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619

SĀ 619

교차 검사교차 검사 13현대역 준비 중

(六二一)

(621)

주 한역은 경 번호만 싣는다(大正 621). 팔리 쪽은 같은 자리에 경 이름 「Sālasutta」가 선다(PN:sn47.4/0.3) — 이름과 번호의 차이이므로 일부로 본다. 다카쿠스 각주(0173c12)는 「S. 47. 4. Salla」로 적는다. 번호(47.4)는 우리 PN과 같고 이름 철자만 각주(Salla)와 PN(Sāla)이 다르다 — 사실만 적고 판정하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이 경에 투입되지 않아 짚지 않았다(미결).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4:0.3

AG:sa619/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주 팔리 sn47.4는 370.1 「Ekaṃ samayaṃ…」로 바로 시작하며, 그 앞자리에 「Evaṃ me sutaṃ」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pe…가 걸린 자리가 아니다 — 첫 줄 앞이다). 한역은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을 둔다. 如는 「~와 같이」의 비유 용법으로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고 「이와 같이」로 옮겼다(배선 앵커 如 [비유·가정]).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4:370.1

AG:sa619/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1) 一時↔Ekaṃ samayaṃ은 같은 꼴이나, 장소가 한역은 「舍衛國 祇樹給孤獨園」, 팔리는 「kosalesu … sālāya brāhmaṇagāme(코살라 지방의 살라 바라문 마을)」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 엇갈림. (2) 舍衛=사위: 정착어(한국 불교계 정착형). 소리를 옮긴 이름이며, 코살라의 도시 이름이다. 慧琳 음의 0367c24는 이 이름의 뜻풀이를 여럿 전한다(「無物不有國」·「聞物」 등) — 인용만 하고 확정하지 않는다. 전거 대장: 舍衛 ↔ 팔리 Sāvatthī / 범어(당대) śravasthi — 두 계통이 모두 서고 서로 다르므로 「음역계통」으로 신고한다(판정하지 않음; ⚠다른 부(DA) 대역). (3)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 정착어. 祇樹=祇(소리)+樹(뜻)의 音義合璧(慧琳 0368a03: 祇陀 태자의 나무 — 「祇樹」), 給孤獨=뜻으로 옮긴 이름(慧琳 0368a05 「義譯也」: 의지할 데 없는 이를 돌보는 이), 園=동산. 전거 대장 「祇樹給孤獨園 ↔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 3분할표는 5자 이상 「보류」로 분류했다 — 정착형 그대로 쓰되 이름의 짜임이 한 이름 안에서 소리와 뜻이 섞여 있어 유형을 확정하지 않고 신고한다. (4) 佛=부처님 [구속], 住=머무시다. 國은 「~나라」로 옮겨 「사위국」으로 적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4:370.1

AG:sa619/0.3 · 교차 검사

時,尊者阿難與眾多比丘詣世尊所,稽首禮足,退坐一面。

그때 존자 아난이 많은 비구와 함께 세존의 처소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주 팔리는 370.1(장소)에서 370.2의 「bhagavā bhikkhū āmantesi」로 곧바로 넘어가며, 아난이 대중과 함께 와서 예를 올리고 앉는 장면이 없다. 이 자리는 370.1과 370.2 사이이고, 370.2의 …pe…는 그 뒤(āmantesi와 etadavoca 사이)에 걸려 있어 이 자리를 덮지 않는다고 보고 「없음확인」으로 적는다. 阿難=아난: 정착어. 한역자가 소리로 옮긴 이름(팔리 Ānanda); 慧琳 음의 0482c03은 「阿難陀 此云慶喜」라 풀이한다(인용만). 詣世尊所의 所는 「~하는 바」가 아니라 「처소」의 뜻이어서 「세존의 처소에」로 옮겼다. 稽首=머리를 땅에 닿도록 조아림(慧琳 0600c02 「稽首首至地也」), 禮足=발에 절함 — 음독하지 않고 뜻으로 옮겼다. 禮足의 대상(세존)은 한문에 쓰이지 않아 보태지 않았다. 退坐一面=「물러나 한쪽에 앉다」. 眾多의 眾은 「많은」으로 옮겼다(대중의 뜻이 아니라 眾多比丘의 수식).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4:370.1

AG:sa619/0173c13.1 · 교차 검사

尊者阿難白佛言:「世尊!此諸年少比丘當云何教授?

존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나이 어린 비구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주 팔리에는 아난의 질문이 없다(370.2에서 세존이 곧 비구들을 부른다). 위 13.1과 같은 까닭으로 「없음확인」.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붓다)에게 한 문장 안에서 서술에는 「佛」(白佛言), 호격에는 「世尊」을 쓴다. 확정역이 각각 달라(佛=부처님 [구속], 世尊=세존 [구속]) 통일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當云何教授에서 當은 어미(-야 합니까)로 흡수했다. 諸는 복수로만 쓰여 「비구들」로 흡수했다. 年少=나이 어린. 教授는 「가르쳐」(사전 教授 ①: 이 역자의 쓰임). 존칭: 아난→세존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4:370.2

AG:sa619/0173c14.1 · 교차 검사

云何為其說法?」

어떻게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합니까?”

주 앞 문장과 같은 질문의 둘째 가락이며 팔리에 대응이 없다. 이 문장에는 當이 없어 당위의 어미를 붙이지 않고 평서 의문으로 옮겼다(앞 문장에서 이어지는 당위의 뜻은 문맥에 있으나 한문에 쓰이지 않아 보태지 않았다). 為其의 為는 「~을 위하여」(피동의 為…所가 아니다). 說法=법을 설하다(정착).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4:370.2

AG:sa619/0173c15.1 · 교차 검사

佛告阿難:「此諸年少比丘當以四念處教令修習。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이 나이 어린 비구들은 사념처로써 가르쳐 닦아 익히게 하라.

주 팔리 370.3은 세존이 비구들에게 「새로 출가한 지 오래지 않고 막 이 법과 율에 온 비구들을 사념처의 닦음으로 권하고 세우고 확립시키라」고 말한다(청자가 비구들). 한역은 청자가 아난이다. 年少(어린)↔navā acirapabbajitā adhunāgatā(새로·출가한 지 오래지 않은·막 온)는 개별 어휘의 갈림이고, 팔리의 연속 동사 셋(samādapetabbā nivesetabbā patiṭṭhāpetabbā)이 한역에서는 「教令修習」으로 접힌다 — 번역기법(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님). 當=어미(-하라)로 흡수. 以=「~로써」. 教令=「가르쳐 ~하게 하다」(教+令). 修習=닦아 익히다. 四念處=사념처: 3분할표는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念處는 念과 處를 모두 뜻으로 옮긴 이름이고 한자 독음이 한국 불교계 정착형(사념처)과 같아 처리가 같다. 전거 대장: 四念處 ↔ Cattāro satipaṭṭhāna(⚠다른 부(MA) 대역). 붓다의 발화는 평서(하라체)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4:370.3

AG:sa619/0173c16.1 · 교차 검사

云何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팔리 「Katamesaṃ catunnaṃ?」(어떤 넷인가)과 같은 자리의 같은 물음이다. 云何는 어미 의문형으로 흡수했고, 為는 「~이 되다/~이다」의 뜻이다(為…所의 피동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7.4:370.4

AG:sa619/0173c17.1 · 교차 검사

謂身身觀念住,精勤方便,不放逸行,正智正念,寂定於心,乃至知身;受、心、法法觀念住,精勤方便,不放逸行,正念正智,寂靜於心,乃至知法。

이른바 몸에서 몸을 관하는 생각의 머묾, 부지런히 힘쓰는 방편, 불방일을 행함, 바른 지혜와 바른 생각, 마음이 고요히 안정됨, 내지 몸을 앎; 느낌、마음、법에서 법을 관하는 생각의 머묾, 부지런히 힘쓰는 방편, 불방일을 행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 마음이 고요함, 내지 법을 앎.

주 (1) 구조: 팔리 370.5~370.8은 세존이 「에타 툼헤, 아와소(오시오, 벗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하는 이로 머무시오…」 하고 비구들에게 시키는 말이다. 한역은 같은 내용을 사념처의 내용으로 평서 나열한다(번역기법도 겹침). 한문은 謂 뒤에 명사구를 쉼표로 이어 놓았으므로 서술어를 보태지 않고 명사 나열로 옮겼다. (2) 어휘: 精勤方便↔ātāpino(열심인), 正智↔sampajānā(바르게 앎)는 짝이 선다. 팔리의 ekodibhūtā vippasannacittā samāhitā ekaggacittā(넷)가 한역 「寂定於心」「寂靜於心」(하나)에 대응해 항 수가 다르다 — 부분. 「不放逸行」과 「正念」은 이 팔리 본문에 짝이 없다(문장 유무 쪽 신고). (3) 한자 흔들림: 같은 정형구가 몸에서는 「正智正念 · 寂定於心」, 느낌·마음·법에서는 「正念正智 · 寂靜於心」으로 쓰였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순서·글자를 달리 쓴다. 확정역이 없어 통일하지 않고 寂定=고요히 안정됨 / 寂靜=고요함으로 갈라 옮겼다(사전 寂定은 전권 5회뿐). 正智·正念은 순서도 한문대로 살렸다. (4) 受、心、法法觀念住는 앞 「身身觀」 꼴이 受(受受觀)·心(心心觀)에도 걸리는 압축으로 읽었다(팔리 vedanāsu vedanānupassī / citte cittānupassī / dhammesu dhammānupassī와 맞는다). 한문 압축을 펴지 않고 쉼표(、)로 둔 채 「법에서 법을 관하는」으로 적었다. (5) 受=느낌, 心=마음, 法=법: 受는 정형구행(낱말 확정역 없음)이라 사념처 문맥에서 느낌(vedanā)으로 옮기고 다의어 판별을 신고한다. (6) 不放逸行의 行: 慧琳 음의 0479b16 「放逸行 … 行平聲呼之也」는 行을 평성(xíng, 「행하다」)으로 읽으라는 뜻으로 보고 「불방일을 행함」으로 옮겼다(참고 인용, 확정 아님) — 이 자리 다의어 판별을 신고한다. 不放逸=불방일은 [참고] 확정역(3분할표는 의역이라 했으나 확정역이 위다). (7) 乃至知身 / 乃至知法의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펴지 않고 「내지」로 두며 [생략표지]를 신고한다(사전 乃至 ①: 이 경 4회). (8) 觀念住: 사전 觀念 ① 「身身 54 · 法法 43 · 受受 4」로 身身觀/法法觀의 짝이 이 역자의 쓰임이다. 念住는 「생각의 머묾」으로 옮겼다(념주 음독을 피함). 方便=방편(정착), 精勤=부지런히 힘씀: 사전 方便 ① 앞 「精勤 66」, 사전 勤 ① 뒤 「方便 135」로 두 글자가 잇따라 쓰이는 짝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4:370.5~370.8

AG:sa619/0173c17.2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 370.8에서 370.9로 넘어가는 자리에 「까닭이 무엇인가」에 해당하는 물음이 없다(370.9는 곧 「Yepi te, bhikkhave…」). …pe…가 걸린 자리가 아니므로 「없음확인」. 所以者何는 「까닭은 무엇인가」로 옮겼다(所以=까닭, 者=주제 표지, 何=의문; 所는 「~하는 바」로 풀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4:370.9

AG:sa619/0173c20.1 · 교차 검사

若比丘住學地者,未得進上,志求安隱涅槃時,身身觀念住,精勤方便,不放逸行,正念正智,寂靜於心;受、心、法法觀念住,精勤方便,不放逸行,正念正智,寂靜於心,乃至於法遠離。

비구가 배움의 자리에 머무는 이라면, 더 위로 나아감을 아직 얻지 못하고 안온한 열반을 뜻하여 구할 때, 몸에서 몸을 관하는 생각의 머묾, 부지런히 힘쓰는 방편, 불방일을 행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 마음이 고요함; 느낌、마음、법에서 법을 관하는 생각의 머묾, 부지런히 힘쓰는 방편, 불방일을 행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 마음이 고요함, 내지 법에서 멀리 떠남.

주 (1) 住學地者 未得進上 志求安隱涅槃 ↔ 팔리 sekhā appattamānasā anuttaraṃ yogakkhemaṃ patthayamānā(배우는 이·아직 뜻한 바에 이르지 못한 이·위없는 안온을 바라는 이). 若…者는 연결어미(-라면)로 흡수했고 學地=배움의 자리(sekha의 단계), 進上=더 위로 나아감. (2) 安隱=안온: 한문 쪽 전거(사전 安隱 ① 이 역자의 쓰임, 전거 대장의 당대 범어 후보 svastha)는 「편안하고 안전함」으로 서며, 팔리 yogakkhema와의 짝은 한역자가 「安隱涅槃」으로 두 낱말을 이은 것이어서 팔리 anuttara(위없는)가 한문에 따로 서지 않는 개별 어휘의 갈림이다(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3) 涅槃=열반: 3분할표는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涅槃은 소리를 옮긴 이름(nibbāna)이고 한국 불교계 정착형이 「열반」이다 — 처리를 밝히고 유형 판별을 신고한다(전거 대장 ↔ 팔리 Nibbāna / 범어 nirvāṇa, ⚠다른 부(EA) 대역). (4) 遠離=멀리 떠남: 팔리 이 자리는 pariññāya(두루 앎)인데 한역은 「於法遠離」(법에서 멀리 떠남)이다 — 개별 어휘의 갈림(번역기법 가능성이 있으나 판정하지 않음). 乃至於法遠離의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이므로 펴지 않고 [생략표지]. (5) 한자 흔들림: 같은 정형구가 17.2의 몸 자리에서는 「正智正念 · 寂定於心」이었으나 여기서는 「正念正智 · 寂靜於心」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글자·순서를 쓴다. 한문대로 두었다. (6) 受=느낌 · 行=행함의 다의어 판별은 17.2와 같다. 時=때, 得=획득(未得=얻지 못하고).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4:370.9~370.12

AG:sa619/0173c21.1 · 교차 검사

若阿羅漢諸漏已盡,所作已作,捨諸重擔,盡諸有結,正知善解脫,當於彼時亦修身身觀念住,精勤方便,不放逸行,正念正智,寂靜於心;受、心、法法觀念住,乃至於法得遠離。」

아라한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할 일을 이미 하고, 모든 무거운 짐을 버리고, 모든 존재의 결박을 다하고, 바르게 알아 잘 해탈하였으면, 그때에도 또한 닦는다: 몸에서 몸을 관하는 생각의 머묾, 부지런히 힘쓰는 방편, 불방일을 행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 마음이 고요함; 느낌、마음、법에서 법을 관하는 생각의 머묾, 내지 법에서 멀리 떠남을 얻음.

주 (1) 阿羅漢=아라한: 정착어. 3분할표는 음역으로 분류했으며 소리를 옮긴 이름이다(慧琳 0441b10: 응공·살적·불생 등 뜻풀이를 전함 — 인용만). 전거 대장 ↔ 팔리 Arahaṃ / 근대 Arhat (⚠다른 부(DA/EA)). (2) 諸漏已盡=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 khīṇāsavā: 漏는 정형구행이라 확정역이 없다 — 정형구가 「번뇌」로 옮기므로 따르되 낱말 선택을 신고한다. 所作已作=「할 일을 이미 하고」(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 katakaraṇīyā. 捨諸重擔=모든 무거운 짐을 버리고 ↔ ohitabhārā(짐을 내려놓은). 盡諸有結=모든 존재의 결박을 다하고 ↔ parikkhīṇabhavasaṃyojanā(3분할표 有結=의역; 結은 번뇌의 다른 이름, 사전 結 ⑥). 正知善解脫 ↔ sammadaññā vimuttā(바르게 알아 해탈). 팔리의 vusitavanto(삶을 마친)·anuppattasadatthā(자기 이익에 이른)에 짝하는 한문이 없다 — 문장 유무. (3) 當於彼時의 當을 「그때를 당하여」의 때 표지(當…時)로 보고 「그때에도」로 옮겼다 — 당위의 當(-하겠다)으로 읽을 수도 있어 다의어 판별을 신고한다. 亦=또한: 배움의 자리에 있는 이(21.1)와 대조되어 뜻이 실려 살렸다. (4) 팔리는 이 자리를 「kāyena visaṃyuttā」(몸에서 풀려난)로 맺는 데 비해 한역은 「於法得遠離」(법에서 멀리 떠남을 얻음)이다 — 개별 어휘의 갈림(visaṃyutta↔遠離)이고 21.1의 pariññāya↔遠離와 함께 한 낱말이 두 팔리형에 걸리는 것도 눈에 띈다. 乃至於法得遠離의 乃至는 접힌 자리라 그대로 둔다 — [생략표지]. 앞 좌표와 달리 이 문장의 受·心·法 항은 「精勤方便」 이하를 쓰지 않고 접혀 있다(한문이 줄임). (5) 이문: 大正 교감주 「捨諸=重捨【聖】」 — 聖本은 「重捨」로 읽는다. 본문은 저본(大正)을 따랐고 판본이 갈린다는 사실만 신고한다. 若=-면(연결어미)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4:370.13~370.16

AG:sa619/0173c25.1 · 교차 검사

時,尊者阿難歡喜隨喜,作禮而去。

그때 존자 아난이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예를 올리고 떠났다.

주 팔리 sn47.4의 끝은 370.17(세존의 맺는 말: 새로 온 비구들을 사념처로 권하라)과 370.18 「Catutthaṃ」(넷째라는 경 번호 표지)뿐이며, 청자가 기뻐하고 물러가는 맺음 문장이 없다 — 「없음확인」. 같은 맥락에서 팔리 370.17의 반복 맺음은 한역 쪽에 짝이 없다는 사실도 여기 적는다(한역은 16.1의 지시에서 곧 21.1로 가고 맺음에서 반복하지 않는다). 歡喜隨喜=기뻐하고 따라 기뻐함. 이 경은 흔한 꼴 「聞佛所說」 없이 「歡喜隨喜」만 쓴다(사전 歡喜 ① 「所說 1151」이 앞에 오는 것이 통례). 作禮=예를 올림: 사전 作禮 ① 앞 「隨喜 108」 · 뒤 「而去 148」로 隨喜 뒤에 오고 而去로 이어지는 쓰임이다. 而는 접속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4:370.18

AG:sa619/0173c29.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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