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335

SĀ 1335

교차 검사교차 검사 11현대역 준비 중

(一三四二)

(1342)

주 한문 제목 자리에는 大正藏 경 번호 一三四二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숫자는 1342로 옮김). 팔리 제목 좌표 PN:sn9.7/0.3은 번호와 경 이름(Nāgadattasutta)을 함께 갖고 있어 일부 대응으로 달았다. PN:sn9.7/227.0의 '227'은 쪽 번호로 보여 제목과 잇지 않았다. 교감주(편자 각주) 'S. 9. 7. Nāgadatta.(那迦達多)'는 편자가 붙인 팔리 SN 9.7 병기이고 본문이 아니며, 'No. 100(362)'는 다른 大正 경 번호의 병기로 보이나 이 투입물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이 조각에 없어 산스크리트 항은 전 좌표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0.3

AG:sa1335/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한역에만 있는 개경 정형구다(정형구 표: 이 아함 전권 1332회). 팔리 sn9.7은 'Ekaṃ samayaṃ'으로 곧바로 시작하며 'Evaṃ me sutaṃ'이 없음을 팔리 전문(0.3~227.9)에서 확인했다 — 놓일 자리는 227.1 앞. 앵커 如×1은 「~같이」로 풀어 「이와 같이」로 옮겼다.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7:227.1

AG:sa1335/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한때」는 팔리 227.1 'Ekaṃ samayaṃ'과 같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는 팔리 sn9.7에 없다 — 팔리는 나가달다 존자가 코살라의 한 숲에 머무는 것으로 바로 시작하며 사왓티도, 붓다의 처소도 말하지 않는다(팔리 전문 확인, 그 부분은 없음확인). 佛=부처님은 [구속] 그대로. 舍衛=사위는 정착어(3분할)로 정착형을 썼다. 이름의 뜻: 팔리 Sāvatthī, 전거 舍衛 ← Sāvatthī(팔리) / śravasthi(범어 당대 후보) — 둘 다 서고 서로 달라 음역계통을 신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는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法鏡經譯云聞物國', 또 善見律을 들어 '舍衛는 사람 이름 — 그 땅에 먼저 살던 이'라 푼다(참고 인용, 확정역 아님).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이 '보류'(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로 두어, 이름으로 판별했다: 祇樹(음의 慧琳 0368a03: 祇陀 태자가 자기 나무를 부처와 승가에 바쳐 '祇樹'라 함) + 給孤獨(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 — 뜻으로 옮긴 말, 풀면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 園. §⑤ 정착어 예시(기수급고독원)에 따라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쓰되, 給孤獨이 의역이라 정착어/의역 가름은 정도평 몫으로 남긴다. 전거: 祇樹給孤獨園 ←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앵커 一時의 時는 시간어라 「한때」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1

AG:sa1335/0.3 · 교차 검사

有尊者那迦達多在拘薩羅人間,住一林中,有在家、出家常相親近。

나가달다 존자가 구살라의 인간 세상에서 한 숲속에 머물렀고, 재가자와 출가자가 늘 서로 가까이하였다.

주 (1) 那迦達多는 3분할 표에 없는 이름이다. 소리로 판별했다: 那迦=nāga, 達多=datta를 한자 음으로 옮긴 꼴이고(팔리 Nāgadatta, 사전 達多 ① 앞 那伽 18 · 那迦 2), 뜻으로 풀 근거가 한문에 없다 → 한자 독음 「나가달다」. 음의 達多(慧琳 0828b11)는 음만 달았다. 한 경 안에서 표기를 통일한다. (2) 尊者=존자(정착). 앵커 者×1은 尊者라는 낱말의 일부라 명사화로 읽지 않았다. (3) 拘薩羅=구살라는 음역(3분할), 팔리 Kosala/Kosalā(전거 ⚠다른 부(DA/MA)의 대역). 팔리 227.1은 'kosalesu'(복수 처격)다. (4) 人間은 「拘薩羅人+間」(구살라 사람들 사이)이 아니라 한 덩어리 「인간 세상」으로 읽었다 — 사전 人間 ① 앞 薩羅 44 · 羅國 15, 뒤 遊行 82. 그래도 끊는 자리는 둘이라 [불확실:구두·분절]. (5) 앵커 有×2는 둘 다 새 인물·상황을 세우는 자리라 「~이 있어」로 두지 않고 주어로 흡수했다. 둘째 有(有在家、出家…)는 「존자에게 재가자와 출가자가 있어 늘 가까이했다」로도 읽힐 수 있고, 相도 「서로」와 「존자를 향해」 두 독법이 선다 → [불확실:격·태·구문]. 「서로」로 옮겼다. (6) 在家=재가자, 出家=출가자: 3분할은 出家를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재가·출가)라 정착형을 썼다 → 풀어 옮기면 「집에 있는 이/집을 나온 이」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7) 구조·배열: 팔리는 재가자와 어울리는 것을 게송(227.6)에서만 말하고, 한역은 산문에서 먼저 말한다. 문장 유무: 「有在家、出家常相親近」에 맞는 팔리 산문이 없다. 번역기법: 팔리 'aññatarasmiṃ vanasaṇḍe'(어느 한 숲, 처격) ↔ 一林中의 一, 'kosalesu viharati' ↔ 在…住 —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다르게 서는 자리라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9.7:227.6

AG:sa1335/0369c29.1 · 교차 검사

時,彼林中止住天神作是念:「此非比丘法,住於林中,與諸在家、出家周旋親數,我今當往方便發悟。」

그때, 그 숲속에 머물러 있던 천신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는 비구의 법이 아니다. 숲속에 머물면서 재가자·출가자들과 어울려 오가며 자주 친하게 지내니, 내가 이제 가서 방편으로 깨달음을 일으키겠다.」

주 팔리 227.3은 숲에 사는 천신(devatā)이 존자를 가엾이 여겨 이로움을 바라며 일깨우려고 다가갔다고 서술하는데, 한역은 천신의 속생각을 따옴으로 세운다(구조·배열). 「此非比丘法…」의 내용은 팔리 산문에 없고 게송에 흩어져 있다(문장 유무). 앵커: 當→「-겠다」로 어미에 맡기고 「마땅히」를 쓰지 않았다. 於는 조사(「숲속에」)로 흡수. 諸는 「-들」로 흡수(남발 안 함). 方便은 정착 술어 「방편」을 수단의 부사어로 썼다. 發悟는 「깨달음을 일으키다」로 옮겼다 — 목적어가 한문에 없어 대상을 보태지 않았다. 法(此非比丘法)은 「법」으로 두고 풀지 않았다(법도/가르침/방식 사이를 한문이 가르지 않는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周旋親數: 周旋=어울려 오감, 親數(數는 '자주')=자주 친함으로 읽었다(사전 數 이 경 0370a01.1). 天神=천신(정착). 전거 天神 ← devata(범어 당대) — 팔리 devatā와 같은 꼴이라 음역계통 갈림은 아니다. 比丘=비구 [구속]. 한자 흔들림 참고: 發悟(여기)와 開覺(0370a08.1)은 같은 일을 가리키는 두 한자어이며 팔리는 같은 어근(saṃvejetukāmā/saṃvejito)이다 — 0370a08.1에 신고. 이문: 止住↔住止【宋】【元】【明】【聖】, 家↔人【明】 — 大正 본문을 따랐고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3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9.7:227.6

AG:sa1335/0370a01.1 · 교차 검사

而說偈言:

게송으로 말하였다:

주 팔리 227.4는 '다가가서(upasaṅkamitvā)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인데, 한역은 「而說偈言」 하나로 접혀 있고 다가감과 말 건넨 상대가 이 좌표에 없다(연속 동사 → 而 접속, 번역기법). 而는 흡수. 이문: 【明】에는 偈言이 없다 — 大正 본문을 따랐다. 사전 偈 ① 앞 而說 189.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4

AG:sa1335/0370a04.1 · 교차 검사

「比丘旦早出,迫暮而還林,

「비구가 아침 일찍 나가고, 저물녘에 임박해 숲으로 돌아오며,

주 팔리 227.2(산문)는 '너무 이른 때 마을에 들어가고 너무 늦은 때 돌아온다'를 서술하고, 227.5(게송)는 '제때 들어가라 나가달다, 낮에 돌아와서도 때 아닌 때 돌아다니는…'이다. 한역은 같은 내용을 게송 안에서 평서로 한 번 말한다(배열). 호격 'nāgadatta'가 빠지고 「비구」로 3인칭이 된 것과 명령형(pavisa)이 평서가 된 것은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다(번역기법). 한문은 어디서 나가는지(마을)를 말하지 않는다. 앵커 而는 흡수. 존칭: 이 게송은 청자가 존자이나 「비구」로 3인칭 지칭하며, 청자가 윗사람인지 한문에서 서지 않아 평서로 통일했다 — 존대 여부는 정도평 몫.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5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9.7:227.2

AG:sa1335/0370a05.1 · 교차 검사

道俗相習近,苦樂必同安。

도를 닦는 이와 속인이 서로 익숙해져 가까이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에 반드시 함께 편안하니,

주 팔리 227.6 'saṃsaṭṭho gahaṭṭhehi, samānasukhadukkho'(재가자들과 섞여 즐거움과 괴로움을 같이한다). 한역 道俗은 출가·재가 둘 다를 말해 팔리 gahaṭṭha(재가자)보다 넓다(개별 어휘).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앞 좌표의 在家·出家와 여기의 道俗은 같은 짝을 가리키며, 통일하지 않았다. 道=출가자로 읽었다(사전 道俗 ⑥ 丁福保 「出家之人曰道」 — 후대 근거라 가볍게만 참고, 사전 道俗 ④ 중아함 6). 앵커 相習近: 「서로 익숙해져 가까이」로 옮겼다. 苦樂必同安은 끊는 자리가 둘이다 — 「苦樂 / 必 / 同安」(고락에 함께 안주)과 「苦樂必同 / 安」. 前者로 옮겼다. 팔리 'samānasukhadukkho'가 '즐거움·괴로움을 같이함'이라는 것은 증언이므로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必은 뜻이 실려 「반드시」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6

AG:sa1335/0370a06.1 · 교차 검사

恐起家放逸,而隨魔自在。」

집에서 방일이 일어나, 마의 자유자재함을 따를까 두렵다.」

주 팔리는 두 행이다 — 227.7 'bhāyāmi nāgadattaṃ suppagabbhaṃ, kulesu vinibaddhaṃ'(나는 두렵다, 매우 방자하고 집들에 매인 나가달다가) / 227.8 'mā heva maccurañño balavato, antakassa vasaṃ upesī'(힘센 죽음의 왕, 끝내는 이의 지배 아래 들어가지 않기를). 한역은 이를 한 행으로 합쳤다(구조·배열). 개별 어휘: 魔(마)↔maccurāja/antaka(죽음의 왕), 放逸↔suppagabbha(방자함) —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起家放逸은 「起+家放逸(집에서의 방일)」로 읽었고 「起家(집을 세움)+放逸」로도 끊을 수 있어 [불확실:구두·분절]. 앵커 自×1은 自在라는 낱말 안이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自在: 사전 自在 ① 앞 隨魔 15. 隨魔自在는 「마의 자재(함)를 따르다」로 옮겼다. 而는 흡수. 恐은 두려움의 문장 보어를 받는 동사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7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8

AG:sa1335/0370a07.1 · 교차 검사

時,那迦達多比丘為彼天神如是如是開覺已。

그때, 나가달다 비구는 그 천신에게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열어 깨우침을 받고 나서.

주 팔리 227.9 'atha kho āyasmā nāgadatto tāya devatāya saṃvejito'(그때 나가달다 존자는 그 천신에게 경각심을 일으킴을 받아)의 앞 절에 닿는다. 팔리에 없는 「如是如是」(이와 같이 이와 같이)는 한문대로 되풀이해 옮겼다. 개별 어휘: 開覺(깨닫게 열어 줌)↔saṃvejito(경각심·절박감을 일으킴)은 뜻의 결이 다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0370a01.1의 發悟와 여기의 開覺은 같은 일을 가리키며 통일하지 않았다. 앵커 為×1: 「為彼天神…開覺」은 所 없는 피동으로 읽었다(그 천신에게 깨우침을 받다) — 「천신을 위하여 비구가 깨우쳤다」는 독법은 문맥상 서지 않는다 → [불확실:격·태·구문]. 已는 완료(「-고 나서」). 覺은 확정술어 [정형구 행]에서 느낌(vedanā)으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開覺의 깨우침이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음의 〈覺已〉(慧琳 0360a20 '覺寤也 謂眠後覺')는 開覺已를 부분 문자열로 걸었을 뿐 이 자리의 낱말이 아니다. 比丘=비구 [구속]. 한역 '比丘'는 팔리 'āyasmā nāgadatto'(존자) 자리에 선다. 那迦達多 표기는 0369c29.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7:227.9

AG:sa1335/0370a08.1 · 교차 검사

如是如是專精思惟,斷諸煩惱,得阿羅漢。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오롯이 힘써 생각하고, 모든 번뇌를 끊어, 아라한을 얻었다.

주 팔리 227.9의 뒷 절 'saṃvegamāpādi'(경각심에 이르렀다)에서 경이 끝나며, 전문에 아라한 증득이 없다(문장 유무). 같은 자리에서 한역은 專精思惟·斷諸煩惱·得阿羅漢를 말해 내용이 갈린다. 專精=오롯이 힘씀(사전 專精 ① 뒤 思惟 65. 후대 근거라 가볍게만 참고: 사전 專精 ⑥ 丁福保 「心專一而精進於道」), 思惟는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해 뜻으로 「생각하고」 옮겼다(3분할의 팔리 Bhāvana는 다른 부(MA)의 대역이며 이 경 팔리에는 짝이 없다). 諸=「모든」(번뇌 전반이라 뜻이 실린 자리). 煩惱는 전거 kleśa(범어 당대 후보). 得은 획득(「얻었다」). 阿羅漢=아라한은 음역(3분할)이라 한자 독음을 썼다. 전거: 팔리 Arahatta/Arahaṁ ⚠다른 부(DA/EA)의 대역 / 범어 근대 Arhat(Arhan) — 계통이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慧琳 0441b10) 응공·살적·불생·원악 등으로 푼다(참고 인용).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9.7:227.9

AG:sa1335/0370a09.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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