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〇三)
(603)
주 저본에는 경명 없이 편자 부여 경번호만 있다(六〇三). 교감주(orig·cf.)는 「cf. S. 10. 12(11-12)」로, 팔리 상윳따 10.12를 견주라는 편자 표지다. 제공된 팔리(SN10.12)에는 경명(0.3 Āḷavakasuttaṃ)이 있으나 한역 쪽에는 그 자리를 채울 경명이 없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은 제공되지 않아 산스크리트 항은 미대응으로 둔다(이하 같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0.12: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은 개경 정형구(정형구 표: 이 아함 전권 1332경, 이 경 1회; 사전 如是我聞 ① 1333회). 如是=「이와 같이」, 我聞=「나는 들었다」. 팔리 246.1(Evaṃ me sutaṃ)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0.12:246.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제공된 팔리 246.2는 알라비의 알라바까 야차의 처소(āḷaviyaṃ … āḷavakassa yakkhassa bhavane)로, 장소 서술의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곳이다(사전 一時/舍衛國의 AI 정렬은 sa1·sa10 등에서 Sāvatthinidānaṃ 정형으로 잡히나 이 경의 팔리와는 아니다). 一時=한때, 佛=부처님([구속] 확정역), 住=머물다. 舍衛=정착어(3분할표)이므로 정착형 「사위」;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가 舍衛를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또 善見律을 들어 「舍衛者人名也」로 풀어 둔 것을 인용만 한다(전거 舍衛 ⚠다른 부(DA)의 대역, 팔리 후보 Sāvatthī).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가 [보류]한 5자 연쇄다. 판별: 祇樹(祇陀 태자의 숲 — 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 故略云祇樹也」), 給孤獨(뜻으로 옮긴 이름 — 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 園(동산)의 합성이다. §⑤ 정착어 예시에 「기수급고독원」이 있어 정착형을 쓰되, 給孤獨을 뜻으로 옮기는 §⑤ 의역 처리(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와 갈릴 수 있어 로 신고한다. 이름의 뜻: 기타(祇陀) 태자의 숲 +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給孤獨)가 세운 동산. 전거 祇樹給孤獨園 ⚠다른 부(DA)의 대역(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은 인용만 한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0.12:246.2
時,有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
그때 용모와 안색이 더없이 빼어난 한 천자가 밤의 마지막 시분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주 제공된 팔리 246.3~246.4는 알라바까 야차가 세존께 다가가 말을 거는 장면(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 etadavoca)이다. 겹치는 것은 「세존께 다가감」(來詣佛所)뿐이고, 한역의 화자는 天子(팔리는 야차), 容色絕妙·後夜時·稽首佛足·退坐一面은 제공된 SN10.12 안에 없다. 有=존재 서술이나 「한 천자가」로 주어화했고(앵커 有), 於=조사로 흡수, 佛所의 所=장소 「계신 곳」(「~하는 바」 아님). 容色=용모와 안색, 絕妙=더없이 빼어남. 天子=천자(사전 天子 ① 잡아함 437회, 팔리 AI 정렬 없음). 後夜=밤을 초·중·후로 나눈 마지막 시분(사전 後夜 ① 130회, ⑥ 丁福保는 후대라 가볍게만 참조); 확정역이 없어 「밤의 마지막 시분」으로 풀었다. 稽首=머리를 땅에 조아림(慧琳 0698c05 「言頭至地也」 인용), 稽首佛足=「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退坐一面=「물러나 한쪽에 앉았다」(사전 一面 ① 499회). 所·有·於 모두 훈독투를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0.12:246.3~246.4
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몸의 여러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주 제공된 SN10.12에는 광명을 비추는 서술이 없다(팔리 야차 장면 246.3~246.4 다음 자리에 놓인다). 祇樹給孤獨園의 표기·처리는 0.3과 같다(정착형, 같은 불확실). 光明=광명(사전 光明 ① 97회, 身諸 63), 遍照=두루 비추다(사전 遍照 ① 102회). 諸=「여러」: 한국어 어미·조사가 복수를 지지 않으므로 낱말로 세웠다(남발하지 않음, 본 경 안에서는 諸流와 함께 둘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0.12:246.4
時,彼天子說偈問佛:
그때 그 천자가 게송을 설하여 부처님께 물었다:
주 팔리 246.31의 질문 게송은 화자·동작을 알리는 서술 문장 없이 인용으로 바로 시작한다(제공된 SN10.12 안). 한역은 도입 서술 「說偈問佛」을 둔다. 彼=그, 偈=게송(慧琳 〔音妙法蓮花經〕 0483c01 「梵云伽陀 此云頌」 인용; 사전 偈 ① 1037회). 說偈=게송을 설하다, 問佛=부처님께 묻다(佛=부처님 [구속]). 문말은 내레이션이라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0.12:246.31
「云何度諸流?云何度大海?
「어떻게 여러 흐름을 건넙니까? 어떻게 큰 바다를 건넙니까?
주 流=흐름(주석 tt_id 0161006 Ogha), 海=바다(주석 tt_id 0161007 Aṇṇava). 한역은 諸流(복수)·大海(「大」가 붙음)이고, 팔리 246.31은 단수 oghaṃ·aṇṇavaṃ이다 — 「大」에 대응하는 팔리 낱말은 없다(주석이 aṇṇava에 대응시킨 것은 海뿐). 팔리 246.27~246.30의 첫 문답(kiṃsūdha vittaṃ … saddhīdha vittaṃ …)은 한역에 없다(문장 유무). 云何=「어떻게」: 어미 의문형이 지므로 부사를 더 세우지 않았다. 度=건너다(사전 度 ① 잡아함 209회). 존칭: 천자가 세존께 묻는 발화이므로 문말을 존댓말(-ㅂ니까)로 통일했다(⑦).
니까야 대응 일부 SN 10.12:246.31
云何能捨苦?云何得清淨?」
어떻게 괴로움을 버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청정을 얻습니까?」[불확실]
불확실 能捨苦=「괴로움을 버릴 수 있습니까」: 能은 어미 「-ㄹ 수 있다」가 진다(앵커). 捨(버리다)는 팔리 dukkhamacceti의 acceti(넘다)와 낱말이 갈리고, 한역 안에서도 질문의 捨(a27)와 대답의 除(b01)가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 통일하지 않고 둘을 달리 옮겼다). 得清淨=「청정을 얻습니까」: 得은 명사 목적어 清淨을 거느린 획득으로 읽었고 가능 어미로 풀지 않았다(앵커 得 문맥 판정; b01 智慧得清淨과 같은 꼴). 清淨: 3분할표가 의역으로 분류하고 팔리 Sobhavatī를 붙였으나, 전거(清淨 ⚠다른 부(DA)의 대역)가 가리키는 것은 DA의 도시 이름이라 이 자리의 보통명사(팔리 parisujjhati 쪽)와 동형이의다. 표가 저본과 어긋나므로 저본대로 보통명사로 옮겼다. 清淨·苦는 확정술어에 행이 없어 「청정」(정착어)·「괴로움」으로 옮기고 로 신고한다. 존칭은 a26과 같이 -ㅂ니까로 통일.
니까야 대응 일부 SN 10.12:246.32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에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 246.33의 대답 게송은 도입 서술 없이 시작한다(제공된 SN10.12 안). 世尊=세존([구속]). 한역은 같은 인물(붓다)을 앞에서는 佛(0161a23.1 佛所·佛足, 0161a25.1 問佛, 0161b05.1 佛所說)로, 여기서는 世尊으로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한자 흔들림이다. 확정역이 佛=부처님, 世尊=세존으로 각각 달라 한국어도 그대로 달리 두었다. 爾時=그때에, 即=「곧」(즉시의 뜻이 실린 정형 即說偈言; 사전 即 뒤 說偈 206회). 偈言=게송을 설하여 말씀하다. 내레이션은 평서(주어 존칭의 「-시-」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0.12:246.33
「信能度諸流,不放逸度海,
「믿음은 여러 흐름을 건널 수 있고, 불방일은 바다를 건너며,
주 信=믿음(정형구 행에서만 saddhā와 묶이고 낱말 확정역은 없다 — 문맥으로 옮기고 신고). 不放逸=불방일: 확정술어 [참고](212 appamāda → 불방일)가 이 자리에서 뜻이 선다(방일하지 않음으로 바다를 건넘; 주석 tt_id 0161008 Appamāda).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확정 술어가 위(⓪-2)이므로 확정 문자열을 쓴다. 能度諸流=「여러 흐름을 건널 수 있고」(能=어미). 후절 不放逸度海에는 能이 없으므로 「수 있다」를 잇지 않았다. 구문: 信·不放逸이 주어인지 수단인지는 한문 자체에 격 표지가 없어 판별되지 않는다(앞 질문 云何度諸流도 무주어). 본문은 격을 정하지 않는 주제 표지 「-은」으로 열어 두었다. 증언의 팔리는 구격(saddhāya·appamādena, 수단)이나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말하는 이는 세존이므로 문말 평서(⑦). 信·不放逸·(b01)精進·智慧가 팔리 saddhā·appamāda·vīriya·paññā와 같은 차례로 선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0.12:246.33
精進能除苦,智慧得清淨。」
정진은 괴로움을 없앨 수 있고, 지혜는 청정을 얻는다.」
주 精進=정진, 智慧=지혜, 苦=괴로움 — 셋 다 확정술어에 행이 없는 교리어라 정착어/풀이로 옮기고 신고한다(사전 精進 ① 143회, 智慧 ① 177회). 能除苦: 能=어미 「-ㄹ 수 있다」, 除=없애다(사전 除 ① 233회). 질문의 能捨苦(a27)와 대답의 除苦가 같은 개념(팔리 acceti)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음). 得清淨=「청정을 얻는다」(a27과 같은 읽기; 팔리 parisujjhati는 「깨끗해진다」). 精進·智慧가 주어인지 수단인지의 격 불확정은 a29와 같은 사안이다. 평서(세존 발화).
니까야 대응 일부 SN 10.12:246.34
時,彼天子復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다시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
주 팔리 246.47의 야차의 응답 게송도 도입 서술 없이 시작한다(제공된 SN10.12 안). 復=「다시」: 같은 천자의 두 번째 게송이라는 뜻이 실려 있어 낱말로 세웠다(앵커 復). 偈言은 a28과 같이 옮겼고, 화자가 천자이므로 「-시-」 없이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0.12:246.47
「久見婆羅門,逮得般涅槃,
「오래도록 바라문을 보니, 반열반을 얻기에 이르러,
주 제공된 팔리에서 같은 자리(세존의 대답 뒤 상대의 응답 게송 246.47~246.52)에 놓이나 내용이 다르다 — 팔리는 「이제 누구에게 다시 묻겠는가…」로 시작하는 귀의·찬탄이고 「久見婆羅門 …」에 대응하는 구절은 없다(엇갈림). 婆羅門=바라문([구속]); 여기서는 서술어 逮得般涅槃을 거느린 칭호 자리라 사성의 신분 자리가 아닌 것으로 읽힌다(근거: 뒤 서술어). 久見: 久=오래도록(「오랜 뒤에」로도 읽힐 수 있어 양독 — 한문만으로 정하지 못함). 見은 정형구 행에서 dassana(뵙는 것)와 묶이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문맥으로 「보다」). 구문: 見婆羅門逮得般涅槃은 「바라문을 보고(주어는 말하는 이)」와 「바라문이 반열반을 얻는 것을 보니(겸어식)」 양쪽으로 열린다. 한국어 「-니」로 옮겨 관찰된 것의 서술로 읽히게 했으나 단정하지 않는다. 逮得=「이르러 얻다」(慧琳 0327c07 「逮及也」·0332c02 「逮 … 相及貌」 인용, 사전 逮得 ① 115회 — 逮得己利 정형과 같은 쓰임), 「얻기에 이르러」로 옮겼다. 般涅槃: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般=pari, 涅槃=nibbāna를 옮긴 음역이라 저본과 어긋나며, 한국 불교계 정착형 「반열반」을 쓴다(慧琳 0463b14 「此翻為圓寂」 인용). 전거 般涅槃 ⚠다른 부(EA)의 대역(팔리 후보 Parinibbuta 등)은 인용만 한다. 존칭: 천자가 세존께 말하는 발화이므로 문말은 b04 끝에서 -ㅂ니다로 통일한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0.12:246.47~246.52
一切怖已過,永超世恩愛。」
모든 두려움을 이미 지나 영원히 세간의 은혜와 사랑을 넘어섰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한역 b03·b04는 한 게송의 두 줄이며, 팔리 같은 자리(246.47~246.52)에 대응 구절이 없다(b03 서술 참조). 一切=모든(慧琳 0434b15 「一切普也」 인용), 怖=두려움, 已過=「이미 지나」(已=완료의 뜻이 실림). 구문: 一切怖已過는 목적어 앞놓임(「모든 두려움을 지나」)과 주어 읽기(「모든 두려움이 지나갔다」)가 모두 서나, 뒤 줄 永超世恩愛의 동사 超가 목적어를 받는 평행으로 보아 앞의 읽기를 택하고 신고한다. 永超=「영원히 넘어섰다」. 世恩愛: 世=세간, 恩愛=은혜와 사랑(사전 恩愛 ① 잡아함 91회). 확정역이 없고 「은애」(애착)로 옮길 수도 있어 로 둔다. 문말 -ㅂ니다는 천자→세존 발화의 존댓말 통일(⑦).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0.12:246.47~246.52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그 천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에는 이 닫는 서술(듣고 기뻐함·절·사라짐)이 없고 246.52 다음에 「Yakkhasaṃyuttaṃ samattaṃ」(상윳따 맺음)과 요약 게송이 이어진다(제공된 SN10.12 안). 聞佛所說의 所는 「~하는 바」를 쓰지 않고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앵커 所). 歡喜隨喜는 뜻이 다른 두 말의 연쇄(사전 歡喜 ① 1340회, 隨喜 ① 397회 중 歡喜 뒤 335회)라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로 모두 옮겼다(정착형 환희·수희를 쓰지 않음; 慧琳 0753a01 歡喜 인용 가능). 稽首佛足은 a23과 같다. 即沒不現: 即=「곧」, 沒=사라지다, 不現=나타나지 않다. 彼天子는 「그 천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0.12:24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