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35.13
첫 번째 「깨닫기 전」 경
Paṭhamapubbesambodhasuttaṃ
교차 검사
1. Paṭhamapubbesambodhasuttaṃ
1. 첫 번째 「깨닫기 전」 경
13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의 일이다. 아직 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였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의 달콤함은 무엇인가. 눈의 재앙은 무엇이며, 눈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귀와 코와 혀는 어떠하고, 몸과 마음은 또 어떠한가. 그 달콤함과 재앙은 무엇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이어서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Pubbeva me, bhikkhave,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ko nu kho cakkhussa assādo, ko ādīnavo, kiṃ nissaraṇaṃ?
‘눈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위험은 무엇이며, 벗어남은 무엇인가?
Ko sotassa…pe… ko ghānassa… ko jivhāya… ko kāyassa… ko manassa assādo, ko ādīnavo, kiṃ nissaraṇa’nti?
귀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위험은 무엇이며, 벗어남은 무엇인가? 코의, 혀의, 몸의, 마음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위험은 무엇이며, 벗어남은 무엇인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35.13:13.3에서 되살렸습니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눈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이 눈의 달콤함이다. 눈은 덧없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눈의 재앙이다. 눈을 향한 욕망과 탐욕을 다스려 버리는 것, 이것이 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yaṃ kho cakkhu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ayaṃ cakkhussa assādo.
‘눈을 조건으로 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눈의 달콤함이다.
Yaṃ cakkhuṃ a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ayaṃ cakkhussa ādīnavo.
눈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이것이 눈의 위험이다.
Yo cakkhusmiṃ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idaṃ cakkhussa nissaraṇaṃ.
눈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몰아냄, 욕망과 탐욕을 버림, 이것이 눈에서 벗어남이다.
귀도 코도 마찬가지다. 혀를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니, 이것이 혀의 달콤함이다. 혀는 덧없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혀의 재앙이다. 혀를 향한 욕망과 탐욕을 다스려 버리는 것, 이것이 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Yaṃ sotaṃ…pe… yaṃ ghānaṃ…pe… yaṃ jivha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ayaṃ jivhāya assādo.
귀를 조건으로 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귀의 달콤함이다. 귀는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이것이 귀의 위험이다. 귀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몰아냄, 욕망과 탐욕을 버림, 이것이 귀에서 벗어남이다. 코를 조건으로 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코의 달콤함이다. 코는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이것이 코의 위험이다. 코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몰아냄, 욕망과 탐욕을 버림, 이것이 코에서 벗어남이다. 혀를 조건으로 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혀의 달콤함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35.13:13.6 ~ PN:sn35.13/13.8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 jivhā aniccā dukkhā vipariṇāmadhammā, ayaṃ jivhāya ādīnavo.
혀는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이것이 혀의 위험이다.
Yo jivhāya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idaṃ jivhāya nissaraṇaṃ.
혀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몰아냄, 욕망과 탐욕을 버림, 이것이 혀에서 벗어남이다.
몸도 그러하다. 마음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니, 이것이 마음의 달콤함이다. 마음은 덧없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마음의 재앙이다. 마음을 향한 욕망과 탐욕을 다스려 버리는 것, 이것이 마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Yaṃ kāyaṃ…pe… yaṃ mana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ayaṃ manassa assādo.
몸을 조건으로 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몸의 달콤함이다. 몸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이것이 몸의 위험이다. 몸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몰아냄, 욕망과 탐욕을 버림, 이것이 몸에서 벗어남이다. 마음을 조건으로 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마음의 달콤함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35.13:13.6 ~ PN:sn35.13/13.8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 mano anicco dukkho vipariṇāmadhammo, ayaṃ manassa ādīnavo.
마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이것이 마음의 위험이다.
Yo manasmiṃ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idaṃ manassa nissaraṇa’’’nti.
마음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몰아냄, 욕망과 탐욕을 버림, 이것이 마음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안의 감각 영역 여섯이 남아 있었다. 그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재앙을 재앙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내야 했다. 그것을 알아내지 못한 동안에는 나는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았다. 신과 마라와 범천이 사는 이 세상에서도 그러했다.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사람이 어울린 이 무리 가운데서도 그러했다.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마침내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냈다. 그러고 나서야 그 세상과 그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내세웠다.
‘‘Yāvakīvañcāhaṃ, bhikkhave, imesaṃ chann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ev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nābbhaññāsiṃ, neva tāv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비구들이여, 내가 이 여섯 안의 감각 장소들에 대해 이와 같이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온전히 알지 못했을 때까지는,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Yato ca khvāhaṃ, bhikkhave, imesaṃ chann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ev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th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그러나 비구들이여, 내가 이 여섯 안의 감각 장소들에 대해 이와 같이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온전히 알았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에게 앎과 봄이 생겨났다. ‘내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