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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Ā 57

SĀ 57

교차 검사교차 검사 55현대역 준비 중

(五七)

(57)

주 한역 제목 자리는 경 번호만 있다. 팔리는 경 이름(Pālileyyasuttaṃ)과 번호를 함께 단다 — 일부. 大正 교감주는 S. 22. 81. Pārileyya를 대응으로 든다. 이 경에는 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아 산스크리트 항은 달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0.3

AG:sa57/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22.81은 Evaṃ me sutaṃ 없이 Ekaṃ samayaṃ으로 시작한다 — 81.1 앞 자리에 대응이 없음을 확인. 如는 「~와 같이」.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1

AG:sa57/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장소가 엇갈린다 — 한역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 팔리 81.1은 kosambī의 ghositārāma. 佛=부처님[구속]. 舍衛는 정착어 「사위」: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는 正梵音을 室羅伐悉底로 들고 「聞者城」·「聞物國」(듣는 이의 성·만물이 들리는 나라)으로 풀며, 善見律을 끌어 사람 이름 舍衛에서 나라 이름이 왔다고도 적는다. 음역계통: 전거 대장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 — 두 계통이 선다(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로 걸렸다 — §⑤ 표가 정착어 예로 든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뜻: 祇(陀)=태자 이름의 음역(慧琳 0368a03: 正梵音云誓多 此譯為勝), 樹=숲·나무(의역), 給孤獨=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역; 慧琳 0368a05: 梵云阿那陀…誓救孤獨 時人以為其號), 園=동산 — 음역과 의역이 섞인 이름. 전거 대장의 대역(Jetavana, Anāthapiṇḍika)은 ⚠다른 부(DA). 한자 흔들림: 이 경은 같은 분을 佛(0.3·0014b10.1)과 世尊(그 밖)으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분에게 다른 한자를 쓴다. 둘 다 확정역(부처님/세존)이 따로 있어 각각 그대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1

AG:sa57/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還持衣鉢,不語眾,不告侍者,獨一無二,於西方國土人間遊行。

그때 세존께서는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시고, 돌아와 옷과 발우를 지니고, 대중에게 말하지 않으시고, 시자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홀로 하나이며 둘이 없이, 서쪽 나라 땅 인간 세상에서 유행하셨다.

주 팔리 81.2–81.3은 오전에(pubbaṇhasamayaṃ) 꼬삼비에 들어가 걸식하고, 식후에 처소를 스스로 정돈하고(sāmaṃ senāsanaṃ saṃsāmetvā) 떠났다고 한다 — 한역에는 시간 표지와 처소 정돈이 없다(일부). 「서쪽 나라 땅(西方國土)」은 팔리에 없다(개별 어휘). 차례: 팔리는 anāmantetvā upaṭṭhāke(시자에게 알리지 않고)가 anapaloketvā bhikkhusaṅghaṃ(비구 승가에 알리지 않고)보다 앞 — 한역은 대중이 먼저다(구조·배열). 獨一無二 ↔ eko adutiyo. 3분할 표의 不語=「의역」(대역 Makkhā, ⚠다른 부 MA)은 이 자리와 맞지 않는다 — 여기 不語는 「말하지 않다」라는 동사구다(동형이의). 舍衛城=사위성(정착어; 뜻은 0.3 비고). 乞食(밥을 빌다)·遊行(돌아다니며 다님)은 정착형 「걸식」「유행」으로 두었다. 於는 「에서」가 진다. 者(侍者)는 「시중드는 이」 — 정착형 「시자」.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

AG:sa57/0013c08.1 · 교차 검사

時,安陀林中有一比丘,遙見世尊不語眾,不告侍者,獨一無二。

그때 안타 숲 속의 한 비구가,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하지 않으시고 시자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홀로 하나이며 둘이 없으신 것을 멀리서 보았다.

주 팔리 81.4는 「어떤 비구(aññataro bhikkhu)가 세존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아난다에게 갔다」고만 한다 — 안타 숲·멀리서 봄은 한역에만 있다(일부). 安陀林: 3분할 표는 安陀를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저본에서 安陀 두 글자는 뜻으로 읽히지 않아 소리를 옮긴 음역으로 판별하고 林(숲)은 의역으로 보아 「안타 숲」으로 적었다(음역+의역 혼합). 전거 대장 팔리 후보 Andhavana(⚠다른 부 MA) — 이 경 팔리 증언에는 해당 지명이 없다. 有一比丘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주어 도입이라 「~이 있어」로 옮기지 않고 주어로 세웠다. 見은 정형구 행(dassana)에 걸리는 한자 — 여기서는 일반 동사 「보다」로 옮겼다. 比丘=비구[구속]; 음역계통: 전거 대장 팔리 후보 bhikkhu / 근대 비정 Bhikṣu(판정하지 않음; 이 경의 比丘 전부 같음). 慧琳 0482a20: 梵云苾蒭 此具五義(怖魔·乞士·淨命·淨戒·破惡).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4

AG:sa57/0013c10.1 · 교차 검사

見已,進詣尊者阿難所,白阿難言:「尊者!當知世尊不語眾,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

보고 나서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아난에게 아뢰었다. "존자여, 아십시오. 세존께서는 대중에게 말하지 않으시고 시자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홀로 하나이며 둘이 없이 나가 유행하십니다."

주 阿難은 정착어 「아난」 — 이름 뜻은 「경희(慶喜)」, 곧 기쁨(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 阿難陀此云慶喜). 음역계통: 전거 대장 팔리 후보 Ānanda / 근대 비정 Ānaṁda(⚠다른 부 DA; 판정하지 않음). 當知의 當은 명령 어미 「-십시오」가 진다(「마땅히」 쓰지 않음). 而는 흡수. 所는 「있는 곳」. 비구가 존자로 부르는 아난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 팔리 81.6은 처소 정돈·발우와 가사를 지님까지 되풀이하나 한역은 대중·시자·홀로 세 항만 되풀이한다(일부). 見已의 見 처리는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4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6

AG:sa57/0013c12.1 · 교차 검사

爾時,阿難語彼比丘:「若使世尊不語眾,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不應隨從。

그때 아난이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약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하지 않으시고 시자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홀로 하나이며 둘이 없이 나가 유행하신다면, 따라가서는 안 된다.

주 若使는 가정의 복합 허사로 「만약 ~면」 — 배선 앵커의 使[사역]은 이 자리에 서지 않아 사역으로 옮기지 않았다. 應은 「-서는 안 된다」 어미가 진다. 而는 흡수. 아난의 말은 그를 존자로 부른 비구에게 하는 것이라 평서로 두었다. 따옴표는 0013c16.2에서 닫힌다. 팔리 81.7은 처소 정돈 등까지 되풀이한다(일부). 81.8 na…kenaci anubandhitabbo ↔ 不應隨從.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7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8

AG:sa57/0013c14.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왜 그러한가?

주 팔리 81.7은 까닭을 묻는 말 없이 바로 까닭(혼자 머물고자 하심)을 댄다 — 이유를 묻는 문장은 한역에만 있다. 所以者何(까닭이 무엇인가)의 所·以·者는 의문 구문 안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7

AG:sa57/0013c16.1 · 교차 검사

今日世尊欲住寂滅滅少事故。」

오늘 세존께서는 고요히 사라짐에 머무르고 일을 덜어 적게 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주 大正은 寂滅滅少事, 宋·元·明은 寂滅少事(滅 하나가 없다). 大正대로 「寂滅 / 滅少事」로 끊어 옮겼다 — 宋元明본이면 「고요히 사라져 일이 적은 데 머물고자」가 된다. 寂滅은 3분할 「의역」(대역 Upasannaka, ⚠다른 부 DA — 이 자리와 맞지 않는 동형이의)이라 뜻으로 옮겼다. 팔리 81.7 ekova…viharitukāmo(홀로 머물고자 하신다)와 같은 자리에서 다른 까닭을 댄다(엇갈림). 故는 「-기 때문이다」. 今日 전거(당대 tvanya)는 이 자리와 무관.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7

AG:sa57/0013c16.2 · 교차 검사

爾時,世尊遊行北至半闍國波陀聚落,於人所守護林中,住一跋陀薩羅樹下。

그때 세존께서는 유행하여 북쪽으로 반사국 파타 마을에 이르시어, 사람들이 지키는 숲 속에서 한 발타살라 나무 아래에 머무셨다.

주 팔리는 차례로 유행하여 pālileyyaka에 이르러 bhaddasāla 나무 밑에 머물렀다고 한다. 한역 「반사국 파타 마을」은 팔리 지명과 다르다(엇갈림). 半闍·波陀는 3분할 표에 없다 — 두 글자씩 뜻으로 읽어서는 지명이 서지 않으므로 음역으로 판별해 독음으로 적었다(闍는 불전 음역 관례대로 「사」). 國=나라, 聚落=마을(의역; 慧琳 0438b03: 小鄉曰聚 人所居故稱聚落). 전거 대장 근대 비정 波陀=Pada. 人所守護林은 所를 관형절로 풀어 「사람들이 지키는 숲」 — 팔리 81.10에는 없다(일부). 跋陀薩羅는 3분할 「음역」 — 독음 「발타살라」, 大正 대역주 Bhaddasāla(팔리형은 비고에만). 慧琳 0601a20: 跋陀 梵語也. 북쪽 방위는 팔리에 없다. 於는 「에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0

AG:sa57/0013c17.1 · 교차 검사

時有眾多比丘詣阿難所,語阿難言:「今聞世尊住在何所?」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아난에게 말하였다. "지금 듣기로, 세존께서는 어디에 머물러 계십니까?"

주 이문 둘: 聞(大)↔問(宋元明), 所(大)↔處(宋元明). 大正 聞대로 옮겼다 — 問이면 「지금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디에 머무십니까?」가 된다. 팔리 81.11–81.13은 아난다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는다 — 한역에는 인사·앉음이 없다(일부). 팔리 81.14에서 비구들이 하는 말은 법문을 듣고 싶다는 것(81.15–81.16)이고 세존의 거처를 묻지 않는다(엇갈림). 時有眾多比丘의 有는 주어 도입이라 「있어」로 옮기지 않았다. 존자인 아난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 阿難=아난(이름 뜻 경희, 0013c12.1 비고).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14

AG:sa57/0013c19.1 · 교차 검사

阿難答曰:「我聞世尊北至半闍國波陀聚落,人所守護林中跋陀薩羅樹下。」

아난이 답하였다. "나는, 세존께서 북쪽으로 반사국 파타 마을에 이르시어 사람들이 지키는 숲 속 발타살라 나무 아래라고 들었다."

주 거처를 묻고 답하는 대화가 팔리에는 없다 — 팔리 81.15–81.16은 법문을 듣고 싶다는 말이다. 한문이 동사 없이 樹下로 끝나므로 「나무 아래라고」로 두고 동사를 보태지 않았다. 人所守護林中 처리는 0013c17.1과 같다. 아난이 자기를 존자로 부르는 비구들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15

AG:sa57/0013c20.1 · 교차 검사

時,諸比丘語阿難曰:「尊者當知,我等不見世尊已久,若不憚勞者,可共往詣世尊?」

그때 여러 비구들이 아난에게 말하였다. "존자여, 아십시오. 저희는 세존을 뵙지 못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수고를 꺼리지 않으신다면, 함께 세존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 이문: 當知(CB·磧砂·宋元明)↔知(大). 저본(CB)의 當知대로 — 當은 명령 어미가 진다. 팔리 81.15는 「세존 앞에서 법문을 들은 지 오래다」(cirassutā…dhammī kathā) — 한역은 「세존을 뵙지 못한 지 오래」(듣다↔보다, 엇갈림). 81.16 「법문을 듣고 싶다」 ↔ 「함께 나아가자」(일부). 見은 정형구 행(dassana)에 걸리는 한자 — 여기서는 윗분을 「뵙다」. 若不憚勞者의 若은 「-ㄴ다면」, 者는 가정을 맺는 허사로 같은 어미에 흡수. 憚: 慧琳 0323c11 「憚 難也 畏也」 — 「꺼리다」. 可는 「-ㄹ 수 있겠습니까」(권유 의문). 諸比丘=여러 비구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6

AG:sa57/0013c22.1 · 교차 검사

哀愍故,阿難知時,默然而許。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아난은 때를 알고 잠자코 허락하였다.

주 팔리는 81.17에서 아난다가 바로 비구들과 함께 간다 — 잠자코 허락함은 한역에만 있다. 哀愍故의 주어는 문맥상 아난. 默然: 慧琳 0428c16 「嘿 不言也」 — 「잠자코」. 而는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17

AG:sa57/0013c24.1 · 교차 검사

爾時,尊者阿難與眾多比丘夜過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

그때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밤이 지나 새벽에,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주 아난 일행의 걸식은 팔리에 없다. 夜過晨朝=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 舍衛城=사위성(정착어; 뜻은 0.3 비고).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17

AG:sa57/0013c25.1 · 교차 검사

乞食已,還精舍,舉臥具,持衣鉢,出至西方人間遊行,北至半闍國波陀聚落人守護林中。

걸식을 마치고 정사로 돌아와, 누울 자리를 거두고, 옷과 발우를 지니고, 나와 서쪽 인간 세상에 이르러 유행하여, 북쪽으로 반사국 파타 마을 사람들이 지키는 숲 속에 이르렀다.

주 이문: 人(大)↔入(明) — 明본이면 「…파타 마을의 지키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大正대로 「사람들이 지키는 숲」. 이 자리는 人守護林으로 所가 없다(0013c17.1·0013c20.1은 人所守護林) — 뜻은 같게 옮겼다. 舉臥具(누울 자리를 거둠)는 팔리 81.3에서 세존이 하신 senāsanaṃ saṃsāmetvā와 같은 동작인데 한역은 그것을 아난 쪽에 둔다(구조·배열). 팔리 81.17은 아난다가 비구들과 함께 pālileyyaka의 bhaddasāla 나무 밑으로 갔다고만 한다(일부). 臥具 — 전거 대장 당대 후보 śeyanāsanaṃ. 精舍는 정착형 「정사」(수행자의 거처).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7

AG:sa57/0013c26.1 · 교차 검사

時,尊者阿難與眾多比丘置衣鉢,洗足已,詣世尊所,頭面禮足,於一面坐。

그때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옷과 발우를 놓고 발을 씻고 나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팔리 81.18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 頭面禮足 於一面坐. 옷·발우를 놓고 발을 씻음은 한역에만 있다(일부). 詣: 慧琳 0574a11 「詣 到也」. 所는 관형절 「계신 곳」. 於는 「에」.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8

AG:sa57/0013c28.1 · 교차 검사

爾時,世尊為眾多比丘說法,示、教、利、喜。

그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어, 보이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주 示·教·利·喜 네 동사 ↔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네 동사가 하나씩 대응. 為는 「위하여」(피동 아님). 教는 「가르치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19

AG:sa57/0014a01.1 · 교차 검사

爾時,座中有一比丘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

그때 자리 가운데 한 비구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함을 얻는가?"

주 漏는 정형구 행(āsava)에만 걸리고 낱말 확정역이 없다 — 漏(샘)를 문맥대로 「번뇌」로 옮겼다. 疾(빨리) ↔ anantarā(곧바로, 사이 없이): 개별 어휘의 작은 차이. 得은 「얻다」(획득). 有一比丘의 有는 주어 도입이라 「있어」로 옮기지 않았다. 云何는 의문 어미가 진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0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1

AG:sa57/0014a02.1 · 교차 검사

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若有比丘於此座中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이 자리 가운데서 어떤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함을 얻는가?' 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면,

주 팔리는 법의 나열(81.23–81.31)을 먼저 하고 나서 「그런데도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일었다」(81.32–81.33)를 놓는다 — 한역은 그 생각을 먼저 들고 나열을 뒤에 둔다(자리바뀜). 心之所念의 所는 관형절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若有比丘는 「만약 ~이 있다면」 대신 「만약 어떤 비구가 ~한다면」으로 주어화했다. 於는 「에서」. 諸比丘는 복수 표지로만 「비구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따옴표는 0014b09.5에서 닫힌다. 漏 처리는 0014a02.1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81:81.32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33

AG:sa57/0014a03.1 · 교차 검사

者,我已說法言:『當善觀察諸陰,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

그런 이에게, 나는 이미 법을 설하여 말하였다. '여러 음을 잘 관찰하라. 이른바 사념처·사정근·사여의족·오근·오력·칠각분·팔성도분이다.'

주 좌표 머리의 者는 앞 좌표의 若有比丘…作是念을 받아 맺는 허사다 — 좌표 경계가 구 중간에 걸렸다(구두·분절). 「그런 이에게」로 이었다.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진다. 「諸陰을 잘 관찰하라」는 팔리에 없다 — 팔리는 vicayaso(가려내어, 분석적으로) 설했다고 한다(81.23, 일부). 일곱 법의 차례는 팔리 81.24–81.30과 같다. 陰(덮음·쌓임; 五陰의 陰)은 확정 술어에 행이 없어 한국 불교 정착형(五陰=오음)의 「음」으로 두었다 — 교정 회전(⓪관문 [3] 한자 무근거 병기)에 따라 본문에 곁들였던 한자 「(陰)」은 걷고 근거를 이 비고로 옮겼다. 「음」을 둘지 뜻으로 풀지(덮음·쌓임)는 역어 후보가 둘 이상이라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으로 남긴다 — 정도평 판단 몫. 일곱 법은 한국 불교 정착형으로 두었다 — 뜻: 四念處=네 가지 새김의 자리, 四正勤=네 가지 바른 노력, 四如意足=뜻대로 됨의 네 기반, 五根=다섯 기능, 五力=다섯 힘, 七覺分=깨달음의 일곱 갈래, 八聖道分=여덟 갈래 거룩한 길. 3분할 표는 四念處를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세 글자 모두 뜻글자라 의역이다(기계 분류와 저본이 어긋남 — 저본을 따름). 七覺分의 覺은 정형구 행에서 vedanā로 걸리나 여기서는 깨달음이다(다의어). 善觀(전거 Sudassana, ⚠다른 부 EA)·觀察(전거 Ādesana-vidhā, ⚠다른 부 DA)·五根(전거 Pañcindriyānī)은 이 자리의 「잘 관찰하라」·「오근」과 대조만 했다 — 앞 둘은 동형이의. 所謂는 「이른바」. 我는 붓다 1인칭 「나」.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23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4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5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6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7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8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29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30

AG:sa57/0014a06.1 · 교차 검사

我已說如是法,觀察諸陰。

나는 이미 이와 같은 법을 설하였으니, 여러 음을 관찰함이다.

주 觀察諸陰이 說의 목적(설한 법의 내용)인지 설한 목적인지 구문이 정해지지 않는다 — 「~함이다」로 법의 내용으로 읽었다. 팔리 81.31 Evaṃ vicayaso desito…dhammo — 「분석적으로」 대신 한역은 「음을 관찰함」을 댄다(일부). 如是는 「이와 같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1

AG:sa57/0014a08.1 · 교차 검사

而今猶有善男子不勤欲作、不勤樂、不勤念、不勤信,而自慢惰,不能增進得盡諸漏。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기지 않고, 부지런히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며, 교만하고 게을러, 더 나아가 모든 번뇌를 다할 수 없는 선한 남자가 있다.

주 팔리 81.32는 「그런데도 여기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일었다」 —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정진하지 않는 선남자를 말한다(엇갈림). 善男子는 3분할 「의역」(전거 Sappurisasaṃseva — 이 자리와 맞지 않는 대역)이라 뜻으로 「선한 남자」로 옮겼다 — 한국 불교 정착형은 「선남자」.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이 있다」로 살렸다. 自慢惰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교만하고 게을러」). 欲作=하고자 함. 信은 정형구 행(saddhā)에만 걸리고 낱말 확정역이 없다 — 「믿다」. 漏=번뇌(0014a02.1과 같음). 能은 「-ㄹ 수 없다」 어미가 지고 得은 「다할」에 흡수. 而 둘은 흡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32

AG:sa57/0014a09.1 · 교차 검사

若復善男子於我所說法,觀察諸陰,勤欲、勤樂、勤念、勤信,彼能疾得盡諸漏。

또 선한 남자가 내가 설한 법에서 여러 음을 관찰하고,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기고,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믿으면, 그는 빨리 모든 번뇌를 다할 수 있다.

주 정진하는 선남자는 빨리 번뇌를 다한다는 대구는 팔리에 없다 — 팔리는 81.34에서 바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면…」 물음으로 넘어간다. 若은 「-면」, 復는 「또」. 所說法의 所는 관형절 「내가 설한」. 於는 「에서」. 能은 「-ㄹ 수 있다」. 善男子·信·漏 처리는 0014a09.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4

AG:sa57/0014a11.1 · 교차 검사

愚癡無聞凡夫於色見是我,若見我者,是名為行。

어리석고 들음이 없는 범부는 색에 대하여 '이것이 나다'라고 보는데, 나를 본다면 이것을 행이라 한다.

주 팔리 81.35는 범부를 「성자를 보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능숙하지 않고…참된 이들을 보지 못하고…」로 길게 꾸민다 — 한역은 「어리석고 들음이 없는(愚癡無聞)」뿐이다(일부).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 於色見是我. 81.36 「그 여김이 곧 행이다」 ↔ 是名為行. 色·行은 확정역이 없어 한국 불교 정착형 「색」「행」으로 두었다(色=형체 있는 것, 行=지음·형성함). 見은 정형구 행(dassana)에 걸리나 여기서는 「~라고 보다(여기다)」다. 是는 「이것이 ~이다」의 지시·계사로 읽었다. 若은 「-면」, 者는 흡수. 為는 「~이라 한다」. 愚癡: 慧琳 0747c22(자음만 풂).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5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36

AG:sa57/0014a13.1 · 교차 검사

彼行何因?

그 행은 무엇이 원인인가?

주 팔리 81.37은 kiṃnidāno kiṃsamudayo kiṃjātiko kiṃpabhavo 네 복합어를 한 문장으로 묻는다 — 한역은 물음 넷으로 나눠 세운다(0014a14.1–0014a14.4). 복합어를 의문문 넷으로 푼 번역기법이다. 이 좌표는 그중 nidāna(원인) 자리(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7

AG:sa57/0014a14.1 · 교차 검사

何集?

무엇이 일어남인가?

주 samudaya 자리. 集은 정형구 행에서 「일어남」으로 쓰이나 낱말 확정역이 없다 — 글자 뜻은 「모임·쌓임」. 문맥대로 「일어남」을 택했다(이 경의 集 전부 같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7

AG:sa57/0014a14.2 · 교차 검사

何生?

무엇이 생겨남인가?

주 jātika 자리. 生은 정형구 행에서 jāti(태어남)로 걸리나 여기서는 행이 「생겨남」이다(이 경의 因·集·生·轉 연쇄의 生 전부 같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7

AG:sa57/0014a14.3 · 교차 검사

何轉?

무엇이 굴러감인가?

주 pabhava(발원·근원) 자리. 轉(구르다·옮겨 가다)은 확정역이 없다 — 글자대로 「굴러감」(이 경의 轉 전부 같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7

AG:sa57/0014a14.4 · 교차 검사

無明觸生愛,緣愛起彼行。

무명의 접촉이 갈애를 낳고, 갈애를 조건으로 그 행이 일어난다.

주 팔리 81.38은 「무명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닿은 범부에게 갈애가 일어난다」 — 느낌(vedayita)의 단계가 있다. 한역은 無明觸→愛로 바로 잇는다(일부). 81.39 tatojo so saṅkhāro ↔ 緣愛起彼行. 無明: 3분할 표는 「혼합(음역+의역)」으로 분류했으나 無(없음)·明(밝음) 모두 뜻글자라 의역이다 — 정착형 「무명」(뜻: 밝음 없음)으로 두었다. 전거 대장 팔리 후보 Avijjā / 당대 ābidyā(음역이 아니므로 음역계통 비해당). 觸은 정형구 행(phassa)에만 걸린다 — 「접촉」(이 경 전부 같음). 愛는 확정역이 없다 — 연기 계열의 愛 자리라 정착형 「갈애」를 택했다(글자 뜻은 「애착·사랑」; 이 경 전부 같음). 生은 여기서 동사 「낳다」. 緣은 「조건으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8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39

AG:sa57/0014a14.5 · 교차 검사

彼愛何因?

그 갈애는 무엇이 원인인가?

주 갈애의 원인을 묻는 물음은 팔리에 없다 — 팔리는 81.38에서 느낌→갈애를 서술할 뿐 묻지 않는다. 0014a15.1–0014a16.1 네 물음 모두 같다. 因·集·生·轉 처리는 0014a14.1–0014a14.4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5.1 · 교차 검사

何集?

무엇이 일어남인가?

주 0014a1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5.2 · 교차 검사

何生?

무엇이 생겨남인가?

주 0014a1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5.3 · 교차 검사

何轉?

무엇이 굴러감인가?

주 0014a1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6.1 · 교차 검사

彼愛受因、受集、受生、受轉。

그 갈애는 느낌이 원인이고, 느낌이 일어남이고, 느낌이 생겨남이고, 느낌이 굴러감이다.

주 81.38 vedayitena phuṭṭhassa…uppannā taṇhā(느낌에 닿은 이에게 갈애가 일어난다) — 느낌→갈애의 관계는 같으나 한역은 네 술어(因·集·生·轉)로 선언한다(일부). 受는 정형구 행(vedanā)에 걸리고 낱말 확정역이 없다 — 이 자리는 연기 계열의 受라 「느낌」(이 경 전부 같음). 3분할·전거에 「愛受」가 한 낱말(Vedanā, ⚠다른 부 DA)로 걸렸으나 이 자리는 「彼愛 / 受因」으로 끊긴다 — 오적중.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8

AG:sa57/0014a16.2 · 교차 검사

彼受何因?

그 느낌은 무엇이 원인인가?

주 느낌의 원인을 묻는 물음은 팔리에 없다. 0014a16.3–0014a17.3 네 물음 모두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6.3 · 교차 검사

何集?

무엇이 일어남인가?

주 0014a16.3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7.1 · 교차 검사

何生?

무엇이 생겨남인가?

주 0014a16.3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7.2 · 교차 검사

何轉?

무엇이 굴러감인가?

주 0014a16.3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7.3 · 교차 검사

彼受觸因、觸集、觸生、觸轉。

그 느낌은 접촉이 원인이고, 접촉이 일어남이고, 접촉이 생겨남이고, 접촉이 굴러감이다.

주 81.38 avijjāsamphassajena…vedayitena(무명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 접촉→느낌의 관계는 같으나 한역은 접촉에 「무명」을 붙이지 않고 네 술어로 선언한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38

AG:sa57/0014a17.4 · 교차 검사

彼觸何因?

그 접촉은 무엇이 원인인가?

주 접촉의 원인을 묻는 물음은 팔리에 없다. 0014a17.5–0014a18.3 네 물음 모두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7.5 · 교차 검사

何集?

무엇이 일어남인가?

주 0014a17.5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8.1 · 교차 검사

何生?

무엇이 생겨남인가?

주 0014a17.5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8.2 · 교차 검사

何轉?

무엇이 굴러감인가?

주 0014a17.5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38

AG:sa57/0014a18.3 · 교차 검사

謂彼觸六入處因、六入處集、六入處生、六入處轉。

말하자면 그 접촉은 여섯 들어오는 곳이 원인이고, 여섯 들어오는 곳이 일어남이고, 여섯 들어오는 곳이 생겨남이고, 여섯 들어오는 곳이 굴러감이다.

주 팔리는 접촉을 「무명의 접촉」(avijjāsamphassa)으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묻지 않는다 —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접촉의 원인을 六入處로 댄다(엇갈림). 六入處(여섯 감각이 들어오는 곳)는 확정역이 없다 — 정착형 「육입처」 대신 글자 뜻대로 「여섯 들어오는 곳」으로 옮겼다(이 경 전부 같음). 謂는 「말하자면」.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38

AG:sa57/0014a18.4 · 교차 검사

彼六入處無常、有為、心緣起法;彼觸、受、愛、行,亦無常、有為、心緣起法……如是觀者,而見色是我……不見色是我,而見色是我所……不見色是我所,而見色在我……不見色在我,而見我在色……不見我在色,而見受是我……不見受是我,而見受是我所……不見受是我所,而見受在我……不見受在我,而見我在受……不見我在受,而見想是我……不見想是我,而見想是我所……不見想是我所,而見想在我……不見想在我,而見我在想……不見我在想,而見行是我……不見行是我,而見行是我所……不見行是我所,而見行在我……不見行在我,而見我在行……不見我在行,而見識是我……不見識是我,而見識是我所……不見識是我所,而見識在我……不見識在我,而見我在識……不見我在識,復作斷見、壞有見。

그 여섯 들어오는 곳은 무상하고, 지어진 것이며, 마음을 조건으로 일어난 법이다. 그 접촉·느낌·갈애·행도 무상하고, 지어진 것이며, 마음을 조건으로 일어난 법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가 색이 나라고 보고…… 색이 나라고 보지 않고 색이 나의 것이라고 보고…… 색이 나의 것이라고 보지 않고 색이 나 안에 있다고 보고…… 색이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내가 색 안에 있다고 보고…… 내가 색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느낌이 나라고 보고…… 느낌이 나라고 보지 않고 느낌이 나의 것이라고 보고…… 느낌이 나의 것이라고 보지 않고 느낌이 나 안에 있다고 보고…… 느낌이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내가 느낌 안에 있다고 보고…… 내가 느낌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인식이 나라고 보고…… 인식이 나라고 보지 않고 인식이 나의 것이라고 보고…… 인식이 나의 것이라고 보지 않고 인식이 나 안에 있다고 보고…… 인식이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내가 인식 안에 있다고 보고…… 내가 인식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행이 나라고 보고…… 행이 나라고 보지 않고 행이 나의 것이라고 보고…… 행이 나의 것이라고 보지 않고 행이 나 안에 있다고 보고…… 행이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내가 행 안에 있다고 보고…… 내가 행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의식이 나라고 보고…… 의식이 나라고 보지 않고 의식이 나의 것이라고 보고…… 의식이 나의 것이라고 보지 않고 의식이 나 안에 있다고 보고…… 의식이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내가 의식 안에 있다고 보고…… 내가 의식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다시 끊어짐의 견해와 있음을 무너뜨리는 견해를 짓는다.

주 (1) 이문: 저본(CB)은 「彼觸、受、愛、行」, 大正은 셋째·넷째 자리를 行·受로 적는다(교감주 愛【CB】行【大】 · 行【CB】受【大】; 근거 印順 『雜阿含經論會編(上)』 Y30p171~172). 저본(CB)대로 옮겼다. (2) 저본의 「……」 스물한 곳은 CBETA 저본에 있는 생략 부호다 — 각 견해 뒤에 「彼行何因…」 연쇄가 접힌 것으로 보이나 접힌 내용을 텍스트가 말하지 않으므로 펴지 않고 「……」 그대로 두었다([생략표지] 신고; 乃至 계열 표지 목록에는 없는 부호). (3) 차례: 한역은 六入處→觸→受→愛→行 순으로 무상을 선언하고, 팔리 81.40–81.44는 행→갈애→느낌→접촉→무명 순이다(자리바뀜). 끝 항이 팔리는 무명, 한역은 여섯 들어오는 곳이다(엇갈림). (4) 有為(함이 있음·지어짐)·心緣起法은 확정역이 없다 — 「지어진 것」, 「마음을 조건으로 일어난 법」으로 옮겼다. 팔리 saṅkhata paṭiccasamuppanna에는 「마음」이 없다(개별 어휘). 心이 緣起를 꾸미는지 별개 항인지 구문이 정해지지 않는다. 緣起는 3분할 「의역」(전거 Paṭicca-samuppāda, ⚠다른 부 MA)이라 뜻으로 옮겼다. 無常은 정착형 「무상」(전거 당대 aditya는 동형이의). 亦은 「도」가 진다. (5) 如是觀者,而見色是我: 팔리 81.45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이에게 곧바로 번뇌가 다한다」 자리에 한역은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만 있고 「번뇌가 다함」이 없다(일부). 而(스무 곳)의 기능이 접속·역접·가정 가운데 정해지지 않아 「~고」로 흡수했다(격·태·구문). (6) 둘째 견해: 한역 是我所(나의 것) ↔ 팔리 rūpavantaṃ attānaṃ(색을 가진 자기)(엇갈림). 在我 ↔ attani rūpaṃ(81.56), 我在色 ↔ rūpasmiṃ attānaṃ(81.65)은 같다. 受의 네 견해는 81.74와 같은 틀이되 둘째 갈래가 같은 식으로 엇갈린다(일부). (7) 想의 네 견해는 팔리 81.75에서 「api ca kho saññaṃ…」로 접혀 있다 — 접힌 안쪽을 읽을 수 없어 미대응. 같은 81.75의 行 네 견해와 81.76의 識 네 견해는 둘째 갈래만 엇갈린다(일부). (8) 팔리는 다섯 쌓임 뒤에 상견(81.85–81.87 sassatadiṭṭhi)을 들고 이어 단견(81.92–81.94 ucchedadiṭṭhi)을 드는데, 한역은 상견 단계 없이 「다시 끊어짐의 견해·있음을 무너뜨리는 견해를 짓는다」로 간다(일부). 斷見은 3분할 「의역」(전거 Ucchedavādā)이라 「끊어짐의 견해」, 壞有見=「있음을 무너뜨리는 견해」. (9) 오음 이름: 受=느낌(0014a16.2와 같음), 想=인식, 識=의식 — 想·識은 확정역이 없어 뜻으로 옮겼다; 色·行은 0014a13.1과 같다. 我所의 所는 「나의 것」. 復는 「다시」. 者는 「~하는 이」. 不見은 전거 당대 napaśyami와 대조만 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81:81.40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81:81.4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81:81.4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81:81.4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4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4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47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56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6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74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81:81.7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76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93

AG:sa57/0014a19.1 · 교차 검사

不作斷見、壞有見,而不離我慢。

끊어짐의 견해와 있음을 무너뜨리는 견해를 짓지 않으나, 나라는 교만을 떠나지 않는다.

주 팔리 81.99–81.102는 상견도 단견도 갖지 않는다고 하고, 81.103은 「그러나 정법에 대해 의심하고 망설이며 확신에 이르지 못한다」 — 한역은 같은 자리에 「나라는 교만(我慢)을 떠나지 않는다」를 둔다(엇갈림). 我慢은 확정역이 없어 「나라는 교만」으로 뜻을 옮겼다. 而는 역접 「-으나」로 흡수. 有는 壞有見 안의 「있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99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103

AG:sa57/0014b07.1 · 교차 검사

不離我慢者,而復見我,見我者即是行。

나라는 교만을 떠나지 않는 이는 다시 나를 보고, 나를 보는 것은 곧 행이다.

주 팔리 81.104 「그 의심·망설임·확신 못함이 곧 행이다」 ↔ 한역 「나를 보는 것이 곧 행이다」(엇갈림). 者 둘: 앞은 「~하는 이」, 뒤는 「~하는 것」. 即은 「곧」. 復는 「다시」. 而는 흡수. 見은 정형구 행(dassana)에 걸리나 여기서는 「~를 (나라고) 보다」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81:81.104

AG:sa57/0014b07.2 · 교차 검사

彼行何因?

그 행은 무엇이 원인인가?

주 팔리 81.105 kiṃnidāno kiṃsamudayo kiṃjātiko kiṃpabhavo 한 문장을 한역은 물음 넷(0014b08.1–0014b09.3)으로 나눈다 — 0014a14.1–0014a14.4와 같은 틀. 이 좌표는 nidāna 자리(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05

AG:sa57/0014b08.1 · 교차 검사

何集?

무엇이 일어남인가?

주 samudaya 자리. 0014a14.2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05

AG:sa57/0014b09.1 · 교차 검사

何生?

무엇이 생겨남인가?

주 jātika 자리. 0014a14.3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05

AG:sa57/0014b09.2 · 교차 검사

何轉?

무엇이 굴러감인가?

주 pabhava 자리. 0014a14.4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81:81.105

AG:sa57/0014b09.3 · 교차 검사

如前所說,乃至我慢。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내지 나라는 교만까지이다.

주 한역이 乃至로 스스로 접은 자리 — 펴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것」은 0014a14.5–0014a19.1의 연쇄(無明觸生愛 → 무상·지어짐·마음을 조건으로 일어난 법 → 견해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乃至我慢」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접는지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다. 팔리 81.106–81.112(무명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갈애→행, 다섯 항의 무상)는 전문이다 — 한역의 접힌 안쪽을 읽을 수 없으므로 미대응. 乃至는 정착형 생략 표지 「내지」. 如는 「~와 같으니」, 所는 「말한 것」.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81:81.106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81:81.112

AG:sa57/0014b09.4 · 교차 검사

作如是知、如是見者,疾得漏盡。」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이는 빨리 번뇌가 다함을 얻는다."

주 81.113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이에게 곧바로 번뇌가 다한다」. 疾 ↔ anantarā의 작은 차이와 漏=번뇌 처리는 0014a02.1과 같다. 作如是知의 作은 「알고」에 흡수. 者는 「~하는 이」. 得은 「얻다」. 따옴표는 여기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81:81.113

AG:sa57/0014b09.5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는 81.113으로 경을 끝내고 81.114는 번호(Navamaṃ)뿐 — 맺음 정형구가 없다. 이문: 說此(CB·磧砂·宋元明)↔說(大). 저본(CB)대로 「이 경을」. 佛=부처님[구속]; 이 경은 같은 분을 佛과 世尊으로 섞어 부른다(0.3 비고). 歡喜: 慧琳 0753a01 「歡 喜悅也」 — 「기뻐하며」. 所說은 관형절 「설하신 것」. 諸比丘=여러 비구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81:81.114

AG:sa57/0014b10.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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