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九八)
(398)
주 한문은 경 번호 표지(三九八)만 선다. 팔리는 경 이름(Indakhīlasuttaṃ)과 번호(1109)를 따로 세운다 — 한역에는 이름이 없고, 이름 「因陀羅柱」는 교감주(orig·equivalent의 「S. 56. 39. Indakhīla.(因陀羅柱)」)에만 있다. 교감주는 편자 보충이며 저본 본문이 아니다. 두 번호는 서로 다른 번호 체계의 값이라 표지의 기능은 같고 값은 다르다(partial). 팔리 대응 후보 sn56.39는 합의 등급 multi_source(莊春江 + 다카쿠스)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이 경에 제공되지 않았다 — 모든 좌표의 SF 항은 「없음 확인」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0.3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1109.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 = 이와 같이(如是) + 나는(我) 들었다(聞). 如는 여기서 비유·가정의 허사가 아니라 지시 표현 如是의 일부다. 한역 서두 정형구다(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1332경). 제공된 팔리 원문(sn56.39)에는 서두가 서지 않는다 — 이것은 제공된 팔리 원문 범위 안의 없음이며, 인접 경에서 서두를 이어받는지는 읽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0.2
一時,佛住波羅㮈國仙人住處鹿野苑中。
한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의 선인이 머무는 곳, 사슴 들판 동산 안에 머무르셨다.
주 一時 = 한때. 佛 = 부처님([구속] 확정술어). 住 = 머무르다(존대 -시-는 내레이션 평서 안의 주체 높임). 波羅㮈國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 「바라내」로 적는다(㮈 = 내). 전거 sa396 「波羅㮈國仙人住處鹿野苑」 팔리 후보 `Bārāṇasī, Isipatana Migadāya`(범어 후보 칸은 비어 있다) — 인용만 한다. 한자대역 표의 `波羅`(Sāla) 적중은 波羅㮈 한 덩어리 안의 오적중으로 보인다. 仙人住處鹿野苑은 의역으로 처리했다(한자대역 표 `處鹿野` 의역): 仙人住處 = 선인이 머무는 곳, 鹿野苑 = 사슴 들판 동산. 苑은 짐승을 기르는 동산이다(음의 苑中, 慧琳 0608c24 〔三聚懺悔〕 「養禽獸曰苑」). 鹿野는 음의 慧琳 0738c01 〔善見律〕에 사슴왕 유래가 실려 있다 — 인용만 한다. 鹿野苑은 한국 불교계 정착형 「녹야원」이 있으나 한자대역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므로 뜻으로 옮겼고, 정착형을 택할지는 정도평 몫이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팔리 쪽 지명 Bārāṇasī·Isipatana는 비고에만 둔다. 제공된 팔리 원문 sn56.39에는 이 행이 서지 않는다(제공 범위 안의 없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0.3
爾時,世尊告諸比丘:「如小綿丸、小劫貝華丸,置四衢道頭,四方風吹,則隨風去向於一方。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작은 솜 덩이, 작은 겁패꽃 덩이를 네거리 길머리에 놓아 두고 사방의 바람이 불면, 바람을 따라 가서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주 爾時 = 그때, 世尊 = 세존([구속]), 告 = 이르다. 諸는 「비구들」의 복수로 흡수했다(앵커: 남발 주의). 如…置…,…則… = 비유절 하나다 — 如는 비유 어미 「-ㄴ 것과 같다」로, 則은 「-면」으로 흡수했다. 於一方의 於는 조사 「-으로」가 졌다. 小綿丸·小劫貝華丸: 劫貝는 음역이다(음의 慧琳 0699a24 〔四分律〕 「或云劫波育或言劫婆娑正言迦波羅 此譯云樹花名」) — 한자 독음 「겁패」. 사전 표제 小劫(시간 단위)은 小 + 劫貝의 오분절이므로 따르지 않았다. 丸은 「덩이」로 옮겼다. 四衢道頭 = 네거리 길머리(음의 慧琳 0438a19·0340a18·0317b17이 爾雅 「四達謂之衢」를 인용한다). 갈림: ① 구조·배열 — 팔리는 경 첫머리에 사문·바라문이 남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진술(1109.1~1109.2)을 먼저 세우고 그 뒤에 비유(1109.3~1109.4)를 두는데, 한문은 비유를 앞세우고 같은 진술을 적용부(0107b02.1)에서 한 번만 선다. 1109.1은 …pe…로 접혀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 ② 개별 어휘 — 팔리는 「평평한 땅」에 놓이고 동서남북 바람이 서로 반대편으로 밀어낸다고 쓰는데, 한문은 「네거리 길머리」에 놓이고 바람을 따라 「한 방향」으로 간다. ③ 문장 유무 — 팔리의 「왜냐하면?」과 「솜 덩이가 가볍기 때문」(1109.5~1109.6)이 한문에는 없다. ④ 한자 흔들림 — 같은 한 분을 0.3에서는 佛, 여기서는 世尊으로 쓴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있으므로 부처님/세존으로 고정했다. 따옴표 「는 한문대로 열고 이 좌표에서 닫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1109.3~1109.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5~1109.6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6.39:1109.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2
如是,若沙門、婆羅門於苦聖諦不如實知,於苦集聖諦、於苦滅聖諦、苦滅道跡聖諦不如實知,當知彼沙門、婆羅門常觀他面,常隨他說,以不如實知故,聞彼所說,趣說而受,當知此人不宿修習智慧故。
이와 같이, 사문, 바라문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이 모이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이 사라지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의 자취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 사문, 바라문이 항상 다른 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항상 다른 이의 말을 따르는 줄 알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을 듣고 말에 나아가 받아들이니, 이 사람은 지혜를 예전부터 닦아 익히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라.
주 若은 「-면」이 졌고(앵커), 當知는 어미 「알라」가 졌다(「마땅히」 불사용). 於는 조사 「-을/-에」로 흡수했다 — 둘째 於(苦集聖諦 앞)는 있고 苦滅道跡聖諦 앞에는 없지만 나열은 쉼표로 그대로 두었다. 如是 = 이와 같이(앞 비유와 짝을 지어 적용부를 연다). 他는 自와 짝이 아니어서 「남」이 아니라 「다른 이」로 세웠다. 所說은 관형절 「말한 것」으로 풀었다. 而는 흡수했다. 沙門: 정착어(음의 慧琳 0477b19 「勤勞」·0439c20 「止息」 인용). 바라문은 [구속] 확정역이다. 苦聖諦 =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苦集聖諦 = 괴로움이 모이는 성스러운 진리, 苦滅聖諦 = 괴로움이 사라지는 성스러운 진리, 苦滅道跡聖諦 =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의 자취의 성스러운 진리. 集은 정형구 행(samudaya 「일어남」)이 낱말 확정역이 아니고 모임·쌓임·일어남 후보가 둘 이상이라 한자 뜻대로 「모이는」을 택했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道跡의 跡은 발자취다(음의 慧琳 0783b04 「足跡也」 인용). 如實知는 「있는 그대로 알다」로 일관했다(사전 如實知 ① 잡아함 601회·108경). 趣說而受: 趣는 「나아가다」와 「서둘러 ~하다」가 갈리고, 受는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vedanā(느낌)가 아니라 동사 「받아들이다」로 읽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不宿修習의 宿은 「예전부터」로 읽었다 — 「전세의」일 수도 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갈림: ① 구조·배열 — 이 진술은 팔리에서 비유 앞(1109.1~1109.2)과 뒤(1109.7~1109.8)에 두 번 서고, 한문은 비유 뒤 이 자리에 한 번만 선다. 한문 적용부를 뒤쪽 1109.7~1109.8에 맞췄다. 팔리는 …pe…로 접었고 한문은 넷을 모두 쓴다 —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苦集·苦滅·道跡 세 항의 대응은 unaligned다. ② 개별 어휘 — 팔리의 「이 분은 틀림없이 알고 보는 분이다」라는 속생각(1109.8)은 한문에 없고, 한문의 「聞彼所說,趣說而受」도 팔리에 없다. 이유절도 팔리는 「네 성스러운 진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 한문은 「지혜를 예전부터 닦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divergent). ③ 문장 유무 — 한문에 「항상 다른 이의 말을 따른다」가 더 있다. 팔리의 「왜냐하면?」(1109.9)은 한문에 서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1109.7~1109.8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6.39:1109.9~1109.10
「譬如因陀羅柱,銅鐵作之,於深入地中,四方猛風不能令動。
「비유하면 인다라 기둥을 구리와 쇠로 만들어 땅속 깊이 들어가 있어서, 사방의 사나운 바람이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주 因陀羅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인다라」로 적는다(한자대역 표에는 없어 직접 판별했다 — 한자가 소리를 옮겼고 음의 慧琳 0403a15 「帝釋異名」·0437a24 「此云帝網」은 뜻풀이일 뿐이다). 전거 sa396는 범어 후보 근대 `Iṁdra`만 싣고 팔리 후보 칸은 비어 있다. 팔리 본문은 indakhīla(1109.13·1109.17)로 쓴다 — 어두 형태가 팔리 inda-와 범어 Indra-로 갈리는 자리라 음역계통이다. 판정하지 않는다. 譬如 = 비유하면(如는 비유 어미로 흡수), 銅鐵作之 = 구리와 쇠로 만들어(之는 기둥을 받는 대명사라 비워 두었다), 能 = 「-ㄹ 수 있다」, 令 = 「-게 하다」. 於深入地中: 於가 동사구 深入地中 앞에 서서 처소 조사로 풀리지 않는다. 땅속 깊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읽어 접속적으로 흡수했다 [불확실:격·태·구문]. 사전 深入 ③ 용례 sa497/0131b22.1 「如因陀銅鐵及銅柱深入地中」 참조. 갈림: ① 개별 어휘 — 팔리는 「쇠 말뚝이나 인다 말뚝」을 말하고 한문은 「인다라 기둥」을 구리와 쇠로 만든다고 쓴다. 팔리의 바람은 「사나운 바람비(bhusā vātavuṭṭhi)」이고 한문은 「사나운 바람」이다. ② 구조·배열 — 팔리는 네 방향을 따로 열거하며 …pe…로 접고, 세 동사(흔들리지·떨리지·움직이지 않는다)를 쓴다. 한문은 四方 한 번과 不能令動 하나로 줄였다. ③ 문장 유무 — 팔리의 「왜냐하면?」과 「깊이 박히고 잘 묻혔기 때문」(1109.16~1109.17)이 한문에 없다. 팔리의 비유 앞 진술(1109.11~1109.12)은 앞 좌표와 같은 짜임이며, 1109.11은 …pe…로 접혀 안쪽을 읽지 못해 unaligned다. 따옴표 「는 새 단락의 시작으로 한문대로 연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1109.13~1109.1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16~1109.17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6.39:1109.1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12
如是,沙門、婆羅門於苦聖諦如實知,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跡聖諦如實知者,當知是沙門、婆羅門不視他面,不隨他語。
이와 같이, 사문, 바라문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괴로움이 모이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이 사라지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의 자취의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아는 이는, 이 사문, 바라문이 다른 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 다른 이의 말을 따르지 않음을 알라.
주 者는 「~한 이」로 풀어 주제어로 세웠다(앵커). 當知는 「알라」, 是는 「이」, 如實知는 앞 좌표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알다」다. 앞 좌표(0107b02.1)와 달리 若이 없다. 사문(정착어, 앞 좌표 비고 참조)·바라문([구속])·네 성스러운 진리의 처리는 앞 좌표와 같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集 「모이는」, 앞 좌표와 같은 까닭). 갈림: ① 문장 유무 — 한문의 「不隨他語」는 팔리에 없다. 팔리의 속생각(1109.19)은 한문에 없다. 팔리는 …pe…로 접었고 한문은 넷을 모두 쓴다 — 접힌 안쪽은 unaligned다. ② 한자 흔들림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觀(0107b02.1 「觀他面」) ↔ 視(여기 「視他面」), 說(0107b02.1 「隨他說」) ↔ 語(여기 「隨他語」). 확정역이 없어 觀은 「바라보다」, 視는 「보다」로 가르고, 說·語는 둘 다 「말」로 옮겼다. 저본의 한자는 데이터에 남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1109.18~1109.19
是沙門、婆羅門智慧堅固,本隨習故,不隨他語。
이 사문, 바라문은 지혜가 굳고 단단하며, 본래 따라 익혔기 때문에 다른 이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주 堅固는 한자대역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다 — 뜻으로 「굳고 단단하다」로 옮겼다(「견고」로 음독하지 않는다). 本隨習故: 本을 「본래」로, 隨習을 「따라 익히다」로 읽었다. 本隨/習(본래 따르고 익히다)과 本/隨習으로 끊을 수 있고, 사전 習 ③ 용례 sa1001/0263c20.1 「以本習故」의 「본래의 익힘」과 같은 뜻일 수도 있어 끊는 자리가 하나로 서지 않는다. 앞 좌표의 不宿修習(예전부터 닦아 익히지 않음)과 짝이 되는 자리다 [불확실:구두·분절]. 갈림: ① 개별 어휘 — 같은 자리(이유절)에서 팔리는 「네 성스러운 진리를 잘 보았기 때문」(sudiṭṭhattā)이라 말하고, 한문은 「지혜가 굳고 단단하다」와 「본래 따라 익혔다」를 댄다. 팔리의 「왜냐하면?」(1109.20)은 한문에 없다. ② 한자 흔들림 — 앞 좌표의 隨他說과 여기의 隨他語는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다(說/語, 둘 다 「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2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6.39:1109.21
是故,比丘!於四聖諦當勤方便,起增上欲,精進修學。」
그러므로, 비구여! 네 성스러운 진리에 부지런히 방편에 힘쓰라. 더욱 높은 의욕을 일으키고, 정진하여 닦고 배우라.」
주 是故 = 그러므로, 比丘는 [구속] 확정역 「비구」, 於는 조사로 흡수, 當은 어미 「-라」가 졌다. 한문의 比丘는 단수 호격(「비구여」)이고 팔리 bhikkhave는 복수다 — 한문대로 단수로 옮겼다. 四聖諦 = 네 성스러운 진리(정착형 「사성제」는 쓰지 않았다). 勤方便: 勤은 「부지런히/힘쓰다」, 方便은 「수단」과 「노력」 두 갈래가 있다(전거 `方便` 범어 근대 `Upāya`) — 여기서는 한국 불교계 정착어 「방편」을 그대로 쓰되, 「방편에 힘쓰라」는 수행에 힘씀의 뜻으로 읽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增上欲: 增上 = 더욱 높은(사전 增上 ⑥ 「總言勢力之強」은 후대 쪽이라 가볍게 보았다), 欲 = 의욕으로 옮겼다. 확정역이 없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精進은 한국 불교계 정착어 그대로, 修學은 「닦고 배우라」(修 + 學)다. 갈림: 개별 어휘·문장 유무 — 팔리 1109.24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같은 항목 하나하나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yogo karaṇīyo)고 …pe…로 접어 쓰고, 한문은 「네 성스러운 진리에」 하나로 묶으며 「起增上欲,精進修學」을 더한다. 팔리 1109.22 「어느 네 가지인가?」는 한문에 서지 않고, 1109.23은 …pe…로 접혀 안쪽을 읽지 못해 unaligned다. 저본 이문: 이문 app 0107008이 「修學」의 修를 宋·元·明·三 본에 없는 형으로 싣는다(교감주 「〔修〕-【三】」, 「修【大】,〔-〕【宋】【元】【明】」) — 본문은 大正 저본(修 있음)을 따랐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따옴표 」는 한문대로 이 좌표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39:1109.2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22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56.39:1109.23
佛說是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니,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說是經已 =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니(已는 완료). 諸는 「비구들」로 흡수했다. 所說은 관형절 「말씀하신 것」, 歡喜奉行은 정형구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다(사전 歡喜 ① 1340회, 奉行 ① 863회). 갈림: ① 문장 유무 — 팔리에는 이 종결 정형구가 없고 1109.25에는 순서 표지 「아홉째」(Navamaṃ)만 선다. ② 한자 흔들림 — 같은 분을 여기서는 佛, 0107a29.1에서는 世尊으로 쓴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대로 부처님/세존으로 고정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39:11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