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五六)
(256)
주 한문 제목은 경 번호(二五六)뿐이고 제목 낱말이 없다. 팔리 쪽은 제목(sn22.127 「Dutiyasamudayadhammasuttaṃ」)이 있어 한역에는 없음확인이다. 편자 교감주 「S. 22. 133-135. Koṭṭhita.」(다카쿠스 각주, PTS 번호)는 sn22.133~135를 대응 후보로 가리키나, 보조 증언 원문을 직접 읽어 본문과 맞춰 보면 동의하지 않는다 — 한역은 마하구치라가 묻고 사리불이 답하는데 sn22.133~135는 사리불이 묻고 마하구치라가 답하며, 한역의 내용(물질 등이 무상·닳아 없어지는 법·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함/앎)은 sn22.127(무명)·sn22.128(명)의 samudayadhamma·vayadhamma·samudayavayadhamma 꼴에 가깝다(sn22.133은 assāda·ādīnava·nissaraṇa, sn22.135는 samudaya·nirodha·paṭipadā). 다만 sn22.134가 samudaya·atthaṅgama를 일부 공유하므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아래 좌표의 대응은 sn22.127(무명 부분)과 sn22.128(명 부분)에 매긴다. 한역은 팔리 두 경을 한 경으로 묶은 꼴이다. 이 조각에는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SF 항은 모두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7:0.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33: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제공된 팔리 sn22.127 원문은 「Ekaṃ samayaṃ」으로 곧바로 시작하고 「Evaṃ me sutaṃ」이 없다(127.0과 127.1 사이에 놓일 자리, 없음확인). 한역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경에 나온다(정형구 표). 如의 비유·가정 기능은 「이와 같이」의 부사형 한 군데로만 진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7:127.0~127.1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은 확정 술어 [구속] 「부처님」을 그대로 썼다. 王舍城은 정착어 「왕사성」으로 적고, 이름 뜻은 한자 그대로 「왕이 사는 집(舍)의 성」이다. 迦蘭陀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가란타」로 적었다(음의 慧琳 0601c04: 迦蘭䭾迦는 새 이름이고, 竹林의 주인이던 거사가 이 새를 따라 이름 붙였다고 풀이). 竹園은 竹(대나무)+園(동산)이 뜻으로 옮긴 것이라 「대나무 동산」으로 풀었다. 「죽원」이 정착형인지는 정도평 몫이라 을 남긴다. 전거에는 이 덩어리가 한 줄(王舍城迦蘭陀竹園 ↔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로 실려 있고, 迦蘭陀 쪽은 팔리 Kalandaka 계통만 보인다. 팔리 sn22.127/127.1은 같은 「Ekaṃ samayaṃ」(一時) 틀이지만 주어와 장소가 다르다(두 장로 · Bārāṇasī의 Isipatana Migadāya). 한역은 「부처님이 어디에 머무셨다」는 문장을 따로 세우고 팔리는 두 장로의 거처만 말한다. 이 경우 한역 정형 개경구(사전 一時 ① 뒤 佛住 1265/1345)를 얹은 것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27:127.1
爾時,尊者舍利弗、尊者摩訶拘絺羅在耆闍崛山。
그때 존자 사리불과 존자 마하구치라가 기사굴산에 있었다.[불확실]
불확실 사리불은 정착어다. 舍利弗은 奢唎補怛羅(舍利=鶖鷺 새 이름, 弗=子)의 음역으로 「사리의 아들」을 뜻한다(음의 慧琳 0450b23 · 0478b23). 摩訶拘絺羅는 3분할 표가 「보류」로 둔 5자 이름이다. 정형구 조각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고 한역자가 소리로 옮긴 것이라 판별해 한자 독음 「마하구치라」로 적었다(음의 慧琳 0474c22는 「大膝」으로 푼다. 그래도 한역은 소리로 적었으므로 뜻으로 바꾸지 않는다). 확정이 아니므로 을 남긴다. 耆闍崛山은 耆闍崛(소리)+山(뜻)이라 「기사굴산」으로 적었다(음의 慧琳 0482a18: 梵云姞利駄羅矩吒山 此云鷲峯). 정형구 행의 「독수리봉 산」은 정형구 문자열일 뿐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서 쓰지 않았다. 팔리 sn22.127/127.1과 두 장로 이름은 같고(sāriputto · mahākoṭṭhiko, viharanti ↔ 在) 장소만 다르다 — 한역 耆闍崛山 / 팔리 Bārāṇasī Isipatana Migadāya. 한역은 문장 둘(0.3 · 이 좌표)이 팔리 한 문장(127.1)에 걸린다(구조·배열). 전거: 舍利弗 ↔ 팔리 Sāriputta / 근대 Śāriputra ⚠다른 부(DA) 대역 · 摩訶拘絺羅 ↔ 팔리 Mahākoṭṭhika~Mahākoṭṭhita / 근대 Mahākauṣthilya ⚠다른 부(EA) 대역 · 耆闍崛 ↔ 팔리 Gijjhakūṭa / 근대 Gṛdhrakūṭa ⚠다른 부(DA) 대역.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1
時,尊者拘絺羅晡時從禪起,詣尊者舍利弗所,共相問訊,種種相娛悅已,却坐一面。
그때 존자 구치라가 늦은 오후에 선정에서 일어나 존자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함께 서로 안부를 묻고 갖가지로 서로 즐겁게 한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주 한역이 같은 인물에 앞 좌표의 摩訶拘絺羅와 이 좌표의 拘絺羅(「마하」를 뗀 꼴)를 번갈아 쓴다. 통일하지 않고 「마하구치라」/「구치라」로 옮겼다(사전 羅 ① 이 경 0064b24.1 · 0064c15.1). 晡時는 의역으로 보고 「늦은 오후」로 옮겼다(음의 慧琳 0387b15 · 0534b09: 申時). 팔리 127.2의 sāyanhasamayaṃ과 짝이다. 禪은 禪那의 약칭이라 「선정」으로 적었다(사전 禪 ① 時從 41, 從禪起). 詣…所의 所는 처소를 가리키는 명사라 「…이 있는 곳」으로 풀었고 「하는 바」식 피동·명사화가 아니다. 問訊은 「안부를 묻다」(음의 慧琳 0428c12 · 0491a09: 訊=問). 팔리 127.2는 「paṭisallānā vuṭṭhito…pe… ekamantaṃ nisinno」로 접혀 있다. 선정에서 일어남(vuṭṭhito)과 한쪽에 앉음(nisinno)은 한역과 짝이고, 나아가 안부를 나누는 부분(詣…所 · 共相問訊 · 種種相娛悅已)은 팔리가 …pe…로 접은 구간에 걸려 미대응으로 둔다 — 없음확인이 아니다. 대응 칸의 꼴 하나는 명시된 부분을 기준으로 달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2
時,尊者摩訶拘絺羅語舍利弗言:「欲有所問,寧有閑暇為我說不?」
그때 존자 마하구치라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가한 겨를이 있으십니까?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주 사리불은 정착어(「사리의 아들」, 음의 慧琳 0478b23). 팔리 127.2는 「…etadavoca –」로 곧바로 질문에 들어가 한역의 말 건넴(語…言)만 짝이고, 「欲有所問,寧有閑暇為我說不?」는 팔리에 없다(한역에만 있음). 欲有所問의 有는 「묻고 싶은 것」이 실제로 있음을 말하는 존재 서술이라 살렸다. 寧有閑暇…不는 의문 어미가 지므로 「혹시」를 따로 붙이지 않았다. 閑暇의 暇는 음의가 「閑」과 같다고 푼다(음의 慧琳 0401a22). 쓰임은 사전 閑暇 ① 앞 寧有 24/26이다. 존칭: 한문에 위계 표지가 없고, 바로 다음 좌표에서 사리불이 상대를 「仁」으로 높여 부르므로 두 장로 모두 합쇼체로 통일했다. 한문 為我說의 為는 「위하여」이고 為…所 피동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2
舍利弗言:「隨仁所問,知者當說。」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가 묻는 대로 아는 것은 말씀드리겠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는 127.2의 etadavoca 뒤에 곧바로 질문 127.3이 오므로 그 사이에 놓일 이 문장은 없음확인이다(…pe…는 이보다 앞, 앉기 전 구간에 있다). 仁은 2인칭 경칭이라 「그대」로 옮겼다. 當은 어미 「-겠-」이 지므로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知者는 「아는 것」(앎의 범위)과 「아는 이」(사리불 자신)가 모두 가능하다 — 사전 知者 ① 앞 所問 9 · 뒤 當答 15는 같은 정형구이고 어느 쪽인지 사전이 정하지 않는다. 앞 절 「隨…所問」과 이어 「아는 것은」으로 읽고 을 남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7:127.2~127.3
摩訶拘絺羅問舍利弗言:「所謂無明。
마하구치라가 사리불에게 물어 말했다. “이른바 무명.[불확실]
불확실 所謂는 굳은 말이라 「이른바」로 옮겼다(所의 「하는 바」 아님). 팔리 127.3 「‘avijjā, avijjā’ti, āvuso sāriputta, vuccati」에서 avijjā의 되풀이와 호격(āvuso sāriputta)이 한역에는 없다 —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호격 탈락 · 되풀이 압축)이므로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無明은 3분할 표가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음역이 아니라 뜻으로 옮긴 말이라고 판별하고 정착어 「무명」으로 적었다(기계 1차 분류와 어긋나 을 남긴다). 전거에는 팔리 Avijjā, 당대 ābidyā가 실려 있다. 따옴표는 한문대로 b29.2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3
云何是無明?
무엇이 무명입니까?
주 팔리 127.4 「Katamā nu kho, āvuso, avijjā」와 짝이다. 팔리는 이 질문과 다음 좌표의 질문(kittāvatā ca avijjāgato hoti)이 한 좌표에 서 있고 한역은 두 문장으로 나뉜다. 호격은 한역에 없다(번역기법). 云何는 의문사구라 어미 의문형이 지므로 따로 부사를 붙이지 않았다. 是는 계사다(「云何是無明」). 같은 경 c08.1의 「云何為明」은 為를 쓴다 — 한문이 두 자리에 다른 글자를 쓰므로 통일하지 않고 각각 「이다」와 「이 되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4
誰有此無明?」
누가 이 무명을 갖고 있습니까?”
주 팔리 127.4 후반 「kittāvatā ca avijjāgato hoti」(얼마만큼으로 무명에 이른 이가 되는가)와 짝이다. 한역은 「誰有此無明」(누가 이 무명을 갖는가)로 물음의 초점이 「얼마만큼」에서 「누구」로 옮겨 있다. 有는 소유 서술로 보아 「갖고 있습니다」로 옮겼고 「~이 있어」 꼴은 쓰지 않았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4
舍利弗答言:「無明者謂不知,不知者是無明。」
사리불이 답하여 말했다. “무명이란 알지 못함을 이르며,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입니다.”
주 사리불은 정착어(「사리의 아들」, 음의 慧琳 0478b23). 「무명은 알지 못함」이라는 정의 문장은 팔리 127.4에서 127.5로 곧바로 넘어가는 자리에 놓일 자리가 없고 팔리에는 없다(없음확인, 접힌 구간 아님). 팔리는 이 정의 없이 127.5에서 곧바로 「assutavā puthujjano … nappajānāti」로 들어간다. 者는 명사화(無明者 → 「무명이란」, 不知者 → 「알지 못하는 것」), 謂는 「이르다」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7:127.4~127.5
「何所不知?」
“무엇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주 화자 표지가 한문에 없다. 앞뒤 문답의 순서(마하구치라가 묻고 사리불이 답함)로 마하구치라의 물음으로 읽었다. 이 되묻기 문장도 팔리에는 없다(앞 좌표와 같은 자리, 없음확인). 所는 명사화라 「알지 못하는 것」으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7:127.4~127.5
「謂色無常,色無常如實不知,色磨滅法,色磨滅法如實不知,色生滅法,色生滅法如實不知。
“이른바 물질이 무상하다는 것, 물질이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물질이 닳아 없어지는 법이라는 것, 물질이 닳아 없어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물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라는 것, 물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한문 구성 「X, X如實不知」(X를 먼저 들고 X를 알지 못한다)는 팔리 「samudayadhammaṃ rūpaṃ ‘samudayadhammaṃ rūp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대상을 들고 따옴표로 되풀이)와 구조가 같다. 세 꼴의 짝: 無常 ↔ samudayadhamma(생겨나는 법) — 뜻이 다르다(한역은 「무상」, 팔리는 「생겨나는 성질」).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磨滅法 ↔ vayadhamma(사라지는 성질). 生滅法 ↔ samudayavayadhamma. 팔리 127.6의 vayadhammaṃ 둘째 꼴은 「…pe…」로 접혀 있어 한역 磨滅法의 안쪽 반복은 미대응이다(없음확인 아님). 팔리 127.5의 「Idhāvuso assutavā puthujjano」(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한역에 없다(주어 생략). 如實은 굳은 말이라 「있는 그대로」로 옮겼다(如의 비유·가정 기능이 아니다). 色은 확정역이 없어 「물질」로 옮겼다(정형구 행의 「물질 취착 무더기」 참고). 후보가 「색」「물질」 둘이라 을 남긴다. 磨滅은 사전 磨滅 ① 33회, 「닳아 없어지다」. 生滅은 사전 生滅 ① 90회. 謂는 「이른바」로 옮겼다. 정형구 행의 生은 「태어남」(jāti)이지만 이 자리 生은 生滅의 「생겨남」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5~127.6
受、想、行、識無常,受、想、行、識無常如實不知,識磨滅法,識磨滅法如實不知,識生滅法,識生滅法如實不知。
느낌, 인식, 형성, 의식이 무상하다는 것, 느낌, 인식, 형성, 의식이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의식이 닳아 없어지는 법이라는 것, 의식이 닳아 없어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의식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라는 것, 의식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은 受想行識을 무상에서만 한꺼번에 들고, 磨滅法과 生滅法에는 識 하나만 적는다. 팔리 127.7~127.9는 vedanā · saññā · saṅkhāra · viññāṇa를 따로 들고 각각을 …pe…로 접는다. 한문의 受想行이 磨滅·生滅 절에 포함되는지는 저본이 말하지 않으므로 「乃至」 같은 표지가 없는 자리를 펴지 않고 한문대로 두었다(증보 금지). 無常은 이문이다 — 大正에서 한 자리의 無常이 빠져 있고 CBETA가 「經義及上下句型」에 따라 補했다(원주). 이 데이터의 저본(補한 꼴)대로 옮기고 을 남긴다. 受는 정형구 행에 vedanā「느낌」이 있고 受陰의 受(받아들임)와 갈리는데, 이 자리는 오온의 受라 「느낌」으로 옮겼다. 想 「인식」 · 行 「형성」 · 識 「의식」은 확정역이 없어 후보 중 하나를 골랐다(정착 독음은 색수상행식). 無常 ↔ samudayadhamma의 뜻 갈림은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7~127.9
摩訶拘絺羅!於此五受陰如實不知、不見、無無間等、愚、闇、不明,是名無明,成就此者,名有無明。」
마하구치라여, 이 다섯 받아들임의 무더기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틈 없이 고르게 됨이 없고, 어리석고, 어둡고, 밝지 못한 것, 이것을 무명이라 이름하며, 이를 갖춘 이를 무명을 가졌다고 이름합니다.”[불확실]
불확실 五受陰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다. 受(받아들임, 취함)+陰(무더기)로 뜻을 옮겨 「받아들임의 무더기」로 적었다. 受陰의 受는 앞의 受(vedanā) 느낌과 다른 말이다(정형구 행은 受陰 ↔ upādānakkhandha 「취착 무더기」를 보이나 낱말 확정역은 아니다). 후보가 「받아들임의 무더기」 · 「취착 무더기」 · 「오음」으로 갈려 을 남긴다. 無間等은 사전 無間 ① 뒤 等者 46 · 等 39로 아함 정형구이다. 無間=틈이 없음(음의 慧琳 0564a19: 간격), 等=고름이라 뜻으로 「틈 없이 고르게 됨」으로 옮겼고 확정이 아니다. 闇 「어둡고」 · 愚 「어리석고」 · 不明 「밝지 못한」은 한문 그대로. 見은 정형구 행의 「뵙는 것」(dassana)이 아니라 「보다」다(다의어 [불확실]). 팔리 127.10~127.11 「Ayaṃ vuccati … avijjā; ettāvatā ca avijjāgato hoti」는 짝이나 한역에 五受陰의 알지 못함·보지 못함 열거가 더 있고, 팔리에는 그 열거가 없다(한역에만 있음). 是名無明 ↔ ayaṃ vuccati avijjā, 成就此者名有無明 ↔ avijjāgato hoti(「무명에 이른 이」). 有는 「가졌다」의 소유 서술. 於는 대상 조사로 흡수. 成就此者의 者는 「이」(사람). 마하구치라는 앞 좌표의 표기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7:127.10~127.11
又問:「舍利弗!所謂明者,云何為明?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이른바 명이란 무엇이 명이 됩니까?
주 사리불은 정착어(「사리의 아들」, 음의 慧琳 0478b23). 짝은 보조 증언 sn22.128 「‘vijjā, vijjā’ti, āvuso sāriputta, vuccati. Katamā nu kho, āvuso, vijjā」이다. 여기서는 호격(舍利弗)이 살아 있다(b28.1에서는 탈락). 又는 앞 문답에 이어 새 질문을 거는 접속이라 「또」로 옮겼다. 為는 「이 되다」로 옮겼다(為…所 피동이 아니다). 者는 「이란」. 明은 정착어 「명」으로 적었다(明/무명 짝). 이 한역은 팔리 두 경(sn22.127 무명 · sn22.128 명)을 한 경으로 이어 놓았다(구조·배열).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8:128.2~128.3
誰有此明?」
누가 이 명을 갖고 있습니까?”
주 팔리 128.3 후반 「kittāvatā ca vijjāgato hoti」(얼마만큼으로 명에 이른 이가 되는가)와 짝이고, 물음의 초점이 「얼마만큼」에서 「누구」로 옮겨 있다(b29.2와 같다).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8:128.3
舍利弗言:「摩訶拘絺羅!所謂明者是知,知者是名為明。」
사리불이 말했다. “마하구치라여, 이른바 명이란 앎이며, 아는 것을 이름하여 명이라 합니다.”
주 사리불은 정착어(「사리의 아들」, 음의 慧琳 0478b23). 「명은 앎」이라는 정의 문장은 팔리 128.3에서 128.4로 넘어가는 자리에 없다(없음확인). 知者是名為明의 是名為明은 「이름하여 ~라 한다」다(앞 b29.3의 「不知者是無明」과 달리 名為가 들어 있어 통일하지 않았다). 者는 명사화.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8:128.3~128.4
又問:「何所知?」
또 물었다. “무엇을 아는 것입니까?”
주 화자 표지가 한문에 없고, 앞뒤 문답으로 마하구치라의 물음이다(c01.1과 짝인 되묻기). 이 되묻기 문장도 팔리에 없다(없음확인). 所는 명사화 「아는 것」.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8:128.3~128.4
「謂知色無常,知色無常如實知;色磨滅法,色磨滅法如實知;色生滅法,色生滅法如實知。
“이른바 물질이 무상함을 알고, 물질이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알며; 물질이 닳아 없어지는 법이라는 것, 물질이 닳아 없어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며; 물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라는 것, 물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주 앞 c02.1의 짝(알지 못함 ↔ 앎). 한역 첫 꼴은 「知色無常,知色無常如實知」로 첫 절에도 知가 있고, 둘째·셋째 꼴(「色磨滅法,色磨滅法如實知」)은 첫 절에 知가 없다. 한문이 다르게 쓰므로 통일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無常 ↔ samudayadhamma의 뜻 갈림, 磨滅法 ↔ vayadhamma, 生滅法 ↔ samudayavayadhamma는 앞과 같다. 팔리 128.4의 「Idhāvuso, sutavā ariyasāvako」(여기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한역에 없다. 팔리 128.5의 vayadhammaṃ 둘째 꼴 안쪽은 …pe…로 접혀 있어 한역 磨滅法 반복은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8:128.4~128.5
受、想、行、識無常,受、想、行、識無常如實知,識磨滅法,識磨滅法如實知,識生滅法,識生滅法如實知。
느낌, 인식, 형성, 의식이 무상하다는 것, 느낌, 인식, 형성, 의식이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알고, 의식이 닳아 없어지는 법이라는 것, 의식이 닳아 없어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알고, 의식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라는 것, 의식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임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주 앞 c04.1과 같은 묶음 꼴이다 — 受想行識은 무상에서만 묶이고 磨滅·生滅에는 識 하나만 있다. 펴지 않았다. 無常은 이문(大正 원탈, CBETA 補; 앞 c04.1의 주 참조). 팔리 128.6~128.7은 vedanā · saññā · saṅkhāra · viññāṇa를 따로 들고 …pe…와 줄임표로 접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8:128.6~128.7
拘絺羅!於此五受陰如實知、見、明、覺、慧、無間等,是名為明;成就此法者,是名有明。」
“구치라여, 이 다섯 받아들임의 무더기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밝고, 깨닫고, 지혜롭고, 틈 없이 고르게 됨, 이것을 명이라 이름하며; 이 법을 갖춘 이, 이를 명을 가졌다고 이름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이 같은 인물을 이 좌표에서 「마하」를 뗀 拘絺羅로 부른다(통일하지 않고 「구치라」로 옮김; 사전 羅 ① 이 경 0064b24.1 · 0064c15.1). 열거 「如實知、見、明、覺、慧、無間等」은 c06.1의 「如實不知、不見、無無間等、愚、闇、不明」과 같은 꼴의 반대이나 글자가 다르다(愚·闇 대신 覺·慧). 한문대로 두었다. 覺은 정형구 행에서 vedanā「느낌」으로 나오지만 이 자리는 「깨닫다」다(다의어 ). 慧는 「지혜롭고」, 明은 「밝고」, 無間等은 앞 좌표와 같은 풀이(「틈 없이 고르게 됨」). 팔리 128.8~128.9 「Ayaṃ vuccatāvuso, vijjā; ettāvatā ca vijjāgato hoti」는 짝이나 五受陰에 대한 앎·봄 열거는 한역에만 있다. 是名為明 ↔ ayaṃ vuccati vijjā, 成就此法者是名有明 ↔ vijjāgato hoti(「명에 이른 이」). 앞 c06.1은 「成就此者」, 이 좌표는 「成就此法者」다(法 한 글자 차이, 한문대로 「이 법」). 受陰은 앞 좌표의 처리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8:128.8~128.9
是二正士各聞所說,展轉隨喜,從坐而起,各還本處。
이 두 바른 사람이 각각 설한 것을 듣고, 서로 번갈아 따라 기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본래의 처소로 돌아갔다.
주 팔리 sn22.128은 128.9 뒤에 곧바로 「Tatiyaṃ」(종결 표지)로 끝나 이 한역의 맺음 문장(듣고 기뻐하고 물러감)이 없다(없음확인). 正士는 「바른 사람」으로 옮겼다(사전 正士 ① 앞 時二 52 · 뒤 共論 47의 정형구, 丁福保의 「보살」은 후대 풀이라 쓰지 않았다). 展轉은 「서로 번갈아」(음의 慧琳 0605b12), 隨喜는 「따라 기뻐함」. 所說의 所는 「설한 것」, 而는 흡수(「일어나」). 本處는 「본래의 처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8:128.9~12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