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475

SĀ 475

교차 검사교차 검사 16현대역 준비 중

(四七八)

(478)

주 大正 경 번호 「四七八」을 옮겼다. 교감주 `S. 36. 25. Bhikkhu.`(다카쿠스, PTS 번호)는 저본 본문이 아니라 각주다. 팔리 후보는 계열이 갈린다(conflict) — 莊春江은 sn36.26(Sambahulabhikkhusutta)을 본으로, 다카쿠스 각주는 sn36.25를 가리켜 보조로 투입됐다. 제공된 sn36.26은 느낌의 세 가지·일어남·소멸·길·맛·허물·벗어남을 묻고 답하는 틀이라 이 한문의 문답과 맞는다. 보조 sn36.25(273.1~273.3)는 같은 주제어를 나열하되 「눈이 생겼다·앎이 생겼다」 정형구로 서술하는 1인칭 선언이라 한문의 문답과 발화 틀이 달라, 좌표 대응은 매기지 않고 사실만 적는다. 한문 478과 팔리 274는 서로 다른 번호 체계의 편집 표지라 본문 대응을 따질 자리가 아니며, 꼴은 판정을 보류하고 미대응으로 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산스크리트 항은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6.26:274.0

AG:sa475/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제공된 팔리 원문 sn36.26은 서두(개경·장소)를 싣지 않고 곧바로 274.1(비구들이 세존께 나아감)로 시작한다. 같은 상윳따의 앞 경 틀에 서두가 접혀 있는지는 제공 자료로 읽을 수 없으므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둔다(대응 좌표는 서두가 놓일 자리인 274.1 직전). 如是我聞은 이 경에서 개경 정형구(전권 1332, 이 경 1)로 쓰였고 생략 표지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6.26:274.1

AG:sa475/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

주 고유명 처리. 王舍城은 한자대역 3분할 표가 의역(뜻은 「왕의 집」, 팔리형 Rājagaha)으로 1차 분류했으나, §⑤가 정착어의 예로 든 「왕사성」이 한국 불교계 정착형이므로 정착형 「왕사성」을 썼다. 이 이름이 뜻하는 바는 「왕이 사는 집(왕궁)의 성」이다. 표 유형과 §⑤ 예시가 갈려 유형 판정은 정도평 몫으로 남긴다(불확실). 迦蘭陀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가란타」로 적었다(팔리형 Kalandaka). 竹園은 뜻으로 옮겼다(대나무 동산). 전거표: `王舍城迦蘭陀竹園 ↔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범어 후보 없음 → 음역계통 신고 없음).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601c04 〔出生菩提心經〕 「迦蘭䭾迦…鳥名也…鞞紐婆那此云竹林」을 인용한다(참고, 확정역 아님). 팔리 대응은 0.2와 같은 까닭으로 미대응. 一時=「어느 때」(사전 一時 ① 이 경 0.3).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6.26:274.1

AG:sa475/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云何為受?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이 느낌인가?

주 질문 화자가 갈린다 — 한문은 세존이 비구들에게 묻고(世尊告諸比丘), 팔리 274.1~274.5는 비구들이 세존께 나아가 묻는다(274.1 divergent; 274.2의 …pe…로 접힌 안쪽은 읽지 못함). 판정하지 않는다. 질문 내용(느낌이 무엇인가)은 274.3의 첫 물음과 같고 274.3은 세 물음을 한 좌표에 싣고 있어 일부로 매겼다. 云何為受: 為는 판단사(…이다)로 읽었고 為…所 피동이 아니다. 受는 확정역이 없다 — 정형구 행(「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과 사전 受 ①(이 경 0122a03.1 외)에 따라 「느낌」으로 옮기고, 동사 受(받다)와의 다의는 이 자리 문맥(名詞, 三受로 이어짐)으로 가렸다. 諸比丘의 諸는 복수 「들」이 지므로 따로 옮기지 않았다. 한자 흔들림: 이 좌표는 `世尊告`, 07.1·07.2는 `佛告`로 같은 화자 표기가 다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각각 있어(世尊=세존, 佛=부처님) 한자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6.26:274.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3

AG:sa475/0122a03.1 · 교차 검사

云何受集?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인가?

주 集은 확정역이 없다. 자의는 「모임·모여듦」이나 受集·苦集 등 이 아함의 쓰임(정형구 행: 「…일어남」)에 따라 「일어남」으로 옮겼다. 사전에 集 표제는 없다(근거는 정형구 행). 팔리 274.3의 두 번째 물음에 걸리며, 한 좌표에 세 물음이 실려 일부로 매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3

AG:sa475/0122a03.2 · 교차 검사

云何受滅?

무엇이 느낌의 소멸인가?

주 배열이 갈린다. 한문은 集 → 滅 → 集道跡 → 滅道跡 순이고, 팔리는 일어남(274.3) → 일어남에 이르는 길(274.3) → 소멸(274.4) → 소멸에 이르는 길(274.4) 순이다. 번역 단계의 재배열인지 저본 차이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滅은 확정역이 없어 「소멸」로 옮겼다(사전 滅 ① 이 경 0122a04.1, 0122a08.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36.26:274.4

AG:sa475/0122a04.1 · 교차 검사

云何受集道跡?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의 길의 자취인가?

주 道跡은 道(길)+跡(자취)이다. 한자 음독 「도적」은 뜻이 서지 않아 뜻으로 옮겼다.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783b04 〔鞞婆沙阿毘曇論〕 「蹟迹…足跡也」(참고); 사전 道跡 ①(이 아함 44회, 受集 앞 11회). 도에 해당하는 인도어는 단정하지 않는다. 한문은 受集道跡을 滅 뒤에 두고 팔리는 일어남 바로 뒤(274.3)에 둔다(배열 갈림, 4.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36.26:274.3

AG:sa475/0122a04.2 · 교차 검사

云何受滅道跡?」

무엇이 느낌의 소멸의 길의 자취인가?”

주 한문의 질문은 여기서 끝난다. 팔리 274.5의 세 물음(맛·허물·벗어남)은 한문 질문에는 없고, 한문은 그 내용을 답(11.1)에서 受味·受患·受離로 다룬다. 한문에 질문이 없다는 것은 저본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며 이를 팔리의 증보로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4

AG:sa475/0122a04.3 · 교차 검사

諸比丘白佛言:「世尊是法根、法眼、法依。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고,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주 「비구들이 세존께 말씀드린다」는 틀만 팔리 274.2(etadavocuṃ)에 걸린다. 法根·法眼·法依의 세 호칭은 팔리 sn36.26 어디에도 없어, 그 자리가 놓일 274.5(물음 끝, 답 시작 직전)에 없음확인으로 적는다(전문이 제공됐고 이 구간에 …pe…가 없다). 사전 法眼 ②는 다른 경의 팔리 정형구와의 AI 정렬(사람 확인 전)만 보인다. 根은 기관(감각기능)이 아니라 뿌리로 옮겼다(法根·法眼·法依 병렬, 사전 根 ① 앞 是法 46). 依는 「의지처」로 옮겼다. 이문: 大正은 `言`이 있고 宋·元·明·三은 없다 — 저본(大正)대로 옮겼으며 뜻에는 영향이 없다. 한자 흔들림: 지문의 `佛`(白佛)과 발화의 `世尊`은 같은 분을 가리킨다. 존칭: 비구들의 발화이므로 합쇼체.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6.26:274.5

AG:sa475/0122a05.1 · 교차 검사

善哉!世尊!唯願廣說,諸比丘聞已,當受奉行。」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널리 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구들이 듣고 나서 받아들여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주 이 청원 단락은 팔리 sn36.26에 없다(대응 자리는 274.5 직후). 唯願廣說: 唯는 [한정]이라 願의 청원 어미(「-주시기를 바랍니다」)가 지므로 따로 옮기지 않았다(앵커 唯). 當受奉行의 當은 어미 「-겠습니다」가 진다. ★廣說은 `_정형구_생략표지`에 이 경 1회로 집계되나 이 자리는 `唯願廣說`(널리 설해 주십시오)의 요청 동사구라 접힘 표지가 아니다 — 乃至·如上이 딸려 있지 않고 접힌 내용도 없으므로 `[생략표지]`를 신고하지 않는다(사전 廣說 ③의 용례는 `…廣說,乃至`로 접는 쓰임). 善哉는 감탄 어미(哉)가 진 감탄 「좋습니다」로 옮겼다. 이문: 唯↔惟(宋·元·明) — 뜻이 같다. 受奉行은 受(받아들이다)+奉行(받들어 행함)으로 읽었다(사전 奉行 ①: 歡喜 앞 829). 비구들이 스스로를 `諸比丘`로 3인칭 지칭하는 것은 한문 그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6.26:274.5

AG:sa475/0122a06.1 · 교차 검사

佛告諸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를 위하여 설하겠다.”

주 「자세히 들어라, 잘 생각하라」의 고지 단락은 팔리 sn36.26에 없다(대응 자리는 274.6 직전). 諦聽: 諦=審(자세히 살핌). 음의: 續一切經音義(希麟) 0949c19 〔守護國界主陀羅尼經〕 「諦審也」(참고); 사전 諦聽 ① 발화 첫머리 39/122, 뒤 善思 107. 當為汝說: 當은 어미 「-겠다」가 지고, 為=「위하여」다. 汝는 한자 자체로는 수를 가르지 않으나 청자가 諸比丘(복수)이므로 「너희」로 옮겼다. 한자 흔들림: 03.1은 `世尊告`, 이 좌표는 `佛告`로 같은 화자를 가리키는 표기가 다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며, 확정역(세존/부처님)이 각각 있어 한자대로 옮겼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6.26:274.6

AG:sa475/0122a07.1 · 교차 검사

佛告比丘:「有三受——樂受、苦受、不苦不樂受。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다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주 三受의 내용은 팔리 274.6~274.7과 같다. 한문은 앞에 `佛告比丘` 틀을 새로 세우고, 팔리 274.8(「이것들을 느낌이라 부른다」)에 해당하는 문장은 한문에 없다(그 자리는 이 좌표 직후). 比丘에는 諸가 없으므로 수를 가르지 않는 「비구에게」로 옮겼다(03.1·07.1의 諸比丘=비구들과 구분). 有三受: 有는 존재 서술이라 「…이 있다」로 끝맺었고 「있어」로 잇는 훈독투를 쓰지 않았다(앵커 有 [존재]). 樂受·苦受·不苦不樂受는 정형구 행의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따랐다(정형구이며 낱말 확정역은 아님). 한자 흔들림: 앞 좌표(`佛告`)와 같은 표기. 직역 줄의 「—」는 한문의 줄표를 옮겼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6.26:274.6~274.7

AG:sa475/0122a07.2 · 교차 검사

觸集是受集、觸滅是受滅。

접촉의 일어남이 느낌의 일어남이며, 접촉의 소멸이 느낌의 소멸이다.

주 팔리 274.9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는 탈격(-ā, 「…로부터」)이고 한문은 `A是B`의 판단 구문이라 구문이 갈린다. 인도어 탈격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일 가능성이 있어 번역기법을 함께 적되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觸滅是受滅의 짝은 274.11 첫머리 `Phassanirodhā`만 읽히고 이어서 …pe…로 접혀 受滅에 해당하는 부분은 안쪽을 읽을 수 없다(그 부분은 미대응). 觸=「접촉」(정형구 행 觸). 앵커 목록에 이 좌표는 없으나(허사 없음) 문장은 그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9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11

AG:sa475/0122a08.1 · 교차 검사

若於受愛樂、讚歎、染著、堅住,是名受集道跡;若於受不愛樂、讚歎、染著、堅住,是名受滅道跡。

만약 느낌에 대해 좋아하고 즐기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며, 굳게 머문다면, 이것을 느낌의 일어남의 길의 자취라 한다; 만약 느낌에 대해 좋아하고 즐기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굳게 머물지 않는다면, 이것을 느낌의 소멸의 길의 자취라 한다.

주 한문은 `若…是名…`의 조건 정의문이고 팔리 274.10은 `Taṇhā vedanāsamudayagāminī paṭipadā`로 한 낱말이 길이라고 단언한다. 한문은 愛樂·讚歎·染著·堅住 넷을 들어 팔리보다 넓다(개별 어휘). 滅쪽(不愛樂…)에 걸리는 팔리는 274.11의 …pe…로 접힌 안쪽이라 읽을 수 없어 미대응이다. 否定 범위: 不이 愛樂·讚歎·染著·堅住 넷 모두에 걸린다고 읽었다(앞 문장의 네 낱말과 대칭) — 한문만으로는 不이 첫 낱말에만 걸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 불확실을 남긴다. 愛樂: 한자대역 3분할 표는 `혼합`(고유명 취급)으로 분류했고 전거표는 `Rāga`를 후보로 주었으나, 이 자리는 동사 복합어(愛+樂)로 읽혀 고유명 유형이 서지 않으므로 저본대로 옮겼다. 讚歎은 사전 讚歎 ① 앞뒤 낱말 칸(앞 愛樂 10 · 뒤 染著 7)이 이 자리와 같은 나열이고, 사전 讚歎 ⑥ 「以口業稱美其德」(丁福保 1922, 가장 가벼운 칸이라 인용만 한다)과 같은 쓰임, 곧 입으로 기려 말하는 뜻으로 보았다. 於는 한국어 조사 「에 대해」가 진다. 若→「-면」.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10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6.26:274.11

AG:sa475/0122a09.1 · 교차 검사

若受因緣生樂喜,是名受味;若受無常變易,是名受患;若於受斷欲貪、越欲貪,是名受離。」

만약 느낌을 인연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면 이것을 느낌의 맛이라 하고; 만약 느낌이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고; 만약 느낌에서 욕망과 탐욕을 끊고 욕망과 탐욕을 넘어서면 이것을 느낌의 여읨이라 한다.”

주 受離↔274.12(`nissaraṇa`)·斷欲貪越欲貪↔274.11(`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이 걸린다. 한문의 受味·受患에 해당하는 팔리는 274.5의 물음(`assādo`·`ādīnavo`)만 읽히고, 그 답은 274.11의 …pe… 안쪽이라 읽을 수 없어 그 부분은 미대응이다. 한문은 물음 없이 답에서 味·患·離를 세우고 팔리는 물음(274.5)에서 세운다(구조·배열). 欲貪: 한자대역 3분할 표의 의역에 따라 뜻으로 「욕망과 탐욕」이라 옮겼다(팔리 chandarāga는 비고만). 欲(원하는 마음)+貪의 병렬 복합어로 읽었다 — 하나의 낱말인지 둘인지는 단정하지 않는다. 斷(끊고)·越(넘어서면)은 팔리 vinaya(없앰)·pahāna(버림)와 한자가 갈린다(개별 어휘,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음; 순서도 한문은 斷→越이다). 因緣生樂喜: `受因緣生樂喜`를 「느낌을 인연으로(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면」으로 읽었다(`因緣生`+樂喜, 사전 因緣生 ① 뒤 喜樂 11). 受가 인연으로 생긴다는 읽기도 한문만으로는 배제되지 않아 불확실을 남긴다. 味=맛, 患=근심, 離=여읨은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患: 사전 患 ① 이 아함 232회, 「苦患」 용례). 無常變易: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325c11 〔大般若波羅蜜多經〕 「變易也·更也」(참고). 전거표의 無常(`aditya`)은 이 자리의 뜻(덧없음)과 어긋나 보여 인용하지 않는다. 이문: 樂喜↔喜樂(宋·元·明·三) — 순서만 다르며 뜻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5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6.26:274.12

AG:sa475/0122a11.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문의 결미 정형구(佛說此經已…歡喜奉行)는 팔리 sn36.26에 없다. 팔리 274.13 `Chaṭṭhaṃ`은 경의 차례(여섯째)를 알리는 표지일 뿐 이에 대응하는 내용이 아니다(대응 자리는 274.12 직후). 聞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앵커 所). 歡喜奉行: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753a01 〔阿毘達磨大毘婆沙論〕 「歡喜…悅也」(참고); 사전 歡喜 ①(奉行 829/1340). 이문: 此↔是(宋·元·明·三) — 뜻이 같다. 諸比丘의 諸는 「들」이 진다. 한자 흔들림: 이 좌표는 `佛說`(지문)로 03.1의 `世尊`과 갈리는 같은 표기 흔들림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6.26:274.13

AG:sa475/0122a13.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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