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九三)
(이백구십삼)
주 제목 좌표(경 번호). 저본 표기 「二九三」은 좌표 id `sa291`, `_전거` 머리글의 「大正 291」과 숫자가 어긋난다(저본·음의 머리글은 「大正 293」). 어느 번호가 맞는지 판정하지 않고 신고만 한다. 증언(팔리·산스크리트)이 투입되지 않아 대응은 `unaligned`(미결)이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잡아함 전권 1332경, 이 경 1회 — `_정형구_생략표지`). `如`는 비유 자리의 「같이」라 「이와 같이」로 세웠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 `[구속]`. 一時=한때, 住=머무셨다. 王舍城=왕사성은 정착어(§⑤)다. 王舍은 「왕의 집」을 뜻하는 도성 이름이며, `_한자대역_3분할`은 王舍를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정착형을 따르고 뜻을 여기 적는다. 迦蘭陀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가란타」로 적었다(음의 慧琳 0601c04 〔出生菩提心經〕은 迦蘭䭾를 새 이름(鳥名)으로 풀고 竹林과 잇는다 — 인용). 竹園은 뜻으로 「대나무 동산」(「죽원」·「죽림정사」는 쓰지 않았다). `_전거`: 王舍城迦蘭陀竹園 ↔ 팔리 후보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범어 후보 없음 — 계통 갈림 판정 불가).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爾時,世尊告異比丘:「我已度疑,離於猶豫,拔邪見刺,不復退轉。
그때 세존께서 다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의심을 건넜고, 머뭇거림을 떠났으며, 삿된 견해의 가시를 뽑았고, 다시는 물러나 돌아서지 않는다.
주 世尊=세존 `[구속]`, 佛(0.3·0083c21.1)=부처님 `[구속]` — 한역이 같은 주체에 世尊/佛을 섞어 쓴다(한자 흔들림). 둘 다 각자의 확정역으로 고정하고 통일하지 않았다. 異比丘=「다른 비구」(어떤 비구인지는 저본에 없다). 疑·疑惑·猶豫 세 한자는 「의심·의혹·머뭇거림」으로 갈라 썼다. 猶豫는 사전 猶豫 ⑤ 음의(慧琳 0323c13 〔大般若波羅蜜多經〕 「猶豫不定之辭」)를 인용한다. 邪見=삿된 견해(의역, 표 분류와 같음). 「이미」는 이 비구와의 대조가 실린 자리라 세웠고, 不復의 復는 「다시는」으로 옮겼다. 退轉=「물러나 돌아서지 않는다」. 인용부호: 저본은 「가 이 좌표(c02.1)와 0083c10.1에서 두 번 열리고 」는 0083c19.2에서 한 번만 닫힌다. 저본 부호를 그대로 두었다 — 하나로 이어진 발화인지 나뉜 발화인지 판정하지 않는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心無所著故,何處有我為彼比丘說法?
마음이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어디에 내가 있어 저 비구를 위해 법을 설하겠는가?
주 無所著는 칭호 자리가 아니라 술어 자리이므로(`_확정술어` 안내) 「아라한」 확정역을 걸지 않고 저본대로 옮겼다. 所著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집착할 것」)로 풀었다. 「내가 있어」의 「있어」는 `有`가 我의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무아 선언의 대상)라 근거를 대고 썼다. 為=「위해」(위하여, 피동 아님). 何處=「어디에」, 반문형. 說法=「법을 설하다」(c10.1과 같은 말로 고정).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為彼比丘說賢聖出世空相應緣起隨順法,所謂有是故是事有,是事有故是事起。
저 비구를 위해, 현성이 세간을 벗어나는, 공에 상응하고 연기를 따르는 법을 설했다.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일어난다.
주 賢聖出世空相應緣起隨順法은 [賢聖出世][空相應][緣起隨順]가 세 관형절로 法을 꾸민다고 끊었다(구두·분절). 出世는 「세간을 벗어남」과 「세상에 나옴」 두 갈래가 서서 앞의 것으로 옮겼다(사전 出世 ① 앞 賢聖 3/15 · 뒤 此法 2 — 이 경과 같은 구가 sa295 0084c23.1에도 있다). 賢聖=현성(정착). 空相應=공에 상응(사전 空相 ① 4회 · 2경). 緣起=연기(정착어; 「조건 따라 일어남」을 뜻한다). `_한자대역_3분할`은 緣起를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정착 술어라 정착형으로 썼다. 隨順=「따르는」. 所謂는 「이른바」(「~하는 바」 아님). 有是故是事有의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한다. 是事=「이 일」. 이문: 世 ↔ 「世坐」(宋·元·明) — 저본 大正의 世를 따르고 世坐는 옮기지 않았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所謂緣無明行,緣行識,緣識名色,緣名色六入處,緣六入處觸,緣觸受,緣受愛,緣愛取,緣取有,緣有生,緣生老、死、憂、悲、惱、苦。
이른바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있고, 행을 조건으로 식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처가 있고, 육입처를 조건으로 촉이 있고, 촉을 조건으로 수가 있고,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고, 애를 조건으로 취가 있고, 취를 조건으로 유가 있고, 유를 조건으로 생이 있고, 생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있다.
주 `緣X Y` 구문에는 한문 서술어가 없다. 한국어 문법상 「~을 조건으로 ~이 있고」로 서술어 「있고」를 보충했다. 緣=조건(因=원인과 가른다). 무명·행·식·명색·육입처·촉·수·애·취·유·생은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로 썼다 — 無明=밝음 없음, 名色=이름과 형상, 六入處=여섯 들어오는 곳, 十二支의 有=「유」(존재 서술의 有와 구별). `_한자대역_3분할`은 名色을 의역으로, 無明을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정착형을 따랐다. 受·生·觸은 `[정형구 행]`이라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확정역_부재`). 惱는 「번민」으로 골랐다(`술어·낱말_선택`). `_전거`: 無明 ↔ 팔리 후보 Avijjā / 범어 후보(당대) ābidyā — 두 형이 서고 갈린다. 판정하지 않는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如是如是純大苦聚集,乃至如是純大苦聚滅。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순전한 큰 괴로움 무더기가 모이고, 내지 이와 같이 순전한 큰 괴로움 무더기가 소멸한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라 펴지 않고 「내지」로 접힌 대로 두었다(`[생략표지]`, 이 경 1회). 如是如是의 반복은 보존했다. 純=순전한, 聚=무더기. 集은 `[정형구 행]`(정형구 안에서 「일어남」으로 풀리지만 낱말 확정역은 아님)이라 한자대로 「모임」으로 옮기고 `확정역_부재`를 남긴다. 滅=「소멸」은 이 경 전체에서 고정했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如是說法,而彼比丘猶有疑惑猶豫,先不得得想、不獲獲想、不證證想,今聞法已,心生憂苦、悔恨、矇沒、障礙。
「이와 같이 법을 설해도 저 비구는 여전히 의혹과 머뭇거림이 있고, 앞서 얻지 못했는데 얻었다는 생각, 획득하지 못했는데 획득했다는 생각, 증득하지 못했는데 증득했다는 생각이 있었으며, 이제 법을 듣고 나자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 후회와 한, 어두워 잠김, 막힘이 생겼다.
주 而는 역접 어미(「설해도」)로 흡수했다. 猶=「여전히」. 猶有의 有는 소유·존재 서술이라 「있고」를 썼다. 不得得想·不獲獲想·不證證想은 [不得][得想]처럼 앞 한자는 부정된 사태, 뒤는 想의 내용으로 읽었다(`격·태·구문`). 得·獲·證은 「얻다·획득하다·증득하다」로 갈랐다. 先=앞서, 今=이제, 聞法已=「법을 듣고 나자」. 憂苦、悔恨、矇沒、障礙는 네 항으로 읽어 「근심과 괴로움 / 후회와 한 / 어두워 잠김 / 막힘」으로 옮겼고, 矇沒은 낱말 선택이 서지 않았다. 이문: 矇 ↔ 朦(宋·元) — 저본 矇을 따랐다. 이 좌표의 열린 「는 c02.1의 열림과 겹친다(구두·분절은 c02.1 서술 참조).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所以者何. 所以=까닭, 者=명사화(「~이」로 흡수), 何=무엇.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此甚深處,所謂緣起,倍復甚深難見,所謂一切取離、愛盡、無欲、寂滅、涅槃;如此二法,謂有為、無為,有為者若生、若住、若異、若滅,無為者不生、不住、不異、不滅,是名比丘諸行苦寂滅涅槃。
이 매우 깊은 곳은 이른바 연기이고, 갑절이나 더 매우 깊어 보기 어려운 것은 이른바 모든 취를 떠남, 애가 다함, 욕심이 없음, 적멸, 열반이니, 이와 같은 두 법은 곧 유위와 무위이며, 유위란 생기거나 머물거나 달라지거나 소멸하는 것이고, 무위란 생기지 않고 머물지 않고 달라지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여 모든 행의 괴로움의 적멸, 열반이라 이름한다.
주 倍復甚深難見의 주어는 한문에 없다 — 「것은」으로 보충하고, 연기보다 더 깊고 보기 어려운 것을 이어지는 所謂 항목들로 읽었다. 倍復은 음의 慧琳 0531a15 〔轉女身經〕(倍=갑절, 復=거듭)을 인용해 「갑절이나 더」로 옮겼다. 一切取離(여기)와 一切取滅(0083c19.2)은 같은 정형구에서 離/滅이 갈린다(한자 흔들림) — 통일하지 않았다. 一切=「모든」(음의 慧琳 0434b15 「普也」). 若生、若住、若異、若滅: 앵커는 若을 가정으로 표시했으나 여기는 열거라 「~거나」로 옮겼다. 如此二法=「이와 같은 두 법」. 寂滅=적멸(정착형; `_한자대역_3분할`은 의역 분류), `_전거`: 寂滅 ↔ 팔리 후보 Upasannaka ⚠다른 부(DA) 대역 — 인용만. 無為·有為=무위·유위(`[정형구 행]`, 확정역 없음 — `확정역_부재`), `_전거` 無為 ↔ Asaṅkhata. 緣起=연기, `_전거` 緣起 ↔ Paṭicca-samuppāda ⚠다른 부(MA). 涅槃=열반(정착형). `_전거`: 涅槃 ↔ 팔리 후보 Nibbāna / 범어 후보(당대) nirvāṇa ⚠다른 부(EA) — 두 계통이 서서 `갈림: 개별 어휘 | 음역계통`으로 신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慧琳 0463b14 〔大般涅槃經音義〕 「此翻為圓寂」 인용. 是名比丘諸行苦寂滅涅槃은 比丘를 호격으로 읽었으나 소유격(「비구의」) 가능성이 남고, 諸行苦寂滅은 「모든 행의 괴로움의 적멸」로 끊었다(구두·분절). 諸=「모든」.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因集故苦集,因滅故苦滅,斷諸逕路,滅於相續,相續滅,是名苦邊。
원인이 모이므로 괴로움이 모이고, 원인이 소멸하므로 괴로움이 소멸하며, 여러 길을 끊고, 이어짐을 소멸하고, 이어짐이 소멸하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이름한다.
주 因=원인(緣=조건과 가른다). 斷諸逕路: 逕을 徑(좁은 길)의 이체로 읽어 「여러 길」로 옮겼다(諸=여러, 의미 있는 복수). 滅於相續: 於가 목적 조사(「을」)를 진다. 相續=이어짐(사전 相續 ① 23회 · 17경). 苦邊=괴로움의 끝. 이문: 大正에는 「滅」이 한 글자 더 있고 CBETA가 뺐다(app 0083c1901, 교감주 add [-]【CB】… 滅【大】, 福州藏 대조) — 저본(CBETA)을 따랐고 어느 자리의 글자인지는 판정하지 못했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比丘!彼何所滅?
비구여! 그것은 무엇이 소멸하는 것인가?
주 比丘!는 호격. 彼=「그것」, 所滅은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소멸하는 것」)로 풀었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謂有餘苦,彼若滅、止、清涼、息、沒,所謂一切取滅、愛盡、無欲、寂滅、涅槃。」
말하자면 남아 있는 괴로움이니, 그것이 소멸하고, 그치고, 서늘해지고, 쉬고, 가라앉으면, 이른바 모든 취의 소멸, 애가 다함, 욕심이 없음, 적멸, 열반이다.」
주 謂=「말하자면」. 有餘苦=「남아 있는 괴로움」(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는」으로 흡수; `_전거` 有餘 ↔ 팔리 후보 Upādisesa ⚠다른 부(MA) 대역, `_한자대역_3분할`은 의역 분류 — 인용만). 若은 가정이라 「~면」으로 흡수했다(「거든」 피함). 滅、止、清涼、息、沒 다섯 항은 소멸·그침·서늘해짐·쉼·가라앉음으로 갈랐다. 一切取滅은 0083c13.2의 一切取離와 한자가 다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음). 涅槃·寂滅·無欲·愛盡은 0083c13.2와 같게 옮겼고 `_전거` 涅槃의 두 계통(Nibbāna / nirvāṇa)은 거기 적은 대로 판정하지 않는다. 「…彼若滅…」 이하 조건절의 귀결이 한문에 따로 없어 所謂 항목을 그 귀결 자리로 읽었다(구두·분절). 닫는 」는 c02.1에서 열린 인용을 닫는 것으로 보았다.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시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佛=부처님 `[구속]` — 앞의 世尊(0083c02.1)과 같은 주체에 한자가 다르다(한자 흔들림). 比丘=비구 `[구속]`. 說…已=「설해 마치시자」. 所說은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복수로 흡수했다.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음의 慧琳 0753a01 〔阿毘達磨大毘婆沙論〕 「歡喜悅也」 인용).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