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一二)
(212)
주 한역은 경 번호 (二一二)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는 「1. Devadahasuttaṃ」(데바다하 경)으로 이름이 선다(일부). 팔리 문단번호 134.0 「134」는 팔리 편집 번호라 한역 번호와 대응하지 않는다. 교감주 「S. 35. 134. Devadhakhana」는 PTS 번호이고 우리 PN은 sn35.117(莊春江 sn35.134 → PN 문단번호 대조, multi_source).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35.117은 개경 정형구 없이 「Ekaṃ samayaṃ」으로 바로 시작한다 — 한역 如是我聞에 대응하는 문장이 팔리 이 판본에 없음을 확인했다(없음확인). 如是 → 「이와 같이」, 如는 비유 「~같이」로 옮겼다(배선앵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7:134.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장소가 엇갈린다 — 한역은 舍衛國 祇樹給孤獨園, 팔리는 사꺄족의 성읍 데바다하(sakkesu … devadah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엇갈림. 佛=「부처님」([구속] No.253). 舍衛 = 정착어 「사위」(팔리 Sāvatthī) — 이 이름은 慧琳 음의 0367c24에 「此譯云聞者城 / 法鏡經譯云聞物國」, 곧 「듣는 이의 도시·들은 것의 나라」로 풀린다(참고 인용). 祇樹給孤獨園 = §⑤ 표의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을 그대로 썼다 — 뜻은 「祇(제따 태자의 이름 음역, 慧琳 0368a03 「正梵音云誓多此譯為勝」)의 숲 + 給孤獨(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慧琳 0368a05 「梵云阿那陀此云無親屬」)의 동산」, 곧 음역과 의역이 섞인 이름이다. 한자대역_3분할은 祇樹給孤獨을 「보류(5자 이상)」로 두었으므로 이름으로 판별했다는 근거(위 음의)를 적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전거 표의 祇樹給孤獨園 대역은 ⚠다른 부(DA)의 것이다. 舍衛는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로 음역계통 둘이 서지만 이 이름은 정착어로 처리했으므로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17:134.1
爾時,世尊告諸比丘:「我不為一切比丘說不放逸行,亦非不為一切比丘說不放逸行。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의 행을 설하지 않고,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의 행을 설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주 134.2(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는 같음. 134.3은 일부 — 팔리는 「여섯 접촉의 영역에서(chasu phassāyatanesu) 불방일로 해야 할 일이 있다/없다고 말하지 않는다」이고, 한역에는 「여섯 접촉의 영역」이 없으며 「불방일로 해야 할 일」(appamādena karaṇīya)이 「불방일의 행을 설한다」(說不放逸行)로 선다. 不放逸 = [참고] No.212 「불방일」(appamāda) — 저본에서 뜻이 서므로 확정 문자열을 썼다. 한자대역_3분할은 「의역 → 뜻으로」라 했으나 확정역이 유형보다 위다(§⓪-2). 亦非不為의 亦은 보조사 「-도」가 지므로 「또한」을 세우지 않았다. 諸比丘 → 「비구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에서는 世尊(세존 [구속] No.252), 0.3·0053c28.2에서는 佛(부처님 [구속] No.253)로 부른다 — 통일하지 않고 각 확정역대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117:134.2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3
「不向何等像類比丘說不放逸行?
“어떤 부류의 비구에게 불방일의 행을 설하지 않는가?
주 한역은 스스로 묻는 문장을 세우지만 팔리 134.4는 물음 없이 「Ye te, bhikkhave, bhikkhū arahanto…」로 바로 들어간다 — 이 물음에 대응하는 팔리 문장은 없음확인. 像類 → 「부류」(모습·종류). 한자 흔들림: 이 좌표는 「~에게」를 向으로, 0053c16.1의 짝 물음은 為로 쓴다(不向何等像類 / 為何等像類) — 통일하지 않았다. 저본은 문단 머리에 「를 다시 연다(CBETA 문단 표기). 같은 발화가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7:134.4
若比丘得阿羅漢,盡諸有漏,離諸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心正解脫。
비구가 아라한을 얻어,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나고, 자기의 이익을 얻고, 모든 존재의 결박을 다하여,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였으면,
주 팔리 134.4는 관계절(ye te … bhikkhū …, tesāhaṃ …)로 한 문장이고, 한역은 若 가정절(이 좌표)과 如是像類 지시절(0053c12.1)의 두 문장으로 나눴다 — 인도어 관계·상관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이므로 번역기법. 항목을 대조하면 arahanto = 得阿羅漢, khīṇāsavā = 盡諸有漏, ohitabhārā = 離諸重擔, anuppattasadatthā = 逮得己利, parikkhīṇabhavasaṃyojanā = 盡諸有結, sammadaññā vimuttā = 心正解脫이고, 팔리의 vusitavanto(삶을 완성한)·katakaraṇīyā(할 일을 마친)는 한역에 없다(일부). 若 → 연결어미 「-면」. 阿羅漢 = 음역 → 한자 독음 「아라한」(팔리 Arahaṃ / 근대 범어 비정 Arhat — 전거 표, ⚠다른 부(DA/EA)의 대역; 계통 판정은 하지 않는다). 盡諸有漏는 끊는 자리가 둘이다 — 諸+有漏(번뇌 있는 모든 것)와 諸有+漏(모든 존재의 번뇌). 0053c19.2의 無漏(번뇌 없는)와 짝을 이루므로 앞쪽으로 옮겼다 [불확실:구두·분절]. 漏는 확정술어의 [정형구 행](āsava)에만 걸려 낱말 확정역이 없다 — 문맥으로 「번뇌」라 옮겼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有結 = 의역 → 「존재의 결박」(전거 Bhavasaṃyojana, ⚠다른 부(MA)). 逮得 → 「얻다」(慧琳 0327c07 「爾雅逮及也」). 己利 → 「자기의 이익」. 문장은 0053c12.1로 이어지므로 쉼표로 끝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4
如是像類比丘,我不為說不放逸行。
이와 같은 부류의 비구에게는 나는 불방일의 행을 설하지 않는다.
주 팔리 134.4 뒷부분(tesāhaṃ, bhikkhave, bhikkhūnaṃ chasu phassāyatanesu nāppamādena karaṇīyanti vadāmi)에 선다. 팔리의 「여섯 접촉의 영역에서」와 「불방일로 해야 할 일이 없다」가 한역에서는 「불방일의 행을 설하지 않는다」로 선다(일부). 不為說의 為는 「~를 위하여」 — 대상은 「~에게」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4
彼諸比丘已作不放逸故,不復堪能作放逸事,我今見彼諸尊者得不放逸果,是故不為彼說不放逸行。
저 비구들은 이미 불방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는 방일한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저 존자들이 불방일의 결과를 얻은 것을 본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불방일의 행을 설하지 않는다.
주 앞 두 절(已作不放逸故,不復堪能作放逸事)은 팔리 134.6(Kataṃ tesaṃ appamādena, abhabbā te pamajjituṃ — 그들은 불방일로 할 일을 이미 했고 방일할 수 없다)과 같다. 뒤의 「나는 지금 저 존자들이 불방일의 결과를 얻은 것을 본다, 그러므로 설하지 않는다」는 팔리 134.6에 없다(일부). 팔리에서 「불방일의 결과를 보며」(appamādaphalaṃ sampassamāno)는 134.12·134.15에 서고, 거기서는 아라한이 아니라 유학(134.7의 sekkhā)에게 불방일을 말하는 근거로 쓰인다 — 같은 표현이 한역에서는 아라한 쪽에, 팔리에서는 유학 쪽에 선다. 판단은 하지 않는다. 作 → 「이루다」(했다). 堪能 → 能이 「-ㄹ 수 있다」로 진다(「능히」 쓰지 않음). 放逸 → 「방일」 — 확정역이 없어 不放逸의 [참고] 확정역 「불방일」과 짝을 맞췄다. 이문: 尊者【大】 / 尊【宋】【元】【明】【中華-CB】【磧-CB】【北藏-CB】 — 저본(大正)대로 「존자들」로 옮겼다. 三本 읽기면 「존귀한 이들」이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6
「為何等像類比丘說不放逸行?
“어떤 부류의 비구에게 불방일의 행을 설하는가?
주 팔리 134.7은 물음 없이 「Ye ca kho te, bhikkhave, bhikkhū sekkhā…」로 들어간다 — 이 물음에 대응하는 문장은 없음확인. 0053c10.1의 짝 물음은 向, 여기는 為로 「~에게」를 세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음). 저본은 문단 머리에 「를 다시 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7:134.7
若諸比丘在學地者,未得心意增上安隱,向涅槃住,如是像類比丘,我為其說不放逸行。
비구들이 배움의 단계에 있으면서 아직 마음의 뛰어난 안온을 얻지 못하고 열반을 향해 머문다면, 이와 같은 부류의 비구, 그들에게 나는 불방일의 행을 설한다.
주 팔리 134.7도 관계절(ye … sekkhā …, tesāhaṃ …)이고 한역은 若 … 如是像類로 옮겼다(번역기법, 0053c11.1과 같다). 대조: sekkhā = 在學地者, appattamānasā = 未得心意, anuttaraṃ yogakkhemaṃ = 增上安隱, patthayamānā viharanti(열망하며 머문다) ↔ 向涅槃住(열반을 향해 머문다). 팔리에 「열반」 낱말이 없고 한역은 「열반을 향해」로 세운다 — 개별 어휘. 팔리의 「여섯 접촉의 영역에서」는 한역에 없다(일부). 未得心意增上安隱은 끊는 자리가 둘이다 — ① 未得[心意增上安隱](마음의 뛰어난 안온을 얻지 못하고) ② 未得心意,增上安隱(마음의 목표를 얻지 못하고, 뛰어난 안온을 …). 팔리 appattamānasā(마음이 아직 이르지 못한)를 보면 ②도 선다. 본문은 한문 한 덩어리로 읽어 ①로 옮겼다 [불확실:구두·분절]. 涅槃: 한자대역_3분할이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두 글자 모두 소리를 옮긴 것으로 보아 한국 불교계 정착형 「열반」으로 썼다 — 팔리 Nibbāna / 당대 범어 nirvāṇa(전거, ⚠다른 부(EA)); 「불어 끈 상태」의 뜻이며 慧琳 0463b14는 「此翻為圓寂」으로 푼다(참고 인용). 3분할 지시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신고. 安隱 → 「안온」(전거 당대 범어 svastha 참고). 若 → 「-면」. 在學地者의 者는 명사화이나 若 가정절 안이라 흡수. 我為其說의 其는 앞 「이와 같은 부류의 비구」를 받는 대명사로 「그들에게」로 살렸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7
以彼比丘習學諸根,心樂隨順資生之具,親近善友,不久當得盡諸有漏,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作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저 비구들은 감관들을 익혀 배우고, 마음이 생활의 도구를 따르기를 즐기며, 좋은 벗을 가까이하므로, 오래지 않아 번뇌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얻고, 현재의 법에서 알고 실현할 것이다.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행은 이미 섰고, 해야 할 일은 이미 했으니, 다음 존재를 받지 않는다고 안다.’
주 같은 「까닭」 자리에서 팔리와 한역이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팔리 134.9~134.11은 「눈으로 알 수 있는 마음에 드는·들지 않는 형색이 닿고 닿아도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정진·사띠·경안·삼매」로 까닭을 세우고, 한역은 이 좌표에서 「감관을 익히고·좋은 벗을 가까이하여 머지않아 번뇌 다함을 얻으리라」는 별도의 까닭과 아라한 정형구를 세운 뒤, 0053c23.1에서 다시 所以者何를 묻고 팔리 134.9 이하에 해당하는 내용을 편다. 以 → 이유 「-므로」. 諸根 → 「감관들」 — 이 경이 여섯 감관을 다루므로 안·이·비·설·신·의의 根으로 읽었으나 信·精進 등 五根으로도 읽힌다(사전 諸根 ⑥丁福保 「信勤念定慧之五根 … 又眼」 — 가장 가벼운 칸) [불확실:다의어_판별]. 心樂隨順資生之具 → 「마음이 생활의 도구를 따르기를 즐긴다」로 축자역했다 — 「필수품에 만족하며 따른다」인지 다른 뜻인지 저본 문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사전 資生 ⑥ 「衣食住之具」 참고) [불확실:뜻_판별불가]. 善友 = 의역 → 「좋은 벗」. 當得 → 當은 어미 「-ㄹ 것이다」가 지므로 「마땅히」 쓰지 않음. 無漏 = 의역 → 「번뇌 없는」, 心解脫 = 의역 → 「마음의 해탈」, 慧解脫 = 의역 → 「지혜의 해탈」(전거 ⚠다른 부(MA)). 自×2(自知作證·自知不受)는 自↔他 대조가 문면에 없어 §③대로 흡수했다 — 전거 표는 現法自知作證을 sayaṃ abhiññā(스스로 체득하여)에 대응시키나 이는 증언이므로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現法 → 「현재의 법에서」. 作證 → 「실현하다」. 정형구 안 한자: 生(jāti) → 「태어남」, 受 → 동사 「받다」(vedanā 아님), 梵行 → 「청정한 행」 — 셋 다 확정술어 [정형구 행]에만 걸려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 梵行은 3분할 「의역 → 뜻으로」, 慧琳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 참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後有 → 「다음 존재」. 붓다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117:134.9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는 134.8에서 한 번만 「Taṃ kissa hetu?」를 묻고 134.9로 바로 이어진다. 한역은 0053c19.1에 이어 여기서 所以者何를 한 번 더 묻는다 — 두 번째 물음에 대응하는 팔리 문장은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7:134.9
彼眼識所可愛樂、染著之色,彼比丘見已,不喜、不讚歎、不染、不繫著住;以不喜、不讚歎、不染、不著住故,專精勝進,身心止息,心安極住不忘,常定一心,無量法喜,但逮得第一三昧正受,終不退滅隨於眼色。
저 눈의 의식이 사랑하고 즐길 만하고 물들어 집착할 만한 색을, 저 비구는 보고 나서 기뻐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고, 물들지 않고, 얽매여 집착하여 머물지 않는다. 기뻐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고, 물들지 않고, 집착하여 머물지 않기 때문에, 한결같이 힘써 뛰어나게 나아가고, 몸과 마음이 그쳐 쉬고, 마음이 편안하여 지극히 머물러 잊지 않고, 늘 안정되어 한마음이며, 법의 기쁨이 한량없으며, 첫째가는 삼매의 바른 받음을 얻어, 끝내 눈과 색을 따라 물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주 134.9는 일부 — 팔리는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manoramāpi amanoramāpi) 둘을 세우고 한역은 「사랑하고 즐길 만하고 물들어 집착할 만한」 쪽만 세운다. 134.10(닿고 닿아도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은 한역의 「기뻐하지 않고·찬탄하지 않고·물들지 않고·집착하여 머물지 않는다」와 일부 대응 — 팔리는 대상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는 구문, 한역은 비구가 주어인 네 동사 나열. 134.11은 일부 — āraddhaṃ vīriyaṃ asallīnaṃ ↔ 專精勝進, passaddho kāyo asāraddho ↔ 身心止息,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 心安極住不忘,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 常定一心. 한역의 無量法喜·逮得第一三昧正受·終不退滅隨於眼色는 팔리 134.11에 없다. 所可愛樂 → 「~할 만한」(관형절, 「~하는 바」 쓰지 않음). 한자 흔들림: 같은 문장 안에서 앞은 不繫著住, 뒤는 不著住로 쓴다 — 「얽매여 집착하여」/「집착하여」로 각각 옮겼다. 心安極住不忘은 心安·極住·不忘으로 끊었다(心安極·住不忘으로도 끊긴다) [불확실:구두·분절]. 常定一心의 定 → 「안정되어」 — 확정역이 없고 「선정에 들어」도 후보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無量法喜에는 동사가 없어 「법의 기쁨이 한량없으며」로 옮겼다(덧붙인 동사 없음). 但은 배선앵커대로 접속 기능으로 보아 흡수했다. 第一三昧: 第一+三昧(첫째가는 삼매)로 읽었다 — 사전은 第+一三昧로 끊어 一三昧(이 경에만 나옴)를 표제로 세웠으나 ⑥丁福保의 「一行三昧之略」은 후대 대승의 눈이라 버렸다. 三昧 = 3분할 「혼합」 — 두 글자 모두 소리로 보아 정착형 「삼매」(팔리 Samādhi, 慧琳 0436a12 「正云三摩地此云等持」 참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正受 → 「바른 받음」(사전 正受 ⑥ 「三昧 一譯正受」 — 三昧正受는 음역+의역의 겹말일 수 있다). 隨於眼色 → 「눈과 색을 따라」 — 眼色을 「눈에 보이는 색」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문: 滅【大】 / 減【宋】【元】【明】 — 저본대로 「사라지지」로 옮겼다. 三本 읽기면 「물러나 줄어들지」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愛樂은 3분할 「혼합」(전거 Rāga)이지만 이 자리는 동사 「사랑하고 즐기다」로 쓰여 이름이 아니므로 뜻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9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10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17:134.11
於耳、鼻、舌、身、意識法亦復如是。」
귀·코·혀·몸·마음의 의식과 법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주 한역은 亦復如是로 귀·코·혀·몸·마음의 다섯 문을 스스로 접었다 — 접힌 대로 두었다(목록의 생략표지 7종에는 없으나 같은 기능이다). 팔리 134.12는 눈 단락의 결론(appamādaphalaṃ sampassamāno … vadāmi) 뒤에 …pe…로 귀~몸을 접고 마음(manoviññeyyā dhammā)만 134.12 끝~134.15에 다시 편다. 양쪽 모두 접은 구간이라 좌표째 대응을 세우지 못하므로 미대응. 耳鼻舌身意識法은 ① 耳·鼻·舌·身·意+識+法 ② 耳·鼻·舌·身 + 意識法(마음의 의식이 아는 법, 앞 좌표 眼識所可愛樂…色과 같은 틀)으로 끊긴다 — 본문은 「마음의 의식과 법」으로 옮겼다 [불확실:구두·분절]. 亦은 보조사 「-도」가, 復는 흡수. 붓다 발화가 여기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17:134.12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17:134.13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17:134.14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17:134.15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니,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sn35.117은 134.15 붓다 발화로 끝나고 134.16은 「Paṭhamaṃ」(첫째)라는 순번뿐이다 — 비구들이 기뻐 받드는 결어는 팔리에 없음확인. 佛 = 「부처님」([구속] No.253) — 이 경에서 佛(0.3·여기)과 世尊(0053c08.1)이 섞인다(0053c08.1에 한자 흔들림 신고). 所說 → 관형절 「설하신 것」. 歡喜奉行 →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17: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