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五八)
(858)
주 이 좌표는 대정장 경 번호만 싣는다. 한문 본문에는 경 이름이 없고, 이름 「Nandiya」는 편자 교감주(「A. XI. 14. Nandiya.」)에만 나온다. 팔리 제목 「Nandiyasuttaṃ」(an11.13/0.3)에 닿는 한문 글자가 이 좌표에는 없어 없음확인으로 적는다. 교감주의 번호 「A. XI. 14」는 PTS 계열 번호이고 우리 PN의 an11.14는 Subhūti 경이다(번호 체계가 어긋남). 이름이 일치하는 경은 an11.13이다. 보조 증언으로 받은 sn11.13(Mahāli 경)과 an11.14(Subhūti 경)는 읽은 범위에서 이 경과 내용이 겹치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an11.13은 제목(0.3)과 번호(13.0) 다음 바로 「Ekaṃ samayaṃ …」(13.1)로 시작하며 「Evaṃ me sutaṃ」에 해당하는 개경 정형구가 없다(an11.13 전문을 읽고 확인). 같은 정형구는 보조 증언 sn11.13/259.1에 있으나 그것은 다른 경의 자리이므로 대응으로 잡지 않았다. 如是我聞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이와 같이」의 지시이며 앵커의 「~같이」 쪽에 든다.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나오는 정형이다(정형구 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13.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前三月夏安居。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고, 앞의 석 달 동안 하안거를 하셨다.
주 (1) 팔리 13.1은 세존이 석가족 땅 까빨라왓투의 니그로다 동산에 머문다고 하고, 13.2는 세존이 사위에서 안거에 들고자 한다(vassāvāsaṃ upagantukāmo)고 한다. 한문은 처음부터 사위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는 것으로 쓰고 앞의 석 달 하안거를 이미 한 일로 적는다. 머무는 곳(까빨라왓투 / 사위)과 때(안거에 들려 함 / 앞 석 달 안거)가 갈린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2) 舍衛: 정착어로 판별하여 「사위」로 적는다(유형표: 정착어, `Sāvatthī`). 지명이다. 음의 「舍衛國」(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은 정음을 室羅伐悉底로 보아 「들은 것(聞)의 성」「聞物國」으로 새기는 설을 싣고, 같은 곳에서 善見律을 끌어 「舍衛는 사람 이름이며 그 사람이 살던 땅이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둘 다 인용일 뿐 여기서 정하지 않는다. 음역계통: 전거표는 팔리형 `Sāvatthī`, 당대 범어형 `śravasthi`를 함께 싣는다. 두 계통이 확인된 것이며 불확실이 아니다. 판정하지 않는다. (3) 祇樹給孤獨園: 유형표가 「보류」(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로 표시한 것을 이름으로 판별했다. 근거: 이 경 안에서 하나의 처소를 가리키는 지명이고(14.1에서 다시 나옴), 사전 「祇樹給孤獨園」 ① 948회 전부 「舍衛國祇樹給孤獨園」 정형으로 서며 뒤에 園이 붙는다.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는다. 뜻: 祇樹는 祇陀(Jeta) 태자의 숲이라는 뜻이다. 祇는 소리, 樹는 뜻이다(음의 慧琳 0368a03: 태자가 숲의 나무를 부처와 승가에 공양했으므로 「祇樹」라 줄여 부른다). 給孤獨은 의역이다(慧琳 0368a05: 梵 阿那陀, 친속이 없는 이를 뜻하며 큰 부자로서 외롭고 홀로인 이를 구제하기로 맹세한 사람의 호칭이다). 즉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가 베푼 동산이다. 전거표는 `Jetavana, Anāthapiṇḍika`(팔리형만 있고 범어형은 없음)를 싣고 「⚠다른 부(DA)의 대역」 경고가 붙어 있다. 정착형 고정이므로 풀어 쓰지 않았고 유형 판별은 정도평 몫이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4) 前三月夏安居: 夏安居는 동사로 서서 「하안거를 하다」(사전 夏安居 ③ 용례 sa1205/0.3 「王舍城迦蘭陀竹園夏安居」). 前三月의 前은 「앞의」로 옮겼다(사전 月 ① 앞: 前三 5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1.13:13.1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2
時,有釋氏難提聞佛於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석씨 난제가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다는 것을 들었다.
주 팔리 13.3~13.4는 난디야 삭꼬가 「세존께서 사위에서 안거에 들고자 하신다고 한다(kira)」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문은 들은 내용을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심」으로 쓰고 안거 의사는 적지 않는다. 有釋氏難提의 有는 새 인물을 세우는 존재의 有이므로 앵커 지침대로 「~이 있어」로 풀지 않고 주어로 세웠다. 釋氏難提: 유형표 「음역」에 따라 한자 독음 「석씨 난제」로 적는다. 팔리형은 `Nandiya Sakka`(전거표, 팔리형만 있음). 釋氏의 氏는 성씨 표지이다(음의 「釋氏」 慧琳 0491a20: 氏와 姓의 구별을 설명). 팔리 sakka는 여기서 석가족을 가리키는 말로 읽히는 자리이다(제석천 Sakka와 동형이며 이 좌표에서는 사람 이름 뒤의 족명). 한 경 안에서 「석씨 난제」로 통일한다. 舍衛國·祇樹給孤獨園은 0.3과 같은 표기(음역계통은 0.3 서술 참조). 聞佛於…의 於는 처소 조사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3~13.4
前三月結夏安居,聞已,作是念:「我當往彼,并復於彼造作供養眾事,供給如來及比丘僧。」
앞의 석 달 동안 하안거를 맺으셨다는 것을 듣고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곳에 가서, 또한 그곳에서 공양의 여러 일을 짓고, 여래와 비구 승가에 공급하겠다.’
주 (1) 前三月結夏安居의 주어가 적혀 있지 않다. 앞뒤(0.3 「佛住…前三月夏安居」, 14.1 「聞佛於舍衛…」)를 근거로 부처님으로 읽었고 이어지는 「聞已」를 그 일을 들은 것으로 이었다. 결구문 구두가 달리 끊길 여지가 있어 [불확실:격·태·구문]을 남긴다. 結夏는 하안거를 맺음(시작)을 뜻한다(사전 結夏 ⑥ 丁福保: 「行夏安居也。結者結成之意」, 후대 지위라 참고만). (2) 팔리 13.5~13.6은 난디야가 「나도 사위에서 안거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 부분으로 한문 「我當往彼」와 겹친다. 13.7은 그곳에서 일(kammanta)을 감독하고 때때로 세존을 뵙게 되리라는 목적이고, 한문은 그곳에서 공양의 일을 짓고 여래와 비구 승가에 공급하겠다는 목적이다. 같은 자리에서 목적이 다르므로 엇갈림으로 적는다. 팔리에는 비구 승가에 공급한다는 말이 없다. (3) 當(×1)은 「-겠다」 어미로 흡수했다. 并復의 復은 반복의 「다시」가 아니라 并과 붙어 「또한」의 뜻으로 읽었다(앵커의 「반복」 갈래에는 들지 않는다고 판단). 造作供養眾事의 事는 사전 事 ① 뒤 供養 14회 용례와 맞는 「일」이다. 僧은 僧伽의 약칭이다(사전 僧 ⑥ 丁福保, 참고). 比丘僧은 「비구 승가」로 적었다. 供給은 「공급하다」로 옮겼다. 확정 술어: 如來·比丘 [구속] 그대로.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5~13.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1.13:13.7
即到彼,三月竟,時,眾多比丘集於食堂,為世尊縫衣,而作是言:「如來不久作衣竟,著衣持鉢,人間遊行。」
곧 그곳에 이르러 석 달이 끝나자 그때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세존을 위해 옷을 꿰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오래지 않아 옷 짓기를 마치시고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시어 인간 세상을 두루 다니실 것이다.’
주 (1) 팔리 13.8~13.10은 세존과 난디야가 사위에서 안거에 들고 난디야가 일을 감독하며 때때로 세존을 뵙는 내용이다. 한문은 「即到彼,三月竟」 한 줄로 접는다. 이 접힘은 乃至 같은 생략 표지가 아니라 한문 서술 자체의 간결함이므로 [생략표지]로 신고하지 않는다. (2) 팔리 13.11~13.12는 「많은 비구가 세존의 가사 짓기를 하고 있다 — 가사를 마치신 세존께서는 석 달이 지나면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이다. 한문은 「三月竟」을 비구들의 말 밖의 시간 표지로 앞에 세우고(팔리는 비구들의 말 안 temāsaccayena), 「集於食堂」(식당에 모임)을 더 적는다. 구조·배열이 갈린다. 食堂은 사전 食堂 ① 44회 가운데 앞 글자 「集於」가 31회이고, 사전 食堂 ③ 용례 「集於食堂」(sa269/0071a05.1)이 그 쓰임을 보인다. (3) 팔리 cārikaṃ pakkamissati와 한문 「人間遊行」이 닿는다. 人間遊行은 사전 人間 ① 앞 「薩羅」 44회·뒤 「遊行」 82회와 사전 人間 ③ 용례 「佛在拘薩羅人間遊行」(sa101/0.3)이 보여 「사람들이 사는 땅을 두루 다님」의 뜻으로 읽힌다. 「인간 세상을 두루 다니다」로 옮기고 세 좌표(17.1·20.1·24.1)에서 통일한다. (4) 時(×2)는 서사 표지 「그때」, 而는 흡수, 為世尊의 為는 「~을 위해」(피동 아님). 즉(即)은 「곧」으로 세웠다. 眾多는 「많은」, 世尊·如來·比丘는 [구속] 그대로. 말하는 비구들은 서로 동급이므로 평서로 쓰되 여래에 대한 존경은 「-시-」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8~13.10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11~13.12
時,釋氏難提聞眾多比丘集於食堂,言:「如來不久作衣竟,著衣持鉢,人間遊行。」
그때 석씨 난제는,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오래지 않아 옷 짓기를 마치시고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시어 인간 세상을 두루 다니실 것이다.’ 하는 것을 들었다.
주 팔리 13.13~13.15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자리이다(Assosi kho nandiyo sakko – 「sambahulā kira bhikkhū bhagavato cīvarakammaṃ karonti …」). 한문의 인용문은 17.1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되풀이되며 번역도 같은 문자열로 맞췄다. 한문은 비구들이 「가사 짓기를 하고 있다」는 말을 따로 적지 않고 「集於食堂」을 대신 적는다(17.1 서술 참조). 聞眾多比丘集於食堂,言…의 구두는 「聞 [比丘集於食堂,言:…]」로 읽었다. 於는 처소 조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13~13.15
聞已,來詣佛所,稽首禮足,退住一面,白佛言:「世尊!我今四體支解,四方易韻,先所受法,今悉迷忘。
듣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에 와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머물러,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사지가 찢겨 갈라지고 사방의 소리가 바뀌어, 앞서 받은 법을 지금 모두 헷갈리고 잊었습니다.
주 (1) 서사부: 팔리 13.16~13.18은 「세존께 나아가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하였다」이다. 한문은 稽首禮足(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함)·退住一面(한쪽에 물러나 머묾)·白佛言(부처님께 사뢰어 말함)으로 같은 동작을 닮은 정형으로 쓴다. 팔리 abhivādetvā ↔ 稽首禮足, ekamantaṃ nisīdi ↔ 退住一面은 닿으나 「앉다」와 「머물다(住)」가 갈린다. 稽首는 「머리가 땅에 이름」이다(음의 慧琳 0600c02·0698c05: 「首至地」「頭至地」). 「머리를 조아려」로 옮긴다. 來詣의 詣는 「이르러」이다. (2) 말의 첫머리 「我今四體支解,四方易韻,先所受法,今悉迷忘」: 읽은 팔리 세 경(an11.13 전문, sn11.13·an11.14)에는 이 말에 닿는 문장이 없다. 팔리는 곧바로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13.19)로 간다. 없음확인으로 적었다. (3) 四體는 사지·몸의 네 부분이고 支解는 사지가 갈라짐이다. 易韻은 음의 慧琳 0656a06(〔雜阿含經〕): 「言聲音和韻也今取其義也」. 韻은 소리의 어울림이다. 사전 易韻 ① 4회 4경에서 「四方易韻」이 매번 이 앞뒤 구로 나오고(sa636·sa850 용례) 앞 글자가 모두 四方이다. 「사방의 소리가 바뀌다」로 글자대로 옮겼으나 이 관용구가 가리키는 상태(방향·소리의 분별이 흐려짐으로 읽힘)는 저본만으로 세워지지 않아 [불확실:뜻_판별불가]를 남긴다. 같은 구가 sa636·sa850에도 있다(사전). (4) 先所受法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앞서 받은 법」). 사전 受法 ① 7회 앞 「先所」 2회. 今이 두 번(我今·今悉) 나와 둘 다 「지금」으로 옮겼다. 悉은 「모두」. (5) 발화자가 붓다에게 말하므로 존댓말(-습니다). 인용 닫는 따옴표는 24.1에서 닫는다. 확정 술어: 佛 [구속] 부처님, 世尊 [구속] 세존. 白佛言의 佛은 「부처님」.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16~13.1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13.18~13.19
我聞世尊人間遊行,我何時當復更見世尊及諸知識比丘?」
저는 세존께서 인간 세상을 두루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언제 다시 세존과 알고 지내는 비구들을 뵙겠습니까?’
주 (1) 앞 절 「我聞世尊人間遊行」은 팔리 13.19~13.21(「sutaṃ metaṃ, bhante – 비구들이 가사 짓기를 하고 있다 … 세존께서 석 달 뒤 유행을 떠나시리라」)와 닿는다. 한문은 비구들 일은 빼고 세존의 유행만 적는다. (2) 뒷 절 「何時當復更見世尊…」은 다시 뵙는 때를 묻는다. 팔리 13.22는 「각기 다른 거처에 머무는 우리는 어떤 머묾으로 머물러야 합니까」를 묻는다. 같은 자리(질문)에서 묻는 내용이 다르므로 엇갈림으로 적었다. (3) 當은 「-겠습니까」 어미로 흡수. 復更은 같은 뜻 두 글자가 이어진 것으로 「다시」 하나로 옮긴다(한 요소를 두 번 옮기지 않음). 諸는 복수 「들」로 흡수. (4) 知識比丘: 知識을 「지식」(앎)으로 읽으면 안 되고 「아는 이·알고 지내는 이」로 읽는다. 사전 知識 ③ 용례 「少知識,獨一客旅」(sa1018/0267c08.1, 아는 이가 적어 …)와 사전 知識 ① 앞 「親族」 3회가 이 읽음을 받친다. 「알고 지내는 비구들」로 옮겼다. 다만 지식이 팔리 kalyāṇamitta(13.39~41) 쪽과 닿는지는 저본만으로 정하지 못하여 [불확실:다의어_판별]을 남긴다(25.1 서술 참조). (5) 이 좌표 끝에서 21.1에서 열린 인용이 닫힌다. 존댓말 일관(-습니다/-습니까).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19~13.2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1.13:13.22
佛告釋氏難提:「若見如來、若不見,若見知識比丘、若不見,汝當隨時修於六念。
부처님께서 석씨 난제에게 이르셨다. ‘여래를 뵙든 뵙지 못하든, 알고 지내는 비구들을 뵙든 뵙지 못하든, 너는 때에 따라 여섯 가지 생각을 닦아라.
주 (1) 팔리 13.23~13.25(「잘했다 잘했다, 난디야 …」)와 13.26~13.31(믿음·계·정진·사띠·삼매·통찰이 있는 이가 성취한다는 여섯 항)은 이 경의 한문에 닿는 글이 없다. 읽은 한문 13좌표 안에 칭찬이나 여섯 성품 목록이 없어 없음확인으로 적었다. 팔리 13.32는 여섯 법에 서서 다섯 법에 대해 안으로 사띠를 세우라고 한다. 한문 「修於六念」은 「생각(念)을 닦는다」는 점에서 13.32의 sati upaṭṭhāpetabbā와 닿고, 여섯(六)이 팔리 「여섯 법」과 우연히 같은 수이나 대상이 다르다(팔리의 여섯은 성품, 한문의 여섯은 생각의 대상). 부분 일치로만 적고 같은 것으로 잇지 않는다. (2) 若見…若不見…: 若 넷은 선택·양보의 짝(「A이든 아니든」)으로 읽어 「-든 -든」 어미로 흡수했다. 앵커의 「-면」으로 풀면 「여래를 뵈면 …뵙지 못하면」으로 가정 둘이 되어 짝의 뜻이 약해진다. 이문: 둘째 若(「若不見」)은 大正 본문이 「苦」이고 CBETA가 「若」으로 교감했다(이문 0218b2601, 「若【CB】,苦【大】」). 저본(CBETA)의 「若」을 따랐고 이문은 신고만 한다. (3) 汝當隨時修於六念: 當은 명령 어미 「-라」로 흡수, 於는 조사로 흡수. 隨時는 「때에 따라」. 六念은 사전 六念 ① 6회 5경이고, 사전 六念 ③ 용례 「修習六念:謂念如來事」(sa1026/0270a09.1)가 이 경의 여섯과 닿는다. 확정역이 없어 「여섯 가지 생각」으로 풀어 옮기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15.1의 「作是念」「생각을 하였다」와 같은 念). (4) 知識比丘는 24.1과 같게 「알고 지내는 비구들」. 이 좌표에서 「알고 지내는 비구」가 뒤 열거(27.2)의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저본에 적혀 있지 않다. (5) 붓다의 발화이므로 청자가 난제여도 평서(-라). 汝는 「너」. 확정 술어: 佛 [구속] 부처님, 如來 [구속] 여래. 釋氏難提는 14.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13.23~13.31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32
何等為六?
어떤 것들이 여섯인가?
주 팔리는 여섯을 묻는 문장 없이 곧바로 「Idha tvaṃ, nandiya, tathāgataṃ anussareyyāsi」(13.33)로 첫 항을 연다. 한문은 스스로 묻고 다음 좌표에서 답한다. 何等為六의 為는 앵커가 달아 둔 「위하여·피동」이 아니라 계사(「~이다」)로 읽혔다(사전 等為 ① 앞 何 532회, 뒤 四·三·五 수사). 何等은 「어떤 것들」. 붓다의 자문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13.33
當念如來、法、僧事、自所持戒、自所行施,及念諸天。」
여래, 법, 승가의 일, 자기가 지니는 계, 자기가 행하는 보시, 그리고 여러 천신을 생각하라.’
주 (1) 한문 여섯: 여래·법·僧事·自所持戒·自所行施·諸天. 팔리 다섯: tathāgata(13.33~35) · dhamma(13.36~38) · kalyāṇamitta(13.39~41) · attano cāga(13.42~44) · devatā(13.45~49). 여래·법·보시·천신은 짝이 닿고(팔리는 각 항에 긴 정형구가 붙어 있으나 한문은 항목 이름만 든다 — 부분 일치), 팔리의 셋째 항인 선우(kalyāṇamitta)에 해당하는 자리에 한문은 僧事를 둔다(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 엇갈림). 한문의 넷째 自所持戒는 팔리 회상 항목에 없다. 팔리에서 계는 13.27 「sīlavā」로 성취자의 성품에만 나온다. 한역을 「일탈」이라 단정하지 않으며 팔리가 열한 법(13.50 ekādasa)으로 닫는 구조와 한문의 여섯이 다르게 짜인 사실만 적는다. (2) 팔리 13.50~13.53(열한 법을 갖춘 성자의 제자가 악하고 해로운 법을 버린다는 말과 엎은 항아리·불 비유)에 닿는 한문은 이 경에 없다. 한문은 이 열거로 붓다의 말을 닫는다. (3) 구두: 「如來、法、僧事」의 事가 세 항에 모두 걸리는지(여래의 일·법의 일·승가의 일) 僧에만 걸리는지 저본이 정하지 않는다. 사전 僧事 ① 8회 가운데 앞 「法事」가 4회이고, 사전 僧事 ③ 용례 「法事、僧事」(sa850/0218b03.2)와 사전 事 ③ 용례 「謂念如來事,乃至念天」(sa1026/0270a09.1)이 事를 여래와 법에도 붙이는 쓰임을 보인다. 한국어 「여래, 법, 승가의 일」은 같은 모호함을 그대로 남겨 옮겼다. [불확실:구두·분절]. (4) 自所持戒·自所行施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스스로」를 세우지 않고 소유 재귀 「자기가」로 옮겼다. 所는 관형절. 施는 정착 불교어 「보시」로 옮겼다. 諸天의 諸는 「여러」(복수 하나). 諸天은 「천신」. 當은 명령 어미 「-라」로 흡수, 及은 「그리고」. 念은 25.1과 같게 「생각하다」. (5) 이 좌표 끝에서 25.1에서 열린 붓다의 말이 닫힌다. 확정 술어: 如來 [구속] 여래.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33~13.35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36~13.38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1.13:13.39~13.4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13.41~13.42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42~13.44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13.45~13.49
佛說此經已,釋氏難提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시자 석씨 난제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주 닫는 정형구 「佛說此經已 … 歡喜隨喜,作禮而去」는 팔리 an11.13에 닿는 글이 없다. 팔리는 13.53에서 비유로 마친 뒤 13.54 「Tatiyaṃ.」(경 차례 표지)만 둔다. 이 정형은 사전에서 佛說 ① 뒤 「此經」 813회, 歡喜 뒤 「隨喜」 335회, 隨喜 뒤 「作禮」 108회로 아함에 흔히 나오는 정형이다. 歡喜는 「기뻐하고」, 隨喜는 정착 불교어 「따라 기뻐하다」, 作禮는 「예를 올리다」, 而去의 而는 흡수. 佛說此經已의 已는 「설하시고 나시자」로 완료·종결을 옮겼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확정 술어: 佛 [구속] 부처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3: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