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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Ā 562

SĀ 562

교차 검사교차 검사 37현대역 준비 중

(五六四)

(오백육십사)

주 한문 저본은 경 번호 「五六四」만 싣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는 「9. Bhikkhunīsuttaṃ」(비구니경)이 제목이다. 이 대응은 저본 교감주 「A. IV. 159. Bhikkhunī.」(다카쿠스 각주 0148a13)가 가리키는 것이며, 그 번호는 PTS 번호라 이 좌표의 근거로만 쓴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0.3

AG:sa562/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잡아함 전권 1332경). 팔리 「Evaṃ me sutaṃ」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4.159:159.1

AG:sa562/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팔리 159.2는 「한때 아난 존자가 꼬삼비의 고시따 원림에 머문다」이다. 한역은 머무는 이가 부처님이고 곳이 사위 기수급고독원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엇갈림이다. 佛=부처님은 확정 술어 [구속]. 舍衛=사위는 정착어이며 한역자가 소리로 옮긴 이름이다. 뜻은 음의 인용: 慧琳 0367c24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義譯 「聞物國」 등 여럿). 음역계통: 전거 대장에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가 함께 서며 갈린다(다른 부 DA의 대역). 이 좌표의 팔리 증언은 곳이 달라 이름 대조가 아니라 이름 자체의 계통 사실일 뿐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썼다. 祇는 소리, 樹는 뜻이 섞인 혼합 이름이다(慧琳 0368a03 「略云祇樹也」).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이다. 뜻: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阿那陀 此云無親屬 … 誓救孤獨」; 전거 Anāthapiṇḍika, 다른 부 DA 대역). 3분할표가 이 이름을 「보류」로 올렸고, 정착형과 의역 처리가 갈리는 자리라 유형 신고를 남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159:159.2

AG:sa562/0.3 · 교차 검사

尊者阿難亦在彼住。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렀다.

주 亦는 앞 문장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 아난도 함께 있다는 뜻이 실려 「~도」로 옮겼다. 阿難은 정착어 「아난」, 뜻은 「경희(慶喜)」(慧琳 0482c03 「阿難陀 此云慶喜」, 팔리 Ānanda). 팔리에는 부처님이 나오지 않고 아난이 꼬삼비에 머무는 것이 첫 문장이다. 한역은 같은 곳에 부처님과 아난이 함께 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159:159.2

AG:sa562/0148a14.1 · 교차 검사

時,有異比丘尼於尊者阿難所,起染著心,遣使白尊者阿難:「我身遇病苦,唯願尊者哀愍見看。」

그때 다른 비구니가 존자 아난에게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심부름꾼을 보내어 존자 아난께 아뢰었다. 「제 몸이 병의 괴로움을 만났습니다. 오직 존자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살펴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한역은 비구니가 보낸 사람이 곧바로 아난에게 말하는 한 겹의 전언이다. 팔리는 비구니가 사람을 불러 말을 시키고(159.3~159.9), 그 사람이 아난에게 그대로 전하는(159.10~159.15) 두 겹이다. 「起染著心」(존자 아난에게 물든 집착의 마음을 일으킴)은 한역에만 있다. 病苦는 팔리 「ābādhikinī dukkhitā bāḷhagilānā」(병들고 괴롭고 중병)에 걸리나 항 수가 다르다. 異比丘尼의 異는 「다른」으로 옮기고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주어를 세우는 자리라 「~이 있어」를 쓰지 않았다. 染著은 앵커·사전(사전 染著 ① 이 경 3회)이 愛欲之心으로 푸나 확정역이 없어 분석적으로 「물들어 집착하는」으로 옮겼고, 같은 한자를 이 경 안에서 같게 쓴다. 於…所는 처소로 보아 「~에게」로 풀었다. 唯願은 한 연쇄로 쓰인다(사전 唯 ① 뒤 「願世」 40 · 「願為」 15 · 「願尊」 7 / 250회, 사전 哀愍 ① 앞 「唯願」 2/63). 哀愍은 사전 哀愍 ① 앞 「唯願」 2 · 뒤 「故」 19/63. 使는 사람(심부름꾼)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3~159.15

AG:sa562/0148a14.2 · 교차 검사

尊者阿難晨朝著衣持鉢,往彼比丘尼所。

존자 아난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그 비구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주 팔리 159.16 「Adhivāsesi kho āyasmā ānando tuṇhībhāvena」(아난이 말없이 승낙함)는 한역에 해당 문장이 없음을 확인했다. 한역 「晨朝」(이른 아침)은 팔리 159.17에 시간 표지가 없다. 「著衣持鉢」은 팔리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속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와 같은 정형이나 한역에는 「가사」가 따로 없다. 往…所는 「~가 있는 곳으로」.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17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159:159.16

AG:sa562/0148a16.1 · 교차 검사

彼比丘尼遙見尊者阿難來,露身體臥床上。

그 비구니는 멀리서 존자 아난이 오는 것을 보고, 몸을 드러내고 침상 위에 누웠다.

주 「遙見…來」는 팔리 「dūratova āgacchantaṃ」(멀리서 오는 것을 봄)과 같다. 「露身體」(몸을 드러냄)는 팔리 「sasīsaṃ pārupitvā」(머리까지 덮음)와 방향이 반대라 엇갈림이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臥床上」은 팔리 「mañcake nipajji」(침상에 누움)와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4.159:159.18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159:159.19

AG:sa562/0148a17.1 · 교차 검사

尊者阿難遙見彼比丘尼身,即自攝𣫍諸根,迴身背住。

존자 아난은 멀리서 그 비구니의 몸을 보고, 곧 감관들을 거두어들이고 몸을 돌려 등지고 머물렀다.

주 팔리에는 아난이 감관을 거두고 등을 돌리는 서술이 없음을 확인했다(159.19에서 159.20으로 곧바로 아난이 다가가 앉는다). 그 자리가 놓일 좌표로 159.20을 짚었다. 自攝𣫍에서 自는 他와의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고, 即은 곧바로라는 뜻이 실려 「곧」으로 두었다. 諸根은 사전 諸根 ①(이 경 2회) 감관 일반으로 보아 「감관들」로 옮겼다. 이문: 𣫍은 【明】에서 歛, 「尼」 뒤에 【宋】【元】【明】이 「見」을 더한다(「彼比丘尼見身」). 본문은 大正 저본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159:159.20

AG:sa562/0148a19.1 · 교차 검사

彼比丘尼見尊者阿難攝𣫍諸根,迴身背住,即自慚愧,起著衣服,敷坐具,出迎尊者阿難,請令就座,稽首禮足,退住一面。

그 비구니는 존자 아난이 감관들을 거두어들이고 몸을 돌려 등지고 머무는 것을 보고, 곧 부끄러워하여 일어나 옷을 입고, 앉는 깔개를 펴고, 나가 존자 아난을 맞이하여 자리에 나아가도록 청하고,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주 팔리는 아난이 비구니에게 다가가 마련된 자리에 앉는다(159.20~159.21). 한역은 비구니가 부끄러워하고 일어나 옷을 입고 깔개를 펴고 나가 맞이하며 자리를 청하고 절한다. 慚愧, 起著衣服, 出迎, 稽首禮足, 退住一面은 팔리에 없다. 「敷坐具」(앉는 깔개를 폄)는 팔리 「paññatte āsane」(마련된 자리)와 겹친다. 自慚愧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慚愧는 2음절 합성어로 「부끄러워하고」로 옮겼다(사전 慚愧 ① 잡아함 38회 · 28경, 이 경 0148a20.1). 음의 慧琳 0346a18 「二字互相訓也」. 稽首는 慧琳 0600c02 「首至地也」. 令은 「-도록」. 이문: 「退住一面」의 住를 【宋】【元】【明】이 坐로 읽는다(사전 一面 앞자리 「退坐」 359/499 · 「退住」 67/499). 본문은 大正 저본의 住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20~159.21

AG:sa562/0148a20.1 · 교차 검사

時,尊者阿難為說法言:「姊妹!如此身者,穢食長養、憍慢長養、愛所長養、婬欲長養。

그때 존자 아난이 그를 위해 법을 설하여 말하였다. 「자매여! 이와 같은 몸이란 더러운 음식으로 길러지고, 교만으로 길러지고, 애착으로 길러지고, 음욕으로 길러진다.

주 한역의 배열은 음식·교만·애착·음욕, 팔리는 음식(āhāra)·갈애(taṇhā)·자만(māna)·성교(methuna)로 교만과 애착의 자리가 바뀌어 있다. 「長養」(길러 자람)은 팔리 「sambhūta」(생겨남)와 같은 말이 아니다. 為說法言에서 為의 대상은 한문에 생략되어 있어 「그를」로 보충했다. 如此의 如는 비유가 아니라 지시라 「이와 같은」으로 옮겼다. 愛所長養의 所는 피동 표지라 「애착으로 길러지고」. 婬欲은 정착어 「음욕」. 穢食은 사전 穢食 ⑥ 「貧人所食不淨之食物」을 참고하되 「더러운 음식」으로 뜻을 옮겼다. 憍慢은 이 좌표에서 「교만」, 愛는 「애착」(확정역 없음,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은 a25.1에서 함께 신고).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159:159.22~159.29

AG:sa562/0148a23.1 · 교차 검사

姊妹!依穢食者,當斷穢食,依於慢者,當斷憍慢,依於愛者,當斷愛欲。

자매여! 더러운 음식에 의지하는 이는 더러운 음식을 끊어야 하고, 자만에 의지하는 이는 교만을 끊어야 하고, 애착에 의지하는 이는 애욕을 끊어야 한다.

주 이 문장 안에서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依於慢者,當斷憍慢」(慢/憍慢), 「依於愛者,當斷愛欲」(愛/愛欲).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는 사실을 신고한다. 이 개념들에 확정역이 없어 통일하지 않고 慢=자만 · 憍慢=교만 · 愛=애착 · 愛欲=애욕으로 글자 따라 달리 옮겼다. 3분할표는 愛欲을 「혼합」(Kāma · Taṇhā)으로 올렸다. 배열은 앞 좌표와 같이 팔리와 교만·애착이 뒤바뀐다. 팔리의 「nissāya … pahātabbo」(의지하여 … 끊어야 한다)가 「依 … 當斷」과 같은 틀이다. 當은 어미 「-야 한다」가 지고, 於는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159:159.23~159.28

AG:sa562/0148a25.1 · 교차 검사

姊妹!云何名依於穢食,當斷穢食?

자매여! 어떻게 더러운 음식에 의지하여 더러운 음식을 끊어야 한다고 이름하는가?

주 팔리는 「Āhāro pahātabbo 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음식은 끊어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는데, 무엇을 조건으로 말했는가)로 앞 명제를 다시 인용한 뒤 묻는다. 한역은 「云何名…」 하나로 묻는다. 云何는 어미 의문형이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31~159.33

AG:sa562/0148a27.1 · 교차 검사

謂聖弟子於食計數思惟而食,無著樂想、無憍慢想、無摩拭想、無莊嚴想,為持身故、為養活故、治飢渴病故、攝受梵行故,宿諸受令滅,新諸受不生,崇習長養,若力、若樂、若觸,當如是住。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가 음식에 대해 헤아려 생각하며 먹는데, 집착하여 즐기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고, 문질러 닦는 생각이 없고, 꾸미는 생각이 없이, 몸을 지니기 위해서, 길러 살리기 위해서, 굶주림과 목마름의 병을 다스리기 위해서, 청정한 행을 거두어 받아들이기 위해서, 묵은 느낌들이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느낌들은 생기지 않으며, 높이 익히고 길러 키우며, 힘이든 즐거움이든 접촉이든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주 팔리 159.34~159.37은 「paṭisaṅkhā yoniso …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 ṭhitiyā yāpanāya vihiṃ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이하로 이어진다. 한역의 네 「無…想」은 팔리의 네 부정(놀이·취함·치장·꾸밈)에, 네 「為…故」는 지탱·유지·해침의 그침·청정한 삶의 도움에 겹친다. 다만 「治飢渴病」(굶주림과 목마름의 병을 다스림)은 팔리 vihiṃsūparatiyā(해침이 그침)와 뜻이 같다고 할 수 없다. 「崇習長養」과 「若力、若樂、若觸」은 팔리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유지, 허물 없음, 편안한 머묾)와 항목이 다르다. 「宿諸受令滅,新諸受不生」은 팔리 159.36 「purāṇañca vedanaṃ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ṃ na uppādessāmi」에 겹친다. 受는 정형구 행(느낌, vedanā)으로만 알려져 있고 낱말 확정역이 없어 저본 문맥(宿·新 대비)으로 「느낌」으로 옮겼고 다의어 신고를 남긴다. 崇習長養이 앞뒤 어디에 걸리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구두 신고를 남긴다. 著樂/染著 쓰임이 이 경 안에서 흔들린다(이 좌표 著樂, 다음 좌표 染著):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梵行은 3분할표의 의역으로 보아 「청정한 행」(慧琳 0698c19 「梵言梵摩 此云清淨」). 計數思惟는 3분할표의 思惟(의역)와 사전 計·數 ①을 참고해 「헤아려 생각하며」로 풀었고 而는 흡수했다. 當은 어미 「-야 한다」가 진다. 若 … 若은 「~이든 ~이든」이다. 攝受는 사전 攝受 ① 「長養」 8/78 앞뒤 용례를 참고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34~159.37

AG:sa562/0148a28.1 · 교차 검사

譬如商客以酥油膏以膏其車,無染著想、無憍慢想、無摩拭想、無莊嚴想,為運載故,如病瘡者塗以酥油,無著樂想、無憍慢想、無摩拭想、無莊嚴想,為瘡愈故。

비유하면 장사하는 길손이 버터기름 연고로 그 수레에 기름을 바르면서, 물들어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고, 문질러 닦는 생각이 없고, 꾸미는 생각이 없이, 싣고 나르기 위해서인 것과 같고, 종기를 앓는 이가 버터기름을 바르면서, 집착하여 즐기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고, 문질러 닦는 생각이 없고, 꾸미는 생각이 없이, 종기를 낫게 하기 위해서인 것과 같다.

주 수레에 기름을 바르는 비유와 종기에 기름을 바르는 비유는 팔리 an4.159에 없음을 확인했다(159.35~159.37의 네 부정 뒤에 놓일 자리로 159.37을 짚었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앞 항 「無染著想」과 뒷 항 「無著樂想」(같은 공식의 첫 항이 a28.1에서는 著樂, 여기서는 앞 항 染著·뒷 항 著樂). 이문: 著樂을 【宋】【元】【明】【聖】이 染著으로, 酥를 【宋】【元】【聖】이 蘇로 읽는다. 酥油는 사전·음의에 뜻풀이가 없어 뜻으로 「버터기름」, 膏는 동사로 「기름을 바르다」로 옮겼다. 商客=「장사하는 길손」. 「如病瘡者」의 如는 비유 표지, 譬如의 如와 같은 틀이라 「~것과 같고」. 以는 수단 조사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159:159.37

AG:sa562/0148b03.1 · 교차 검사

如是,聖弟子計數而食,無染著想、無憍慢想、無摩拭想、無莊嚴想,為養活故、治飢渴故、攝受梵行故,宿諸受離,新諸受不起,若力、若樂、若無罪觸安隱住。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헤아려 먹으며, 물들어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고, 문질러 닦는 생각이 없고, 꾸미는 생각이 없이, 길러 살리기 위해서, 굶주림과 목마름을 다스리기 위해서, 청정한 행을 거두어 받아들이기 위해서, 묵은 느낌들은 떠나고 새로운 느낌들은 일어나지 않으며, 힘이든 즐거움이든 죄 없는 접촉이든 편안히 머문다.

주 같은 공식이 a28.1에서는 「令滅」「不生」「飢渴病」「持身」을 쓰는데, 여기서는 「離」「不起」「飢渴」이고 「為持身故」가 없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자리(滅/離, 生/起)와 항이 줄어든 자리를 신고한다. 「若無罪觸安隱住」는 팔리 159.37 「anavajjatā ca phāsuvihāro」(허물 없음과 편안한 머묾)에 겹치는 듯하나 觸에 걸리는 팔리가 보이지 않는다. 安隱은 사전 安隱 ⑥ 「與安穩同」. 첫 항 「染著想」은 a28.1의 「著樂想」과 같은 자리의 다른 글자다. 受 번역은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34~159.37

AG:sa562/0148b07.1 · 교차 검사

姊妹!是名依食斷食。

자매여! 이것을 음식에 의지하여 음식을 끊는다고 이름한다.

주 앞에서 「穢食」으로 쓰던 말이 여기서는 「食」으로 줄었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표기를 쓴다는 사실을 신고하고, 「음식」으로 옮겼다. 팔리 159.38은 「So aparena samayena āhāraṃ nissāya āhāraṃ pajahati」(그는 뒤에 음식에 의지하여 음식을 버린다)이고 159.39~159.40이 그 앞 명제를 맺는다. 사전 斷食 ⑥ 후대 풀이(단식 수행)는 이 자리의 「依食/斷食」과 맞지 않아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38~159.40

AG:sa562/0148b11.1 · 교차 검사

「依慢斷慢者。

자만에 의지하여 자만을 끊는 것이란.

주 한역은 자만(慢)의 항을 먼저, 애착(愛)의 항을 뒤에 두는데 팔리는 갈애(159.41~159.50)가 먼저, 자만(159.51~159.61)이 뒤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앞에서 憍慢이던 것이 여기서는 慢으로 줄었다. 새 말머리를 여는 따옴표가 이 좌표에서 시작된다. 者는 화제를 세우는 자리라 「~란」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159:159.51~159.52

AG:sa562/0148b12.1 · 교차 검사

云何依慢斷慢?

어떻게 자만에 의지하여 자만을 끊는가?

주 팔리 159.53은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무엇을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는가)로 물어 한역의 「云何依慢斷慢」과 질문틀이 다르다. 云何는 어미 의문형이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53

AG:sa562/0148b12.2 · 교차 검사

謂弟子聞某尊者、某尊者弟子盡諸有漏,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作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이른바 제자가 아무개 존자, 아무개 존자의 제자가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로 현재의 법에서 스스로 알아 증득하여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행은 이미 세워졌고, 해야 할 일은 이미 하였으며, 스스로 알아 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듣는다.

주 팔리 159.54~159.55는 한 사람 「itthannāmo kira bhikkhu」가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라는 것을 듣는 것이다. 한역은 「某尊者、某尊者弟子」(아무개 존자, 아무개 존자의 제자)로 사람이 둘로 읽히고(어디서 끊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구두 신고), 『我生已盡 … 自知不受後有』의 선언은 팔리 해당 줄에 없다. 弟子는 이 좌표에서 聖 없이 「弟子」인데, 같은 자리 다음 좌표들은 「聖弟子」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문: 弟를 【宋】【元】【明】이 聖弟로 읽는다. 有漏는 無漏와 짝이라 「번뇌 있는 것」으로 새겼으나 漏(정형구 행 āsava, 번뇌)가 有漏를 가리키는지 번뇌 자체를 가리키는지 다의어 신고를 남긴다. 心解脫·慧解脫은 3분할표의 의역이라 「마음의 해탈」「지혜의 해탈」(전거 Cetovimutti / Paññāvimutti, 慧解脫은 다른 부 MA 대역). 現法自知作證은 전거 대장에서 팔리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에 걸린 정형구로 보고 「현재의 법에서 스스로 알아 증득하여」로 옮겼다. 自知는 사전 自知 ① 235회, 「不受」가 158회 뒤따르는 한 낱말 단위라 自를 흡수하지 않았다. 生已盡은 사전 生已 ① 「盡」 119/143. 所作已作은 所 훈독투를 피해 「해야 할 일은 이미 하였고」. 梵行은 3분할표 의역으로 「청정한 행」. 後有는 「뒤의 존재」.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54~159.55

AG:sa562/0148b12.3 · 교차 검사

聞已,作是念:『彼聖弟子盡諸有漏,乃至自知不受後有。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성스러운 제자는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내지 스스로 알아 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

주 「乃至」가 접은 자리는 접힌 대로 두었다. 접힌 안쪽이 바로 앞 좌표의 「無漏心解脫 … 自知不受後有」 전체인지 한문이 말해 주지 않는다. 팔리 159.57은 「so hi nāma āyasmā āsavānaṃ khayā … viharissati」로 같은 서술을 다 풀어 두었다. 「彼聖弟子」는 한 사람으로 가리켜, 앞 좌표의 「某尊者、某尊者弟子」가 한 사람인지 둘인지를 푸는 데 쓸 수 있으나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56~159.57

AG:sa562/0148b15.1 · 교차 검사

我今何故不盡諸有漏,何故不自知不受後有。』

나는 지금 어째서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하고, 어째서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

주 팔리 159.58은 「kimaṅgaṃ panāha'nti」(나라고 못하겠는가)로 반문이고, 한역은 「何故不…」(어째서 …못하는가)로 자책하는 물음이다. 닫는 따옴표가 이 좌표에서 닫힌다. 自는 앞과 같은 이유로 「스스로」를 지켰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58

AG:sa562/0148b17.1 · 교차 검사

當於爾時則能斷諸有漏,乃至自知不受後有。

그때에는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끊을 수 있을 것이고, 내지 스스로 알아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을 것이다.

주 팔리 159.59는 「So aparena samayena mānaṃ nissāya mānaṃ pajahati」(그는 뒤에 자만에 의지하여 자만을 버린다)이다. 한역은 그때에 번뇌 있는 것을 끊게 된다고 하고 자만을 버린다는 말이 없다. 같은 자리에서 서술이 다르므로 엇갈림이다. 「乃至」는 접힌 대로 두었다. 當은 어미 「-ㄹ 것이다」, 能은 「-ㄹ 수 있다」, 則은 「그때에는」에 흡수했다(爾時는 그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159:159.59

AG:sa562/0148b18.1 · 교차 검사

姊妹!是名依慢斷慢。

자매여! 이것을 자만에 의지하여 자만을 끊는다고 이름한다.

주 팔리 159.60~159.61은 앞 명제 「Mānasambhūto … Māno pahātabbo」를 되풀이하고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이것을 조건으로 말했다)로 맺는다. 한역은 「是名依慢斷慢」으로 맺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0~159.61

AG:sa562/0148b19.1 · 교차 검사

「姊妹!云何依愛斷愛?

자매여! 어떻게 애착에 의지하여 애착을 끊는가?

주 한역은 자만 항 뒤에 애착 항을 놓는데 팔리는 갈애 항(159.41~159.50)이 먼저다. 앞에서 「愛欲」이던 것이 여기서는 「愛」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새 따옴표가 이 좌표에서 열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4.159:159.41~159.43

AG:sa562/0148b19.2 · 교차 검사

謂聖弟子聞某尊者、某尊者弟子盡諸有漏,乃至自知不受後有。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가 아무개 존자, 아무개 존자의 제자가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내지 스스로 알아 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듣는다.

주 「乃至」로 접힌 자리를 접힌 대로 두었다(자만 항의 같은 문장 b12.3에서는 풀려 있으나 여기서 어디까지 접혔는지 한문이 말하지 않는다). 팔리 159.45는 한 사람 「itthannāmo … bhikkhu」의 경우를 다 풀어 쓴다. 이 좌표는 「聖弟子」인데 자만 항(b12.3)은 「弟子」였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某尊者、某尊者弟子」의 끊는 자리는 b12.3과 같은 이유로 신고한다. 팔리 159.44 「Idha, bhagini, bhikkhu suṇāti」(여기서 비구가 듣는다)에 맞는 말머리 「謂」.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44~159.45

AG:sa562/0148b20.1 · 교차 검사

我等何不盡諸有漏,乃至自知不受後有。

우리는 어찌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지 않겠는가, 내지 스스로 알아 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 데까지.

주 팔리 159.46 「Tassa evaṃ hoti」(그에게 이런 생각이 있다)에 해당하는 「作是念」이 이 좌표에는 없다(자만 항 b15.1에는 있다). 팔리 159.47은 「kudāssu nāma ahampi … viharissāmi」(나도 언제 …에 머물게 될까)로 단수 소원이고, 한역은 「我等」(우리)과 「何不」(어찌 …하지 않겠는가)이다. 「乃至」로 접힌 자리는 접힌 대로 두었고 何不이 접힌 뒤 항에도 걸리는지는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구두 신고를 남긴다. 이문: CBETA가 「有」로 고친 자리이고 大正 원문은 「者」이다. 본문은 CBETA 교감(有)을 따랐다. 我等의 等은 복수 표지로 「우리」.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46~159.47

AG:sa562/0148b21.1 · 교차 검사

彼於爾時能斷諸有漏,乃至自知不受後有。

그는 그때에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끊을 수 있고, 내지 스스로 알아 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

주 팔리 159.48은 「So aparena samayena taṇhaṃ nissāya taṇhaṃ pajahati」(그는 뒤에 갈애에 의지하여 갈애를 버린다)이다. 한역은 번뇌 있는 것을 끊는다고 하고 애착을 버린다는 말이 없다. 자만 항의 b18.1과 같은 엇갈림이다. 「乃至」는 접힌 대로 두었다. 能은 「-ㄹ 수 있다」, 於는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4.159:159.48

AG:sa562/0148b22.1 · 교차 검사

姊妹!是名依愛斷愛。

자매여! 이것을 애착에 의지하여 애착을 끊는다고 이름한다.

주 팔리 159.49~159.50은 앞 명제 「Taṇhāsambhūto … Taṇhā pahātabbā」를 되풀이하고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으로 맺는다. 애착 항 전체가 팔리에서는 자만 항 앞에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49~159.50

AG:sa562/0148b23.1 · 교차 검사

姊妹!無所行者,斷截婬欲、和合橋梁。」

자매여! 행하는 것이 없는 이는 음욕과 화합의 다리를 끊는다.

주 팔리 159.62~159.63은 「Methunasambhūto ayaṃ, bhagini, kāyo. Methune ca setughāto vutto bhagavatā」(이 몸은 성교에서 생겼다. 성교에서 다리를 끊음을 세존께서 말씀하셨다)이다. 한역은 「無所行者」(행하는 것이 없는 이)를 주어로 세우고 「斷截婬欲、和合橋梁」(음욕과 화합의 다리를 끊는다)으로 맺으며, 「세존께서 말씀하셨다」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橋梁」은 팔리 setu(다리)와 같은 말로 보이고 「斷截」은 ghāta(끊음)에 걸린다. 無所行의 行이 음행인지 일반 수행인지 저본 문맥만으로 서지 않아 뜻 신고를 남긴다. 所는 관형절로 풀어 「~하는 것이 없는」으로 옮겼다. 斷截은 慧琳 0326c23 「斷亦截也」, 橋梁은 慧琳 0512c21 「渡水梁也」. 닫는 따옴표가 이 좌표에서 닫힌다. 사전 行者 ⑥(방장의 시자)은 이 자리의 「無所行者」와 맞지 않아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2~159.63

AG:sa562/0148b24.1 · 교차 검사

尊者阿難說是法時,彼比丘尼遠塵離垢,得法眼淨,彼比丘尼見法、得法、覺法、入法,度狐疑,不由於他,於正法、律,心得無畏。

존자 아난이 이 법을 설할 때, 그 비구니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떠나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 그 비구니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깨닫고, 법에 들어가, 여우 같은 의심을 건너고, 다른 이에게 말미암지 않고, 바른 법과 율에서 마음에 두려움 없음을 얻었다.

주 팔리 an4.159에는 아난의 설법이 끝난 자리에서 비구니가 법의 눈을 얻는 정형구가 없음을 확인했다(159.63 뒤 159.64에서 비구니가 일어나 잘못을 고백한다). 遠塵離垢·得法眼淨은 사전 遠塵離垢 ① 19회·法眼淨 ① 20회의 정형으로 확정역이 없어 뜻으로 옮겼다. 覺法의 覺은 정형구 행에서 vedanā(느낌)로도 sambodhi(깨달음)로도 잡혀 다의어 신고를 남긴다(여기서는 「깨닫고」). 度狐疑의 狐疑는 의심을 뜻하는 말로 「여우 같은 의심」이라 옮겼다. 不由於他의 他는 自와 짝을 이루지 않아 「다른 이」로 풀었다. 正法、律은 전거 대장에서 팔리 Dhammavinaya(법과 율)에 걸리며 「바른 법과 율」로 옮겼다. 無畏는 「두려움 없음」. 得은 얻다의 뜻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159:159.63

AG:sa562/0148b25.1 · 교차 검사

禮尊者阿難足,白尊者阿難:

존자 아난의 발에 절하고, 존자 아난께 아뢰었다.

주 팔리 159.64는 비구니가 침상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아난의 발에 머리를 대어 엎드린 뒤 말한다. 한역에는 「일어남」과 「한쪽 어깨에 걸침」이 없고 「禮足」과 「白」만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4

AG:sa562/0148b28.1 · 교차 검사

「我今發露悔過:愚癡不善,脫作如是不流類事;今於尊者阿難所,自見過、自知過,發露懺悔,哀愍故!」

저는 지금 드러내어 허물을 뉘우칩니다. 어리석고 선하지 못하여, 뜻하지 않게 이와 같이 부류에 맞지 않는 일을 지었습니다. 지금 존자 아난께 스스로 허물을 보고 스스로 허물을 알아, 드러내어 참회하오니, 가엾이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주 팔리 159.65는 「accayo maṃ, bhante, accagamā, yathābālaṃ yathāmūḷhaṃ yathāakusalaṃ」(잘못이 저를 덮쳤습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선하지 못한 자처럼)이고, 159.66은 「ayyo ānando accayaṃ accayato paṭiggaṇhātu, āyatiṃ saṃvarāya」(앞으로의 단속을 위해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 주십시오)이다. 한역에는 「스스로 보고 스스로 앎」, 「드러냄」, 「참회」가 더 실리고 「받아 주십시오」와 「앞으로의 단속」은 없다. 「不流類事」의 流類는 사전·음의에 풀이가 없고 다음 좌표의 「不類之罪」와 짝이라 「부류에 맞지 않는 일」로 옮겼으나 뜻이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신고한다. 脫은 「뜻하지 않게」로 옮겼다. 自見·自知는 한 낱말 단위로 반복되는 정형이라 自를 흡수하지 않았다(사전 自知 ① 잡아함 235회 · 137경, 이 경 0148b12.3 외). 懺悔는 정착어 「참회」이며, 慧琳 0700c12가 이 말을 소리(叉磨)와 뜻(悔)이 섞인 약칭으로 푼다(慧琳 0408b02 「自陳過也」). 哀愍故는 「以哀愍故」 꼴의 청원 정형(사전 哀愍 ① 뒤 「故」 19/63)이라 「가엾이 여기시기 때문입니다」로 두었다. 윗사람(존자)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5~159.66

AG:sa562/0148b29.1 · 교차 검사

尊者阿難語比丘尼:「汝今真實自見罪、自知罪,愚癡不善,汝自知作不類之罪,汝今自知、自見而悔過,於未來世得具足戒。

존자 아난이 비구니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참으로 스스로 죄를 보고 스스로 죄를 알며, 어리석고 선하지 못하다. 그대는 부류에 맞지 않는 죄를 지은 줄 스스로 알고, 지금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아 허물을 뉘우치니, 미래세에 구족계를 얻는다.

주 팔리 159.67~159.68은 「Taggha taṃ, bhagini, accayo accagamā … yato ca kho tvaṃ … accayaṃ accayato disvā yathādhammaṃ paṭikarosi, taṃ te mayaṃ paṭiggaṇhāma」(참으로 그대의 잘못이 덮쳤다 …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대로 고치니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이다. 한역의 「於未來世得具足戒」(미래세에 구족계를 얻음)는 팔리 159.69의 「āyatiṃ saṃvaraṃ āpajjati」(앞으로 단속에 들어간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不類之罪」는 앞 좌표의 「不流類事」와 짝이며 뜻 신고는 그쪽에서 한다. 具足戒는 정착어 「구족계」, 未來世는 「미래세」. 真實은 「참으로」로 뜻이 실린 부사다. 아난의 발화는 윗사람이 아닌 비구니에게 하는 평서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7~159.68

AG:sa562/0148c02.1 · 교차 검사

我今受汝悔過,哀愍故,令汝善法增長,終不退滅。

나는 지금 그대의 허물 뉘우침을 받아들이니,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그대의 선한 법이 늘어나 자라게 하여 끝내 물러나 없어지지 않게 한다.

주 「我今受汝悔過」는 팔리 159.68 「taṃ te mayaṃ paṭiggaṇhāma」(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에 겹친다. 「令汝善法增長,終不退滅」은 팔리 159.68에 없고 159.69 「vuddhi hesā」(이것은 성장이다)와 항목이 다르다. 3분할표가 善法을 「혼합」(Sudhammā)으로 올렸으나 이 자리의 善法은 교리어(선한 법)이고 이름이 아니라 저본이 이긴다고 보고 「선한 법」으로 옮겼다. 이문: 滅을 【宋】【元】【明】【聖】이 減(줄어듦)으로 읽는다. 令은 「-게 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8

AG:sa562/0148c05.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한역의 설명을 여는 문장 「所以者何」에 해당하는 팔리가 없음을 확인했다(159.69의 「vuddhi hesā」가 이유를 바로 말한다). 所以는 까닭, 者何는 「무엇인가」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159:159.69

AG:sa562/0148c06.1 · 교차 검사

若有自見罪、自知罪,能悔過者,於未來世得具足戒,善法增長,終不退滅。」

죄를 스스로 보고 스스로 알아 허물을 뉘우칠 수 있는 이라면, 미래세에 구족계를 얻고 선한 법이 늘어나 자라며 끝내 물러나 없어지지 않는다.

주 팔리 159.69는 「yo accayaṃ accayato disvā yathādhammaṃ paṭikaroti āyatiṃ saṃvaraṃ āpajjati」(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대로 고치는 이는 앞으로 단속에 든다)이다. 한역은 「見罪·知罪·能悔過」가 팔리의 「보고 고침」에 겹치고, 결과는 「구족계를 얻음 · 선한 법의 성장」이라 팔리의 「단속」과 다르다. 若有…者는 「~이라면」으로 흡수했고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주어를 세우는 자리다. 能은 「-ㄹ 수 있다」. 이문: 滅을 【宋】【元】【明】【聖】이 減으로 읽는다. 닫는 따옴표가 이 좌표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4.159:159.69

AG:sa562/0148c06.2 · 교차 검사

尊者阿難為彼比丘尼種種說法,示、教、照、喜已,從座起去。

존자 아난은 그 비구니를 위하여 갖가지로 법을 설하여 보이고, 가르치고, 비추고, 기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팔리 an4.159에는 아난이 법을 설하여 보이고 가르치는 정형구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는 서술이 없음을 확인했다(159.69 다음은 경 끝 표지 159.70 「Navamaṃ」(아홉째)뿐이며 대응 문장이 아니다). 「示、教、照、喜」는 연쇄 정형으로 보아 「보이고, 가르치고, 비추고, 기쁘게 하고」로 옮겼다(사전 教 ① 앞 「法示」 65 · 「喜示」 20, 뒤 「照喜」 96/259; 같은 연쇄의 용례는 sa1016/0266c15.1). 種種은 「갖가지로」, 說法은 「법을 설하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4.159:159.69

AG:sa562/0148c08.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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