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四一)
(241)
주 한역 좌표는 제목 없이 번호 二四一(교감주 있음)만 둔다. 팔리 235.0은 번호 235이고 제목(Ādittapariyāyasuttaṃ)은 0.3에 있다 — 번호만 서로 걸리므로 일부로 적고, 번호 체계가 다르다(저본 머리 大正 241 / 莊春江 sn35.235→PN sn35.188 / 다카쿠스 PTS S.35.194). 교감주 「S. 35. 194. Ādittena.」는 편자 각주이므로 직역에 넣지 않는다. 팔리 대응 후보는 계열끼리 갈린다(합의 등급 conflict): 작가에게 투입된 것은 sn35.188(莊春江 경로)이고 다카쿠스 sn35.194는 미투입이다 — 어느 쪽도 판정하지 않고 사실만 신고한다. 투입물에 산스크리트가 없어 산스크리트 항은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한역 개경 정형구(如是我聞, 이 아함 전권 1332회). 투입된 팔리 sn35.188은 곧바로 235.1(법문 제시)로 시작하고 개경 문장이 없다 — 이 팔리 텍스트에 없다는 사실만 적는다(같은 상윳따 앞 경에서 이어받는 체제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如는 정형구 안의 `이와 같이`로, 비유·가정 부사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一時,佛住毘舍離獼猴池側重閣講堂。
한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의 원숭이 못 곁 겹누각 강당에 머무셨다.
주 팔리 sn35.188에는 처소 문장이 없다(지명 언급 없음).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 毘舍離는 3분할표의 정착어이므로 정착형 「비사리」를 쓰고 뜻을 적는다 — 음의 慧琳 0447b17(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은 「此翻為廣博,謂此城中於中印度諸城之中最廣大也,或亦翻為廣嚴」라 풀이한다(널리 넓음·광대함). 전거 팔리_후보 Vesālī(⚠다른 부(DA)의 대역, 인용만, 판정 없음). 獼猴池·重閣講堂은 표에 없는 이름이라 직접 판별했다: 獼猴=원숭이(음의 慧琳 0430c24 寶星陀羅尼經 「沐猴也」), 池=못이고 사전 獼猴池 ⑥(丁福保 1922, 후대라 가볍게)도 「末迦吒此云猴,賀邏馱,此云池」로 뜻풀이를 인용하므로 뜻으로 옮긴 이름(의역)으로 보고 「원숭이 못」으로 옮겼다. 다만 음의 慧琳 0756b04(大毘婆沙論)에는 獼猴를 「西國地名」으로 적은 항도 있어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重閣=음의 慧琳 0558c07 「閣樓也,顧野王云重屋也」에 따라 겹누각, 講堂=강당. 重閣講堂을 「중각강당」으로 정착형처럼 쓰는 관행이 있는 줄 알지만 정착어 목록 확정은 정도평 님 몫이라, 의역으로 옮기고 유형 판별을 남긴다. 佛住의 住는 「머무셨다」(내레이션 평서, 주체 높임). 한자 흔들림은 a08.1 비고에 신고한다(이 경은 화자를 佛과 世尊으로 적는다).
爾時,世尊告諸比丘:「愚癡無聞凡夫,比丘!寧以火燒熱銅籌以燒其目,令其熾然,不以眼識取於色相、取隨形好。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들은 것 없는 범부는, 비구여, 차라리 불에 달군 구리 꼬챙이로 그 눈을 태워 그것을 활활 타오르게 할지언정, 눈의 의식으로 형색의 모습을 취하고 모양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지는 않는다.
주 ①문장 유무 — 팔리 235.1~235.3(「이제 불의 법문을 설하겠다」·「들으라」·「불의 법문이란 무엇인가」)은 한역에 없고, 한역은 곧바로 寧…不 문형으로 들어간다. 한역의 `愚癡無聞凡夫`(어리석고 들은 것 없는 범부)는 팔리 235.4에 없는 한정어다. ②개별 어휘 — 팔리 tattāya ayosalākāya(달구어진 쇠 꼬챙이)는 쇠(ayo)인데 한역은 銅籌(구리 籌)다. 팔리의 세 겹 수식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타고·활활 타고·불꽃이 된)는 한역에서 熾然 하나로 줄어든다. 팔리는 눈의 감각능력(cakkhundriya)을 sampalimaṭṭha(문지름 쪽의 말)하는 것이고 한역은 燒其目(눈을 태움)이다. 팔리 cakkhuviññeyyesu rūp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 한역 以眼識取於色相、取隨形好 — 취함의 동사와 대상 항목이 대응하는 듯하나 본문은 한문대로 옮겼고, 한역은 `눈의 의식으로 취함`, 팔리는 `눈의 의식이 알아볼 형색들에서의 표상 취함`이라 문형이 다르다. 隨形好는 사전 隨形好 ⑥(丁福保 1922, 후대 상호(相好) 해설이라 가볍게 인용)이 「隨相之形容」으로 풀이한다. ③籌 — 본뜻은 산가지(셈막대)이나 눈을 지지는 도구이므로 문맥으로 「꼬챙이」로 읽었다(팔리 salākā 쪽) [다의어_판별]. ④令其熾然의 其가 눈인지 꼬챙이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그것」으로 두었다 [격·태·구문]. ⑤저본 이문: 熾 ↔ 燒【宋】【元】【明】(令其燒然), 교감주 「熾=燒【三】」 — 大正본 熾를 따랐다. ⑥한자 흔들림 — 이 경은 같은 화자를 世尊(여기)과 佛(0.3·b19.1)로 달리 적는다. 확정역이 서로 달라(세존/부처님) 통일하지 않고 신고한다. 世尊은 [구속] 확정역 「세존」, 比丘 「비구」(호격은 단수형 表記이나 청중은 諸比丘). ⑦허사 — 寧은 뜻이 실려 「차라리」, 寧…不은 어미 「-ㄹ지언정」이 지고, 令은 사역으로 「하게」, 以·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眼識의 識은 확정 정형구 문자열대로 「의식」, 色은 「형색」.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한역에만 있는 자문(所以者何)이다. 팔리는 235.4에서 곧바로 235.5로 이어진다. 所는 「~하는 바」를 쓰지 않고 `그 까닭은`으로 풀었고, 者는 명사화·의문 표지로 흡수했다.
取於色相、取隨形好故,墮惡趣中如沈鐵丸。
형색의 모습을 취하고 모양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기 때문에,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가라앉는 쇠구슬 같다.
주 ①팔리 235.5는 「표상의 맛에 얽힌 의식이 머문 채 그때 죽는다면 두 갈래 중 한 갈래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 서술(kālaṃ kareyya + ṭhānametaṃ vijjati)이고, 한역은 取…故 → 墮惡趣로 단정한다 [구조·배열]. 팔리 235.6은 지옥·축생의 두 갈래를 명시하고 한역은 惡趣 총칭이다 [개별 어휘]. 如沈鐵丸 비유는 팔리에 없고, 팔리 235.7(「이 위험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은 한역에 없다 [문장 유무]. ②이 좌표에는 身壞命終이 없다(귀·코·혀·몸 단락에는 있다) — 한문 그대로 옮겼다. ③惡趣 — 사전 惡趣 ① 89회·③ 용례(墮惡趣 계열). 趣는 「갈래」로 옮겼고 한국 불교계 정착형 「악취」가 있으나 한 경 안 표기를 위해 뜻으로 옮겼다. ④한자 흔들림 — 같은 개념을 이 경은 惡趣(a11.2~a24.2)·三惡趣(a29.1)·三惡道(b05.1)로 적고, a17.2에는 趣=道【明】 이문이 있다. 확정역이 없어 통일하지 않고 趣=갈래·道=길로 옮겼다(팔리는 둘 다 gati 계열이라 짐작되나 판정하지 않음). ⑤如는 비유가 실려 「같다」로 세웠고, 沈은 「가라앉는」, 鐵丸은 「쇠구슬」.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5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7
「愚癡無聞凡夫,寧燒鐵錐以鑽其耳,不以耳識取其聲相、取隨聲好。
「어리석고 들은 것 없는 범부는 차라리 쇠송곳을 달구어 그 귀를 뚫을지언정, 귀의 의식으로 그 소리의 모습을 취하고 소리를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지는 않는다.
주 팔리 tiṇhena ayosaṅkunā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날카로운 쇠 말뚝, 타고·활활 타고·불꽃이 된)는 한역 燒鐵錐(달군 쇠송곳)로 줄고, 팔리 sot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귀의 감각능력을 문지름 쪽)은 한역 鑽其耳(그 귀를 뚫음)다 [개별 어휘] — sampalimaṭṭha와 鑽의 뜻이 같은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한역에는 팔리에 없는 愚癡無聞凡夫가 다시 붙는다 [문장 유무]. 燒鐵錐는 `쇠송곳을 달구어`로 燒를 동사로 읽었다. 其聲相의 其는 「그」로 옮겼다. 耳識의 識은 「의식」.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8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한역에만 있는 자문이다(a11.1과 같은 구실). 팔리 235.8에서 235.9로 곧바로 이어진다.
耳識取聲相、取隨聲好者,身壞命終墮惡趣中如沈鐵丸。
귀의 의식으로 소리의 모습을 취하고 소리를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는 이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가라앉는 쇠구슬 같다.
주 팔리 235.9~235.10은 `그때 죽는다면(kālaṃ kareyya)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 서술이고, 한역은 `身壞命終 → 墮惡趣`의 단정이며 身壞(몸이 무너짐)에 해당하는 말이 팔리에 없다 [개별 어휘]. 如沈鐵丸은 팔리에 없고, 235.11(「이 위험을 보고…」)은 한역에 없다. 者는 명사화 겸 조건 표지라 「~하는 이는」으로 옮겼다. 사전 命 ① 338회(身壞命終 계열 앞 100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9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11
「愚癡無聞凡夫,寧以利刀斷截其鼻,不以鼻識取於香相、取隨香好。
「어리석고 들은 것 없는 범부는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그 코를 베어 끊을지언정, 코의 의식으로 향기의 모습을 취하고 향기를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지는 않는다.
주 팔리 tiṇhena nakhacchedanena(날카로운 손톱깎이)는 한역 利刀(날카로운 칼)로 도구가 갈린다 [개별 어휘]. 斷截은 음의 慧琳 0326c23 「斷絕也,說文斷亦截也」(끊음)을 인용한다 — 팔리는 감각능력을 문지름 쪽의 말이다. 팔리 gandha는 「냄새」 쪽이나 한역 香을 「향기」로 옮겼다. 愚癡無聞凡夫는 팔리에 없다. 鼻識의 識은 「의식」.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2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한역에만 있는 자문이다(a11.1과 같은 구실). 팔리에는 이 자리의 문장이 없다.
以取香相、取隨香好故,身壞命終墮惡趣中如沈鐵丸。
향기의 모습을 취하고 향기를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가라앉는 쇠구슬 같다.
주 구조는 a14.2와 같다(가능성 서술 ↔ 단정, 身壞 대응어 없음, 如沈鐵丸 없음, 235.16 없음). 저본 이문: 趣=道【明】(교감주 「趣=道【明】」) — 大正본 趣를 따랐고 이는 한자 흔들림에도 걸린다(a11.2 비고 참조). 以…故의 以는 이유 조사로 「~함으로써」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16
「愚癡無聞凡夫,寧以利刀斷截其舌,不以舌識取於味相、取隨味好。
「어리석고 들은 것 없는 범부는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그 혀를 베어 끊을지언정, 혀의 의식으로 맛의 모습을 취하고 맛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지는 않는다.
주 팔리 tiṇhena khurena(날카로운 면도칼)는 한역 利刀(날카로운 칼)로 도구가 갈린다 [개별 어휘]. 나머지는 a15.1과 같다(愚癡無聞凡夫는 팔리에 없음, 斷截은 음의 慧琳 0326c23 인용). 舌識의 識은 「의식」.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7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한역에만 있는 자문이다(a11.1과 같은 구실).
以取味相、隨味好故,身壞命終墮惡趣中如沈鐵丸。
맛의 모습, 맛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가라앉는 쇠구슬 같다.
주 구조는 a14.2와 같다. 한문이 `以取味相、隨味好故`로 두 번째 取를 적지 않았다 — 한문대로 `맛의 모습, 맛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함으로써`로 옮겼고 취함은 한 번만 세웠다(이전 단락에는 取가 반복된다). 이 좌표 이문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21
「愚癡無聞凡夫,寧以剛鐵利槍以刺其身,不以身識取於觸相及隨觸好。
「어리석고 들은 것 없는 범부는 차라리 단단한 쇠의 날카로운 창으로 그 몸을 찌를지언정, 몸의 의식으로 닿음의 모습 및 닿음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하지는 않는다.
주 팔리 tiṇhāya sattiyā(날카로운 창)는 한역 剛鐵利槍으로 수식이 늘어난다(剛=단단함, 鐵=쇠). 愚癡無聞凡夫는 팔리에 없다. 觸은 확정 정형구 행(phassa, 「접촉」) 한자이나 여기서는 身識의 대상(팔리 phoṭṭhabba, 닿는 것) 쪽으로 서서 「닿음」으로 옮겼고, 眼觸·身觸처럼 識·因緣과 짝지은 자리는 「접촉」으로 구별한다 — 같은 한자의 두 쓰임이라 신고한다. 身識의 識은 「의식」, 及은 「및」.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2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한역에만 있는 자문이다(a11.1과 같은 구실).
以取觸相及隨觸好故,身壞命終墮惡趣中如沈鐵丸。
닿음의 모습 및 닿음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가라앉는 쇠구슬 같다.
주 구조는 a14.2와 같다(가능성 서술 ↔ 단정, 身壞 대응어 없음, 如沈鐵丸 없음, 235.26 없음). 觸은 a22.1과 같이 「닿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26
「諸比丘!睡眠者是愚癡活、是癡命,無利、無福,然諸比丘寧當睡眠,不於彼色而起覺想;若起覺想者,必生纏縛諍訟,能令多眾起於非義,不能饒益安樂天人。
「비구들이여! 잠자는 것은 어리석은 삶이고 어리석은 목숨이며, 이로움이 없고 복이 없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차라리 잠을 잘지언정 저 형색에 대하여 알아차림의 생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만약 알아차림의 생각을 일으키면 반드시 얽매임과 다툼과 송사가 생기고, 많은 대중이 이롭지 못한 일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며, 하늘과 사람을 넉넉히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할 수 없다.
주 ①구조·배열 — 팔리는 235.27 「차라리 잠」을 먼저 세우고 235.28에서 `잠은 삶을 불모·결실 없음·어리석음이라 한다`고 풀지만, 한역은 `잠은 어리석은 삶…이로움·복 없음 → 그러나 차라리 잠`의 순서다. ②개별 어휘 — 팔리 vañjhaṃ·aphalaṃ·momūhaṃ jīvitānaṃ(불모의·결실 없는·어리석은 삶 쪽 말) ↔ 한역 愚癡活·癡命(어리석은 삶·어리석은 목숨)·無利·無福 — 결실(果)에 해당하는 말은 a25.1에 없다(b11.1에는 無果가 있다). ③문장 유무·엇갈림 — 팔리 235.28 끝절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승가를 분열시키는 일이 없도록」(na tveva tathārūpe vitakke vitakkeyya … saṅghaṃ bhindeyya)인데 한역은 纏縛諍訟 → 令多眾起於非義 → 不能饒益安樂天人으로 결과가 다르다. 팔리 235.29(「이 불모의 삶의 위험을 보고…」)는 한역에 없다. ④睡眠은 3분할표 의역으로 「잠」. 전거는 睡眠에 팔리_후보 Thīnamiddha를 붙이나 이 경 팔리 증언의 자리는 sotta라 대응어가 다르다 —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慧琳 0323b10 「睡熟也…眠臥也」. ⑤覺想 — 확정 정형구 행의 覺(vedanā, 느낌)과 달리 여기서는 想과 이어진 복합어이며 팔리 vitakka(일으킨 생각) 자리에 걸리는 듯하나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알아차림의 생각」으로 옮겼다 [다의어_판별]. ⑥義 — 非義를 「이롭지 못한 일」로 옮겼다. 義는 뜻·도리·이로움의 갈래가 있어, 사전 義 ⑥ 丁福保 「道理,意味也」가 뜻·도리의 갈래를 보이고, 이로움의 갈래는 바로 뒤 饒益과의 짝으로 골랐다 [다의어_판별]. 非義가 饒益 앞에 서는 짜임은 사전 饒益 ① 앞 칸의 「非義 24」(잡아함 전체 24회)로 확인된다. ⑦寧當睡眠의 當은 당위·미래로 서나 어미 「-ㄹ지언정」이 이미 지고 있다고 읽었다 [격·태·구문]. 然은 뜻이 실려 「그러나」, 若…者는 「-면」, 能은 「-ㄹ 수 있다」, 必은 뜻이 실려 「반드시」,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纏縛諍訟은 「얽매임과 다툼과 송사」로 풀었고 纏縛은 음의 希麟 0951c13 「纏繞…縛繫也」를 인용한다. 天人은 사전 天人 ⑥ 「天與人」에 따라 「하늘과 사람」. 저본 이문: 癡=癖【宋】【元】【明】(교감주 「癡=癖【三】*」) — 大正본 癡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29
「彼多聞聖弟子作如是學:『我今寧以熾然鐵槍以貫其目,不以眼識取於色相,墮三惡趣,長夜受苦。
「저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배운다. ‘나는 이제 차라리 활활 타오르는 쇠창으로 그 눈을 꿰뚫을지언정, 눈의 의식으로 형색의 모습을 취하여 세 나쁜 갈래에 떨어지고 긴 밤에 괴로움을 받지는 않겠다.
주 ①엇갈림 — 팔리 235.31은 tiṭṭhatu tāva(「그것은 그만두고라도」)로 `달군 꼬챙이가 눈을 문지르는 일`을 아예 접어 두고 다음 235.32(handa… manasi karomi)로 넘어가지만, 한역은 `차라리 쇠창으로 눈을 꿰뚫을지언정 취하지 않겠다`는 결의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한다. ②팔리 235.30 sutavā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곰곰이 살핀다 쪽) ↔ 한역 多聞聖弟子作如是學(배운다)로 동사가 갈린다 [개별 어휘]. 多聞은 사전 多聞 ① 234회, 聖弟子는 「성스러운 제자」로 옮겼다. ③墮三惡趣,長夜受苦는 팔리에 없다 [문장 유무]. 三惡趣는 사전 三惡趣 ① 이 경에만 1회(⑥ 地獄·餓鬼·畜生) — 한자 흔들림은 a11.2에서 신고했다. ④熾然은 음의 慧琳 0516a19 「熾盛也,猛火也」, 鐵槍은 음의 慧琳 0652c14(中阿含經) 「蒼頡篇 兩頭銳也」를 인용한다. ⑤取於色相,墮三惡趣,長夜受苦에서 不의 범위가 取에만 걸리는지 墮·受苦까지 걸리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뒤까지 걸리는 읽음으로 두었다 [구두·분절]. 我今寧의 今은 「이제」. 長夜는 사전 長夜 ⑥ 후대 비유 해석을 쓰지 않고 「긴 밤」으로 옮겼다. 作如是學의 如는 정형구 안의 `이와 같이`.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3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8:235.31
我從今日當正思惟:「觀眼無常、有為、心緣生法,若色、眼識、眼觸、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彼亦無常、有為、心緣生法。」』
나는 오늘부터 바르게 생각하겠다. “눈이 덧없고, 지어졌고, 마음을 연으로 하여 생기는 법임을 관찰한다. 형색이든, 눈의 의식이든, 눈의 접촉이든, 눈의 접촉을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안으로 느끼는 것이 괴롭든 즐겁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그것 또한 덧없고, 지어졌고, 마음을 연으로 하여 생기는 법이다.”’
주 ①문장 유무 — 한역의 有為·心緣生法 두 속성은 팔리 235.33(aniccaṃ만)에 없다. 한역 從今日(오늘부터)도 팔리에 없다. ②구조·배열 — 팔리는 눈·형색·눈의 의식·눈의 접촉·느낌을 각각 aniccā로 나열하지만, 한역은 눈에 세 속성을 붙이고 若色…受를 한데 묶어 `彼亦…`로 같은 속성을 준다. 또 팔리는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즐거움·괴로움·불고불락)로 즐거움이 앞이고 한역은 若苦、若樂、不苦不樂로 괴로움이 앞이다. ③개별 어휘 — 팔리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자, 나는 바로 이것을 마음에 새기리라 쪽)는 한역 當正思惟(바르게 생각함)다. 思惟는 3분할표 의역으로 「생각」이고, 전거의 Bhāvana 대역은 ⚠다른 부(MA)라 인용만 한다. 사전 正思惟 ⑥은 八聖道 해설이며 가볍게 본다. ④有為는 사전 有為 ⑥ 「為者造作之義」에 비추어 「지어진」으로, 心緣生法은 사전 心緣 ③ 용례(sa212 「無常、有為、心緣生」)와 사전 有為 ③ 용례(sa1021 「心因緣生」)에 비추어 「마음을 연으로 하여 생기는 법」으로 옮겼다 — 사전 心緣 ⑥ 후대 해석(마음이 밖의 경계를 반연함)은 아함 문맥과 어긋나 버렸다 [술어·낱말_선택]. ⑤확정 정형구 행 한자: 受=「느낌」, 覺(內覺)=「느끼는 것」, 觸(若色、眼識、眼觸의 眼觸)=「접촉」, 生=「생기다」 — 한자가 다의라 문맥으로 옮겼다 [다의어_판별]. ⑥若은 열거의 「~든」, 當은 어미 「-겠다」, 亦은 앞 눈에 붙인 속성을 이어 주는 뜻이 실려 「또한」, 因緣은 「인연」, 無常은 「덧없다」, 觀은 「관찰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32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33
耳、鼻、舌、身入處當如是學:『寧以鐵槍貫其身體,不以身識取於觸相及隨觸好故,墮三惡道。
귀, 코, 혀, 몸의 들어오는 곳은 이와 같이 배우라. ‘차라리 쇠창으로 그 몸을 꿰뚫을지언정, 몸의 의식으로 닿음의 모습 및 닿음을 따르는 좋은 점을 취한 까닭에 세 나쁜 길에 떨어지지는 않겠다.
주 ①구조·배열 — 팔리는 귀(235.34)·코(235.37)·혀(235.40)·몸(235.43)을 각각 tiṭṭhatu tāva …로 따로 세우는데, 한역은 `耳、鼻、舌、身入處當如是學`으로 넷을 머리말로 묶고 예문은 身 하나(寧以鐵槍貫其身體…)만 든다. 乃至 등 등재 생략 표지가 아니어서 [생략표지]는 달지 않고 접힘의 사실만 적는다. ②개별 어휘 — 한역 入處(들어오는 곳)는 팔리 indriya(감각능력)와 다른 낱말이며(사전 身入 ③ 용례에 「鼻入處、舌入處、身入處、意入處」), 확정역이 없어 「들어오는 곳」으로 옮겼다. 사전 處 ⑥ 후대의 入/處 해설은 가볍게 본다 [술어·낱말_선택]. 한역 鐵槍貫其身體(쇠창으로 몸을 꿰뚫음)는 팔리 tiṇhāya sattiyā … kāy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과 문형·동사가 갈린다. ③한자 흔들림 — 같은 개념을 이 좌표는 三惡道로 적는다(a11.2 비고의 惡趣·三惡趣와 흔들림). 道는 「길」로 옮기고 통일하지 않는다. ④當如是學의 當은 어미 「-라」로 흡수했다. 取…故의 故는 「까닭에」로 옮겼다. 觸은 「닿음」(a22.1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3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3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0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3
我從今日當正思惟:「觀身無常、有為、心緣生法,若觸、身識、身觸、身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彼亦無常、有為、心緣生法。」』
나는 오늘부터 바르게 생각하겠다. “몸이 덧없고, 지어졌고, 마음을 연으로 하여 생기는 법임을 관찰한다. 닿음이든, 몸의 의식이든, 몸의 접촉이든, 몸의 접촉을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안으로 느끼는 것이 괴롭든 즐겁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그것 또한 덧없고, 지어졌고, 마음을 연으로 하여 생기는 법이다.”’
주 b02.1과 같은 구조 차이(有為·心緣生法·從今日는 팔리에 없음, 苦/樂 순서, 한역은 묶어 서술)를 지닌다. 팔리는 귀(235.35~36)·코(235.38~39)·혀(235.41~42)의 무상 관찰을 따로 적지만 한역은 b05.1 머리말로 접었고 여기서도 身만 적는다 — 그 자리는 없음확인(absent)으로 두되, 235.39·235.42·235.45는 안에 `…pe…`로 접힌 구간(vedayitaṃ…tampi aniccaṃ)이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한 자리는 미대응(unaligned)으로 두었다(235.45는 펼친 앞부분이 걸려 일부). 저본 이문: 觸、身이 【宋】【元】【明】에는 없다(교감주 「〔觸身〕-【三】」) — 大正본(若觸、身識、身觸)을 따랐고 이문대로면 「…몸의 의식, 몸의 접촉…」 앞의 `닿음이든, 몸의`가 빠진다. 觸은 앞 항 「닿음」(身識의 대상), 身觸의 觸은 「접촉」. 受=「느낌」, 覺=「느끼는 것」, 生=「생기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3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3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38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88:235.39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41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88:235.42
「多聞聖弟子作如是學:『睡眠者是愚癡活、癡命,無果、無利、無福,我當不眠,亦不起覺想,起想者生於纏縛諍訟,令多人非義饒益,不得安樂。』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배운다. ‘잠자는 것은 어리석은 삶이고 어리석은 목숨이며, 결실이 없고 이로움이 없고 복이 없다. 나는 자지 않겠고, 또한 알아차림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겠다. 생각을 일으키는 이는 얽매임과 다툼과 송사를 낳고, 많은 사람을 이롭지 못하게 하고 넉넉히 돕지 못하게 하며 안락을 얻지 못하게 한다.’
주 ①엇갈림 — 이 자리는 팔리 여섯째 항(235.46 tiṭṭhatu tāva sottaṃ, 「잠은 그만두고라도」)에 놓이는데 한역은 `잠자는 것은 어리석은 삶…, 나는 자지 않겠다`로 다른 말을 한다. 한역의 睡眠 서술(無果·無利·無福)은 오히려 팔리 235.28(vañjhaṃ·aphalaṃ·momūhaṃ jīvitānaṃ)과 겹쳐 일부로 함께 적는다. 팔리 235.47~235.48(意의 무상 관찰)은 b18.1의 `意亦復如是`가 걸린다. ②이 좌표는 a25.1의 睡眠 단락을 줄여 되풀이한다 — 無果가 여기에는 있고(팔리 aphala 쪽), 纏縛諍訟 뒤는 令多人非義饒益、不得安樂로 줄었다. ③令多人非義饒益은 非가 義饒益 전체에 걸리는지(이롭지 못함·넉넉한 도움 아님), 非義와 饒益이 따로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a25.1(起於非義 / 不能饒益)과 같은 읽음으로 옮겼다 [구두·분절]. ④覺想·義의 다의는 a25.1 비고와 같다 [다의어_판별]. 想은 앞 覺想의 줄임으로 보아 「생각」으로 옮겼다. ⑤我當不眠의 當은 어미 「-겠다」로 흡수했고, 亦不起覺想의 亦은 `자지 않음`에 더하는 뜻이 실려 「또한」으로 두었다. 眠은 「자다」. 저본 이문: 癡=癖【宋】【元】【明】 — 大正본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88:235.46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28
「多聞聖弟子如是觀者,於眼生厭,若色、眼識、眼觸、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彼亦生厭,厭故不樂,不樂故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관찰하면 눈에 대하여 싫어함이 생기고, 형색이든, 눈의 의식이든, 눈의 접촉이든, 눈의 접촉을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안으로 느끼는 것이 괴롭든 즐겁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그것에도 또한 싫어함이 생기며, 싫어하기 때문에 즐기지 않고, 즐기지 않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의 앎과 봄: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행이 섰고, 해야 할 일을 했고, 다음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①구조·배열 — 팔리 235.49는 눈·형색·눈의 의식·눈의 접촉…(pe로 접힘)을 각각 nibbindati로 나열하지만 한역은 於眼生厭 뒤 若色…受를 묶어 彼亦生厭으로 처리한다. 팔리 235.53은 `…pajānāti`(3인칭 서술)이고 한역은 『我生已盡…』 1인칭 인용이다. ②개별 어휘 — 팔리 235.50 nibbindaṃ virajjati·235.51 virāgā vimuccati(싫어하여 빛바램/탐이 사라짐 쪽 말)는 한역 厭故不樂·不樂故解脫로 옮겨져 `즐기지 않음`이 되었다 — 본문은 한문(不樂)대로 두고 팔리 virāga·viraj-의 뜻은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 235.52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는 한역 解脫知見(앎과 봄)으로, 팔리 ñāṇa 하나가 한역 知見 둘이 된다. 팔리 vusitaṃ brahmacariyaṃ(청정한 삶을 살았다 쪽)은 한역 梵行已立(청정한 행이 섰다)으로 동사가 갈리고, 한역 我(나의)는 팔리에 없으며, 팔리 nāparaṃ itthattāyā는 한역 不受後有(다음의 존재를 받지 않음)다. ③梵行은 3분할표 의역이라 「청정한 행」으로 옮겼고(음의 慧琳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 확정 정형구 행의 `청정한 삶`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 쓰지 않았다. ④確定 정형구 행 한자 生(태어남)·梵行은 문맥으로 옮겨 신고한다 [다의어_판별]. 사전 生已 ① 143회, 사전 後有 ① 앞 不受 178. ⑤自知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고, 已는 완료 어미로 흡수했다. 所作은 「해야 할 일」로 풀었다(所를 「~하는 바」로 쓰지 않음). 者는 「-면」, 解脫은 정착어 「해탈」, 厭은 「싫어함」, 觀은 「관찰하다」, 彼亦의 亦은 앞 눈에 이은 뜻이 실려 「또한」이다. `解脫知見:『…』`은 한문대로 콜론으로 이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9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50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5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52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53
耳、鼻、舌、身、意亦復如是。」
귀, 코, 혀, 몸, 뜻도 또한 이와 같다.」
주 한역은 귀·코·혀·몸·뜻을 `亦復如是`로 접었다. 乃至 등 등재 생략 표지가 아니므로 [생략표지]는 달지 않고 접힘의 사실만 적는다. 팔리는 意의 무상 관찰(235.47~235.48)을 따로 적고 235.49의 중간을 `…pe…`로 접었다 — 한역이 접은 범위와 팔리가 접은 범위가 겹치되 같지 않아 일부로 적는다. 意는 6번째 감각 자리의 「뜻」으로 옮겼고(눈·귀·코·혀·몸·뜻), 이 경 앞의 心緣生法의 心(「마음」)과 구별한다. 亦復은 연어로 「또한」, 復는 亦과 겹쳐 흡수했다. 마지막 」는 a08.1에서 연 세존의 발화를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8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88:235.49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한역 결어 정형구(佛說此經已…歡喜奉行)는 팔리에 없고, 팔리 235.54(「이것이 불의 법문이다」)와 235.55(Aṭṭhamaṃ, `여덟째`)도 한역에 없다 — 양쪽 모두 없음확인. 한자 흔들림 — 여기서 화자를 佛로 적으나 a08.1에서는 世尊이다.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 比丘는 「비구」. 諸는 복수라 「들」로 흡수,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는 「기뻐하며」, 奉行은 「받들어 행했다」(사전 歡喜 ① 뒤 奉行 829회). 已는 「~하고 나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5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88:23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