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四〇)
(오백사십)
주 한문은 경 번호 「五四〇」만 싣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sn52.10의 제목 좌표(0.3 「10. Bāḷhagilānasuttaṃ」)는 번호와 이름을 함께 가지므로 partial이다. 교감주(S. 52. 10. Bāḷhagilāya)는 大正藏 편자의 대조 각주이고 저본이 아니다 — 다카쿠스 각주(0140b26)와 莊春江이 같은 sn52.10을 가리키므로 팔리 증언 합의 등급은 multi_source다. 산스크리트 증언 투입물(`_산스크리트_sa538.md`)은 이 경에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좌표의 산스크리트 항은 `unaligned`(아직 안 잡음)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한역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경)에 대응하는 문장이 팔리 sn52.10 본문에는 없다. 팔리 본문은 908.0(번호) 다음 908.1 「Ekaṃ samayaṃ…」로 바로 시작한다. 투입물의 팔리 원문 전체를 읽어 확인했고 …pe…로 접힌 자리가 아니므로 `absent`다(자리는 908.1 앞).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如是의 지시어라 「이와 같이」로 옮기고 我聞은 「나는 들었다」로 옮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2.10:908.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一時는 팔리 908.1의 「Ekaṃ samayaṃ」과 짝이다.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심)은 팔리 sn52.10 본문에 상응문이 없다. 팔리 908.1은 아나율이 병든 장면이며 그것은 한역 0140b27.1에 해당한다. 사실만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이고, 「께서」와 「-시-」는 한문 주어 佛의 높임을 한국어 문법으로 진 것이다. 舍衛는 정착어 「사위」(3분할 표)이며 國은 「국」이다. 팔리형은 Sāvatthī이다. 음의(慧琳 0367c24 〔금강반야바라밀경〕)는 「梵音云室羅伐悉底國此譯云聞者城…聞物國又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舍衛先居此地時有國王見其地好心生愛樂舍衛遂請王住…」라고 적는다. 전거는 팔리 `Sāvatthī` / 범어 당대 `śravasthi`를 보여 두 계통이 갈린다(음역계통). 전거 ⚠다른 부(DA)의 대역이므로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다. 판별은 祇樹+給孤獨+園의 복합 이름이며 정형구 조각이 아니다. 근거는 慧琳 0368a03(祇樹: 祇陀 태자의 숲에서 줄인 말 「略云祇樹」)과 0368a05(給孤獨: 「亦義譯也…阿那陀…此云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다. 팔리 후보는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전거 ⚠다른 부 DA 대역). §⑤ 정착어 예시에 「기수급고독원」이 있어 정착형 그대로 썼다. 그 이름이 뜻하는 것은 기타 태자의 나무(祇樹)와,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給孤獨)의 동산(園)이다. 給孤獨은 한역이 뜻으로 옮긴 부분이라, 뜻으로 풀어 쓸지는 정도평 판단에 남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908.1
爾時,尊者阿那律在舍衛國松林精舍,身遭病苦。
그때 존자 아나율이 사위국 소나무 숲 정사에 있었고, 몸이 병의 괴로움을 당하였다.
주 阿那律은 정착어 「아나율」(3분할 표)이며 사람 이름이다. 이름의 뜻풀이는 투입물(음의·전거·사전)에 없다. 통설로 전하는 풀이는 투입물에서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근거로 삼지 않는다. 전거는 팔리 `Aunruddha / Anuruddha`와 범어 근대(大正藏 편자 비정) `Aniruddha`를 보이며 둘이 갈린다. 「음역계통」으로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전거 ⚠다른 부 DA 대역). 舍衛는 0.3과 같이 「사위」다. 松林精舍는 3분할 표에도 전거에도 없는 이름이다. 판별은 한자가 소리가 아니라 뜻(소나무+숲)으로 읽히므로 뜻으로 옮기는 것이고 精舍는 정착어 「정사」다(사전 精舍 ① 앞 「松林 11」). 판별 근거가 한자 읽힘뿐이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편자 cb:tt 주석은 松林精舍를 팔리 Andhavana와 짝지었다. 팔리형 andhavana는 andha+vana로 보이며 松(소나무)과 뜻이 겹치지 않는다. 사실만 신고한다. 이문은 林 ↔ 材【宋】【聖】이다. 저본(大)은 林이므로 林대로 옮긴다. 病苦는 「병의 괴로움」(苦=괴로움)이다. 팔리 908.1은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병들고 괴롭고 중병)인데, bāḷha(심한)에 해당하는 말이 한문에 없다. 遭는 「당하다」로 옮긴다(사전 病苦 ① 앞 「身遭 4」). 爾時는 「그때」, 尊者는 「존자」다. 在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처소 서술이라 「있었고」로 옮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908.1
時,有眾多比丘詣尊者阿那律所,問訊慰勞已,於一面住,語尊者阿那律言:「尊者阿那律!所患增損可安忍不?
그때 많은 비구가 존자 아나율이 있는 곳에 나아가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나서, 한쪽에 머물러 존자 아나율에게 말하였다. “존자 아나율이여! 앓는 병의 더함과 덜함을 편안히 견딜 수 있습니까?
주 팔리 908.2(많은 비구가 아나율에게 나아갔다)는 「時有眾多比丘詣尊者阿那律所」에, 908.3(나아가 말했다)은 「語尊者阿那律言」에 짝이다. 한역의 「問訊慰勞已,於一面住」(안부·위로·한쪽에 머묾)와 첫 질문 「所患增損可安忍不」는 팔리 908.2~908.4 사이에 상응문이 없다(문장 유무). 有는 등장을 도입하는 자리라 주어화(「많은 비구가」)로 흡수했다. 眾多는 「많은」으로 옮겼다(諸比丘의 「비구들」과 구분). 所는 詣…所의 처소라 「있는 곳」이다. 所患은 관형절로 풀어 「앓는 병」이다.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一面住의 住는 앉음·섬을 가르지 않고 「머물러」 그대로 둔다(사전 一面 ① 앞: 退坐 359·退住 67). 問訊은 慧琳 0428c12·0491a09가 訊을 問으로 풀며 「안부를 묻고」로 옮겼다. 安忍은 「편안히 견디다」(安+忍)다. 사전 安忍 ①은 이 아함 7회 2경, 다른 역자 용례 없음이다. 增損은 「더함과 덜함」이다. 可…不는 「~ㄹ 수 있습니까」이고 不는 의문 어미로 흡수한다. 존칭: 청자 존자는 윗사람이라 합쇼체로 통일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908.2~908.3
病勢漸損不轉增耶?」
병세가 점점 덜해지고 더욱 늘어나지 않습니까?”
주 앞 좌표 질문의 후반이다. 팔리 sn52.10은 908.3(…etadavocuṃ) 바로 뒤 908.4에서 다른 질문(어떤 머묾으로 지내는가)으로 가며 이 질문에 상응하는 문장이 없다(자리는 908.3 뒤). 漸損은 3분할 표에서 의역으로 분류되어 뜻으로 옮긴다. 전거는 漸損 ↔ `Sallekha`를 보이나 ⚠다른 부(MA)의 대역이다. 표면 한자만 같을 수 있어 이 좌표의 병세 문맥에는 쓰지 않고 일반어 「점점 덜해지다」로 옮긴다. 轉은 「더욱」이다. 같은 경 0140c02.1의 「轉增無損」과 사전 轉 ③ 용례 sa1016/0266c29.1 「生分轉微」(정도가 점차 더해 가는 쓰임)에 비춘 문맥 판독이다. 病勢는 「병세」이고 耶는 의문 어미로 흡수한다. 인용부호는 0140b28.1에서 열려 여기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2.10:908.3
尊者阿那律言:「我病不安,難可安忍,身諸苦痛,轉增無損。」
존자 아나율이 말하였다. “나는 병이 편안하지 않고, 편안히 견디기 어려우며, 몸의 여러 고통이 더욱 늘어나 덜함이 없다.”
주 팔리 sn52.10은 아나율이 908.5의 답(사념처에 마음이 잘 확립되어…)으로 곧장 간다. 병세에 대한 이 답변은 팔리 본문에 없다(자리는 908.3 뒤). 難可는 「~기 어렵다」다. 不安의 安은 安忍의 安과 같게 「편안」으로 통일한다. 身諸苦痛의 諸는 「여러」(복수)이고 苦痛은 「고통」으로 옮긴다. 大苦(0140c05.1)의 「괴로움」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존칭: 청자 여러 비구는 윗사람이 아니므로 평서(-다)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2.10:908.3
即說三種譬,如上叉摩經說。
곧 세 가지 비유를 말하였으니, 위의 차마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주 「如上叉摩經說」은 한문이 세 가지 비유의 내용을 접고 앞의 경으로 돌린 자리다. 접힌 대로 두고 펴지 않는다(정형구_생략표지: 如上 이 경 1). 叉摩經이 어느 경인지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다. 叉摩는 뜻으로 읽히지 않고 소리로 읽혀 음역으로 판별하고 한자 독음 「차마」로 옮긴다. 근거가 한자 읽힘뿐이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사전 如 ③ 용례에 「如前差摩迦修多羅廣」(sa1018/0267c17.2)이 보이나 叉摩와 같은 경인지 투입물이 보이지 않아 연결하지 않는다. 即은 「곧」(즉시), 三種譬는 「세 가지 비유」다. 上은 「위」(앞)로 옮긴다. 팔리 sn52.10에는 이 자리에 상응문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2.10:908.3
「然我身已遭此苦痛,且當安忍,正念正知。」
“그러나 내 몸이 이미 이 고통을 만났으니, 우선 편안히 견디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겠다.”
주 當은 어미 「-겠다」로 흡수했다(「마땅히」를 따로 쓰지 않음). 已는 「이미」(완료)다. 且는 「우선」으로 옮겼다. '우선·잠시'의 쓰임인지 '또한'인지 이문이 없어 문맥으로만 판별하므로 [불확실:다의어_판별]이다. 正念正知는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다」로 옮긴다. `_확정술어_아함판`에 正念·正知 행이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다(사전 正念 ①: 이 아함 232회 124경). 이 경의 네 곳(0140c04·05·07·09)을 같은 역어로 통일한다. 팔리 908.7의 sampajāno satimā와 낱말 짝일 수 있으나 이 문장 자체의 상응문은 없어 absent다. 아나율의 말이며 평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2.10:908.3
諸比丘問尊者阿那律:「心住何所,而能安忍如是大苦,正念正知?」
비구들이 존자 아나율에게 물었다.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서 이와 같은 큰 괴로움을 편안히 견딜 수 있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압니까?”
주 팔리 908.4는 「어떤 머묾(vihāra)으로 지내는 존자 아나율에게 일어난 몸의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는가」를 묻는다. 한역은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무는가」를 묻고 「큰 괴로움을 견디고 정념정지」를 붙인다. 한역에는 vedanā(느낌)에 해당하는 말이 없고, 팔리 질문에는 正念正知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사실만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諸比丘의 諸는 복수 「비구들」로 흡수했다. 而는 「머물러서」로 흡수했다. 能은 「~ㄹ 수 있다」를 安忍에 달았다. 正念正知까지 걸리는지는 한문 구두상 미정이라 본문은 能을 安忍에만 단다. 何所의 所는 처소 「곳」이다. 如是는 「이와 같은」, 大苦는 「큰 괴로움」이다. 존칭: 청자 존자는 윗사람이라 합쇼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908.4
尊者阿那律語諸比丘言:「住四念處,我於所起身諸苦痛能自安忍,正念正知。
존자 아나율이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사념처에 머물러서, 나는 일어난 몸의 여러 고통을 편안히 견딜 수 있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안다.
주 팔리 908.5는 「네 가지 새김의 확립(satipaṭṭhāna)에 마음이 잘 확립되어 지내는 나에게 일어난 몸의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는다」이다. 한역은 「住四念處…能自安忍,正念正知」다. 한역은 「견딜 수 있다」이고 팔리는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는다」로 표현이 다르며 판정하지 않는다. 四念處는 3분할 표의 기계 1차 분류가 음역이다. 그러나 한자가 뜻을 옮긴 말로 읽히고 한국 불교계 정착형 「사념처」가 있어 정착형으로 쓴다(분류와 어긋남을 신고). 팔리형은 satipaṭṭhāna다. 於는 목적 표지 「을」로 흡수했고, 所起는 관형절 「일어난」으로 풀었다.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고 能은 「~ㄹ 수 있다」다. 평서(아나율→비구들)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908.5
何等為四念處?
무엇이 사념처인가?
주 팔리 908.6 「Katamesu catūsu?」는 처격 의문(어느 넷에서?)이고 한역은 계사문 「何等為四念處」다. 같은 질문 기능이며 인도어 처격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라 「번역기법」을 함께 신고한다. 何等은 「무엇」(사전 等為 ① 앞: 何 532)이다. 為는 피동(為…所)이 아니라 계사 「이다」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2.10:908.6
謂內身身觀念處,乃至受、心、法觀念處,是名住於四念處,身諸苦痛能自安忍,正念正知。」
이른바 안의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염처, 내지 느낌·마음·법을 관찰하는 염처이니, 이것을 사념처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몸의 여러 고통을 편안히 견딜 수 있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안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다(內身身觀念處에서 受觀念處로 건너뜀). 무엇이 접혔는지 한문이 말하지 않으므로 「내지」로 접힌 대로 두고 펴지 않는다. 팔리 908.7의 …pe…(kāye kāyānupassī… vedanāsu…pe… citte…pe… dhammesu)도 접혀 있다. 한역 乃至가 접은 구간과 팔리 pe가 접은 구간이 같은 자리인지는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해 판정하지 못한다. 그 구간의 대응은 `unaligned`(미결)이며 위 `partial`은 읽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 한역에는 ātāpī(열심히)와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다스려)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팔리 908.8은 imesu… satipaṭṭhānesu의 되풀이이고, 한역의 「是名住於四念處」는 이름 붙이는 정의형이다. 內身身觀念處는 「안의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염처」로 읽으며 팔리 kāye kāyānupassī에 해당한다. 受는 정형구 행(251행 No 28 vedanā)이라 낱말 확정역이 없다. 사념처의 셋째 항 자리라 「느낌」으로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부재]를 남긴다. 謂는 「이른바」, 是名은 「이것을…이름한다」,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自는 0140c07.1과 같이 흡수했다. 이문은 忍【大】 ↔ 住【聖】이며, 저본(大) 忍대로 옮긴다(聖本이면 「편안히 머물 수 있고」). 인용부호는 0140c07.1에서 열려 여기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2.10:908.7~908.8
時,諸正士共論議已,歡喜隨喜,各從座起而去。
그때 바른 사람들이 함께 논의하고 나서,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팔리 sn52.10은 908.8에서 말을 마치고 908.9 「Dasamaṃ.」(제십)으로 끝나며 한역의 맺음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 …pe…로 접힌 자리가 아니라 `absent`다(자리는 끝맺음 표지 908.9). 正士는 확정역이 없어 「바른 사람」(正+士)으로 옮기고 諸는 복수 「-들」로 흡수했다. 사전 正士 ①은 이 아함 77회 43경, 앞 「時二 52」다. 사전 ⑥의 菩薩 풀이는 후대·대승의 눈이라 아함 문맥과 맞지 않아 버린다. 歡喜와 隨喜는 한 낱말로 합치지 않고 「기뻐하고」「따라 기뻐하며」로 둔다. 증언 쪽 짝만 비고로 둔다(사전 歡喜 ② sa103/0030c10.1 ↔ sn22.89/89.119 abhinanduṃ, 隨喜 ② sa107/0033a17.1 ↔ sn22.1/1.17 anumoditvā). 論議는 이 문맥대로 「논의」로 옮기고 사전 ⑥ 후대 풀이는 쓰지 않는다. 而는 흡수했고, 從座는 「자리에서」, 各은 「각각」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2.10:9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