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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Ā 382

SĀ 382

교차 검사교차 검사 9현대역 준비 중

(三八四)

(384)

주 한문 0.1은 대정장 일련번호 「三八四」뿐이고 제목 문자열이 없다. 팔리는 0.3에 제목 「Āsavakkhayasuttaṃ」(번뇌 다함의 경)이 있어 제목 유무가 갈린다. 한역 쪽에 제목이 없음을 확인했으므로 absent이다. 교감주(orig·equivalent) 「S. 56. 25. Āsavakkhaya.」는 대정장 편자가 단 팔리 대응 지시이지 한문 본문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이 조각에 주어지지 않아 보지 못했다(unaligned). 전거 파일의 「三八四 ↔ tricatu」는 숫자 한자만 겹친 것으로 보아 인용하지 않는다. 전거 머리말의 「大正 382」는 저본의 「三八四」·다른 파일의 「大正 384」와 어긋난다 — 저본이 이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25:0.3

AG:sa382/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한역의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다(정형구 표: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1332회, 이 경 1회. 사전 如是我聞 ① 발화 첫머리 0/1333). 제공된 팔리 sn56.25 좌표(0.3~1095.6)에는 대응하는 시작 정형구가 없어, 그 자리가 놓일 1095.1 앞을 짚어 absent로 적었다. 다만 같은 품의 앞머리를 상속하는 경일 가능성은 이 입력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如是」는 「이와 같이」, 「我聞」은 「나는 들었다」로 옮겼다. 배선 앵커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지시어 「如是」의 일부로 읽어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25:1095.1

AG:sa382/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波羅㮈仙人住處鹿野苑中。

한때 부처님께서 바라내의 선인이 머무는 곳 녹야원 가운데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1) 제공된 팔리 구간에는 장소 서사가 없다(0.2와 같은 단서 — 상속 여부는 이 입력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2) 이문: 저본 본문은 「波羅㮈仙人住處」이고 【宋】【元】【明】은 「波羅㮈國仙人住處」(國이 더 있음)이다. 본문은 저본대로 「國」 없이 옮겼다. 國이 있으면 「바라내국의」로 읽힌다. 사전 波羅 ① 뒤 「㮈國 38 · 㮈城 11 · 㮈仙 7」 — 이 역자에게 國 없는 「㮈仙」 꼴도 7회 있다. (3) 波羅㮈: 한자가 소리를 옮긴 음역으로 판별했다(표에 없는 이름). 사전 波羅 ② [AI 정렬] sa260/0.3 ↔ PN:sn22.90/90.1 「bārāṇasiyaṃ viharanti isipatane…」에서 팔리 bārāṇasī와 짝지어진 용례가 보인다. 한자 독음 「바라내」이며, 㮈를 柰의 이체로 보고 「내」로 읽었다(이 독음 판단은 입력 자료에 근거가 없어 로 남긴다). 한국 불교계 정착형 「바라나시」는 쓰지 않았다. 3분할 표와 전거 파일의 「波羅 ↔ Sāla(다른 부 EA)」는 이 경에서 波羅㮈의 앞 두 글자라 가리키는 대상이 다른 동형이의로 보고 인용하지 않는다. (4) 仙人住處: 의역으로 보고 「선인이 머무는 곳」으로 옮겼다(3분할 표 處鹿野 ↔ Isipatana, 사전 仙人 ① 뒤 「住處 50」). (5) 鹿野苑: 정착어 「녹야원」을 그대로 쓴다. 뜻은 사슴(鹿)이 사는 들(野)의 동산(苑)이다. 음의 鹿野 一切經音義(慧琳) 0738c01 〔善見律〕은 사슴 왕이 사슴들을 거느린 숲에서 사슴들의 목숨을 면하게 한 일에서 「鹿野」라는 이름이 일어났다고 풀고, 苑 一切經音義(慧琳) 0608c24 〔三聚懺悔〕는 「養禽獸曰苑」(蒼頡篇)이라 한다. 정형구 행의 「鹿野苑」(한국어 「녹야원」)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확정역_부재를 남긴다. 仙人住處와 鹿野苑이 한 곳인지 두 항인지는 저본이 가르지 않아 병치로 두었다. (6) 佛은 [구속] 「부처님」, 一時는 「한때」(사전 一時 ① 뒤 佛住 1265), 住는 「머무셨다」. 한역이 같은 대상을 여기서는 佛로, 다음 좌표에서는 世尊으로 적는다 — 한자 흔들림이며 한국어는 각 한자의 확정역(부처님/세존)을 따른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25:1095.1

AG:sa382/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有四聖諦。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주 팔리 1095.1은 곧바로 「bhikkhave」(비구들이여)로 발화를 시작하므로 호격만 겹치고 「爾時世尊告諸比丘」라는 서사 틀은 없다. 「有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라는 선언문도 팔리 이 경에는 없고, 1095.3이 네 가지를 「idaṃ dukkhaṃ…」 꼴로 늘어놓을 뿐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世尊은 [구속] 「세존」, 比丘는 [구속] 「비구」, 諸比丘의 諸는 복수로 읽어 「비구들」의 「들」로 흡수했다(「모든」을 세우지 않음). 有는 존재 서술로 「~이 있다」 주어화(「있어」 훈독투 회피). 告는 「이르셨다」로 옮겨 이 경 끝의 說(설하시다)과 글자를 구별했다. 四는 「네 가지」, 聖諦는 「성스러운 진리」로 옮겼으며 확정역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남는다. 사전 四聖諦 ① 잡아함 105회·67경(팔리 AI 정렬 없음). 음역계통: 比丘 ← bhikkhu(팔리) / Bhikṣu(대정장 편자 근대 비정) — 전거를 인용할 뿐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대상에 佛(0.3·마지막 좌표)과 世尊(여기)을 번갈아 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25:1095.1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25:1095.3

AG:sa382/0104c01.1 · 교차 검사

何等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둘 다 질문이 이어지는 같은 자리이나 묻는 내용이 다르다. 한역은 「네 가지가 무엇인가」(성스러운 진리의 이름을 묻는다)이고, 팔리 1095.2는 「kiñca, bhikkhave, jānato passato āsavānaṃ khayo hoti?」(무엇을 알고 보는 이에게 번뇌 다함이 있는가)이다. 何等為四의 為는 「~이 되다」 계사로 보아 「-인가」에 흡수했다(배선 앵커의 為…所 피동형이 아님). 等은 何等(무엇)의 일부로 읽었다(사전 等為 ① 앞 「何 532」). 음의 等為 一切經音義(慧琳) 0313c22는 자형 풀이뿐이라 뜻 판정에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56.25:1095.2

AG:sa382/0104c02.1 · 교차 검사

謂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跡聖諦。

이른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 소멸의 길의 자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주 謂는 「이른바」로 옮겼다. 한역의 네 항(苦·苦集·苦滅·苦滅道跡 + 聖諦)은 이름을 명사로 세우고, 팔리 1095.3은 「idaṃ dukkhaṃ / ayaṃ dukkhasamudayo / ayaṃ dukkhanirodho /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라는 지시어 꼴이라 구조가 다르며 「성스러운 진리」에 해당하는 말이 이 경 팔리에 없다. 苦集 ↔ dukkhasamudaya: 集은 정형구 행(samudaya)의 한국어 「일어남」을 따랐으나 이는 낱말 확정역이 아니고 글자 뜻은 「모음·쌓임」이라 확정역_부재를 남긴다. 苦滅 ↔ dukkhanirodha: 滅은 「소멸」로 옮겼다(술어·낱말_선택). 苦滅道跡 ↔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한역에는 gāminī(이끄는)에 해당하는 말이 없고 道跡이 paṭipadā 자리에 선다. 道跡은 道(길)+跡(자취)로 보아 「길의 자취」로 옮겼다. 음의 道跡 一切經音義(慧琳) 0783b04 〔鞞婆沙阿毘曇論〕은 「又作蹟迹二形同子亦反足跡也」(跡은 蹟·迹과 같은 글자, 발자취)로 푼다. 「苦聖諦」류는 「~의 성스러운 진리」로 옮겼으나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동격)로 읽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사전 苦聖諦·苦集·聖諦·滅道 ①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25:1095.3

AG:sa382/0104c02.2 · 교차 검사

若比丘於苦聖諦已知、已解,於苦集聖諦已知、已斷,於苦滅聖諦已知、已證,於苦滅道跡聖諦已知、已修。

비구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이해하며, 괴로움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끊으며,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증득하며, 괴로움 소멸의 길의 자취의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닦으면,

주 若는 연결어미 「-면」이 지므로(앵커) 부사 「만약」을 세우지 않고 끝의 「닦으면」에 실었다. 이 조건절의 귀결은 다음 좌표 「如是比丘名阿羅漢」이다. 於×4는 목적격 조사 「을/를」로 흡수했다. 已는 완료의 「이미」로 옮기고 과거 어미를 따로 겹치지 않았다(한 요소를 두 번 옮기지 않기 위함). 팔리 1095.3은 「jānato passato」(알고 보는 이)와 「āsavānaṃ khayo hoti」(번뇌 다함이 있다)인데, 한역에는 見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고 解·斷·證·修에 해당하는 동사도 팔리 이 경에 없다. 知만 겹친다. 解는 「이해하며」, 斷은 「끊으며」, 證은 「증득하며」, 修는 「닦으면」으로 옮겼다. 解(풀다/이해)와 證(증득)은 확정역이 없어 술어·낱말_선택을 남기고, 사전 證 ⑥(丁福保)의 후대 풀이는 가볍게 보아 쓰지 않았다. 苦集·苦滅·道跡의 옮김은 0104c02.2와 같은 사안이다(앞자리와_동일). 比丘는 [구속] 「비구」, 음역계통은 0104c01.1과 같다(bhikkhu / Bhikṣu 근대 비정, 판정하지 않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25:1095.3

AG:sa382/0104c03.1 · 교차 검사

如是比丘名阿羅漢,諸漏已盡,所作已作,離諸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正智善解脫。」

이와 같은 비구는 아라한이라 이름하며,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할 일을 이미 하고, 모든 무거운 짐을 여의고, 자기 이익을 이르러 얻고, 모든 존재의 매듭을 다하고, 바른 지혜로 잘 해탈한다.」

주 팔리 1095.4 「evaṃ kho, bhikkhave, jānato evaṃ passato āsavānaṃ khayo hoti」(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이에게 번뇌 다함이 있다)와 「諸漏已盡」(전거: 漏已盡 ↔ Āsavānaṃkhayā)만 겹친다. 「名阿羅漢」과 아라한 정형구(所作已作 이하)는 팔리 이 경에 없고, 팔리 1095.5(그러므로 정진해야 한다. 가운데는 pe로 접힘)에 걸리는 한역 좌표도 없다. 如是比丘名阿羅漢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지시어 「如是」(이와 같은)로 읽었다. 阿羅漢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 「아라한」(3분할 표·정착어)이고, 음역계통: 阿羅漢 ← Arahatta·Arahaṁ(팔리) / Arhat(Arhan)(대정장 편자 근대 비정) — 전거(다른 부 DA/EA의 대역)를 인용할 뿐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阿羅漢 一切經音義(慧琳) 0441b10·0463c22는 응공·살적·불생 등의 뜻풀이를 단다. 諸漏已盡: 漏는 정형구 행(āsava)의 한국어 「번뇌」를 따랐으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확정역_부재를 남기고, 글자 뜻은 「새는 것」이다. 諸는 「모든」. 所作已作: 所는 「~하는 바」를 쓰지 않고 관형절 「할 일」로 풀었다(사전 所作 ① 뒤 「已作 156」). 離諸重擔: 離는 「여의고」, 重擔은 「무거운 짐」(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313c21: 擔은 짊어짐). 逮得己利: 逮得은 「이르러 얻고」(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327c07·0332c02: 逮는 及(이르다), 得은 獲), 己利는 「자기 이익」(사전 己利 ① 앞 「逮得 16」). 盡諸有結: 有結은 의역(3분할 표)으로 보아 有를 「존재」, 結을 「매듭」으로 옮겼다. 有는 존재 서술이며 「~이 있어」가 아니다. 사전 諸有 ① 뒤 「結正 21」. 正智善解脫: 사전 正智 ① 뒤 「心善 15」에 견주면 이 아함의 흔한 꼴은 「正智心善解脫」이나 이 경 저본에는 心이 없으며 저본대로 옮겼다. 比丘 확정 「비구」, 음역계통은 0104c01.1과 같다. 有·結·逮得·解의 한국어는 확정역이 없는 선택이다(술어·낱말_선택).

니까야 대응 일부 SN 56.25:1095.4

AG:sa382/0104c05.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1095.6은 「Pañcamaṃ」(다섯째)이라는 순번 표지라 닫음 서사가 아니다. 이 경 팔리에는 한역의 닫음 정형구(說經已·歡喜奉行)에 해당하는 말이 없으므로 absent로 적었다(제공된 구간 안에서의 판정). 佛說此經已의 已는 「마치다」의 완료로 보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로 옮겼다. 諸比丘는 「비구들」, 聞佛所說의 所는 「~하는 바」 대신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로 옮겼다(사전 歡喜 ① 앞 「所說 1151」·뒤 「奉行 829」, 음의 歡喜 一切經音義(慧琳) 0753a01: 悅). 佛은 [구속] 「부처님」, 比丘는 [구속] 「비구」.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대상에 世尊(0104c01.1)과 佛(여기)을 번갈아 쓴다. 음역계통: 比丘 ← bhikkhu / Bhikṣu(근대 비정),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6.25:1095.6

AG:sa382/0104c08.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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