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〇六)
(206)
주 한역 저본은 경 번호 「(二〇六)」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sn35.83/0.3은 「7.」 번호와 함께 경 이름(홀로 머묾을 뜻하는 이름)을 단다 — 팔리 쪽이 더 말하므로 일부. 大正 교감주(다카쿠스)는 「S. 35. 160. Jīvakambavana, 100. Paṭisallāna.」로 두 번호를 함께 적는다. 팔리증언 파일에 따르면 대응 후보 합의 등급이 conflict다(莊春江 sn35.100→PN sn35.83 / 다카쿠스 sn35.160). 작가에게는 sn35.83만 투입되었고 sn35.160은 미투입이라, 이 직역의 대응 판정은 전부 sn35.83 기준이다. 어느 계열이 맞는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투입된 팔리 sn35.83 본문에는 개경 정형구가 없다 — 경 이름(0.3)·문단 번호(100.0) 다음 바로 붓다의 발화(100.1)로 들어간다. …pe… 표지로 접힌 자리가 아니므로 미대응이 아니라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그 자리가 놓일 좌표로 100.1을 짚었다.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회 쓰인 개경 정형구다(_정형구_생략표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83:100.1
一時,佛住毘舍離城耆婆拘摩羅藥師菴羅園。
한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성의 기바 구마라 의사의 암라 동산에 머무셨다.
주 투입 팔리 sn35.83에는 머문 곳을 밝히는 문장이 없다(0.2와 같은 사정, 없음확인). 다카쿠스 각주가 가리키는 sn35.160의 이름 「Jīvakambavana」는 이 문장의 장소(耆婆…菴羅園)와 겹쳐 보이나, sn35.160 원문이 투입되지 않아 대조하지 않았다. 고유명 처리 — ① 毘舍離: 한자대역 3분할의 정착어(→비사리). 정착형 「비사리」로 쓰고 「城」은 뜻으로 「성」. 이 이름의 뜻: 慧琳 一切經音義 0478a23 「此云廣嚴城」(넓고 장엄한 성), 0447b17 「此翻為廣博…或亦翻為廣嚴」(인용, 확정역 아님). 팔리형 Vesālī/Vesāli. 전거 대장은 毘舍離에 「⚠다른 부(DA)의 대역」을 달았다. ② 耆婆: 표에 없음. 한자가 소리를 옮긴 것으로 판별(음역) → 한자 독음 「기바」. 전거 대장 근대 비정 Jīvāka, 丁福保는 Jivaka 「譯曰固活,能活」 — 뜻을 옮긴 한자가 아니므로 음역. ③ 拘摩羅: 표에 없음. 음역으로 판별 → 「구마라」. 전거 대장 근대 비정 Kumāra, 丁福保 「譯曰童子」(인용). 한자대역 3분할의 「摩羅(음역, Malla)」 적중은 拘摩羅 안의 두 글자에 걸린 오적중으로 보고 따로 처리하지 않았다. ④ 藥師: 한자가 뜻을 옮김(의역) → 「의사」. 丁福保 표제 〔菩薩〕 藥師琉璃光如來는 후대·대승의 쓰임이라 이 문맥과 어긋나 버렸다. ⑤ 菴羅園: 한자대역 3분할이 菴羅를 「갈림(의역/혼합)」으로 표시했다. 저본 문맥에서 菴羅는 과일나무 이름을 소리로 옮긴 것(慧琳 0496b14 「菴羅…果名也…正言菴沒羅」)으로 보아 독음 「암라」, 園은 뜻으로 「동산」 — 혼합형으로 처리. 표의 유형이 갈리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팔리형 Amba, 전거 대장 근대 비정 Āmraārāma — 근대 비정만 있어 팔리형·범어형이 둘 다 서는 것은 아니다. ⑥ 「耆婆拘摩羅藥師」를 「기바 구마라 의사」로 한 사람의 이름+직함으로 읽었다(사전 拘摩羅 ① 앞: 耆婆 9/9, 藥師 ① 앞: 摩羅 9/9 — 늘 붙어 나온다). 佛=부처님([구속]).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83:100.1
爾時,世尊告諸比丘:「當勤方便禪思,內寂其心。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지런히 애써 선정에 들어 사유하고,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라.
주 팔리 100.1은 「홀로 머묾에 힘쓰라」 한 마디인데, 한역은 「當勤方便禪思」에 「內寂其心」(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라)을 더 말한다 — 한역 쪽이 더 말하므로 일부. 「爾時,世尊告諸比丘」에 해당하는 서술 문장도 팔리에는 없다(팔리는 발화만 있다). 개별 어휘: 한역 「禪思」 ↔ 팔리 paṭisallāna(홀로 물러나 머묾) — 한역은 선정·사유 쪽으로 옮겼다. 본문은 한문대로 둔다. 「禪思」는 「선사」로 음독하지 않고 「선정에 들어 사유하고」로 풀었다(丁福保 「思惟寂靜,謂之禪思。即禪定也」 — 후대 풀이, 인용). 「方便」은 확정역이 없고, 여기서는 「勤」과 붙어 애씀을 뜻하므로 「애써」로 옮겼다(「방편」 음독 회피). 전거 대장의 方便 근대 비정 Upāya(수단)는 이 자리의 뜻과 맞지 않아 쓰지 않았다. 禪思·方便 역어 후보가 둘 이상이라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세우지 않았다(배선앵커). 붓다 발화는 평서·명령형. 世尊=세존, 比丘=비구([구속]). 음역계통: 比丘 — 전거 대장 팔리_후보 bhikkhu / 범어_후보_근대 Bhikṣu, 두 계통이 둘 다 서고 갈린다(전거 대장 「팔리와 범어가 둘 다 서는 것 1종 · 그중 갈리는 것 1종」). 판정하지 않는다. 慧琳 0482a20 「梵云苾蒭」(인용).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1
所以者何?
무슨 까닭인가?
주 팔리에는 100.1(권고)과 100.2(홀로 머무는 비구는 있는 그대로 안다) 사이에 이유를 묻는 문장이 없다. 한역에만 있는 자문(自問). 그 자리가 놓일 좌표로 100.2를 짚었다. 「所以者何」를 「~하는 바」로 옮기지 않고 「무슨 까닭인가」로 흡수했다(배선앵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83:100.2
比丘!方便禪思,內寂其心,如是如實知顯現。
비구들이여! 애써 선정에 들어 사유하고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앎이 드러난다.
주 팔리 100.2는 「비구들이여, 홀로 머무는 비구는 있는 그대로 안다」로, 아는 주체(비구)를 세운다. 한역은 조건(方便禪思,內寂其心)을 다시 들고 「如是如實知顯現」으로 맺어, 「내적 고요」를 더 말하고 「드러난다(顯現)」를 더한다 — 일부. 「比丘!」는 CBETA 구두를 따라 부름말로 읽었으나, 「比丘(가) 方便禪思…하면」의 주어로 읽을 수도 있다. 「如實知顯現」은 「있는 그대로의 앎이 드러난다」와 「드러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두 구문이 다 선다 — 앞쪽을 택하고 경 안에서 통일했다. 둘 다 구문이 결정되지 않으므로 [불확실:격·태·구문]. 「如實」은 「여실」로 음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2
於何如實知顯現?
무엇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앎이 드러나는가?
주 팔리 100.3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아는가?」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묻는다. 「於」는 조사 「-에 대하여」가 진다. 「顯現」 구문 처리는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83:100.3
於眼如實知顯現,若色、眼識、眼觸、眼觸因緣生受,若苦、若樂、不苦不樂,彼亦如實知顯現。
눈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앎이 드러나고, 형색이든, 눈의 의식이든, 눈의 접촉이든, 눈의 접촉을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이든 — 괴로움이든, 즐거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 그것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앎이 드러난다.
주 팔리 100.4~100.7은 눈·형색·눈의 의식·눈의 접촉을 하나씩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하고, 100.8 앞부분은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생긴 느낌(즐거움·괴로움·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도 「무상하다」고 안다고 한다. 한역은 같은 항목을 같은 순서로 한 문장에 묶되, 각 항목에 「무상」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앎이 드러난다」만 말한다 — 「무상」은 0052b26.2에서 「此諸法無常、有為」로 한데 모아 말한다. 항목마다 팔리 쪽이 「무상」을 더 말하므로 각각 일부로 매겼고, 무상의 자리 이동은 0052b26.2에 자리바뀜으로 적었다. 100.8은 앞부분(눈의 접촉 느낌)만 이 좌표에 걸리고 …pe… 뒤 부분은 0052b26.1에 걸린다. 느낌 셋의 순서: 팔리 sukhaṃ vā dukkhaṃ vā(즐거움·괴로움) ↔ 한역 若苦、若樂(괴로움·즐거움) — 순서가 바뀌었다. 「若…若…」는 이 자리에서 가정이 아니라 열거(「~이든 ~이든」)로 읽었다 — 배선앵커는 가정 「-면」을 제시하나 저본 구문이 열거이므로 저본을 따랐다. 「觸」(접촉)·「受」(느낌)는 확정술어 파일에 「정형구 행」으로만 실려 낱말 확정역이 없으므로 문맥으로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부재]를 남긴다. 「因緣」은 정착어로 보아 「인연으로」. 「色」은 눈의 대상이므로 「형색」. 「彼亦」의 「亦」은 조사 「도」가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5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6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7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83:100.8
耳、鼻、舌、身、意亦復如是。
귀, 코, 혀, 몸, 뜻도 이와 같다.
주 팔리 100.8은 눈의 느낌 다음을 …pe…로 접고 마지막 마노(意)의 접촉 느낌만 펴 둔다. 이 좌표(귀~뜻)는 그 접힌 구간에 걸리므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한역 「亦復如是」도 귀·코·혀·몸·뜻의 반복을 한역이 스스로 접은 표현이므로 접힌 대로 두고 펴지 않았다(_정형구_생략표지의 목록에는 없는 표현이나 같은 기능이라 [생략표지]로 신고). 「意」는 같은 경의 「心」(0052b21.1 「마음」)과 다른 한자이므로 통일하지 않고 「뜻」으로 옮겼다 — 「마음」으로 옮길 수도 있어 역어 후보가 둘이다. 「亦復」은 조사 「도」가 지므로 「또한 다시」를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83:100.8
此諸法無常、有為,亦如是如實知顯現。」
이 법들이 무상하고 지어진 것임도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앎이 드러난다."
주 팔리는 「무상(anicca)」을 100.4~100.8의 각 항목에 붙이는데, 한역은 항목 열거(0052b24.1)에서는 빼고 이 좌표에서 「此諸法無常」으로 한데 모아 말한다 — 같은 내용이 다른 자리에 선다(자리바뀜). 「有為」(지어진 것)는 팔리 sn35.83에 대응하는 말이 없다(한역 쪽이 더 말한다). 팔리 100.9~100.10(권고와 「홀로 머무는 비구는 있는 그대로 안다」의 반복)은 한역에 대응 좌표가 없다 — 한역은 이 좌표로 발화를 닫는다(팔리 쪽 문장 유무). 구문: 「此諸法無常、有為」를 「如實知顯現」의 대상(이 법들이 무상하고 지어진 것임을 있는 그대로 앎)으로 읽었다. 「이 법들은 무상하고 지어진 것이니, 또한 이와 같이…」처럼 주제로 끊어 읽을 수도 있어 [불확실:격·태·구문]. 「無常」은 한국어에 정착한 「무상」, 「有為」는 「유위」로 음독하지 않고 「지어진 것」으로 풀었다(丁福保 「為者造作之義,有造作,謂之有為」 — 인용). 「有」는 존재가 아니라 「有為」 복합의 일부다. 「諸」는 「-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35.83:100.4~100.8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sn35.83은 「Sattamaṃ」(일곱째)으로 끝나며 듣는 이의 기뻐함을 적는 맺음 문장이 없다 — 없음확인. 그 자리가 놓일 좌표로 100.11을 짚었다. 佛=부처님, 比丘=비구([구속]). 한자 흔들림: 한역이 붓다를 0.3·이 좌표에서는 「佛」, 0052b21.1에서는 「世尊」으로 쓴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 둘 다 확정역이 따로 있어(부처님/세존) 통일하지 않고 각각의 확정 문자열로 옮겼다. 「所說」은 「~하는 바」로 옮기지 않고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배선앵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83:1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