pahāna·bhāvanā·anurakkhaṇā의 순서이고 한문은 pahāna·saṃvara·anurakkhaṇā(隨護)·bhāvanā(修習)의 순서다(05.1과 같은 교차 배열).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律儀斷은 律儀로, 隨護斷은 隨護로, 修斷은 修習으로 나타난다(게송이 斷을 떼고 修는 習으로 바꾼다). 통일하지 않고 각각 「율의」「따라 지킴」「닦아 익힘」으로 옮겼다. 게송 행은 한문 행대로 유지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69:69.17

AG:sa871/0221b13.1 · 교차 검사

如此四正斷,諸佛之所說。」

이와 같은 네 가지 바른 끊음은 여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다.”

주 如此四正斷 ↔ Ete padhānā cattāro(正 유무는 04.1과 같다). 諸佛之所說 ↔ desitādiccabandhunā: 팔리는 단수의 별칭 「해의 친족」(ādiccabandhu)으로 한 분을 가리키는데 한문은 복수 諸佛이다. 諸는 뜻이 실려 「여러」로 세웠고 佛은 [구속] 「부처님」. 之所說은 관형절로 풀어 「설하신 것」(「…하는 바」는 쓰지 않았다). 팔리의 셋째 행 69.19 「Yo hi bhikkhu idhātāpī, khayaṃ dukkhassa pāpuṇe」(열심히 하는 비구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른다는 구절)는 한문에 대응이 없다 — 한문 게송은 두 행에서 끝난다(없음확인, 자리는 이 게송 끝).

니까야 대응 일부 AN 4.69:69.1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69.19

AG:sa871/0221b14.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문의 맺음 정형구 「佛說此經已…歡喜奉行」(사전 奉行 ① 잡아함 863회·앞 歡喜 829)에 대응하는 팔리 문장이 없다. 팔리 69.20 「navamaṃ」은 아홉째라는 번호 맺음표지이지 같은 정형구가 아니므로 대응으로 잡지 않았다(없음확인, 이 팔리 본문 기준).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04.1·12.1에서는 世尊으로, 여기서는 佛로 부른다. 확정역(세존/부처님)대로 옮겼다. 歡喜는 「기뻐하며」(음의 歡喜, 慧琳 0753a01: 「歡喜悅也」), 說…已는 「설하시고 나자」, 聞佛所說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諸比丘는 「비구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69:69.20

AG:sa871/0221b15.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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