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八二)
(582)
주 경 번호 五八二는 위치기수 표기다(「(582)」). 저본 교감주 「S. 1. 3. 5. Arahaṃ.」와 「No. 100(166)」은 편자 주이며 본문이 아니다(후자는 별역잡아함 100경의 166으로 읽힌다). 지정된 팔리 후보 sn1.3은 「Upanīyasuttaṃ」(목숨이 끌려감 · 죽음의 두려움 · 복을 지음)로, 이 경(아라한이 「나」와 「나의 것」을 말하는가를 묻는 문답)과 내용이 맞지 않아 대응으로 잡지 않았다 — 이 경의 팔리 항은 전 좌표 미대응(unaligned)이다. 투입물에 산스크리트가 없어 산스크리트 항도 전 좌표 미대응이다. 「S. 1. 3. 5」가 상윳따·품·경의 세 자리 번호라면 sn1.3(상윳따 1의 3경)과 다른 경을 가리킬 수 있다(교감주 말미의 「Arahaṃ.」가 그 경의 이름일 수 있으나 해당 팔리 원문이 투입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 — 如는 비유 「같이」로 「이와 같이」, 我聞은 「나는 들었다」. 암송자의 서술이라 내레이션 평서. 이 아함 전권 1332회, 이 경 1회(정형구 표). 지정 팔리 후보 sn1.3에는 이 정형구가 없으나 후보 자체가 미확정이라 absent로 단정하지 않는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一時=한때. 佛=[구속] 부처님(世尊과의 한자 흔들림은 c19 서술). 舍衛=사위(정착어, 3분할 표) — 이름의 뜻: 음의 慧琳 0367c24 「義譯云無物不有國」(뜻으로 옮기면 없는 것이 없는 나라),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法鏡經 「聞物國」, 善見律 「舍衛者人名也」를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 舍衛: 팔리 후보 Sāvatthī / 범어 후보(당대) śravasthi — 두 계통이 확인된 자리(⚠다른 부 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⑤ 표가 정착어 예로 든 정착형을 따름). 이름의 뜻: 祇는 祇陀(Jeta; 음역)이고 樹는 숲(뜻) — 음의 慧琳 0368a03 「祇陀·祇洹·祇園 皆一名」「太子亦名勝 …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 故略云祇樹」; 給孤獨은 의역(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 誓救孤獨」「古經云阿那邠邸」. 곧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장자)가 태자의 숲에 세운 동산」. 3분할 표는 祇樹給孤獨을 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다며 보류로 두었으나, 여기서는 동산 이름의 전체로 보아 정착형으로 판별했다 — 정도평 확인 필요. 전거: Jetavana, Anāthapiṇḍika. 팔리 후보 sn1.3/3.1 「Sāvatthinidānaṃ.」은 같은 도입 정형이지만 후보 경이 미확정이라 대응을 잡지 않았다.
時,有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그때 용모와 얼굴빛이 더없이 빼어난 한 천자가 밤의 마지막 시분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렸고, 몸의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주 時=그때. 有天子=존재의 有를 「한 천자가」로 옮겨 주어화(③ 표의 「한 비구가」 꼴). 容色絕妙는 한문에서 天子 뒤의 서술절인데 한국어에서는 천자를 꾸미는 관형절로 앞세웠다(어순 변경, 뜻·구조 불변). 天子=천자(정착형). 後夜=밤의 마지막 시분 — 사전 後夜 ⑥(丁福保, 후대·참고)는 밤을 初·中·後로 셋 가른 끝 때라 풀이한다. 於…時의 於는 조사 「에」가 진다. 佛所의 所는 피동·명사화가 아니라 처소(곳)여서 「계신 곳」으로 옮겼다. 來詣=찾아와. 稽首=머리를 조아림 — 음의 慧琳 0600c02 「稽首 首至地也」. 身諸光明의 諸는 복수 한정인데 光明이 집합명사라 따로 옮기지 않았다. 遍照=두루 비추다 — 사전 遍照 ① 잡아함 102회, 앞 光明 98회(光明 뒤에 붙는 꼴이 이 역장의 쓰임이다).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0.3 서술 참조). 佛=[구속] 부처님.
時,彼天子說偈白佛:
그때 그 천자가 게송을 말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주 時=그때, 彼=그. 說偈白佛 — 偈=게송(정착형), 說=말하다, 白=윗사람께 아뢰다(사전 白佛 ① 이 아함 881회).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대상을 이 경에서 「佛」(0.3·c17·c19·a05)과 「世尊」(c22·c29)로 달리 쓴다 — 확정역 부처님/세존을 각각 고정하고 한자를 통일하지 않는다.
「若羅漢比丘,漏盡持後身,
“아라한 비구가 번뇌가 다하고 뒤의 몸을 지닌다면,[불확실]
불확실 若=연결어미 「-면」(③). 羅漢=아라한 — 阿羅漢의 줄임으로 보이며(이 투입물에 전거 없음) 정착형을 따랐다. 확정술어·3분할에 없는 호칭이라 정착형 판별을 로 남긴다. 比丘=[구속] 비구; 전거: 팔리 후보 bhikkhu / 범어 후보(근대, 편자 비정) Bhikṣu — 계통이 갈리는 자리, 판정하지 않는다(음의 慧琳 0482a20 「梵云苾蒭 此具五義」). 漏盡=번뇌가 다함 — 漏는 확정술어 파일에서 정형구 행(「번뇌」)이고 낱말 확정역은 없다. 持=지니다. 後身=뒤의 몸(의역, 3분할). 전거·3분할 표가 後身에 Sakkāyadiṭṭhi(유신견)를 짝지었으나, 이 자리는 「몸을 지님」(持後身)이라 그 짝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여 따르지 않았다 — 정도평 확인. 질문자는 천자이므로 문말 높임은 c21에서 선다.
頗說言有我,及說我所不?」
‘나가 있다’고 말하고, 또 ‘나의 것’을 말합니까?”
주 頗…不의 의문 틀 — 頗는 의문 부사이고 문말 不은 의문 종결이라 어미 「-ㅂ니까」가 진다(따로 「혹시」를 세우지 않음). 說言=말하다(說+言 겹동사, 인용). 有我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를 유지했다. 我=「나」 — 1인칭 대명으로도, 자아(상주하는 주체)로도 읽힐 수 있는 양독이라 [불확실:다의어_판별]. 我所=「나의 것」(사전 我所 ⑥, 후대·참고: 我所有의 줄임). 及=또. 천자가 세존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
爾時,世尊說偈答言: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말하여 대답해 말씀하셨다:
주 爾時=그때. 世尊=[구속] 세존. 說偈答言 — 게송을 말하고(說偈), 대답하여 말하기를(答言). 한자 흔들림: c19의 「佛」과 같은 대상을 여기서는 「世尊」으로 쓴다(c19 서술 참조).
「若羅漢比丘,漏盡持後身,
“아라한 비구가 번뇌가 다하고 뒤의 몸을 지닌다면,
주 c20과 같은 한문(질문 게송의 앞 두 구를 되받음). 세존의 발화이므로 평서이나 이 행은 연결어미로 끝나 문말 높임이 서지 않는다. 羅漢·比丘·漏·後身의 처리는 c20 서술과 같다.
亦說言有我,及說有我所。」
또한 ‘나가 있다’고 말하고, 또 ‘나의 것이 있다’고 말한다.”
주 亦=또한 — 질문(c21)의 「說言有我」를 받아 「그도 그렇게 말한다」는 뜻이 실린 응답이라 세웠다(③: 뜻이 실릴 때만). 有我所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나의 것이 있다」. 及=또. 我=「나」(c21 서술의 양독 그대로). 세존의 발화이므로 평서.
時,彼天子復說偈言:
그때 그 천자가 다시 게송을 말하여 이르기를:
주 復=다시 — 천자의 두 번째 발언이라 반복의 뜻이 실려 세웠다. 說偈言=게송을 말하여 이르기를(言이 인용을 연다).
「若羅漢比丘,自所作已作,
“아라한 비구가 할 일을 이미 했고,
주 若의 가정이 c26·c27 두 행에 걸치므로 어미 「-면」은 둘째 행 끝(c27)에 선다(③: 어미가 진다). 自所作已作 —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所作은 「~하는 바」로 옮기지 않고 명사 「일」로, 所作已作은 「할 일을 이미 했다」로 옮겼다(사전 所作 ①: 이 아함에서 已作과 이어지는 정형 156/242). 羅漢·比丘는 c20 서술과 같다.
已盡諸有漏,唯持最後身,
모든 존재의 번뇌를 이미 다하고 마지막 몸만 지닌다면,
주 已盡=이미 다하다. 諸有漏는 (諸有)+漏 「모든 존재의 번뇌」로도, 諸+(有漏) 「모든 유루」로도 끊을 수 있다 — 사전 諸有 ⑥(후대·참고)는 「여러 존재의 과보」, 사전 諸有 용례의 「盡諸有漏,無漏心解脫」은 有漏를 한 덩이로 읽을 여지가 있다. 앞의 읽기를 택했고 [불확실:구두·분절]로 신고한다. 漏=번뇌(낱말 확정역 없음). 唯=한정이라 보조사 「만」이 지므로 따로 「오직」을 세우지 않았다. 最後身=마지막 몸(의역). 앞 행의 若 가정이 이 행 끝 「-면」에서 닫힌다.
何言說有我,說何是我所。」
어찌 ‘나가 있다’고 말하며, 무엇이 ‘나의 것’이라고 말합니까?”
주 何言=어찌(반문). 言說=말하다(사전 言說 ①). 說何是我所 — 何是는 「무엇이 ~인가」의 계사문이라 「무엇이 ‘나의 것’」으로 옮겼다. 我=「나」(c21 서술의 양독 그대로), 我所=「나의 것」. 有我의 有는 존재 서술. 천자의 발화이므로 문말 존댓말.
爾時,世尊說偈答言: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말하여 대답해 말씀하셨다:
주 c22와 같은 한문. 世尊=[구속] 세존. 한자 흔들림은 c19 서술 참조.
「若羅漢比丘,自所作已作,
“아라한 비구가 할 일을 이미 했고,
주 c26과 같은 한문(질문 게송을 되받음). 若의 가정은 a01·a02 두 행에 걸쳐 둘째 행(a02) 끝 「-면」에서 닫힌다. 自의 흡수·所作已作의 처리는 c26 서술과 같다.
一切諸漏盡,唯持最後身,
모든 번뇌가 다하고 마지막 몸만 지닌다면,
주 一切諸漏盡 — 一切=모든, 諸는 복수 한정이라 따로 옮기지 않고 한 번만 「모든」으로 옮겼다. 漏盡=번뇌가 다하다(낱말 확정역 없음). 唯=보조사 「만」으로 흡수. 最後身=마지막 몸. 앞 행(a01)의 若 가정이 이 행 끝 「-면」에서 닫힌다. c27의 「已盡諸有漏」와 달리 한문이 諸漏로 쓴다.
說我漏已盡,亦不著我所,
‘나’라고 말하고, 번뇌가 이미 다했으며, 또한 ‘나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주 「說我漏已盡」은 說我 | 漏已盡(「‘나’라고 말하고, 번뇌가 이미 다했으며」)으로도, 說 | 我漏已盡(「‘나의 번뇌가 이미 다했다’고 말하고」)으로도 끊을 수 있다. 3분할 표가 漏已盡을 한 덩이(3자)로 표시한 점과 說我所(c21)·說有我(c28)와 說+목적어 꼴이 같은 점을 근거로 앞의 읽기를 택했다. 亦=또한 — 말함(說我)과 집착하지 않음(不著我所)을 같은 주체의 두 사태로 잇는 뜻이 실려 세웠다. 著=집착하다(사전 著我 용례 「莫著我我所」). 我=「나」, 我所=「나의 것」(c21 서술의 양독 그대로). 앞 행들의 -면 가정 아래에서 이어지는 서술.
善解世名字,平等假名說。」
세상의 이름을 잘 알아 평등하게 임시 이름으로 말한다.”
주 善解=잘 알다(善=잘, 解=앎). 世名字=세상의 이름(名字=이름, 사전 名字 ⑥: 名과 字의 총칭·후대 참고). 平等=「평등하게」(부사)로 옮겼으나 「평등한 임시 이름」(관형)으로도 읽힌다. 假名=「임시 이름」 — 한국어 「가명」은 본명을 감춘 이름이라는 뜻이 따로 있어 음독하지 않았다(사전 假名 ⑥ 후대 「虛假不實」은 참고). 平等·假名 모두 확정역이 없다.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그 천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聞佛所說의 所說은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옮겼다. 歡喜隨喜=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隨喜=따라 기뻐함; 음의 慧琳 0753a01은 歡喜를 「悅」로 풂). 稽首佛足=c17 서술과 같다. 即=곧. 沒不現=사라져 나타나지 않다. 이문: 「稽首佛足」을 宋·元·明·聖本이 갖추지 않는다(교감주: 〔稽首佛足〕-【三】【聖】 / 稽首佛足【大】,〔-〕【宋】【元】【明】【聖】).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옮겼다. 한자 흔들림: 「佛」(c19 서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