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746

SĀ 746

교차 검사교차 검사 9현대역 준비 중

(七四八)

(748)

주 경 번호 표지 「(七四八)」다. 저본에 붙은 교감주(S. 45. 55. Yonisa. — 다카쿠스 각주)는 번역 대상이 아니라 비고로만 적는다. 투입된 팔리 an10.121의 121.0(「121」)도 팔리 쪽 경 번호 표지라, 두 번호는 서로 다른 편집 체계의 번호다. 내용 대조 대상으로 보기 어려워 미결(미대응)로 두었으니, 번호 표지를 대응률에 넣을지는 정도평 님 몫이다. 대응 후보 계열이 갈린다(합의 등급 conflict: 莊春江 an10.121 / 다카쿠스 sn45.55·sn46.72~75). 이 조각에는 an10.121 원문만 투입되어 sn45.55 등은 원문을 보지 못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121:121.0

AG:sa746/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은 전권 1332경에 나오는 고정 개경구다(이 경 1회). 如是는 지시 낱말이라 「~같이」·가정 어미를 따로 세우지 않고 「이와 같이」로 옮겼다(앵커의 如 [비유·가정]은 여기서 쓰이지 않는다). 我聞의 「나」는 한역이 인물 이름을 밝히지 않으므로 이름을 넣지 않았다. 투입된 팔리 an10.121에는 개경구가 없다. 그러나 AN은 앞 경에서 개경구를 이어받아 접어 두는 일이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니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로 둔다. 짚을 자리는 121.1 앞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121:121.1

AG:sa746/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一時=「한때」. 佛은 [구속] 「부처님」.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대상을 이 경 안에서 佛(0.3·0198b12.1)과 世尊(0198b06.1)으로 달리 적는다. 확정역이 한자별로 있어 「부처님」·「세존」으로 한자마다 고정했다. 舍衛(國): 3분할 정착어 → 정착형 「사위」+「국」. 뜻은 코살라의 도시이자 나라 이름이다. 한역자가 소리로 옮긴 음역이며 팔리형은 Sāvatthī다(전거: 팔리 후보 Sāvatthī / 범어 후보 당대 śravasthi — 다만 ⚠다른 부(DA)의 대역이라 이 부(SA)에서도 그대로 서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음의: 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此譯云聞者城…又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 — 舍衛는 室羅伐悉底의 옛 음역(訛)으로 풀리고 뜻풀이로는 「聞者城·聞物國」, 善見律은 人名설을 든다. 팔리형과 범어형이 갈리는 음역계통이므로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 3분할은 「보류(5자 이상)」다. 이름으로 판별했다 — 祇樹(祇陀·誓多 Jeta 태자가 숲을 남겨 공양한 데서 온 이름; 慧琳 0368a03)+給孤獨(의역: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팔리 Anāthapiṇḍika; 慧琳 0368a05 「亦義譯也…阿那陀此云無親屬…誓救孤獨」)+園(동산). §⑤ 표의 정착어 예(기수급고독원)에 따라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다만 §⑤는 給孤獨 단독이면 뜻으로 옮기라고 하므로 두 규정이 겹친다. 대안 풀이 「기수의,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을 남기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전거표: Jetavana, Anāthapiṇḍika — ⚠다른 부(DA)). 통일: 이 경에서 장소 이름은 여기 한 번뿐이다. 투입된 팔리 an10.121에는 장소 정형구가 없고, 개경구와 마찬가지로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해 unaligned로 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121:121.1

AG:sa746/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如日出前相,謂明相初光。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해가 뜨기 전의 징조와 같이, 밝은 모습의 첫 빛을 이른다.

주 爾時=「그때」. 世尊은 [구속] 「세존」. 한자 흔들림: 0.3의 佛과 같은 대상을 여기서는 世尊으로 적는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告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들로 흡수했고 「여러」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如日出前相,謂明相初光: 如…謂를 「~와 같이, …을 이른다」로 읽었다. 如는 다음 좌표 0198b07.1의 如是와 짝을 이루는 비유절이다(앵커 如 [비유·가정] 「~같이」). 前相의 相은 조짐(징조)이라 「징조」로 옮겼다. 前이 日出에 붙는지(日出前+相) 相에 붙는지(日出+前相)는 한국어 문자열에서 갈리지 않는다. 0198b07.1의 前相도 같은 틀이다. 明相: 3분할 의역 → 뜻으로 「밝은 모습」. 여기 相은 징조가 아니라 모습(광경)이라 前相의 相과 갈래가 다르다. 사전 明相 ① 14회(이 경 0198b06.1)이며 ⑥ 丁福保(후대, 가벼운 근거)는 「明者,天空始呈白色之時也」로 풀어 새벽빛에 닿는다. 팔리 후보 aruṇa(전거표 ⚠다른 부(DA)). 初光=「첫 빛」. 팔리 대조: 121.1 「Sūriyassa, bhikkhave, udayato etaṃ pubbaṅgamaṃ etaṃ pubbanimittaṃ, yadidaṃ –」 / 121.2 「aruṇuggaṃ.」 — 日出↔udayato, 初光↔aruṇuggaṃ이 서로 닿는다. 팔리는 pubbaṅgama(앞서 가는 것)와 pubbanimitta(전조) 두 항인데 한역 前相은 한 항이다. 한역 前相이 두 항을 한 항으로 옮긴 것인지 한쪽만 옮긴 것인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世尊告諸比丘는 한역의 서술틀이고 팔리 an10.121에는 호격 bhikkhave만 인용 안에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121:121.1~121.2

AG:sa746/0198b06.1 · 교차 검사

如是比丘正盡苦邊、究竟苦邊前相者,所謂正見。

이와 같이 비구가 괴로움의 끝을 바르게 다하고 괴로움의 끝에 궁극으로 이르기 전의 징조란, 이른바 바른 견해이다.

주 如是=「이와 같이」(앞 좌표 如의 짝). 比丘는 [구속] 「비구」. 저본 구두(CBETA)가 「如是比丘正盡苦邊…」를 한 구로 이어 두어 比丘를 괴로움의 끝을 다하는 주체로 읽었다. 호격(「비구들이여」)일 수도 있다 — 팔리 121.3이 bhikkhave 호격이다. 그러나 저본 구두를 따랐고 [불확실:구두·분절]로 신고한다. 正盡苦邊: 正=「바르게」, 盡=「다하고」, 苦邊=「괴로움의 끝」. 究竟苦邊: 究竟을 동사 「궁극으로 이르다」로 읽었다(사전 究竟 ① 앞: 盡苦 29 · 뒤: 苦邊 100/184, 이 경 0198b07.1). 前相者의 者=「~란」, 前相=「…하기 전의 징조」(앞 좌표와 같은 틀). 所謂는 「이른바」라는 고정 낱말로 읽었다(所의 「~하는 바」 훈독투를 세우지 않음). 正見=「바른 견해」: 見은 [정형구 행]에서 dassana(뵘)로 걸리는 한자인데, 이 자리는 견해라 갈래가 다르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정본에 팔정도 항(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의 확정역 행이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이 경 안에서는 正=「바른」으로 통일했다. 팔리 대조: 121.3 「Evamevaṃ kho, bhikkhave, kusalānaṃ dhammānaṃ etaṃ pubbaṅgamaṃ etaṃ pubbanimittaṃ, yadidaṃ –」 / 121.4 「sammādiṭṭhi.」 — 如是↔Evamevaṃ kho, 所謂↔yadidaṃ, 正見↔sammādiṭṭhi가 닿고 전조가 정견이라는 골격은 같다. 다만 전조의 대상이 팔리는 kusalānaṃ dhammānaṃ(선한 법들)이고 한역은 「괴로움의 끝을 다함·궁극에 이름」이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해 divergent로 달았다. 한역의 苦邊 어휘는 다카쿠스 후보(sn45.55 등)의 자리일 수 있으나 그 원문이 투입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121:121.3~121.4

AG:sa746/0198b07.1 · 교차 검사

彼正見者,能起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

그 바른 견해는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생계,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을 일으킬 수 있다.

주 彼=「그」, 者=「~는」(주제). 能起=「일으킬 수 있다」(앵커: 能 [가능]은 어미 「-ㄹ 수 있다」가 지므로 「능히」를 쓰지 않음). 팔정도 항은 정본에 확정역 행이 없어 이 경 안에서 한자 뜻대로 통일해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正志=「바른 뜻」, 正語=「바른 말」, 正業=「바른 업」, 正命=「바른 생계」(命을 생계로 읽음 — 정본 근거는 없고 문맥 판정), 正念=「바른 생각」, 正定=「바른 선정」(定은 사전 定 ① 앞: 三昧 14 · 뒤: 覺分 26으로 입정의 선정 쪽). 正方便=「바른 방편」: 아함 문맥의 方便은 노력·정진에 가깝다(사전 方便 ① 앞: 精勤 66/458 · 정진 쪽). 그러나 한국어 「방편」으로 글자 뜻을 두고 [불확실:다의어_판별]로 신고한다(근대 범어 후보 Upāya는 편자 비정이라 근거로 쓰지 않음). 팔리 대조: 121.5 「Sammādiṭṭhikassa, bhikkhave, sammāsaṅkappo pahoti, sammāsaṅkappassa sammāvācā pahoti, sammākammanto pahoti, sammākammantassa sammāājīvo pahoti, sammāājīvassa sammāvāyāmo pahoti, sammāvāyāmassa sammāsati pahoti, sammāsatissa sammāsamādhi pahoti …」. 일곱 항의 순서(뜻·말·업·생계·방편·생각·선정)가 팔리와 같다. 그러나 팔리는 앞 항이 다음 항을 낳는 연쇄(X-ssa Y pahoti)이고 한역은 正見 하나가 일곱 항을 병렬로 일으킨다. 구조·배열로 신고한다. 팔리 sammāvāyāma↔正方便, sammāājīva↔正命 등 항별 어휘 대응은 두 증언의 뜻 범위 차이를 판단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121:121.5

AG:sa746/0198b08.1 · 교차 검사

起定正受故,聖弟子心正解脫貪欲、瞋恚、愚癡,如是心善解脫。

선정의 바른 받아들임을 일으키기 때문에, 성스러운 제자의 마음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바르게 해탈하고, 이와 같이 마음이 잘 해탈한다.

주 起定正受故: 저본 구두 없이 이어진 「定正受」를 한 복합(선정의 정수)으로 읽었다. 「定」과 「正受」 둘로 끊을 수도 있어 [불확실:구두·분절]. 正受=「바른 받아들임」은 글자 뜻으로 옮긴 것이다. 사전 正受 ① 249회, 앞: 入晝 33 · 三昧 15(입정 용례 쪽). ⑥ 丁福保(후대, 가벼운 근거)는 三昧의 異名으로 푼다.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신고한다. 故=「~기 때문에」. 聖弟子=「성스러운 제자」(聖=ariya 갈래. 번안 아님). 心正解脫貪欲、瞋恚、愚癡: 解脫=「해탈」(한국 불교 정착어), 正=「바르게」. 3분할 의역: 貪欲=「탐욕」(음독 나열이 아니라 한국어 낱말), 瞋恚=「성냄」, 愚癡=「어리석음」. 如是心善解脫: 如是=「이와 같이」, 善=「잘」. 팔리 대조: 121.5 뒤쪽 「sammāsatissa sammāsamādhi pahoti, sammāsamādhissa sammāñāṇaṃ pahoti, sammāñāṇissa sammāvimutti pahotī’’ti.」 — 한역 起定正受↔sammāsamādhi 쪽, 心正解脫↔sammāvimutti가 닿는다. 순서가 갈린다: 팔리는 선정→앎(ñāṇa)→해탈, 한역은 선정→해탈(여기)→바른 지견(0198b11.1)이다. 또한 「貪欲·瞋恚·愚癡에서 해탈」 풀이는 팔리에 없다(한역에만 있는 구). 전거: 貪欲 Icchālobha, 瞋恚 Byāpāda — 후보일 뿐이고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121:121.5

AG:sa746/0198b09.1 · 교차 검사

聖弟子得正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앎과 봄을 얻는다: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행은 이미 세워졌고, 할 일은 이미 했고, 다음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得正知見: 得=획득 「얻는다」(가능이 아님). 知見=「앎과 봄」, 正=「바른」. 정본에 확정역 행이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 『我生已盡…』 인용 정형구: 我生已盡=「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生은 [정형구 행]에서 jāti「태어남」으로 걸리는 한자이고 이 자리는 그 뜻으로 읽었다), 梵行已立=「청정한 행은 이미 세워졌고」(梵行은 3분할 의역이다. 음의: 慧琳 0698c19 〔四分律〕 「梵言梵摩此云清淨或曰清潔正言寂靜」 — 梵의 뜻이 「청정」이라 「청정한 행」으로 옮겼다. 정형구 행은 「청정한 삶」이라 하나 한자 확정역이 아니므로 따르지 않음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所作已作=「할 일은 이미 했고」(所作은 「~하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로 풀었다), 自知不受後有=「다음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自는 他와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後有=「다음의 존재」. 受는 [정형구 행]에서 vedanā 「느낌」으로 걸리는 한자인데 여기서는 後有를 목적어로 하는 동사 「받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사전 後有 ① 앞: 不受 178/201). 팔리 대조: 121.5 「sammāsamādhissa sammāñāṇaṃ pahoti」의 sammāñāṇa 쪽이 正知見에 닿는다. 한역은 해탈(0198b09.1) 뒤에 두는 순서라 구조·배열로 신고한다. 『我生已盡…』 정형구는 투입된 an10.121에 없다(문장 유무). 이 정형구는 팔리 일반에서 별도 형태로 있을 수 있으나 이 조각 투입에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121:121.5

AG:sa746/0198b11.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佛은 [구속] 「부처님」, 比丘는 [구속] 「비구」. 한자 흔들림: 같은 경 안에서 佛(0.3·여기)과 世尊(0198b06.1)을 같은 대상에 달리 쓴다. 說此經已=「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已=마침). 諸比丘의 諸는 -들로 흡수. 聞佛所說=「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사전 歡喜 ① 앞: 所說 1151/1340 · 뒤: 奉行 829이며 결어 정형구(전권 820여 경)다. 팔리 대조: 투입된 an10.121은 121.5에서 인용을 닫고 121.6 「Navamaṃ.」(「아홉째」, 경 차례 표지)뿐이다. 이 결어 정형구는 팔리에 없음을 이 투입본에서 확인했다(absent). 121.6은 같은 자리의 내용이 아니라 표지라 divergent로 달지 않았다.

AG:sa746/0198b12.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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