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八〇)
(오백팔십)
주 경 번호 자리다. 한문은 번호만 싣고 경 이름이 없다 — 팔리 sn1.8은 번호(8.0)와 이름(Susammuṭṭha 경, 0.3)을 싣는다(일부). 두 번호 체계가 달라 수 자체는 짝지을 수 없다. 교감주 `S. 1. 1. 8. Susammuṭṭhā.`는 다카쿠스 각주로 상윳따 1·1·8경을 가리키고, `[No. 100(165)]`는 별역 한역(大正 100 제165경)을 가리키는 표기로 보인다(주의 글자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이 작업의 증언 항은 아니다). 대응 후보 합의 등급은 `conflict`(sn1.8 · sn1.1 병립)이고 이 좌표에서는 판정하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SF 항은 미대응이다(이하 같다). 번호 확인 요청: 저본 머리는 大正 580, `_전거_sa578.md` 머리말은 大正 578, uid는 sa578 — 수가 서로 갈리니 확인은 정도평 님 몫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8.0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의 如는 「이와 같이」 부사어로 옮겼다. 팔리 sn1.8은 8.1 `Sāvatthinidānaṃ`(사위 도입 정형구)으로 이 구간을 접어 두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미대응이다. 보조 sn1.1/1.1 `Evaṃ me sutaṃ`은 같음.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8:8.1
니까야 대응 같음 SN 1.1:1.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 [구속] 부처님. 舍衛(사위)는 정착어로 정착형을 썼다. 이름의 뜻: 음의(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는 義譯으로 「없는 것이 없는 나라」·「들은 이의 성(聞者城)/들은 것의 나라(聞物國)」를 전하고, 善見律을 끌어 舍衛가 그 땅에 먼저 살던 사람 이름에서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 적는다 —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표: 팔리 후보 Sāvatthī / 범어 당대 후보 śravasthi가 갈려 있으므로 `음역계통`으로 신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전거표 주의: ⚠다른 부(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은 5자 복합이라 이름인지 먼저 가렸고, 시작 문장의 장소 이름이므로 이름으로 보아 정착형을 썼다 — 3분할표가 「보류」로 둔 항목이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이름의 뜻: 祇樹는 祇陀 태자의 숲(음의 慧琳 0368a03: 태자가 나무를 남겨 공양했으므로 줄여 祇樹), 給孤獨은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慧琳 0368a05 義譯: 고독한 이를 구제하는 부자, 阿那邠邸라고도 함). 팔리형은 Jetavana / Anāthapiṇḍika(전거표, ⚠다른 부(DA)의 대역). 팔리 sn1.8의 8.1은 이름 `Sāvatthi`만 드러내고 나머지는 접혀 있어 일부. 한역 「~국」은 팔리 sāvatthiyaṃ(사위에)에 없는 낱말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8.1
니까야 대응 같음 SN 1.1:1.2
時,有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그때 모습과 빛깔이 더없이 빼어난 한 천자가 밤의 마지막 무렵에 부처님 계신 곳에 와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몸의 여러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주 이문 遍【CB】/過【大】: 저본(CBETA)의 遍을 따랐다. 過면 「두루 비추었다」가 아니라 「지나쳐 비추었다」쪽으로 뜻이 달라진다. 有天子의 有는 새 인물을 세우는 자리라 「~이 있어」를 쓰지 않고 「한 천자가」로 풀었다(앵커). 容色絕妙: 容色은 모습과 빛깔(얼굴빛), 絕妙는 비길 데 없이 빼어남. 後夜: 밤을 셋으로 나눈 마지막 때 — 사전 後夜 ① 130회, 丁福保(⑥)는 「寅刻, 近日出之時」(후대·가벼운 참고)라 하나 한국어는 뜻으로 「밤의 마지막 무렵」. 稽首: 음의(慧琳 0600c02 · 0698c05)가 「머리가 땅에 이른다」고 풀어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로 옮겼다. 所는 「계신 곳」 관형절로 풀었다. 諸는 「여러」. 갈림 — 구조·배열: 팔리 sn1.1/1.3~1.4는 광명으로 숲을 비춘 뒤 다가가(obhāsetvā → upasaṅkami) 절하고 한쪽에 섰으나(abhivādetvā → ekamantaṃ aṭṭhāsi), 한문은 다가와 절한 뒤에 광명이 비춘다. 문장 유무: 한문에 「한쪽에 섬」이 없다. 개별 어휘: 한역 天子(「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의 낱말) ↔ 팔리 devatā(신격 일반). sn1.8은 8.1이 이 구간을 접어 두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8:8.1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3~1.4
時,彼天子而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而는 접속이라 흡수(「설하여」). 偈는 정착어 「게송」. 팔리 sn1.8/8.2 `Ekamantaṃ ṭhitā kho s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는 「한쪽에 서서 부처님 곁에서 이 게송을 말했다」를 싣는데, 한문은 「게송을 말함」만 있고 「한쪽에 섬」·「곁에서」가 없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8.2
「以法善調伏,不隨於諸見,
「법으로 잘 조복하여 여러 견해를 따르지 않으며,
주 이문: 隨/墮【宋】【元】【明】【聖】, 諸/耶【聖】 — 저본(大正)의 隨·諸를 따랐다. 墮면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며」로 뜻이 달라진다. 以法善調伏은 주어가 없고 피동인지 능동인지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 한국어 「조복하여」는 두 쪽으로 다 읽힌다. 調伏은 사전 調伏 ①(181회)의 정착 술어 「조복」을 썼고 善은 「잘」, 諸見은 「여러 견해」. 以·於는 조사로 흡수. 발화자가 천자,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문말을 존댓말로 통일한다(b10.1에서 닫힌다). 팔리 8.3 `Yesaṃ dhammā susammuṭṭhā, paravādesu nīyare`는 「법들이 잘 흐려진(잊힌) 이들이 남의 주장에 끌려 다닌다」꼴로 읽혀, 같은 자리에서 한문(조복됨·따르지 않음)과 방향이 맞선다 — 엇갈림. (susammuṭṭha를 흐려짐·잊힘으로 읽은 것은 증언 쪽 읽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8.3
雖復著睡眠,則能隨時悟。」
비록 잠에 붙들려 있더라도 때를 따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 雖復…則…: 復는 雖復의 굳은 꼴이라 「다시」로 세우지 않고 「비록~더라도」에 흡수했고, 則은 귀결 어미에 흡수했다. 能은 「-ㄹ 수 있다」. 睡眠: 3분할표 의역 → 「잠」(음독 「수면」이 아님). 음의(慧琳 0323b10)는 睡=坐寐·熟, 眠=臥로 푼다. 전거표의 팔리 후보 Thīnamiddha(五蓋의 하나)는 이 좌표의 뜻(그냥 자는 것)과 겹칠 수 있으나 저본이 법수로 지목하지 않으므로 법수로 옮기지 않았다. 著: 「붙다·집착하다」와 「빠져들다」로 갈리는 다의어 — 「붙들려」로 세웠다(사전 著 ⑥ 愛著은 가벼운 참고라 근거로 세우지 않는다). 悟: 「깨달을」 — 한국어 「깨-」가 깨어남과 깨달음을 함께 지니는 점을 썼다. 隨時: 「때를 따라」. 팔리 8.4 `Suttā te nappabujjhanti, kālo tesaṃ pabujjhituṃ`(잠든 그들은 깨지 못한다, 그들이 깨어날 때다)은 같은 낱말 마당(suttā = 잠든·睡眠, pabujjhati = 깨다·悟, kālo = 때·時)을 쓰되 극성이 뒤집힌다 — 깨지 못한다 ↔ 깨달을 수 있다. 엇갈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8.4
爾時,世尊說偈答言: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여 답하여 말씀하셨다:
주 한역이 같은 개념(부처님)에 다른 한자를 쓴다 — 0.3·b06.1·b17.1은 佛, 여기는 世尊이다. 통일하지 않고 확정 술어대로 佛=부처님, 世尊=세존으로 각각 고정했다(둘 다 [구속]). 爾時는 「그때」. 문장 유무: 팔리 sn1.8은 8.4와 8.5 사이에 이 도입 문장이 없고 게송이 곧바로 이어진다 — 팔리 본문 전체를 읽었으므로 없음확인(자리는 8.5 앞).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8.5
「若以法調伏,不隨餘異見,
「법으로 조복하면 그 밖의 다른 견해를 따르지 않고,
주 若은 연결어미 「-면」에 흡수했다(「만약」·「~거든」을 쓰지 않음).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以法調伏의 주어·태는 b09.1과 같은 사안(주어 생략, 능동·피동 불명). 餘異見: 餘=「그 밖의」, 異見=「다른 견해」(사전 異見 ①). 팔리 8.5 `Yesaṃ dhammā asammuṭṭhā, paravādesu na nīyare`와 견줄 때 不隨餘異見 ↔ paravādesu na nīyare(남의 주장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짝이 서나, 以法調伏 ↔ dhammā asammuṭṭhā(법들이 흐려지지 않은)는 어휘가 갈린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1.8:8.5
無知已究竟,能度世恩愛。」
무지가 이미 끝에 이르러 세상의 은혜와 사랑을 건널 수 있다.」
주 이문 竟/意【宋】: 저본 竟을 따랐다. 意면 「究意」가 되어 낱말이 바뀐다. 無知: 「무지(어리석음)」로 읽었으나 「앎 없음 자체가 완성되었다」로도 읽을 수 있는 자리라 신고한다(사전 無知 ① 34회). 究竟: 「끝에 이르다」(사전 究竟 ① 뒤 苦邊 100, 184회 중). 能: 「-ㄹ 수 있다」. 世恩愛: 「세상의 은혜와 사랑」으로 b16.1과 같게 고정했다 — 음독 「은애」를 피하고 뜻으로 풀었다(사전 恩愛 ①, 丁福保 ⑥ 「父母妻子 사이의 恩情·溺愛」은 가벼운 참고). 팔리 8.6 `Te sambuddhā sammadaññā, caranti visame samaṃ`(그들은 바르게 깨닫고 올바로 알아 고르지 않은 곳에서 고르게 다닌다)와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 엇갈림. 같은 구 度/超世恩愛가 b16.1에 다시 서므로 보조 sn1.1/1.13의 짝은 b16.1에 매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8:8.6
時,彼天子復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다시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復: 앞서 b08.1에서 같은 천자가 게송을 말했으므로 실제 반복이다 — 「다시」로 옮겼다. sn1.8은 8.6에서 끝나 천자의 둘째 게송이 없다 — 없음확인(자리는 8.6 뒤). 보조 sn1.1/1.12는 게송이 천자의 것이나 「다시 말했다」는 도입 문장이 없고 게송이 대화 뒤에 바로 놓인다 — 일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8.6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2
「久見婆羅門,逮得般涅槃,
「오랜만에 바라문을 뵙습니다. 반열반을 얻기에 이르시어,
주 婆羅門 [구속] 바라문. 여기서는 신분(四姓)이 아니라 부처님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 음의(慧琳 0325c03 · 0439c22 · 0466a06)는 「淨行」·「惡法을 버린 이」·「高貴人」으로 푼다(인용만). 팔리형은 Brahmaṇa/Brāhmaṇa(전거표, ⚠다른 부(DA)의 대역)이며 전거표가 갈림으로 센 항목이나 두 형이 같은 글자(Brāhmaṇa)여서 `음역계통`은 달지 않았다. 久見: 「오랜만에」와 「오래도록」으로 갈리는 양독이라 `뜻_판별불가`를 남겼다(「오랜만에」로 세움). 見은 `[정형구 행]`(251행 No.45)이라 확정 문자열이 아니므로 문맥(존대 대상을 대면함)으로 「뵙다」를 골랐다. 逮得: 음의(慧琳 0327c07 · 0332c02)가 逮를 「及(미치다·이르다)」로 풀고, 사전 逮得 ①은 婆羅門 뒤 般涅 앞에서 73회 나란히 선다 — 「얻기에 이르시어」. 般涅槃: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글자는 범어식 소리 옮김으로 보이고(般은 접두 요소의 소리, 涅槃은 열반의 소리) 「반열반」이 정착형이라 이 정착형을 썼다 — 표의 분류와 어긋나므로 `고유명·표기_유형`으로 신고한다(전거표 팔리형 Parinibbuta/Parinibbānam/Parinibbāyī, ⚠다른 부(EA)의 대역; 음의 慧琳 0463b14는 涅槃을 「圓寂」으로 푼다). 발화자가 천자,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존댓말·존칭 -시-를 b16.1까지 통일한다. 팔리 sn1.1/1.12 `Cirassaṃ vata passāmi, brāhmaṇaṃ parinibbutaṃ`와 같은 말(vata에 해당하는 한문 낱말은 없음). 구조: 이 한 경이 팔리 두 경에 나뉘어 걸린다 — 앞 두 게송(b09~b13)은 sn1.8의 두 게송 자리와, 천자의 둘째 게송(b15~b16)과 물러감(b17)은 sn1.1의 끝 게송과 결말에 걸린다. 이 사실은 대응 후보가 conflict로 갈린 까닭의 한 실마리로 보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1:1.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8.6
一切怖已過,永超世恩愛。」
모든 두려움을 이미 지나시고 영원히 세상의 은혜와 사랑을 뛰어넘으셨습니다.」
주 一切怖已過: 一切=「모든」(음의 慧琳 0434b15 「普·遍具」, 전거표 당대 후보 sarva), 怖=「두려움」, 過=「지나다」. 永超: 「영원히 뛰어넘다」. 世恩愛는 b13.1과 같게 「세상의 은혜와 사랑」. 팔리 sn1.1/1.13 `Appatiṭṭhaṃ anāyūhaṃ, tiṇṇaṃ loke visattikaṃ`(발붙일 곳 없이, 애쓰지 않고, 세상에서 달라붙음을 건넜다)과 견줄 때 `一切怖已過`와 `Appatiṭṭhaṃ anāyūhaṃ`은 서로 짝이 없고(문장 유무), 永超世恩愛 ↔ tiṇṇaṃ loke visattikaṃ은 같은 자리의 말이나 어휘가 갈린다(超 ↔ tiṇṇa 건넘, 恩愛 ↔ visattikā 달라붙음; 恩愛가 visattikā를 옮겼는지는 이 좌표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8.6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그 천자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佛 [구속] 부처님. 한자 흔들림: 같은 부처님을 b11.1은 世尊, 여기는 佛로 적는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통일하지 않았다. 所는 「설하신 것」 관형절로 풀었다. 歡喜隨喜: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隨喜는 정착형 「수희」를 쓰지 않고 뜻으로, 사전 隨喜 ①은 歡喜 뒤 335회). 即: 「곧」. 沒不現: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팔리 sn1.1/1.15~1.18과 견줄 때: 한문에 `Idamavoca sā devatā`(이것을 말했다)·`Samanuñño satthā ahosi`(스승이 인정하셨다)·우요(padakkhiṇaṃ katvā)가 없고, 한문의 「歡喜隨喜」에 짝하는 팔리 말은 없다(팔리는 `samanuñño me satthā`로 반응한다). 稽首佛足 ↔ bhagavantaṃ abhivādetvā, 即沒不現 ↔ tatthevantaradhāyi는 짝이 선다 — 일부. sn1.8은 8.6에서 끝나 이 결말이 없다 — 없음확인(자리는 8.6 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1.15~1.1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