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56.31
시사빠 숲 경
Sīsapāvanasuttaṃ
교차 검사
1. Sīsapāvanasuttaṃ
1. 시사빠 숲 경
1101
한때 세존께서 꼬삼비의 시사빠 숲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시사빠 잎 몇 장을 손에 쥐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손에 쥔 이 몇 장의 잎과 저 위 숲의 잎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은가?"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mbiyaṃ viharati sīsapāvane.
한때 세존께서 꼬삼비의 시사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parittāni sīsapāpaṇṇāni pāṇinā gahet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시사빠 잎 몇 장을 손에 쥐고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katamaṃ nu kho bahutaraṃ –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것이 더 많은가 —
yāni vā mayā parittāni sīsapāpaṇṇāni pāṇinā gahitāni yadidaṃ upari sīsapāvane’’ti?
내가 손에 쥔 이 몇 장의 시사빠 잎들인가, 아니면 저 위 시사빠 숲에 있는 것들인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쥐신 시사빠 잎은 몇 장뿐입니다. 저 위 시사빠 숲의 잎이 훨씬 많습니다."
‘‘Appamattakāni, bhante, bhagavatā parittāni sīsapāpaṇṇāni pāṇinā gahitān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쥐신 몇 장의 시사빠 잎들은 아주 적습니다;
atha kho etāneva bahutarāni yadidaṃ upari sīsapāvane’’ti.
저 위 시사빠 숲에 있는 것들이야말로 훨씬 더 많습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똑같다. 내가 곧바로 알고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비구들이여, 나는 왜 그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정한 삶의 바탕도 되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이끌지 않는다.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Evameva kho, bhikkhave, etadeva bahutaraṃ yaṃ vo mayā abhiññāya anakkhāt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내가 곧바로 알고서도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 바로 그것이 훨씬 더 많다.
Kasmā cetaṃ, bhikkhave, mayā anakkhāt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Na hetaṃ, bhikkhave, atthasaṃhitaṃ nādibrahmacariyakaṃ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그것은 이익을 주지 않고, 청정한 삶의 근본이 아니며,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가라앉음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바른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는다;
tasmā taṃ mayā anakkhātaṃ’’.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말했는가?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말했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도 말했다."
‘‘Kiñca, bhikkhave, mayā akkhāt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말했는가?
‘Idaṃ dukkha’nti, bhikkhave, mayā akkhātaṃ, ‘ayaṃ dukkhasamudayo’ti mayā akkhātaṃ, ‘ayaṃ dukkhanirodho’ti mayā akkhāta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mayā akkhātaṃ’’.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왜 그것을 말했는가? 그것은 이익이 되고 청정한 삶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에서 벗어남으로, 소멸로 이끈다. 고요함으로, 곧바른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힘써 닦아야 한다.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힘써 닦아야 한다."
‘‘Kasmā cetaṃ, bhikkhave, mayā akkhāt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나는 그것을 말했는가?
Etañhi, bhikkhave, atthasaṃhitaṃ etaṃ ādibrahmacariyakaṃ etaṃ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그것은 이익을 주고, 청정한 삶의 근본이며,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가라앉음으로, 곧바른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tasmā taṃ mayā akkhātaṃ.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말했다.
‘‘Tasmātiha, bhikkhave, ‘idaṃ dukkha’nti yogo karaṇīyo…pe…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ogo karaṇīyo’’ti.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31:1101.12에서 되살렸습니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