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334

SĀ 1334

교차 검사교차 검사 11현대역 준비 중

(一三四一)

(1341)

주 저본은 경 이름 없이 연번 한 줄(一三四一)뿐이라 숫자만 옮겼다. 팔리는 숫자 「225」와 경 이름 「아난다 경」을 따로 싣는다. 숫자 줄은 서로 다른 번호매김 체계의 라벨끼리 맞춘 것이라 일부로 매겼고, 한역에는 경 이름이 없으므로 이름 줄은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교감주 「S. 9. 5. Ānanda.」는 다카쿠스 대조 주기로 이 경을 상윳따 9상윳 5경 아난다로 가리키고, 「[No. 100(361)]」은 별역잡아함 쪽 대조 표시로 보이나 이 투입물만으로는 확정하지 않는다(둘 다 본문에 넣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이하 같다). 투입물 `_전거_sa1334.md` 머리글은 「大正 1334」로 적혀 있으나 저본과 나머지 투입물은 大正 1341이다 — 머리글 표기 불일치로 보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5:0.3

AG:sa1334/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_정형구_생략표지` 기준 이 아함 전권 1332회). 앵커의 如는 비유·가정의 부사가 아니라 如是의 일부이므로 「이와 같이」로 옮겼다. 팔리 sn9.5 전문(225.0~225.7)을 확인했고 이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 — 팔리는 곧바로 「한때」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5:225.1

AG:sa1334/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1) 一時 ↔ Ekaṃ samayaṃ은 같은 틀이나 그 뒤가 갈린다. 한역은 주어 佛, 처소 舍衛國祇樹給孤獨園을 세우고, 팔리 225.1은 주어 아난다 존자, 처소 꼬살라의 어떤 숲(kosalesu viharati aññatarasmiṃ vanasaṇḍe)이다. 팔리에는 붓다의 거처 문장이 없고, 한역은 이 틀 뒤에 다른 비구를 따로 세운다(구조·배열). 엇갈림으로 매겼다. (2) 佛은 [구속] 「부처님」. (3) 舍衛는 정착어 「사위」(3분할 표). 이름의 뜻: 음의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은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이라 하고 선견률을 끌어 「舍衛者人名也」(사람 이름에서 나온 나라 이름)라고도 전한다 —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 대장: 舍衛 ← Sāvatthī(팔리) / śravasthi(범어 당대)로 갈려 음역계통에 해당(⚠다른 부(DA)의 대역). (4)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가 「보류」로 둔 5자 덩어리다. 구성은 祇(음)+樹(뜻) = 기타 태자의 숲, 給孤獨(뜻으로 옮긴 이름), 園이다. 慧琳 0368a03은 「正梵音云誓多 此譯為勝 …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也」, 0368a05는 給孤獨을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 … 古經云阿那邠邸」로 푼다. 전거 팔리형 Jetavana·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뜻풀이: 기타 태자의 숲에 있는,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급고독)의 동산. ⑤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어의 예로 들었으므로 정착형을 쓰고 뜻을 여기 적었다. 다만 給孤獨을 뜻으로 풀어 옮기는 길(의역)도 열려 있어 유형 판별을 신고한다. 한 경 안에서는 이 표기로 통일한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9.5:225.1

AG:sa1334/0.3 · 교차 검사

時,有異比丘在拘薩羅人間,住一林中,唯好樂持戒,不能增長上進功德。

그때 다른 비구가 구살라 사람들 사이 한 숲 가운데 머물면서, 계를 지니는 것만 좋아하고 즐겨 위로 나아가는 공덕을 늘리고 키울 수 없었다.

주 (1) 異比丘 ↔ 팔리 āyasmā ānando(225.1). 한역은 이름 없는 「다른 비구」이고 팔리는 아난다 존자다. 교감주가 이 경을 아난다 경으로 가리키나 한역 본문에는 이름이 없으므로 아난다로 옮기지 않았다. 有는 「~이 있어」 대신 「다른 비구가」로 주어화했다. 比丘는 [구속] 「비구」(음역계통: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전거 인용, 판정하지 않음). (2) 在拘薩羅人間 ↔ kosalesu. 拘薩羅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구살라」(전거 Kosalā/Kosala, ⚠다른 부(DA/MA)의 대역; 팔리형은 여기에만). 人間은 「사람들 사이」로 옮겼다 — 사전 人間 ③이 「佛在拘薩羅人間遊行」 같은 지방·세간을 가리키는 관용 용례를 싣는다. 관용으로 읽으면 「구살라 지방」에 가까워 [불확실:다의어_판별]을 남긴다. (3) 住一林中 ↔ aññatarasmiṃ vanasaṇḍe. 一은 「한」으로 옮겼다. (4) 唯好樂持戒,不能增長上進功德 ↔ 225.2 ativelaṃ gihisaññattibahulo(때 아닌 때에 재가자 달래기에 몰두함). 팔리는 재가자와의 교류 과다를 문제 삼고 한역은 계 지님에 머물러 위로 나아가지 못함을 문제 삼아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5) 唯 [한정]은 조사 「만」이 지고, 能은 「-ㄹ 수」가 진다. 好樂은 「좋아하고 즐기다」(사전 好樂 ① 2회 2경; 음의 慧琳 0488a21 「上呼到反喜也 下五孝反欲也」는 음·자형 풀이). 上進功德은 「위로 나아가는 공덕」, 增長은 「늘리고 키우다」(사전 增長 ①). 다음 좌표의 增修·樂과 한자가 달라 통일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9.5:225.2

AG:sa1334/0369c17.1 · 교차 검사

時,彼林中止住天神作是念:「此非比丘法,住於林中,唯樂持戒,不能增修上進功德,今我當作方便而發悟之。」

그때 그 숲 가운데 머물러 사는 천신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는 비구의 법이 아니다. 숲 가운데 머물면서 계를 지니는 것만 즐기고 위로 나아가는 공덕을 늘리고 닦을 수 없으니, 이제 내가 방편을 지어 그를 일깨워 깨닫게 하겠다.」

주 (1) 天神 ↔ devatā(225.3). 팔리의 devatā는 「그 숲에 깃든(adhivatthā)」 이로 아난다를 연민하고(anukampikā) 이익을 바라며(atthakāmā) 깨우치려는 마음(saṃvejetukāmā)으로 찾아간다. 한역은 이 연민·이익의 서술이 없고, 대신 천신이 속으로 한 말(此非比丘法 … 發悟之)을 적는다. 發悟之는 깨우치려는 뜻에서 saṃvejetukāmā와 겹치는 듯하나 어휘 대응은 판정하지 않았다. 팔리의 「찾아감」(upasaṅkami)은 다음 좌표 쪽에서 다룬다. 天神은 전거 devata(범어 당대; 팔리 후보 없음). (2)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공덕을 늘림)에 앞 좌표는 增長, 여기는 增修를 쓰고, 즐김에도 好樂(앞)·樂(여기)을 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통일하지 않고 「늘리고 키우다」/「늘리고 닦다」, 「좋아하고 즐기다」/「즐기다」로 달리 옮겼다. (3) 當은 어미 「-겠다」가 지고, 於는 조사, 而는 흡수했다. 唯·能은 앞 좌표와 같다. 方便은 정착어 「방편」(전거 근대 Upāya). 發悟는 「일깨워 깨닫게 하다」 — 사전에는 悟 ① 27회가 있을 뿐 發悟 용례는 없다. 作是念은 「이런 생각을 하다」(사전 念 ① 「作是 373」). 比丘는 [구속] 「비구」(음역계통은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3

AG:sa1334/0369c18.1 · 교차 검사

即說偈言:

곧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 225.4는 「(천신이) 다가가 아난다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upasaṅkamitvā … gāthāya ajjhabhāsi)인데, 한역에는 다가감도 상대 호칭도 없고 「곧 게송을 말하였다」만 있다. 즉 게송을 말하는 점만 겹친다. 即은 [즉시] 「곧」. 偈는 정착어 「게송」(음의 慧琳 0483c01 「梵云伽陀 此云頌」 인용). 說偈言은 「게송을 설하여 말하다」로 옮겼다(사전 偈 ① 앞 「即說」 206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4

AG:sa1334/0369c21.1 · 교차 검사

「非一向持戒,及修習多聞,

「오로지 계를 지님이 아니고, 및 많이 들음을 닦아 익힘,

주 팔리 게송(225.5~225.6)에는 계를 지님·많이 들음에 해당하는 말이 없음을 확인했다. 두 게송은 어휘가 거의 겹치지 않는 별개의 게송이다. 一向은 「오로지」(사전 一向 ⑥ 「意向於一處,無餘念」 — 후대 丁福保의 풀이라 가볍게만 참고했다. 용례는 사전 一向 ③ 「非一向得」, sa1034/0272b12.3). 非의 범위가 갈린다. (가) 「오로지 계를 지님이 아니라, 그에 더해 많이 들음을 닦아 익힘(과 이어지는 구들)」, (나) 「계를 지님도 많이 들음을 닦아 익힘도 아니고」. 직역은 둘 다 열어 두고 명사구로 이었다. 及은 「및」. 修習은 「닦아 익히다」, 多聞은 「많이 들음」(사전 多聞 ① 234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5:225.5

AG:sa1334/0369c22.1 · 교차 검사

獨靜禪三昧,閑居修遠離。

홀로 고요한 선삼매, 한가히 머물며 멀리 떠남을 닦음,

주 (1) 閑居修遠離 ↔ 225.5 rukkhamūlagahanaṃ pasakkiya(나무뿌리의 우거진 곳으로 물러나), 禪三昧 ↔ 225.6 jhā(선정에 들라). 홀로 물러나 선정에 든다는 방향이 겹칠 뿐이다. 한역은 명사 나열이고 팔리는 명령형 동사이며, 팔리의 「열반을 가슴에 두고」(nibbānaṃ hadayasmiṃ opiya)에 해당하는 말은 이 좌표에 없다. (2) 三昧: 3분할 표는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昧는 소리만 취한 글자이고 祇樹처럼 뜻 글자가 섞인 이름이 아니다. samādhi를 옮긴 단일 음역으로 읽었고 저본이 이긴다. 한국 불교 정착 술어이므로 「삼매」를 쓴다. 음의 慧琳 0358c10 「正云三摩地 此云等持」 인용, 전거 팔리·근대 범어 모두 Samādhi(갈리지 않는다). 표 분류와 다르므로 신고한다. 禪은 정착 「선」으로 옮겼다 — 사전 禪三昧 ⑥은 「禪那與三昧 … 同體異名」이라 하고 이 복합의 아함 용례는 2경이다. (3) 獨靜은 「홀로 고요한」, 閑居는 「한가히 머묾」(사전 閑居 ① 4회 3경, 뒤 修遠 3. 용례는 사전 閑居 ③ 「閑居修遠離」, sa591/0158c07.1 — 정형), 遠離는 「멀리 떠남」, 修는 「닦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5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6

AG:sa1334/0369c23.1 · 교차 검사

比丘偏倚息,終不得漏盡,

비구가 치우쳐 기대어 쉬어서는, 끝내 새어 나옴의 다함을 얻지 못한다,

주 (1) 팔리 225.6은 「선정에 들라, 고따마여, 방일하지 말라. 이 소란이 그대에게 무엇을 하겠는가」이다. 한역의 경고(치우쳐 쉬면 얻지 못한다)와 방향이 비슷할 수는 있으나 어휘 대응은 없어 엇갈림으로 매겼다. (2) 偏倚息을 「치우쳐 기대어 쉬다」로 끊어 읽었다(偏+倚+息). 息은 다의다 — 사전 息 ③은 「遠離息塵垢」(그침), 「得身息樂」(쉼), 息入·出息(숨)을 싣는다. 문맥으로 「쉬다」를 골랐다. (3) 이문(app 0369017): 大正 倚, 宋·元·明 猗. 두 글자는 「기대다」의 뜻으로 통하는 글자라 뜻이 갈리지 않는다고 보나 단정하지 않는다. 대정본 倚를 따랐다. (4) 得은 漏盡을 목적어로 취하는 획득이라 「얻다」(가능이 아니다), 終不得은 「끝내 … 얻지 못한다」. (5) 漏: 정형구 행은 漏 ↔ āsava를 정형구 안의 「번뇌」로만 알려 주고 낱말 확정이 아니다. 煩惱(다음 좌표)와 한자가 달라 「새어 나옴」으로 옮겨 구분했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 漏盡의 뜻이 아함의 「번뇌가 다함」에 해당함은 사전 漏盡 ⑥(丁福保 1922)이 보이나 후대 해석이라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比丘는 [구속] 「비구」(음역계통은 앞과 같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9.5:225.6

AG:sa1334/0369c24.1 · 교차 검사

平等正覺樂,遠非凡夫輩。」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의 즐거움, 멀리 범부의 무리가 아니다.」

주 (1) 확정 술어 표가 [구속]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이 좌표에서 걸었으나, 저본은 平等+正覺+樂이다. 等正覺은 平等의 等과 正覺이 이어 붙은 글자 조각이 걸린 오적중이다 — 사전 平等 ①의 뒤 낱말에 正覺 3이 실려 있어 平等正覺이 한 덩어리로 쓰인다. 또 이 자리는 「깨달으신 분」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즐거움을 꾸미는 말이다. 저본대로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옮기고 확정역을 쓰지 않았다. (2) 覺은 정형구 행에서 vedanā(느낌)로 묶이는 한자이나 여기는 正覺(깨달음, 사전 正覺 ⑥ 「梵語三菩提 此譯正覺」) 복합이라 느낌이 아니다. 낱말 확정이 아니므로 문맥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平等正覺樂의 끊음은 (平等)(正覺樂) / (平等正覺)(樂)이 모두 가능해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두었다. (3) 遠非凡夫輩는 「멀리 … 아니다」(遠非 = 「~와는 거리가 멀다 / 결코 ~이 아니다」의 뜻으로도 읽힌다). 주어가 생략되어(즐거움을 가진 이 / 즐거움 자체) 갈린다. 凡夫는 「범부」(사전 凡夫 ⑥ 「梵語波羅 … 異生」), 輩는 「무리」. (4) 팔리 225.5의 「열반을 가슴에 두고」(nibbānaṃ hadayasmiṃ opiya)와 주제가 가까울 수 있으나 어휘가 겹치지 않아 엇갈림으로 매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9.5:225.5

AG:sa1334/0369c25.1 · 교차 검사

時,彼比丘天神勸進已,專精思惟,斷諸煩惱,得阿羅漢。

그때 그 비구는 천신이 권하여 나아가게 하고 나자, 오롯이 힘써 생각하고 헤아려 여러 번뇌를 끊고 아라한을 얻었다.

주 (1) 勸進已 ↔ tāya devatāya saṃvejito(그 천신에게 경각심이 일어). 팔리는 아난다가 경각심(saṃvega)을 일으켰다는 데서 끝나고 아라한 도달은 말하지 않는다. 한역은 專精思惟 → 斷諸煩惱 → 得阿羅漢의 결과를 더 말하므로 한역이 더 말하는 일부로 매겼다. 팔리의 주어는 아난다 존자이고 한역은 彼比丘(앞의 異比丘)다. (2) 彼比丘 / 天神勸進已로 끊어 「그 비구는, 천신이 권하여 나아가게 하고 나자」로 읽었다. 勸進은 「권하여 나아가게 하다」(사전 勸進 ① 2회 2경. 용례는 사전 勸進 ③ 「聚落主受尼揵勸進已」, sa908/0231a01.1 — 권함을 받는 쪽), 已는 「-고 나자」. (3) 專精은 「오롯이 힘써」(사전 專精 ① 87회 54경, 뒤 「思惟 65」 — 정형), 思惟는 3분할 표대로 뜻으로 옮겨 「생각하고 헤아려」. 諸는 「여러」, 煩惱는 정착어 「번뇌」(전거 kleśa, 범어 당대). (4) 得은 [가능·획득] 중 획득 「얻다」, 阿羅漢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 「아라한」(팔리형 Arahatta/Arahaṁ, 근대 범어 Arhat(Arhan)은 비고에만 — 음역계통, 판정하지 않음). 음의 慧琳 0441b10 「應供·煞賊·不生·遠惡」 및 0463c22 「此云無生或云殺賊」 인용. 比丘는 [구속] 「비구」.

니까야 대응 일부 SN 9.5:225.7

AG:sa1334/0369c26.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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