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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Ā 627

SĀ 627

교차 검사교차 검사 9현대역 준비 중

(六二九)

(629)

주 한역 제목 자리에는 경 번호(六二九)만 있고, 팔리는 경명(Sīlasuttaṃ)과 번호(387)를 따로 단다. 번호는 서로 다른 번호 체계라 내용 대응이 아니라 자리 대응이므로 [partial]. 저본의 교감주(S. 47. 21. Sīla.)는 편자가 단 것이어서 한역 본문의 증거가 아니다. 다카쿠스 각주 원문(`0175b24` S. 47. 21. Sīla.)은 PTS 번호이고 우리 PN은 sn47.21로, 합의 등급은 single_source다. 이 경의 uid는 sa627이고 한역 경 번호는 629다(번호 차이는 판정하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읽지 못했으므로 SF는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이하 좌표 동일).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1:0.3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1:387.0

AG:sa627/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 ↔ Evaṃ me sutaṃ. 앵커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지시어 如是의 일부로 읽어 「이와 같이」 한 덩어리로 옮겼다.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있고 이 경에 1회 나온다(`_정형구_생략표지`).

니까야 대응 같음 SN 47.21:387.1

AG:sa627/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巴連弗邑鷄林精舍。

한때 부처님께서 파련불읍 닭숲 정사에 머무셨다.

주 一時 ↔ ekaṃ samayaṃ(같음), 巴連弗邑 ↔ pāṭaliputte, 鷄林精舍 ↔ kukkuṭārāme(장소는 같음). 갈리는 것은 주어다 — 한역은 「부처님이 머문다」(佛住)이고 팔리 387.2는 아난 존자와 발타라 존자가 머문다고 하며 부처님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는 [divergent]로 달았다. 한역은 두 존자를 다음 좌표(0175b25.1)로 나눠 적는다. 본문은 한역대로 옮겼고 팔리의 주어를 끌어오지 않았다. 佛은 확정 술어 [구속] 「부처님」. 巴連弗邑: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저본의 한자(巴連弗)가 Pāṭaliputta의 음절을 소리로 옮긴 것으로 판별해 음역으로 처리했다(저본이 표보다 위). 전거표 巴連弗邑 ↔ `Pāṭaliputta`(전거_sa627)는 팔리 후보만 있고 범어 후보는 없다. 邑은 뜻이 서는 한자라 「읍」으로 옮겼다. 鷄林: 의역으로 「닭숲」(팔리 Kukkuṭārāma는 kukkuṭa 수탉 + ārāma 동산·원림. 한역은 ārāma를 林으로 옮겼다). 精舍는 정착 술어 「정사」. 한 경 안에서 표기를 통일했다. 住는 머묾의 뜻이 서 있어 「머무셨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1:387.2

AG:sa627/0.3 · 교차 검사

爾時,尊者阿難、尊者跋陀羅亦在彼住。

그때 존자 아난과 존자 발타라도 그곳에 머물렀다.

주 팔리 387.2는 한 문장에 두 존자의 머묾을 담고, 한역은 그 둘을 佛住 문장과 갈라 별문으로 적는다. 그래서 한 좌표만 [partial]이다. 亦은 「도」 조사가 지고 있어 따로 「또한」을 세우지 않았다(앵커 亦). 在彼住의 彼는 「그곳」. 者는 尊者의 일부이므로 명사화 용법이 아니라 「존자」 한 낱말로 옮겼다(앵커 者×2). 阿難: 정착어 「아난」. 이름의 뜻은 慶喜, 곧 기쁨이다(一切經音義(慧琳) 0482c03 「阿難陀此云慶喜」 인용). 跋陀羅: 음역이라 한자 독음 「발타라」. 전거표에 음역판정 「翻為 賢」, 팔리 후보 `Bhaddaji / Bhadda`가 실려 있다(이 경의 팔리 원문은 bhaddo).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601a20 「跋陀 … 梵語也」는 인용만 한다. 음의의 陀羅(此云持, 雙持山)는 산 이름 풀이라 이 자리와 무관하게 보아 쓰지 않았다. 음역계통: 전거표 阿難 행은 팔리 `Ānanda`, 범어 근대 `Ānaṁda`(대정장 편자 비정)이며 ⚠다른 부(DA)의 대역이다. 표의 집계상 팔리형과 범어형이 갈리는 1종이 이것이다. 확인된 두 계통으로만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으며 계통 칸은 비워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1:387.2

AG:sa627/0175b25.1 · 교차 검사

時,尊者跋陀羅問尊者阿難言:「頗有法修習多修習,得不退轉耶?」

이때 존자 발타라가 존자 아난에게 물어 말했다. “혹시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물러나지 않음을 얻는 법이 있습니까?”

주 팔리는 질문 앞에 발타라가 저녁 선정에서 나와 아난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는 장면(387.3~387.5)을 두는데, 한역 9좌표 어디에도 이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어 [absent]로 확인했다. 387.6 etadavoca ↔ 問…言(말을 건네는 틀만 같음) [partial]. 질문 내용이 다르다 — 팔리 387.7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선한 계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kimatthiyāni)를 묻고, 한역은 닦으면 물러나지 않음을 얻는 법이 있는지를 묻는다. [divergent].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時는 「이때」(爾時 「그때」와 구별했다). 頗有: 사전 頗有 ① 잡아함 30회 중 발화 첫머리 13회,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368a10 「頗 … 語辭也」(인용). 의문 어사 頗의 뜻은 「혹시」로 두고, 耶는 의문 어미 「-습니까」가 진다. 有는 존재 자체를 묻는 자리라 「있습니까」로 세웠고, 「있어」 연결형은 쓰지 않았다. 法은 앞의 修習…得不退轉이 꾸미는 관형절로 배선했다(앵커 有). 修習은 닦아 익힘, 多修習은 많이 닦아 익힘. 得은 획득(「얻는」)이며 가능이 아니다(가능은 能이 진다). 者는 尊者의 일부. 不退轉: 「물러나지 않음」. 불퇴전 같은 정착형이 있으나 확정 술어에 없어 뜻으로 옮기고 신고한다(사전 不退轉 ① 잡아함 5회·4경, ④ 증일아함 20).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존칭: 질문하는 발타라가 답하는 아난에게 존댓말을 쓴다. 한문은 두 존자의 위계를 적지 않으므로(둘 다 尊者) 문답의 방향으로 정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21:387.3~387.5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1:387.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1:387.7

AG:sa627/0175b26.1 · 교차 검사

尊者阿難語尊者跋陀羅:「有法修習多修習,能令行者得不退轉,謂四念處。

존자 아난이 존자 발타라에게 말했다.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수행하는 이가 물러나지 않음을 얻게 할 수 있는 법이 있다. 이른바 사념처이다.

주 팔리 387.8~387.12(아난의 칭찬 sādhu sādhu, 질문을 되받아 확인, evamāvuso)는 한역에 없어 [absent]다. 387.13은 선한 계들이 사념처(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의 닦음을 위해 말씀되었다고 답하고, 한역은 닦으면 물러나지 않음을 얻게 하는 법이 있고 그것이 사념처라고 답한다. 질문이 달라 답의 틀이 다르지만 사념처에 닿는 점은 같다. 틀이 다르므로 [divergent]. 한역 본문은 한역대로 옮겼다. 有法: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로 세웠고 「있어」 연결형은 쓰지 않았다. 能令…得: 能은 「-ㄹ 수 있다」 어미가, 令은 「-게 하다」가, 得은 「얻다」가 진다. 行者: 「수행하는 이」(사전 行者 ① 잡아함 21회. ⑥ 禪語 방장의 시자 풀이는 후대의 눈이라 버렸다). 謂는 「이른바」. 四念處: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사념처」. 3분할 표는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실제로는 의역이고 정착형이라 독음을 썼다. 전거표 四念處 ↔ `Cattāro satipaṭṭhāna / Cattāro satipaṭṭhānā`, ⚠다른 부(MA)의 대역이므로 인용만 한다. 不退轉은 앞 좌표와 같은 처리.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존칭: 답하는 아난은 평서로 옮겼다. 인용 따옴표는 저본대로 이 좌표에서 열고 0175b29.2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21:387.8~387.1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1:387.13

AG:sa627/0175b27.1 · 교차 검사

何等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何等為四 ↔ Katamesaṃ catunnaṃ?. 為는 위하여·피동(為…所)이 아니라 「~이다」에 가까운 계사 용법이다. 等은 何等의 일부로 읽어 「무엇」에 흡수했다. 아난의 자문(自問)이며 이 좌표는 인용 안에 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7.21:387.14

AG:sa627/0175b29.1 · 교차 검사

身身觀念住,受、心、法法觀念住。」

몸에서 몸을 살피고 생각하며 머물고, 느낌, 마음, 법에서 법을 살피고 생각하며 머문다.”

주 身身觀念住 ↔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387.15). 한역은 정근·정지·정념·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조복하는 구(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를 싣지 않는다. 같은 아함의 다른 경에는 「內身身觀念處,精勤方便,正」처럼 이어지는 용례가 있다(사전 觀念 ③ sa1021/0268c02.2). 한역자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受、心、法法觀念住는 受·心의 되풀이를 접어 이름만 늘어놓고 法法에서 닫는다. 팔리 387.16도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로 접혀 있다. 한역이 스스로 접은 대로 두고 受와 心 뒤에 觀念住를 펴 넣지 않았다. 따라서 직역문의 「법에서 법을」은 法法만 받고 受·心은 접힌 이름으로 남는다. 팔리 pe 안쪽은 읽지 못한 자리라 대응은 partial로 둔다. 387.17(맺음의 되풀이 정형)은 한역에 없어 [absent]다. 觀念住: 觀念은 사전에서 身身·法法 뒤, 住 앞에 오는 한 덩이이고(사전 觀念 ① 109회), 앞 문장의 viharati가 住에 대응한다고 보아 「살피고 생각하며 머문다」로 옮겼다. 觀念處·念住를 명사로 읽는 끊기도 가능하다. [불확실:구두·분절] 受는 [정형구 행]의 vedanā 자리로 낱말 확정역이 없어 「느낌」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心은 「마음」, 法은 「법」.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인용은 이 좌표 끝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1:387.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1:387.1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21:387.17

AG:sa627/0175b29.2 · 교차 검사

時,二正士共論說已,各還本處。

이때 두 바른 이가 함께 논하여 말하기를 마치고, 각각 본래의 처소로 돌아갔다.

주 팔리는 맺음 정형(387.17)과 장 표지 Paṭhamaṃ(387.18)으로 끝나고, 두 사람이 논의를 마치고 흩어졌다는 문장은 없다. 한역의 끝 문장은 팔리에 없음이 확인되어 [absent]다. 時는 「이때」. 正士: 사전 正士 ① 잡아함 77회·43경, 앞 「時二」 52회(곧 이 정형구). 사전 ⑥의 보살(菩薩) 풀이는 후대·대승의 눈이라 이 자리에서 버렸고, 뜻으로 「바른 이」로 옮겼다. 음독 「정사」는 ②가 금지한 조작이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共은 「함께」, 論說已는 「논하여 말하기를 마치고」(已는 완료). 이문: 說【大】 / 議【宋】【元】【明】【聖】(교감주 `說=議【三】【聖】`). 저본인 大正 본문 說을 따랐다. 各은 「각각」, 本處는 「본래의 처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21:387.18

AG:sa627/0175c01.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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