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〇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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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한문 제목은 경 번호뿐이고 팔리는 경 이름(Attānudiṭṭhipahānasuttaṃ, 12번째)을 단다 — 일부. 대응 후보 합의 등급이 conflict다: 莊春江 sn35.167 → PN sn35.150(투입) / 다카쿠스 각주 S. 35. 166. Attano.(PTS 번호, 미투입). 어느 쪽이 정답인지 판정하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35.150에는 개경구가 없다(경 이름 다음 곧바로 167.1). 이 자리는 …pe… 안쪽이 아니라 경 첫머리이므로 없음확인으로 적는다. 如是 「이와 같이」는 비유·가정 앵커가 아니라 지시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50:167.0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sn35.150에는 장소 서술(nidāna)이 없다 — 없음확인. 舍衛는 정착어 「사위」(3분할):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는 이 이름을 「聞者城」·「聞物國」(들은 이의 성)으로 푼다(참고 인용). 전거 대장: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 — 두 계통으로 갈린다(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에서 「보류」(5자 이상)로 표시되었으나, 이 경에서는 장소 이름으로 서므로 한국 불교계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 뜻: 祇(祇陀, 慧琳 0368a03에 따르면 「勝」 곧 승 태자)의 나무 숲(祇樹)과,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給孤獨, 慧琳 0368a05: 梵 阿那陀 「無親屬」, 고아와 홀로된 이를 구제한 장자의 호칭)의 동산(園). 유형 확정은 정도평 님 몫이라 을 남긴다. 전거 대장의 이 항은 ⚠다른 부(DA)의 대역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50:167.0
時,有異比丘往詣佛所,稽首佛足,白佛言:「世尊!云何知、云何見,次第我見斷,無我見生?」
그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면, 차례로 나라는 견해가 끊어지고 나 없음이라는 견해가 생깁니까?”
주 167.1은 「Atha kho aññataro bhikkhu…pe… etadavoca」로 다가가 절하는 대목을 접어 두었으므로 往詣佛所·稽首佛足이 걸리는 자리는 미대응이다. 167.2의 질문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이에게 attānudiṭṭhi가 버려지는가」뿐이다 — 한역의 「次第(차례로)」와 「無我見生(나 없음이라는 견해가 생김)」은 팔리에 없다(일부). 호칭: 한역 世尊 ↔ 팔리 bhante(존자시여 급의 호칭) — 개별 어휘 갈림. 이 경에서 한역은 내레이션에 佛, 호격에 世尊을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 「부처님」·「세존」으로 각각 고정). 異比丘=「어떤 비구」(팔리 aññataro bhikkhu와 일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인물 도입이므로 주어로 흡수했다. 稽首: 慧琳 0600c02 「首至地也」(참고 인용). 我見·無我: 확정역이 없어 「나라는 견해」·「나 없음」으로 옮겼다 — 정착 술어 「아견」·「무아」도 후보(술어·낱말 선택). 팔리 attānudiṭṭhi는 「자기 자신(attā)을 따라 보는 견해」로 한역 我見보다 구성이 길다. 見(정형구 행 dassana)은 여기서 「보다」(동사)와 「견해」(我見·無我見의 명사) 두 갈래로 쓰였고 저본 문맥으로 갈랐다. 生(정형구 행 jāti)은 「태어남」이 아니라 「생기다」로 옮겼다 — 다의어 판별.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50:167.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2
佛告彼比丘:「於眼正觀無我,若色、眼識、眼觸、眼觸因緣生受,若苦、若樂、不苦不樂,彼亦正觀無我。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나 없음으로 바르게 관찰하고, 형색이나 눈의 의식이나 눈의 접촉이나 눈의 접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곧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 그것 또한 나 없음으로 바르게 관찰한다.
주 팔리는 눈·형색·눈의 의식·눈의 접촉·접촉을 조건으로 한 느낌을 한 항씩 세우고 항마다 「anattato jānato passato attānudiṭṭhi pahīyati」를 되풀이한다. 한역은 눈을 앞세우고 나머지를 若…若…로 한데 묶어 「彼亦正觀無我」로 한 번 맺으며, 항마다 「견해가 끊어진다」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 구조·배열. 한역 正觀(바르게 관찰함) ↔ 팔리 jānato passato(아는 이·보는 이) — 개별 어휘. 167.7은 눈 대목 뒤에 …pe…를 품지만 이 좌표가 걸리는 눈 대목은 접히지 않은 부분이다. 저본 이문: 無我【CB】 / 無常【大】 — CBETA가 本經 關鍵詞로 「無我」로 수정했다. 저본(CBETA)대로 「나 없음」으로 옮겼다. 若은 여기서 가정(-면)이 아니라 나열(이거나 저거나)이다 — 배선 앵커의 「-면」은 이 자리에 서지 않는다. 亦은 「눈과 마찬가지로」의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로 맺었다. 觸·受: 확정역 없음(정형구 행 phassa·vedanā만 있음) — 문맥으로 「접촉」·「느낌」. 色은 눈의 대상이므로 「형색」.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3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5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6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7
如是乃至意觸因緣生受,若苦、若樂、不苦不樂,彼亦正觀無我。
이와 같이 하여 마음의 접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곧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것 또한 나 없음으로 바르게 관찰한다.
주 한역이 乃至로 귀·코·혀·몸 대목을 스스로 접었다 — 접힌 대로 두고 펴지 않았다. 팔리 167.7도 …pe… jivhaṃ …pe… manaṃ으로 접어 두었으므로 접힌 안쪽은 미대응이다. 167.8은 법·마음의 의식·마음의 접촉·마음의 접촉을 조건으로 한 느낌을 나열하는데, 한역 이 좌표는 그 끝(意觸因緣生受)만 드러낸다 — 일부. 意는 「마음」으로 옮겼다(정착 술어 「의」도 후보).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150:167.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8
比丘!如是知、如是見,次第我見斷,無我見生。」
비구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차례로 나라는 견해가 끊어지고 나 없음이라는 견해가 생긴다.”
주 팔리에는 따로 선 맺음말이 없고, 「jānato passato attānudiṭṭhi pahīyati」가 항마다 붙은 후렴으로 167.8 끝에서 경이 끝난다 — 일부. 질문의 되받음인 「次第」·「無我見生」은 팔리에 없다(0052a01.1과 같은 사안). 비구 호격 「比丘」 ↔ 팔리 167.3의 bhikkhu 호격은 팔리에서 답변 첫머리에 놓인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150:167.8
時,彼比丘聞佛所說歡喜,歡喜已,作禮而去。
그때 그 비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였고, 기뻐하고 나서 절하고 떠나갔다.
주 팔리 sn35.150은 167.8에서 붓다의 말로 끝나고 167.9는 경 번호(Dvādasamaṃ)다 — 맺음 정형구가 없다. …pe…로 접힌 자리가 아니므로 없음확인. 所說은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而는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150:1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