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四八)
(이백사십팔)
주 한역은 경 번호만 있고 제목이 없다. 팔리는 번호 234와 제목 「Udāyīsutta」가 있다. 교감주 「S. 35. 193. Udāyī」는 다카쿠스 각주(PTS 번호)라 우리 PN(sn35.187)과 번호가 어긋난다. 후보 계열이 갈린 `conflict`이며(莊春江→sn35.187 · 다카쿠스→sn35.193, 뒤쪽 원문은 미투입) 어느 쪽도 정답으로 보지 않고 사실만 신고한다. 산스크리트 증언 파일은 투입되지 않아 대응 줄에 SF 항을 달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0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35.187은 「Evaṃ me sutaṃ」 없이 `Ekaṃ samayaṃ`(234.1)으로 시작한다. 한역의 개경 정형구에 해당하는 문장이 이 팔리 본에 없음을 확인했다. 如是=「이와 같이」(如의 비유 기능은 부사어로 이미 섰다).
一時,佛住波吒利弗多羅國雞林園。
한때 부처님께서 파타리불다라국 닭숲 동산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 [구속]. 波吒利弗多羅=음역(한자가 소리를 옮김)이라 독음 「파타리불다라」, 國=나라. 전거 多羅(Tāla)는 다른 부(MA)의 대역이라 이 자리에 걸지 않았다. 雞林園=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보아(雞=닭, 林=숲, 園=동산) 「닭숲 동산」, 인도어형은 투입물에 없다. 팔리는 장소가 Kosambī의 Ghositārāma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곳이다. 一時=「한때」(사전 一時 ① 뒤 佛住 126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7:234.1
爾時,尊者阿難往詣尊者大純陀所,共相問訊已,於一面坐。
그때 존자 아난이 존자 대순타에게 나아가,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뜻 「기쁨」 — 음의 慧琳 0482c03 「阿難陀此云慶喜」). 純陀=음역이라 독음 「순타」(음의 慧琳 0466a04 「或云准多 此云解妙義」, 사전 純陀 ⑤). 大純陀의 大가 뜻으로 옮긴 접두인지 이름의 일부인지 저본만으로 못 정해 독음 「대순타」로 두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이 경의 순타 자리는 모두 팔리 Udāyī 자리다(개별 어휘). 팔리 234.2는 Udāyī가 Ānanda에게 나아가는데 한역은 阿難이 나아간다 — 방문자와 피방문자가 서로 바뀐다. 共相問訊=「서로 안부를 묻고」(사전 共相 ① 뒤 問訊 55), 已=종결 어미가 진다. 於一面坐=「한쪽에 앉았다」(사전 一面 ① 退坐 359) ↔ ekamantaṃ nisīdi. 팔리 234.4 sammodanīyaṃ kathaṃ…(덕담 나눔)은 한역에 따로 없다. 所(往詣…所)=처소,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2~234.4
爾時,尊者阿難語尊者純陀言:「欲有所問,寧有閑暇見答與不?」
그때 존자 아난이 존자 순타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답해 주실 한가한 틈이 있습니까?"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음의 0482c03). 欲有所問,寧有閑暇見答與不=허락을 청하는 정형(사전 欲有 ③ sa106·sa1158 용례, 閑暇 ① 寧有 24/26). 팔리 234.5는 곧바로 말을 시작하고 허락을 구하는 문장이 없다. 所(欲有所問)=관형절 「묻고 싶은 것」, 寧=반문 부사·與不(A不 의문형)=의문 어미로 흡수, 見答의 見=「(나에게) 해 주시다」의 수혜 표지로 보아 「대답해 주실」로 흡수. 이문 與【大】/以【元】【明】 — 저본 與를 따랐고 뜻 영향은 없어 보인다. 閑暇 음의 慧琳 0401a22 「暇猶閑」.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5
尊者純陀語尊者阿難言:「隨仁所問,知者當答。」
존자 순타가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어지신 분께서 묻는 대로 아는 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순타 b18.1 참조. 仁=2인칭 경칭(사전 仁者 ⑥ 丁福保 「呼人之敬稱」은 후대 참고, 음의 慧琳 0496c07은 음풀이뿐)이라 직역 「어지신 분」. 當=어미 「-겠습니다」로 흡수(앵커), 所問=「묻는 것」으로 관형절 처리. 知者當答=사전 知者 ① 當答 15회 정형. 팔리는 234.5와 234.6 사이에 수락 문장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5~234.6
尊者阿難問尊者純陀:「如世尊、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四大造色,施設顯露,此四大色非我,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亦復說識非我耶?」
존자 아난이 존자 순타에게 물었다. "세존, 여래, 응공,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알고 보시는 대로 사대가 만든 색을 말씀하시고 베풀어 세워 드러내시니, 이 사대의 색은 나가 아닙니다. 여래, 응공,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알고 보시는 대로 식 또한 나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까?"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순타 b18.1 참조. 世尊=세존 · 如來=여래 ·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 [구속]. 應=應供의 약칭으로 읽어 「응공」 — 앵커의 應 [당위]는 如來、應、等正覺 칭호열인 이 자리에 맞지 않는다. 확정 술어에 應의 낱말 확정은 없고 사전 應 ⑥(丁福保 「又曰應供」)은 후대 참고뿐이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四大=「사대」(3분할표는 음역으로 분류하나 한국어 정착형이 독음과 같아 결과가 같다). 造色=四大가 만든 색. 施設顯露=「베풀어 세우고 드러냄」(사전 施設 ①). 我=「나」(확정 없음; 니까야 attā 확정 「자기 자신」과의 정합은 정도평 판단)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非我 절에는 說 같은 동사가 없어 문장을 나누었다. 亦復=「또한」, 耶=의문 어미 흡수. 팔리 234.6~8은 Udāyī가 kāya(몸)와 viññāṇa의 anattā를 묻는 자리라 한역의 四大造色과 어휘가 갈린다. 팔리 일곱 동사(ācikkhituṃ…uttānīkātuṃ)는 한역 說…施設顯露로 줄었고 anekapariyāyena(여러 방법으로)는 한역에 없다. 묻는 이가 팔리는 Udāyī, 한역은 阿難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6~234.8
尊者純陀語尊者阿難言:「仁者最為多聞,我從遠來詣尊者所,為問此法故,今日,尊者!唯願為說此義。」
존자 순타가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어지신 분께서는 가장 많이 들은 분입니다. 저는 멀리서 와서 존자께 나아갔으니, 이 법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존자여! 바라건대 저를 위해 이 뜻을 설해 주십시오."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순타 b18.1 참조. 한역은 순타가 청법(請法)하는 말이고, 팔리 234.9~11은 Ānanda가 Udāyī의 물음을 긍정하는 답(sakkā evameva viññāṇaṃ…)이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한문 안의 사실: b18.1에서는 아난이 순타에게 나아갔는데 여기서는 순타가 멀리서 와 아난께 나아갔다고 한다 — 한문 그대로 두었다. 唯願=청원 정형(사전 唯 뒤 願 40/250)이라 唯는 「바라건대」에 흡수. 最為多聞=「가장 많이 들은 분」(사전 多聞 ①). 仁者=「어지신 분」(b21.1 참조). 今日=「오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7:234.9~234.11
尊者阿難語純陀言:「我今問尊者,隨意見答。
존자 아난이 순타에게 말했다. "제가 이제 존자께 묻겠으니, 뜻대로 대답해 주십시오."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순타 b18.1 참조. 隨意=「뜻대로」(사전 隨意 ① 問汝 22/答我 23 정형), 見答의 見은 b19.1 참조. 팔리는 234.12에서 곧바로 문답에 들어가 이 문장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11~234.12
尊者純陀!為有眼、有色、有眼識不?」
존자 순타여! 눈이 있고 색이 있고 눈의 식이 있습니까?
주 순타 b18.1 참조. 為…不=의문형, 為와 不은 의문 어미로 흡수. 有=존재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고」를 세웠다. 眼識=「눈의 식」, 色=「색」(사전 色 ① 대상). 한역은 존재 확인 질문을 따로 세우고, 팔리 234.12는 cakkhu·rūpa·cakkhuviññāṇa 세 항을 연기(paṭicca uppajjati) 한 문장에서만 묻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12
答言:「有。」
대답하여 말했다. "있습니다."
주 앞 좌표 존재 질문의 답이다. 팔리에는 이 문답이 없음을 확인했다. 答言=「대답하여 말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11~234.12
尊者阿難復問:「為緣眼及色,生眼識不?」
존자 아난이 다시 물었다. "눈과 색을 연하여 눈의 식이 생깁니까?"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緣=「연하여」(paṭicca), 生眼識=「눈의 식이 생김」(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復=앞 질문에 이어진 되풀이 질문이라 뜻이 실려 「다시」를 세웠다. 為…不는 의문 어미로 흡수.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87:234.12
尊者阿難復問:「若眼及色生眼識,彼因、彼緣,為常、為無常?」
존자 아난이 다시 물었다. "눈과 색으로 눈의 식이 생기면, 그 인과 그 연은 항상합니까, 무상합니까?"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若=가정 「-면」. 彼因、彼緣=「그 인과 그 연」(hetu·paccayo; 확정 없음, 정착 독음). 為常、為無常=선택의문. 팔리 234.14는 그 인·연이 남김없이 소멸하면 어떠한지를 이어 묻고 상·무상의 이지선택은 없다. 이문 若【大】/緣【宋】【元】【明】 — 저본 若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14
答言:「無常。」
대답하여 말했다. "무상합니다."
주 無常=「무상」(정착어). 인·연이 무상한지 묻고 답하는 문답이 팔리에 없음을 확인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14~234.15
尊者阿難又問:「彼因、彼緣生眼識,彼因、彼緣無常變易時,彼識住耶?」
존자 아난이 또 물었다. "그 인과 그 연으로 눈의 식이 생기는데, 그 인과 그 연이 무상하게 변하고 바뀔 때 그 식이 머뭅니까?"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無常變易=「무상하게 변하고 바뀜」(사전 變易 ① 變易法; 음의 慧琳 0325c11 「變易也異也」). 識住=여기서는 「식이 머문다」로 옮겼으나 술어 識住(viññāṇaṭṭhiti)일 가능성을 못 가렸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팔리 nirujjheyya(남김없이 소멸한다면)는 無常變易(변역)과, paññāyetha(알려지겠는가)는 住(머문다)와 어휘가 갈린다. 팔리는 한 질문(234.14~15)을 한역은 둘(常·無常 / 변역 시 識住)로 나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14~234.15
答曰:「不也,尊者阿難!」
대답했다. "아닙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不也=부정 답이고 也=판단종결은 어미가 진다. 팔리 호칭은 일반호격 āvuso, 한역은 이름을 부른다. 答曰=「대답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87:234.16
尊者阿難復問:「於意云何?
존자 아난이 다시 물었다. "생각에 어떻습니까?"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於意云何=정형 질문(「생각에 어떠한가」), 意=감각 기반의 意와 구별해 「생각」, 云何=의문 어미, 於=조사로 흡수. 팔리에 이 정형이 없음을 확인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16~234.17
彼法若生、若滅可知,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
"그 법이 생기든 사라지든 알 수 있는데,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그 가운데서 이것이 나라고, 나와 다르다고, 서로 있다고 보겠습니까?"
주 若生、若滅=이접(생기든 사라지든)이지 가정이 아니라고 보아 「-는데」로 이었다(앵커의 若 가정 라벨과 다르다). 可知=「알 수 있다」. 寧=반문, 於中=「그 가운데서」. 多聞聖弟子=「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확정 없음). 是我、異我、相在=사전 相 ① 異我 80/在不 61 정형. 相在의 뜻이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직역 「서로 있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我=「나」(b22.1 참조). 팔리 234.17~18은 이 방법으로도 식이 anattā라고 세존이 밝히셨다는 결어이고, 한역은 성스러운 제자가 나를 보는지 묻는 질문이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7:234.17~234.18
答曰:「不也,尊者阿難!」
대답했다. "아닙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앞 좌표 질문의 답이며 팔리에 대응 답이 없음을 확인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17~234.18
「耳、鼻、舌、身、意、法,於意云何?
"귀, 코, 혀, 몸, 뜻, 법은 생각에 어떻습니까?"
주 한역은 耳·鼻·舌·身·意·法을 한 줄에 놓고 문답을 따로 펴지 않는다(乃至 등 생략표지 낱말은 없어 `[생략표지]`가 아니다). 대상은 法만 적고 聲·香·味·觸은 적지 않는다. 팔리는 jivhā·rasa를 234.19~23에서 펴고 귀·코·몸은 …pe…(234.18·234.24)로 접는다.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87:234.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19~234.24
有意、有法、有意識不?」
뜻이 있고 법이 있고 뜻의 식이 있습니까?
주 존재 확인 질문(b29.1과 같은 꼴)이 한역에만 있다. 意識=「뜻의 식」. 팔리 234.25는 연기 한 문장뿐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25
答曰:「有。
대답했다. "있습니다."
주 존재 질문의 답이다. 팔리 234.24의 …pe…는 몸의 접힌 안쪽이라 이 자리(234.24와 234.25 사이)를 가리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24~234.25
尊者阿難!」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앞 좌표 「有。」에 이어지는 호격으로, 저본이 한 발화를 두 좌표로 끊었다. 존재 문답이 팔리에 없으므로 호격도 대응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24~234.25
復問:「為緣意及法,生意識不?」
다시 물었다. "뜻과 법을 연하여 뜻의 식이 생깁니까?"
주 주어(존자 아난)는 앞 좌표에서 이어져 한문에 없다. 팔리 Manañcāvuso, paṭicca dhamme ca uppajjati manoviññāṇaṃ. 復=되풀이 질문의 「다시」.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87:234.25
答曰:「如是,尊者阿難!」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如是=「그렇다」(Evamāvuso). 호칭은 팔리 āvuso, 한역 이름 호격.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87:234.26
復問:「若意緣法生意識,彼因、彼緣,為常、為無常。」
다시 물었다. "뜻이 법을 연하여 뜻의 식이 생기면, 그 인과 그 연은 항상합니까, 무상합니까?"
주 若=가정 「-면」. 저본 끝 부호가 「。」이나 為常、為無常은 선택의문이라 의문으로 옮겼다. 상·무상의 이지선택은 팔리에 없고 234.27은 인·연이 소멸하면 식이 알려지겠는가를 묻는다(c02.2와 같은 갈림).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27
尊者阿難!」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앞 좌표 「無常。」에 이어지는 호격으로, 저본이 한 발화를 두 좌표로 끊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27~234.28
復問:「若因、若緣生意識,彼因、彼緣無常變易時,意識住耶?」
다시 물었다. "인이든 연이든 뜻의 식이 생기는데, 그 인과 그 연이 무상하게 변하고 바뀔 때 뜻의 식이 머뭅니까?"
주 若因、若緣=이접(인이든 연이든)이라 앞 질문의 彼因、彼緣(그 인과 그 연)과 문형이 다르다 — 한문 흔들림을 통일하지 않았다. 識住=c04.1과 같은 판별 문제 [불확실:다의어_판별]. 팔리 nirujjheyya·paññāyetha와의 갈림은 c04.1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27~234.28
答曰:「不也,尊者阿難!」
대답했다. "아닙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不也=「아닙니다」 ↔ No hetaṃ, āvuso.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87:234.28
復問:「於意云何?
다시 물었다. "생각에 어떻습니까?"
주 於意云何는 c06.1과 같다. 팔리에 이 정형이 없음을 확인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28~234.29
彼法若生、若滅可知,多聞聖弟子寧於中見我、異我、相在不?」
"그 법이 생기든 사라지든 알 수 있는데,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그 가운데서 나를, 나와 다른 것을, 서로 있는 것을 보겠습니까?"
주 c06.2와 같은 물음이나 문형이 다르다. 앞은 見是我,여기는 見我로 是가 빠졌고 寧의 자리도 바뀌었다. 한문 흔들림을 통일하지 않고 「이것이 나라고」와 「나를」로 가렸다. 相在의 뜻은 c06.2 참조 [불확실:뜻_판별불가]. 팔리 234.29~30은 세존이 밝히신 anattā 결어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7:234.29~234.30
答言:「不也,尊者阿難!」
대답하여 말했다. "아닙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앞 질문에 대한 답이며 팔리에 대응 답이 없음을 확인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29~234.30
尊者阿難語純陀言:「是故,尊者!而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識亦無常。
존자 아난이 순타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존자여! 여래, 응공,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알고 보시는 대로 식 또한 무상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 아난=정착어(뜻 慶喜), 순타 b18.1 참조. 是故=「그러므로」, 而=접속이라 흡수. 如來=여래 ·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 [구속]. 應=「응공」(b22.1 참조)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한문 안의 사실: 질문(b22.1)은 識非我였는데 결어는 識亦無常이다. 팔리 234.29~30의 결어는 anattā라 한역(無常)과 어휘가 갈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7:234.29~234.30
譬如士夫持斧入山,見芭蕉樹,謂堪材用,斷根、截葉、斫枝、剝皮,求其堅實,剝至於盡,都無堅處。
비유하면 사내가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가 파초나무를 보고 재목으로 쓸 만하다고 여기고, 뿌리를 자르고 잎을 베고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겨 그 단단하고 실한 것을 구하며, 벗겨서 다하는 데 이르러도 단단한 곳이 전혀 없다.
주 팔리 여섯 문장(234.31~36)이 한역 한 문장이다. 한역에 없는 것: 날카로운 도끼(tiṇhaṃ), 크고 곧고 새로운(mahantaṃ ujuṃ navaṃ akukkukajātaṃ), 심재를 구하는 자라는 도입(sāratthiko sāragavesī). 팔리에 없는 것: 謂堪材用(재목으로 쓸 만하다고 여김). 칼질도 갈린다: agge chindeyya(꼭대기를 자름) ↔ 截葉·斫枝, pattavaṭṭiṃ vinibbhujeyya(잎집을 벗김) ↔ 剝皮, pheggu(속살)·kuto sāraṃ ↔ 堅處·剝至於盡. 芭蕉=뜻으로 옮긴 말(3분할표 의역)이라 「파초」; 전거 Kadalī, 음의 慧琳 0328a12. 이문 截葉、斫枝(CB) / 斫葉【大】 / 葉斫杖【宋】【元】【明】 — 저본(CB)을 따랐다. 士夫=「사내」. 斷·截·斫·剝은 구별해 「자르고·베고·치고·벗겨」. 堅實=「단단하고 실한 것」(팔리 sāra에 해당하는 자리).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31~234.36
如是多聞聖弟子正觀眼識,耳、鼻、舌、身、意識。
이와 같이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눈의 식과, 귀·코·혀·몸·뜻의 식을 바르게 관한다.
주 bhikkhu ↔ 多聞聖弟子, chasu phassāyatanesu(여섯 접촉 영역) ↔ 眼識…意識(식)으로 어휘가 갈린다. nevattānaṃ na attaniyaṃ samanupassati(자기 자신도 자기 것도 아니라고 봄)에 해당하는 말이 한역에 없고 正觀만 있다 — 관하는 내용을 비워 둔 채 증보하지 않았다. 耳、鼻、舌、身、意識의 識이 앞 항까지 걸리는 것으로 읽어 「귀·코·혀·몸·뜻의 식」으로 옮겼다 [불확실:구두·분절]. 正觀=「바르게 관함」(사전 正觀 ①).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37
當正觀時,都無可取,無可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바르게 관할 때 모두 취할 것이 없고, 취할 것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열반을 깨닫는다.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행은 섰고, 해야 할 일은 했으니,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當…時=「…할 때」 구문이라 當은 흡수. 팔리는 na kiñci loke upādiyati → na paritassati → 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 pajānāti의 네 단인데 한역은 無可取 → 無所著 → 自覺涅槃의 세 단이고 loke(세간)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paritassati(떨다)는 無所著(집착이 없음)과 어휘가 갈린다. 自覺·自知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했고(사전 自覺 ① 涅槃 19, 自知 ① 不受 158), 팔리 paccattaṃ에 해당하는 뜻은 비고로만 둔다. 覺=「깨닫다」로 옮겼는데 정형구 행의 覺(vedanā, 느낌)과는 다른 동사 용법으로 보인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涅槃=독음 「열반」, 3분할표가 혼합으로 분류한 것은 기계 1차 분류라 소리인지 뜻인지 확정하지 못했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전거: 팔리형 Nibbāna(EA 대역) / 당대 범어 nirvāṇa —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음역계통). 음의 慧琳 0463b14 「此翻為圓寂」. 梵行=뜻으로 「청정한 행」(3분할표 의역; 음의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 生=「태어남」, 後有=「뒤의 존재」. 마지막 구는 팔리 nāparaṃ itthattāya(이 상태로는 더 없다)와 한역 不受後有가 어휘가 갈리고, 한역은 1인칭 인용(我…)이나 팔리는 3인칭 pajānāti다. 所(無所著·所作)=관형절 처리, 已=과거 어미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7:234.38~234.41
彼二正士說是法時,展轉隨喜,各還其所。
그 두 바른 사람이 이 법을 설했을 때, 번갈아 따라 기뻐하고 각기 제 처소로 돌아갔다.
주 팔리는 234.41 정형구로 설법을 닫고 234.42 「Sattamaṃ」(일곱째)뿐이라 한역의 마무리 문장이 없음을 확인했다. 正士=뜻으로 「바른 사람」(확정 없음; 사전 正士 ① 時二 52 정형이며 사전 ⑥의 「菩薩一譯正士」는 후대라 쓰지 않았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展轉=「번갈아」(사전 展轉 ① 뒤 隨喜 8; 별도로 사전 展轉 ⑤ 음의 慧琳 0605b12), 隨喜=「따라 기뻐함」. 所=「처소」. 이문 二【CB】/一【大】 — 저본 二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7:234.41~23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