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783

SĀ 783

교차 검사교차 검사 13현대역 준비 중

(七八九)

(789)

주 한문 (七八九)는 자리값 표기의 경 번호(789)다. 팔리 제목 줄 「7. Mahācattārīsakasuttaṃ」의 7은 맛지마 니까야 안의 차례이고 뒤에 경 이름이 더 붙는다 — 같은 자리에 다른 번호 체계의 다른 것이 서므로 엇갈림으로 매겼다. 팔리 136.0의 「136」(단락 번호)과도 체계가 다르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은 이 경에 주어지지 않아 짚지 못했다(산스크리트 항은 모든 좌표에서 미대응).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117:0.3

AG:sa783/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은 개경 정형구(이 아함 전권 1332경). 如是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이와 같이」의 일부라 한 덩어리로 옮겼다. 팔리 Evaṃ me sutaṃ과 같음(사전 如是我聞 ② AI 정렬 equivalent 53좌표와 같은 판단).

니까야 대응 같음 MN 117:136.1

AG:sa783/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확정 술어 [구속]). 住는 「머무셨다」 — 부처님이 주어일 때 주체 높임(-시-)은 문법이 지는 것이지 한문에 없는 낱말을 보탠 것이 아니다. 舍衛國=사위국: 정착어. 舍衛는 팔리 Sāvatthī에 해당하는 음역 계열 이름이다(전거: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 ⚠다른 부 DA의 대역 — 두 계통이 갈려 「음역계통」, 판정하지 않음). 이름의 뜻(인용만):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은 舍衛를 정확하지 않은 음으로 보고 정음 室羅伐悉底國을 「聞者城」(法鏡經은 「聞物國」)으로 옮기며, 善見律을 끌어 「舍衛는 사람 이름 — 舍衛가 먼저 이 땅에 살았는데 한 국왕이 땅을 좋게 여겨 舍衛에게 청하여 살게 했고 그 이름으로 나라 이름을 삼았다」고 적는다.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 정착어(§⑤ 예시에 든 이름). 祇樹는 祇陀(팔리 Jeta) 태자의 숲 — 慧琳 0368a03〔金剛般若波羅蜜經〕: 태자가 그 나무를 부처와 승단에 공양하여 줄여서 「祇樹」라 한다.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팔리 Anāthapiṇḍika) — 慧琳 0368a05: 「亦義譯也 … 阿那陀 此云無親屬 巨富多財 誓救孤獨」, 古經은 阿那邠邸라고도 한다. 園은 동산. 한자대역 3분할 표가 이 덩어리를 「보류(5자 이상)」로 올렸으나 §⑤의 정착어 예(기수급고독원)에 해당해 정착형 그대로 썼다. 팔리가 처격(Sāvatthiyaṃ … Jetavane)과 소유격(Anāthapiṇḍikassa ārāme)으로 늘어놓은 것을 한문이 祇樹給孤獨園 한 덩어리로 압축했다 — 번역기법이지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一時=한때.

니까야 대응 같음 MN 117:136.2

AG:sa783/0.3 · 교차 검사

時,有生聞婆羅門來詣佛所,稽首佛足,與世尊面相問訊慰勞已,退坐一面,白佛言:「瞿曇!所謂正見者,何等為正見?」

그때 소문이 난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에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존과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한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고따마시여! 이른바 정견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정견입니까?」

주 (1) 틀: 팔리 mn117은 부처님이 비구들을 부르는 장면(136.3)이고 바라문의 방문·인사·질문 장면이 없다 — 한문에만 있는 문장이라 엇갈림, 팔리 쪽에서 이 틀을 짚을 자리가 없다. 질문 내용(정견이 무엇인가)은 팔리 136.24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에 부처님의 자문(自問)으로 실려 있어 일부로 맞춘다 — 묻는 이가 다르다. (2) 호칭 흔들림: 같은 인물을 한 좌표 안에서 佛(부처님) · 世尊(세존) · 瞿曇(고따마)으로 부른다. 각각 확정 술어 [구속]대로 고정하고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는 사실만 신고한다. 瞿曇은 바라문이 부처님을 부르는 호격이다. 확정역이 「고따마」이므로 「구담」으로 적지 않았다(팔리 Gotama / 근대 범어 Gautama — 전거 ⚠다른 부 DA 대역; 계통이 갈려 「음역계통」, 판정하지 않음). 婆羅門=바라문(확정 술어 [구속], 음역; 전거 팔리 Brahmaṇa/Brāhmaṇa, 근대 범어 Brāhmaṇa — 기계는 갈림으로 센다, 판정하지 않음). (3) 生聞: 의역으로 분류된 이름(전거 Jāṇussoṇī, ⚠다른 부 MA 대역). 음독 「생문」은 ②가 금지한 조작이라 뜻(生=나다, 聞=들림·명성)으로 「소문이 난」이라 옮겼다. 聞을 「명성」으로 읽은 것은 우리 판단이고 확정이 아니다 — 음독 「생문」으로 둘지 정도평 몫. 이 경에 같은 이름이 0204c28.1에 또 나오며 같은 표기를 쓴다. (4) 有生聞婆羅門來詣: 새 인물을 들이는 有라 존재 서술이 아니고, 「~이 있어」로 잇지 않고 주격 「이」가 진다. (5) 來詣佛所=「부처님 계신 곳에 찾아와」. (6) 稽首佛足: 「머리를 조아리고」 — 음의 慧琳 0600c02〔明度經〕(鄭注 周禮: 稽首는 머리가 땅에 이름)·0698c05〔四分律〕(稽는 至, 首는 頭 — 머리가 땅에 이름)을 인용, 뜻은 저본만으로 이미 서므로 근거로만 단다. (7) 面相問訊慰勞已: 與世尊…相이라 「세존과 … 서로」, 問訊=안부를 묻다(사전 問訊 ① 잡아함 165회·122경, 뒤 慰勞 63; ⑥ 후대의 합장 인사 풀이는 가장 가벼운 칸이라 쓰지 않음), 慰勞=위로하다, 已=완료. (8) 白佛言: 白=사뢰다, 言=말하다. (9) 所謂…者: 所는 「~하는 바」가 아니라 관용구 「이른바」, 者는 「~라는 것은」. 何等為正見: 等은 종류 표지라 「어떤 것」으로 흡수(사전 等為 ① 잡아함 581회). 瞿曇을 부르는 말이 윗사람에게 하는 말이라 문말을 존댓말로 통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117:136.3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24

AG:sa783/0204c15.1 · 교차 검사

佛告婆羅門:「正見有二種。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이르셨다: 「정견에 두 종류가 있다.

주 佛告婆羅門은 한문의 서사부다. 팔리 136.25 「Sammādiṭṭhiṃpahaṃ, bhikkhave, dvāyaṃ vadāmi」(비구들이여, 나는 정견을 둘이라 말한다)와 같은 말이다 — 청자 호칭만 다르다(바라문 / 비구들, 0204c15.1의 틀 차이). 有二種의 有는 종류의 존재를 서술하는 有라 「있다」를 살렸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같음 MN 117:136.25

AG:sa783/0204c17.1 · 교차 검사

有正見,世、俗,有漏、有取,轉向善趣;有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정견이 있다: 세상의 것이고 속된 것이며,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좋은 갈래로 돌아 향한다; 정견이 있다: 성스러운 것이고 세간을 벗어난 것이며, 번뇌가 없고 취착하지 않으며,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의 끝으로 돌아 향한다.

주 有正見은 정견의 종류가 있음을 서술하는 존재의 有(팔리 atthi sammādiṭṭhi와 같은 자리)라 「있다」를 세우고, 「~이 있어」로 잇지 않고 쌍점으로 끊었다. 世、俗은 점으로 갈린 두 항이라 두 항을 그대로 세웠다(세상의 것 · 속된 것). 有漏·有取는 漏·取가 붙은 합성 술어라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로 풀었다. 漏는 확정 술어의 [정형구 행]에서 팔리 āsava ↔ 「번뇌」로 쓰이나 낱말 확정역은 아니다 — 「번뇌」로 옮기고 불확실. 取는 확정역이 없어 「취착」(팔리 upādāna 계열)으로 옮겼다. 趣=갈래, 轉向=「돌아 향한다」(轉=돌다, 向=향하다 — 두 글자를 모두 세움). 是聖의 是는 계사, 出世間=세간을 벗어난. 正盡苦=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苦邊=괴로움의 끝. 팔리와 견주면 한문은 世·俗·有漏·有取·轉向善趣를, 팔리 136.26은 sāsavā·puññabhāgiyā(공덕 쪽)·upadhivepakkā(익음)를 세워 항이 서로 다르다(일부) — 어느 항이 어느 항에 걸리는지는 단정하지 않는다. 聖·出世間·無漏 ↔ ariyā·anāsavā·lokuttarā는 같으나 한문은 出世間 뒤에 無漏, 팔리는 anāsavā 뒤에 lokuttarā라 배열이 다르다. 팔리 maggaṅgā(길의 구성 요소)에 해당하는 항은 한문에 없고, 대신 正盡苦·轉向苦邊이 선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26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27

AG:sa783/0204c18.1 · 교차 검사

何等為正見世、俗,有漏、有取,轉向善趣?

어떤 것이, 세상의 것이고 속된 것이며,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좋은 갈래로 돌아 향하는 정견인가?

주 불확실은 0204c18.1과 같은 사안(漏·取·轉向·趣 역어). 何等為正見…: 등은 종류 표지라 「어떤 것」으로 흡수(사전 等為 ① 잡아함 581회). 한문은 수식어(世、俗…轉向善趣)를 正見 뒤에 두는 꼴이라 한국어에서는 앞 관형절로 옮겼다 — 순서만 조정했고 줄이거나 합친 항은 없다. 팔리 136.28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sāsavā puññabhāgiyā upadhivepakkā?」는 질문 꼴이 같고 수식 항의 차이는 0204c18.1과 같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28

AG:sa783/0204c20.1 · 교차 검사

謂正見有施、有說、有齋,乃至自知不受後有。

말하자면 정견은 보시가 있고 말함이 있고 재가 있으며, 내지 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고 안다.

주 謂=말하자면(정의를 여는 표지). 正見有施: 정견이 주제이고 有는 그 내용이 되는 존재 서술이라 「있고」. 說: 저본만으로 뜻이 서지 않는다 — 「말함」으로 옮기고 불확실. 팔리 yiṭṭhaṃ(제사)과 겹칠 가능성은 비고로만 남기고 본문에 끌어오지 않는다. 齋: 「재」로 옮겼다. 사전 齋 ① 잡아함 5회·5경, ④ 중아함 66·장아함 13; ⑥ 후대 풀이(丁福保)는 정오 이전의 식사(時食)인데 가장 가벼운 칸이라 본문 근거로 쓰지 않았다 — 불확실. 乃至: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펴지 않았다 [생략표지]. 自知不受後有: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고 흡수. 後有=뒤의 존재, 受=받다. 팔리 136.29는 업의 열매·이 세상·저 세상·어머니·아버지·화생·바른 길의 사문과 바라문까지 모두 펴 놓았다. 한문의 접힌 안쪽이 어느 항에 걸리는지는 읽지 못했으므로 그 안쪽은 미대응으로 두고, 접히기 전의 세 항(施·說·齋)만 팔리 dinnaṃ·yiṭṭhaṃ·hutaṃ에 놓일 수 있다(일부). 끝 항 自知不受後有는 팔리 마지막 항(사문·바라문이 몸소 알아 선언함)과 닿을 수 있으나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29

AG:sa783/0204c21.1 · 교차 검사

婆羅門!是名正見世、俗,有漏、有取,向於善趣。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세상의 것이고 속된 것이며,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좋은 갈래로 향하는 정견이라 이름한다.

주 불확실은 0204c18.1과 같은 사안(漏·取·趣 역어). 婆羅門!은 생문 바라문을 부르는 호격(팔리 136.30은 bhikkhave, 청중이 다른 틀의 차이 — 0204c15.1 참조). 是名X=「이것을 X라 이름한다」. 向於善趣: 於는 조사(~로)가 지므로 별도 낱말이 없다. 0204c18.1의 轉向善趣와 달리 轉이 없는 向이라 「향하는」으로 옮겼고 두 자리의 표기 차이는 통일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30

AG:sa783/0204c22.1 · 교차 검사

婆羅門!何等為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바라문이여! 어떤 것이, 성스러운 것이고 세간을 벗어난 것이며, 번뇌가 없고 취착하지 않으며,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의 끝으로 돌아 향하는 정견인가?

주 0204c20.1의 짝 질문(출세간 쪽). 불확실은 0204c18.1과 같은 사안(漏·取 역어). 수식어를 앞 관형절로 둔 것도 0204c20.1과 같다. 팔리 136.31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와 질문 꼴은 같으나 maggaṅgā에 해당하는 항이 한문에 없고 正盡苦·轉向苦邊이 선다(0204c18.1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31

AG:sa783/0204c23.1 · 교차 검사

謂聖弟子苦苦思惟,集、滅、道道思惟,無漏思惟相應,於法選擇,分別求覺,巧便□慧觀察,是名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말하자면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사유하고, 일어남·소멸·길을 길로 사유하며, 번뇌 없는 사유와 상응하고, 법을 가려 뽑고, 분별하여 깨닫기를 구하며, 교묘한 방편 □ 지혜로 관찰하고, 이것을 성스러운 것이고 세간을 벗어난 것이며, 번뇌가 없고 취착하지 않으며,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의 끝으로 돌아 향하는 정견이라 이름한다.」

주 謂=말하자면. 聖弟子=「성스러운 제자」(확정역 없음; 사전 聖 ① 잡아함 590회, 뒤 弟子 417). 苦苦思惟: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사유하고」 — 苦苦를 [苦를 苦로]의 겹침으로 읽었다(사전 苦苦 ① 13회·6경, 앞 弟子 9 · 뒤 思惟 9 — 정형구성). 集、滅、道道思惟: 道道의 겹침을 같은 방식으로 읽어 「길을 길로」, 集·滅은 겹침이 없어 그대로 두었다. 다만 이것이 「集集·滅滅·道道」의 줄임인지, 道道만 겹친 것인지는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 구문 불확실. 集=일어남(확정 술어 [정형구 행] 集 ↔ samudaya 「일어남」에서 취했으나 낱말 확정역은 아님), 滅=소멸, 道=길은 낱말 선택 불확실. 無漏思惟相應: 「번뇌 없는 사유와 상응하고」(사전 相應 ① 7회·6경, 앞: 思惟 3 · 離欲 1 · 染著 1 — 思惟 바로 뒤에 相應이 오는 짜임이 이 경 밖에도 실재함; 용례 sa1330/0369a05.1 「既離欲相應」은 離欲 뒤 相應), 無漏는 0204c18.1과 같은 번뇌 역어. 於法選擇: 於는 조사가 지므로 「법을 가려 뽑고」. 分別求覺: 覺은 확정 술어 [정형구 행]에서 팔리 vedanā/sambodhi를 겸해 낱말 확정역이 없다 — 여기서는 동사로 읽어 「깨닫기를 구하며」로 옮겼다(불확실). 巧便□慧觀察: □는 CBETA 결자라 저본대로 □를 남겼다(사전 慧觀 ① 2회·2경, 앞 「便□」; 용례 sa250/0061a18.1 「以慧觀世間」 — 지혜로 관찰함). 慧觀을 「지혜로 관찰」로 읽고, 巧便은 「교묘한 방편」으로 옮겼다(方便의 변형으로 보이나 확정하지 않음). □가 메워지면 巧便과 慧 사이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 저본 자형 불확실. 是名: 「이것을 … 이름한다」, 끝의 」는 0204c17.1에서 연 붓다 발화의 닫힘. 팔리 136.32와 견주면 無漏思惟相應 ↔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於法選擇 ↔ dhammavicaya 계열일 수 있으나 단정하지 않는다. 팔리의 열거(paññā paññindriyaṃ paññābal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o sammādiṭṭhi maggaṅgaṃ)와 한문의 열거는 항과 배열이 서로 다르다(일부). 136.33 「ayaṃ vuccati …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 是名正見是聖…는 맺음 꼴이 같고 수식 항의 차이는 0204c18.1과 같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32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6.33

AG:sa783/0204c24.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生聞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從座起去。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서, 소문이 난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佛說此經已: 已=완료 「설하시고 나서」. 聞佛所說: 所는 「~하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 「설하신 것」. 歡喜隨喜 두 항을 모두 세웠다(기뻐함 · 따라 기뻐함). 從座起去=「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이문: 大正 「聞」 / 聖本 「門」(교감주 聞=門【聖】; 이문 app_id 0204005)이라 聖本은 「生門婆羅門」으로 읽힌다. 저본(大正)대로 生聞으로 옮겼고(전거 生聞 ← Jāṇussoṇī, ⚠다른 부 MA 대역), 같은 이름이 0204c15.1에도 나와 같은 표기로 통일했다. 팔리 143.9~143.10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는 맺음 형식이 닮았으나 청중이 다르고(비구들 / 생문 바라문) 한문의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43.9~143.10

AG:sa783/0204c28.1 · 교차 검사

如正見,如是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一一經如上說。

정견과 같이, 이와 같이 바른 뜻·정어·정업·정명·바른 방편·정념·정정의 하나하나의 경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주 如正見·如是의 如는 「~과 같이」(비유). 정견·정어·정업·정명·정념·정정은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라 그대로 두었다. 正志(바른 뜻)·正方便(바른 방편)은 정착 표기(정사유·정정진)와 한자가 달라 한자를 따라 뜻으로 옮겼다 — 한역이 같은 길 항목에 다른 이름을 쓴 것으로 보이나 판정하지 않으며, 낱말 선택은 불확실. 一一經如上說: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다 — 바른 뜻 이하 일곱 항의 경은 펴지 않았다 [생략표지]. 如上說은 이 아함의 정형구_생략표지에 실린 표지(이 경 1회)이며,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텍스트가 말해 주지 않아 펴면 없는 원문을 짓게 된다. 팔리 mn117은 137~140에서 사유·말·행위·생활 네 항을 각각 펼쳐 놓았고 한문은 이를 한 줄로 접었다. 대응은 일부로 매기며, 팔리가 따로 펴지 않은 정진·마음챙김·삼매 항은 이 한 줄과 대응을 짚지 않았다(미대응).

니까야 대응 일부 MN 117:137.1~140.23

AG:sa783/0205a01.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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