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633

SĀ 633

교차 검사교차 검사 8현대역 준비 중

(六三五)

(635)

주 제목 행(경 번호). 이 조각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아(`_산스크리트_sa633` 없음, 팔리 원문 없음) 모든 좌표의 대응을 `absent`가 아닌 `unaligned`(아직 안 봄)로 둔다. 번호 표기가 자료마다 다르다 — 저본 `(六三五)`·`大正 635`, 우리 uid `sa633`, `_전거_sa633`·`_사전_sa633` 머리말은 `大正 633`. 판정하지 않고 신고만 한다.

AG:sa633/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경). `如`는 비유 자리가 아니라 `如是`의 일부이므로 「이와 같이」로 옮기고 부사를 더 세우지 않았다.

AG:sa633/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巴連弗邑鷄林精舍。

한때 부처님께서 파련불읍의 닭숲 정사에 머무르셨다.

주 `佛`=부처님은 [구속] 그대로. `巴連弗邑`은 3분할 표가 `巴連弗`을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저본을 보면 소리다 — 세 글자가 뜻으로 읽히지 않고 도시 이름의 소리를 옮긴 것으로 읽힌다(弗은 음역에 쓰이는 글자). 그래서 음역 규칙대로 한자 독음 「파련불」로 적었다(`_전거_sa633`의 팔리 후보 Pāṭaliputta는 비고에만). `邑`은 뜻 그대로 읍. `鷄林`은 표대로 의역으로 보아 「닭숲」으로 옮겼다(닭 + 숲; 전거 팔리 후보 Kukkuṭārāma와 뜻이 맞는다). 한국 정착형 「계림정사」일 수 있으나 정착어 목록 판정은 정도평 몫이라 정착형을 쓰지 않았다. `精舍`는 정착어 「정사」(수행자가 머무는 집). `一時`는 「한때」.

AG:sa633/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若比丘於四念處修習多修習,未淨眾生令得清淨,已淨眾生令增光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가 사념처를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아직 청정하지 않은 중생이 청정함을 얻게 하고, 이미 청정한 중생이 광택을 더하게 한다.

주 (1) 한자 흔들림 —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다른 한자를 쓴다: 앞 좌표 `佛住`, 여기 `世尊`, 14.1 `佛說`. 둘 다 [구속]이라 각각 부처님·세존으로 고정했다. (2) `比丘`=비구 [구속]. 전거상 팔리 후보 bhikkhu, 근대 범어 후보 Bhikṣu로 갈린다 —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비구의 뜻(乞士 등)은 慧琳 0482a20 苾蒭 五義(怖魔·乞士·淨命·淨戒·破惡)를 인용한다. `世尊`은 「세상에서 존경받는 이」를 뜻하는 정착형. (3) `四念處`=사념처, 정착어(몸·느낌·마음·법을 관찰하며 알아차림을 세우는 네 자리). 3분할 표는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결과는 한자 독음과 같다. (4) `修習多修習`은 줄이지 않고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으로 두 번 옮겼다. `若`은 「-면」이 지고 `於`는 목적 조사가 진다. (5) `令`은 두 자리(令得清淨·令增光澤) 모두 사역이며 주어는 수행하는 비구다. 이문: `令`은 大正 본문, 元·明은 `今`. 뒤 절 `令增光澤`과 병렬이 되는 것이 `令`이므로 大正대로 옮겼다. (6) 3분할 표의 `清淨`(Sobhavatī) 적중은 다른 부(DA)의 도시 이름 용례이고 여기서는 보통어 「청정」이다. `生` 3회는 전부 `眾生`의 일부이며 정형구 행의 jāti(태어남)가 아니다 — 정형구 행을 적용하지 않았다. `光澤`은 「광택」.

AG:sa633/0176a11.1 · 교차 검사

何等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何等為四`의 `為`는 피동이 아니라 계사(「~이다」)이며 `何等`은 「무엇」. 앵커의 `為…所` 피동 형태가 아니다.

AG:sa633/0176a13.1 · 교차 검사

謂身身觀念住,受、心、法法觀念住。」

이른바 몸에서 몸을 관찰하여 염에 머무는 것과, 느낌·마음·법에서 법을 관찰하여 염에 머무는 것이다.”

주 (1) 한문은 `受、心、法法`을 한 묶음으로 쓰고 `觀念住`를 한 번만 적는다. `受受`·`心心`으로 펴지 않고 접힌 대로 두었다(사전 觀念 ① 앞 `身身 54 · 法法 43 · 受受 4`로 다른 경에는 펴진 꼴이 실재하나 이 경은 접혀 있다). 한국어의 「느낌·마음·법에서 법을」이 `受`·`心`도 같은 꼴로 읽히는지는 한문도 열어 둔 자리라 [불확실:구두·분절]. (2) `念`은 확정역이 없어 「염」으로 두고, `受`는 정형구 행의 「느낌」을 쓰되 낱말 확정역은 아니므로 [불확실:확정역_부재]. `謂`는 「이른바」. (3) 한자 흔들림 가능성: 11.1은 `四念處`, 여기는 `念住`(`觀念住`). 같은 개념(사념처)의 다른 표기일 수 있으나 판정하지 않고 신고만 한다.

AG:sa633/0176a13.2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한자 흔들림 — 앞의 `世尊`(11.1)과 같은 분을 여기서는 `佛`로 쓴다. `佛所說`의 `所`는 「~하는 바」로 옮기지 않고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已`는 「-고 나자」, `歡喜`는 「기뻐하며」, `奉行`은 「받들어 행했다」(정형구 `歡喜奉行`, 이 아함 전권 829회). `比丘` 음역계통은 11.1과 같다(bhikkhu / Bhikṣu 전거 인용, 판정 없음).

AG:sa633/0176a14.1 · 교차 검사

如淨眾生,如是未度彼岸者令度、得阿羅漢、得辟支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上說。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아직 저 언덕으로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너게 하는 것, 아라한을 얻는 것, 벽지불을 얻는 것,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주 (1) `如上說`은 한문이 스스로 접은 표지(이 경 1회, 전권 171회)다. 가리키는 곳은 11.1~13.2의 사념처 수습이지만 펴지 않았다. 팔리 쪽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unaligned`. (2) `如淨眾生`의 `淨`을 형용(「청정한 중생」)이 아니라 동사(「중생을 청정하게 함」)로 읽었다 — 앞 11.1의 `令得清淨`을 가리키는 비교이고, 사전 淨眾 ③ 용례(sa1182/0322a29.1 `能淨眾生`, sa533/0139a19.1 `一乘道,淨眾生,離憂`)에서 `淨眾生`이 동사 + 목적어로 쓰였기 때문이다(사전 淨眾 ① 잡아함 18회·10경). 사전은 뜻을 정해 주지 않으므로 저본 문맥으로 골랐고, 다른 읽기도 열려 있다. (3) `令度、得阿羅漢、得辟支佛、得…`에서 `令`이 뒤 `得`들까지 미치는지 한문이 말하지 않는다. `令`을 보충하지 않고, 쉼표로 나열된 네 항목으로 옮겼다. `亦`은 「~도」가 지므로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4) `彼岸`은 뜻으로 옮긴 「저 언덕」. 정착형은 「피안」이다. `者`는 「~한 이」. (5) 음역·정착어: `阿羅漢`=아라한(공양받을 만한 이; 음의 阿羅漢 慧琳 0441b10은 應供·煞賊·不生·遠惡의 뜻을 든다). 전거상 팔리 후보 Arahatta/Arahaṁ, 근대 범어 후보 Arhat로 갈린다. `辟支佛`=벽지불.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辟支`는 소리다(음의 辟支佛 慧琳 0484b07 `辟支迦此云獨`, 佛은 `覺`). 홀로 깨달은 이를 뜻하는 정착어. 전거에는 팔리 후보 Paccekabuddha뿐이고 범어 후보는 없어 계통 신고는 하지 않는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더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음의 三菩提 慧琳 0482c14 `阿耨已下合云無上正等正覺`). 팔리 후보 Anuttara sammāsambodhi / 근대 범어 후보 Anuttara-samyak-saṁbodhi로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3분할 표의 `多羅`(Tāla)·`菩提`(Bhaddiya) 행은 이 긴 음역어 안쪽의 부분 적중이라 쓰지 않았다.

AG:sa633/0176a16.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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