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九四)
(사백구십사)
주 제목 좌표. 한역에는 경 이름이 없고 경 번호만 선다. 팔리 저본에는 경 이름(0.3)과 번호(41.0)가 있으나 서로 다른 목록 체계의 번호라 대응이 서지 않는다 — 없음확인. 교감주(orig·equivalent 동일): 「A. VI. 41. Dārukkhandha.」(다카쿠스 각주; 증언 범위 an6.41과 같은 경을 가리킨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물에 없어 미대응으로 적는다(찾아보지 않은 것이지 없음을 확인한 것이 아니다). 투입물 점검: `_전거_sa492.md` 머리말만 「大正 492」이고 나머지는 「大正 494」 — 불일치, 정도평 확인 요망.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41:0.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41:41.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如是我聞` 이 아함 전권 1332, 이 경 1). `如`는 `如是`에 묶인 정형구의 일부라 비유·가정 기능을 따로 세우지 않고 「이와 같이」로 옮겼다. 팔리 41.1과 같음.
니까야 대응 같음 AN 6.41:41.1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
주 `一時`=한때(팔리 ekaṃ samayaṃ에 해당하는 자리). `佛`=[구속] 「부처님」. 한역은 부처님(佛)이 王舍城 迦蘭陀竹園에 머문다고 쓰고, 팔리 41.2는 같은 자리에서 존자 사리뿟따가 라자가하의 기사굴(독수리봉) 산에 머문다고 쓴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도시 王舍城/Rājagaha만 겹친다). 한역은 사리불·기사굴산을 다음 좌표 0128c20.1에서 따로 세워 팔리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눈다(구조·배열).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는다. 고유명: 王舍城=정착어 「왕사성」(§⑤ 예시), 뜻은 『왕의 집(이 있는) 성』(王=왕, 舍=집). 단 `_한자대역_3분할`은 王舍을 의역(뜻으로 옮긴다)으로 분류한다 — 표(기계 1차 분류)와 §⑤의 정착어 예시가 갈려 정착형을 택하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정도평에 남긴다(전거_sa492: 王舍城=Rajagaha/Rājagaha). 迦蘭陀=음역 → 한자 독음 「가란타」; 慧琳은 迦蘭䭾(迦)를 새 이름이라 풀고 대숲에 깃든다 한다(一切經音義(慧琳) 0601c04 〔出生菩提心經〕 인용). 竹園=의역 → 「대나무 동산」(사전 竹園 ① 앞 蘭陀 198/204 — `迦蘭陀竹園`이 한 덩어리로 굳은 표현; 사전 竹園 ⑥ 丁福保(후대·가장 가벼움)는 竹林精舍라 함, 근거로 쓰지 않음). 전거_sa492: 王舍城迦蘭陀竹園=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 — 팔리 저본 an6.41의 이 자리에는 나오지 않는다. 범어 후보가 없어 음역계통은 세우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41:41.2
尊者舍利弗在耆闍崛山中。
존자 사리불이 기사굴산 가운데 있었다.
주 `尊者`=존자(정착), `者`는 尊者의 일부이며 명사화가 아니다. 舍利弗=정착어 「사리불」(팔리 Sāriputta의 한국 정착형). 이름 뜻: 舍利(새의 이름, 慧琳은 鶖鷺鳥라 함)+弗(아들) = 『사리 새의 아들』 — 어머니의 눈이 그 새의 눈 같아 어머니를 따라 붙은 이름이라 한다(一切經音義(慧琳) 0478b23 〔大般涅槃經音義〕, 0482b07 〔音妙法蓮花經〕 인용; 같은 곳은 옛 번역 身子를 오류라 하나 여기서 판정하지 않는다). 耆闍崛=음역 → 한자 독음 「기사굴」+山 → 「기사굴산」, 팔리형 Gijjhakūṭa는 비고에만 둔다. 음역계통: 耆闍崛 ← Gijjhakūṭa(팔리) / Gṛdhrakūṭa(범어, 大正藏 편자 근대 비정), 舍利弗 ← Sāriputta / Śāriputra — 전거_sa492 인용, 판정하지 않음(음의: 慧琳 0482a18 〔音妙法蓮花經〕 「梵云姞利駄羅矩吒山 此云鷲峯」 인용).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耆闍崛=「독수리봉 산」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쓰지 않았다. `在`=있었다, `山中`의 `中`=가운데(조사 대신 위치어). 팔리 41.2(āyasmā sāriputto … gijjhakūṭe pabbate viharati)의 이 문장 쪽 절반이며, 앞 0.3과 함께 41.2 한 문장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2
爾時,尊者舍利弗晨朝著衣持鉢,出耆闍崛山,入王舍城乞食,於路邊見一大枯樹,即於樹下敷坐具,𣫍身正坐,語諸比丘:「若有比丘修習禪思,得神通力,心得自在,欲令此枯樹成地,即時為地。
그때 존자 사리불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기사굴산을 나와 왕사성에 들어가 밥을 빌고, 길가에서 큰 마른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곧 나무 아래에 앉을 깔개를 펴고 몸을 곧게 하여 바르게 앉아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어떤 비구가 선의 사유를 닦아 익히고 신통력을 얻고 마음이 자재함을 얻어 이 마른 나무가 땅이 되게 하고자 하면 즉시 땅이 된다.
주 앞쪽(爾時…語諸比丘)은 팔리 41.3·41.4, 인용 안(若有…即時為地)은 41.7에 걸린다. 문장 유무 — 한역에만: `入王舍城乞食`, `敷坐具`, `𣫍身正坐`, `修習禪思`. 팔리에만: 여러 비구와 함께 산을 내려오는 장면(sambahulehi bhikkhūhi saddhiṃ … orohanto)과 41.5~41.6의 문답(「그대들은 저 큰 통나무를 보는가?」「그렇습니다, 벗이여」) — 한역에는 동행 비구도 문답도 없고 사리불이 곧바로 말한다. 개별 어휘 — `晨朝`↔pubbaṇhasamayaṃ, `著衣`↔nivāsetvā, `持鉢`↔pattacīvaramādāya(팔리는 발우와 옷), `一大枯樹`(큰 마른 나무)↔mahantaṃ dārukkhandhaṃ(큰 통나무), `此`(이)↔amuṃ(저), `得神通力,心得自在`↔iddhimā cetovasippatto. 판정하지 않는다. `若有`: `若`은 연결어미 「-면」이 지고,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부정칭이라 「어떤」으로 흡수했다. `欲令`=「-게 하고자」, `即時`=「즉시」, `即於`의 `即`=「곧」, `於`는 조사가 진다, `諸比丘`의 `諸`는 「-들」에 흡수, `自在`의 `自`는 복합어의 일부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得`은 두 번 모두 획득. 禪思=「선의 사유」: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사전 禪思 이 경 5회·丁福保 ⑥ 후대는 禪定이라 하나 근거로 쓰지 않음); `修習`=닦아 익히다. 坐具=「앉을 깔개」(사전 坐具 ⑥ 丁福保: 尼師壇·隨坐衣 — 후대, 인용만). 𣫍身正坐: `𣫍`의 자형을 확정하지 못해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 몸가짐을 바르게 함을 뜻하는 글자로 보고 「몸을 곧게 하여」로 옮겼으나 이체자 판정은 하지 않는다. 乞食=「밥을 빌고」. 王舍城=앞 0.3과 같은 사안([불확실:앞자리와_동일], 정착형 「왕사성」). 耆闍崛·舍利弗·比丘의 음역계통은 0128c20.1과 같다(比丘 ← bhikkhu / Bhikṣu, 전거_sa492 인용·판정 없음; 음의: 慧琳 0482a20 〔音妙法蓮花經〕 「梵云苾蒭」, 五義=怖魔·乞士·淨命·淨戒·破惡). 比丘=[구속] 「비구」. 舍利弗=정착어 사리불, 뜻은 0128c20.1과 같다(『사리 새의 아들』, 慧琳 0478b23). 尊者=존자.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3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4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7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所以者何` — `所以`=까닭, `者`는 주제 표지라 흡수, `以`는 `所以`의 일부, `所`는 「하는 바」로 풀지 않았다. 팔리 Taṃ kissa hetu?와 같은 자리의 물음. 이 경에는 이 물음이 세 번 선다(0128c25.1 · 0128c29.1 · 0129a03.1).
니까야 대응 같음 AN 6.41:41.8
謂此枯樹中有地界。
이 마른 나무 가운데 땅의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주 `謂`=앞 물음의 답을 여는 설명어, 「…라는 말이다」로 옮겼다.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므로 「있다」. `中`=가운데. `此`=이. 界: 확정역이 없다 — 「요소」는 뜻풀이 후보이며 직역어 후보로 「영역」·「구분」도 설 수 있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신고한다(사전 地界 ⑥ 丁福保: 四大之一·地大, 他三大와 구별하므로 界라 함 — 후대·가장 가벼운 근거라 인용만, 사전 地界 ①: 이 경 포함 잡아함 15회). 팔리 41.9 Atthi, āvuso, amumhi dārukkhandhe pathavīdhātu까지가 이 문장에 걸리고, 이어지는 관계절(yaṃ nissāya …)은 한역에서 다음 좌표 0128c26.1이 받는다(구조·배열).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9
是故,比丘得神通力,心作地解,即成地不異。
그러므로 비구가 신통력을 얻어 마음에 땅이라는 이해를 지으면 곧 땅이 되어 다르지 않다.
주 `是故`=「그러므로」(앞 좌표의 이유를 받는 접속). `比丘`는 주어이고 호격 부호가 없다. `心作地解`: `解`는 다의(풀이·이해·알아봄)라 「이해」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心`을 처소(마음에)로 읽었으나 주어(마음이)로도 읽힌다. 사전 心作 ③: 잡아함에서 이 경에만 나와 용례 대조가 서지 않는다. `若`이 없으나 `即`이 받는 조건 관계를 「-면」으로 읽었다. `即成`=곧 …이 되다, `不異`=다르지 않다. 팔리 41.9의 관계절(yaṃ nissāya … pathavītveva adhimucceyya, 그것에 의지하여 오직 땅이라고 정하리라)과 겹치는 자리이며, 팔리 동사 adhimucceyya와 한역 `解`가 같은 말을 옮긴 것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比丘=[구속] 「비구」, 음역계통(比丘 ← bhikkhu / Bhikṣu)은 0128c20.2와 같다(전거_sa492).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9
「若有比丘得神通力,自在如意,欲令此樹為水、火、風、金、銀等物,悉皆成就不異。
「어떤 비구가 신통력을 얻어 자재하고 뜻대로 하여 이 나무가 물·불·바람·금·은 등의 물건이 되게 하고자 하면 모두 다 이루어져 다르지 않다.
주 한역 `水、火、風、金、銀` 다섯 ↔ 팔리 āpo · tejo · vāyo · subhaṃ · asubhaṃ(물·불·바람·깨끗함·깨끗하지 않음). 앞 셋은 같고 뒤 둘이 다르다(金銀↔subha/asubha). 한역의 `等物`은 팔리에 없다.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 41.10은 āpo와 tejo 사이를 `…pe…`로 접었다. 「 부호: 0128c20.2에서 연 사리불의 발화가 닫히지 않은 채 다시 열린다 — 저본 부호 그대로. `若有`=「어떤…면」(0128c20.2와 같음), `自在如意`: `自`는 복합어의 일부(「스스로」 아님), `如`=「대로」(如意=뜻과 같이), 사전 如意 ①: 이 경 포함 잡아함 13회. `為`=「되다」, `悉皆`=「모두 다」, `成就`=이루어지다. `令`=「-게 하다」. 比丘=[구속] 「비구」, 음역계통은 0128c20.2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10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팔리는 41.10에서 `…pe…`로 중간을 접어 두었다. 한역의 두 번째 `所以者何`(물 이야기)은 그 접힌 안쪽에 걸릴 수 있어 없음확인으로 적지 않고 미대응으로 둔다. 팔리 41.8·41.11의 물음은 각각 0128c25.1·0129a03.1이 받는다. 해석은 0128c25.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6.41:41.10
謂此枯樹有水界故。
이 마른 나무에 물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주 팔리 41.10의 `…pe…`로 접힌 구간에 걸릴 수 있어 미대응. `謂…故`=「…때문이라는 말이다」, `有`=존재. 界=「요소」는 0128c25.2와 같은 사안이라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6.41:41.10
是故,比丘!禪思得神通力,自在如意,欲令枯樹成金,即時成金不異,及餘種種諸物,悉成不異。
그러므로 비구여! 선의 사유로 신통력을 얻어 자재하고 뜻대로 하여 마른 나무가 금이 되게 하고자 하면 즉시 금이 되어 다르지 않고, 및 그 밖의 가지가지 물건이 모두 이루어져 다르지 않다.
주 `比丘!`=호격 「비구여!」. `禪思得神通力`: `禪思`를 수단(「선의 사유로」)으로 읽었다. 0128c20.2는 `修習禪思,得神通力`처럼 동사가 둘이었고 여기는 하나가 없어 명사·동사 양독이다 — [불확실:격·태·구문]. `欲令枯樹成金`: 한역의 金 단독 사례는 팔리에 없다(팔리의 목록은 subha/asubha).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해 엇갈림으로 적고 판정하지 않는다. `及餘種種諸物`: `及`=및, `餘`=그 밖의, `諸`는 `種種`에 흡수. `即時`=즉시. `悉成不異`=모두 이루어져 다르지 않다. 比丘=[구속] 「비구」, 음역계통은 0128c20.2와 같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41:41.10
以彼枯樹有種種界故。
저 마른 나무에 가지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주 팔리 41.12의 asubhadhātu(깨끗하지 않음의 요소)와 한역 `種種界`(가지가지 요소)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한역 `種種界`가 앞 목록을 아우르는 총칭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彼`=「저」(앞의 `此`=이와 구별; 팔리 amu 「저」와 같은 결). `以…故`=「…때문이다」(`以`는 조사로 흡수). 界=「요소」는 0128c25.2와 같은 사안이라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41:41.12
是故,比丘!禪思得神通力,自在如意,為種種物悉成不異,比丘當知,比丘禪思神通境界不可思議。
그러므로 비구여! 선의 사유로 신통력을 얻어 자재하고 뜻대로 하여, 가지가지 물건이 되는 것이 모두 이루어져 다르지 않으니, 비구여, 알라. 비구의 선의 사유와 신통의 영역은 생각하고 논의할 수 없다.
주 앞쪽(…悉成不異)은 팔리 41.12의 귀결부(그것에 의지하여 … 결정하리라)에 걸리고, `比丘當知…不可思議`는 한역에만 있다(문장 유무). `為種種物悉成不異`: 앞 두 단락에 있던 `欲令`이 이 자리에는 없다 — 보충하지 않고 「가지가지 물건이 되는 것이」로 옮기며 [불확실:격·태·구문]. `當知`=어미 「-라」(`當`을 「마땅히」로 세우지 않음). `禪思神通境界`: 「선의 사유와 신통의 영역」으로 끊었으나 `禪思`·`神通`·`境界`를 어디서 끊는지 양독 — [불확실:구두·분절]. 境界=「영역」: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사전 境界 ⑥ 丁福保 후대: 自家勢力所及之境土, 인용만). `不可思議`=「생각하고 논의할 수 없다」(축자). `自在如意`·`得`은 0128c29.3과 같다. 比丘 셋=[구속] 「비구」(첫째는 호격, 둘째는 `當知`의 호칭, 셋째는 소유 관계), 음역계통은 0128c20.2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41:41.12
是故,比丘!當勤禪思,學諸神通。」
그러므로 비구여! 선의 사유에 힘쓰고 여러 신통을 배우라.」
주 이 권면은 한역에만 있다 — 팔리는 41.12의 asubhantveva adhimucceyyā'ti로 발화를 닫고 41.13 `Ekādasamaṃ`(제11)으로 끝난다(없음확인). `當勤禪思`: `當`은 어미 「-라」가 지고, `勤`=힘쓰다(사전 勤 ① 뒤: 方便 135·修習 23), `學`=배우다, `諸神通`의 `諸`=여러. 」는 사리불 발화의 닫음. 比丘=[구속] 「비구」, 음역계통은 0128c20.2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41:41.12
舍利弗說是經已,諸比丘聞其所說,歡喜奉行。
사리불이 이 경을 설하고 나자, 비구들이 그가 설한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결어 정형구 `說是經已…歡喜奉行`(사전 奉行 ① 歡喜 앞 829/863). 팔리 41.13 `Ekādasamaṃ`은 모음 안의 제11이라는 분량 표지이지 결어가 아니라 대응이 서지 않는다(없음확인). `說是經已`: `已`=「-고 나자」, `所說`=「설한 것」(`所`를 「하는 바」로 풀지 않음), `諸比丘`=「비구들」, `歡喜`=「기뻐하다」(음의: 慧琳 0753a01 〔阿毘達磨大毘婆沙論〕 「歡喜 悅也」 인용), `奉行`=「받들어 행하다」. 舍利弗=정착어 「사리불」, 이름 뜻 『사리 새의 아들』(0128c20.1, 慧琳 0478b23 인용). 음역계통: 舍利弗 ← Sāriputta / Śāriputra, 比丘 ← bhikkhu / Bhikṣu(전거_sa492 인용, 판정 없음). 比丘=[구속] 「비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41: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