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341

SĀ 1341

교차 검사교차 검사 11현대역 준비 중

(一三四八)

(1348)

주 경 번호를 적은 제목 줄이다. 직역단독 국면이라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았다. 없음을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대응은 미대응이다. 「一三四八」은 자릿수를 풀어 1348로 옮겼다.

AG:sa1341/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회, 이 경 1회). 앵커의 如는 「~같이」로 서고 如是는 「이와 같이」로 옮겼다.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AG:sa1341/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은 [구속] 「부처님」. 舍衛는 3분할표에서 정착어라 정착형 「사위」를 쓰고 國은 「국」으로 이었다. 이름의 뜻은 음의(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가 「聞者城」·「聞物國」으로 옮긴다고 전하고, 善見律은 舍衛를 사람 이름이라 한다(같은 쪽). 전거에는 舍衛 ↔ 팔리형 `Sāvatthī` / 범어 당대형 `śravasthi`가 실려 있는데 두 계통이 갈려 있다. 판정하지 않고 신고만 한다(전거 표 ⚠다른 부 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에서 보류(5자 이상)이고, 이름으로 판별한다. §⑤의 정착어 예(기수급고독원)에 따라 정착형을 쓰고 뜻을 적는다. 祇樹는 祇陀(Jeta 태자의 숲 — 음의 慧琳 0368a03: 「祇陀」는 梵 「誓多」, 뜻 「勝」, 太子가 자기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에 바침)이고,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이다(음의 慧琳 0368a05: 「阿那陀… 此云無親屬… 誓救孤獨」). 園은 동산이다. 전거는 `Jetavana, Anāthapiṇḍika`를 후보로 싣는다. 祇는 소리, 樹는 뜻인 혼합 복합이라 유형 판별에 불확실이 남는다. 一時는 「한때」. 住는 부처님의 동작이라 「머무셨다」로 높였다. 내레이션 문말은 평서다.

AG:sa1341/0.3 · 교차 검사

時,有異比丘在拘薩羅人間,住一林中,得他心智,煩惱有餘。

그때, 다른 비구가 구살라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한 숲 가운데 머물렀고, 타심지를 얻었으며, 번뇌가 남아 있었다.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앵커의 有(존재)는 새 인물을 들이는 존재 서술이라 「비구가」로 주어화해 흡수했다. 異比丘는 「다른 비구」이고, 사전 `有`의 뒤 항(異比 81)이 이 정형을 보인다. 在는 「~에 있으면서」이다. 人間은 사전 人間 ① 앞 薩羅 44·뒤 遊行 82에 드는 정형이다. 사람들 사이인지 사람 사는 곳인지 가를 근거가 저본에 없어 「사람들 사이」로 두고 불확실로 남긴다(다의어_판별). 拘薩羅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구살라」로 적는다. 전거에는 팔리형 `Kosala / Kosalā`가 있고 범어 후보는 없으며, 팔리형은 비고에만 둔다(⚠다른 부 DA/MA의 대역). 他心智의 他는 自와 짝이 아니라 「남」으로 세우지 않았고, 정착 술어 「타심지」(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옮겼다. 사전 他心智 ③ 용례(sa1035/0273a22.1)에서는 天耳·宿命智 등과 나란히 놓인다. 得은 「얻었다」. 煩惱는 「번뇌」이다. 有餘는 3분할표(의역)에 따라 「남아 있었다」로 옮긴다. 得他心智와 煩惱有餘 사이에 접속 허사가 없어 「~으나」를 쓰지 않고 병렬로 두었다. 比丘는 [구속] 「비구」. 전거 比丘 ↔ 팔리형 `bhikkhu` / 범어 근대형 `Bhikṣu`의 계통 갈림을 신고한다(근대 편자 비정이라 판정하지 않는다).

AG:sa1341/0371b09.1 · 교차 검사

去林不遠有井,有飲野干罐拘鉤頸。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물이 있었고, 마시는 자칼이 있었는데 항아리가 목을 붙잡아 걸었다.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去林不遠의 去는 기점에서의 거리(…로부터 떨어짐)다. 이문은 세 건이다. ① 林을 宋·元·明은 「林下」로 읽는다(교감주 「林+(下)【三】」). ② 罐을 聖은 「灌」으로 읽는다. ③ 拘를 元·明은 「鉤」로 읽는다. 모두 대정 본문(林·罐·拘)을 따랐다. 罐은 음의(慧琳 0712c02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律〕)가 「瓦器名也可以汲水」라 풀어 「항아리」로 옮긴다. 끊기는 「有 飲野干 / 罐 拘鉤頸」으로 읽었다. 곧 마시는 자칼이 있고 항아리가 목을 붙잡아 걸었다는 뜻이며, 拘鉤는 연속 동사(붙잡다·걸다)로 보았다. 다른 끊기도 선다. 「野干이 마시던 항아리가 있고 그것이 목을 걸었다」로 읽는 경우다. 다음 좌표의 「汲水罐怖我已久」가 자칼을 항아리에 매인 쪽으로 그리므로 앞의 끊기를 골랐으나 확정하지 못했다. 野干은 3분할표(의역)에 따라 짐승 이름의 뜻으로 옮겨 「자칼」로 했다. 음의 慧琳 0575c08은 野干이 野狐보다 작다고 하여 둘을 가른다. 같은 책 0763a17은 「梵語悉伽羅 形色青黃如狗羣行夜鳴聲如狼」이라 한다. 우리말 후보(자칼·승냥이·야간)가 갈려 낱말 선택을 불확실로 남겼고, 이 경 안에서는 「자칼」로 통일한다. 전거에는 野干 ↔ 팔리형 `Sigāla`가 있고 범어 후보는 없다(⚠다른 부 DA의 대역).

AG:sa1341/0371b10.1 · 교차 검사

時,彼野干作諸方便求脫,而自念言:「天遂欲明,田夫或出,當恐怖我。

그때, 그 자칼이 여러 방편을 짓고 벗어나기를 구하며 생각하여 말하였다: 「하늘이 마침내 밝으려 한다. 농부가 혹 나올 것이고, 나를 두렵게 하리라.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인용은 다음 좌표(0371b13.1)에서 닫힌다. 諸는 복수로 「여러」이다. 作諸方便은 사전 方便의 주된 쓰임(精勤方便 따위 수행 어구)과 달리 벗어나려는 궁리·수단의 뜻이라 「방편을 짓고」로 옮겼다.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自念言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念言은 사전 念言 ① 앞 作是 5에 드는 쓰임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해 말한다는 뜻이라 「생각하여 말하였다」로 옮긴다. 遂는 「마침내」이고, 欲明은 「밝으려 한다」이다. 田夫는 「농부」. 或은 「혹」(가능)으로 옮겼고, 「만약」(조건)으로 읽어 「나오면」으로 옮길 수도 있다. 뜻이 갈려 불확실로 남긴다(다의어_판별). 當은 [당위·미래]라 부사 「마땅히」를 쓰지 않고 어미 「-리라」가 지게 했다. 恐怖我는 「나를 두렵게 하다」이다.

AG:sa1341/0371b11.1 · 교차 검사

汝汲水罐怖我已久,可令我脫?」

너, 물 긷는 항아리가 나를 두렵게 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나를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汝는 항아리를 부르는 말이고, 汲水罐은 그 동격이라 「너, 물 긷는 항아리」로 옮겼다. 음의 慧琳 0496a21·0704c19는 汲을 「引水」(물을 끌어올림)로 풀고, 罐은 앞 좌표 비고와 같다. 怖我는 앞 좌표의 恐怖我와 같은 쓰임(사역)으로 보았다. 已久는 「이미 오래」이다. 可는 가능의 뜻이고, 令은 [사역]이라 「-게 하다」로 옮겼다. 이문: 令我를 聖은 「放我令」으로 읽는다(교감주 「令我=放我令【聖】」). 대정 본문을 따랐다. 청자가 항아리라 위아래 높임을 세울 자리가 아니어서 평서로 통일했다.

AG:sa1341/0371b13.1 · 교차 검사

時,彼比丘知彼野干心之所念,而說偈言:

그때, 그 비구는 그 자칼의 마음이 생각하는 것을 알고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心之所念의 所는 [명사화]라 「바」를 쓰지 않고 관형절 「마음이 생각하는 것」으로 풀었다.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偈는 「게송」이고 說偈言은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이다. 사전 偈 ① 뒤 항(言 561)이 이 정형을 보인다. 比丘는 [구속] 「비구」.

AG:sa1341/0371b14.1 · 교차 검사

「如來慧日出,離林說空法,

「여래의 지혜의 해가 나오고, 숲을 떠나 공의 법을 설한다,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앵커의 如는 비유 허사가 아니라 [구속] 如來(여래)의 일부다. 慧日은 「지혜의 해」(日은 비유로 쓰인 해)이고, 出은 「나오다」이다. 離林說空法의 주어와 離의 걸림이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해가 숲을 떠나는 것으로도, 여래가 숲(번뇌의 숲)을 여의고 설하는 것으로도 읽혀, 한국어도 주어를 밝히지 않고 한문의 순서대로 이었다. 離는 「떠나」이다. 空法은 사전 空法 ③ 용례(sa1184/0322c20.1, sa127/0041a15.1)에 걸리며 「공의 법」으로 옮겼다. 說은 「설하다」이다.

AG:sa1341/0371b15.1 · 교차 검사

心久恐怖我,今可放令去。」

마음이 오래 나를 두렵게 하였다. 이제 놓아 가게 해도 좋다.」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心久恐怖我는 오언구 하나로 읽어 「마음이 오래 나를 두렵게 하였다」로 옮겼다. 이 我가 누구인지(게송을 말하는 비구인지 자칼의 시점을 옮긴 것인지)와 心이 누구의 마음인지는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令去의 목적어(떠나보낼 대상)도 생략되어 있다. 모두 한문대로 두고 불확실로 남긴다. 今은 「이제」, 可는 여기서는 허락·권유로 읽어 「-해도 좋다」로 옮겼다. 放令去는 「놓아 가게 하다」(放, 令의 연동)이다.

AG:sa1341/0371b16.1 · 교차 검사

時,彼比丘自教授已,一切結盡,得阿羅漢。

그때, 그 비구는 자신을 가르치고 나서 모든 결박이 다하여 아라한을 얻었다.

주 증언 미투입(직역단독)이라 대응은 미대응이다. 自教授已의 自는 두 갈래다. 재귀 목적어(자기 자신을)로 읽을 수 있고, 부사 「스스로」(남의 도움 없이)로도 읽을 수 있다. 단순히 흡수하면 「가르침을 마치고」가 되어 앞서 자칼에게 한 가르침과 구별되지 않으므로, 재귀 목적어로 풀어 「자신을」로 옮겼다. 自↔他의 명시 대조는 없어 이 선택은 불확실이다. 教授는 「가르치다」, 已는 「-고 나서」이다. 一切는 「모든」. 結은 번뇌의 이명이라는 사전 結 ⑥의 풀이가 있으나 후대의 눈이다. 저본에는 煩惱(앞 좌표)와 結이 따로 나오므로 「결박」으로 옮겼다. 낱말 선택은 불확실로 남긴다. 盡은 「다하다」이다. 阿羅漢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 「아라한」으로 적는다. 음의 慧琳 0441b10은 응공·살적·불생·원악의 뜻을, 0463c22는 「無生」·「殺賊」을 전한다. 전거 阿羅漢 ↔ 팔리형 `Arahatta / Arahaṁ`, 범어 근대형 `Arhat(Arhan)`은 계통이 갈려 판정하지 않고 신고한다(⚠다른 부 DA/EA의 대역).

AG:sa1341/0371b17.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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