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二四)
(224)
주 한역 제목 자리는 경 번호 「(二二四)」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는 0.3에 경 이름(Pahānasuttaṃ, 품 안 순번 2)과 24.0에 번호 24를 둔다 — 번호만 있는 한역이 덜 말하므로 일부(partial)다. 교감주(orig·equivalent) 「S. 35. 24-25. Pahāna.」로 다카쿠스는 두 경(sn35.24·sn35.25)을 대응으로 든다. 팔리증언 파일 기준 합의 등급 multi_source이고, 작가에게 준 원문은 sn35.24뿐이며 sn35.25는 미투입이라 이 경 전 좌표에서 sn35.25 쪽은 미대응(unaligned)이다. 투입물 사이의 사실 하나: 조각 uid는 sa222, 한문저본·음의·팔리증언 파일은 「大正 224」인데 `_전거_sa222.md` 머리글만 「大正 222」로 적혀 있다(판정하지 않고 신고만 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4:0.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4:24.0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투입된 sn35.24 원문은 24.1에서 곧바로 붓다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Evaṃ me sutaṃ」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 — 이 경 원문 안에서 없음확인(absent)이다. 품(vagga) 앞 경에 서두가 놓였는지는 투입물 밖이라 보지 않았다. 앵커: 如 [비유·가정] — 「이와 같이」로 옮겼다(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4:24.1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투입된 sn35.24 원문에는 장소 서두가 없어 없음확인(absent)이다. 「佛」은 확정 술어 [구속] → 「부처님」. 「舍衛」는 `_한자대역_3분할` 정착어 → 「사위」. 뜻: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는 바른 음을 「室羅伐悉底」, 뜻을 「聞者城」(듣는 이들의 성)·「聞物國」이라 하고, 舊譯 「無物不有國」(없는 것이 없는 나라)도 전한다(인용, 확정역 아님). 음역계통: `_전거_sa222.md`에 舍衛의 팔리 후보 Sāvatthī,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가 둘 다 서고 서로 다르다 — 확인된 두 계통으로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다른 부(DA)의 대역 표시가 붙어 있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였으나 저본 문맥상 장소 이름으로 판별했고, §⑤ 표의 정착어 예 「기수급고독원」을 그대로 썼다. 뜻: 「祇樹」=기타(祇陀, 정음 誓多, 뜻 「勝」) 태자의 숲 — 태자가 나무를 남겨 공양했기에 「祇樹」라 줄여 부른다(一切經音義(慧琳) 0368a03); 「給孤獨」=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의역이며 범어 阿那陀(無親屬)에 해당하고 옛 경은 阿那邠邸라 음역했다(一切經音義(慧琳) 0368a05); 「園」=동산. 곧 「기타 태자의 숲,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 전거의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에는 ⚠다른 부(DA)의 대역 표시가 있다. 전체를 정착어로 둘지, 給孤獨 부분만 의역으로 풀지(§⑤ 의역 예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는 유형 판별이 걸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國」은 「국」으로 붙여 정착형(사위국)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4:24.1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爾時,世尊告諸比丘:「一切欲法應當斷。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욕망의 법은 끊어야 한다.
주 「世尊」·「比丘」는 확정 술어 [구속] → 「세존」·「비구」.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앵커: 應·當은 당위 어미 「-어야 한다」가 지고 「마땅히」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諸는 「-들」로 흡수. 엇갈림(divergent): 같은 자리에서 팔리 24.1은 「모든 것을 버림을 위한 법(dhamma)을 너희에게 설하겠다」고 설법을 예고하는데, 한역은 「모든 욕망의 법은 끊어야 한다」는 당위 진술이다 — 팔리의 dhamma는 버림을 위한 가르침이고, 한역의 法은 끊어야 할 대상 자체로 읽힌다. 「一切」↔sabba, 「斷」↔pahāna, 「法」↔dhamma는 맞물리나 「欲」에 맞는 말이 이 좌표 팔리에 없다. 한역 저본의 차이인지 역자의 해석인지는 이 투입물로 정하지 않는다. 팔리 24.2 「Taṃ suṇātha」(그것을 들어라)는 한역에 없다(없음확인). 팔리 호격 bhikkhave가 한역 발화 안에 없는 것은 번역기법(호격 탈락)이다. 다의어: 「欲法」의 「欲」을 욕망(탐욕)으로 읽어 「욕망의 법」이라 옮겼으나, 「하고자 함」의 뜻이나 「욕망되는 것(바랄 만한 법)」으로도 읽힐 수 있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사전 欲法 ① 잡아함 11회·6경, 뒤 「應當」 4는 모두 이 경의 출현이다; ⑥丁福保의 풀이(승단 갈마의 「與欲」)는 아함 문맥과 어긋나 버렸다. 한자 흔들림: 이 경은 같은 분을 0.3·0055b20.1에서 「佛」, 여기서 「世尊」이라 한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각 확정역(부처님/세존)대로 두었다. 붓다의 발화는 0055b19.1까지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24:24.1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4:24.2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云何一切欲法應當斷?
무엇이 끊어야 할 모든 욕망의 법인가?
주 앵커: 云何는 의문형 어미가 지고, 應·當은 「-어야 할」이 진다. 같은 자리에서 팔리 24.3은 「무엇이 모든 것을 버림을 위한 법인가?」라고 묻는다 — 묻는 대상이 팔리는 버림의 가르침, 한역은 끊어야 할 욕망의 법이라 엇갈림(divergent)이다(0055b16.1과 같은 사안). 팔리 호격 bhikkhave가 한역에 없다 — 번역기법(호격 탈락). 구문: 「云何 一切欲法 應當斷」은 뒤 좌표가 「謂眼是…」로 항목을 대므로 「무엇이 …인가」로 읽었으나, 「어떻게 모든 욕망의 법을 끊어야 하는가」로도 끊어 읽힌다 — [불확실:격·태·구문].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24:24.3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謂眼是一切欲法應當斷,若色、眼識、眼觸、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彼一切欲法應當斷。
이른바 눈이 모든 욕망의 법이니 끊어야 하며, 형색이나, 눈의 의식이나, 눈의 접촉이나, 눈의 접촉을 인연으로 생긴 느낌, 안으로 느끼는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나, 그 모든 욕망의 법은 끊어야 한다.
주 일부(partial): 팔리 24.4 앞부분(눈·형색·눈의 의식·눈의 접촉·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과 같은 항목을 같은 차례로 든다. 팔리 24.4 뒷부분(…pe… 이하 귀·코의 느낌)은 한역 0055b19.1 쪽 자리다. 구조·배열: 팔리는 항목마다 pahātabba(버려야 한다)를 되풀이하는데, 한역은 눈에 한 번 「應當斷」을 두고 나머지 넷을 「若…」로 늘어놓은 뒤 「彼一切欲法應當斷」으로 한 번에 묶는다. 느낌의 셋은 팔리가 즐거움→괴로움→어느 쪽도 아님, 한역이 괴로움→즐거움→어느 쪽도 아님으로 차례가 바뀐다. 개별 어휘: 한역 「內覺」(안으로 느끼는)에 맞는 말이 팔리에 없다; 한역에는 「欲法」이 다시 서지만 팔리에는 그 자리 말이 없다(0055b16.1 참조). 앵커 대조: 앵커는 若×3을 [가정] 「-면」으로 표시하나, 이 자리의 「若色…」「若苦、若樂」은 「若A、若B」 나열(…이나 …이나)로 읽었다 — 첫 「若」을 가정 「만약」으로 읽을 여지는 남는다. 앵커대로 應·當은 어미가 졌다. 구문: 「眼是一切欲法應當斷」의 「是」를 계사(…이다)로 읽어 「눈이 모든 욕망의 법이니 끊어야 하며」라 옮겼다 — 지시사(「이 모든 욕망의 법」)로 읽으면 「눈, 이 모든 욕망의 법을 끊어야 한다」가 된다 — [불확실:격·태·구문]. 다의어: 「觸」「受」「覺」은 `_확정술어_아함판` [정형구 행]으로만 실려 낱말 확정역이 없다 — 문맥대로 「접촉」, 「느낌」(명사 受), 「느끼는」(동사 覺)으로 옮겼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色」은 눈의 대상이라 「형색」, 「因緣」은 「인연」으로 옮겼다(둘 다 확정역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4:24.4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耳、鼻、舌、身、意亦復如是。」
귀, 코, 혀, 몸, 마음도 이와 같다.”
주 한역은 나머지 다섯 감관을 「亦復如是」(…도 이와 같다) 한 구로 접는다. 이 표현은 `_정형구_생략표지.md`의 생략 표지 목록에 없어 [생략표지]를 달지 않았으나,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이므로 펴지 않고 접힌 대로 두었다. 팔리 쪽: 24.4 뒷부분은 …pe…로 접혀 귀·코 항목이 일부(느낌 구)만 보이므로 미대응(unaligned); 24.5는 혀 항목 전부를 펴서 말하고, 24.6은 몸(…로 줄임)과 마음 항목 전부를 말한다 — 한역이 덜 말하므로 일부(partial). 팔리 24.7 맺음말 「이것이 모든 것을 버림을 위한 법이다」는 한역 발화에 없다(문장 유무) — 그 자리에 놓일 한역 좌표가 따로 없어 여기에 적는다. 앵커: 亦은 조사 「-도」가, 復는 서술에 흡수되어 「또한·다시」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意」는 확정역이 없어 「마음」으로 옮겼다(팔리 대응 mano)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붓다의 발화가 여기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4:24.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4:24.5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4:24.6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2회)은 확정 술어 [구속] → 「부처님」, 「比丘」 → 「비구」. 투입된 sn35.24 원문은 24.7(붓다의 맺음말) 뒤 24.8에 순번 표지 「Dutiyaṃ」만 있고, 비구들이 기뻐했다는 맺음 서술이 없다 — 이 경 원문 안에서 없음확인(absent). 앵커: 所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고, 諸는 「-들」로 흡수했다. 「已」는 마침의 뜻이 실려 「설하시고 나자」로 옮겼다. 사전 歡喜 ① 앞 「所說」 1151, 奉行 ① 앞 「歡喜」 829 — 잡아함의 맺음 정형구다. 한자 흔들림: 0055b16.1의 「世尊」과 같은 분을 여기서는 「佛」이라 한다(0055b16.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4:24.8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3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