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五二)
(152)
주 한문은 경 번호 「一五二」만 있다. 팔리 머리는 품 안 번호 「3」과 경 제목을 함께 단다. 두 번호는 서로 다른 편집 체계의 번호이므로 같은 수가 아닌 것은 갈림으로 보지 않는다. 한역에는 경 제목이 없다 — 일부(한쪽이 더 말함).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는 인연 머리를 「사왓티 인연」이라는 약칭 한 줄로 접었다. 개경구가 그 접힌 안쪽에 들 수 있으나 글자로는 실려 있지 않으므로 「없음확인」이 서지 않고 미대응으로 둔다. 사전 如是我聞 ① 발화 첫머리 0/1333(잡아함 전권 개경 정형구). 배선 앵커 如=「~같이」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4.3:208.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확정 술어 [구속] No.253). 舍衛는 _한자대역_3분할에서 정착어 「사위」 — 그 뜻: 一切經音義(慧琳) T54 0367c24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이 이름은 「들은 이의 성(聞者城)」을 뜻한다고 전한다). 음역계통: 전거표 舍衛 ←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로 갈린다(_전거_sa150, 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은 _한자대역_3분할에서 「보류」(5자 이상)이나, 지시서 §⑤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어 예로 든다 — 정착형으로 썼다. 그 뜻: 祇는 음역(慧琳 0368a03 「正梵音云誓多 此譯為勝」, 승리라는 이름의 태자 ― 「太子自留其樹 故略云祇樹」, 즉 「기타 태자의 숲」), 給孤獨은 의역(慧琳 0368a05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 誓救孤獨」,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園은 「동산」. 곧 「기타 태자의 숲,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 3분할 표가 보류한 자리라 유형 확정은 정도평 님 몫으로 을 남긴다. 전거표 祇樹給孤獨園 ⚠다른 부(DA)의 대역. 팔리는 「사왓티 인연」 약칭 한 줄로 접었고 기수급고독원 이름은 글자로 없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208.1
爾時,世尊告諸比丘:「何所有故,何所起?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일어나서,
주 世尊=「세존」(확정 술어 [구속] No.252), 比丘=「비구」([구속] No.265). 諸는 복수 「-들」로 흡수했다(앵커: 남발 주의). 何所有故의 所는 「~하는 바」로 옮기지 않고 「무엇이 있기 때문에」로 풀었다(앵커). 故가 뒤의 何所起·何所繫著·何所見我까지 걸리는 것으로 읽어 연결 어미로 이었다. 팔리에는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라는 내레이션이 없고 질문 안의 호격(bhikkhave)만 있다 — 인도어 호격과 한문 내레이션의 차이로 「번역기법」을 함께 적는다. 팔리 질문은 세 항(sati / upādāya / abhinivissa)이고 한역은 네 항(有故·起·繫著·見我)이다. 有故↔sati는 같아 보이나, 起와 upādāya의 관계, 見我에 맞는 팔리 항이 없음은 개별 어휘로 신고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음역계통: 比丘 ← 팔리 후보 bhikkhu / 근대 범어 후보 Bhikṣu(_전거_sa150, 판정하지 않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208.2
何所繫著,何所見我?
무엇에 매여 집착하고, 무엇에서 나를 보기에,
주 앵커 所×2 — 「~하는 바」를 쓰지 않았다. 繫著은 「매여 집착하다」(사전 繫著 ① 잡아함 141회 · 앞: 何所 30). 何所見我는 「무엇에서 나를 보는가」로 읽었다 — 「무엇을 나로 보는가」로도 읽힐 수 있다. 繫著은 팔리 abhinivissa 자리와 겹쳐 보이나, 何所見我에 맞는 항은 팔리 208.2에 없다. 我를 「나」로 옮겼다(「자아」 후보가 있으나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한문의 구두(?)는 CBETA의 것이고 문장은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208.2
令諸眾生作如是見、如是說:『有我、有此世、有他世,常、恒、不變易法,如爾安住。』
중생들로 하여금 ‘내가 있고, 이 세상이 있고, 다른 세상이 있으며, 항상하고 영원하며 변하여 바뀌지 않는 법으로서, 그와 같이 안주한다.’라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하게 하는가
주 令=사역 「-게 하다」(앵커). 有×3은 견해의 내용 안에서 존재 자체를 서술하므로 「있다」로 세웠다. 他世의 他는 此世와 짝을 이루므로 「다른 세상」(앵커: 自/此와 짝일 때만 세움). 常·恒·不變易法은 세 항 그대로 「항상하고 / 영원하며 / 변하여 바뀌지 않는 법」. 如爾安住는 「그와 같이 안주한다」(爾=此). 我는 앞 좌표와 같이 「나」로 통일했다(「자아」 후보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증언 대조: 팔리 208.2는 「이러한 견해가 일어난다」로 끝나고 如是說(이와 같이 말함)에 맞는 말이 없다. 팔리 208.3은 「그것이 자기, 그것이 세상, 나는 죽은 뒤 그것이 될 것이다」 세 항 + 「항상·견고·영원·변하지 않는 법」 네 항이다. 한역은 有我·有此世·有他世 세 항 + 常·恒·不變易法 세 항 + 如爾安住(팔리에 없음)다. 此世↔loko, 他世↔pecca(죽은 뒤) 자리가 맞물려 보이나 판정하지 않는다. 증언에서 본 뜻은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문장의 의문 종결은 다음 좌표(0043c13.1)에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208.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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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저본 좌표가 의문부와 닫는 따옴표만 지닌다. 0043c10.1부터 이어진 붓다의 질문 문장(何所有故 … 如爾安住)을 닫는다. 팔리 208.3도 질문을 의문으로 닫는다(…ti?) — 의문 종결이라는 점만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4.3:208.3
諸比丘白佛:「世尊是法根、法眼、法依……」如是廣說,次第如上三經。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하니, 차례는 위의 세 경과 같다.
주 佛=「부처님」([구속] No.253), 世尊=「세존」([구속] No.252). 비구들의 발화는 윗사람(세존)에게 하므로 존댓말. 白=「아뢰다」. 是는 계사로 흡수했다. 法依는 「법의 의지처」(사전 法眼 ① 法根 앞 51 / 法依 뒤 51 — 世尊是法根·法眼·法依가 잡아함 정형구다). 생략표지: 한문이 「……」와 如是廣說·次第如上三經으로 스스로 접었다 — 접힌 대로 두었고 펴지 않았다(_정형구_생략표지: 如是廣說 56 · 廣說 219 · 如上 296). 「위의 세 경」이 어느 경인지 저본은 말하지 않는다. 증언 대조: 팔리 208.4는 「세존을 뿌리로 하는 법들」(법이 세존을 뿌리로 한다)이고 한역은 「세존이 법의 뿌리」(세존이 주어)다 — 구조·배열로 신고만 한다. 팔리 208.4는 첫 항 뒤를 …pe…로 접었으므로 法眼·法依의 대응은 판단하지 않았다. 팔리에는 호격 bhante가 있고 한역에는 없다. 팔리 208.5~208.22(색 등 다섯 무더기에서 견해가 일어남, 무상 문답, 예류의 선언)는 한역이 如是廣說로 접은 안쪽에 걸리므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佛(내레이션 0.3·이 좌표)과 世尊(0043c10.1·이 좌표의 발화)으로 달리 쓴다 — 통일하지 않고 각기 확정역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4.3:208.4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4.3:208.5~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