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517

SĀ 517

교차 검사교차 검사 8현대역 준비 중

(五一九)

(오백십구)

주 한역 제목 자리에는 순번(五一九)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머리 「10. Kumbhaṇḍasuttaṃ」에는 순번(10)과 이름이 함께 있으므로 일부(한쪽이 더)로 매겼다. 순번의 숫자는 두 모음의 번호 체계가 달라 서로 맞춰 보지 않았다. 팔리 끝의 「Dasamaṃ.」(211.6, 열째)도 순번을 매기는 자리다. 좌표 id의 sa517과 제목 번호 五一九가 다른 것은 그대로 두었다(좌표 id를 바꾸지 않는다). 투입물 표기도 大正 519(한문저본·팔리증언)와 517(_전거 머리말)로 갈린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9.10:0.3

AG:sa517/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나오는 개경 정형구다. 如는 如是(이와 같이) 안의 한 요소로 옮겼고 따로 비유·가정의 뜻을 세우지 않았다. 제공된 sn19.10 본문 18좌표에는 개경 문장이 없다(본문이 211.1의 발화로 곧바로 시작하며, …pe… 접힘 앞이 아니다). 그래서 없음확인으로 매겼으나 범위는 sn19.10 본문에 한한다. sn19의 다른 경은 제공되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9.10:211.0

AG:sa517/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一時=한때, 佛=부처님(확정 술어 [구속] 253). 王舍城은 §⑤의 정착어(왕사성)로 처리했다. 이름의 뜻: 한역이 Rājagaha(왕의 집)를 뜻으로 옮긴 王舍에 城을 붙인 것이고, 한국 불교계 정착형이 왕사성이다. 팔리형(Rājagaha)은 여기에만 적는다. 그런데 _한자대역_3분할은 王舍을 의역(뜻으로 옮긴다)으로 분류했고, §⑤ 본문은 왕사성을 정착어 예로 든다. 두 지시가 갈려 정착형을 택하고 을 남긴다. 의역을 택하면 한국어 문자열이 달라진다. 유형 확정은 정도평 몫이다. 전거 王舍城(팔리 Rajagaha / Rājagaha, 범어 근대 없음)은 ⚠다른 부(MA)의 대역이라 이 경의 직접 근거로 쓰지 않았다. 제공된 sn19.10 본문에는 장소를 밝히는 개경 문장이 없다(없음확인, 범위는 0.2와 같다). 211.5의 rājagahe는 부처님 발화 안의 말이라 이 좌표의 대응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9.10:211.0

AG:sa517/0.3 · 교차 검사

乃至路中見一眾生,以銅鐵羅網自纏其身,火常熾然,還燒其體,痛徹骨髓,乘虛而行。

내지 길 가운데에서 한 중생이 구리와 쇠의 그물로 자기 몸을 감고, 불이 늘 활활 타올라 도리어 그 몸을 태우며, 아픔이 뼈와 골수를 꿰뚫는데 허공을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다. 접힌 대로 두고 「내지」로 옮겼으며, 무엇이 접혔는지 한문이 말하지 않으므로 펴지 않았다. 문장이 乃至로 시작해 보는 이(주어)가 이 좌표에 없다. 채우지 않았다. 眾生=중생. 羅網은 銅鐵(구리와 쇠)이 꾸미는 그물로 한문만으로 뜻이 선다.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자기 몸」에 흡수했다. 還=도리어(불이 제 몸으로 되돌아 태운다). 熾然=활활 타오르다. 痛徹骨髓=아픔이 뼈와 골수를 꿰뚫다. 같은 구가 sa511/0.3·sa512/0.3에도 나온다(사전 痛徹 ③ · 骨髓 ③). 乘虛而行=허공을 타고 가다. 팔리 211.1 「vehāsaṃ gacchantaṃ」(허공으로 가는)과 같은 장면이다. 같은 211.1에는 한역에 없는 gijjhakūṭā pabbatā(독수리봉)에서 내려오는 일, kumbhaṇḍaṃ purisaṃ(쿰반다 사내)이 있고, 한역은 사내가 아니라 「한 중생」이라 일부로 매겼다. 팔리 211.2~211.4는 그 알(aṇḍa)을 어깨에 얹고 가고 앉을 때도 그 위에 앉으며 독수리·까마귀·솔개가 달려들어 찢는다고 한다. 한역의 불붙는 구리·쇠 그물과 괴로움의 내용이 달라 엇갈림으로 매겼다. 211.5 앞머리의 aṭṭassaraṃ karoti(애처롭게 소리친다)도 한역 이 좌표에 없다. 정형구 행 見(dassana)·生(jāti)은 이 자리의 뜻(보다 / 眾生의 일부)과 달라 확정역으로 쓰지 않고 문맥으로 옮겼다. 앵커의 以·而는 조사와 어미로 흡수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9.10:21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9.10:211.2~211.4

AG:sa517/0.4 · 교차 검사

佛告諸比丘:「此眾生者,過去世時,於此王舍城為捕魚師,緣斯罪故,已地獄中受無量苦,地獄餘罪,今受此身,續受斯苦。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이 중생은 과거세 때 이 왕사성에서 물고기 잡는 사람이었고, 이 죄로 말미암아 이미 지옥 가운데서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았으며, 지옥의 남은 죄로 지금 이 몸을 받아 이어서 이 괴로움을 받는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 比丘=비구(둘 다 확정 술어 [구속]). 告=이르다. 諸는 「-들」로 옮겼다. 者=「~은」. 過去世는 정착어 「과거세」로 옮겼다. 王舍城은 0.3과 같은 처리다(정착형 왕사성, 은 0.3에 달았다). 捕魚師의 師는 스승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이로 읽었다(한문만으로). 緣斯罪故=이 죄로 말미암아(사전 緣 ① 「뒤: 斯罪 25」). 已는 앞선 지옥의 괴로움과 지금의 이 몸을 가르는 완료의 뜻이 실려 「이미」로 세웠다. 受는 느낌(vedanā)이 아니라 「받다」이며 정형구 행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 無量=한량없는, 苦=괴로움. 地獄餘罪는 뒤 절 今受此身의 까닭으로 읽었다(「로」는 한국어 격조사가 채움). 續受斯苦=이어서 이 괴로움을 받는다. 此와 斯는 모두 「이」로 옮겼다. 연 따옴표는 한문 구두대로 0137a12.1에서 닫힌다. 팔리 211.5 「eso, bhikkhave, satto imasmiṃyeva rājagahe gāmakūṭako ahosi」와 겹친다. 이 중생(eso satto), 이 왕사성(imasmiṃyeva rājagahe), 비구들(bhikkhave)은 서로 같으나 과거의 직분이 갈린다. 한역은 捕魚師(물고기 잡는 사람), 팔리는 gāmakūṭaka(gāma '마을' + kūṭa)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엇갈림이다. 緣斯罪故 이하는 211.5의 두 번째 …pe… 접힘 안쪽에 걸리므로 읽지 못했다. 그 부분은 미대응이고 없음이 아니다. 比丘의 전거: 팔리 bhikkhu / 범어 근대 Bhikṣu로 계통이 갈린다(⚠판정하지 않는다). 짝은 bhikkhave(211.5)다. 이어지는 0137a12.1·0137a13.1의 諸比丘도 같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9.10:211.5

AG:sa517/0137a09.1 · 교차 검사

諸比丘!如大目犍連所見,真實不異,當受持之。」

비구들이여! 대목건련이 본 것과 같이 진실하여 다르지 않으니, 이를 받아 지니라.”

주 諸比丘=비구들(호격). 大目犍連=대목건련: 目犍連은 Moggallāna를 소리로 옮긴 것이고 大는 Mahā(큰)다. 한자 독음이 한국 불교계 정착형(대목건련)과 같아 음역과 정착어가 같은 문자열이다. _한자대역_3분할은 이 이름을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目犍連이 소리옮김이므로 저본이 이긴다고 보았다. 전거 大目犍連: 팔리 Mahāmoggallāna / 범어 근대 Mahāmaudgalyāyana로 계통이 갈린다. 판정하지 않으며 ⚠다른 부(MA)의 대역이라 이 경의 직접 근거는 아니다. 如=「~와 같이」(비유 자리). 所見=본 것(所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로 풀었다). 見은 정형구 행의 뜻이 아니라 「보다」다(0.4와 같은 사안). 真實不異=진실하여 다르지 않다. 이문: 大正은 不異를 싣고 宋·元·明본은 不異가 없다(교감주 〔不異〕-【三】). 저본(大正)대로 옮겼다. 當은 어미 「-라」가 진다. 受持=받아 지니다(사전 受持 ① 이 경 0137a12.1). 受는 느낌이 아니며 0137a09.1과 같은 사안이다. 之=「이를」. 팔리 대응 후보는 211.5의 …pe… 접힘 안쪽뿐이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미대응이며 없음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배열 비교도 하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9.10:211.5

AG:sa517/0137a12.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 比丘=비구(확정 술어 [구속]). 說此經已의 已는 완료로 「~고 나자」에 실었다. 所說=말씀하신 것(관형절).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이 아함 전권 829경에 나오는 종결 정형구). 佛이 이 경에서 모두 佛로 적혀 한자 흔들림은 없다. 팔리 sn19.10 본문에는 이런 종결 정형구가 없고 끝 표지 「Dasamaṃ.」(211.6, 열째)만 있다. 둘은 같은 기능이 아니다. 다만 본문 끝이 …pe…(211.5)로 접혀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없음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두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9.10:211.5

AG:sa517/0137a13.1 · 교차 검사

如捕魚師,捕鳥、網兔,亦復如是。

물고기 잡는 사람과 같이, 새를 잡고 그물로 토끼를 잡는 이도 이와 같다.[불확실]

불확실 如…亦復如是는 비교 문형(「X와 같이 Y도 이와 같다」)이다. 亦復는 조사 「도」가 지므로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捕魚師는 0137a09.1과 같다. 捕鳥·網兔은 동사+목적어 구 둘이다. 사람(師)이 생략된 것으로 읽어 「이」를 채웠다. 행위로 읽으면 「것」이 된다. 한문만으로는 가를 수 없어 을 남긴다. 網은 동사(그물로 잡다)로 읽었다. 이 좌표는 종결 정형구(0137a13.1) 뒤에 서서 경을 다른 직업으로 넓히는 말로 보인다. 팔리 sn19.10 본문에는 이 문장이 없고, 끝의 uddāna(211.10)에 sākuṇiyo(새를 잡는 이)가 보이나 본문 밖의 다른 경들을 가리키는 목록이다. 그 경들과의 대응을 이 증언만으로 서로 잡지 않았다. 미대응이며 없음확인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9.10:211.6

AG:sa517/0137a15.1 · 교차 검사

❖

함께 볼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