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三八)
(438)
주 한문 저본은 경 번호만 싣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증언은 경 이름(Pāṇasuttaṃ)과 번호(6, 1106)를 모두 싣는다. 그래서 두 좌표 모두 일부로 매겼다. 번호는 체계가 서로 다르다(대정장 438 대 증언 1106)고 보아 값의 일치는 따지지 않았다. 저본 교감주(S. 56. 36. Pāṇā.)는 편자가 단 것이다. 본문에 들이지 않고 여기에만 적는다. 이 경에는 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물에 없다. 그래서 모든 좌표의 SF 항은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0.3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한역에는 개경 정형구(如是我聞)가 있다. 이 경의 팔리 증언 14좌표에는 대응하는 도입 정형구가 없다. 증언 파일이 준 범위 안에서만 확인한 없음확인이다. 팔리 쪽 도입이 앞 경에 걸려 있는지는 이 파일로는 알 수 없다. 정형구 파일에서 如是我聞은 전권 1332경 가운데 이 경에 1회다. 접힌 표지는 아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6:1106.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팔리 증언 본문에는 장소를 밝히는 도입 문장이 없다(앞 좌표와 같은 까닭). 舍衛國은 한자대역표가 정착어(舍衛→사위)로 분류했다. 정착형 「사위」를 따른다. 사위는 코살라국의 도읍 이름이다(팔리형 Sāvatthī는 비고에만 둔다). 음의 인용: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에서 舍衛는 소리옮김(室羅伐悉底)에서 온 이름이다. 祇樹給孤獨園(5자 이상, 표에서 보류)은 祇樹(숲 이름 「기수」)와 給孤獨(사람 이름 「급고독」)과 園으로 이루어진다. 給孤獨은 慧琳 0368a05가 「亦義譯也」라 한 뜻옮김이다(「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꼴). 祇樹는 慧琳 0368a03에서 祇(소리)와 樹(뜻)가 섞인 이름이다. 지침 §⑤의 정착어 예시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형으로 들어 그대로 따랐다. 다만 給孤獨을 뜻옮김으로 보면 이 이름은 의역과 정착어 사이에서 갈린다. 그래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정도평 님이 정착어 목록으로 판정할 자리다. 한 경 안의 표기는 「기수급고독원」으로 통일했다. 一時는 「한때」로 옮겼다. 佛은 확정역(부처님)을 따랐다. 佛住의 住는 「머무시다」로 옮겼다. 전거 참고: 팔리형은 Jetavana, Anāthapiṇḍika이고 전거 대장은 ⚠다른 부(DA) 대역임을 표시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6:1106.1
爾時,世尊告諸比丘:「譬如大地草木,悉取為鏘,貫大海中,一切水虫悉能貫不?」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대지의 풀과 나무를 모두 가져다 꼬챙이로 삼아 큰 바다 가운데서 꿴다면, 모든 물벌레를 다 꿸 수 있겠는가?」
주 팔리 증언은 한 사람이 이 섬(jambudīpa)의 풀·나무·가지·잎을 모아 꼬챙이를 만들고, 큰 것·중간 것·가는 것을 크기별로 꿴다고 한다. 한역은 사람(주어)이 없다. 풀·나무는 둘로 줄고, 크기는 나누지 않고 一切水虫 하나로 묶인다. 대지는 섬과 다르고, 한역은 의문문으로 끝맺는다(팔리는 가정 서술). 팔리의 연속 동작(모아서, 만들어서, 꿰다)은 한역에서 悉取為鏘,貫大海中의 연속 동사다. 번역기법 차이일 수 있다. 저본 차이의 증거로 보지 않는다. 鏘은 보통 쇳소리(금속 부딪는 소리)다. 뒤의 貫과 호응하는 문맥으로 꿰는 도구(꼬챙이)로 세웠다. 槍·鎗의 자형일 가능성이 있으나 한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어 `[불확실:저본_이문·자형]`으로 남긴다. 이문 표에는 鏘의 이문이 없다. 팔리 sūla(꼬챙이)와 맞는다는 사실은 증언이므로 본문 근거로 쓰지 않았다. 貫大海中은 「큰 바다 가운데서 꿴다면」으로 끊었다. 대안은 大海中을 貫의 목적어로 읽고 뒤 문장으로 이어지는 읽기다. `[불확실:구두·분절]`. 悉取의 悉은 「모두」, 悉能貫의 悉은 「다」로 달리 옮겨 겹침을 피했다.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했다. 不는 문말 의문 허사로 보아 의문 어미에 흡수했다. 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복수 표지가 진다. 한자 흔들림: 한역은 이 경에서 같은 분을 世尊(이 좌표·b22.2)과 佛(b22.1·b24.1·b26.1)로 다르게 쓴다. 확정역이 둘로 갈려(세존/부처님) 각각 따랐다. 譬如의 如는 비유의 「~하면」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1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2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3
比丘白佛:「不能。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할 수 없습니다.
주 팔리 증언에는 비구의 대답이 없다. 한역은 세존의 질문과 비구의 대답이 오가는 구조다. 팔리에서 그 대답이 놓일 자리는 1106.3 끝과 1106.4 사이다. 比丘에는 諸가 없다. 단수·복수를 저본이 밝히지 않아 「비구가」로 옮겼다. 앞 좌표의 諸比丘와 같은 무리를 가리킬 수 있다. 不能은 목적어(貫)가 생략된 꼴이라 「할 수 없습니다」로 옮겼다. 능은 「-ㄹ 수 있다」가 진다. 존칭: 청자인 부처님이 윗사람이라 존댓말이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에서는 佛로 쓴다(앞 좌표는 世尊). 확정역(부처님)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6:1106.3
世尊!所以者何?
세존이시여! 까닭이 무엇입니까?
주 팔리 Taṃ kissa hetu?와 한역 所以者何는 「그 까닭이 무엇인가」라는 같은 물음이다. 그러나 팔리에서는 세존이 스스로 묻고, 한역에서는 비구가 세존께 묻는다. 말하는 이의 배정이 다르다. 한역에만 세존을 부르는 호격이 있다. 그래서 일부로 매겼다. 所以者何는 사전·앵커대로 所以=「까닭」, 者=주제 표지로 풀어 「까닭이 무엇입니까」로 옮겼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이 좌표에서는 世尊을 쓴다. 확정역(세존)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7
大海諸虫,種種形類,或於細不可貫,或極大不可貫。」
큰 바다의 벌레들은 갖가지 모양과 종류여서, 어떤 것은 가늘어서 꿸 수 없고, 어떤 것은 몹시 커서 꿸 수 없습니다.」
주 팔리 증언은 가는 존재가 훨씬 더 많고 꼬챙이에 꿰기 쉽지 않다고 하고(1106.6), 까닭을 몸의 가늚이라 한다(1106.8). 한역은 가는 것과 큰 것을 둘 다 「꿸 수 없다」고 하고, 갖가지 모양과 종류를 앞에 둔다. 팔리 1106.4(굵은 존재는 다하지 않고 남는다)는 같은 자리에서 큰 것을 말하나 논지가 다르다. 그래서 일부로 매겼다. 중간 크기는 한역에 없다. 이문: 대정장 본문은 於다. 宋·元·明본은 極이다(교감주 0113012). 本文(於)을 따랐다. 或於細는 「가늘어서」로 옮겼다. 於가 조사로 흡수되는 읽기다. 極으로 읽으면 或極細와 或極大가 짝을 이룬다. 어느 쪽이 옳은지 한문만으로는 정할 수 없어 `[불확실:저본_이문·자형]`으로 남긴다. 諸虫의 諸는 「-들」에 흡수했다. 虫은 蟲의 이체다. 或…或…는 「어떤 것은…어떤 것은」이다. 可는 「-ㄹ 수 있다」꼴로 옮겼다. 존칭은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6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8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4
佛告比丘:「如是,如是。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주 팔리 증언에는 세존이 비구의 대답을 인정하는 말이 없다. 팔리에서 그 말이 놓일 자리는 1106.8과 1106.9 사이다. 如是如是는 응답 정형구다. 「그러하다, 그러하다」로 옮겼다. 두 如는 비유가 아니라 如是의 일부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다. 比丘에는 諸가 없어 「비구에게」로 옮겼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에서 佛로 쓴다(b20.1은 世尊). 확정역(부처님)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6:1106.8
眾生界無數無量。
중생계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
주 팔리 Evaṃ mahā kho, bhikkhave, apāyo는 「악처가 이처럼 크다」는 뜻이다.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중생의 세계가 수가 없고 한량이 없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것을 말해 엇갈림으로 매겼다. 한역의 眾生界는 팔리의 악처에 해당하는 낱말이 아니다. 한역이 옳고 그름은 판정하지 않는다. 사전 眾生界 ①: 잡아함 2회·2경(이 경 포함), 다른 역자 용례 없음. 그래서 용례 근거는 약하다. 無數는 「셀 수 없고」, 無量은 「헤아릴 수 없다」로 옮겼다. 數는 헤아림(세다), 量은 재다로 달리 읽었다. 확정역은 없다. 眾生界는 정착형 「중생계」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6.36:1106.9
是故,比丘!於四聖諦未無間等者,當勤方便,起增上欲,學無間等。」
그러므로 비구여! 사성제에 아직 틈 없이 고르게 이르지 못한 이는 방편에 힘쓰고, 한층 높은 의욕을 일으켜, 틈 없이 고르게 이름을 배우라.」
주 팔리 1106.11은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라고 하는 것에 노력(yoga)을 기울여야 한다…pe…」다. …pe… 안쪽에 접힌 네 진리의 정형구를 이 파일로는 읽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안쪽 대응은 미대응이다. 1106.10(의견을 갖춘 사람이 ‘이것이 고’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pe…)도 …pe…가 걸려 있다. 한역에 그 문장이 없어 보이나 접힌 구간이라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매겼다. 한역은 팔리처럼 네 진리를 풀어 적지 않고 四聖諦 한 낱말로 접는다. 번역기법일 수 있다. 팔리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이」라는 한정이 없다. 한역에는 勤方便·起增上欲·學無間等 세 가지 권유가 있다. 팔리의 yogo karaṇīyo 하나와 갈린다. 無間等은 정본에 확정역이 없는 교리어다. 「틈 없이 고르게 이르다」는 無(없다)+間(틈)+等(고르다·이르다)을 풀어 옮긴 분석적 직역이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사전 無間 ①: 잡아함 178회·73경, 앞 「諦未 40」·뒤 「等者 46」. 이 자리와 같은 쓰임이 많다. 等의 뜻(고르다·이르다 가운데)은 정도평 님 판정이 필요하다. 사전 方便 ①: 앞 「精勤 66·當勤 42」 뒤 「正念 58·起增 29」. 方便은 정착어 「방편」을 쓰되, 여기서는 수단보다 애씀의 쓰임에 가깝다. 사전 ⑥은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만 보았다. 勤은 「힘쓰다」로 읽었다. 방편의 뜻이 달라질 수 있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으로 남긴다. 增上欲은 「한층 높은 의욕」으로 옮겼다. 사전 增上 ①: 앞 「便起 29·當起 14」·뒤 「欲學 24」. 四聖諦는 정착어 「사성제」(고·집·멸·도의 네 진리)다. 當은 「-라」 어미에 흡수했다(「마땅히」 회피). 是故는 「그러므로」, 於는 「에」, 者는 「이」로 옮겼다. 學은 「배우라」로 옮겼다. 존칭: 붓다의 발화는 평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6:1106.11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6.36:1106.10
佛說是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기를 마치시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의 맺음 정형구(佛說…歡喜奉行)가 팔리 증언에는 없다. 증언 1106.12는 「여섯째」라는 경 차례 표지일 뿐이라 한역 정형구와 대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이문: 대정장 본문은 是다. 宋·元·明본은 此다(교감주 0113013). 本文(是)을 따랐다.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보나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說是經已의 已는 완료로 보아 「마치시자」로 옮겼다. 諸比丘의 諸는 「-들」에 흡수했다. 聞佛所說의 所說은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다. 사전 奉行 ①: 잡아함 863회·820경, 앞 「歡喜 829」. 맺음 정형구라 이 경만의 일이 아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경에서 世尊·佛로 섞어 쓴다. 이 좌표는 佛이다. 확정역(부처님)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6:1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