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一〇)
(610)
주 한문 제목 자리는 경 번호 「六一〇」뿐이고 경명이 없다. 팔리 sn47.2는 경명(Satisuttaṃ)을 단다 — 한문에 경명이 없음을 확인했으므로 없음확인이다. 교감주 「S. 47. 2. Sata.」는 다카쿠스 편자의 대조 표시이지 증언 판독이 아니며, 직역 본문에 넣지 않았다. 팔리 대응 후보는 다카쿠스 각주 단일 계열(single_source)이다 — 본문을 대조하면 비구들에게 하는 설법이라는 틀은 같으나 설하는 내용이 갈린다(0171b15.1·0171b16.2 비고 참조). 같은 경인지의 판정은 정도평 님 몫으로 남긴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물에 없어 모든 좌표의 SF 항은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숫자는 한문 번호를 아라비아 숫자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2: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한역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雜阿含 전권 1332경, 이 경 1회; 변형 「聞如是」는 4경). 如의 「같이」는 「이와 같이」로 옮겼고, 我는 「나」로만 옮겨 누구의 자칭인지 풀지 않았다. 팔리 sn47.2는 경명 뒤 곧바로 368.1 「Ekaṃ samayaṃ …」로 시작하며 이에 해당하는 말(Evaṃ me sutaṃ)이 없다 — 자리는 368.1 앞이며 없음확인이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르셨다.
주 (1) 一時↔Ekaṃ samayaṃ, 佛住↔bhagavā … viharati는 구조가 같다. 그러나 장소가 갈린다 — 한역은 舍衛國祇樹給孤獨園, 팔리는 vesāliyaṃ … ambapālivane(웨살리, 암바빨리 숲).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고 사실만 신고한다. (2) 한자 흔들림: 한역이 팔리 bhagavā에 여기서는 「佛」, 0171b15.1에서는 「世尊」을 쓴다. 확정 술어 [구속] 佛→부처님, 世尊→세존으로 각각 고정하고 통일하지 않았다. (3) 舍衛國: 사위는 소리를 옮긴 이름(음역)으로 한국 불교계 정착형 「사위」+國=「사위국」. 음의 인용: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聞物國」. 전거표(참고): 팔리형 Sāvatthī / 당대 범어형 śravasthi로 두 계통이 서 있다(음역계통) —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표는 이 대역이 다른 부(DA)의 것임을 표시한다. (4) 祇樹給孤獨園: 정착형 「기수급고독원」. 뜻: 祇樹는 祇(陀)(Jeta 태자 이름의 소리)+樹(뜻)로, 慧琳 0368a03 「祇陀…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給孤獨은 뜻을 옮긴 이름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아나타삔디카 장자), 慧琳 0368a05 「亦義譯也…誓救孤獨」; 園은 동산. 전거표 팔리형 Jetavana, Anāthapiṇḍika (⚠다른 부(DA)의 대역). 3분할표는 5자 이상이라 정형구 조각일 수 있다며 보류로 두었다 — 이름으로 판별하고 정착어로 처리했으나 뜻으로 옮기는 길(「기수의,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도 열려 있어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주어 존대 「-시-」는 부처님이 주어인 자리에 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368.1
爾時,世尊告諸比丘:「我當說修四念處。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념처를 닦는 것을 설하겠다.
주 (1) 爾時 「그때」, 世尊 「세존」([구속]), 告 「이르셨다」, 諸 「-들」(복수는 접미사로 흡수하고 「모든」은 세우지 않음). 368.2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와 구조가 같고, 爾時(때)↔tatra(곳)는 낱말이 다르다(개별 어휘). 한자 흔들림: 0.3의 佛과 여기 世尊이 같은 개념을 옮긴다 — 0.3 비고 참조. (2) 팔리 368.3(bhikkhavo의 부름)·368.4(Bhadante의 응답)·368.5(Bhagavā etadavoca)는 한문 전문에 응답어가 없어 없음확인이다. (3) 我當說: 當은 어미 「-겠다」가 지므로 「마땅히」를 세우지 않았다. (4) 四念處: 3분할표가 「음역」으로 1차 분류했으나 念(새김·생각)과 處(자리)는 소리가 아니라 뜻을 옮긴 한역어라 표의 유형이 저본과 어긋난다. 한국 불교계 정착형 「사념처」로 적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전거표 팔리형 Cattāro satipaṭṭhānā (⚠다른 부(MA)의 대역). 팔리 sn47.2 본문에는 satipaṭṭhāna가 나오지 않는다. (5) 368.6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는 같은 자리의 첫 가르침 선언이나, 한역은 「사념처를 닦는 것」을, 팔리는 새기고(sato) 분명히 앎(sampajāno)을 설한다 — 내용이 갈린다. 호격 bhikkhave는 한문에 없다(인도어 호격 탈락이 아니라 한문 쪽 번역기법일 수 있어 저본 차이의 증거로 세우지 않음). (6) 比丘는 [구속] 「비구」. 전거표에 팔리 bhikkhu / 근대 범어 Bhikṣu가 병기되어 갈린다(음역계통) — 판정하지 않는다. 따옴표는 한문의 「…」 열림을 옮겼고 닫힘은 0171b19.1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7.2:368.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2:368.3~368.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368.6
諦聽,善思。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주 諦聽=「자세히 듣고」, 善思=「잘 생각하라」. 諦는 「진리」가 아니라 「살피다」의 뜻으로 읽었다 — 음의 인용: 續一切經音義(希麟) 0949c19 〔守護國界主陀羅尼經〕 「諦審也…謂以耳審得其聲」. 사전 인용: 사전 諦聽 ① 뒤 善思 107/122(이 경 0171b16.1) — 정형구 짝이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명령 「-라」. 팔리 sn47.2에는 청문·사유를 명하는 문장이 없다. 자리는 368.6과 368.7 사이이며 없음확인이다.
云何修四念處?
어떻게 사념처를 닦는가?
주 云何=「어떻게」(의문형 어미가 의문을 지므로 부사를 따로 붙이지 않음). 팔리 368.8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와 같은 자리의 물음이나, 묻는 것이 갈린다 — 한역은 「사념처를 닦음」, 팔리는 「비구가 새기고 있음(sato hoti)」. 호격 bhikkhave가 한문에 없는 것은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일 수 있어 번역기법으로 함께 신고하며, 저본 차이의 증거로 세우지 않는다. 四念處의 표기와 불확실은 0171b15.1과 같은 사안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368.8
謂內身身觀念住,精勤方便,正智正念,調伏世間憂悲,外身、內外身觀住,精勤方便,正念正知,調伏世間憂悲。
이른바 안의 몸에서 몸을 살펴 새김에 머물고, 부지런히 힘써 방편을 쓰며, 바른 지혜와 바른 새김으로 세상의 근심과 슬픔을 다스려 누르고, 바깥 몸과 안팎의 몸을 살펴 머물고, 부지런히 힘써 방편을 쓰며, 바른 새김과 바른 앎으로 세상의 근심과 슬픔을 다스려 누른다.
주 (1) 구조: 한문은 「안의 몸·바깥 몸·안팎의 몸」 셋을 펴는데, 팔리 368.9는 「kāye kāyānupassī」 한 가지뿐이고 안팎 구분이 없다 — 한문이 더 말한다(문장 유무). 謂=「이른바」(풀이를 여는 말). (2) 內身身觀念住의 끊기: 內身(에서) 身(을) 觀 | 念住로 읽었다. 사전 觀念 ① 앞 身身 54/109(이 경 0171b16.3)는 가장 긴 덩어리로 끊은 기계 표제여서 觀念을 한 낱말로 세우지 않았다 — [불확실:구두·분절]. 두 번째 절 「外身、內外身觀住」는 한문이 身의 반복과 念을 스스로 줄인 꼴이어서, 접힌 대로 두고 「새김」을 보태지 않았다(증보 금지). (3) 念=「새김」, 念住=「새김에 머물고」, 正念=「바른 새김」, 調伏=「다스려 누르고」, 方便=「방편」은 확정역이 없는 선택이다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精勤方便은 팔리 ātāpī 한 낱말에 한자 네 자가 서는 꼴이며 사전 方便 ① 앞 精勤 66/458(0171b16.3)로 짝지어 나온다. 調伏은 팔리 vineyya와 결이 다를 수 있으나 한역 글자대로 옮겼다. (4) 正智正念↔sampajāno satimā는 순서가 같고, 뒤 절 「正念正知」는 순서와 글자(智→知)가 다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 「바른 지혜」와 「바른 앎」을 구별해 두었다. 이문: 大正 교감주 「智=知【宋】」「知=智【元】【明】」 — 저본(大正)의 글자대로 옮기고 이문은 본문을 바꾸지 않았다. (5) 世間=「세상」(의역, 3분할표); 憂悲(근심·슬픔 둘)↔abhijjhādomanassa(탐함·불쾌 둘)는 낱말이 갈린다 —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368.9
如是受、心、法,內法、外法、內外法觀念住,精勤方便,正念正知,調伏世間憂悲,是名比丘修四念處。」
이와 같이 느낌, 마음, 법에서 안의 법, 바깥 법, 안팎의 법을 살펴 새김에 머물고, 부지런히 힘써 방편을 쓰며, 바른 새김과 바른 앎으로 세상의 근심과 슬픔을 다스려 누른다. 이를 비구가 사념처를 닦는다고 이름한다.”
주 (1) 如是=「이와 같이」. 受、心、法 셋은 한문이 身에서 편 內·外·內外 전개를 줄이고 法에서만 전개한다 — 한문이 스스로 줄인 꼴이며 乃至 같은 생략 표지어가 아니므로 [생략표지]로 달지 않고 접힌 대로 두었다. 受心法과 內法… 사이를 잇는 「에서」는 한국어가 요구한 최소 조사이며 이 이음이 한문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 [불확실:격·태·구문]. (2) 受=「느낌」: 정형구 행의 vedanā 자리이나 한자 자체의 확정역은 없고(아함 오온 역어는 확정 술어로 정하지 않음, 2026-10-03), 身·受·心·法의 차례라는 문맥으로 읽었다 — [불확실:확정역_부재]. 法은 「법」 그대로. (3) 팔리 368.10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보이는 vedanāsu·citte·dhammesu와 끝의 정형구는 한문과 맞으나, …pe…로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그 안쪽은 없음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 [불확실:저본_근거부족]. 內法·外法·內外法의 구분은 368.9의 전문에도 없다. (4) 方便·念住·調伏·世間·憂悲의 선택과 불확실은 0171b16.3과 같은 사안이다 —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5) 是名=「이름한다」. 368.11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o hoti」는 같은 자리의 맺음이나 서술이 갈린다(새김이 있음 ↔ 사념처를 닦음); 호격은 한문에 없다. (6) 팔리 368.12~368.17(sampajāno의 풀이, 반복되는 맺음)은 한문에 짝이 없다 — 한문이 덜 말한다. 닫는 따옴표는 0171b15.1에서 연 말씀을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2:368.1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2:368.11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 맺음 정형구. 說此經已=「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已=마침), 諸=「-들」, 所說=「설하신 것」(所는 관형절로 풀었고 「~하는 바」를 쓰지 않음).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연속된 두 동사를 연결어미 「-며」로 이음). 사전 인용: 사전 歡喜 ① 앞 所說 1151/1340 · 뒤 奉行 829(이 경 0171b21.1) — 정형구 짝이다. 음의 인용: 一切經音義(慧琳) 0753a01 「歡喜悅也」. 佛은 [구속] 「부처님」. 팔리 끝(368.16 뒤)에는 이런 맺음 정형구가 없고, 368.17 「Dutiyaṃ」은 경의 차례 표지여서 짝이 아니다 — 없음확인.
過去、未來修四念處亦如是說。
과거와 미래에 사념처를 닦는 것도 이와 같이 설한다.
주 過去、未來=「과거와 미래」(병렬). 亦은 앞의 현재 설법에 과거·미래를 잇는 뜻이 실려 있으나 한국어 조사 「-도」가 이를 지므로 부사 「또한」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如是說=「이와 같이 설한다」 — 說의 주체와 태(설한다/설해진다)가 한문에 드러나지 않아 [불확실:격·태·구문]. 四念處는 0171b15.1과 같다. 팔리 sn47.2에는 과거·미래로 넓히는 문장이 없다(자리는 368.16 뒤) — 없음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