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九四)
(294)
주 경 번호만 선 제목 좌표다. 다카쿠스 교감주가 이 경을 SN 12.19(Bālena Paṇḍito)에 걸어 두었다. 한문에는 경 이름이 없고 팔리 19.0은 팔리 쪽 경 번호이므로, 두 번호는 체계가 다르다. 산스크리트 대응은 좌표 결속에서 없음(UNALIGNED)으로 주어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제공된 팔리 19.1은 「Sāvatthiyaṃ viharati…pe…」로 시작하며 개경 정형구가 글자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가 `…pe…`로 접혀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로 둔다. 산스크리트 대응은 UNALIGNED.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2.19:19.1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르셨다.
주 팔리 19.1은 머무는 곳을 사왓티(Sāvatthi)로 적고 한역은 왕사성 가란타 죽원으로 적어,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곳을 말한다. 팔리 쪽은 `…pe…` 앞의 첫머리만 읽혔다. 정착어 「왕사성」은 `王舍`(왕의 집)을 성 이름으로 삼은 이름이다(팔리형 Rājagaha는 비고에만). `迦蘭陀`는 음역으로 보아 독음 「가란타」로 적었고, `竹園`은 뜻으로 「대나무 동산」이라 옮겼다. 전거 대장은 `王舍城迦蘭陀竹園`에 팔리 후보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를 건다. 음의(慧琳, 出生菩提心經 0601c04)는 迦蘭䭾를 새 이름이자 竹林(큰 대나무 숲)과 이어 풀이한다. 한 경 안에서 「가란타 대나무 동산」으로 통일한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2.19:19.1
爾時,世尊告諸比丘:「愚癡無聞凡夫無明覆、愛緣繫,得此識身。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들음이 없는 범부는 무명에 덮이고 갈애의 연에 묶여 이 식의 몸을 얻는다.
주 (1) 「爾時,世尊告諸比丘」는 팔리 19.1의 `…pe…`로 접힌 안쪽에 걸리는 자리라 그 부분의 대응은 미대응이다. 뒷부분은 팔리 19.1 「avijjānīvaraṇassa, bhikkhave, bālassa taṇhāya sampayuttassa evamayaṃ kāyo samudāgato」에 걸린다. 팔리는 속격으로 「…한 어리석은 이의 이 몸이 생겨났다」고 서술하는데 한역은 범부를 주어로 「이 식신을 얻는다」고 서술한다(번역기법 가능성,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에는 `無聞`·`凡夫`에 해당하는 낱말이 보이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12.1은 pṛthagjanasya(범부)가 실판독이고, 「들음 없는」에 해당하는 자리는 투입물에 `bāl[a]syā[śrutava]taḥ`로 적혀 있어 핵심 글자가 대괄호(편자 보충)라 근거로 쓰지 않는다. (2) `愚癡無聞凡夫`는 「어리석고 들음이 없는 범부」로 옮겼다. (3) `無明`은 3분할 표에서 혼합형으로 분류되어 신고한다. 확정 술어가 없어 정착형 「무명」을 쓰고 이 경 안에서 고정한다. (4) `愛`는 확정역이 없어 「갈애」로 옮겼다(사전 愛緣 ⑥ 후대 풀이는 「恩愛之緣」이나 아함 문맥과 어긋나 버린다). `愛緣繫`를 「갈애의 연에 묶여」로 읽었으나 `愛緣`이 한 낱말인지(사전 愛緣 ① 이 역자 쓰임 19회) 「애를 연으로 하여 묶임」인지는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팔리 `taṇhāya sampayuttassa`는 「갈애와 결합된」이다. (5) `識身`은 사전 識身 ⑥에 「猶言身心」이라 하나 후대 풀이라 따르지 않고 「식의 몸」으로 옮겼다. 산스크리트 savijñānakaḥ는 kāya를 꾸며 「식을 지닌 몸」으로 읽힌다. 팔리는 kāyo 하나다. (6) `得`은 획득으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1
內有此識身,外有名色,此二因緣生觸。
안에는 이 식의 몸이 있고 밖에는 이름과 형색이 있으니, 이 둘을 인연으로 접촉이 생긴다.
주 팔리 19.2는 한 문장 안에 「kāyo bahiddhā ca nāmarūpaṃ … dvayaṃ paṭicca phasso saḷevāyatanāni, yehi phuṭṭho …」를 잇는데, 한역은 `生觸`에서 끊고 여섯 입처를 다음 좌표(0083c26.1)로 넘긴다. 팔리는 `內`·`識`이 글자로 없고 kāya와 bahiddhā(밖)만 둔다. 산스크리트 12.1은 savijñānakaḥ kāyo bahirdhā ca nāmarūpam | evaṃ dvayam으로 한역의 `識身`·`外有名色`·`此二`와 맞는다. `名色`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해 「이름과 형색」으로 옮겼다(전거 대장: Nāma-rūpa, ⚠다른 부(DA/MA)의 대역). `觸`은 정형구 행 낱말로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접촉」이라 옮겼다. `有`는 존재 서술 그대로 「있고」로 옮겼다. `因緣`은 「인연으로」로 두었다. 같은 문장의 앞 좌표 `二因緣`이 아래 0083c29.1에서는 `二緣`이다(한자 흔들림은 0083c29.1에서 신고).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2
此六觸入所觸,愚癡無聞凡夫苦樂受覺,因起種種。
이 여섯 접촉이 들어가는 곳에 닿는 어리석고 들음이 없는 범부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아 느끼고, 그로 말미암아 갖가지가 일어난다.
주 팔리 19.2 후반 「saḷevāyatanāni, yehi phuṭṭho bālo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ayati etesaṃ vā aññatarena」에 걸린다. 팔리는 「이 여섯 입처 가운데 어느 하나에 닿아」로 끝나고, 한역은 `因起種種`으로 끝난다. 산스크리트 12.2는 투입물에 「ṣaḍ imā[ni sparśāyatan]āni yaiḥ spṛṣṭaḥ spṛṣṭo bālo 'śrutavān [pṛ]thagjanaḥ sukhaduḥkhaṃ pratisaṃvedayati | ato vā punar upādāyaiteṣāṃ vānyatamena」로 적혀 있다. `無聞`에 맞는 'śrutavān은 실판독이고, `凡夫`에 맞는 [pṛ]thagjanaḥ는 앞 글자가 대괄호(편자 보충)이며 나머지가 실판독이다. `所觸`의 `所`는 피동으로 읽어 「닿는」에 흡수했다. `觸入`은 사전상 「入(처)」와 같은 낱말군이라 뜻으로 「접촉이 들어가는 곳」이라 옮겼다. `苦樂受覺`은 `受`·`覺`이 모두 정형구 행 낱말(vedanā)이라 `受覺`을 한 동사(받아 느낀다)로 읽었으나, `受`와 `覺`을 따로 읽을 가능성도 남는다. `因起種種`에서 「갖가지」가 무엇(느낌인지, 일인지)을 가리키는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남긴다. 팔리·산스크리트 어디에도 `種種`에 바로 맞는 낱말이 보이지 않는다(팔리 etesaṃ vā aññatarena는 「이들 중 어느 하나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2
云何為六?
어떤 것이 여섯인가?
주 팔리 19.2는 saḷevāyatanāni(여섯 입처)를 말하고 곧 이어지며, 여섯을 되묻고 열거하는 문장이 없다(읽은 구간 안에서 확인). 산스크리트 12.3은 katamāni [ṣaṭ |]로 되묻는데 `katamāni`만 실판독이고 ṣaṭ은 대괄호(편자 보충)라 그 부분만 근거로 삼았다. `云何`는 의문 어미가 지므로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2
眼觸入處,耳、鼻、舌、身、意觸入處。
눈의 접촉이 들어가는 곳, 귀·코·혀·몸·뜻의 접촉이 들어가는 곳이다.
주 팔리에는 여섯 입처의 열거가 글자로 없다(읽은 구간 안에서 확인). 산스크리트 12.3은 「śro[traṃ ghrā]ṇaṃ jihvā kāyo manaḥ sparśāyatanam」으로 귀·코·혀·몸·뜻과 끝의 sparśāyatana가 실판독으로 남고 눈 부분(`ca[kṣuḥ sparśāyata]na[m]`)은 거의 대괄호다. 실판독 63%라 눈 부분은 근거로 쓰지 않았다. 한역은 「眼觸入處,耳、鼻、舌、身、意觸入處」로 눈에서 한 번, 뜻 뒤에서 한 번 `觸入處`를 단다. `意`는 「뜻」, `身`은 「몸」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2
若黠慧者無明覆,愛緣繫得此識身。
슬기로운 이가 무명에 덮이고 갈애의 연에 묶여 이 식의 몸을 얻으면,
주 팔리 19.3 「avijjānīvaraṇassa paṇḍitassa taṇhāya sampayuttassa evamayaṃ kāyo samudāgato」와 산스크리트 12.4(실판독 93%)에 걸린다. 한역은 `若`(가정)을 달고 팔리·산스크리트에는 가정 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어 연결어미 「-면」이 `若`의 기능을 지므로 부사 「만약」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黠慧`는 paṇḍita에 걸리는 낱말로, 같은 경에서 `智者`(0083c29.1)로도 쓰인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한자 흔들림이라 통일하지 않고 `黠慧`는 「슬기로운 이」, `智者`는 「지혜로운 이」로 달리 옮겼다. 앞 좌표(0083c24.1)에서 보인 `愚癡無聞凡夫`와 달리 이 좌표의 `黠慧者`에는 `無聞凡夫` 같은 대비어가 붙지 않는다(번역기법 가능성). 이 좌표의 `若…得此識身`을 「얻으면」으로 끝낸 것은 `若`의 조건절이 다음 좌표로 이어지는지가 저본만으로 서지 않기 때문이며, `彼無明斷`이 뒤따르는 0084a14.1과는 문장 구성이 다르다. `愛緣繫`·`識身`·`無明`의 처리는 0083c24.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3
如是內有識身,外有名色,此二緣生六觸入處,六觸所觸故,智者生苦樂受覺,因起種種。
이와 같이 안에 식의 몸이 있고 밖에 이름과 형색이 있으니, 이 둘의 인연으로 여섯 접촉이 들어가는 곳이 생기고, 여섯 접촉에 닿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아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갖가지가 일어난다.
주 팔리 19.4와 산스크리트 12.5(실판독 85%)에 걸린다. 한자 흔들림: 한역은 같은 사안을 0083c25.1에서 `此二因緣生觸`, 여기서 `此二緣生六觸入處`로 적는다(`因緣`/`緣`). 팔리 19.4는 dvayaṃ paṭicca phasso saḷevāyatanāni로 19.2와 똑같고 산스크리트 12.5도 12.2와 같은 틀이다. `智者`는 paṇḍita(산스크리트 paṇḍitaḥ는 [paṇḍi]taḥ로 일부 보충)에 걸린다. `因起種種`의 「갖가지」는 0083c26.1과 같은 이유로 남긴다. `所觸故`의 `所`는 피동으로 흡수했다. `者`는 지혜로운 「이」의 명사화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4
何等為六?
무엇들이 여섯인가?
주 앞의 0083c27.1 `云何為六`이 여기서는 `何等為六`로 적힌다(`云何`/`何等`, 같은 의문). 한자 흔들림이라 통일하지 않고 `何等`은 「무엇들이」로 옮겼다. 팔리 19.4에는 여섯을 되묻는 문장이 없다. 산스크리트 12.6 「katamāni ṣaṭ」(실판독 100%)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4
眼觸入處,耳、鼻、舌、身、意觸入處。
눈의 접촉이 들어가는 곳, 귀·코·혀·몸·뜻의 접촉이 들어가는 곳이다.
주 팔리에는 열거가 없다(읽은 구간 안에서 확인). 산스크리트 12.6은 「cakṣuḥ sparśāyatanaṃ śrotraṃ ghrāṇaṃ jihvā kāyo manaḥ」(실판독 100%)로 sparśāyatana를 눈 뒤에 한 번만 두고 뜻 뒤에는 두지 않는다. 한역은 `意` 뒤에 `觸入處`를 다시 단다. 0083c28.1과 같은 한문이며 옮김도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4
愚夫、黠慧,彼於我所修諸梵行者,有何差別?」
어리석은 사람과 슬기로운 이, 그들이 내가 있는 곳에서 청정한 행들을 닦는 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주 (1) 팔리 19.5 「ko viseso ko adhippayāso kiṃ nānākaraṇaṃ paṇḍitassa bālena」는 세 낱말(viseso·adhippayāso·nānākaraṇaṃ)을 늘어놓는다. 한역은 `差別` 하나이고 산스크리트 12.7은 ko viśeṣaḥ ko 'bhiprāyaḥ kin nānākaraṇam로 세 낱말이다(번역기법 가능성). 팔리 19.5에는 `於我所`·`梵行`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고 brahmacariyavāso는 19.23에 있다(0084a17.2에서 다시 신고). 산스크리트 12.7은 mamāntike(내 곁에서)와 brahmacaryavāsāya가 실판독이다. (2) `我所`는 사전 我所 ⑥의 「자기 소유」 풀이가 아니라 처소(於…所)로 읽었고, 산스크리트 mamāntike와 맞는다. (3) `梵行`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해 「청정한 행」으로 옮겼다(음의: 慧琳 四分律 0698c19는 梵을 「淸淨」으로 푼다). 저본 이문: 大正藏 원본은 `梵`이고 宋·元·明과 CBETA 교감은 `梵行`이며 본문은 `梵行`을 따랐다. (4) `愚夫`는 bāla에 걸리는 말로, 같은 경에서 `愚癡無聞凡夫`(0083c24.1)·`愚癡凡夫`(0084a11.2)로도 쓰인다. 한자 흔들림이다. (5) `者`는 「닦는 데」의 명사화에 흡수했다. 접속 `彼`는 「그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5
比丘白佛言:「世尊是法根、法眼、法依。
비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고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주 팔리 19.6 「bhagavaṃmūlakā no, bhante, dhammā, bhagavaṃnettikā, bhagavaṃpaṭisaraṇā」는 「(저희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이끄는 분으로, 의지처로 한다」로 읽히고, 한역은 「세존이 법의 뿌리·눈·의지처」로 주어와 술어가 바뀐 꼴이다. `法眼`이 팔리 nettika(이끎)에 걸리는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12.8은 「bhagavanmūlakā bhadanta dharmāḥ pūrvavad yāvad bhāṣiṣye」(실판독 100%)로 첫 구만 적고 나머지를 `pūrvavad yāvat`(앞과 같이 …까지)로 접었다. 산스크리트의 생략표지이므로 `法眼`·`法依`의 산스크리트 대응은 접힌 안쪽이라 근거가 없다. `比丘`는 확정역 「비구」이며 한문에 `諸`가 없어 수가 정해지지 않으므로 「비구가」로 두고 남긴다(팔리 no는 복수). `白佛言`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로 옮겼다. 말하는 이가 윗사람인 세존께 하므로 문말은 높임이다. 이 경 안에서 `世尊`은 0083c24.1에서 보인 대로 확정역 「세존」을 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6
善哉!世尊!唯願演說,諸比丘聞已,當受奉行。」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오니 펼쳐 설해 주십시오. 비구들이 듣고 나서 받아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주 팔리 19.7 「sādhu vata, bhante, bhagavantaṃyeva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는 「참으로 좋습니다, 세존께서 직접 이 말씀의 뜻을 밝혀 주십시오」, 19.8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i」는 「세존께 듣고 비구들이 지니겠습니다」이다. 한역 `演說`은 paṭibhātu(밝혀 주소서)와 직접 맞지 않고, `受奉行`은 dhāressanti(지니다)에 걸리는지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 vata(참으로)는 뜻이 실린 말이나 한문에는 대응어가 없다. `善哉`는 감탄 종결 어미 「좋습니다!」로 지고, `唯`는 한정이나 `願`과 이어져 「오직 바라오니」로 옮겼다. `當`은 「-겠습니다」의 어미로 흡수했다. 산스크리트는 12.8에서 `pūrvavad yāvad`로 이 구간을 접었으므로 unaligned다(마지막 bhāṣiṣye가 실판독이나 좌표 결속은 UNALIGNED로 주어졌다). 사전 唯 ①·奉行 ①의 쓰임은 정형구 쪽이며 이 좌표에서 별도 근거로 인용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7~19.8
爾時,世尊告諸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를 위하여 설하겠다.
주 팔리 19.9 「tena hi, bhikkhave,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i」는 `諦聽,善思,當為汝說`과 맞는다(팔리 tena hi(그렇다면)는 한문에 대응어 없음). 팔리는 이어 19.10에서 비구들이 「evaṃ, bhante」로 응답하는 문장을 두고 19.11 「Bhagavā etadavoca」(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를 단다. 한역은 응답 문장이 없고 `爾時,世尊告諸比丘`가 말씀 앞에 선다(19.11이 한역에서는 앞으로 옮겨 선 꼴이라 reordered). `諦聽`은 「자세히 듣고」(음의: 希麟 0949c19 「諦審也」), `善思`는 「잘 생각하라」, `當為汝說`은 「-겠다」 어미로 흡수했다. `汝`는 복수의 비구들에게 하는 말이라 「너희」로 옮겼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청자와 관계없이 평서다. 산스크리트 대응은 UNALIGNED로 주어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9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10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2.19:19.11
諸比丘!彼愚癡無聞凡夫無明所覆,愛緣所繫,得此識身,彼無明不斷,愛緣不盡,身壞命終,還復受身;還受身故,不得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비구들이여! 그 어리석고 들음이 없는 범부는 무명에 덮이고 갈애의 연에 묶여 이 식의 몸을 얻었으니, 그의 무명이 끊어지지 않고 갈애의 연이 다하지 않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도로 다시 몸을 받는다. 도로 몸을 받기 때문에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을 얻지 못한다.
주 (1) 구조: 팔리는 19.12(무명·갈애가 끊기지 않음) → 19.13 「그 까닭은」→ 19.14(청정한 삶을 살지 않음) → 19.15(그러므로 몸을 얻는 자가 되어 해탈하지 못함) → 19.16 순서다. 한역은 여기서 결과(`身壞命終…不得解脫`)를 먼저 말하고 `所以者何`(0084a11.1)로 까닭을 묻고, 0084a11.2에서 결과를 다시 적는다. 산스크리트 12.9·12.10도 같은 모양(결과 → tat kasmād dhetoḥ → 까닭 → 결과)이며 팔리와 다르다. 판정하지 않고 사실만 적는다. (2) 문장 유무: 팔리 19.16과 산스크리트 12.9 끝의 「na parimucyate duḥkhād iti vadāmi」(내가 말하노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역 이 좌표에 없다(산스크리트는 실판독 100%라 없음확인). (3) 낱말: 한역 열거는 `生·老·病·死·憂·悲·惱·苦` 여덟이고, 팔리 19.15는 「jātiyā jarā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로 일곱 항(病 없음, 늙음·죽음은 jarāmaraṇena 한 항), 산스크리트 12.9는 「jātijarāvyādhimaraṇaśokaparidevaduḥkhadaurmanasyopāyāsebhyaḥ」 한 복합어 안에 아홉 항(jāti·jarā·vyādhi·maraṇa·śoka·parideva·duḥkha·daurmanasya·upāyāsa)이다. (4) `身壞命終` ↔ 팔리 kāyassa bhedā(몸이 무너져), 산스크리트 kāyasya bhedāt paraṃmaraṇāt. `還復受身`은 팔리 kāyūpago hoti, 산스크리트 kāyopago bhavati(「몸에 이르는 자가 된다」)에 걸리는 자리로 보이나 판정하지 않는다. (5) `所覆`·`所繫`의 `所`는 피동이라 「덮이고」「묶여」에 흡수했다. `愚癡無聞凡夫`·`無明`·`愛緣`·`識身`의 처리는 0083c24.1과 같다. `還復`은 `還`·`復`이 모두 반복이라 「도로 다시」로 옮겼다. `受`는 정형구 행 낱말이나 이 자리는 동사(받다)로 읽었다. `解脫`은 정착 술어 「해탈」을 쓰되 `得`을 살려 「해탈을 얻지 못한다」로 옮겼다. `憂·悲·惱·苦`는 「근심·슬픔·번민·괴로움」, `彼`는 「그」, `諸比丘`는 호격이라 「비구들이여」로 옮겼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1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2.19:19.1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16
所以者何?
그 까닭이 무엇인가?
주 팔리 「taṃ kissa hetu」, 산스크리트 「tat kasmād dhetoḥ」(실판독 100%)와 같다. `所以者何`의 `所以`는 「까닭」, `者`는 명사화에 흡수했다. 같은 한문이 0084a17.1에 한 번 더 나온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2.19:19.13
此愚癡凡夫本不修梵行,向正盡苦,究竟苦邊故,是故身壞命終,還復受身;還受身故,不得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이 어리석은 범부는 본래 청정한 행을 닦지 않아, 괴로움을 다함으로 바르게 향하고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도로 다시 몸을 받는다. 도로 몸을 받기 때문에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을 얻지 못한다.
주 (1) 팔리 19.14 「na … bālo acari brahmacariyaṃ sammā dukkhakkhayāya」는 한 목적구(바르게 괴로움이 다함을 위해)다. 한역은 `向正盡苦`과 `究竟苦邊`의 두 항이고, 산스크리트 12.10 「samyagduḥkhakṣayāya duḥkhasyāntakriyāyai」도 두 항이다. 한역=산스크리트≠팔리의 배열이다. 산스크리트 pūrve(앞서)는 `本`(0084a17.2의 `先`)에 걸리는 자리로 보인다. (2) 구두·분절: `本不修梵行,向正盡苦,究竟苦邊故`에서 부정(不)이 `向正盡苦`·`究竟苦邊`까지 미치는지(목적구로 읽는 경우)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못하기」로 부정이 두 항에 걸리도록 옮겼으나 다른 끊어 읽기가 가능하다. `正向`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해 「바르게 향하고」로 옮겼다(전거 대장 팔리 후보 Suppaṭipannā). 전거 후보와 이 좌표의 구문이 맞는지 판정하지 않는다. (3) 산스크리트 12.10은 결과 부분을 「pūrvavad yāvad duḥkhād iti vadāmi」로 접었으므로 `不得解脫生…苦`의 산스크리트 대응은 접힌 안쪽이라 근거가 없다. 한문은 접지 않고 전문을 두었다. (4) `故,是故`는 「-기 때문에, 그러므로」로 옮겼다(접속 `是故`는 「그러므로」). 팔리 tasmā(그러므로)에 걸린다. `梵行`·`解脫`·`身壞命終`·`還復受身` 등은 앞 좌표와 같다. `究竟`은 사전 究竟 ⑥의 「至極」 풀이가 아니라 동사(끝까지 다하다)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14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1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16
「若黠慧者無明所覆,愛緣所繫,得此識身,彼無明斷,愛緣盡;無明斷,愛緣盡故,身壞命終,更不復受;不更受故,得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슬기로운 이가 무명에 덮이고 갈애의 연에 묶여 이 식의 몸을 얻으면, 그의 무명이 끊어지고 갈애의 연이 다한다. 무명이 끊어지고 갈애의 연이 다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다시는 더 받지 않는다. 더는 받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을 얻는다.
주 (1) `若黠慧者無明所覆…得此識身`은 팔리 19.17 「yāya ca avijjāya nivutassa paṇḍitassa … ayaṃ kāyo samudāgato, sā ceva avijjā paṇḍitassa pahīnā sā ca taṇhā parikkhīṇā」와 산스크리트 12.11(실판독 100%)에 걸린다. 팔리·산스크리트는 「그 무명으로 덮인 이의 그 무명이 끊겼다」로 같은 무명을 가리키는 관계절이나, 한역은 `若…得此識身`(가정)에 `彼無明斷`이 이어져 「-면 ~한다」의 꼴이다. `若`은 「-면」으로 흡수했고 「그 무명이 어느 무명인가」는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불확실:격·태·구문]으로 남긴다. (2) 구조: 07.1과 같이 한역은 까닭(`所以者何`) 앞에 결과(`身壞命終…得解脫`)를 먼저 적고(팔리 19.20·19.21은 까닭 19.18·19.19 뒤), 산스크리트 12.11도 결과를 먼저 둔다. (3) 문장 유무: 팔리 19.22와 산스크리트 끝의 「parimucyate duḥkhād iti vadāmi」(내가 말하노니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한역에 없다(산스크리트는 실판독 100%라 absent). (4) `更不復受`는 `更`(더)·`復`(다시)가 모두 반복이라 「다시는 더 받지 않는다」로 옮겼다(산스크리트 na kāyopago bhavati). `無明斷,愛緣盡`이 한 번 더 되풀이되는 것은 한역에서만 보인다. `黠慧`는 0083c28.2의 처리와 같다. `得解脫`의 `得`은 획득이라 「해탈을 얻는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17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2.19:19.20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2.19:19.2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22
所以者何?
그 까닭이 무엇인가?
주 팔리 「taṃ kissa hetu」, 산스크리트 「tat kasmād dhetoḥ」(실판독 100%)와 같다. 0084a11.1과 같은 한문이며 옮김도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2.19:19.18
彼先修梵行,正向盡苦,究竟苦邊故,是故彼身壞命終,更不復受;更不受故,得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是名凡夫及黠慧者,彼於我所修諸梵行,種種差別。」
그는 먼저 청정한 행을 닦아 바르게 괴로움을 다함으로 향하고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의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다시는 더 받지 않는다. 더는 받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범부와 슬기로운 이가 내가 있는 곳에서 청정한 행들을 닦는 데 있어 갖가지 차이라 이름한다."
주 (1) 앞부분은 팔리 19.19~19.21, 산스크리트 12.12(실판독 100%)에 걸린다. 산스크리트 12.12도 12.10처럼 결과를 「pūrvavad yāvad duḥkhād iti vadāmi」로 접었다. 한역은 접지 않았다. `先`은 산스크리트 pūrve에 걸리는 자리로 보인다. `彼先修梵行,正向盡苦,究竟苦邊故`는 0084a11.2와 달리 부정이 없어 「닦아 … 다했기 때문에」로 옮겼다. (2) 뒷부분 `是名凡夫及黠慧者,彼於我所修諸梵行,種種差別`은 팔리 19.23 「ayaṃ kho, bhikkhave, viseso, ayaṃ adhippayāso, idaṃ nānākaraṇaṃ paṇḍitassa bālena yadidaṃ brahmacariyavāso」와 산스크리트 12.13(실판독 98%)에 걸린다. 팔리·산스크리트는 세 낱말을 늘어놓고 한역은 `種種差別` 하나다. 산스크리트의 호격 bhikṣavaḥ는 한역에 없다. 팔리·산스크리트는 「이것이 슬기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의 차이」로 슬기로운 이를 앞에 두고, 한역은 `凡夫及黠慧者` 순서다(순서 차이는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 19.22(해탈한다는 선언)는 한역에 없다. (3) 한자 흔들림: `凡夫`·`愚夫`(0084a03.1)·`愚癡凡夫`가 같은 bāla/pṛthagjana 자리에 서고 `黠慧`·`智者`가 paṇḍita 자리에 선다. 통일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20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2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22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19:19.23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서,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팔리 19.24는 「Navamaṃ」(아홉째)뿐이고 비구들이 기뻐했다는 맺음 문장이 없다(읽은 구간 안에서 확인). 산스크리트 대응은 UNALIGNED로 주어졌다. `佛說此經已`는 「설하시고 나서」, `所說`은 「설하신 것」으로 옮겼고 `所`는 관형화에 흡수했다. `歡喜`는 「기뻐하며」, `奉行`은 「받들어 행했다」이다(사전 奉行 ①: `歡喜奉行` 829회). 내레이션은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2.19: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